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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2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9
    외딴방
  2. 2011/04/22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7
    외딴방
  3. 2011/04/22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6
    외딴방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9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가 다시 밀어 닫으며 꾸욱 눌렀다, 라푼쩰의 성 문을 폐쇄하듯.

진은 입술에 묻은 뭐라도 닦는 것처럼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돌아서다가 마루 건너, 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이수와 마주쳤다. 비는 그친 듯 했으나 밤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데 겉옷을 대충 꿰어 입으며 가방을 끌듯이 옆구리에 걸고 젖은 운동화를 그냥 꿰어신는다.

" 다 저녁에 어딜 가. "

대답은 커녕 돌아보지도 않고 성난 듯 홱 현관문을 밀어젖히고, 몸을 빼면서 툭 던지듯 말한다.

" 더 늦기 전에 집에나 ! ...데려다 주던가. "

신경질적으로 열어제꼈던 현관문을 손끝으로 떨구며 슬쩍 돌아보는 이수의 얼굴은 못 마땅하다는 듯 잔뜩 찌푸러져 있었으나, 눈길은 진의 방문 쪽을 스치듯 흝고 갔다. 

맞대거리라도 할 듯 현관 앞으로 따라 나왔던 진은 하지만 그냥 마루끝에 걸터 앉은 채 속울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가슴에 한 쪽 손을 얹고. 음. 그녀가...근데, 저 자식이...

머리속에선 뭔가 상황을 좀 수습하여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되돌려야할텐데. 하고 고민이랍시고 떠오르지만. 진은 입가에서 툭툭 떨어지는 미소를 수습하는 게 더 어려웠다.  그녀를 다 안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자신의 속을 다 알게 된 것 같아 한껏 시원스러웠다. 이런 거였군. 하는 생각, 이런 느낌이군. 하면서 저의 사춘기도 이젠 졸업을 하게 되었다하는 맘에 마냥 기꺼웠다. 동생 뿐아니라 아이들, 여고이던 그녀의 남녀공학이던 십대의 청춘들이 애써 곁눈질하고 인내하고 숨고 싶어하며 또 좌충우돌하기도 하면서 겪고 있는 성과 사랑, 신비와 의혹, 불안과 자만, 이제 자신은 그런 혼란에서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진은 모든 것이 좋았고 밝게 느껴졌으며 그녀 또한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말로 안 한다고 그걸 모르리. 그 얼굴을 보면서. 그 몸짓에 함께 휘감기면서. 그녀의 감정이 피부 위로 새겨지는데, 그녀의 욕망이 데일 것처럼 스며오는데. 자신에게 있어선 아련하고 몽롱하며 부정확했던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구체화되었다. 분명해졌고 또 정직해졌다. 그녀는 그 얼마나 용맹스러운가. 눈으로 말하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 아..."

진은 욕실에서 나오며 아뿔싸. 하였다. 그녀는 현관의 안쪽 문을 열어둔 채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침대 위를 다소곳이 정리해 둔 채. 시트를...빼 갔다.  부러 장 문을 열어 새로 패드를 내어 깔아두는 그녀의 손길이 눈에 보이는 듯. 책상 근처를 살피다 식탁 위에 라면들을 얌전히 내어놓고는 그 슈퍼용 비닐봉지에 힘들게 시트를 접어 넣고는 누가 볼세라.

" 그걸...싸 들고 가냐...이 여자가 정말..."

이 애가 그걸 어떻게 세탁하겠나 싶어서? 아님 다른 뭔가가 아까운 듯. 음..츳. 하면서 진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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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7

" 이름. "

그녀는 새로 하이얗게 티셔츠를 갈아입고, 커서 헐렁한 바지를 구겨 입은 채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젖은 머리가 수건 위에서 가지런히 놓여진 것이 손가락으로 애써 빗어내린 듯. 빗물에 씻긴 말갛고 하얀 얼굴, 입술 끝이 분홍빛으로 찢겨져 있다.

" 차 마셔. 둥글레차야. "

" 이름, 넌 이 진이고 동생은 윤 이수야? "

" 응, 나만 성 바꾸고 동생은 아직. 할아버지가 싫어하시니까 아마 갠 그대로 갈꺼야. "

언제부터인가 동생도 저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게 되었고, 같은 부모 아래 다른 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진은 그렇다고 부모의 이혼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고 싶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외부인들의 시선이나 동정에 대해 신경쓸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부쩍 혼자 만의 시간과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진이었기에.

" 흐응. 그렇구나. "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더 묻지 않았다. 엄마의 뜻도, 할아버지의 생각도 알겠다는 듯. 그보다 동생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면서 제 자신의 문제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 우산 빌려주려고 불렀대. 우리집 가는 건 줄 알았었다면서. "

" 으응... "

" 어디 가는 길이었어? "

진은 뜸을 두고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 그냥, 산책. 비가 오길래. 시원할 것 같애서. 걷다 보니 너무 많이 나와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

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더 캐어서 무엇 하리. 저리 상처받은 얼굴로, 저렇게 울 것같은 눈으로, 입술을 숨기고 싶어 달짝이며 고개를 외로 꼬고 있는 그녀에게.

