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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지난 한 주는 참, 어두운 소식들이 끊이지 않는 이상한 한 주였다. 초현실적이었던 박상표 선생님 부고도 그랬고, 친한 지인들의 개인적 수난들도 참 그로테스크했다...
정말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찬 망망대해인가 싶다.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을까?
우연히도, 지난 2주 동안 삶에 대한 책과 영화를 읽고 감상했지만, 정작 이런 일들에 대처하는데 어떤 용기와 지혜를 주었는지는 잘모르겠네 그려.. ㅡ.ㅡ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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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1 |
지난 가을 무렵에 문을 연 동네 도서관에는 새 책이 그득했다. 읽고 싶었던 리차드 세넷의 책들, 사회과학 서적들은 찾아보기 힘든데 그대신 예술이나 문학, 소프트 버전의 인문학 서적들은 꽤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모두 반딱거리는 새 책이라는 점이 장점....
보통의 이 책은 사실 제목을 '행복의 예술'이라도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작정하고 예술을 의도한 작품과 달리 건축물이란 일상 속에 존재하고 특히나 '실용성'이라는 목표가 있는만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감상할 지점이 있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들은 이것들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딜만한 내적 자산을 갖춘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도모른다. 그런 작품은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현한다."
(나같은 경우) 예술작품이 감상 당시의 맥락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비해, 돌이켜보면 정말 위대한 작품들에서는 그런 감정과 맥락 없이 그 자체로 경이와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
"사회는 무엇이든 자기 내부에 충분하지 않은 것을 예술에서 찾고 사랑한다...."
그러게나, 각박한 기술문명사회는 자연을 동경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된 사회는 '첨단'의 이미지를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독특하다. 이제는 기술/첨단/규모에의 집착을 버릴 때도 되었다 싶은데 말이다.
노발리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술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서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 정말 탁월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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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
그야말로 다양한 '위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위안을 얻으려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만일 위안이 필요해서 읽었더라면 대실망했을 것 같다. 절박하게 위안이 필요한 급성기 환자보다는, 만성적으로 인생에 회의하는 이들에게 살짝 고개를 돌려보라고 제안하는 일종의 nudge? 정도로 생각하면 충분할 듯하다.
책은 크게 여섯 가지의 위안이 필요한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해서, 여섯 명의 철학자들의 입과 생활을 빌어 '그렇지 않아' 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기없는 존재 - 소크라테스 / 가난한 존재 - 에피쿠로스 / 좌절한 존재 - 세네카 / 부적절한 존재 - 몽테뉴 / 상심한 존재 - 쇼펜하우어 / 어려움에 처한 존재 - 니체" 가 그것이다.
문제는, 스스로 저런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언급된 철학자들의 처지와 가르침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 같지는 않더란 말씀....
이를테면 모든 통념에 대한 질문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들을 온통 불편하게 만들었던 인기없는 존재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며, "소크라테스의 예를 따라서, 늘 이성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하는데, 글쎄다. 많은 사람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가 그들이 세상과 불화하는 소크라테스, 혹은 랭보나 보들레르이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ㅡ.ㅡ
또한 정상과 비정상성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고 현학을 멀리했던 몽테뉴의 가르침을 따라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이라면, 비록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둔함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성취를 이룬 삶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얻을만큼 우리가 순진하지는 않다.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정신승리와 현실 굴종의 내면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책 혹은 이런 종류의 위안/힐링 강연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는 것일까? 보통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거듭 이야기했듯,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람들은 도통 알지 못하고, 수학이나 문학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진단과 무관하지 않겠지...
#. 벤 스틸러 감독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너무 전형적이긴 한데, 순간순간 빵 터지는 코미디와 아름다운 풍광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겨버린 영화라고나 할까.... 사실 아무 데도 가본 곳이 없고,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는 월터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왔기에 딱히 로망을 가질 만한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모험을 떠나는 소심남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린란드 항구 마을, 아이슬란드 화산 도시, 아프가니스탄 산자락이 모두 사실은 아이슬란드 였단다. 시규어 로스의 뮤직비디오에서 마주쳤던 풍광을 떠올렸었는데 역시나....
누군가 '현재'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보다는 이영화를 추천해주겠다.
#. 연상호 감독 <사이비>
이 영화는 '위안'이라는 단어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말종이 진실을 말하고, 신을 참칭한 사이비들이 그 인간말종으로부터 응징을 당한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의 일부에 불과하다.
터무니 없는 사이비로부터 진정한 위안을 얻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진심어린 표정이야말로 이 세상이 얼마나 난해한 곳이며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보상금을 모조리 기도원 건립기금으로 갖다 바친 마을 주민들, 치료약이 아니라 반석 샘물을 마시며 병을 키워나가는 마을 주민의 모습에서 우리가 본 것은 광신자들의 기괴함이나 어리석음이 아니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았지만, 어쩐지 그 평화를 깨뜨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또한 세월이 흐른 후, 신을 비웃으며 사이비들을 응징했던 인간 말종이 자신만의 '진정한' 신앙으로 귀의해 있었다는 사실도 맘을 착잡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이비가 아니라 '진짜'라면 괜찮은 거였던 것일까? 진짜와 사이비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영화가 너무나 리얼해서, 실사가 아닌 굳이 애니메이션으로서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저 끔찍한 상황이 실사가 아니라서 조금 덜 부담스럽게 직면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읽은 책들은 공통적으로, 뭘 어쩌라는 말인가... 라는 공통된 질문을 던져주었다.
#. 악셀 하커, 조반니 로렌조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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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 푸른지식, 2011 |
알라딘에서 퍼온 책표지는 저리 상쿰한 레몬색이지만... 내가 동작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껍데기 날아간 검은 양장본... ㅡ.ㅡ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인 두 아자씨들.
이들은 잘못된 선택과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해왔고, 신사회운동의 언저리에서 적극적 혹은 소극적 참여를 경험했고, 매 순간의 선택과 비선택에 대해서 후회와 사려깊은 성찰을 피하지 않는, 괜찮은 사람들로 추정된다 (실제 사생활이야 어찌 알겠냐구... ).
아주 특출나게 주장이 강한 별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시류에만 몸을 맡긴 소시민 대표주자도 아닌 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때로는 속물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가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품새가 마치 인생의 선배가 토닥토닥하며 후배한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좋기는 했다. 폼이나 잡고 '내가 왕년에는...' 이런 거 절대 없고 ㅋㅋㅋ
그런데, 독일에서 이들이 위치한 것과 비슷한 입지에 있는 한국의 인사가 이런 책을 썼더라면, 혹은 내가 독일인이었다면 훨씬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법한 이야기들이, 어쩔 수없는 '사회적 거리' 때문에 영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더라는 문제가.... ㅡ.ㅡ
이들도 딱히 인생의 답을 주려고 이 책을 쓴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다 읽고 나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느낌은 영 피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이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들만큼의 긍정적 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
참, 로렌초의 안토니오 네그리 인터뷰 삽화는 허거덕.... 이런 일화를 가지고 그의 생애와 활동을 모두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상황이 또 아주 낯선 건 아니라서 ㅜ.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에휴....
