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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에 대한 책 두 권

도서관 반납의 압박...ㅡ.ㅡ

 

#. 피터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책세상, 2012

 

*

지식사회학, 종교사회학 분야의 '거장'이라는 노학자 피터 버거가 자신의 학적 생애사를 돌아본 책

'내용' 자체가 부담없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이야기, 심각한 이야기들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다루고 있어서 

왠지 부담없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음 ㅋㅋ

이를테면 뭣도 모르고 돈이 없어서 일단 야간학부에 등록했는데 거기가 바로 뉴스쿨... ㅋㅋ

"배우고 싶어하지 않으면 최소한 재미있게라도 해주자" 이런 금언....

 

*

근데 책 자체가 특정한 내용보다는 자신의 학적 궤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을 재미있게 쓴 것과는 별도로 저자의 삶 혹은 학문적 태도에 대해서 삐딱하게 이야기를 할 수밖에...

 

보다 정교한 방법으로, 보다 사소한 문제를 연구하는 오늘날의 사회학 풍토가 못마땅한 것은 물론 익히 공감...

이건 예전에 알랭 드 보통이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라고 지적한 것이기도 함

또한 베버의 '가치중립'을 삶의 지표로 삼아 '강단 예언자'로서의 길은 거부하고 이데올로기의 풍랑에 초연하려고 했던 것 또한 충분히 존중받을 일이라 생각...  연구 안하는 정치낭인 성향의 학자들이 많은 한국상황 보면 특히나 그렇기도.... 

 

*

그런데, 과연 사회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치중립'적 학문일 수 있는지는 도대체가 미지수...

페미니즘과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름',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한 가히 "진절머리" 수준에 가까운 혐오, 순수하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자문,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담배회사에 대한 자문, 극우 꼴보수는 아니지만 내내 공화당 지지.... 이런 모습 등은 당최 미스테리.... ㅡ.ㅡ

 

저자는 물론 이렇게 이야기했음.

"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적당하다"  

"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이다."

그는 '가치중립적 과학'은 가능하지만 '가치중립적' 과학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이중시민권" 개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게.... 참 훌륭한 말씀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왜.............?? 

 

68세대가 사회의 주도적 위치에 오르면서, "사회학 대부분의 영역에서 '계급, 인종, 젠더'라는 표어가 위세를 떨치게 됐다. 좌익 자유주의가 많은 분야에 퍼지면서 억압적인 정설로 굳어갔던 것이다"는 발언이나, 젠더감수성에 대한 하버드 여학생들이 문제제기를 거의 생떼 수준으로 묘사한 것들을 보면 그냥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 같아... ㅜ.ㅜ

마찬가지로, 종교사회학자이면서 어떻게 기독교신자로 계속 남아 있는지도 의문....

'의심에 대한 옹호'라는 책까지 쓰신 분께서 말이지......

이 경우야말로 베버적인 학문적 가치중립과 생활의 도덕적 판단이 이상적으로 분리된 거임???

 

뭔가 찜찜학 속에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읽다가 덮어두었던 라이트 밀즈의 <Sociological Imagination>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 계승범 지음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11

 

*

최근 몇 년동안 미시사, 생활사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지면서 풍속이나 문화에 대한 역사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편이다. 그런데, 내심 나는 그런 책들이 불편했다. 예전에도 짧게 포스팅했던 적이 있는데, 

양반의 풍류나 안빈낙도는 도대체 무엇에 기반하고 있냔 말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비 계층은 당대의 지배계급, 즉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인 지주였잖아... ㅡ.ㅡ

지식과 정치적 권력과 심지어 경제적 자본까지 삼위일체로 가진 계급이 다른 노예제/봉건제사회에도 있었나??

 

*

이 책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궁금해하던 것들을 말해주고 있음 ㅋㅋ

오늘날의 잣대가 아니라 당대의 지배적 규범인 유학 그 자체에 비춰 보았을 때에도 선비라는 엘리트 계급의 행태가 터무니없고 퇴행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함. 그리고 오늘날 선비 개개인의 일면 - 특히 예술활동이나 개인의 인성과 관련된 - 에만 집중하면서 이를 미화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엄청 비판....

이 책의 주장들이 주류 학계 내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 속은 시원했음........  

 

*

몇 가지 논점들을 정리해보자면

  • 선비는 지주계급, 청렴결백과 안빈낙도 개뿔...
  • 조선후기 산림정치의 본질은 권리와 권력은 누리면서 정작 의무와 책임은 회피하는 훌륭한 안전망
  • 국왕을 우습게 여긴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사대적이고 모화적 문명관 때문 (조선 국왕은 암 것도 아님. 진짜 우리 보스는 명나라에 계심 ...이런 마인드 ㅜ.ㅜ)
  • ''치국'의 근거로서 유교이론은 3천년 역사상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된 바 없음 ㅡ.ㅡ
  •  서얼, 노비, 여성 등에 대한 극단적 차별은 유교의 본질에도 어긋남. 그들은 다만 나라야 망하던 말던 특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음. 
  • 그래서 결국 나라 말아먹음 ㅜ.ㅜ 한번도 스스로의 세금을 늘이거나 군역을 지겠다는 결정을 내린 적 없음. 상공업 도입하려면 오히려 난리치고.... 노비 늘이려고 법 바꾸고, 노비와 상민 결혼시키고.... 
  • 요약하자면, 무능하고 욕심많은 그냥 지배계급...  고상한 정신과 학문적 성취는 사기캐릭.... (예전에 다른 책에서 서구의 시민혁명 당시, 사람들이 왕이 아니라 먼저 성당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임진왜란 초기에 평민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고 양반집을 공격했다는 이야기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됨...)
  •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에 실패한 것은 유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하려 노력하다가 시세를 잘못 만나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자기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일에 몰두했기에 실패했다"는 지적이야말로 '지배엘리트'로서 선비계급에 대한 가장 신랄한 평가라 할 수 있을 듯....  

근데, 안타까운 것은 근대의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이러한 과거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어려웠다는 점..

이러한 퇴행적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근대화하자고 하면 그게 곧 '친일'이 되는 상황이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이 그러한 질서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정작 '치국'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지배엘리트 들이 몇 번의 의병투쟁을 통해서 (근데, 또 이들 위정척사파 중 상당수는 조선이 아니라 중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음 ㅜ.ㅜ) 애국자로 평가받는 아이러니....

