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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그녀를 보내서는 안되었다.

진은 빗장뼈처럼 걸리는 그녀의 호흡을 느꼈다. 허리께에 머무는 그녀의 흐느낌과 함께.

 

 

"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구 !"

이수는 반드시 해명을 하여 누명을 벗겠다는 듯 변명을 계속했다.

진은 한숨이 나왔다. 화를 내다가 큰 소리도 나오게는 되었으나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수가 부러 방 안에 있으면서 집에 아무도 없는 척을 한 것도 아니고. 이러든 저러든 그녀가 사실 그렇게까지 놀랄 것도 없는 것이었다.

" 나두 조심스러워서 천천히 기척을 내려고 한 거라구..."

이수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 사뭇 애원조다. 하기야 제가 멀대같이 키만 컸지, 조숙한 그녀에게 대면 초딩이나 다름없을 텐데 언감생심...치한 취급을 받는 것이 제가 더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

" 누가 그렇게 놀라 소리지를 줄 알았냐구, 내가 뭘 어쨌다구, 그냥 마루로 나가면서 발소리 내도 못 들은 것 같기에 인사할라구..."

진은 그래도 그냥 말로 하지, 어깨에 손은 왜 올리냐구!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로 내어놓는게 더 이상하다.

" 그래, 알았어. "

그냥 서서 쳐다보고 있는 이수.

" 괜찮대? "

" 그래, 혼자 딴 생각하다가 깜짝 놀란 것 뿐이라구. 너 때문 아니라구, 몇 번이나 얘기하더라. "

그래도 쳐다보는 이수, 망설이듯 하더니 결국.

" 무슨 생각을 하면 그렇게 놀랄 수 있어? "

하기야....진은 저도 황당했겠지 싶긴 하다. 단어로 표현하진 않았어도 그 비명 소리는 그냥 외마디, 놀람의 방출이 아니었다. 최대한 크게 지르는, 길게 빼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늦은 귀가길의 구석진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덮쳐드는 사내의 팔에 갇히기 직전, 입을 틀어막히리라는 예감 속에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위급함을 알리는 비명이었다. 대문 앞에 오기 전에 귀에 꽂히는 그 소리가 그녀의 것임을 직감하며, 열쇠를 돌려 대문을 따며 이걸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확 스쳐지나갔었던 진은 순식간에 뛰어오른 현관 앞에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당장 눈에 들어온 그녀의 움추린 어깨.  떨고 있는 손과 터져나오는 울음소리와 그 뒤에서 망연한 표정으로 두 손 쳐 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굳어진 이수와 눈이 마주치자 당장 울기라도 할 것처럼 누나를 쳐다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동생을 보면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 했었으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며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정말 괜찮대?"

이수는 얼마 전까지 누이와 그녀 사이를 걱정하며 못 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이맛살 찌푸리며 말을 아끼던 것과는 딴판이다.

" 응. "

하지만, 그녀는 진이 와서 말해 주기 전에 이미 눈으로 이수를 확인하였으면서도 터져나온 울음을 주체하지 못 하였다. 가슴의 떨림이 멈춰지고 손을 꼭 부여잡고 놓지 않고 있음에도 그녀는 통곡하듯 울음을 참지 못 했고 방에 혼자 있게 하면서 차를 가져다 주어서도 입으로는 괜찮다 하면서 눈으로는 차고 넘치기만 하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한심하다 하였다. 그리고 자기연민이라고 중얼거렸다.

" 근데, 왜 그렇게 오래 울었대? 원래 그렇게 눈물이 많아? "

이수는 남학교를 다니면서는 여자의 얌전함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하더니, 누이는 제쳐두고 그녀가 여성스럽다 여겨지는 가 보다.

" 감정선이 약해서 그래. 원래 소설이나 만화책 보면서도 잘 울어. "

" 그래? 뭐, 드라마 보다가도 아줌마들이 운다고는...근데, 그렇게 길게 우나? 한참이나 훌쩍훌쩍, 집에 갈 때도 보니깐..."

" 원래 그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면서 읽었대. 테르미도른가 뭔가 하는 만화도 보고 또 보면서도 자꾸 눈물이 난다고. 그 얘기 하면서도 생각이 나는지 또 울고. "

이 자식이 뭘 자꾸 물어보구...진은 그녀를 다른 누군가가 들여다본다는 게 좋지 않다. 부러 길게 설명을 해 주었더니 그것도 짜증난다. 그녀를 또 누군가가 자세히 알게 되는 것도...별로군.

이수는 그래? 그런 성격이군. 하면서 뭐를 납득했다는 건지 물러나면서 누이를 한번 흘낏 건너다 본다.

" 왜? "

피곤함을 느끼면서 진은 동생을 쳐다봤다.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지 않았는데. 자꾸만 괜찮다고 혼자 가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빨리, 혼자가 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밀쳐졌다는 느낌.

" 아까...바래다 준다고 나갔을 때...현관 앞에 이게 떨어져 있더라구. "

이수는 슬쩍 주머니에서 봉지째 꾸짓꾸짓해진 무언가를 식탁 위로 내려놓고 휙 고개 돌리고 등을 보이며 제 방으로 사라진다.

진은 아! 하고 속으로 외치면서 얼른 손아귀 안으로 끌어들였다. 젠장...이것 때문에.

그녀를 대문 안에 먼저 밀어넣고 진이 왔던 길을 돌아가서 약국에 들러 사 온 것.

애인을 꼬실 양이면 준비성이 철저해야지, 사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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