#. 리처드 세넷 [뉴 캐피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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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위즈덤하우스, 2009 |
몇 가지 주요 내용 요약
*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관련된 세 가지 요인 (혹은 도전과제)
첫째, 시간 - 프레임이 달라졌다, 자주 바뀐다 (여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현대적 인간 ㅡ.ㅡ) 사실, 자본주의가 군대를 모방할 수 있었던 (그래서 효율을 높일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는 시간, 즉 제도가 개인에게 보장하는 기간으로서의 구조화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는...
둘째, 재능- 특정 기술이 아니라 잠재력이 중요한 세상 (기술과 지식은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부단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셋째, 포기의 문제 - 과거와 얼마나 잘 단절할 수 있는가 (즉, 새로운 것에 재깍 얼마나 뛰어들고 몰입할 수 있느냐)
*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노동하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특징짓는 거대요인 - 첫째, 관료제의 변화
경직되고 진부한 관료제 (말하자면 '사회자본주의')란 오늘날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게 했던 안정된 토대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설턴트들에 의해 관료적 조직특성을 변화시키는 구조조정과 개혁이 추진되지만, 조직 안정성의 붕괴, 단기적 수익에의 몰두는 위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안겼을 뿐이다. 안정된 조직 기반의 붕괴는 조지 소로스의 지적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관계맺기'가 아닌 '거래'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이게 참 딜레마인 것이.... 관료제야말로 그 특유의 안정성과 지속성, 피라미드적 위계를 통해 치밀한 '포섭'을 가능케 하고 변혁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데, 문제는 관료제를 뛰어넘는 소위 '현대적' 기업운영체계로의 변화야말로 노동유연화를 통해 변혁의 가능성을 더욱 가로막고 있으니....
저자는 '관료제 쇠창살' 해체와 관련된 주요 변화를 (1) 경영자에게서 주주로의 권력 이동, (2) 이와 관련된 것으로 장기실적보다 단기성과의 중시, (3) 통신과 제조부문의 기술혁신 으로 꼽았다. 기술이 혁신하면서 앙드레 고르가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새로운 여가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레미 리프킨이 걱정했던 것 같은 '노동의 종말'이 다가왔고, 주주 자본주의의 대두는 단기적 이익과 책임지지 않는 경영체제 (의사결정과 책임의 분리),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뭐 새로운 분석은 아니지만, 명쾌하게 1, 2, 3으로 정리해주니까 오케이 ㅋㅋ
하여간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제 조직은 MP3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비유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이 쓰여졌던 시점에서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으나, 말하자면 피라미드 관료조직과 달리 복잡한 중간단계 없이 중앙이 말단을 직접 통제하는 구조, 유연한 조직으로서 MP3라니... ㅡ.ㅡ (저자가 말한 대로 기술문명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ㅋㅋ)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런 유연한 조직에서 상시적인,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anxiety) 에 시달린다. 기업들은 개인들의 독립성과 자기관리를 미덕으로 내세우며 더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타나는 세 가지 사회적 적자라면 (1) 충성도 저하, (2) 노동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신뢰 붕괴, (3) 구성원들의 조직 생리에 대한 무지... 결국 이렇게 되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보상을 유예하고 지연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 the social 은 죽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과 유동성이 특징인 사회, 공식적인 제도와 관료제적 안정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특권, 사회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특권을 가진 이들이라면 삶을 전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지적에 격하게 공감... ㅜ.ㅜ) 사회자본주의가 쇠퇴하는 곳에 불평등과 소외는 커지고 있다.
* 거대요인 - 둘째, 능력주의 (와 동반된 퇴출의 공포)
능력주의와 그에 따른 퇴출의 공포는 현재에만 해당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지만, 특별히 오늘날의 공포는 (1) 글로벌 노동력 공급, (2) 자동화, (3) 고령자에 대한 처우 라는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앞의 두 가지야 뭐 워낙 익숙한 것이고, 특별히 고령자 처우 문제를 보자면,
사회자본주의의 틀을 해체한 기업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령노동자의 경험이 아니라 젊은층의 재능, 그래서 경험이 늘어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건비만 잡아먹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평가... ㅜ.ㅜ
이러한 퇴출의 공포는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요인, 즉 아예 사람들을 복지국가의 체계 바깥으로 밀어내버린다는 지젹에 동의.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지 않나... ㅡ.ㅡ
한편 저자는 '잠재력'에 대한 강조가 '재능'의 기준을 훼손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 곧 정의로 여겨지지만 (대표적으로 아마티야 센이나 마샤 누스바움의 논거를 드는데, 적절한 것같지는 않음), 이는 경험의 축적이나 연습, 노력의 중요성을 미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천재적 소질(잠재력)을 가진 연주자라도 부단한 연습이 없으면 좋은 연주를 해낼 수 없는 것인데, 미래를 준거로 과거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은 번역이 이상한 건지, 사회적 맥락이 달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가는게... 재능/잠재력/능력주의 용어가 내가 생각했던 맥락과는 좀 안 들어맞음.. ㅜ.ㅜ 이를테면 SAT 사례도 지식 자체보다 생각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는 평가라고 하면서 이것이 잠재력을 중시하는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주입식 교육과 암기를 위주로 학력고사를 통해 1등부터 백만등 까지 줄세웠던 과거의 입시제도에 비해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수능과 논술, 잠재력을 중심에 둔다는 입학사정관 제도들이 훨씬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로 얼추 이해는 하겠는데.. 개별 문장들의 앞 뒤가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이건 뭐 원서를 확인해봐야 알 것 같다.
하여간 신분적 귀족사회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지위를 보장받는 '자연적 귀족사회' 혹은 능력주의가 분명히 정의로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오늘날은 여기에 보태 과거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을 독려하고 개인을 무력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업적을 기준으로 '비인격적'인 평가를 했던데 비해, 타고난 재능이나 잠재력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주, 잠재력이 없다고 판정된 이들은 과거의 업적이 어떠하든 이제 쓸모 없는 인물인 것이다. ㅜ.ㅜ
* 거대요인 - 셋째, 정치의 몰락
이제 이렇게 변화된 경제는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뭐 당연하겠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분절된 노동자계급, 원자화된 개인들을 낳고 이들의 불안정성과 노동의 방식은 정치 또한 소비상품의 하나로 만들 뿐이다. 변혁에의 열정은 소멸해버린다.