 

*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 특히 유교자본주의와 유교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엄청 비판적 의견을 제기함

근면성실과 높은 교육열은 다른 사회 (이를테면 유대민족)에서도 관찰되고, 가족중심성은 이슬탐 사회가 오히려 특징적이며 다른 안전망 없는 상태에서 부득이한 선택일수밖에... 무엇보다 유교의 본래 가치는 상업적 행위나 이윤추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음...

또한 군주권에 제약을 가하는 대간제도라는 것도 조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왕을 겁박하고 휘두른 것의 상당 부분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중국의 천자'가 아닌 그 하수인에 불과한 '조선의 국왕'이 우습게 보여서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  또한 유사이래 어떤 정치제도도 민중을 위한다고 하지 않는 것은 없었으며, 향약은 지역사회 자치라기보다 엘리트들의 촘촘한 연결망이자 지배망...

오히려 선비들은 소통에는 잼병이었음... ㅡ.ㅡ

 

*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몇몇 측면을 들어 선비를 찬양하는 최근의 트렌드는 저자의 큰 우환... 

 "이제 그만 선비를 역사로 놓아주자" 는 이야기에 나도 완전 동의.....

 

그리고 이건 그냥 막 던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한국사회에서 국민의 정부 이후 수많은 교수들이 정치로 빨려들어가는 현상도 이런 선비계급문화의 유구한 전통과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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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책 정리...

정리하려고 쌓아둔 책들이 쓰러지기 일보직전....

 

#. 한병철 지음. <피로사회>

 

피로사회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첫 문장을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다.

오늘, 이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란 과거와 달리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질병이며, 

그래서 '피로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겠다.

외부 혹은 타자에 대한 면역반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적 동력에서 비롯된 과잉... 그래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

21세기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주민들은 복종주체가 아닌 (규율단계를 졸업한) 성과주체가 되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과 낙오자를 낳는다.

이런 사회에서 지배기구가 소멸된다 해도 자유는 도래하지 않는다. 자유와 강제가 이미 일치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일명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

과다한 노동의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고, 하지만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즉,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라는 것이다.

 

*

한편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이는 '멀티태스킹'을 낳았다. 심심함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는데, 이 때 분노란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

학문분야들마다 사용하는 렌즈가 다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만,

소위 '피로사회'라고 명명될 만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의 풍경은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런 피로사회가 만들어졌는가, 누가 이를 구축하고, 누가 이로부터 이득과 피해를 경험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시선은 원천 차단... ㅡ.ㅡ

자발적 과잉이 없지는 않겠으나, 과연 오늘날 사람들이 미친듯이 일해대는 것을 자기착취로 명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이를테면 부록 '우울사회'에서 소진 (burnout)을 자발적인 자기착취의 병리학적 결과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일세....

어느날 "짠 "하고 성과사회가 출현하고, 개인들은 갑자기 정신줄 놓고 몰두하다가 탈진해버리는 건 아니잖여... 

역사와 정치경제적 맥락을 탈각한 이런 서술 방식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음.

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무래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일단 얇고, 

그리고 또다른 방식의 힐링과 마음의 자각을 주기 때문 아닐까 싶음... 네가 피곤한 건 이래서야..... ㅡ.ㅡ

 

 

#.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꾸리에, 2012

 

*

역시 철학자가 쓴 책인데, 이 쪽은 훨씬 이해가 잘 되었음.

정서적 거리가 가까워서인가 ㅋㅋ

책을 빌려주신 CY 샘은 좀더 추상수준이 높은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구체적 디테일에 천착하는게 오히려 아쉬웠다고 평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예상보다는 철학적 논의가 풍부했음

철학자가 본 자본주의의 전복 가능성 - 총들고 싸우는 혁명 말고 - 을 오늘날 현실의 법과 제도, 그 균열과 모순 사이에서 찾아본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

공화국도 뛰어넘어 기업국가, 기업사회가 된 마당에서

새로운 변화는 잉여가치를 노동자가 관리하자는 것, 즉 경영권을 노동자가 갖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반드시 자유가 소유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며, 기업의 소유 (소위 주주)와 경영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소유주와 노동자는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도 있다...  '경영권'이라는 것이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자격 (공식 직책으로나 주식소유로 보나)도 없는 총수들이 전횡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보자는 것이다.  

 

일단은 자본주의 기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로부터 논의를 시작했지만, 노동자 경영제도는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 당장 도입될 수도 있고, 또 이는 단순히 최고경영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작업장 통제권과 노동자 자치를 포함하는 일련의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의 현장에서 자치를 확보하고, 생산과 초과이윤 분배 (재분배가 아니라!)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 혹은 심도깊은 사회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문제의식에 대한 샘의 의견이었다.

고르는 노동자 자주기업 또한 자본가 권력을 다른 얼굴로 대체한 것일뿐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말...

또한 초과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비영리 기업, 혹은 협동조합 같은 경우 노동자 경영권은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사실 연구소 월례 세미나 때 김상봉 샘을 초청했고, 직접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다들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도대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ㅜ.ㅜ

 

*

말이 나온김에... 월례세미나 분위기는 아주 따뜻하고 유쾌했다. 개그 욕심이 상당하셨는데, 참가자들이 또 그걸 엄청 좋아함 ㅋㅋ 참석자들과 강연자 사이에 묘한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뒤풀이마저 아주아주 뜨거웠더랬다.  

두세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주류 철학계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씨알사상이나 자본주의 문제 탐구를 해서 힘들지 않으시냐는 진지한 질문에 "뭐가 힘드냐, 프론티어라고 생각한다"는 근자감 폭발 답변ㅋㅋㅋ  그 뒤로 세미나 참가자들은 "우리 프론티어 김 선생님" 이라는 애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끝나고 정류장으로 가면서 당원이라고 수줍게 (?) 고백하고 진보신당이 과연 어찌 될까 여쭤봤다. (점쟁이 만난게냐.. ㅡ.ㅡ). 샘은 서두르면 또 망한다고, 한 3년을 두고 천천히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근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ㅡ.ㅡ

 

#. 단비뉴스 취재팀 <벼랑에 선 사람들>  

 

 

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제정임.단비뉴스취재팀
오월의봄, 2012

 

*

이런 '류'의 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또 여기에 담긴 삶들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이런 종류의 탐사취재를 하고 책을 엮어 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의를!!!

