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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안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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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07/03
    당대를 반영하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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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안녕...

무려 작년(!)에 후기를 쓰다가 잠시 덮어놓은 걸 깜빡했는데,

오늘 프레시안북에 실린 서평을 보고 떠올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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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님의 [앙드레 고르, 서경식...] 에 관련된 글.

 

내 짐작이 옳았다. 

<에콜로지카>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어야 했던 것이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그 말...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 사회주의를 넘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 사회주의를 넘어
앙드레 고르
생각의나무, 2011

 

에콜로지카에서 일종의 '비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여기에 비교적 상세하게 펼쳐져 있었다. 

번역서가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는 바람에... ㅡ.ㅡ;;

 

30년 전의 글이라고는 믿기지않는 동시대성과 혜안에 놀라면서도, 

항상 나쁜 예감만 들어맞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더랬다.

 

*

현재의 노동계급 상황을 많은 (?) 이들이 마르크스주의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실증자료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궁극적인 이분화를 보이지 않고, 자본주의 모순에 의해 저절로 주저앉지도 않았다.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내고 그의 경전을 충실하게 해석하려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헤겔식 구조를 갖춘 철학'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변증법적 원리를 견지한다면서, 1백년 전의 추론에 따라 오늘의 세계를 해석하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아닌듯 싶다. 작업장을 장악할 예능적 기술력을 가진 노동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기계화와 단순화 속에서 일어난 노동의 파편화와 소외는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기는 커녕 이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부르주아지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권력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가져야 했던 의식을 뿌리까지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노동을 잠재적으로나마 창조적 행위로 경험할 가능성을 노동과정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프롤레타리아의 위기라는 고르의 지적에 동의한다. 후기산업사회에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점차 사라지고 '비계급'이 남아있을 뿐이다. 

 

*

생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우리 또한 모든 해방의 우선 조건으로 생산력 발전을 꼽는다.

그렇다면 세상이 바뀌더라도 (노동자가 권력을 갖더라도) 현재와 같은 생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지배가 계속될 것이다.   즉, '자본'의 권력과 정대칭의 관계에 있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의해, 프롤레테르 (개별 노동자)는 그 동일한 '자본'을 집단적으로 소유하게 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소외된다는 것이다.

현대 대형 산업생산의 비밀은 그 안에서 '아무도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스스로를 모든 법과 모든 정당성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주체라도 그 권력을 소유하거나 책임지지 않는다... 직위를 가진 개인은 언제나 우연의 산물이며 다른 인간으로 교체될 수 있다..."

앙드레 고르는 '개인적 권력'과 '기능적 권력'을 구분하면서, 왜 '기존'의 방식으로 변혁이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한다. 익명적 조직의 구조에 내재하는 기능적 권력을 위해 개인적 권력이 제거됨으로써 계급투쟁의 문제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이다. (다시금 '가시적인' 개인적 권력으로 회귀하려는 대중적 열망은 파시즘으로 귀결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에 의해 설치된 기구를 장악하더라도 (이를테면 자주관리), 그들은 자본의 지배와 유사한 것을 재생산하고, 그들 스스로 '기능적 부르주아지'가 될 것이다. 권력을 이양받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지위'를 이양받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제 지배관계를 제거할 유일한 가능성은 권력과 지배를 분리시키고 시민사회, 정치권, 국가 각각의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해, 기능적 권력은 불가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전에 정해진 '한정된 자리'를 그 기능적 권력에 부여하는 데 있다"

 

*

이제 변화를 뒷받침할 생산력 수준은 충분하다. 필요한 것은 '혁명'이라는 명명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필요조건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사회적으로 결정된 노동'의 영역을 축소하고 자율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스스로가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