저자는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를 '소비자'이자 '구경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1) 기업의 생산이나 유통에서 활용되는 플랫폼과 유사한 정치적 플랫폼을 제공받으며, (1) 정치제품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금박을 입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고, (3) 칸드가 명명한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를 평가절하하며 (즉 이미 손에 진 것은 무엇이든지 충분치 못하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생각), (4) (굳이 배우고 노력할 필요없이 간편하게 제시되는) 사용자 중심의 정치를 신뢰하도록 요구받고, (5) 부단히 제공되는 정치적 신제품을 받아들인다.
자,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 진보정치가 성장하기 어렵다.... 고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저성장에 대해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상황 탓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문화적 닻을 단단하게 내리는데 꼭 필요한 가치로 (1) 사건과 경험의 축적, (2) 개인 유용성의 발견, (3) 장인정신 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유연화로 인해 안정된 노동기반과 노동조합을 가질 수 없다면 노동자센터 같은 병렬조직을 세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새로운 상황에서 시간을 재구성하여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방식 (기본소득이나 기본자본)
둘째, 사람들이 쓸모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특히나 국가가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일이지만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와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 가능)
셋째.. 이게 약간 거시기한데,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 '장인정신'을 회복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맬수 있다'는 주장에 매우 공감은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기회가 없다는 것 아닌가 말이지... ㅜ.ㅜ 우리 모두 생활의 달인이 되라는 것이여???
문제의 제기와 진단에 비한다면, 사실 저자가 내놓은 처방이 충분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문제들을 정치경제적 관점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일목요연하게 (특히 번호매겨가면서 ㅋㅋ) 정리해주고, 오히려 그동안 익숙했던 정치경제 방식의 신자유주의 분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좀 읽어봐야겠다.
#.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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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 전성원 인물과사상사, 2012 |
만물박사 지식을 익혀서 남들한테 자랑하는데 써먹기에는 유용한 책인데..
딱히 통찰력을 주는 책은 아니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는데 고생만... ㅜ.ㅜ
그 유명한 Alan Moore 의 Watchmen 을 최근에 킨들 버전으로 읽었다.
물론 '읽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글씨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2008년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 갑자기 영사기 고장으로 끝까지 못 봤던 안 좋은 기억이... ㅡ.ㅡ
오프닝 크레딧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굉장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악을 배경으로 삽화처럼 흘러가는 왓치맨들의 성장과 은퇴와 몰락의 장면들..... 그 감독이 잭 스나이더였다는 것은 최근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에게 그 감독은 300을 만들었던 밑도 끝도 없는 후까시 감독으로 기억되었는데, 사실 영화 왓치맨도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도 지나치게 액션영화 스타일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책을 다 보고나서 돌이켜보니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원작에 꽤나 충실했던 것 같다...
킨들 버전으로 그래픽 노블을 읽은 건 처음인데, 나쁘지 않았다. 간혹 깨알같은 글씨들이 빽빽해서 책으로 볼 때는 오히려 잘 안 읽히는 대사들이 있었는데, 아이패드 화면의 가독성이 더 좋았다. 그래도 '만화책' 고유의 그 질감은 여전히 잘 안느껴진다는 단점은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작품은 정말 굉장했다... Alan Moore 짱!
이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영웅담이었다. 여기에는 전혀 초인적이지 않은 히어로들의 등장과 몰락이 있고, 가보지 않은 대안역사가 있고, '왓치맨'을 필요로 하는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가 있었다. 각 장마다 삽입된 문서자료들, 이를테면 신문기사, 일기, 소설 등은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의 오브제였고, 극중 극 형태의 코믹스 - 히어로들이 보잘것 없는 시대에는 영웅물이 아닌 해적물 코믹스가 인기를 끈다 - 의 충격적 스토리와 전개는 이야기 안팎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고담 시 같은 뉴욕에서 질서를 유지한 자경단은 이들 왓치맨이었고, 이 때의 질서란 가족/도덕/법질서 같은 보수주의적 가치였다. 그런데, 선출되지 않은 혹은 합법적 자격을 갖추지 않은 이들 권력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대중들과 점점 기득권을 정립해가던 경찰은 반감을 키워가고 결국 이들은 '쓸모없고 불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제 과거의 왓치맨들은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의 위협이 가득한 세계, 무질서와 방탕으로 오염된 현실을 한탄할 뿐이다. 물론 일부는 보수주의 정부의 오른팔이 되어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고, 리버럴한 케네디를 암살하기도 하고,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렇게 보자면, 이들 왓치맨의 정체성은 보수주의를 수호하는 우익 야경단이 틀림없다.
그런데...기묘하게도...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이들 왓치맨이 한국의 70-80년대 운동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으로는 반대 (?)의 입장에 서 있을텐데도 말이다. 한 때, 정의의 이름으로 사회를 수호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활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제는 끊임없이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가거나, 정부의 손발로, 혹은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길을 도모하는 자본가로 살아가는 바로 그 지점....
딱히 적절한 해석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느낌은 그랬다. 작품은 각자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하는 각자의 해석이 있는 것이니 뭐 틀리고 말 것은 없겠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이상하고 또라이 같은 인간은 Adrian (이양반은 megalomania)과 닥터 맨하탄... 아드리안은 그냥 환자라 치고, 닥터 맨하탄은 진짜 우주 최강 쫌생이에 겉으로만 쿨가이... ㅡ.ㅡ
Dan은 만일 이 작품이 Batman 이나 Ironman 이었다면 브루스 웨인, 혹은 토니 스타크 급이었겠지만, 여기에서는 돈과 재능을 가진, 하지만 그냥 머뭇거리는 아자씨...
가장 애정이 갔던 인물은 Rorschach... 아마도 작품이 로샥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의 관점으로 일련의 사건을 따라갔던 것 같기도 하고, 그의 개인사와 강인함에 대한 매료일수도 있고... 마지막 부분에서 맨하탄이 로샥을 '사라지게' 만들었을 때 정말 털썩... ㅜ.ㅜ
하여간...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역사를 이렇게 유기적으로 배치하면서 관계의 복잡성, 가치의 혼돈, 인간세상의 아이러니를 이리도 잘 엮어내는 작가가 또 있나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이고 뭐고, 정말 대단한 예술작품이라는 말을 거듭거듭 하지 않을 수가 없다.
V for Vendetta 도 역시 Alan Moore 의 작품이란다.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음... 흠....
하나로 도저히 모아지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하게 하나의 흐름 속에 자리한 책과 영화들...
#. 성석제 [위풍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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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문학동네, 2012 |
오랜만에 성석제의 소설을 읽었는데, 이건 '읽었다'기보다 마치 마당극 한 편을 감상한 기분?
