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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 혜정아 ! "

 

뚝 끊어진 전화에 열이 확 뻗친다.

안 그래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스마트폰이 터치가 잘 안되어 신경 곤두서는구만, 이 여자가 말을 하다 말고 끊고는 받지 않는다. 지 맘대로 하겠다고. 아니, 저의 뜻과 다른 것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며 상의는 커녕 통지도 않고 갔다. 양평으로. 나는 가련다. 하면서.

어찌 그러한가.

저와 함께 하지 못 하고 혹은 안하는 벗들을 두고 새로이 이웃을 만들어 지내겠다 하면서.

아이들에겐 작은 학교가 모든 것을 챙겨줄 터이니 저는 그 옆에서 손을 거들겠다 하면서.

더 이상 화내지 않으리. 바라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리니 당신들이 내게 마음 둘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면서.

 

" 혜정."

 

그녀를 안고 사랑한다 속삭였지만, 말 뿐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그녀는 배시시 웃고 만다.

그녀의 오르가즘에 동참하고 열을 받아주었지만, 짧은 쾌락이 그녀를 오래 웃게 하진 못하니.

그녀가 녹음을 보고 싶어하는 구나.

들풀 우거진 땅을 밟고 싶어하고 바람 속에 서  있고자 하며

정갈한 식탁과 테라스가 있는 집을 갖고 싶어하나 무엇으로 소원을 들어줄 것인가.

사람을 싫어하니 다만 도시가 싫다 하는 것으로 가려 덮고

경쟁이 싫다하면서 작은 학교에 기대어 숨어 살자 하면서

아이들을, 아이들만, 아직 저의 품 안에 자식이려니 팔을 안으로 굽히고

홀로 지키는 토굴 앞의 괭이처럼 눈짓을 하더니

휙 들어가버린다.

제가 나고 자란 도시를 버리고.

도시 속에 옭죄인 벗들은 그냥 두고

나는 가려니...

 

" 경기도야. "

 

그녀는 언제나처럼 시니컬하게 입술끝을 씹듯 말아올리며 말했다.

 

" 언제라도 턴 할 수 있는. "

 

그녀는 싱긋 웃으며 건너다 본다.

 

" 이 봉우리도 아닌 갑다. 싶으면 금방 돌아올꺼야. 쉽쟎아. 가기보다 오기는 더. "

 

그녀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묻지 않기에.

 

" 너는 할 일이 있지? 여기서. "

 

6개월 전엔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도 네가 할 일이 있을꺼야. 라고 말했으나.

 

" 함께 일하기로 했쟎아. "

 

힘없이, 절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봤으나 그녀는 에이. 하고 만다. 우문에 답을 하면 서로 우스워진다며.

 

" 나중에 내가 일할 자리가 생기면 그때 돌아올께. "

 

그녀에게 트릭을 썼으나 그녀는 알고 들어온 것이니, 이제 그만 나가겠다 하면서 나중에 정말로 우리가 함께 할 만 하면 그때...

전에는 그러지 않았었던 그녀가.

 

- 우리가 함께 의논해서 !

- 네가 단체에 들어온다면...

- 여기...남아서...지역에서 우리가 조직을 만들어.

 

그녀는 십년 전에는 그렇게 말했었다. 연단에서의 구호소리보다 더 크게 울릴 것같은 눈동자로.

그 깊은 안쪽에 눈물을 가득 담고, 공장 거리에 남자고. 함께 조직을 만들자고. 같은 단체에 들어가자고.

그리 할 수 없다 하는 동지에게 더 말 하지 않고 등 돌려 가는 뒷모습을 그냥 바라보면서 혼자 십년 세월을 보냈다.

곁을 맴도는 강아지처럼 아이들이 크는데 따라 이런저런 상담을 해오고 이런저런 일정들을 만들어오고 가찹든 멀든 훌쩍 와서 차 한 잔, 술 한 잔을 청하던 그녀가.

지친 어깨, 허망한 시선을 멀리 두면서 제가 가장 편한 곳으로 그냥 혼자 가겠다 한다.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며.

 

" 낯선 곳에서 뭘 해? 외로울꺼야. "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건너다 보더니 피식 웃는다. 익숙한 이곳에서도 저는 늘 외롭다며.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그저 들판을 바라보기 위해 가는 것 뿐이라며. 재개발구역의 창을 내다보기는 무안하다며.

한 번 쯤은 제 하고픈대로 해도 되는거 아니냐며. 그도 못 하면 인생이 저물어 회환만이 남을 것이니.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아래 있고 싶다 한다.

 

" 혜정아 ! "

 

" 네게 테라스를 공유하자 한다한들 ! "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 힘주어 한마디로 쏘아붙였다.

 

" 너는 들어올 생각이 없쟎아 ! "

 

그녀가 하지 않은 한마디가 남아 울린다.

십년 전에도, 지금도 !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결혼한다 하였고 그녀를 아는 모두가 당황해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보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활동, 과거, 현재 그리고 결혼. 이어지지 않았고 그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 너 때문이었어. "

" 뭐? "

" 네가 결혼해서 아이와 가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

" 그게 무슨...바보같은 소리야..."

" 너와 공통의 화제를 갖기 위해서였어. 실제로 결혼 이후 다시 만나서 잘 지내오고 있쟎아. "

 

그런 여자였다. 제가 집착하는 것에 모든 것을 경사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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