"그러나 사회적으로 결정된 노동을 없애도, 각자가 외부적 의무들을 폐기해도 해방은 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방은 필연성의 영역이 타율적인 일들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타율적인 일들의 기술적 요구사항들은 도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확한 규칙을 정해 그 일들을 특정 사회공간 내로 한정시키는 데 있다. 필연성의 영역과 자율성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후자의 영역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국가가 필요하며, 정치와 국가가 동일한 것으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노동을 마지못해 하는 그 무엇으로 격하시켜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흔히, 취미로 좋아서 하던 일이 직업이 되는 순간 고통으로 탈바꿈한다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인간이 현재 종사하는 일들을 그것이 사무직이던 생산직/서비스직이던 너무 고답적인 일자리 형태로 싸잡아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노동시간 단축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노동을 좀더 필연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치있게 재조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죽지못해 이어가는 삶의 영역이 존재하고, 다만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자율성의 영역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이 또한 서글픈 일이다. ㅜ.ㅜ

 

부록에 실린 <이원론적 유토피아>는 정말 흥미롭다.

새로운 혁명 국가에서 대통령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첫째, "우리는 덜 일할 것입니다" - 우리는 자유로운 노동과 여가시간에 대한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둘째, 우리는 더 나은 방식으로 소비할 것입니다" - 소비상품의 개발은 내구성, 수리의 용이성, 제작공정의 만족성, 친환경성이라는 원칙을 따를 것이다

셋째,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서 문화가 스며들도록 할 겁니다" - 사람들이 상상력을 계발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더이상 방영하지 않을것이다

 

첫째, 둘째에는 적극 찬성하는데... 셋째는... 그럼 무한도전은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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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불교의 연기론이 그러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가르침(?)이 그러했다.

그리고 깊은 성찰의 결과들은 그 뿌리가 어디이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김영사, 2003

 

 

목가적/낭만적 생태주의자가 아니고

가부장적/혈연적 공동체주의자가 아니고

모든 권위도 구속도 싫다는 자유지상주의자도 아니고....

전통이라면 모두 숭고하다는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도대체 말도 안 되는 폭력과 억압의 현실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성찰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건 가능한 일이구나...

 

이 두꺼운 책을 펼쳐들었던 지난 2주간의 지하철 출퇴근길과 깊은 밤 부엌 탁자에서

슬픈 현실에 눈물을 삼키고 그들의 깊은 생각에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옮겨두고 싶은, 오랜 동안 기억하고 싶은 잠언들이 너무도 많지만,

마음 속에 새겨두지 못하고 그저 글로 옮겨두는 것도 부질없는 짓처럼 느껴져 한 구절만 옮겨둔다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 뱀발

인류역사에서 내맘대로 꼽는 5대 국가 깡패짓이 있다. 물론 다른 비극적 역사들도 많지만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국가간 혹은 민족 간 전쟁이나 갈등과는 다르다고 생각...

아메리카 정착민들의 인디언 학살과 추방, 아메리카 정착민들의 흑인노예제도, 나치스의 유대인/소수자 학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무단점거와 폭압, 한국전 당시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

기구한 사연으로 말하자면야 이들 모두 난형난제지만, 폭력이 지행된 기간과 살상의 규모만 놓고 보자면 아메리칸 인디언 사례가 단연 앞서지 않을까 싶다... 이런 거 가지고 순위 매기는게 의미야 없지만서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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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혹은 그 너머의 책들

#1. 시마다 히로미 지음, 사람은 홀로 죽는다

 

 

사람은 홀로 죽는다 - 무연사회를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은 홀로 죽는다 - 무연사회를 살아가기 위하여
시마다 히로미
미래의창, 2011

 

프레시안 서평에 낚인 듯...

표적으로 삼은 독자가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디, 분명한 것은 기대만큼의 깊이가 없다는 것...

사회학적 분석도, 철학적 성찰도 다 애매한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생각...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면,

많은 이들이 무연사회, 특히나 그 종착점에서 홀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무연사회가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연사를 겁내기 전에 우리에게는 이미 무연을 바라는 욕망이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해둬야 하겠다"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새로운 유연을 구축하고 찾아나가던 중에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프로야구 팬이되었다" 는 정도...

 

아쉽네 그려.... 