중고등학교 국어 시험 문제에나 등장할 법한, '풍자와 해학'이라는 전형적인 단어가 이렇게나 어울리는 오늘날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인듯...
이 아자씨... 녹슬지 않았어!!!
미친 듯이 웃기고, 번뜩이고, 그리고 심지어 짠하기조차 하다니....
버림받고 내쳐진 사람들끼리의 이 유쾌한 연대의 소동극과 대책없는 낙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잖아!
#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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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1 |
몇 달 전에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알랭 드 보통이 약장사같은 '더빙' 톤과 몸짓으로 수백명의 한국 관객들 앞에서 멘토 코스프레 하는 것 보고 (심지어 승합차 타고 시내를 돌면서 이동상담까지.. ㅜ.ㅜ) 식겁해서 입이 쩍 벌어진 적이 있었더랬다. 아... 저건 또 뭔가....
어쩐지, 이제 다시는 이 자의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동작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스르르 또 집어들었네 그려... 스맛폰에 담아둔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아직 있었던 탓...
근데, 또 이 책을 읽고 나니, '인생학교'를 열어 정말 삶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려는 그의 노력, '종교에게' 전유당했던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다시 찾아오자는 견해에 깊이 동의하게 되면서, 굳이 어릿광대 같은 모습으로 대중강연회에 나타났던 것도 그리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는 관대한 마음이... ㅡ.ㅡ (물론, 강연료 때문에 그리 한 것인지, 견해를 널리 전달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인지는 내 알 수 없으나..)
이 책의 주장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
종교 자체가 인간의 발명품 - 함께 살아가야 할 필요성과 고통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 인데, 무신론자들은 종교가 보여준 독단과 부정적 측면에 경도된 나머지, 이렇게 중요한 필요성을 종교가 전담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그것을 종교만이 다룰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그니까, 무신론자들은 원래 인간의 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종교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눈감을 것이 아니라, 가져오자는 것.... 이건 너무 소중한 문제들이잖아....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며,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것의 가장 큰 적들이라도 이를 선별적으로나마 다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배경에는 현대의 제도와 고안물, 이를테면 교육제도, 대학, 미술, 건축 같은 것들이 그동안 종교가 해왔던 교육, 통찰, 혹은 위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이 공급자 마인드?로 작품들은 연대기별, 유파별로 배치함으로써 중세 성당의 그림들이 주었던 영감이나 감흥을 완벽하게 차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완전 공감!!!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그만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에 흠칫....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만 들으면, 종교활동이 인간의 고통을 대면하고 극복하게 하는 깊이있는 숙고와 성찰 드라마인 것 같지만,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좀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사회 공격적 복음주의자들의 신앙 활동 중 어느 부분이 지적이고 합리적인가???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유대교의 세심한 교리와 삶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럼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하는 짓거리는 뭔데? 하는 질문 때문에 도대체 곱게 바라봐줄 수가 없더라니... (사실, 나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그 어떤 긍정적 스토리도 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ㅡ.ㅡ )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자들이 소중한 인류의 지혜를 눈여겨 보고, 종교로부터 이를 찾아오자는 주장 자체에는 매우매우 공감....
#. [마지막 4중주] (야론 질버만 감독, 2012년 작)
원제가 "late quartet" 인데 과연 이것이 '마지막'으로 번역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냥 '말년의'라고 했더라면, 연주자들의 나이와 상황, 이런 것들에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 소소한 (?) 인생의 드라마들의 구성도 촘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혹은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것은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연주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불협화음이라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이제는 불협화음이, 일탈이, 소위 비정상성이 일상, 정상, 질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실제 이것들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며 살아내기란 참으로 만만치 않은 '필생의 과제'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자연스레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찾아 들어보았다. 귀가 막귀라서.... 불협화음의 화음을 제대로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함정... ㅜ.ㅜ
#. 최장집.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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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폴리테이아, 2012 |
읽은지 몇달이 지난 채로 책상 구석에 쌓여 있던 책들 대 정리 주간이다...
부담없는 두께와 평이한 문체에 비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해왔던 최장집 교수가, 이번에는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어떤 '여파'를 낳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동안 현장 르포르타주들이 대개 사회학적 접근, 사회경제적 분석 혹은 문화적 분석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드물게도 이를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 끌어내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을 노학자이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을 찾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것은 그로서도 낯선 경험인데다 다루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도 서문에서 '뒤늦게 인생공부 많이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동정심을 감정이입 (empathy)와 공감 (sympathy)로 구분했다고 한다. 전자는 스스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치와 이념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고, 후자는 사실의 구체적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란다. 여기에서 인간행위의 급진성을 불러오는 감정 형태는 감정이입이고, 그래서 현실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학생운동 전통이 과도하게 작동할 때 진보의 행동정향도 그런 형태들 띤다. 그러한 정조와 감정은 강한 신념윤리를 격발하고 추동하는 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윤리의 부재 내지는 약화를 가져온다.
* 별 강조 없이 슥 지나가는 문장인데, "지역의 자활센터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온갖 정치집단들이 다들 복지 복지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현실 삶 속에서 정치체로서의 정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도 않는 작금의 상황은 안습... ㅜ.ㅜ
* 저자가 안철수 정책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썼고, 나오자마자 읽은 책이었는데, 당시에 그는 안철수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강한 정당론자였던 저자였지만, "앞으로 그의 행적이 어떠하든 또 그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 젊은 세대들의 자기발견과 정치적 각성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했다"고 했다. 뭐가 되든, 정체되고 빈틈많은 기존 정당체제에 일종의 쇼크요법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일정 정도 동의가 가능한데... 이는 최장집교수의 제자라고 흔히 거론되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일관된 부정적 평가 (반 정당주의자로서의 안철수)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좋은 정당, 바람직한 정당정치를 만들고자 했던 정치학자의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ㅡ.ㅡ
*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현재와 같은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비결정 (non-decision)에 의한 선택적 의제화, 잘못된 갈등 선택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 (entitlement)보다는 물질적 급부 (provision)의 증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분명히 물질적 급부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수혜자의 사회적 권리는 약화되고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내용이 퇴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영국 정치학자 콜린 크라우치에 따르면, 긍정적인 시민적 개념에서는 특정 집단이나 조직들이 스스로 집합적 아이덴디티를 발전시키고 집합적 이익을 공유하면서 정부 정책에 자신들의 요구를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독자적으로 형성한다. 반면, 비판과 불평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적 시민행위는 집권 세력과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이들에게 강력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부정잭 시민행위는 정치란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의 일이고 시민은 관중이나 감시자의 역할에 만족할 뿐이라는 수동적 관점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정치 계급에 대해 극히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우리사회는 어쩌면 긍정적 시민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도 부정적 시민의 역할에 안주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노동있는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현장과 함께 좀더 풍부하고 쉽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당민주주의에 대해 더욱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보다는 박상훈 대표의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추천하고 싶다.