"요즘 애들"이라고 싸잡아서 비난을 퍼붓거나 혹은 치유와 힐링의 대상으로서만 청년세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있음.

이들은 날카로운 눈과 용기를 가졌고, 공감과 성찰 능력이 있으며

생각보다 멀쩡함 ㅋㅋ

이런 잠재력들을 키워주고 엮어주는 것들이 기성세대와 교육자의 중요한 역할.... 

 

*

벼랑에 선 사람들의 현실은 그저 막막...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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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들...

어쩌다보니 근 두 달 만의 불질이로세.... ㅡ.ㅡ

 

정신못차리게 바쁘기도 했거니와, 어른패드가 생기는 바람에 퇴근 후에는 그걸로 간단한 일처리를 하면서 컴을 켜는 일이 많이 줄어서인듯... 

어른패드에서도 불질 할 수는 있는데, 그건 또 웬지 안 어울린다는, 사실 딱히 근거도 없는 생각... 

 

그동안 본 영화들, 공연들....

 

#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KT&G 상상아트홀)

 

포스터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은 공연이라는데, 나는 딱히 위로받을만한 상처가 없어서인지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냥 좀 귀엽다는 느낌? ㅋㅋ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아기자기하고 사려깊으면서 소심한 소녀풍의 이미지랄까....

어쿠스틱 감성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사실 김광석의 음악이 대표적 어쿠스틱 정서라고 할텐데, 그의 음악이 숲속의 자작나무 같다면 이들의 음악은 파스텔 색조로 튀지 않게 단장한 친환경 가구 같은 느낌이랄까??? (뭔 말이여???)

어쩌면 이건 인생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 <다크나이트 라이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아이맥스로 보려고 개봉 한참 후에는 겨우 보게되었음.

연작 세 편 중 최상은 역시 두 번째 <다크나이트>. 하지만 완결작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엔딩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이별이라니 뭉클한 감정도 ㅋㅋ (심지어 마지막에 로빈이 등장할 수 있는 여지마저 남겨놓고 손을 털어버린 놀란 감독, 참 대단한 양반!!!)

 

신파적 서사와 반민중적 혁명론이 맘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더이상 영웅이 필요없는 고담시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임. 배트맨이 혼자 고고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경찰들과 함께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은 한편으로 탈영웅주의이되, 또다른 한편으로 민중 스스로가 아닌 공권력인 경찰에게 그 힘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체제순응적이기도 함.

 

그리고 무엇보다 예상못했던 것은 베인이 이 시대의 순정마초였다는 점!!!

그 눈물 한 방울... 흑!!!

미란다를 보면서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이 혹시 '여자는 진정 요물'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음. 심지어 주먹도끼는 미란다가 부자된게 베인이 용병으로 벌어온 돈 덕분이라면서, 베인 불쌍하다고 장탄식을 늘어놓음 ... ㅡ.ㅡ

해리포터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와 베인 중 누가 더 진정한 순정마초인지 자웅을 겨뤄볼만 함..

 

크리스천 베일, 고담시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고, 이제 우주만 구하면 될 차례!!!

킬리언 머피, 기어이 세 편의 영화에 다 출연하다니, 반가우면서도 짠한 마음...  이제 좀 큰 역할로 돌아와줘....

 

# <프레스티지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

 

프레스티지

 

다크나이트 기다리면서 쿡으로 찾아본 영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이건 호러...

갈 데까지 가보는 인간의 집착과 광기라니...

크리스천 베일, 휴잭맨 완전 후덜덜....

왜 이영화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을까나... 

너무 다크하기 때문일까?

 

#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11년)

 

멜랑콜리아

 

만일, 이렇게 압도적이고 숨막힐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면 나도 저스틴 (커스틴 던스트)처럼 지구의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임.

지독하게 우울하고, 어둡고, 하지만 웅장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지경..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네...

여태까지 본 최고의 종말 서사..... 

아, 그 푸른 멜랑콜리아를 잊을 수 없어...

 

#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

 

의외로 재미있게 본 영화..

두 찌질한 남자를 거둬들이는 여자 어른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우쭈쭈쭈ㅋㅋ

사실 극 중 임수정이 비호감으로 여겨지는 게 독설과 수다 때문인데, 가만 들어보면 이야기하는 내용들 중 하나도 틀린 게 없음. 속시원하다는 느낌....

잘생긴 꽃미남이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어쩌면 이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어른 여자용 판타지... 

<장화 홍련>, <행복>,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서 장기요양 전문배우로 활약했던 임수정의 변화된 모습에 깜놀함. 이선균은 멋지게 나왔다는 TV 드라마들을 내가 못봐서 그런지, 찌질 전문 배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ㅋㅋ 유승룡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카사노바 탄생 ㅋㅋ "이제 그만 뽀삐를 놓아주세요" 라는 임수정의 위로에 흐느끼는 카사노바에서 완전 빵 터짐.....

이들 배우와 감독의 다음 행보에 주목...

 

# 이자람의 <사천가> (화성아트홀.. 멀리까지... ㅡ.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우...............

이토록 심오하면서 재미난 공연이라니....

일행들 모두 깜놀하고 대만족....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상호작용하는 무대의 매력이란 이런 것.

판소리의 마력에 흠뻑 빠져보아요....

다음엔 수궁가나 심청가 공연을 꼭!꼭!꼭! 보자고 약속하며 공연장을 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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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폭력의 기록 두 편

그리고 있는 대상과 그리는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둘은 구조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또하나의문화, 2012

 

*  연구자 혹은 관찰자....

 

이 책은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구조적 질서와 폭력을 해석하는 모든 학문분야에 던져진 도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조은 선생은 빈곤에 대한 주류적 시각 - 소위 '빈곤의 문화' - 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빈곤의 문화'는 중산층, 혹은 전형적으로 중산층인 연구자들이 빈곤을 이해할 때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해석이자 결론이다.

 

"이 연구를 정리하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며,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 '가난함'의 경험은 그 가난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양식인 것이다."