 

#2. 김지영 지음, 피동형 기자들

 

 

피동형 기자들 - 객관보도의 적,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고발한다
피동형 기자들 - 객관보도의 적,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고발한다
김지영
효형출판, 2011

 

요즘 이동관 수석 때문에 '주어'의 중요성이 새삼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만,

평소에도 언론과 학술 논문의 주어 없는 문장, 피동형 문장, 특히 방송보도의 주체상실 표현법에 불만이 컸던 터라, 도서관에 신간구매 신청을 하여 읽게 되었는디...

사례와 통계들이 매우매우 자세하게 나열되어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약간 지루하긴 한데, 나름 글쓰기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목적의식적으로 피동형 표현을 피한다고 했건만, 그동안 모르고 썼던 피동형 표현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ㅡ.ㅡ  이를테면 '하다'와 '되다'의 구분...

"상기된 표정"이 아니라 "상기한 표정":이,  "긴장이 고조된" 이 아니라 "긴장이 고조한"이,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었다"가 아니라 "대두했다"가 옳은 표현이다...

"인구에 회자되다"가 아니라 회자"하다"가 옳은 표현이었다니!!!!

 

사실, 언어라는 것이 생명체와 같아서 항상 원칙만을 고수할 수는 없고, 많이 쓰면 그것이 또 표준어가 되기도 한다. 짜장면-자장면-짜장면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래도, 특히나 공적인 언어, 대중의 언어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언론의 경우,  "결국은 넘어가게 될 말이라도 지금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새겨들어야 한다.

 

 

* 알아둘 표현

발표주의, 팩트주의 -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모양새만 보면 팩트만 나열하는 건데 실제로는 검증할만한 시간과 정황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헛소리마저도 팩트로 전달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거다. 매카시의 기사 마감 전 폭탄 발표가 그 좋은 사례... 

 

"주체가 먼저 나오느냐 아니면 객체가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자동사를 쓰느냐 타동사를 쓰느냐에 따라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파울러 1997)

 

#3. Pierson C. Beyond the welfare state: the new political economy of welfare. Penn State Univ Press. 3rd e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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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반이나 넘게 읽고 나서야 이 피어슨이 그 피어슨 (Paul Pierson) 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네ㅋㅋ

둘이 형제인가 찾아보니 그런 이야기는 없고, 얼굴도 하나도 안 닮았음... 

 

#4. 신광영 등. 대한민국 복지 - 7가지 거짓과 진실

 

 

대한민국복지 - 7가지 거짓과 진실
대한민국복지 - 7가지 거짓과 진실
김연명 외
두리미디어, 2011

 

지난 주 불평등 연구회 세미나 갔다가 신광영 샘이 주셨음...

일반 시민 대상으로 아주아주 쉽게 쓰셨다고 거듭해서 강조하셨음 ㅋㅋ  일단, 큰 맥락은 비슷하지만 저자들마다 강조하는 점이 약간씩 다르고, 또 원고가 아니라 강연녹취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서 상당히 최근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포함하여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히는 건 사실... 그렇다고 내용이 깊이없는 것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강추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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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보존용 메모: 영화와 공연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어... ㅡ.ㅡ

가끔씩 시간이 미스터리 우주 속으로 송두리째 사라지는 경험들...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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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의 흔들리는 눈빛으로 기억에 남을 영화.... 그 깊이란.........

 

글고, 온라인에 떠도는 줄거리 요약 중에 가장 웃긴 건, 

고블린 (스파이더맨에 등장했던 악당)이 골룸을 데려다 키웠는데 말포이가 괴롭힌 이야기 ㅋㅋㅋ

말포이... 너 어쩌려구 이런 역할을....

 

 

#. 북촌방향 (홍상수 감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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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보던 날, 약속을 착각해서 북촌과 광화문 일대를 떠돌며 뻘짓했던 생각하면 한심해서 한숨이 절로 ㅜ.ㅜ

영화는 예의, 그 딱히 석연치 않은 낄낄거림으로 시작해서 낄낄거림으로 끝남....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했고, 감독의 무심한 듯 매같은 눈길도 서늘...