To be continued....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2013년)
주말에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아이맥스로 감상...
첨에 영화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질주하는 액션극인가보다 생각했는데, 간간이 들려오는 혹평을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감독이 전작들이 보여준 페이소스 짙은 유머나 현실에 대한 비판 혹은 풍자도 덜할 것이라는 짐작도 하게 되었다. 음.. 뭔가 어둡고 비현실적인가보구나... 말하자면 허무하고 허무맹랑하다는 뜻이렸다....
이러한 예상은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그리고 내 예상보다 훨씬 밝고 복잡하고,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물론 보여주는 상황은 냉혹하기 그지 없었다. 극심한 불평등과 억압, 견딜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폭력이 냉혹하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유지되는 그 시스템 자체가 냉혹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
커티스가 마침내 엔진실에 들어가 윌포드를 만나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모두가 앞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싸울 때 혼자 열차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는 남궁민수의 모습에서 내내 떠올랐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저 말이었다.
매트릭스의 네오도 마침내 아키텍트를 만나 이것이 여섯번째 시온의 멸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또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친절한 설명... 커티스가 진실을 대면한 순간이 어쩌면 이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최소한 네오는 스스로 아키텍트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정의를 향한 투쟁, 그것도 사랑하는 이들을 숱하게 희생시키고 여기까지 왔던 그 노력이 기껏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인구조절의 한 수단이었고, 더구나 이토록 냉혹한 인구조절과 계층화된 기능분화가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증오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력이라니.... 커티스의 절망과 혼란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 면에서 남궁민수가 꿈꾸는 것, 체제 내부의 변동이 아닌 체제 자체를 뛰어넘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진정한 변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했다가 인류가 완전히 절멸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잘 풀렸다. 기후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어가는 듯 보였고, 인류를 이어갈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살아남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지만, 그 도전이 그냥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7인의 반란 '유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폭주하는 열차 안에서 질서를 바꾸기보다, 열차에서 내리라고, 다른 세상의 문을 열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이야기한다. ㅡ.ㅡ 어쩌란 말인가....
배우들 이야기도 해두고 싶다.
교과서 말투의 캡틴 아메리카 모습만 봐서 그냥 별 관심도 없는 배우였는데, 크리스 에반스한테 깜놀했다. 와, 이런 배우였구나.... 틸다 스윈턴은 본인이 너무 재밌어 하면서 연기했을 것같은 상상이 ㅋㅋ다른 이들 연기도 모두 훌륭한데, 특히 길리엄으로 분한 존 허트 등장할 때 나는 변희봉 선생이 등장한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이며 꾸부정한 모습이며, 괴물에서의 나왔던 모습이랑 너무 똑같잖아 ㅋㅋ 봉준호 감독의 변희봉 사랑은 정말 유별난가보다....
송강호가 분한 남궁민수가 '이게 인류 마지막 담배'라며 커티스에게 담배 던져줄 때 와우, 저 시크한 아자씨 ㅋㅋ 하긴 첨에 감옥 서랍에서 풀려나 그러지 않아도 귀에 거슬리던 '냄 (Nam)' 이라는 발음을 '남궁'이라고 고쳐줄 때부터 빵 터졌다. 고아성 요나는, 힘들게 괴물 뱃속에서 구조된 이후 결국 죽었는데, 이번에는 마침내 기차 뱃속에서 살아나왔다. 진짜 요나가 된 것이다. 피튀기는 현장을 지나서 능청맞게 웃으며 '크노롤' 하며 손을 뻗는 모습이나, 환락의 칸에서 술병으로 병나발 불며 휘청거리는 모습, 단호하게 총을 연발하던 모습.. 다 너무 사랑스럽고... 이제 진짜 인류의 희망이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장면들의 그로테스크함이 맘에 쏙 들었다. 스시를 만드는 흑인 요리사, 마지막 살아남은 인류는 아시아인과 흑인, 난데없이 나타나는 온실, 사우나, 수족관, 클럽, 뜬금없는 삶은 달걀 카트와 그걸 또 부잣집 어린이 이마에 부딪혀 까먹는 꼬리칸 불청객,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앞칸 사람들, 미친듯이 싸우다가 갑자기 나타난 창밖의 아름다운 풍광에 다들 손을 놓는 어처구니 없음, 적외선 카메라와 성화봉송 같은 횃불 릴레이...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건 영화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운드 좋은 아트나인에서 한 번 더 봐야겠당...
#. Orson Scott Card, Ender's Game (Tor Science Fiction 1991)
몇 년전에 3부작 사놓고 방치해두었다가 문득 (!) 소설이 읽고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휴고와 네뷸러 상을 둘 다 받은 나름 우수작이다!!! 마지막 장인 "speaker for dead" 는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그건 취향...
초능력이라 할만한 인지능력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외계침입자로부터의 인류 수호라는 대과제가 맡겨지는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여전히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인지능력이 어른들을 뛰어넘는다고 해서, 정서나 사회성까지 어른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엔더가 무척이나 안타깝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피터, 발렌타인, 본조 같은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다.
전혀 맥락은 다른데, 모든 아이다움을 강제로 포기시켜가면서 아이들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전사로 훈련시키는 battle school 의 모습이 어째 한국사회 같다는... 이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과 싸우는 훈련을 받는데 비해, 한국의 어린이들은 옆의 친구를 쳐부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ㅜ.ㅜ
나중에 찾아보니,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그러게... 그냥 읽고만 있어도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르는데 이런 걸 놔둘리가 없지... IMDB 에서 찾아보니, 엔더 역의 배우가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Graff 역을 무려 해리슨 포드가 ..... 이상하게 감성 돋는 영화로 만들지는 말아야 할텐데.... 아이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잔인하고 악마같은 속성을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이 과연 가족 제일주의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네 그려...
그런데, 인기있는 SF 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그렇지 않을까?
스케일이 너무 크면 앞의 로봇 3부작만 만들어도 엄청 인기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버디 수사물에, 액션 블록버스터에, 잔잔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고, 미래사회의 신기한 기술문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전우주적 완벽남 R. 다니엘 올리버가 있잖아!!! 영화 프로메테우스 보면서 마이클 파스빈더가 올리버 역에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복잡미묘.... 올란도 볼룸은 어떨까??? 응? 나 지금 뭐하고 있음???
#. Neil Gaiman, Anansi Boys (Harper Torch, 2005)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유쾌하게 킥킥거리며 읽은 명랑 소설...
