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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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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공연과 영화들

#. 국가스텐 Squall vol.1 (2015/05/01 합정동 롯데카드 아트센터)

 

포스터이미지

 

그동안 스페이스 공감에서 여러 차례 공연이 있었는데, 한 번도 당첨이 안 됨 ㅡ.ㅡ

페스티벌 말고는 그닥 공연 소식도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공연 공지가 뜨고, 천신만고 끝에 예매에 성공....

 

진짜 약빨고 공연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실감.... 뭐가 이 구역의 미친 X 은 나다... 라고 못박으러 나온 느낌이랄까? 무대 위나 무대 아래 스탠딩 석이나 한꺼번에 광기에 휩싸일 무렵, 문득 나홀로 정신을 차리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됨 ㅋㅋㅋ 어찌나 뜨거운지 화들짝 정신이 갑자기 돌아왔음 ㅋㅋㅋ

 

건반 없이 일렉트로닉 기타들이 폭주하는 미친듯한 공연 너무 좋음... 

하현우 노래 잘하는 거야 뭐 두 말하면 잔소리... 저렇게 방방 뛰다 언제 한 번 기타 줄에 걸려 넘어진다에 한 표 걸겠음.....

진심 강추 공연!

 

#. 신시컴퍼니 [푸르른 날에] (2015/05/24 - 남산드라마센터)

 

 

진짜 오랜만에 연극 감상.....

공연 시작 전, 무대 한 가운데에 놓인 작은 물길이 그렇게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어이없게도, 이런저런 읽을거리들과 이야기들을 통한 간접경험이 쌓여서 마치 80년 5월의 광주가 내 동시대에 있었던 일인양 착각하고 있는지라, 북받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음. 

김남주의 시가 낭송되는 동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번 생각했던 건데, 내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과연 도청으로 들어갔을까? 아마도 극 중 '지식인'과 같이, 다 죽는 무모함을 우리가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겠지. 그 무모한 열정이 결국은 살아남아 세상을 바꾼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가올 미래를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과연 우리의 죽음이 기억되기는 할 것인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할 것인가도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던 그 시민군들의 마음을 여전히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고.... 

 

그 날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고, 펍에서 나눈 연구소 식구들과의 맥주 한 잔은 그토록 맛났지만,

이제는 그 노력으로 변화된 사회에서 나누는 소소한 후일담이면 좋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이 비극.... 

배우들의 연기나 극의 구성은 뭐 두 말하면 잔소리....   

 

#. 넬 [Season 2015 Beautiful day] (이대 상섬홀)

 

 

아마도 처음 하는 소극장 장기공연

소극장, 어쿠스틱 공연에 걸맞게 대부분의 곡들을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아주 상큼하고 신선한 것들이 많았음.... 특히 Stay 같은 곡 ㅋㅋ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큰 공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아주 초기, 언더 시절 곡들을 들려준 것...

2000년대 초반.... 정말 이들의 노래는 지구의 심연이라도 뚫을 법한 우울의 정서에, 가사는 쓰레기와 시궁창으로 점철되어 있었지....

그렇다고 그 시절 나의 정서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도 묘한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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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 정리2

#. 피터 도베르뉴 [저항 주식회사]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피터 도베르뉴 외
동녘, 2015

 


책을 읽으면서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어이없게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어 ㅠㅠ


데이비드 하비 할배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도 나오듯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나 국가폭력 증대는 한국만의 예외적 후진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내포된 하나의 과정... 자본주의 고도화는 세련된 소비문화로의 포섭이 다가 아니며 항상 어느 지점에선가 폭력을 동원하게 된다는 점.

물론 이걸 안다고 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해서 위안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 ㅠㅠ
한 때, 어쨌든 형식적 민주주의를 전취하면서 이것이 영원불멸할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실수였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며 착잡....

 

전반적으로, 좌파 정치정당이나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정치 리더십 경험이 부재한 미국의 자유주의적 운동경험에 대한 편향이 강하긴 하지만 문제의식에는 크게 공감.... 근데 어쩔껴???? ㅠㅠ

 

* 급진주의 운동의 쇠락을 가져온 큰 흐름 진단에 완전 동의 - 1) 기업화의 정치 ㅡ 기업처럼 보기, 2) 안보를 빙자한 탄압, 3) 사회적 삶의 사유화 ㅡ 반체제 활동의 하부구조 변화, 책임의 개인화 , 사회적 시민성의 위축, 4) 운동의 제도화 ㅡ 비영리산업복합체

 

1) 기업화의 정치


운동 기업화의 흐름을 세 가지로 요약. 첫째, 대기업과의 동반자 관계 증가, 둘째, 자본가의 자선 활동과 기업형 모금에 의지, 셋째, 시장의 병폐에 대한 해법으로서 국제무역과 대중 소비를 포용

"이제 기업화된 운동은 생산효율성, 기업투명성, 기술진보를 조심스럽게 지향"하지만 "이는 사회적 갈등에 휘말려 삶의 조건이 파괴되고 있는,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자본주의의 '느린 폭력'에 자기도 모르게 힘을 보태는 일"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것이.... 이게 어찌 보면 운동의 발전으로 볼 수 있는 측면들도 있고, 또 unintended consequences 성격이 강해서리.... 평범한 시민들에게 운동의 장벽을 낮추고 보다 폭넓은 대중 접촉면을 만들어낸다는 측면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운지라...  결국 중요한 갈림길은 '진심'과 '진정성'인데 이걸 또 누가 판단한단 말여... 물론 모든 운동이 이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저자의 우려대로 심각한 문제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게 낫다'라는 생각이 팽배한 요즘은 아쉽지만 뭐 이거라도 하는 걸 격려해야 하나... 이럴 정도로 나의 눈이 낮아졌음 ㅜ.ㅜ

 

2) 안보를 빙자한 탄압


"불만세력들을 감시하는 국가권력이 증대하면서 비판집단은 고립되고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들은 뒷전으로 밀려"나며 한편으로 "동시에 운동의 기업화가 강화되고, 협력적인 집단들은 국가안보에 '안전한' 세력이라는 지위로 보상"

맥닐리의 지적에 의하면 "시민사회 참여는 '주류의 신망을 얻고 하찮은 군중이나 폭도로 보이지않기 위한 ' 방편을 통해 예의를 갖추는 행위에 가까워지고 " 있음

 

한국사회는 이보다 조금 복잡해서,

연이은 두 정부의 또라이짓에 '온건하던' 단체들마저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양상과,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은 순치화 양상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는 듯.

 

3) 사회적 삶의 사유화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라이트 밀즈가 이야기했던 바 개인의 경험을 공적 이슈로 전환하기는 커녕 사회적 이슈가 모두 개인화되어 그 해결책은 각자 도생이라는 무간지옥 ㅠㅠ 이것이야말로 오늘 날 한국의 현실.....


"더이상 변화의 정치는 노동과 지역사회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운동 내에서 우정과 신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대의명분에 합류하려는 경향"

사실 이건 "깃발내려" 사건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는데, 이 '개인으로서의 참여'라는 것이 결국  '순수한 시민운동'과 '불순한 정치운동'에 대한 구분에서 탄생하고 또 이를 강화시켰다고나 할까....

 

4) 운동의 제도화


"비영리산업복합체"라니... 한국사회만 놓고 보면 좀 과한 개념같지만 또 전지구적이나 서구사회 보면 악히 과장도 아닌듯... "존립을 위해 주민이나 회원들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이들에 대한 책임도 느끼지 않음 오로지 펀더의 견해와 의중이 중요함 ㅠㅠ

이는 뒤지어 말하면, 투표를 근간으로 하는 대중민주주의에서 유권자의 영향력이 점차 사라지고, 기업과 부자들을 과대대표하게 된 미국 상황을 고발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시민사회 버전... ㅡ.ㅡ


비영리산업복합체 특징은, 첫째 기업후원 증가, 둘째, 하향식 관료주의 체계에서 일하는 운동가의 숫자 급증, 셋째, 관리통제주의 문화 강화되며 자제와 순화의 가치에 대한 믿음 심화된다는 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운동의 제도화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로 활동해왔지만, 그 결과는 슬프게도 운동의 기업화, 탈중심화, 국지화 ㅠㅠ
 

수십억 원의 수입에 수천명의 활동가 혹은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조직의 재정 상황과는 비교할 건덕지가 없지만, 한국에서도 '제도화'의 문제는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음.