유준상이 마성의 매력남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네 ㅋㅋ 

김상중의 진지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자동 재생 ㅋㅋ

그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고현정의 아우라.... 와우....

그런데, 이 감독이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전히 그닥 맘에 들지는 않음. 술집주인이건, 영화배우건, 심지어 대학교수건.... 전부 맹~한 존재들....   또 남성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조롱도, 스스로를 조롱할 여유를 가진 자의 위악으로 보이는 건 나의 오해일까?

 

 

#. 이자람 판소리 갈라쇼 (올림픽공원 수변 공연장,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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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이구 대견해라....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공연... ㅋㅋ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의 주요 대목들과 사천가 일부를 들려주었는데, 완전 감동....

세상에 내가 심청가 듣다가 정말 코끝이 찡해질 줄이야.... 

옛 사람들은 정말 어땠을까 싶더라....

 

사천가 공연도 꼭 보러갔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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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의 공연

독특한 무대셋팅과 구성...

사진의 그물잔상은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의 장치... ㅋㅋ

 

진정 음악'만' 있는 공연....

즐겁다, 혹은 행복하다, 멋지다 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준 순간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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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라
 

그들의 blues (feat.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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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도의 책들...

끓고 있지는 않으나,

이제 막 끓어오르려는.... 엄청난 갈등을 조용한 표면에 감추고 있는 글들....

 

표면의 평온, 그리고 극심한 갈등과 떨림.... 세심한 표현들.....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1.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주기율표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07

 

이 책은 꽤나 오래전에 사두었는데, 영 진도가 나지 않았었다.

뭔 말이래?.... 이 장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쓴거래........???

그래서 결국 책장을 덮어두었었는데.....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까지 읽고 나서 다시 펴든 이 책은 정말 어찌할바 모를 만큼 좋았다.... 

윤동주 시인이 별 하나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 등등을 담았다면,

프리모 레비는 원소기호 하나하나에 자신의 삶과 사랑과 고통, 그리고 관조와 지혜를 담아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어쩌면 그렇게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을까???

바나듐 장에서, 뮐러 박사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나도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그는 더했으리라.....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프리모 레비의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하는 것만 같고 (무슨 자뻑이람 ㅜ.ㅜ)

거기 (?) 에 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뭘 어쩌려구..........

내년까지 지구가 안 망하면 꼭 가봐야겠다.

내 눈으로, 그가 본 것을 보아야겠다....

 

#2. 창비세계문학 - 일본편, 중국편

 

이상한 소리 - 일본
이상한 소리 - 일본
나쓰메 소세키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스져춘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완전 흥미진진....

전근대에서 근대로, 다시 아슬아슬하게 현대로 넘어오는 그 파란만장했던 시기의 대표적 중단편들이 선별되어 있음.... 

물론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이 있을테고, 여기 실린 글들만으로 당대의 사조가 어떻다고 평하는 건 참으로 무식하고도 용감한 일이겠으나

이 시기 일본의 단편들에서 한국 근대 단편소설들의 아우라를 강하게 느꼈다면 나의 편견일까나???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룸펜 인텔리겐챠가 등장하거나 자의식 과잉의 혐의가 짙은 (이제 막 발견하던 시기겠지만) 글들일수록 묘한 기시감이.....

그리고 여기 실린 중국 소설들에서는 예전에 '미국편'과 마찬가지로 신선함과 역동성을 발견....

노신 선생의 아큐정전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은 건데.... 대학생 시절 읽었을 때보다 훨씬 슬픈, 아니 그보다는 좀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읽었고 (상황에 대한 몰입이 더 심화되어서?) 계급/젠더 문제를 '은근히' 형상화한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그들의 시대를 앞선 통찰력과 매서운 눈매에 감탄....

 

어찌나 서양 위주의 공부를 했는지, 이들이 중국과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라는데 노신과 나쯔메 소세끼 빼면 단 한명도 이름을 모르겠어... 심지어 외워지지도 않음... ㅜ.ㅜ

 

생각같아서는, 창비나 역자들한테 편지 보내서 책좀 더 추천해달라 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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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서경식 선생의 또다른 책이다.

