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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어둠이 점령하고 있는 골목 안, 저 끝에서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는 이수의 모습이 보인다. 가방을 어깨 위로 둘러 맨. 스포츠형 머리의 얼굴은 멀쑥하나 표정이나 몸짓은 아직 어릿스러운 소년, 매부리코 때문에 나이가 들어보인다. 집 앞까지 못 와서 전신주 옆에 서 있는 누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놀라는 표정이 느릿한 이수는 어딘가 그녀를 닮은 듯도.
" 뭐야? "
감정 없이 물어보려 하나 쉽지 않다는 듯 애먹은 말투.
" 미안..."
진은 동생을 바라보며 담담히, 하지만 정말 미안하다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 좀 이따 들어와라. "
이수는 왜? 하고 물을 듯 잠깐 쳐다보았다. 시선을 마주치며. 피하지도 어색함도 없는 누나의 얼굴이 다소 들떠있음에, 그러나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 뭔가를 떠올린 듯, 곧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 ...알았어. "
묻지도, 탓하지도 않고 이수는 발길을 돌렸다. 바로 나오는 골목 모퉁이로 꺽어들며 가능한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 주겠다는 듯.
잠깐 그대로 서 있다가 조용한 골목길, 버스에서 내려 집을 찾아드는 행인들이 느는 것을 보며 진은 집안으로 들어왔다. 고즈넉히 마당도, 거실도, 식탁 주위도 그리고 자신의 방문도 잠든 듯 하다. 그녀, 침대 속에 파묻힐 듯 누운 채 잠들어있다. 피로가 이마에 떠 있다. 조그마한 얼굴에서 가장 비중이 큰 넓은 이마, 앞머리를 반쯤 내리고 다니느라 눈에 띄지 않았으나 약간 짱구다. 실핏줄이 비쳐보이는 눈꺼풀, 힘없이 감겨져 있고 자그마한 코, 작은 입술, 거뭇하니 부르터 있어 더 붉어 보이는.
진은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만져보았다. 부르튼 주위를 둘러 입술 끝으로. 미끄러트리며 턱선을 따라 가 보며. 그녀가 흠칠. 하며 눈꺼플을 움직인다. 시야에 들어오는 손, 그 손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들며. 작은 입술을 달짝이며.
" 몇 시야..."
" 아직 괜찮아. 8시 밖에 안 되었어. "
그녀, 무언가를 생각하듯 가만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 나 갈께. "
" 괜찮다니깐. 동생은 늦을 꺼라구 전화 왔어. "
그녀, 그래? 하더니 침대 위에 잠시 가만히 앉아있다. 티를 다시 입혀 놓았지만 브래지어는 하지 않고 있는 그녀, 스퀘어 네크라인 속으로 숨어드는 쇄골을 보고 있는 진은 그녀가 아쉽다. 가지 않았으면.
" 같이 저녁 먹자. "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며 글쎄. 한다.
" 같이 밥 먹고,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며. "
그녀는 무슨 말인가 싶어 진을 쳐다본다. 집에 가야겠다하는 생각을 굳히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진은 말을 먹고 가만히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녀를 한길 건너 바래다 주고 저의 집과 그녀의 집 중간쯤이라 생각되는 놀이터 앞에서 혼자 가겠다는 그녀를 쉬이 보내주고 돌아오면서 마음이 다져진다.
" 혜정아, 나는... "
혼자 어두운 채 인적 끊어진 밤길을 걸으며 진은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말로 내어 놓는다.
" 너와 한 집에서 살고 싶다. 이리 보내지 않고, 네게 다른 공간, 다른 접촉, 다른 생각을 하게 두고 싶지 않다. "
진은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며, 자신의 손길과 말 속 에서 행복한 미소를 떠올린다는 것을. 그녀는 점점 더 말을 많이 하고 점점 더 속을 내어보이며 조금씩이나마 제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몸을 만지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처럼 내어놓는 면이 넓어질 수록 그녀의 웃음은 편해지고 또 생각은 창의성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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