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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어찌하여 그러한가.

한 마디, 두 마디 하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그녀는 집착한다.

마치 모래 구덩이 속에 선 채 한 가닥 외로 꼰 지푸라기를 잡듯이.

 

음식보다 더 깔끔한 인테리어의 일식집에서 그녀, 심심하기 그지 없는 모밀국수를 먹는다.

먹으며 소분소분 말을 잇는다. 끊일듯 끊이지 않고. 한번씩 건너 낯빛을 살피며. 슬쩍 떠 보듯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지며. 명절을 쇠러 시댁을 다녀오며 말 상대 해 주지 않고 또 상대가 되지도 않는 거리 뜬 사람들 속에서 심심해하더니.

 

" 그러면 북한산 주변으로 알아볼까? "

" 그러게. "

" 집을 거기 두고 조금 나와서 출퇴근하면 되지. 애들 학교야 뭐 이제 많이 컸는데 아침에 같이 나오고... "

" 그럴 수도 있지. "

 

아무래도 집을 옮겨야 겠다고, 짐을 좀 줄이고 책들도 버리든 어떻게 처분을 하고...내년 봄 즈음엔.

흘려듣듯 그녀는 책. 하고 중얼거렸었다.

 

" 이십대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책들인데. "

밥보다 술보다 더 돈을 많이 들이며 사 모았던 책들이었다고, 그녀는 80년대의 신간들이었고 90년대의 신간들을 그 때 그때 다 사 들이며 알고 싶어했고 논구하고 싶었으며 이론이 어떻게 실천이 되어야 할 지를 몰라 고뇌했었던...서른 즈음까지의 십년간, 혹은 인생의 거의 전부를 표상할 만한 책, 노트, 팜, 그리고 서류들과.

" 열 다섯에서 열 아홉까지의 일기장이 한 박스였는데 그것들과 함께... "

그녀는 함께 내다버린 남편보다 오빠에게 더 상처받았었다. 친족으로 살아오면서 논리적으로는 아니나 감성적으로는 충분히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버리지 못 하고 있는 것을 버려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있는 것을 무참히 버려버린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해야 할 지..."

그녀는 싱긋 웃었다. 책을 버려야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에 부응하듯 관용의 태도를 보이며. 아니 포기하는 심정을 냉소적인 목소리에서 미처 비워내지 못 하면서.

 

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나 눈치를 보았던가.

거절하고 거절하고 거절하니 상처받지 않는다는 표정을 맨얼굴을 들지 못 하는 연예인처럼 안면에 걸고 있다.

그녀의 구분과 경계선에 서 있으니 많은 이들이 함께 용서를 받는다. 책을 버려야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녀의 책을 버려준 남편까지 도매금으로.

 

그렇게 지류에 착목하듯 본류를 흘리더니 그녀, 그래서...하면서 말을 잇고 또 잇는다.

" 집을 어디로 옮기려구? "

" 양평을 간들 뭐 그리 다르겠어? 혁신학교나 대안학교나. 전원마을이나 북한산 자락의 구옥들도... "

" 그렇긴 하지. "

 

이제 그녀는 아무런 호응을 안 해도 혼자 진도 나간다.

" 그럼 내년에 집을... "

 

하면서 그녀, 인생스케쥴을 짜 주겠다기에 어디 한 번 해 보라. 하고 말하니 아연 긴장한다. 슬쩍 쳐다보는 듯 싶더니 잽싸게 눈길 돌리며.

 

" 시간 있는 내가 알아볼께. "

 

그녀, 6개월 전으로 퇴행했다.

그리고 마음을 삭이고 또 삭인다.

 

- 내가 너를 기다려 십년을 돌아 왔다.

- 터를 잡지 못 한 채 부유하듯 살며...

-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돌며...

 

그녀는 이제 어찌할 것인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홀로 떠날지.

다시 집착처럼 함께 할 집을 알아보며,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릴지.

 

그녀가 밤을 새며 정보의 바다를 누빌 때

불안이 엄습해 오면서도 힐끔.

자만하는 자신이 들여다보아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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