도서관에 신간구매로 신청하면 책 반입시 우선 예약자로 등록된다. 그리하야 '새책'을 읽는 영광을 누렸다. 지난 번 [사치열병[도 마찬가지 ㅋㅋ  

 

요즘에 주로 생활사보다는 책이나 영화 감상글을 남겨두는 편인데,

한편으로는 평소에 하고픈 이야기들을 여한 없이 하기 때문에 딱히 블로그에까지 남길 글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말과 글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세상에 뭐 굳이 ㅋㅋ

은인자중, 암중모색이 필요한 시기..... 라고 하면 좀 오바질이지만 뭐 그렇다.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돌베개, 2011

 

이 책은 선생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만큼 예민하고 까칠한 글들...

만일 그의 글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이리라....

또 재일조선인, 민족, 국가, 화해 이야기냐?

그래도 우리 (?) 편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한테 너무 가혹하게 비판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글쓴이가 서문에서 밝혔듯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나는 곧 만 60세를 맞이한다. 이전에는 60세가 되어서도 살아있는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심지어 60세가 되어서도 이 책에서 하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젊었을 때 나는 그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머지않아 내 발언 따위는 쓸모 없어질 거라고 막연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그래도 그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 문제... 

저자의 말대로 "구일본군 병사도 천황 히로이토도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릴 적에 임철우의 단편 [붉은 방]을 읽고 다소 충격받았었다.

고문형사의 그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에...  세상에, 그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화끈한 한화그룹 회장이나, 위장전입을 일삼는 고위공직자 나으리들도 다 알고 보면 자식사랑이 극진할 뿐인, 그저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ㅡ.ㅡ

 

이 두 가지,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알고보면 좋은" 사람들, 특히나  '나름' 진보적인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이 기묘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제하는 현실 속에서 글쓴이는 자꾸만, 듣기싫어해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죄는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책임은 집단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논거로부터 선생은 일본'국민' 일반의 소극적인 전쟁책임 회피, 혹은 쿨하게 전향적으로 털어버리고 싶은데 피해자들의 지나친 (!) 민족주의적 반일정서 때문에 문제 해결이 지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또한 "설령 피해자에게 가해성이 침투해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운용한 자들의 가해책임을 상대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면서 프리모 레비의 깊이 있는 성찰을 언급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전후세대이자 소위 국제주의자로서 (이런 말을 막 쓰다니 낯부끄러워라 ㅡ.ㅡ) '민족' '민족주의'라고 하면 일단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이지만, 냉철한 민족주의/국가주의 비판과 동반된 선생의 민족적 지향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그것이 꼭 한/일 관계 문제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 내에서 훨씬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옮긴이는 서경식 교수를 통해서 널리 회자된 '디아스포라' 라는 용어가, 그 고민의 내용은 거세된 채, 해방의 '이미지'로서 낭만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나 또한 '나라없는 사람'을 꿈꾸며 아인쉬타인의 (내가 이해도 못할) 상대성이론보다는 그의 자발적인 국적포기를 더욱 높이 사는 형편이지만, 그것이 외부의 강제, 역사라는 개인이 감당못한 소용돌이에 의해 강제되었을 때 감내해야 하는 신산한 삶에 대해서는 너무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크게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지만, [난민과 국민사이]도 읽어봐야겠다...

 

* 뱀발1.

주말에 섬활에 다녀오면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읽는 중에,

문득... 음... 아우슈비츠에 직접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장 아메리도 있었고, 프리모 레비도 있었지 않나.....

참, 프리모레비에 관한 다큐영화도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

 

* 뱀발2.

서경식 선생한테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당신의 책에 무척 공감했다.. 이런 낯간지러운 글 ㅋㅋ

그리고 일본인의 집단적 심리에 대한 질문도 겸사겸사.... 