" 이들의 가난은 세계화나 금융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자본주의적 재편 같은 구조적 요인과 동떨어진 듯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삶은 바로 그러한 구조적 요인의 직접적인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 내는 방식, 곧 삶의 양식이 빈곤문화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빈곤문화의 핵심에 그들의 성과 사랑과 결혼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 이들이 그나마 스스로 선택했고 또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중 매체가 대량으로 유포하는 로맨스 각본은 이들이 손쉽게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각본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적 문란'이나 가출, 이혼, 동거와 출산 등이 '가족의 위기'로 읽히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관찰자들, 혹은 연구자들은 같은 현상을 보면서, 다른 해석과 답을 찾아내곤 한다. 

이를테면 같은 시기에 사당동을 연구한 또다른 이들은 지역의 노동통계를 작성하면서 여성 취업률이 채 1/3도 안 된다고 파악했지만, 조은선생님 팀이 본 바로는 큰 병이 걸리지 않는 이상 집에서 '노는' 여자는 없었다.

 

그것이 비단 '가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두껍게' 읽어내는 방식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우리는 조은 선생님 같은 선배 연구자들이 20년 넘게 노력한 덕분에 빈곤의 문제를 조금 더 두껍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복잡한 문제의 뒤안을 살펴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떤 관찰자인 것일까.....

 

 

*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책을 읽으며 괴로웠던 것은 솔직하게도, 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한 통탄, 혹은 연구자로서의 반성이라기보다, 정말 습자지 한 장 밖에 차이나지 않는 그들과 나의 삶 - 너무도 위태로운 그 경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헐리우드재난 영화에서 한끝 차이로 목숨을 건진 인물들이 그 순간 마냥 기뻐하지조차 못하면서 일종의 멘붕 상태에 빠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주 작은 차이 -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 집에는 가정폭력이 없었다. 여태까지 이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폭력이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던 게다. (아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면 지금과 같은  resilience 를 갖지 못했을 것 같다 ㅡ.ㅡ) 그리고 나는 우연히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연히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대규모 재개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소소한 재개발이 있어서 계속 근처 동네를 떠돌며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사당동이나 상계동, 행당동 같은 폭력적 상황들은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었다.

 

부유한 가정, 혹은 중산층 가정이라면 이런 세 가지가 일상이고, 그닥 축복받은 우연도 아니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같이 있었던 것이 그야말로 우연이고 축복이었다.

취약성 (vulnerability) 이란 이런 것이다.

삶의 경계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와 우연에도 엄청난 변이가 일어나고 통상적이지 않은 파국으로 연결되는 것.....  '매일매일 드라마를 찍는다'고 표현할 만큼 우여곡절 많은 삶이란 바로 그러한 잠재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결과일 것이다.

"... '에이 쪼금만 들어갖고 되는 것이 아니여. 내가 살았던 것을 얘기할라고 하면은 한정 없어'라는 말로 경훈이 아빠 김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훈 아빠의 가족사와 생애사를 듣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때 김씨 나이 서른 넷이었다....."

나의 지나간 유년시절에 '찾아온' (내가 만든게 아니니까!) 이러한 소소한 우연과 축복이 일단 빈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하기엔 그 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 

 

 

*  국가의 폭력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가 폭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막무가내로 철거를 하고 사람들 3천명을 트럭으로 실어다가 막무가내로 사당동 산 자락 (수도, 전기, 집, 도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그냥 산자락)에 내려놓질 않나, 항의하는 사람들은 한강 모래사장에 풀어놓지 않나.. 이건 뭐...   이건 추상적인 '국가폭력'이라는 단어로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우격다짐이다.

백주대낮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수단이라도 세련되게 바뀌었길 기대하지만, 오늘 본 [두개의 문]은 그러한 기대마저도 헛된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 김일란 감독 [두개의 문]

 

두 개의 문

 

이렇게 차분한 내러티브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정말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충실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보고 나면 분노와 허탈과 한숨이..... ㅜ.ㅜ

 

어쩌다보니 나는 이명박 정권이 뭘 해도 놀랍지가 않다.

그들은 뭘 해도 정치적 타격을 받지 않는 놀라운 반사 신공, 혹은 투과 신공을 갖춘 것 같다.

용산 참사, 쌍용차 폭력, 사찰, 측근 비리...

하나하나 만으로도 정권퇴진에 이를만한 대박 사건들이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니들이 그러는게 놀랍지도 않다...

이 정권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관용과 체념의 수준을 극상으로 이끌어올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뭐라 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 욕하기도 지쳤다며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그 근성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찜찜한 것은

이렇게 기억투쟁에 동참하여 이사건을 잊지 않는 것, 그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도대체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봤으니 나도 개념있는 시민이야 하면서 트위터에 인증샷 올리면 되는 거여?

반드시 정권 교체한다는 각오로 대선에 올인해야 하는겨?

속이 터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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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들과 영화

이번 봄에는 유례없이 바쁘기도 하고 감기 때문에 나들이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막같이 황폐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 Nell 앨범 발매 공연 - 2012.04.14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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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음 ㅡ.ㅡ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얼굴 첨봤는데,

같이 간 도끼가 보컬 김종완의 얼굴이 개그맨 최효종 닮았다고 지적 ㅋㅋ

 

나의 음악취향을 두고 흔히 친구들은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의 음악만 듣는다고 하는데

막상 공연장에서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구!!!!

공연의 구성이나 연주나 보컬이나 아우..... 담에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절...

 

 

#2. 델리스파이스 2012.04.22 농협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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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 

아 공연 중 불안과 긴장을 초래하는 멘트 좀 안 하셨으면 ㅋㅋ

그냥 노래만 해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네...

 

넬의 공연과는 또 다르게... 뭔가 같이 늙어간다는 친숙한 느낌?

하지만 꽉 찬 연주와 힘없는 (?) 보컬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기묘한 조화와 박력은 역시!!!

 

아참, 게스트로 나온 옥상달빛의 4차원 만담과 아름다운 노래도 역시 일관된 부조화의 조화 ㅋㅋ

 

 

#3. 정재은 감독 [말하는 건축가] 2011

 

말하는 건축가

 

 

 

건축, 공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죽음이 예견된 자의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받는 감동은 슬픔도 회한도 환희도 아니다.

