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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가 다시 밀어 닫으며 꾸욱 눌렀다, 라푼쩰의 성 문을 폐쇄하듯.
진은 입술에 묻은 뭐라도 닦는 것처럼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돌아서다가 마루 건너, 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이수와 마주쳤다. 비는 그친 듯 했으나 밤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데 겉옷을 대충 꿰어 입으며 가방을 끌듯이 옆구리에 걸고 젖은 운동화를 그냥 꿰어신는다.
" 다 저녁에 어딜 가. "
대답은 커녕 돌아보지도 않고 성난 듯 홱 현관문을 밀어젖히고, 몸을 빼면서 툭 던지듯 말한다.
" 더 늦기 전에 집에나 ! ...데려다 주던가. "
신경질적으로 열어제꼈던 현관문을 손끝으로 떨구며 슬쩍 돌아보는 이수의 얼굴은 못 마땅하다는 듯 잔뜩 찌푸러져 있었으나, 눈길은 진의 방문 쪽을 스치듯 흝고 갔다.
맞대거리라도 할 듯 현관 앞으로 따라 나왔던 진은 하지만 그냥 마루끝에 걸터 앉은 채 속울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가슴에 한 쪽 손을 얹고. 음. 그녀가...근데, 저 자식이...
머리속에선 뭔가 상황을 좀 수습하여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되돌려야할텐데. 하고 고민이랍시고 떠오르지만. 진은 입가에서 툭툭 떨어지는 미소를 수습하는 게 더 어려웠다. 그녀를 다 안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자신의 속을 다 알게 된 것 같아 한껏 시원스러웠다. 이런 거였군. 하는 생각, 이런 느낌이군. 하면서 저의 사춘기도 이젠 졸업을 하게 되었다하는 맘에 마냥 기꺼웠다. 동생 뿐아니라 아이들, 여고이던 그녀의 남녀공학이던 십대의 청춘들이 애써 곁눈질하고 인내하고 숨고 싶어하며 또 좌충우돌하기도 하면서 겪고 있는 성과 사랑, 신비와 의혹, 불안과 자만, 이제 자신은 그런 혼란에서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진은 모든 것이 좋았고 밝게 느껴졌으며 그녀 또한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말로 안 한다고 그걸 모르리. 그 얼굴을 보면서. 그 몸짓에 함께 휘감기면서. 그녀의 감정이 피부 위로 새겨지는데, 그녀의 욕망이 데일 것처럼 스며오는데. 자신에게 있어선 아련하고 몽롱하며 부정확했던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구체화되었다. 분명해졌고 또 정직해졌다. 그녀는 그 얼마나 용맹스러운가. 눈으로 말하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 아..."
진은 욕실에서 나오며 아뿔싸. 하였다. 그녀는 현관의 안쪽 문을 열어둔 채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침대 위를 다소곳이 정리해 둔 채. 시트를...빼 갔다. 부러 장 문을 열어 새로 패드를 내어 깔아두는 그녀의 손길이 눈에 보이는 듯. 책상 근처를 살피다 식탁 위에 라면들을 얌전히 내어놓고는 그 슈퍼용 비닐봉지에 힘들게 시트를 접어 넣고는 누가 볼세라.
" 그걸...싸 들고 가냐...이 여자가 정말..."
이 애가 그걸 어떻게 세탁하겠나 싶어서? 아님 다른 뭔가가 아까운 듯. 음..츳. 하면서 진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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