이건 딱히 '일본인'이라는 특정 '국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의 집단적 행태/관계에 대한 궁금증.. ...

한국말도 이제 잘 하시는 것 같던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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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열병

예전에 프레시안에 실린 서평을 읽으니 재밌을 것 같았는데,

그냥 서평만 읽어도 될 뻔했쓰... ㅡ.ㅡ

 

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로버트 H. 프랭크
미지북스, 2011

 

거의 470페이지에 걸쳐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여한없이 다 풀어놓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요약하자면

 

첫째, 부자들의 사치재 소비가 단순히 주체할수 없이 돈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돈자랑질에 불과하다면 문제가 없을텐데, 이는 결국 전체사회의 소비기준을 '쓸데없이' 상향이동시키고 그럼으로써 인간복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 특히 공공서비스/프로그램들이 '돈이 없어' 축소되는 우스꽝스런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

 

둘째, 안타깝게도 비싼 물건 산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으며, 아주 작은 능력의 차이나 우연에 의한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의 차이를 가져오는 승자독식 사회는 이러한 사치열병의 근원이자 또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는 것

 

셋째,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각자 현명한 선택을 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의 기본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또한 개인의 현명한 선택 (사치재를 선택함으로써 남보다 두드러지고, 그로 인해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현명한 설택일 수도 있으니까) 이 반드시 사회전체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미치는 것은 아님. 그렇기에 이 사치열병을 고치려면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 수단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세금...

 

넷째.... 그리하여 그 답은 누진소비세...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세금을... 그것도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총소득에서 저축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세금을 매기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10억원 벌어서 사치하느라 8억원 쓴 사람과 저축하며 검소하게 생활하느라 2억원밖에 안 쓴 사람이 있다면 전자에게 엄청난 세금 부담이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는....

 

근데...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본성에 반하는 강제적 규제나 압력이 아니라, 선순환할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선택과 개인의 이득을 통일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건데...  

이러한 논리 자체는 무척 공감하나 그렇다고 누진소비세로 몰빵하는게 정말 더 나은 것인지는 도대체 모르겠음. 저자는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영 납득이 안 됨.... ㅡ.ㅡ

 

사람들이 상대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여 돈을 더 벌기보다, 가족/공동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이자는 주장에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과연 한국이나 미국의 그 많은 중하위계급 노동자들이 수천불짜리 바베큐 그릴이나 뽀대나는 신형차를 사려고 그리 일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되지 않음.

 

또한 환경세라는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자발적으로 기업들이 환경보호에 나서도록 만든 것을 좋은 사례로 언급하며 "중요한 것은 공해의 총량이지 누가 오염물질을 쏟아내느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효용극대화라는 경제학의 특성에 비추어 매우 합당하나, 가치지향의 보건학 전공자 입장에서는 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그리고, 결국 저축을 빼고 총소비에 과세하는 것은, 저자의 다른 표현으로  '저축을 면세하는' 것인데, 중하위계층 미국인 가구의 실질 저축률이 제로인 것을 생각하면, 이걸 보고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혈압을 상승시키는 처사....  특히나 미국사회에서 저축이라는 게 한국같은 정기적금이 아니라 대개 뮤추얼 펀드를 비롯하여 금융 '투자'의 개념이 강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축할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 다시 면세의 혜택이 과도하게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게 됨. 물론, 저소득가구야 소비를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되니까 누진소비세의 절대 규모가 작겠지만, 이게 과연 효율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공정한 조처인가에 대해서는 실증자료와 함께 더욱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임...

 

저자는 승자독식사회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극단적 소비자본주의로의 이행과 노동시장/세계경제의 양극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으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책없이 고수하는 시장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좌파는 규제를 선호한다고 비판한다. 도대체 미국 현실정치에 좌파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좌파가 독점권력을 탓하는 많은 병폐들은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미숙련 노동자를 주로 고용하는 노동시장의 문제로 보인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시장권력을 가진 고용주들이 그들을 착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필사적으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양반은 '착취'를 악덕 자본가들의 행태를 지칭하는 도덕적 비판의 언어로 이해하고 있게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이 필사적으로 돈을 더 안 벌면 그렇게 아둥바둥 안해도 되는데.... 이런 거였어????