 

#.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미지북스, 2015

 

 

정말, 안타까움에 눈물보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음과 무능, 얼렁뚱땅에 한숨, 짜증이...

이 마당에서, 인권을 논하는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가장 시급한 것은 '근대화'의 과제 아닐까 싶음.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고귀한 희생정신이고 다 필요 없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해보임.

 

세상에, 차라리 그 어떤 거대한 악의 세력이나 음모라도 있었다고 하면 오히려 위안이 되었을까.... 이렇게 한심한 상황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토록 많은 슬픔을 우리 사회에 던져 주었다니, 정말 그저 어이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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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 정리1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겨놓지 않으면, 그저 '읽었다'라는 위안 이외의 기억들은 자연스레 소멸되기 마련인지라, 항상 작은 메모라도 남겨 두려 하는데, 그게 또 은근 일이다....

사실 책 이야기 말고도 뭔가 쓰고 싶은 이야기거리는 엄청 많은데, 자꾸 순위에서 밀린다.

널뛰기하는 생각거리들을 늘어놓을 시간 혹은 여유조차 없는 삶이란 도대체 뭐지???

시간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말로, 입으로 다 풀어버려서인가? 그래도 말글이 아니라 손글로 정리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지....

 

 

#.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후마니타스, 2014

 

 

제목에 낚였음 ㅜ.ㅜ
초반부의 문제의식에는 완전 동감... 

 

선택이라는 전제 (tyranny) 가 '자신을 개인적인 기획의 전적인 주인으로 여기면서 정작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택들'에 대해서는 잊게 만든다는...
"선택이 개인적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수단으로 찬양될 때, 사회적 비판의 여지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는 지적이나, 긍정 이데올로기, '개인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느끼게 될 때, 또 긍정적 사고가 사회적 부정의의 결과로 겪는 불행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될 때 사회비판은 점점 더 자기비판으로 대체'된다는 지적, 또한 "경제학 영역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관념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선택 유형으로 미화'되었다는 지적에 크게 동감했으나....

 

허나!!!!
선택이 합리성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이디푸스 나오고, 히스테리 나오고, 라깡 출현... 아이쿠, 털썩...

이렇게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적 근원의 세계로 돌아가서 선택이 그렇게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이건 뭐다?? 그럼 답이 없는 거잖아???

도대체 멀쩡한 성인들의 행동과 심리가 아동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온전히 설명된다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은 다 헛짓인 거여??? 이 정도 되면, 사주팔자론이나 유전자결정론과 뭐가 다른 것이여?

사실 후마니타스에서 출판된 책이라 믿고 선택한 것도 있었는데, 전해 듣자니 책은 나름 인기가 있었다고.... ㅜ.ㅜ
도대체가 검정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사후적 설명에만 충실한 정신분석학이 의학 이외 영역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음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사계절, 2013

 

딱히 나쁜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내가 강퍅해진 건지.. 사족이 지나치다는 느낌적 느낌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양식은 상식 앞에서 무력하다.."  아... ㅜ.ㅜ

"유권자가 소비자가 되는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개인의 무거운 선택을 가벼운 선택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지적은 앞의 책보다 통렬.

조종된 "군중을 비난하느라 군중을 기획하고 있는 시틀러나 무솔리니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또다른 노리개로 전락하는 셈"이라는 지적에 깊은 동감하면서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는 거리를 둔다"는 지적에 공감 ㅋㅋ

 

그런데, 여기에도 역시 예상치 못한 폭탄이 있었으니, 생뚱맞게 "집단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

오이디푸스를 조용히 잠들어 있게 놔두자... 아.... ㅡ.ㅡ

 

 

#. 킴 스탠리 로빈슨 [쌀과 소금의 시대]

 

쌀과 소금의 시대 1
쌀과 소금의 시대 1
킴 스탠리 로빈슨
열림원, 2007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K 기자와 1년만에 만나서 밥을 먹고 헤어지는 길에 건널목 앞에서 문득 추천해준 책 ㅋㅋㅋㅋ

사실 필립 K 딕의 [The man in the High Castle]에 실망해서, 동양이 역사의 주인공되는 서양 작가의 대안역사 소설에 거부 반응이 있었는디....워메.....  막 빠져들었음...

작가의 그 유명한 화성 삼부작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찾아보니 그는 필립 딕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여 박사 논문을 썼다고... 후덜덜......

 

이건 그냥 그저그런 오리엔탈리즘이 절대 아님. [티벳 사자의 서]를 기본 프레임으로 하여, 이성과 인간해방, 페미니즘, 생태주의를 이음새 없이 훌륭하게 엮어내고 있음. 불교,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상당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음... 사실 내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서구인들이 기독교의 오랜 '문화'에 물들어 있듯 우리도 불교 문화에 알게 모르게 침잠되어 있고 그래서 서구인들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설픈 흉내내기를 보면 짜증이 울컥 ㅋㅋ  The man in the high castle 이나 어슐러 르 귄의 [어둠 속의 왼손]에서도 나는 음양이론 나오는 게 제일 싫었다고......


그런데 이 책의 첫 머리에 바르도 장면이 등장했을 때, 앗 깜딱이야 하면서 정신이 번쩍....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나만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느낌.

비극으로 끝나는 개인의 삶들이 모여서 사회의 희극으로 이어지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란, 뭔가 묵직한 감동.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자, 가자 피안으로'라는 첫 장의 메시지처럼 2보 전진과 1보 후퇴를 반복하며 어쨌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

 

기독교나 유대교가 거의 사라지고, 이슬람조차 내부로부터의 붕괴해가면서 유일신 종교가 사라져가는 화목한 세상...  과학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 역사학자들이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에 단서를 주는 세상......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싶구나... 현재가 이렇지 않으니까 이것이 '대안' 역사 소설이겠지만... ㅜ.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페미니스트들, 앎의 환희가 무엇인지, 그 책임은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은 과학자들, 이 허구의 인물들 앞에서 가슴이 콩닥거리는 나는 변태인가???

 

 

# 듀나 [아직은 신이 아니야]

 

아직은 신이 아니야 - 듀나 연작 소설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 - 듀나 연작 소설집
이영수(듀나)
창비, 2013

 

많은 과학소설들이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 숙고를 색다른 방식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고는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나같은 독자들이 고도의 맥락성이 있는 서구 과학 소설들을 100% 즐기기란 어렵다고....

국내 SF 작가들의 작품은 바로 이런 면에서 무언가 속속들이 채워진다는 느낌을 주곤 하는데...

듀나의 작품은 단순히 국적이 같아서가 아니라, 짜임새와 개연성 높은 상상력이 촘촘하게 자리한 가운데
언뜻언뜻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과, 사건들의 미묘한 익숙함과 뒤틀림이 완전 매력.

왜 듀나가 국내 최고의 SF 작가로 인정받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법한 좋은 작품집 (사실, 언어적 제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서구의 단편들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많음). 다만, 미스테리는 왜 이런 책들이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느냐 하는 점... ㅡ.ㅡ

 

 

# 듀나 [면세구역]

 

면세구역
면세구역
이영수(듀나)
북스토리, 2013

 

단편 모음.

경계없는 상상력의 폭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 특히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젠더 밸런스 매우 호감!!!!

여러 글들 중에서도 "기녀기담" 특히 좋았음. 엄청 서늘하고 아름다운 초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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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기록 좀...

메모만 해놓고 미처 정리를 못했던 작년 하반기부터의 공연 관람 일지...

 

#. 이승열 2015.03.20

 

포스터이미지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들, OST 작업한 곡들을 포함해서 U&Me Blue 시절부터 이런 저런 곡들을 꼬박 두 시간을 채워 들려줌.... 

연주나 노래나 하나같이 맘에 들었는데, 망할 놈의 조명... ㅡ.ㅡ

2층 정면으로 쏘아대는 광선에 망막 타버릴 뻔 했다고.... 

이 분 공연은 항상 조명과 배경 화면이 말썽...  예전, 화면 가득 적혈구 테러의 악몽이 떠올랐지... ㅜ.ㅜ

그런데, 그게 또 아이러니한 것이,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음악을 듣게 되고, 더욱 빠져들게 된다니까.... 

 

#. 스티브 바라캇 2015.03.08

 

포스터이미지

 

유니세프 후원회원 초청에 당첨되어서 얼떨결에 가게 된 공연...