게이먼의 전작 American Gods 에서 Anansi 가 직접 등장했었다는데, 당시에 하도 오만가지 신들이 나왔던지라 기억이 없다. ㅡ.ㅡ Anansi 는 서아프리카 지역 민담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신이란다.
Anansi 두 아들, 특히 Fat Charlie 의 순박하면서 정감 가는 행태들, 등장 인물들의 해괴한 캐릭터와 완전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한 설정들 때문에 군데군데 빵빵 터진데다가, 무엇보다 이야기가 너무 촘촘하고 '재미있어서' 정말 빠져들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현대의 '옛날 이야기',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는!!!
도대체 닐 게이먼은 어떤 사람인 게여...
Sandman 이나 배트맨 외전에서는 한없이 어둡고 깊게, American Gods나 Good Omens, 이번 작품에서는 들에서는 명랑쾌활하게, 또 Neverwhere 같은 데서는 신비롭고 음울하게.....
한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겐가???
#.
우선 공연....
이승열의 새음반 V 발매 기념 공연에 다녀왔다.
배경으로 흐르는 영상이 어찌나 눈에 피로를 주는지, 초반에 너무나 괴로웠다.
커다란 화면으로 적혈구가 휩쓸려 떠다니는 광경은 뭥미... ㅡ.ㅡ
그래서 계속 눈을 감고 들었다.....
바깥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공연장이었던 대학로 인근은 초저녁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어둡고 인적이 드물었다.
눈을 감아버리자, 단지 정신없는 화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까 보았던 그 어둡고 축축한 세상으로 음악과 함께 빠져드는 느낌...
묘한 긴장과 울림... 말할 수 없는 몰입의 기쁨을 주는 공연...
#. 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2013년)
앤더슨 감독의 최근작 (이래봤자 2007년 ㅜ.ㅜ) There will be blood 보고 숨막혀 죽을 뻔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덧난 상처에 과산화수소를 뿌려대며 이게 자본주의야 하고 고문하는 것만 같았더랬지... 어흑...
이 영화 마스터는 그만큼 '괴롭지'는 않았으나, 마음둘곳 없는 고단하고 유약한 이 영혼들을 어쩌면 좋을까나 싶어서 심란... 그들을 잡아두고 몰두하게 했던 전쟁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채로 갑자기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은 무어라도 부여잡으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길안내가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준다면, 혼란을 헤쳐나갈 작은 빛이라도 비추어준다면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프래디와 랭카스터의 관계는 통상적인 멘티와 멘토 관계도, 구원자와 피구원자의 관계도, 유사 아버지/아들 관계도, 그렇다고 연정을 품은 관계도 아니었다. 상처와 유약함으로 하나되는 일종의 치료적 동맹???
와킨 피닉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에 정말 후덜덜했다. 와킨 피닉스의 그 어눌하고 저열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와 꾸부정한 걸음걸이... 클로즈 샷을 잡던, 원경에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잡던 정말 꽉 찬다는 느낌.... 어휴... 앤더슨 감독이나 이 배우들, 영화 좀 자주 찍어달라구...
참,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같이 본 환자분께서 건강에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다고 컴플레인을 했다는 것이 옥의 티... 그러게... 환자하고는 한바탕 웃고 즐기거나 감동이 북받쳐 쏟아지는 영화를 봐야지... 이건 좀... ㅡ.ㅡ 휴가내서 "남들 일할 때" 아침 느즈막히 이런 어두운 영화보는 게 나의 즐거운 여가생활인데, 다른 이들한테는 변태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자각...
#. 코스모폴리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3년)
아트나인에서 오늘 마지막 상영이라 해서 퇴근을 서둘러 본 영화...
로버트 패틴슨,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못 봐서 사실상 해리포터 이후 그가 등장한 영화는 첨 본거임 ㅋㅋ 연기 못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 영화는 어쩌면 그에게 맞춤옷 같은 영화인 듯... 창백하고 신경질적인 표정, 냉혹한 듯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유약함이, 딱히 연기라기보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어색한 연기를 펼쳐도 다 장면 속에 녹아드는 상황이랄까?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 뉴욕 시위 현장 광고판에 저 문구가 등장했을 때, 저건 뭔 되도 않는 겉멋인가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우리가 그동안 진짜 자본주의를 알고는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그림 혼자 보려고 교회를 통째로 사버리겠다는 정신나간 금융자본가,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수혜자이자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그조차 자본주의 그 자체의 힘을 어쩌지 못하고,
대통령 암살도 미룰만큼 자본가를 혐오한다는 반자본주의자가 기껏 한다는 일이 3년 기다려 자본가 얼굴에 크림파이 던지면서 사진기자 앞에서 퍼포먼스하기, 도심의 시위대는 차에 낙서하고 식당에 들어가 들쥐 시체 던지기.. 그래서 결국 지금의 시스템에 정말 티끌만큼의 균열은 고사하고 손톱자국하나 내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 누구도 상처내지 못하는 그 무엇, 자본주의.
유력한 펀드매니저들조차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낙오하고 미처버리는 세계...
정말 자본주의는 인류가 통제하지 못할 리바이어던인 것인가...
한편으로는 "야, 너네 싸워봤자야.. 자본주의 못이겨... 지금 자본주의랑 싸운다고 깝치는 애들 다 웃겨"라고 말하는 것 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코스모폴리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 세계를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정체를 '폭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동시에...
그러다보니 영화는 말할수 없이 음울하고 신경질적이고 기분이 나쁜데 (ㅡ.ㅡ),
묘한 매력과 서늘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IMDB 평가가 왜 그리 엇갈린지 알것만 같다니까...
당연히, 리무진 하면, 얼마전에 본 홀리모터스랑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 드니라방의 펄펄 끓어넘치는 육체의 생명력, 리무진으로부터의 끝임없는 탈주와 변신은, 이 영화에서 에릭의 무기력함, 끓어오르는 외부와 격리된 차폐공간으로서 리무진으로의 진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할 수 있음. 심지어 운전기사조차, 홀리모터스에서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백인여성, 이 영화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에 상처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
극중에 에릭이 사람들한테 저녁에 이 리무진은 도대체 어디 주차를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데, 혼자서 '홀리모터스 주차장'이라고 대답할 뻔했음 ㅋㅋ
사족인데...