 

합리적인 리버럴이자 실용적 경제학자로서 미국사회에 던지는 제안의 진의는 참 아름다우나,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ㅡ.ㅡ

 

* 사족이지만, luxury good 을 사치품/사치재가 아니라 '명품'이라고 표현하는 괴이한 한국어 용법에 분통이 터지는데, 이 책은 '사치'라로 번역해주셔서 감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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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inine mistake?

"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는 전업주부 열풍을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와, 경제적 자립을 포기하는 위험성에 대해 침묵하는 언론과 일부 사회평론가들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다"는 저자의 머리말이 사실, 이 책의 모든 것을 웅변한다고 할 수 있다.

베타 프리단의 <The feminine mystique 여성의 신비>를 읽고 자란 중산층 엘리트 페미니스트인 저자에게 작금 미국의 상황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실제로, 저자가 들고 있는 사례나 주장하는 바를 듣고 있으면, 이 책이 60-70년대에 쓰인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여자도 바깥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하고 있어야 하다니... ㅜ.ㅜ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 비즈니스 정글보다 더 위험한 스위트홈에 대하여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 비즈니스 정글보다 더 위험한 스위트홈에 대하여
레슬리 베네츠
웅진윙스, 2011

 

저자도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아직 젊은) 중산층 엘리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다.  대부분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노동시장을 떠나 돌아갈 스위트 홈이란 있지도 않거니와, 노동시장이란 것이 자아성취나 안정적 기반마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 노동시장과 가정은 선택가능한 참/거짓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꼭 하층계급이 아니더라도,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고용질과 노동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한국사회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나의 여자 친구들마저 (자신들은 죽지 못해 일하는데)  "자아성취한다며 일하는 여자들이 제일 어이없다"고 울부짖는 마당이니 말이다... ㅡ.ㅡ  전업주부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전업주부는 뭐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만 하나???) 이야기가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이 책은 미국중산층 엘리트 여성들의 전업주부 열풍을 심도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못한다?). 다만, (후배) 여성들이 막연한 스위트홈에 대한 환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안타까운 일인지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그러지 말라고 조언한다. 남편만 의지하고 살다가 이혼이나 사별한 뒤 다시 노동시장에 돌아가는 것이 (심지어 전문직/관리직에서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사회보장은 얼마나 취약한지, 자녀와 남편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기껏해야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말이다....

학식 높은 주부들이 정성껏 가꾸어놓은 스위트 홈이란 게  보기만큼 스위트하지도 않거니와, 자본주의 정글에서 경제적 자립없는 개인의 삶이란 너무도 위험하고 취약하다는 것이다. 육아/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지만, 그래도 그 시기는 길어야 10년이니 어떻게든 버텨보라는 건데, 글쎄,어떻게???? ㅡ.ㅡ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궁금증'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 속에서 직장에 다니는데도, 그녀들은 왜 일을 포기하는 걸까요"와 비슷한 궁금증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알바 마감에 쫓겨서 길게 쓸 수는 없다만,

전업주부 찬양열풍과 회귀현상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중국이 최근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그 이면에는 전업주부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계층의) 소득수준의 상승 (즉, 소득 양극화)과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시장적 교육체계와 강고한 학벌주의가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즉, 일단 두 사람이 벌지 않아도 될만큼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물적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시장에 내맡겨진 교육체계에서 '자녀관리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전업주부(와 그 가족들)에게는 노동시장 직접 참여보다 자녀에 대한 투자가 가져오는 편익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한국의 공통점이라면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구조와 자녀 혼자 헤쳐나갈 수 없는 복잡한 교육시장에서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오늘을 일단 여기까지......

책 반납기한이 닥쳐서 일단 체크만 해놓구, 조만간 몇 가지 고민의 지점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요즘은 알바 때문에 완전히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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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반영하는 책들

#1.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푸른숲, 2010

 

많이 팔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서평등으로 상당히 많이 알려진 책이다.