가서 깜놀한 것이, 무려 19만원 짜리 R 석이지 뭔가... 그런 로얄석에 머리털 나고 처음 앉아봤는데, 귀가 막귀라서 구석탱이에 앉아서 듣는 거랑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ㅡ.ㅡ

스티브 바라캇 연관검색어가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인데, 정말 공연 가보고 이를 절감 ㅋㅋ

메들리 연주 도중 KTX 종착역 음악 나올 때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주섬주섬 ㅋㅋㅋㅋ

마침 이날이 3월 8일이라, 정면 벽에 '세계 여성의 날' 을 기린다는 메시지가 걸려있었는데, 뭔가 짠하다는 생각이....  요즘 같이 여성주의가 고생하고 있는 시절에, 이렇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고상한 공간에, 여성의 날 기념이라....

 

#. 스페이스 공감 [고상지 반도네온] 2015.02.02

 

 

스페이스 공감 방청 신청에 내리 몇 번이나 탈락한 이후, 짜증을 듬뿍 담아 신청했는데 덜커덕 당첨 ㅋㅋ

편지글을 읽어보고 뽑는 건지, 랜덤으로 돌렸는데 그냥 이번 순서에 당첨이 된 건지 당최 모르겠음.

공연은 너무너무 좋았음....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이라고 할까... 음악은 바로 그 곳에서, 전혀 새로운 세상과 시간으로 우리를 옮겨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니까....

고상지 씨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박박사의 도플갱어 같은 외모가 놀랍기는 했지 ㅋㅋ

오랜만에 다시 피아졸라와 크레이머의 탱고 연주를 찾아들었는데, 역시나 천하의 피아졸라와 크레이머의 연주라 하더라도 음반이 현장의 온도와 호흡까지를 다 담을 수는 없다는 것을 실감...

 

#.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2014.10.10

 

포스터이미지

 

해미 덕분에 첨으로 2층 박스석에 귀부인처럼 (?) 앉아서 감상했음.

연주자들 떡대가 어마어마하셔서, 와~ 그 무거운 콘트라베이스나 바순을 번쩍번쩍 들고, 관악기 연주자들도 절대 숨이 안 찰 것만 같은 깊은 안도감을 ㅋㅋ

오케스트라 연주 들으면서, 이렇게 타악기의 힘에 집중한 것은 처음이었음.

막귀를 가진 자에게도 이것은 아름답고 조화롭다는 느낌이 절로 들게 만드는 훌륭한 연주....  이런 공연이 조금씩만 저렴하면 좋으련만....

 

 

#. 3호선 버터플라이 2014.10.5

 

포스터이미지

 

그동안 이상하게 일정이 안 맞아서 한 번도 공연에 가보지 못한 밴드...

이번에 모처럼 일정이 맞아서 얼씨구나 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가 모두 거절당하고 (ㅜ.ㅜ) 다른 일 때문에 통화하던 해미와 마침내 공통의 취향을 확인하고 동행...

사실, 그동안 그렇게 음악을 들었어도 성기완 씨 실제 모습 첨 봤음. 그동안 한 번도 찾아볼 생각도 안 했던 게, 막연히, 시인에, 제 3세계 음악을 소개해주는 예술가라면 그럴 법한, 뭔가 섬세하고 유약한 지식인 이미지 (예컨대 이동진 평론가 스탈?)를 그냥 가지고 있었던 듯....

무대에 나타난 분 보고, 순간 빵 터졌음 ㅋㅋ

하지만, 이내 음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와우....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보컬에 최강 몰입!!!

다음부터 공연을 절대 놓치지 않으리 ...

 

 

# 그리고....

 

국립국악원이 가까우니 풍류산방이나 연희 마당 공연에 가끔씩 가는데, 

갈 때마다 얼릉 다시 대금 배우기 시작해야지 생각했다가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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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짝을 이루는 영화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극장이 가깝다보니 이렇게저렇게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 2014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귀엽다'는 말이 어쩐지 실례가 될 것만 같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음. 남동생의 코 파는 연기는 가히 천하제일... ㅡ.ㅡ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텔레비전 보며 밥먹는 이다윗 배우의 연기 이후 미성년 부문 생활연기의 최고봉이랄까 ㅋㅋㅋ

 

웨스 앤더슨 같은 아기자기한 장치들과 화면구성도 은근 볼거리.... 

심지어 블록버스터 급 액션과 스릴러, 음모와 배신은 양념....

배우 김혜자와 최민수를 비롯하여 성인들의 캐릭터와 연기도 모두 과하지 않아서 좋았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혹한 현실에 영화에서마저 가혹하게 끝나버린다면 어쩐지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란 말이지... ㅜ.ㅜ

 

 

#.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

 

나를 찾아줘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음. 되도 않는 이두 문자 영어 제목에 어이 없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gone girl 이라는 원제목보다 영화를 더 잘 드러내는 듯.. .제목이 좀 스포일러인가?? "아이킬드마이마더" "인히어런트 바이스" 같은 제목들을 떠올리다보면, 절로 혈압 상승.....

 

가족들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사람과의 관계를 차곡차곡 만들어나가는 영화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 반대편에서 "피식"하면서 팔짱 끼고 썩소를 날리고 있을 영화....

이런 게 가정인가, 이런 게 사랑인가, 이런 게 인간인가.....  하는 회의를 무한생산 ㅡ.ㅡ 

아이고 무서워라.... 정말 다 보고나서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모골이 송연....

'어메이징 에이미'를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 연기가 정말 완벽한데다, 벤 에플렉의 찌질남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오랜만에 정말 아메리칸 스윗하트가 아니라 아메리칸 호구 인증 ㅋㅋㅋ

[파이트클럽] 이후 핀처 감독 영화에 왠지 끌리지 않았는데, 몇 가지 다시 챙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음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2014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실스마리아의 구름"이라고 하면 품격이 떨어지나.... ㅡ.ㅡ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막나가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과 태도가 도대체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 줄리엣 비노쉬의 캐릭터와 서사 또한 극중 인물인지, 배우 자신의 것인지 헷갈리고, 클로이 모레츠는 딱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실제 삶을 연기하고 있음 ㅋㅋㅋㅋ 이 셋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혹은 촬영장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가 몹시도 궁금....

 

젊음에 집착하는 나이든 여배우의 회한과 노욕, 이를 깨우쳐주는 젊은 파트너들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이 둘 사이 주도권의 역전과 마지막 무대 리허설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로 배우의 모습, 그리고 이들 모두 (최소한 영화 중에서) 실스마리아 계곡의 구름이 몰려드는 장관을 결국 놓쳤다는 것은, 아직, 혹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인생에 대한 메타포로 보였음.

 

 

#.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뚜 감독, 2014년)

 

버드맨

 

기묘하게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

근데, 색깔이 달라... 그래서 분명히 거울을 보았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한 환상과 당혹감을 안겨준달까???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리건이란 인물은 어느 정도나 마이클 키튼과 다른 사람인 건지 너무너무 궁금... 분명, 버드맨은 배트맨이었고, 내면의 그 허스키보이스는 다크나이트의 그분 목소리라고 ㅋㅋㅋ

첫 장면, 공중부양할 때부터 이거이거 범상치 않겠는 걸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감독들한테 클리세처럼 따라붙는 수식어 "마술적 리얼리즘" - 이거 말고 무슨 단어가 적절하겠냐고....

마술상자를 통과하는 기분의 카메라 롱테이크와 극장 내부 동선은 너무 유쾌했고,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드럼 연주도 매력 덩어리....  대사며, 장면이며, 빵 터지는 순간이 너무 많았는데, 관객들의 기괴할 정도의 침묵에 당혹.... 나만 미친 여자처럼 킥킥댔다니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마이클 파스빈더 같은 양반들도 이 영화 보면서 나만큼 빵 터지지 않았을까 싶음 ㅋㅋ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맨날 미친 놈 역할만 하나 측은한 생각이 ㅋㅋ 그가 착하거나 비교적 정상인으로 나온 영화는 아마도 [문라이즈 킹덤]이 유일한 듯..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팬티만 입은 채 맨하탄 인파 속에서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리건, 이를 사진찍고 트위터에 올리면서 사인해달라는 교양없는 시민들, 나비넥타이 매고 앉아서 고풍스런 극장을 채운 채 '순수' 예술을 즐기고 있는 교양있는 엘리트 관객들.... 정말 불협화음인데 묘하게 어색하지 않아....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존재를 입증하고 싶어하는 전직 슈퍼히어로의 진정성은, 피를 훌려서야 완성된다는 괴이한 아이러니...  사실 그 자신만 빼고 아무도 그런 진정성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는데 말이지....  심지어 자신의 내면조차도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잖아.....