잭 블랙이 출연한 '버니'를 보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개봉관에서 사라져버림. 아트나인은 이런 영화나 개봉해주지 왜 레옹이니 그랑블루 같은 영화를 재개봉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감... ㅡ.ㅡ
이라고 제목을 붙이니 너무나 거창하구나 ㅋㅋ
# Iron Man 3 (셰인 블랙 감독, 2012년)
아이언맨에게 고뇌라니, 고뇌라니, 고뇌라니..... 이게 어울려??? ㅡ.ㅡ
악당이 다짜고짜 말리부의 아이언맨 저택을 공격해서 다 때려부수고 오만가지 버전의 아이언 맨 수트들이 쏟아져 나와서 현란한 불꽃쇼 하며 싸울 때, 와... 이건 뭐 액션 어드벤처 끝판왕인가 했는데, 나중에 Man of Steel 보고 이건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ㅋㅋ
비행기에서 사람들 구할 때에는 완전 빵 터져서 소리내서 혼자 미친 듯이 웃어버림... 절대절명 위기상황에서도 아이언맨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ㅋㅋㅋ 게다가 악당이 중 2병 환자라니... 한 시간동안 기다렸는데도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발생한 거 아닌가 말여.... 상처입은 자존심은 소심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들고,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는다는 무서운 진리.....
그리고 페퍼포츠는 완벽한 여친..
예쁘고 일 잘하고 마음씨 곱고.. 이제 드디어 수트를 직접 입고 대신 싸우거나 아이언맨을 구해주기도 한다는....... 아마도 전세계 도련님들의 로망이 응축된 캐릭터가 아닌가 싶네 그려...
# Startrek into darkness (JJ 에이브람스 감독, 2012년)
이토록 애틋한 로맨스 영화는 진정 오랜만 ㅋㅋㅋㅋㅋㅋ
커크와 스팍의 불꽂튀는 애정전선에 정말 깜놀 ㅋㅋ 손발이 오글오글....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비주얼과 스토리 전개 모두 훌륭한 영화였음. IMAX 3D 가 아깝지 않음!!!
게다가 주연배우, 조연배우 안 가리고 어찌나 다들 깨알같이 제몫들을 해내시는지...
심지어 자기 동족을의 비참한 운명을 떠올리며 칸 (베네딕트 컴버배치)이 눈물 흘릴 때, 뭔 말도 안 되는 설정인데도 막 이해가 되려고 했음 ㅋㅋ 외계종족들은 다들 하나같이 애국애족심이 넘쳐남...
나중에 토끼한테 여중생들이 베네딕트 보려고 이 영화를 단체로 몰려가서 봤다는 이야기듣고, 깜딱 놀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중학생 취향이었다니... ㅡ.ㅡ 뭔가 내 취향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랄까... ㅋㅋ
# Man of Steel (잭 스나이더 감독 2013년)
잭 스나이더와 크리스토퍼 놀란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고민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았는데.... 제아무리 놀란 강독과 고이어 작가라 해도... 슈퍼맨은 슈퍼맨인게여... ㅜ.ㅜ
그래도 앞부분은 뭔가 좀 다른가 싶었는데... (배트맨 비긴즈 분위기도 나면서....),
어쩜 그렇게 고민도 없고 개념도 없는지.... 갑자기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도 놀라지도 않고 정체성 혼란도 전혀 없음. 죄없이 잡혀갔다가 기껏 한다는 말이 33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니, 이 무슨 난데없는 예수 코스프레? 조드 장군의 밑도 끝도 없는 애국애족심도 뭥미.... 그 연기 잘하는 배우를 데려다 바보 만들었음... ㅜ.ㅜ
그리고 하다못해 철딱서니 없는 아이언 맨도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해서 싸울 줄 아는데, 이건 뭐 싸움은 이겼는지 모르겠는데 주변 도시 완전 초토화에 사람들 다 죽어자빠짐.. ㅜ.ㅜ 그나마 지구 자체가 아작나지 않은게 불행 중 다행임.... 흑.... 슈퍼맨 영웅 맞음???
캔사스 시골마을에서 싸울 때는 새로운 농촌 블록버스터 인가보다 하면서 그 스케일에 놀랐는데, 왜 꼭 뉴욕 빌딩 숲으로 가서 건물을 다 때려부수냐고 ..... 뭐 그래도 대결과 파괴의 장면이 비주얼에서 압도적이었다는 점은 인정..... 정말 여기에 비하면, 그동안 트랜스포머들의 싸움이나 아이언맨, 어벤저스 격투 장면들은 애들 장난... ㅡ.ㅡ 이렇게 돈과 기술을 쳐발랐는데, 스토리와 캐릭터가 도저히 그걸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비극적 요소...
참, 음악만 듣는다면 다크나이트 환생한 줄 알만한 장면도 더러 있었음. 찾아보니 역시 한스 짐머 ㅋㅋ
어쨌든 이렇게 벌여 놓았으니 앞으로 줄줄이 시리즈가 나오겠지? 이제 드디어 저스티스 리그를 보는 겐가? 배트맨은 안 나왔으면 좋겠건만... ㅜ.ㅜ
지난 부처님 오신날 연휴주간은 ... 말할수 없이 피곤했음 ㅋㅋ
물론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마음만은 즐겁기 이를데 없었음
#1.
금욜에는 토끼를 데리고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그린플러그드에 다녀옴
전세계에 80만 명이 있다는 무려 카시오페이아인 토끼가, 언제부턴가 또 '인디밴드'가 좋다는 괴이한 취향을 표명하길래 그럼 콘서트에 한 번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해서 성사된 일정...
근데 일단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너무 불편함.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할거면 버스라도 가야할 거 아녀...
그 공원에는 자가용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단 말인감???
심지어 언니가 무려 3단 도시락에 3단 후식/간식거리를 싸보냄...
그걸 일산에서부터 혼자 들고온 토끼... ㅡ.ㅡ
마포구청역부터는 내가 그걸 지고 땡볕에 거의 40분을 걸어 공연장까지... ㅜ.ㅜ
그래도 그 정성과 맛에 감동.... 풀밭에 담요깔고 맛나게 먹었음..
토끼 말로는 학교 소풍가도 이렇게 안 싸준다고... 아무래도 내가 시누이라서 언니가 오버했다는 생각 ㅋㅋ
토끼가 좋아한다는 '안녕바다'
노래 좋음... 땡볕이 내리쬐는데 노래가사는 샤랄라라 별이 내린다 ㅋㅋㅋㅋ
청중이 많아서 깜놀...
잠깐 쉬고 이번엔 장미여관....
토끼 좋아 죽음... 노래 정말 유쾌함..
날이 너무 쨍쨍해서 둘이 거의 탈진.... 공연 끝나고 그늘에서 휴식 ...
태양이 남중고도에 있어서 그토록 강렬했다는 토끼의 해석...
남중고도라니.... ㅡ.ㅡ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
밤에 돌아와서 보니 팔뚝 1도 화상.. 아이구... 따가워 죽는 줄 알았음
저녁에 디아블로-피아 구경하고, 역시 내 취향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델리스파이스....
