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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어여쁜 그녀.

안고 싶어. 안고 싶어.

오지 말까? 하길래 오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안 온다. 아니, 전화 한 통 없다.

하루 기다려보고 이틀째 아침, 전화 했다. 그녀 없이 맞는 사무실의 아침. 정말 재미 없다.

말단신입사원 흉내를 내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타 주는 걸, 거리낌 없이 받아 먹다가 홀로, 멍청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슬슬 열 받는다. 이 여자는 왜 틈만 나면 꼬리를 감추나...

아이들이 방학을 했으니 천상 집에 붙잡혀있을 수 밖에, 아니 어쨌든 집에 머물러있을 터인데 통화 중의 대답이 영, 시원챦다. 예, 아니오로 끊어지는 콜드 스피치는 아니더라도 대답이 짧다. 그리고 기다린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이.

 

" ...그랬어. "

" 응, 그렇구나. 하하하. 그때부터도 게임에 빠져있었어. 조합원들과 친하려고 스타크래프트 한다더니 ! 하하하. "

 

그래도...이혼했다는데,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은 아닌것 같은데. 이 여자가 주변에서 실패한 결혼 사례를 많이 보더니?

 

" 불임이 평균 십프로이고, 이혼율도 십프로이고, 한부모가정이나 재혼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등 하면 소위 정상가정의 프로테지는 더 떨어질 것 같은데? "

" 아? 정상...? "

" 그래, 노멀한,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여타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밀어내는 사람들. 그들의 자기방어적인 레테르. "

 

그녀는 말을 길게 하기 싫은 듯, 얼버무리지도 않고 뚝 끊었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다른 화제를 꺼낼꺼냐는 듯. 용건이 있는 건 아닌거지? 하면서.

 

" 왜? "

" 아, 나 나가야 해. 시간 약속이 되어 있어. "

" 그래? 그럼 나중에... "

" 까칠 아줌마라, 늦으면 눈치보여. "

" 하하. 까칠아줌마? 알았어. 그럼 끊어. "

 

오후 늦게 문자가 왔다.

 

' 반론의 근거가 겨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쟎아. 라고 말하는 상대. 계속적인 대화상대가 되지 못 해. '

 

조금 있다 또 문자가 왔다.

 

' 연락 바랍니다. '

 

흠...이건 그녀의 외화가 아닌데.

아니나다를까 짦은 문자가 연달아 온다. 질문.

그녀는 몇 번인가 회의 중이라는 문자를 받으면서 통화연결에 실패한 이후, 직접 전화거는 걸 자제했다. 그리고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잘 못 찍으면서. 미싱도, 바느질도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손가락 놀리고있으면 협심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그녀는 어린시절, 테트리스도 잘 못 해서 오락에는 당췌 흥미를 붙이지 못 했다고...대체로 그 손으로 빨리 할 수 있는 건 자판 두드리는 것 밖에 없는 게지. 후.

 

전화 걸었다. 편하고 즐겁게 받는다. 앞에 둔 듯 수다를 떨지만 그래도 되는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해서 불안해하며 빠르게 지껄인다. 영화 보러 가자고. 요지는 그것인데 가능한 날짜를 찾아 한참을 말 주고 받다가 결국 못 가겠다고 대답했다.

 

" 그래, 그럼 다음에 가지, 뭐. "

 

그리고 곧 통화를 끊었다. 빨리 포기해 주고, 별 중요한 거 아니니 상관 없다는 듯이 다른 화제를 꺼내고 그렇게 상처받지 않은 양을 다 못 해서 어색하게 전화통화를 종료하는 것이다.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와 외출하기 위해 무리를 할 수는. 아이들을 두고 밤에 나올 수도. 일에 매여 있는 몸을 빼낼 다른 시간대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집에 있는 오전시간을 찝어서 알바하라고 꼬셔서 사무실로 불렀겠는가...

 

오지않게 된 방학 이후의 오전 시간, 그녀도 나름대로 바빴다고 한다.

방학식을 하는 둘째네 반에 과자보따리를 만들어주느라 아침부터 일했다고, 반대표를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방학한 첫날에는 즐겁고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문화센터에 접수하러 가느라 바빴다고, 땡볕에. 전업주부로서 본분을 다하여 유능한 엄마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까칠엄마랑 손잡고.

의외로 엄마들과 잘 지내고 있는 듯.

그, 깊이 없는 사교생활 속에서 그녀는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주의할 점은 오직,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한 마디 더 하는 것만 자제하면 된다고. 그래서 결국 마음 차지 못 하여 냉소 뒤의 외로움을 절감할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니도 내게 다르지 않다. 하는 듯 말을 끊고 돌아선다. 단지...영화보러 갈 시간을 못 냈을 뿐인데.

그래도 캠핑은 같이 갈 껀데. 그녀가 남편은 못 온다 하였고 또 부르고 싶지도 않다 하였으니. 어쩌면...

아이들을 한 텐트에 몰아넣고 다른 텐트에서 그녀와 술을 마시게 될 지도. 그녀는 술을 원하나 또 다른 것도 하게 될 지도 모르지. 어여쁜 그녀를 안고 싶은 자가 대작을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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