그런데, 우리들 모두의 인생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음. 그렇게 생각하면, 리건이 버드맨처럼 날아오르고 그 모습에 환하게 미소짓는 딸의 얼굴로 영화를 맺는 건 지나친 해피엔딩....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태풍이 몰아치는 날의 바닷 속같은 일촉즉발의 잔잔함과 차가움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버드맨]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피와 살점이 날리는 격전을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마무리는 너무 훈훈했달까???

 

이냐리뚜 감독은 이 영화 찍으면서 정말 즐거웠을 것 같음. 자신이 살고 있는 헐리우드를 이렇게 마음껏 놀려먹었는데, 결국 아카데미 수상이라니 ㅋㅋ


 

#.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빔 벤더스 감독, 2014년)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브라질 출신 불세출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세계와 삶을 담아 낸 빔 벤더스의 다큐 영화.


그동안 여러 차례 마주쳤던 사헬, 에티오피아, 르완다, 콩고의 참혹한 인간사를 다룬 사진들의 상당수가 살가두의 것이었음을 새삼 알게 됨....

일단, 첫 장면 브라질 광산의 모습에서 일단 압도... 이건 또 뭔가, 여긴 또 어디인가.......


작가가 '어둠의 심장'을 목격하고 사진활동을 접었던 사연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음.. ㅡ.ㅡ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여... 자연으로 회귀하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다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사연도 다 이해가 됨...

 

근데, 나무 250만 그루 심은 것이 주제인 것처럼 그려지고, 또 그걸 부각시킨 영화 광고는 좀 웃긴다는 생각..... 사실, 생각이 있고, 돈이 있어서 사람을 동원할 수 있으면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말여....  ㅡ.ㅡ

 

작가의 사진 세계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음...

어쨌든 화면 가득히 압도하는 흑백 사진들에 혼을 빼앗겨버림....

전시회는 어쩌다보니 놓치고.... 아쉬워라....

이런 영화를 보면 사진이 다시 찍고 싶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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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

지난 몇 주 동안 읽었던 책들의 공통점, 최소한 표면적인 공통점은 없다.

보관함에 담아놨던 책들 중, 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한 책을 집어왔고, 태블릿에 담아놓았던 책들 중 하나를 건져왔을 뿐.... 그런데 포스팅 제목을 생각하다보니, 작가들이 모두 휴머니스트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따뜻하고 인도주의적이라는 뜻에서의 휴머니스트가 절대자가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 승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부활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 승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부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0

 

나즈막한 한숨과 높아지는 심박 수, 하지만 가끔씩의 깨소금같은 고소함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많이 슬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이고 한 많은 인류 역사여... ㅜ.ㅜ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물론 인류 역사가 온통 슬품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었지만, 지배자들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과 용맹함에, 그들이 이룩한 것에 찬탄하고 있을 때, 그 거울 너머에 존재했던, 정면에서 볼 수 없었던 역사는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주류 역사책과 언론, 혹은 동화나 설화에서도 그려지지 않았던 그야말로 거울 너머의 역사에 대해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주~욱 읽다보면, 종교, 특히나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은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주는 게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귀족, 부르주아, 군부독재, 파시스트, 다양한 악당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역시나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잔인하고 끈질기게 민중을 (달래가며) 괴롭혔던 것은 이들 (유일신) 종교들이었다.

각 종교들의 악행은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다. 카톨릭의 천년 뻘짓은 오늘날 IS에 비해 하나도 부족함이 없거니와, 기독교도 두 말하면 잔소리....  이런 역사를 알고도 그것은 일부 비뚤어진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오해한 거야, 진짜 카톨릭은, 진짜 기독교는 안 그래 라고 우겨댄다면 답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사적 뻘짓과 속임수에도, 스스로 깨닫고, 투쟁하고, 한발자국씩 우직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인간들이 또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다.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렇게 거울 뒤를 애써 찾아봐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 엄기호 [단속사회]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창비, 2014

 

 

"쉴새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는 부제가 단속사회의 본질을 간명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상의 '기술'을 넘어서는 분석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던 책이다.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 뭔가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엥? 여기서 끝난 건가?" 뭐 이런 느낌....

 

(도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탱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부재, 다른 한편 관계의 '짐'이라는 경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적 상황들을 글은 잘 보여주고 있다. 실존적 관계단절보다는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부재'가 문제라는 저자의 지적에 매우 매우 공감했다. 관계 단절을 실존적 측면에서만 보게 되면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배자들의 언어에 스스로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단절'은 "누군가의 경험이 나에게 이어지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참조사항이 되면서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엮어내는 그런 관계의 단절" 이다. "이는 경험의 전승을 통해 존속해온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서로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둥그렇게 둘러앉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정치 또한 불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개개인의 삶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연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서 성장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과 다름 없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조직 내의 문제가 공론화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폭로와 매장'이라는 독특한 정치행위로 귀결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공동체의 무능과 무관심, 혹은 편향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겠으나, 특히 요즈음 소셜 미디어를 통한 딱지붙이기와 매장시키기는 나도 볼 때마다 후덜덜하다.

다듬어 지지 않은 몇 마디 말을 두고 '내 저럴 줄 알았다'거나 '완전 실망이야' 하면서 온라인 상 허공에 까대는 것이 과연 저항 운동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최근 트윗 상의 '페미니즘 논쟁'도 불편한 마음이 한 가득이다 ㅡ.ㅡ)


'기획된 친밀성' 현상을 드러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회학자란 역시나 허공에 떠돌며 흩어지는 현상들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자들이다. ㅋㅋ

나의 또래이자 가난한 가정 출신인 저자가 경험한 부모와의 관계는 나와 매우 비슷하다. 나의 부모 또한 나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이나 사회적 권위가 없었다. (물론, 본인이 배운 게 없어도 성인이 된 자식들을 함부로 대하고 휘두르려는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획된 친밀성이 친밀성에 대한 과시로 나타난다는 관찰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나 부모자식 관계에서 이러한 과시는 자녀들의 사회적 관계망 차단과 성장지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주변에 이러한 사례의 목격담은 사실 차고 넘친다... ㅡ.ㅡ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즉 '점검하는 삶'은 멈추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구절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에게도 멈춤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여기서 뭘 더 멈추나 싶기도 하고.... ㅡ.ㅡ  


참, 경청을 통해 깨닫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삶, 즉 자기 삶에 내재되어 있는 타자성"이라는 설명에 아주 아주 공감했다.

 

 

# 커트 보네거트 [Sirens of titan]

 

타이탄의 미녀
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금문, 2003

 

동작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킨들 버전으로 구매했다. 아마존에 그렇게 악플 많이 달린 거 정말 첨 봤는데, 책 내용에 대한 악플이 아니라 킨들 버전 편집 좀 제대로 해서 내놓으라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좀 걱정을 하긴 했으나, 못 읽을 정도는 아니고,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이들 자체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편집 상의 오타인건지 구분하기도 쉽지않았다는 슬픈 사연...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워 미치는 줄 알면서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서늘함과 심지어 서글픔의 정체는 무엇인지 좀 당황스러웠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뭐지??? 우주 속 존재의미는 뭐지???

 

더글라스 아담스의 Mostly Harmless 보다 더 짠한 지구의 역할에 빵 터지기는 했지만, 그냥 웃을 수만은 없더라는 사연.... 

 

화성과의 전투 이후 지구에 나타난 신흥종교의 신, "God the almighty utterly indifferent"
에피쿠로스 왈, 신이 우리에게 신경을 쓴다고 믿는 것은 아주 헛된 짓. 신이 불멸성과 완벽성을 획득한 뒤부터는 우리에게 상도 벌도 내리지 않는다... ㅋ

 

보네거트 소설은, 읽을 때는 낄낄거리며 웃다가 책을 덮을 때 쯤이면, 어두운 기운이 저 심연으로부터 휘몰아치는 것 같은 서늘함을 던져준다. 그래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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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독일, 일본.. 어쩌다보니 다른 나라 이야기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르네상스, 2004

 

 

두고두고 되새길만한 몇몇 문장들을 옮겨 놓는다.