마지막 자우림 무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접근 불가능... 포기.. ㅡ.ㅡ
근데 내년에 이 공연, 심지어 이런 식의 컴필레이션 공연을 또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일관된 흐름이 뭔지를 모르겠는데다,
개별 밴드들에게 할당된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고, 심지어 앵콜의 여지조차 없다보니
그냥 제시한 목록을 채우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 ㅜ.ㅜ
그리고 말이 그린플러그드인데, 왠 기업 광고는 그리 많고 물량과 쓰레기도 장난 아님...
토끼한테 다음에는 단독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약속...
#2.
일요일에 시규어 로스... 드디어 시규어 로스....
사실 작년부터 이어진 Valtari 세계투어 일정을 보면서 일본 오사카 공연이라 쫓아가야 하는겐가 고심하고 있던 차에 내한 소식 듣고 잽싸게 예매.... 했으나 좋은 자리는 이미 다 팔림.. ㅡ.ㅡ
주변에 당최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동반자를 물색하다가 돈많은 주먹도끼가 걸려듬 ㅋㅋ
공연은..... 차마 말을 못하겠음.....
빛과 소리의 환상적 조합....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답고 꽉찬 사운드와 조명을 배경으로, 숨을 죽이고 무대를 응시하는 스탠딩 관객의 모습들은 은혜받은 신도들, 혹은 이제 막 '미지와의 조우'를 경험하고 UFO로 끌려올라갈 사람들...
CD로 혹은 MP로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
정말 공연 끝나고 '다 이루었다'는 생각과....
아이슬란드 가서 저 자들을 기필고 다시 봐야겠다는 기묘한 감정이 동시에....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운드 그 자체에 말로 표현할 수없는,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흥....
정말 여한이 없다......
블로그가 적막강산으로 방치되는 날들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ㅡ.ㅡ
미친듯이 바빴지만, 사실 영화도 보고, 섬진강변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봄 지나가기 전에 매화랑 벚꽂사진 올려줘야 하는데... 흠...
#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감독, 2012년 작
영화는 정말 영화다웠다....
화면구성과 영상, 음향, 플롯과 편집, 인물들의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아름답고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났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먹먹함과 회한, 또 슬픔만이라고도 기쁨만이라고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문학작품으로도, 연극으로도, TV 드라마나 시사다큐, 혹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이러한 감흥을 만들어낼 수 없었으리라. 예술매체들이 가진 고유한 장점과 유발하는 고유한 감흥이 있을텐데, 이 작품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개봉했던 <남영동>이나 <26년> 을 보지 않았던 것, 그리고 <도가니>나 <공정사회>를 보지 않는 것은 나름 일맥상통하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저 분노를 촉발하는고발일 뿐이라면, 누군가가 경험했던 고통을 추체험하게 해주는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면, 그건 심층분석 기사나 시사다큐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일부러 생생한 고통을 느껴보려고 영화관을 찾고 싶지 않다. 혹은 (요즘은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범진보개혁진영'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 수 하나 채우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기는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뭔 말이 많냐고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믿을만한 필자들의 영화평론은 이런 판단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밝혀둔다).
예술이 무언가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한 적도, 존재하지도 않는 '순수'예술을 상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학적 완성도와 영화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의명분으로 그 흠결을 덮어주는 건 영화를 위해서나, 운동을 위해서나 좋은 일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면에서, 지슬은 그 아름다움과 완결성을 통해, 그동안 많은 다큐멘터리나 시사고발프로들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해방직후의 그 시절만 돌아보면, '역사는 리셋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뭐가 깔끔하게 정리되고 청산된 것이 없다. 그 유산과 잔재들은 오늘도 현재진행형....
# <홀리 모터스> Leos Carax , 2012년 작
이 또한 영화로서의 영화, 다른 한편 영화에 대한 영화..
예고편을 볼 때에는 뭔가 싱그럽고 재기발랄한 스피드와 유쾌함을 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내가 바보지.... 이 감독이, 배우 드니라방이, 그럴 리가 없잖아... ㅡ.ㅡ)
며칠 동안 원고 때문에 피곤에 쩔어 있다가 머리를 맑게 해보려고 갔던 극장에서,
완전 정신집중하고 에너지를 극도로 소모하고 돌아왔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영화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귀를 쫑긋 세우고 (프랑스어를 알아 들은 건 아니고 ㅋㅋ), 한 시도 영화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상상과 억측과 때로는 멘붕과...... 이런 복잡다단한 이성적/감성적 감흥은 정말 오랜만의 것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내용만이 아니라 예전 시절의 감상과 주변의 정황이 떠올라 독특한 감흥을 주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예전 - 소위 시네키드들의 황금 시절이었던 90년대 초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때는 이런 복잡한 감정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밤새도록 연달아 몇 편의 영화를 보고 종로 거리에서 일출을 맞던 그 독특한 기분도 함께 떠올랐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호텔인지 아파트 방에 있던 등장인물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혹은 화면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장면이 전환되고, 드니라방이 교외 부유한 주택단지에서 멀쩡하게 리무진을 타고 출근할 때, 오.. 드디어 저 양반도 저런 역할을? 하면서 흠칫하다가 이어서 흉물스런 구걸 노인으로 변신할 때는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건 무슨 빈곤 코스프레여.... 설마 이 감독이 언더커버 류의 홈드라마를 찍은 건 아니겠지...
그랬는데.. 역시 감독은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과 설정은 매번 나의 온건한 상상을 벗어나서, 이번엔 또 뭐여 하면서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니라방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광인에서 비련남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변신에 또 변신.....
그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점차 고조되어가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까지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 겐가,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니라방의 퇴근과 홀리모터스의 차고 귀환에서 완전 털썩.... ㅡ.ㅡ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식스센스 류의 반전, '이힛, 이건 몰랐지롱?' 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가 무엇이어왔고,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에 대한 헌사이자 성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IMDB의 평론들을 읽어봐도, 줄거리가 무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100% 동의 ㅋㅋ
그렇다. 통상적인 줄거리나 플롯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상징과 연계성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숨은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영화를 보던 내내,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들에 일어나던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물결, 끝없는 호기심, 홀린 듯한 끌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영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감흥이 아닌가....
이런 영화들만이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2병 걸린 악당의 등장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나름 시원한 즐거움과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잘 해결되니 마음도 편하고 ㅋㅋ
하지만, 이런 영화들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슬플 것같다.
<홀리모터스>나 <지슬>이 주었던 그 깊은 울림과 복잡미묘한 감동을 경험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다양한 영화들, 기술적 상상력 만이 아니라 가치와 내용 측면에서 전복적 상상력을 갖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소개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의 시간과 경제력도 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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