도서관에도 입고 이래 항상 대출 중이라 이제서야 빌릴 수 있게 된 만큼 아주 인기가 없지는 않은 듯...

짧은 소개글들로 미루어, 이 책이 [88만원 세대]보다 한층 진전된 논의를 담은 세대론이라고 짐작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부제대로 "20대와 함께 쓴", 즉 20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20대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면서 저자도, 20대들도, 또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성장한, 그런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려운 일거리는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세상의 개망나니, 정치적 무뇌아들로 싸잡아 비난하던 시대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양,  이제는 주류건 비주류건 청춘이란 아파야 제맛이라며 그들의 성장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이야기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ㅡ.ㅡ  갑자기 오늘날 가장 연민해야 할 대상이 마치 20대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런가???

 

그 와중에 엄기호 선생의 글은, 누구의 인식론적 특권도 내세우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또 '싸잡아묶지' 않으면서 이해를 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특별해보인다.

 

" '요즘 학생들은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말로 누가 누구의 삶을 무례하게도 삭제하는가...."

" 이렇게 부모의 철저한 관리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성장이 지체 '당할'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러게나 말이다. 30대, 40대, 50대, 60대, 그 어느 세대도 단일한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없는데 비해, 왜 20대들은 한꺼번에 철없는 대학생, 아니면 정반대로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하는 불쌍한 세대로 한꺼번에 뭉뚱그려져야 하는가? 멋있는 '탈주'를 감행할 수 있는  바깥이 있는 20대도 있고, 착취당할 권리마저 빼앗긴 20대도 있는데 말이다....  고려대의 김예슬씨처럼 희망없는 학교를 떠나는 이들도 있고, 중앙대의 노영수 씨처럼 학교에 남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학교폭력을 다룬 장에서, '학교 폭력이 우정에 대한 도덕적 폭력이 아니라 경제/문화/육체 자본의 삼단합체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적 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생들과의 논의를 진척시켜가면서, 학생들이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낙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그것이 대안적 교육이든, 민주주의적 교육이든,  교육 자체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야 할 것, 혹은 인간이 인간과 소통하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라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공감할만하다.

 

저자가 학생들과 함께 한 '9학점같은 3학점 교양수업'에서 얻은 교훈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교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하여 그 언어가 도달하는 곳까지 그들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생들의 사유방식이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하고 인권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을 사유하는 방식을 드러내주고 그런 사유방식의 종착지를 같이 유추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학생이 말한다. "인간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군요!"

" 나는 이것이 수업이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됨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 이보다 더 인문학적인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맞지 않으며,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발견 (깨달음)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찰의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이라고 믿는다."

이건, 제도권이든 비제도권이든,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리라....

 

#2. 허먼 멜빌 등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 바틀비 - 미국
필경사 바틀비 - 미국
허먼 멜빌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 시리즈 중 미국 편...

미국 근현대 단편문학의 '엑기스'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결같이, 형식면에서 독창적이고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 면에서 이렇게 선진적일 수가 없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한편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 실험'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미 읽어본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아닌 것들이 다수인데...  읽고 있으면 당대의 생활상, 사회상, 그리고 사람들의 고민들, 앞으로 다가올 (다가왔을)  시대의 모습들이 머리속에 와글와글....

 

1. 너새니얼 호손 - 젊은 굿맨 브라운

2. 애드거 앨런 포우 - 검은 고양이

3. 허먼 멜빌 - 필경사 바틀비

4. 마크 트웨인 -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5. 헨리 제임스 - 진품

6. 샬롯 퍼킨스 길먼 - 누런 벽지

7. 찰스 W. 체스넛 - 그랜디썬의 위장

8. 스티븐 크레인 - 소형 보트

9. 셔우드 앤더슨 - 달걀

10. F. 스콜 피츠제럴드 - 겨울 꿈

 

어느 하나 빠지지가 않아!!!!!

이 시리즈의 다른 나라 편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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