 

* 가난에 대해...

 

 

모든 사람을 큰 잔치에 초대해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이 세상은 균등한 동시에 불평등하다. 세상이 강요하는 습관과 생각은 균등하지만 세상이 가져다주는 기회는 불평등하다

 

20년전 혹은 30년 전만 해도 가난은 불의의 산물이었다. 좌파는 그것을 고발했고 중도파는 인정했으며 우파는 아주 드물게 부정했다. 세월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지금 가난은 무능력에 대한 정당한 벌이다. 가난한 자에겐 연민이 일어나지만 더 이상 가난이 의분을 유발하지 않는다

 

가난은 너무 작은 담요라서, 각자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기에 바쁘다

가난한 사람은 화려함을 좋아한다. 지식인만이 가난을 보는 것을 즐긴다


브라질 주교 엘테르 카마라의 유명한 이야기... (출처를 첨 알았음..)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먹을 것이 없냐고 물어보네면 , 날 빨갱이라고 해요

 

 

세상에는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난다. 그리고 갈수록 사람이 남아돈다. 세상의 주인은 쓸모도 없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무엇을 할 것안가?

 

 

* 법과 역사, 불의.....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파리같은 작은 곤충은 잡지만, 커다란 짐승의 진로를 방해하지 못한다

 

1995년 우르과이 몬테비디오 윤리학과 교수모집 공고가 났는데, 월급이 무려 백 달러 ㅜ.ㅜ

 

그 정도 돈으로 부패하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이 부서져라 윤리학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도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지금 까지 실제 역사를 만든 것은 법앞의 불평등이지만, 곡식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다


과거를 기억함은 과거의 저주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고, 현재의 발목을 붙잡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함정에 빠지지않고 자유롭게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 진실과 투쟁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분신이라 일컬어졌던 비에호 안토니오 왈

 

인간은 자신이 느끼는 세공포심만큼 작고, 자신이 선택한 적군만큼 크다

 

진실은 진실을 찾아나서는 떠남에 있지, 항구에 정박되어 있진않다. 진실을 모색하는 것보다 더한 진실은 없다.

 

 

남미 역사를 다룬 저자들의 특별한 재능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유례없는 정복과 약탈의 역사 때문인지, 한국과 유독 닮아 있는 근현대사 때문인지 라틴 아메리카 역사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렇게도 가슴이 저린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  끊임없이 저항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그들의 역사에 대한 흠모와 존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티에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노예제도가 철폐되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엄청 울컥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브라질 노예들이 탈출하여 밀림 속에 세운 자유공간 팔마레스 공화국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울컥.....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군사원정대의 30여 차례 공역에 저항하며 한 세기를 넘겼다니 ㅠㅠ (1605-1694)  백년이면, 빠리 꼬뮌보다 민중전선 아옌대 정부보다, 그리고 지구상에 '공식적으로' 실존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든 역사들보다도 더 긴 시간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북미 지역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새삼 놀라게 된다.  정복자들이 생각했던 인디언들의 문제점에는 자살, 소유권 부정, 자주 몸 씻기, 동성애 방조와 처녀의 순결에 개의치 않기, 아이들 때리지않고 자유롭게 놓아두기, 정해진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배고플 때만 먹기 등이 있었다고.... 이거 오늘 날 탈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서구 엘리트들이 동경하는 삶 그대로 아닌감??? 

 

책은 통렬하고 날카롭게,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것을 뒤집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해보면, 제국주의는 "세계화"로, 기회주의는 "실용주의"로, 배신은 "현실주의"로 포장된 현실의 껍데기 이면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불의와 부정의를 가르치는 학교이지만, 그렇다고 갈레아노가 이 책에서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마무리는 이러하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안제 살든, 한 사람은 그 속에 다른 많은 사람을 포함한다. 다른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하면서, 우리들 중에서도 거정 발어먹을 놈들에게 무대 전면네 나서라고 날마다 얘기하는 자가 10년도 채못가고 쓰러지는 권력이다. 비록 우리가 잘못 만들어졌어도 아직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현실을 변화시키고, 우리 자신도 변화하는 모습이야말로 우주의 역사 속에서 눈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이 짧은 순간을, 두 개의 빙하 사이에서 덧없이 짧은 한 순간의 온기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다.

 

잘못 만들어졌어도, 아직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 덧없이 짧은 온기의 순간을 가치있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 이만큼 소박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 토머스 게이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부키, 2011

 

미국의 노동변호사가 미국이 유럽, 특히 독일사회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은 책....

 

저자는 노동 비용이 높아서 미국 기업이 힘들다는 말은 다 헛소리라고 비판한다. 오늘날, 노동비용이 높은 독일의 제조업은 살아남고 오히려 노동비용 낮추는 것을 필사의 과제로 삼았던 미국과 영국은 제조업이 다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단지 산업구조의 문제를 넘어서, 실물이 있는 제조업 기반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사멸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야 모르겠지만, 실체없는 서비스금융자본주의가 카드로 지은 집 같다고 역시 걱정해온 나로서는 깊게 공감하는 부분....

 

저자는 독일이 맛이 갔다고 미국인들이 흔히 이야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독일 사민주의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ㅡ 직장평의회, 노사공동결정, 지역별 임금결정 제도에 대해서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직장평의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동안에는, 노조가 없는 곳에 평의회가 구성되거나, 혹은 평의회와 노조가 같은 기능을 한다고, 즉 노조 대의원이 평의원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저자가 소개한 사례들을 보고 나니, 내용 측면에서나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 차원에서나 굉장히 중요한 제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독일의 사민주의를 떠받치는 이러한 제도들이 제조업 기반의 조직 노동이라, 공공 부문이나 미숙련/서비스/ 여성 노동자 조직화는 매우 취약하다는 현실 진단에는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ㅠㅠ

 

내가 독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건강보험 제도의 역사 쪼금, 프라이부르그 같은 유명한 친환경 도시 프로젝트, 그리고 역시 맥주.... 특히 쾰른 맥주 맛있지.... ㅡ.ㅡ

책을 읽고 나니 독일의 자치/협력 구조가 몹시나 궁금해졌다. 혹시나 보건의료 영역에도 이런 게 있을까???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저자는 미국인 독자들에게 그토록 미국인들이 맹신하고 유럽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유럽은 공공재를 더 많이 선택할 수 있고, 소비하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소비할 시간이 있다는 점 말이다. 그토록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며 미국적 자유주의를 높이 평가했던 프리드만이야말로 종신 교수로서 유럽 사민주의자처럼 이런 선택의 자유를 다 누리고 살았다는 이야기에 빵 터졌다...

 

저자는 본인이 사민주의자가 절대 아니고, 그냥 애국자일 뿐아라면서 미국에서도 제발 사민주의가 강화되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민주의자가 뭐 어때서 이렇게 구구절절 평범한 애국자임을 강조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미국도 하도 당파색이 강하다보니 (유럽인 보기엔 웃기겠지만 ㅋ) 독자들에게 '순수성'을 어필하기 위해 이러는거 같기는 하다. 순수는 개뿔.... 이라고 비웃기에는 한국 상황도 대체로 안습이라, 그냥 찜찜함으로 남겨둘란다...

 

천하제일 미국 따라가기에 바쁜 한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비판적인 사례 학습이 많이많이 필요한 듯 싶다...

 

# 후지와라 토모미. <폭주노인>

 

폭주노인 - 그들은 왜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노인이 되었을까
폭주노인 - 그들은 왜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노인이 되었을까
후지와라 토모미
좋은책만들기, 2014

 

너무나 빠르게 고령사회로 치달아가고 있는 한국에서 노인들이 각종 사회병폐의 희생자이자, 혹은 드물지 않게 가해자로 활약하는 현상을 보면서, 선배 국가 일본 상황은 어떤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는디.....

 

한 마디로 충격...

 

이런 글은 그냥 자기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쓰지 왜 책까지 낸 것이며, 한국의 출판사는 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번역한 것인지.... 거대미스테리를 남겨준 책....

노인들이 왜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는지, 왜 '폭주'하고 있는지... 하나도 답이 없잖여...