공공적 쓰임새와 심미적 아름다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얻게 된 데서 얻는 깨달음의 감동과

죽음을 앞에둔 한 낭만주의자의 성공과 좌절, 고집과 철학에 대한 소박한 존경의 마음... 이런 것?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는 이야기는 비단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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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과 과학 논평

출퇴근 길이 가까워져서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책을 읽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ㅡ.ㅡ

사실, 출퇴근 시간 절약된 분량을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에 써도 될텐데...

아무래도 자리에 앉으면 항상 어디에선가 적체되어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라...

 

저녁 독서시간 할당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이러다 바보되겠쓰... ㅜ.ㅜ

 

#1. SF 명예의 전당 2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0

 

이거 사실 첨 출판되었을 때 번역자 중 한 명인 네오한테 선물받은 건데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명예의 전당' 시리즈 (?) 중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나 느끼는 감정은... 놀랍다/대단하다/신기하다.......

 

*

아무런 맥락없이 읽는다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형화된 클리세들이 눈에 거슬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법도 하지만,

여기 실린 이 글들이 현재의 그 클리셰, 혹은 스테레오타입의 원조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로는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서글프고 애틋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는 '헬렌 올로이' 같은게 대표적이다.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로봇인 줄 모르는 로봇, 그 정체를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

SF 업계에서 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흔해빠진 스토리인가 말이지.. ㅋㅋ

근데 이게 1938년 작이라는 사실이 완전 후덜덜......

스터전의 경우에도 그 명성만 익히 전해듣고 작품은 첨 보았는데, 역시 소인, 기계인간의 창조주, 우리 주변의 소우주, 사회성 빵점인 과학자....  오늘날 흔해빠진 플롯들의 원조 ....

반인/반기계를 다룬 '스캐너의 허무한 삶'도 그렇고,

초능력을 갖게 된 누군가 (대개는 어린이 ㅋㅋ)의 축복받지 못한 삶을 다룬 '즐거운 인생',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도 관련된 안전한 로봇 패러다임에 반하는 '즐거운 기온'도 이런 유형...

 

*

미래를 내다보는 혹은 사회문제를 예측하거나 뚫어보는 눈 또한 놀라운데,

이를테면 핵 노출에 의한 기형아 문제를 아주 짧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오로지 엄마만이',

도덕/차별/배제 문제의 복잡성을 빼어나게 그려낸 '친절한 이들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은 엄청난 수작....

정체성/능력주의/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 같은 어려운 당대의 이슈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는지.... 읽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음.. ㅜ.ㅜ

 

*

근데... 하인라인의 노동자 적대성은 도대체....

누가 쓴 건지 확인하지도 않고 읽다가 '혹시?' 하면서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역시' 그였어... ㅡ.ㅡ

글은 참 맛깔나게 쓰는데...   짜증이 화르륵..

 

 

#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바다출판사, 2012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그저 안습....

나도 2004-05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처구니를 상실했던 공립학교 지적설계론 교육을 둘러싼 되도 않는 '논쟁'에 과학자들이 이건 정말 심각하구나 하면서 함께 팔을 걷어붙인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뭐 미국 상황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KAIST 에 '창조관'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이 남유난히 강한 점을 생각한다면 남 욕할 처지는 아닌 듯...

담배회사나 석유회사들이 건강영향,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의심을 창출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시간끌기.... 사실 창조과학의 최근 버전인 지적설계론이 동원하고 있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듯... 

진화론이 완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도 있고, 지적설계론이라는 대안적 설명도 있는데, 학문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미국 정신에 따라 과학 시간에 여러 가지 견해를 다 가르치는게 좋지 않겠냐...  이런 접근전략...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일단 지적 설계론은 '검정'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동료 심사 학술지에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건 뭐 과학도 아닌데.... 어디 듣보잡이 나타나서 진화론과 자기가 동급이라고.....

워낙 지적설계론을 포함하여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정파, 사파, 구교, 신교 가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에 책의 내용이 신기한 것은 없었으나,

'자연선택은 누가 더 생존율이 높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겨나는 무작위적인 변이들을 재료로 삼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이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고, 또 두 가지 인상적인 부분....

 

첫째는, 신학교에 다닐만큼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다윈이 자신의 믿음,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다는 점....

만일 이 때 다윈이 '어 이게 아닐 거야,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이럴 리가 없잖아'라고 넘어갔으면 현대의 위대한 발견은 없었거나 아니면 한참이나 뒤늦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발견도, 기존 지식으로부터 예측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의 관찰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라는 끈질긴 질문으로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과학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믿음'이 아닌 '이성'에 의해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들에서 이런 태도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 ㅡ.ㅡ

뭐 내가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기존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경시, 혹은 안일한 해석은 돌아보면 민망할 지경............ㅜ.ㅜ

 

둘째는 과학이 도덕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스티븐 핑커)에 완전 공감!!! 종교가 일부 (!)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그 패악질을 두고 손익계산서를 비교해본다면 인류에게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인데다, 종교가 과연 윤리와 도덕 영역에서는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졌던 나에게 아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견....

종교, 특히 자기성찰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종교의 경우,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가 사람을 과연 더욱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

역사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고 (많았나?)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해당 종교가 내세운 본연의 미덕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면 counter-factual condition 을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해당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말종이 되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ㅋㅋ

종교 없었어도 충분히 그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는....

실제로는 버트런트 러셀도 누누이 지적했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혹은 인가된 패악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도덕이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티븐 핑커의 경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없다는 것이 물질만능주의 인간말종으로 살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나....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한겨레 21에 실린 김인국 신부의 인터뷰를 읽다 약간 허거덕 했다. 이 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할 때 도와주고 힘이 되준 훌륭한 분이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뱀이 시키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따먹은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을 버리고 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 것이 죄와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불법과 폭력에 우리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에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일조하거나 간접으로 승인하거나 결과적으로 방조 또는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 (한겨레 21 900호 김인국 신부 인터뷰)

 

글쎄다.. 나는 이 에덴동산 장면을, 창조주가 시키는 대로 무개념 상태로 살다가 뱀을 통해 처음으로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게 아니라, 뱀을 통해 돌아보게 된 것 아니여? 그 전에는 결정권이 오로지 그분에게 있다가??? 이런 걸 보면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생각밖에....  뒷부분 논지에는 완전 동의하는데, 이게 정말 적절한 사례인지는 도대체 납득이 안 됨...