계량적 분석이고 심층적인 사례 분석이고 아무 것도 없고, 그냥 저자의 느낌적 느낌으로 책 한 권을 채웠다는 사실에 내가 폭주할 뻔했다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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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환기의 방식

지금 여기를 돌아보게 하는 방식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무한도전 토토가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여기가 과거에 비해 그토록 불만족스러운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90년대는 정규직 일자리가 젖과 꿀처럼 넘쳐 흐르고, 대중문화는 백가쟁명의 꽃을 피웠던 태평성대였더란 말이지.....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이소라의 노랫말이 주는 통찰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사람들은 어쩌면 실재하지 않았던 어떤 완벽한 과거의 재현을 통해 오늘/여기 삶의 신산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다가오지 않은, 혹은 성취해야 할 아름다운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비추어 오늘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사회라면, 참 많이 슬픈 곳이 아닐까 싶다.

 

새해를 시작했던 책 또한, 지금/여기를 돌아보게 했다. 동시대, 다른 공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혹은 은유로 가득찬 시간의 목소리를 통해서.

 

#.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거리로 나온 넷우익> 후마니타스 2013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후마니타스, 2013

 

 

이 책은 일본 사회의 평범하고 수줍음 많은 개인들이 어떻게 (전통 우익도 혀를 내두를만큼의 행동력을 가진) 망나니 우익이 되었는지를 분석한 사회심리적 탐구이자,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광범위한 대중의 우경화/보수화 경향의 보여주는 사회학적 분석이다.

 

이 책에 의하면, 이들 일본 넷우익의 개인적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적인 사회적, 경제적 박탈과 지지망이 되어줄 사회적 관계망의 취약함. 이들 개개인은 알고 보면 착한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순한 사람들, '유사가족' 혹은 언제라도 나와 함께 있어줄 그 누군가를 기대하는 외로운 사람들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갈망이 표출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이들은 스스로를 비엘리트로 생각하면서 특권을 가진 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 자신은 자신의 활동을 '계급투쟁'으로 지칭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들이 생각하는 특권층이란 진짜 특권층이라기보다 공격하기에 좋은 취약집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의하지 않지만, 이건 사실 유별난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위계에서 열세에 처한 이들이 보이는 스트레스 반응 중 전형적인 displacement에 해당한다.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네오나치와 프랑스의 국민전선을 비롯해 북유럽에까지 기세를 떨치고 있는 인종주의 운동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연히 한국의 일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한' 특권을 누리는 광주민주화 운동세력, 남성들을 착취하는 여성, 자식 팔아 유세한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비난을 관통하는 것은, 사실 억울함 아닌가 말이다. 이들이 받아야 할 '응분의 몫'에 비해 지나친 혜택을 누리고 있어서, 자신들이 손해 본다는 생각.... 이 억울함은 <우리는 왜 차별에 찬성하는가>에 실린 젊은 대학생들의 사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과격하고 (우익마저 고개를 내저을만한) 파렴치한 행동 그 자체라기보다, 이들의 놀라운 자발성과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일본 대중들의 거대한 동의가 아닐까 싶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낳은'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100%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이런 거였다.

한 교사의 말을 전하자면, "과거에 어른스럽고 교사에게 논쟁을 거는 학생들이 좌파적 성향이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우파적인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 전제들을 동의하지 않는 이들과는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 평등이, 인권이 왜 중요하냐, 저 외국인들을 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대접해야 하냐, 이런 질문에 차근차근하게 대답해줄 자신이 없다. 너무 당연한 가치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을 비롯하여, (실질적 내용은 차치하고) 제도적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한 국가들에서의 사회운동이 가진 딜레마 또한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예컨대 일본의 평화헌법은 그 정점을 지나 이제 '퇴보' 밖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고, 소위 좌파는 현재를 지키기 위해, 우파는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우익이 변화시키려는 방향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의 퇴행이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만, 퇴행이든 전진이든, 이들은 변화를 원하고, 좌파는 이에 저항한다. 굳이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 바꾸려 하는 것이 진보이고, 굳이 바꿀 필요가 없으면 유지하려 하는 것이 보수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혼돈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ㅡ.ㅡ.  

 

"사회운동은 이론보다 기세를 통해 확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세는 '지키기'보다 '바꾸기'를 원하는 쪽에 붙기 마련이다. 일찍이 학생운동이 기세를 떨쳤던 것은 무엇보다도 체제를 부수자는 데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편 지금의 좌익은 '지키기'만 할 뿐인 운동이다. 평화를 지켜라, 인권을 지켜라, 헌법을 지켜라, 우리 직장을 지켜라, 재특회 같은 신흥보수 세력은 그것들을 모두 의심하고 '쳐부숴라'고 호소한다. 좌익이 보수가 되고 보수가 혁신이 된 '역전현상'이 생긴 것이다."

 

사회가 자꾸 나쁜 방향으로 퇴행하려고 하는데, 그에 맞서서 그나마 지금의 후진 상황이라도 유지하려고 싸워야 하는 운동은 우울하다. 퇴각과 퇴각을 거듭하면서, "그래도 그 때가 좀 나았던 것 같아"라고 끊임 없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역사가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배웠는데, 지금이 바로 나선의 후퇴 혹은 하락 부분인 것일까?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오늘을 어떻게 돌아보게 될지 두렵다. 엄혹했지만 잘 견뎌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며 흐뭇해할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하고 더 깊은 회한에 잠길지....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김현균 옮김. <시간의 목소리> 후마니타스 2011

 

시간의 목소리
시간의 목소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후마니타스, 2011

 

그 시간이 흘러, 시간의 목소리른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몹시 정성들여 세공한 이 짧은 이야기들은 슬프고 아름답고 유쾌했다. 

예전에 신영복 선생의 책에 "시간이 없어 편지글이 길어졌다"던 이야기를 저절로 떠올렸다. 기껏 반 쪽이 안 되는 짧은 글과 손톱만한 옛사람들의 그림 조각들이 이렇게 풍부한 결을 전할 수도 있구나....

라틴 아메리카와 세계 곳곳의 피묻은 역사에 울컥하면서도, 나는 심각한 향수병을 앓았다.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 쇠락한 아바나의 건물들, 파타고니아의 거친 자연은 그저 이야기의 배경일 수 없었다. 내가 가 본 곳이라 반갑다거나 익숙하다는 감정과는 정말 다른 그 무엇이었다. 직접 여행했던 곳들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글들은 그동안 무수히 마주치고 읽었지만, 갈레아노의 책에 등장해서 맥락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심상으로 경험된 것이다. 미칠 듯한 애틋함...

 

올해는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갈레아노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플러스, 리처드 세넷...

인상깊은 글귀 하나 적어둔다.

 

"나는 나의 자유를 지고 다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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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감상들

블로그를 워드프레스로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차이피일 새 글쓰기를 미루었는데, 결국 시작도 못하고 글만 밀린 셈이 되었다.

올해 연말  프로젝트로 블로그 업데이트를!!!

 

#. 영화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4)

 

인터스텔라

 

인셉션 때도 들었던 의문인데 굳이 저렇게 개고생하며 메시지 전달해야 함?  그냥 첨부터 설계도를 마이클 케인 할배한테 쏴주면 되잖아 ㅠㅠ

시각효과와 쌍둥이 역설 보여주는데 너무 정성 쏟느라 나머지 플롯은 모기장 정도가 아닌 물고기 그물 수준 구멍이 숭숭...
과학자들은 어쩜 하나같이 정념의 화신들.... 불쌍한 맷 데이먼 어쩔 거냐고 ㅜ.ㅜ

 

게다가 행성 그 자체는 물론 빛조차 흡수해버린다는 대마왕 블랙홀 지나는데 사람이 멀쩡하고 심지어 교신도 잘됨 ㅋㅋ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 할배가 중력장 찌그러지는 거 보여줬잖아...

그리고 공부 잘하고 똘똘하다고 그렇게 대놓고 딸만 좋아해도 되는겨? 살림 돌보느라고 개고생한 아들내미 불쌍함...  게다가 매튜 매커너히는 [컨택트]에서 하도 미운 털이 박혀서 뭘 해도 좋아보이지가 않음...

 

그래도 하나 건진 건... 타스 너무 갖고 싶어!!!!! 아이슬란드 꼭 가야해!!!

 

#. 영화 [액트오브킬링] (조슈아 오펜하이머, 크리스틴 신 감독, 2012년)

 

 

액트 오브 킬링


아......멘탈이 바스라짐
첨에는 아무리 저들이 가해자라지만 감독이 윤리코드를 위반해가며 찍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감독이 이용당할 수도 있는 상황?