하긴, 뭐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절대자 믿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족이지만, 이건 실존인물을 둘러싼 종교적 빠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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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영화... 화차

 

 

하필이면!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보았다.

경선, 혹은 선영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녀가 정신줄을 놓고 용산역사를, 백화점을 지나 주차장으로 질주하던 중 당장이라도 극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게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마저... ㅡ.ㅡ;; 

 

 

1. 영화는 무서웠다.

 

그건, 잔혹한 장면들이 있거나 혹은 '앗 깜딱야' 하는 놀래킴의 장면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대, 오늘 이곳 한국사회가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서 무서웠던 것이다.

마치, 여고괴담이 무섭게 느껴졌던 게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그 익숙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서의 학교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사라지고 연락이 끊어져도 사람들은 무심하다.

대낮에 무법천지 폭력이 자행되도 공권력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폭력과 소외의 피해자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또다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새로운 가해자로 거듭난다. 차라리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한 한방이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그건 허구에 존재하는 심리적 위안일 뿐,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나는 그녀가 말할 수 없이 가여웠지만, 내 옆에 다가올까 두려웠다.

"다 이해할 있어, 괜찮아" 라고 품어줄 수는 없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살인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리라.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스스로에게 몸서리를 치는 사람과, 주도면밀하게 우편함을 털고 고무장갑과 여행가방을 준비하는 이는 슬프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 또 어디에선가 이렇게 아름답고도 공포스러운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가 사무치게 두려워졌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일지 모른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2. 영화는 감독의 것...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김민희 의 연기가 참 좋았다.

과하지 않다는 것... 이게 참 어려울텐데 말이다.

이선균이나 조성하,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다들 과하지 않았다.

경선의 친한 언니, 전남편, 동물병원 간호사, 동료형사, 은행다니는 문호 친구까지...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감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주아주 현실적인 소소한 장면들도 좋았다.

이를테면 문호 아버지가 파혼을 두고 아들을 야단치는 장면 같은 경우,

대부분의 TV 드라마에서 호쾌하게 뺨을 한 대 날리거나 뒷목을 잡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마구잡이로 아들의 등짝을 때려댄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퇴물 형사가 갑자기 능력자로 변신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가라앉을 겨를이 없었던 문호의 충격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단 약혼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자체가 충격인데

그녀에게는 과거 파산기록이 있고 파산신청서에는 술집에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단 한방 먹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결정적으로 심지어 본인이 아니야... ㅡ.ㅡ 

여기서 완전히 멘붕...

천신만고 끝에 신분을 확인하고 보니 이혼 경력...나중에는 심지어 아이까지....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들과 똑같은 대사 "뭐? 애까지?"를 내뱉고 말았음)

이런 긴장의 매듭들을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끌고 갈 수 있는 게 바로 감독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변영주 감독이 더 나은 작품들을 많이 들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우 김민희가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

 

* 사족이지만...

사람을 새로 뽑거나 만나게 될 때....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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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대한 이야기?

#1. 강준만 <강남좌파>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1

 

작년에 출판된 이래, 구립도서관에는 줄곧 대출상태라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읽을 사람은 다 읽었는지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조국 붐'이 한창 뜨겁던 시점에 나온 책인데다, 롤러코스터 같은 한국사회에서 무려 1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지났으니 몇몇 내용들은 시의성이 좀 떨어지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새겨들을 만하다.

강남좌파의 문제가 결국 민주화 이후에 여전하고 어쩌면 점점 더 강해져가고 있는 엘리트주의, 특히 한국사회 학벌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까지 쓸 필요는 있었나 싶다.

엘리트주의의 문제가 심층적으로 논의된다기보다, 진보-보수 양측의 주요 정치적 아이콘들의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인물평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어떤 이야기들은 굳이 이것이 엘리트주의라는 맥락에서 기술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적지 않다. 저자 스스로 한국사회의 인물 중심주의 문화에서는 이상적인 정치적 논의와 토론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으면서도, 기저의 흐름보다 개별 인물들의 특징에 지나치게 집중한게 아닌가 싶다.

강남좌파로 지칭되는 진보적 (?)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라 보기도 뭐하고, 소위 '강남좌파' 담론이 소비되는 한국사회의 지형 분석이라 보기도 뭐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의 장이 입시전쟁이라고 했는데, 앞의 개별 정치인들에 대한 분석과 연결점을 찾기가 힘들다.. ㅡ.ㅡ

지속적으로 새로운 엘리트들을 갈구하는 대중적 정서를 '새것신드롬'으로 명명한 것에는 공감이 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없다는 점도 좀 거시기...

 

저자의 구체적 지적 중에 가장 공감하는 것은,

최장집 교수의 '오래된 인연'에 기반한 손학규 지지와 대학교수/지식인들의 각종 지지서명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적에게 가혹할수록 친구에게 잘하는 법이다. 적에게 관대한 사람은 친구에게도 헌신하지 않는다"는 문장..

 

나보고 엘리트주의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라고 하면, 각종 언론사에 '선배/형' 호칭 써가면서 기고하는 교수들의 해괴한 행태를 꼽았을텐데..... 전화하던가 이메일 보내서 할 이야기를 왜 언론에 공개적으로 쓰는지??? 이렇게 애틋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당신에게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는 레토릭인 건 알겠는데, 소위 지잡대 출신들이 그리 글쓰는 걸 본적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말할 기회를 가진' 엘리트들 사이의 기회 남용이라는 걸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예전에는 '염치'라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점점 잃어가는 듯...

내가 잘나서 명문대학 나왔으니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꼭 우리 동문이래서가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다보니 마침 우리 동문이네... 이런 식?

최근에 참여한 몇몇 모임 - 진보적 성향의 연구 모임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특정대학 동문들로만 구성된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일부러 타대 출신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뭐 그 따위 연구모임 자체야 대단한 권력은 아니지만, 학연, 사회적 자본이란 것이 이렇게 투명하게 은밀하게 모든 사회적 권력위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니 새삼 오싹.....

    

존재가 의식을 규졍한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식이 존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인간으로서 너무 서글픈 삶 아닌가?

그나저나, 나도 다음 주에 사당동으로 이사가면, 한강 이남이니 강남좌파가 되는 겐가???