국영방송의 토크쇼는  보다 정말 쓰러질 뻔함.


인터스텔라는 허구인데 진짜같아 보이려 애쓰고 이 영화는 오히려 실제인데 더 허구같아 보임.

정말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은데 변영주 감독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했음. 옳은 일을 했다는 개인적 믿음과 사회적 합의 때문에 굳이 그들이 도덕적 딜레마를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

하지만, 도대체 인간 본성에 자리한 '양심'이란 그토록 취약한 것이란 말인가??? 나치스의 만행이나, 이스라엘의 또라이짓들을 보면,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서글픈 사실...

안와르 콩고의 마지막 흔들리는 모습이 진심의 반성, 혹은 자기 향위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었는지는 감독도 모르고, 관객도 모르고,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

 

영화가 정말 무서웠던 것은 그 현실이 남한 사회와 백짓장 한 장 차이라는 점 때문. 서북청년단이, 광주 계엄군이 토크쇼에 나와서 대놓고 우리가 학살 저질렀어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방청객들이 박수치며 웃지는 않지만, 그들이 엄연하게 현실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들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 쓰려 하고 있다는 점....

이런 걸 보면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고, 사회정의나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생명체인지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

너무도 우울하고 무서운 영화....

 


#. 영화 [언더 더 스킨]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2014년)

 

언더 더 스킨

 

보는 내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가 자동 연상.....

스칼렛 요한슨 너무 좋아... 그런데 가만, 한국어 포스터 좀 보소... '그녀가 벗는다'라니.... ㅋㅋ

외계인도 물리치는 지구인 남성의 '성폭력'이 아주 후덜덜하기는 했음....

원작 소설도 역시 다른 측면에서 완전 훌륭하다고 하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음...

 

#. 영화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4년)

 

보이후드

 

12년이라는 '리얼타임'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재구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미덕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평이 좋았던가 정말 의아했음.

리얼타임으로 쫓아간 걸로 치면, 사실 해리포터 시리즈가 훨씬 더 성장의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이지...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이고, 갈등이나 시대상의 스냅샷도 너무 전형적이라 밋밋하게 그지 없더란 말이지... ㅡ.ㅡ 지금 40대 중후반의 미국 리버럴 중산층들이, 아 저 때는 그랬지... 딱 내 이야기네 하면서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돌아볼 수 있는 매끈한 추억팔이 영화라고 평하면, 나 너무 비뚤어진 사람인감???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이제 겨우 10-20년이 지났을 뿐인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가 아름다웠지 회고하는 것은 지나친 퇴행이라고 생각함. 90년대 한국사회에는 대중문화가 만개했고, 정규직 일자리가 젖과 꿀처럼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환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고... ㅜ.ㅜ 

 

#. 아트 스피겔만. Maus (1부 1986년, 2부 1992년 발간)

 

이 명작을 지금에서야 보게 되다니...

더 황당한 것은 아마존에서 주문해봤는데, 바로 얼마 있다가 국내에 번역서가 출판되었다는 것... ㅡ.ㅡ

 

현재 세계에서 아빠의 고집불통 구두쇠 성격을 세밀하게 그려낸 것이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더 잘 설명해주는 효과...  가혹한 폭력과 난데없는 운명의 향방에 대한 공포가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음.


그러면서도 작은 자원 하나, 숨겨온 금시계, 빵 덩어리 하나가 때로는 삶과 죽음을 가르고,

같은 이웃이고 민족이고 없이 오로지 혈연이라는 일차적 관계망, 여전히 물질적 자원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여파도 계급에 따라 차별적이라는 점이 너무나 씁쓸....

유대인이라는 '동포' 사회에 연민이나 연대는 존재할 여지조차 없었던 것 같은 정황이 진정한 공포.... 정말 각자 도생의 지옥도에서 누구는 운 좋게 살아나고 누구는 연기 속으로.....

하지만, 2차 대전, 아우슈비츠와 나치스의 만행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자동으로 이어지는 한숨....

이런 난데없는 폭력과 희생을 경험한 인간들이 왜 오늘날 저런 쓰레기 짓을 저지르냐고!!!

인간에게 염치를 빼면 뭐가 남는가 말이지....

 

 

#. Neil Gaiman, P Craig Russell. Graveyard Book graphic novel 1, 2 (2014)

 

 

아름답고 따뜻한데, 사실 엄청 잔혹한 동화.... 원작은 안 읽어봤지만 그래픽노블로의 변환은 정말 짱인듯...

Silas 멋지다고!!!

닐 게이먼 내 월급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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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로부터 출발한 두 권의 "정치" 서적

#.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은행나무, 2012

 

도서관에 대출 상태가 지속되어 한참이나 까먹고 있다가 지난 번에 들렀더니 서가에 돌아와있길래 냄큼 집어왔다. 저자는 젠더 이슈, 특히나 돌봄과 관련해서 상당히 중요한 기여를 했던 연구자라고 들었다. 한편으로는 여성을 보호해야 할 성스러운 (?) 존재로, 다른 한 편으로 성애의 대상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찮은' 존재로 차별하고 비하하는 이 기괴한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했던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일본인이라니 호기심이 생겨날 밖에...  

나는 항상 일본 사회 여성의 삶이 궁금했더란 말이다...  

예전 한일 자살 비교연구를 하면서 내가 잠정적으로 갖게 된 인상은.... 미안하지만, 일본 여성들이 만일 차별을 '인정'하고 순응한다면 그닥 불행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한국인들은 일자리가 부족하면 여성이 남성들한테 양보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아내도 경제활동으로 가구소득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일본사회는 여성한테 그닥 기대가 없었다... ㅡ.ㅡ 그래서 그런지, 경제 위기 상황에 한국의 여성 자살률은 급증하는데 일본은 변동이 없었다. 일종의 보호받는 존재인 것이다....   이걸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것이고, 그래 편하게 보호받으며 살자 하면 결과가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이 묘한 상황...  (물론, 그래도 선택하라면 나는 한국사회를 택할 거다 ㅡ.ㅡ)   

서론이 길었고... 하여간 그래서 몹시 궁금했던 책이라는 거다.

책은 흔히 가지고 있을 법한 통념 - '점잖은 일본의 여자교수'가 썼다고 보기에는 엄청나게 직설적이고 단호했다. 애써 점잖음 따위는 개나 줘버려, 싹 다 까놓고 말하자, 이런 분위기?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만큼 충분한 설명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여성혐오 현상의 본질이나 맥락 요인들에 대해, 정치경제나 사회학보다는 상당 부분 정신분석학적 접근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이 정신분석학이라는 것이, 각자의 '썰' 성격이 강하다보니, 옳다그르다 하기도 어렵고, 실증자료를 통해 뭘 보여주기도 그렇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둘 다 딱히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프로이드 말씀이 뭐 성경말씀도 아니고... ㅡ.ㅡ  

더구나, 이 분석 틀에 여성이 주체로 등장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정신분석학 기원으로 올라가면 결국 남는 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리비도와 팔루스에 대한 다양한 변주들인데, 여성 혐오의 기원이 이것이라면 그럼 젠더가 비교적 평등한 사회나 모계우선을 보이는 사회들은 뭐여??? 인간이 생물학적 리비도와 무의식의 세계로 설명되는 존재라면, 지난 수천년 이성의 발전, 가깝게 지난 백 년의 근대화 역사는 다 부질없는 거였나??? 제도니, 문화니, 정치경제니... 이런 거는 다 상관없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새삼스럽게 깨닫거나 동의하게 된 부분도 있다.  

 

예컨데, 남성은 여성이라는 '기호'에 반응하며 이러한 페티시즘은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문화적인 것'이라는 설명에는 완전 동의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충동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약자 혹은 학습된 성적 기호로서의 여성이나 아동, 특히나 장애인 여성에게 자행되는 남성의 성폭력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화학적 거세 같은 조치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여성의 조신한 몸가짐 강조 따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남성의 남성됨을 인정하는 주체는 이성인 여성이 아니라 같은 남성이라는 설명,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남성에게 과시하기 위한 객체로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또 성적 '대상화'가 될 수 있다는 자각 때문에 그토록 강력한 호모포비아를 형성한다는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런게 막 불편한 거다.