 

 

#2. 제이슨 델 간디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동녘, 2011

 

책 본문보다 하종강 선생님의 추천글이 더 기억에 남는 책... ㅡ.ㅡ;;

 

저자의 '내공'이 그리 깊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고, 

미디어와 메시지란 분리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약간 불편한 부분이 있었음.

 

레토릭과 관련해서라면,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라 그닥 새겨들을 만한 것이 많지 않았음.

하지만, 그냥 혼자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읽고 워크샵 방식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만들고 연습하는 기회를 만든다면 상당히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성찰적인 책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매뉴얼에 가까운 책....  

그래서 이 책이 나쁘다기보다는 쓰임새가 좀더 적절했으면 좋겠다는 사사로운 의견...

 

저자의 급진주의는 미국의 유구한 (?) 아나키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중심없는 네트워크, 자율주의...  오직 이런 것들만이 저자의 시야에 포착되고 있다는 느낌.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해서도 이후 여러가지 비판적 성찰들이 이어지고 있음에 비해,

그들의 "스타일"과 운동방식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

 

이는 전에 읽었던 <글로벌 슬럼프>에서 무대 이면의 조직화된 노동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

 

사회적/문화적 변혁의 일환으로 이러한 중심없는 운동, 자발적 네트워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듯, 이러한 운동들이 조직노동이나 정당정치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대개 휘발되 버리고, 특히나 계급정당/급진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운동이 어떤 성과로 수렴되지 못하고 영원히 '운동'과 '캠페인'으로만 남아버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별로 드러나지 않음...

활동가들의 헌신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급진주의자의 모습은 히피 같은 차림새에,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난을 즐기며, 하지만 공정한 소비를 하면서, 사회이슈가 터지는 곳마다 달려가는 젊은이?  글쎄 뭐 이렇게 사는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오직 이런 운동만 존재한다면 과연 세상에 변화가 오기는 올까??? 

 

저자는 하워드 진 할배의 스타일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지만, 할배의 고갱이는 잘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물론 책의 초점이 운동의 내용 그 자체보다 수사학에 있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이 치명적인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딴 소리이기는 하지만, 책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좀더 친화적이고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즉, 급진주의의 언어라고 꼭 과격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한국사회에서는  '씨바' '쫄지마'로 상징되는 마초계 언어가 진보 (?)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난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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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1.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최규석
사계절출판사, 2011

실은 작년 말에 읽은 책...

최규석의 작품이라면 일단 읽어줘야 함...

 

이것은 우화....

재미나고 교훈적인 어린이용 옛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그림형제의 동화들이 실제로는 잔혹하고도 비정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우화'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 

최규석의 이야기들도 그의 바램처럼, 몇 개라도 작자 미상의 우화가 되어 먼훗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길...

 

 

#2. 데이비드 맥닐리 <글로벌 슬럼프 >

 

 

글로벌 슬럼프 -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
글로벌 슬럼프 -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
데이비드 맥낼리
그린비, 2011

 

 

1996년 동아출판사에서 출판되었던 필립 암스트롱의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1997년 외환위기가 폭발하기 직전 절묘하게 출판되었던 <세계화의 덫>과 시리즈로 읽는다면 아주아주 좋을 책...

여기에다가 밀턴 프리드먼의 <Capitalism & Freedom>, 미국공영방송 PBS 에서 방영되었던 <Commanding Heights> 까지 함께 본다면 금상첨화...

 

"위기와 저항의 글러벌 정치경제 이야기"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단순한 경제동향 분석서이기보다 자본주의 경기순환과 계급투쟁의 역동학을 잘 보여주는 책.

 

*

한국이 1997/98년에 경험한 외환위기에 대해

장하준 교수가 국가와 재벌에 의한 민족경제/관리경제 체계의 붕괴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면

 <세계화의 덫>은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유동하는 투기적 금융자본에서 근원을 찾으려했고,

이 책은 후자의 의견에 덧붙여 내재적인 '평균 이윤율 하락'이 주요 동기였음을 지적한다.

또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완화가 몰락을 가져왔다기보다,

이러한 규제완화가 이미 다양한 우회경로를 통해 (다양한 역외은행들... ㅡ.ㅡ)  맘대로 돌아다니는 금융자본을 다시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니... 그럴 법도 하군....

 

*

현재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차별적 성격에 대한 실증자료들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됨...

2006년 자기 집을 구입한 흑인 중 56%가 집을 압류당했다느니,

미국 어린이의 50%가 유년기에 어느 한 시기는 푸드스탬프에 의존하고, 흑인 어린이는 그 비율이 90%라는...

이게 나라여???

 

*

새로운 저항을 역설하면서, 오늘날에는 급진주의조차 스타일리쉬한 패션코드로 자리매김한 현상을 지적한 것에 깊이 공감.... ㅡ.ㅡ

이는 신자유주의적 소비문화의 쿨함이 사회변혁 운동에도 침투한 것....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한심한 세태에 장탄식을 늘어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례들을 소개하고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

볼리비아, Guadalupe, Oaxaca 에서 일어난 가슴벅찬 투쟁과 (완전하지는 않지만) 승리의 사례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가진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미국으로 확산되는 투쟁들...

물론, 하워드 진 할배의 이야기만한 가슴떨림은 없었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극도로 건조 ㅋㅋ)

내용 자체가 주는 울림과 벅참은 그래도 상당함...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린 저자 인터뷰에서 조지오웰의 <Homage to Catalonia>를 권하며 "누군가가 기존의 잘못된 것에 저항을 하고, 또 다른 이들이 자연스럽게 같이 나서고, 그래서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융화될 때 비로소 집단적 트라우마도 치유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웬지 동지적 의식마저 ㅋㅋ  그려... 이 책은 필독서지....

 

*

로자 룩셈부르크를 인용하며 '개혁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회혁명이 목표라면 개혁을 위한 투쟁은 그 수단이라"는 지적에 완전 공감!!!

한국 사회에서 한 동안 은'개혁'을 이야기하면 개량 취급을 받았지만,

요사이는 '개혁' 그 너머를 이야기하면 분열주의자, 고립주의자, 심지어 수구적 좌파로 낙인.... ㅡ.ㅡ

현실성 혹은 실현가능성이 모든 것의 잣대가 되어 버리면서,

선거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고, 프로그램에서도 재원조달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림....

우리는 어쩌다 이리 된 것일까???

 

*

"신자유주의가 은연중에 강제하는 기억상실증을 극복하고 역사적 기억을 회복하는 일이란, 쉽지도 않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풀뿌리에 근거를 둔 소규모의 급진적 운동을 통해 상대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라면 제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정리하면 된다" 는 저자의 말에 또 십분 공감...

역사는 기억하는 자, 기록하는 자의 것....

잠시 flight of idea로, 그래서 노건연 기관지 <노동과 건강> 이 중요하다고 생각 ㅋㅋ

 

*

세계 어느 곳이든 공통적인 경험과 딜레마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은,

소위 새롭고 발랄한 대중투쟁을 칭송하면서 조직노동운동은 전형적이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폄훼하는 문화에 대한 지적... ㅡ.ㅡ

저자는, 외견상 폭발적으로 전개된 광범위한 대중투쟁, 새로운 방식의 투쟁 이면에,

수년 동안 꾸준한 조직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전략을 개발해왔던 이들의 땀방울이 있었음을 다시금 되새겨준다.

어쩌면 이리도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걸까...

희망버스는 좋은 운동이지만 민주노총의 운동은 틀려먹었고,

멋지게 찍어올린 1인시위 인증샷은 참신하지만, 투쟁구호 외치고 노숙하는 건 구질구질한 것으로 비춰지는 현실.... ㅡ.ㅡ

또한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경제적 노조주의 하에서 '실무자'가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이구.... 이러면서 공감... 

 

*

인용한 그람시의 말처럼 "낡은 것이 죽어가는데도 아직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실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 이 시기는 자칫 위험한 반동의 시기가 될 수도 있고, 또 급진주의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과연 전자에 가까울까, 후자에 가까울까?

아마도 소위 진보진영의 모든 명망가들과 노동/시민사회 단체의 주요 인력들이 진공청소기처럼 선거판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후자의 낙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리 되면 좋겠지만.... 나는 확신이 없다.

 

아.. 시작은 안 그랬는데... 마지막을 정리하다보니 급 어두워지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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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speculative fiction

무려 작년(!)에 본 영화랑 책들의 기억...

 

#. 르 아브르 (Le Havre). 아키 카우리스마키 (이름이.. 흑... ㅜ.ㅜ) 감독, 2011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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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고 질문했던 서경식 교수에게 답해주는 작은 (?) 판타지 영화...

아저씨가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했으면 집에 가만히 있어야지, 꼬마는 왜 자꾸 돌아다녀서 동네 사람들이나 보는 관객들이나 애를 타게 만드는 거여....  이게 호러영화였으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만한 배역.. ㅡ.ㅡ

 

영화가 어찌나 훈훈하고 따뜻한지, '에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벗어나고 싶지가 않더라니....

구두닦이 아저씨의 의외로 대담한 행동과 마을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공모', 그리고 뭔가 사연을 숨겼을 것만 같은 핑크팬더 경감 아자씨의 애매한 행동.... 심지어 불치병마저 나아버리는 기적...... 와우 ㅋㅋ

 

그래, 영화가 주는 위로가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대 환영!!!!

 

#. 세 얼간이 (3 idiots). 라지쿠마르 히라니 (이 이름도 ㅋㅋ) 감독, 2009년 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완전 촌스러운데, 묘하게 너무 익숙하고 너무 웃겨 ㅋㅋㅋㅋ

아, 그리고 훈훈해서 미칠 것만 같아 ㅋㅋㅋㅋㅋ

"알 이즈 웰"

그래, 유느님 노래처럼 '말하는 대로'... 모든게 잘 될거야....

 

 

#. SF 명예의 전당

 

SF 명예의 전당 3 : 유니버스
SF 명예의 전당 3 : 유니버스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1
SF 명예의 전당 4 : 거기 누구냐?
SF 명예의 전당 4 : 거기 누구냐?
존 캠벨 외
오멜라스(웅진), 2011

 

수 년 (?) 전에 작업하다가 경제위기 때문에 엎어진 줄 알았던 번역 프로젝트가 갑자기 지난 여름 되살아나서 나를 식겁하게 만들었음. 어영부영 무사히 마무리가 되고 심지어 연 내에 떡하니 책이 나오다니 깜놀...

편집자 짱!!!

 

번역자 소개에 가명을 올릴까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본명으로 했는데 전작 번역서들 소개가  완전 웃김... 사회역학,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이건 뭐 갈짓자 행보의 전형이랄까??? ㅋㅋㅋ

 

진짜 명작들이여....

특히 '기념할 만한 계절 (vintage season)'은 몽환적이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 또한 묘~한 분위기...

웰즈의 '타임머신'은 이렇게 음습하고 무거운 작품이었나 새삼 놀랐음..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타임머신은 이렇지 않았다구.. 흑...

그리고 '두 손을 포개고'는 완전 후덜덜....  이게 어떻게 50년도 전에 쓰여진 글일 수 있을까.....

 

내가 번역한 '얼간이들의 행진'은 사실 '꼬인' 작품이라서 자칫 독자들이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해설이 좀 추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 문장 그대로 독해한다면 우생학적 편견으로 가득찬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지능 높은 숨겨진 엘리트들과 소위 '얼간이'들의 행태를 비교해보면 진정으로 누가 더 인간다운가 쉽게 판단할 수 있다네.... 실제로 이 얼간이 (moron)이라는 단어가 우생학적으로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스티븐 제이 굴드가 Mismeasure of Men 에서 비판한 바 있고, 저자 콘블루스는 유태인으로 이러한 우생학/인종주의적 차별의 피해자.....

또 다른 번역물 레스터 델 레이의 '대담한 신경'은 아직 상용화된 핵발전시설이 나타나기도 전에 그곳에서 발생한 사고와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그렸는데, 마침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내다본 것 같은 신묘한 예지력 ㅋㅋ 하지만, 소설에서는 베테랑 외과의사와 영민한 신출내기 의사의 활약을 통해 모든 일이 다 잘~ 마무리된다는게 차이....  현실은 이렇지 않았지......ㅡ.ㅡ

 

SF 는 그야말로 speculative fiction....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사고 실험, 더 많은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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