 

남성이 폭력<권력<재력이라는 자원을 통해 여성들을 지배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여성이 '남성의 폭력에 복종하고 지위에 몰리며 돈에 따라온다'는 설명을 듣고 있자면, 이건 도대체 여성혐오를 부추기자는 건지, 비판하자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남성의 이러한 자원에 여성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이 이런 자원을 휘두르는 것은 못볼꼴이라는 인식은 양립가능한 것인가???

게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쾌락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것이 '수컷에 있어서 최강의 자원'이라면, 여기에 지배당하는 여성은 뭐가 되는 거임???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의구심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들에게 굴복당하고 지배당하고 휘둘리는 여성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여성 주체는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남성은 비판의 대상으로서 실존하는 주체인 반면, 여성은 오히려 남성을 설명하기 위한 객체 정도로밖에 그려지지 않았다는 인상.... 뭉뚱그려서, 남성들에게 속아넘어가고 폭력을 당하고 남성을 숭배하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이랄까.....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온데간데 없다. 

심지어 여성들이 같은 여성의 인정보다는 남성으로부터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진단을 보고 있자면, 그래서 여자들이 이 모양 이꼴이라는 뜻? 그렇다면 남자들을 비판할 게 아니라 여자들 정신차리라고 운동하는 게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삐딱함일까???   

 

그리고 이건 세대적 차이에서 비롯된 해석의 다름일 수도 있는데....

'딸은 어머니로부터 여성 혐오를 배운다. 어머니는 딸의 여자같은 부분을 증오함으로써 딸에게 자기혐오를 심어주고 딸은 어머니의 불만과 공허를 목격함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경멸을 배운다" 라는 표현은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좀 황당한 표현이다. 아마도 이건 스위트홈 이데올로기에 갖힌 근대 중산층 가족의 전형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인데, 노동계급의 삶에 이게 가당키나 한 설명인지 모르겠고, 더구나 '너희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면서 (몸은 안 따라올지언정) 딸자식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헌신했거나 최소한 동의했던 우리 엄마들 세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딸의 행복을 기뻐하지 않는다거나, '너를 평생 손에 쥐고 놓지 않을테다' 하며 지배욕을 갖는다는 해석은 사랑과 전쟁 하드코어 버전에 가히 비길만하다. 

게다가 '여아는 남아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일차적인 애착대상으로 삼지만 아버지와 동일화하여 어머리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아는 어머니를 사랑해서는 안 되며 어머니와 같은 성별에 속하는 대상을 사랑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사랑의 대상 상실은 남아보다 여아가 더 근원적이며 여아는 상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상실의 대상을 체내화한다. 그것이 멜랑콜리, 즉 우울상태이다'

"어머니에게 복종하든 거역하든 어머니는 딸의 인생을 줄곧 지배한다. 어머니늬는 사후에도 딸의 인생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자책감과 자기혐오로서 나타난다"

"(원조교제하는 10대는) 아버지 세대의 손님을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삼아 그들의 비열하고 왜소한 성욕에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 아버지에게 소속되어 있으나 아버지가 결코 더럽힐 수 없는 딸의 육체를 시궁창에 버림으로써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 같은 표현을 보고 있자면, 어안이 벙벙...  나는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가??? 정신분석학의 본질은 막장 드라마였던 말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인기남'으로 그려진 아키아바라 무차별 살상 가해자 사례였다.

저자는 그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자면 남성으로서 최후의 자존심을 능욕당한) 진단한다. 많은 이들이 파견노동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지적했지만,  그런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런 흉악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면서, 그 '비인기남'의 이전 글들을 인용하여 '이러니 여자가 생길리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게 치자면, 부인이나 애인이 없는 남성이라고 모두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왜 언급하지 않나? 비단 이 아키하바라 사건만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의 다양한 사회적 일탈이 늘어나고 있음이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게 이를 그저 찌질한 루저남의 미친 짓으로 치부하고 말아버린다면, 정말 답이 없다. 세상은 오로지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 안달인 남자들과, 스스로를 혐오하며 남성에게 기생하는 여성들만 존재하는 곳이란 말인가???  

 

이 책은 여성주의 이론에 익숙한 이들과 함께 토론을 하면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전반적인 여성주의 맥락에서 보자면, 나의 독해방식이 오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어서 말이다. 정말 여성혐오를 이렇게만 진단할 리는 없잖아??? 조만간 SOS를 쳐서, 이 책에 대한 국내 여성주의자의 '해설'을 좀 들어봐야겠다!!!   

 

* 뱀발: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친구관계야 말로 인간관계의 상급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스킬이 필요하다. 연애나 결혼보다 더. 왜냐하면 연인이나 부부관계는 일종의 역할극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제임스 길리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교양인, 2012

 

 

사실, 번역이 매우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epidemic'을 내내 '전염병'으로 번역해 놓은 것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상당히 거슬렸다. 전염병 (communicable disease, infectious disease)은 병원체를 통해 전파되는 질환 일반을 지칭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풍토병 (endemic)도 있고, 대유행 (epidemic) 도 있다고... ㅡ.ㅡ  그냥 역학 관련 용어들이 이 사회에 대중화가 안 되어 나타난 결과겠거니.....

그리고 책 표지가 너무 후덜덜.....  이건 아니잖아....

 

하여간 글은 길지만, 요약하자면 

정치라고는 모르는 임상의사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분석해보니

공화당 대통령이 되면 살인과 자살률이 높아지고, 민주당 대통령이 되면 반대로 낮아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랄프 네이더 같은 좌파나 극우파들이 보기에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는 말씀!!!

그러게, 나도 여기에 매우 동의한다. 

 

저자는 진료실에서 다양한 폭력 사례들을 겸험했지만, '폭력이라는 전염병은 개인들의 차이만 가지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그리고 다양한 근거들을 정리하면서, Hill's criteria 에 근거하여 집권 정당이 자살/살인과 '원인적 연관성'을 갖는지 검정해간다. 역학적 훈련이 매우 잘 된 임상의사 ㅋㅋ 훌륭하시다! 

게다가, '폭력치사라는 전염병은 (개인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의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피르효의 문장으로 글을 맺는 것을 보면 왠지 고맙기까지.... ㅡ.ㅡ 

 

저자는 사회정책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그 정책들로 인해 나타나는 차이를 폭력 뒤에 내재한 '수치심'으로 설명한다. (사소할지라도) 상처받은 자존심은 반동(reaction)으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낳는다는 것.... (반대로 '죄의식'이 강력하게 작동하면 자살에 이른다). 공화당 집권을 통해 행사하는 정책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수치를 경험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약간 동의하기 어려운 설명도 있는디.... 

수치심은 불명예와 치욕을 악덕으로, 자부심과 명예를 미덕으로 간주하는 도댁 체계인데 비해, 죄의식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다. 하지만 수치심 윤리에서 보자면 겸양은 자기 모욕이나 다름이 없다. 전자는 우파의 정치윤리, 후자는 좌파의 정치도덕이 된다 (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남부는 수치심의 윤리관이 두드러지고 (그래서 폭력이 만연하고), 뉴잉글랜드는 상대적으로 죄의식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폭력이 적다) 고 저자는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에 대한 역사적 사료들까지 등장하는데, 글쎄올시다....  남부 지역이 플란테이션 중심의 거대 농업자본과 노예제로 대변되는 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했다면, 뉴잉글랜드는 비교적 일찍 공업화가 진척되면서 이민자와 자유흑인까지 포괄하는 거대하고 (상대적으로 평등한) 노동인구의 규모가 커졌던 것이 더 중요한 이유 아닐까 싶은디....  (어째, 미시적 심리세계를 통해 사회세계를 설명하는게 오늘 정리하는 두 권의 공통 테마였나보다... ) 서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자살률 높은 것도 상처입은 자존심으로 설명하는데, 이건 좀 화가 날 지경. 

 

조금 더 구체적인 물질적 기반과 제도의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정신과 의사니까..... ㅡ.ㅡ   

그래도, 임상의사로서 교정시설에서의 폭력 감소 프로그램 경험과 이를 통해 정책을 어떻게 구상하면 좋을지 제안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폭력에 기대지 않고도 수치스러운 경험을 견뎌낼 힘이 되어주는 개인적, 문화적, 경제적 자원을 제공해주는 것' 말이다. 

 

비록 정권들 사이에 사회정책의 차이가 그닥 크지는 않지만,

폭력과 자살 예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한국사회에도 단서를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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