두어번 접어올린 바짓단 아래로 가로 잘려진 종아리, 티없이 하이얀 피부에 도드라진 복사뼈, 짧은 발등 위로도 붉그레하니 상채기가 있다. 생긴 지 얼마 안되는, 무언가에 주욱 긁힌 듯한 자국. 젠장...이건 뭐 아동학대센터에 신고할 수도 없고, 뭐 이딴 경우가...싶은 진은 커다란 머그컵을 두 손으로 부여쥐고 있는 그녀가 추운 듯, 입술을 꼬옥 붙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집에, 그 커다란 상가 건물의 2층 어딘가에 숨어있을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엄마가 끄질려 나와 다시 손찌검을 당하고 있는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걸까. 내리 뜬 두 눈이 촛점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하게. 도망나온 자신의 비겁을 자책하는 듯.

" 추우면 이불 쓰고 좀 누워 있어. 난 피아노 연습할 게 있는데. 낼모레 면접을 봐야 해서. "

" 응. 그래, 너 할 일 해. 난 조금만 있다가 갈께. "

" 아니, 그냥 쉬고 있으라구. 천천히. "

별 말이 없는 그녀를 두고 방을 나왔다. 흐음. 차라리 교실의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수업시간이 더 편안하다던 그녀는 불안한 저희 집의 제 방이던, 남의 집의 남의 방이던 안락하게 한 숨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허나, 예민하게 곤두서는 신경보다 잠이 부족한 채 함부로 넘어뜨려졌던 그녀의 몸은 쉬고 싶어 어쩌지 못 하겠다는 듯, 이내 침대 속으로 기어들듯 누여졌다. 동그마니 움추린 채, 얇은 눈꺼풀을 내리덮었으나 파르라니 떨고 있는 그녀, 얕은 잠 속에서 허우적대는 듯.

그녀의 누운 침대를 손잡이 돌려 스르륵 문 열어보고 확인하면서 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한 발을 문지방 위에 걸은 채. 끼익. 하고 문 여는 소리가 뒤에서 나지 않았으면.

휙 돌아본 마루 건너 이수가 서 있었다. 굳었던 이마에 조금씩 인상을 팍 쓰기 시작하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저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듯.

도로 문 닫고 식탁 앞으로 오니 이수도 마주 걸어와 의자를 내어 앉는다. 누이도 앉으라는 듯.

" 나도 차 좀 줘. "

진은 네가 타 마셔. 라는 말이 머리에는 떠 올랐으나 입은 꾹 다문 채 찻주전자를 가스불에 올렸다. 엄마가 출근하기 시작한 이후, 진이 먹고 있는 상 위에 제 손으로 밥 한 그릇 더 떠 와서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빈 밥그릇 개수대로 숨기면서 자리를 뜰 지언정 누이에게 식사시중 들어달란 적 없다고 말하던 이수였다. 끓은 물 찻잔에 부어 둥글레 티백 넣어 가져다 줄 때까지 식탁 앞에 자리보전하고 있던 이수는 턱으로 앞자리를 가리킨다.

" 왜? "

" 뭘? "

진은 싱거운 놈. 하는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제 앞엔 반 남은 물컵 만이 놓여있는데.

" 차 마셔. "

" 됐어. "

" 그럼 냉수라도 마셔. "

" 뭐? "

네가 또 시비를 걸 양이면 상대해 주겠다는 태세로 자세를 고쳐 앉는 진에게 억양의 강세 없이 말한다, 이수는.

" 물도 씹어먹어야 한대. "

싸울 생각 없다는 듯, 긴장 없이 이어말하는 이수.

" 씹어 먹으라구. 서른 번씩. 그게 건강에 좋대. "

진은 댓거리하기 귀찮다는 듯, 가만 있다가 물컵 들어 한 번에 들이켰다. 입 안에 넣고 가만 있으니 조금씩 목구멍을 흘러내려가는 물줄기가 느껴온다.

이수는 그냥 쳐다보며 차를 홀짝 거린다. 뜨거워서라기 보다, 오래 앉아 있겠다는 듯. 피아노 좀 쳐 보지? 하더니 진의 방문을 한번 흘낏 하면서 조용한 걸루다. 하고 뒤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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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6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장대같이 굵게 쏟아지는.

맞으면 아플 것 같았다. 저는 아니라도. 함께 비를 맞고 있던 동생 이수는 아니라도. 그렇게 작은 어깨와 작은 발을 가진 그녀는. 여름이라도 추울 것같은 반팔 티셔츠에 어울리지 않는 체크무늬 조끼를 걸치고 기장 긴 티셔츠 아래로 역시 체크무늬의 플리츠 스커트를 휘감고있는 그녀는 맨발에 굽낮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발등 위로 흙알갱이가 묻은 걸 떨어내고 싶은 듯, 그녀는 장대비가 내리는 처마밖으로 한 발을 슬쩍 내밀었다 얼른 집어넣었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는 제가 얼마나 더 크냐는 듯 그녀의 어깨 위에서 턱을 한참 높게 치켜들고 한길 건너만 응시하고 있다.

빗길에도 홱 지나가는 버스와 뒤미처 따르는 자가용과 택시들 위로 진을 발견하자 턱을 옆으로 기울이며 눈짓을 하는 이수는 니 친구 꼴 좀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현관을 들어서기를 거부했다. 괜찮아.라는 말만 연발하며. 우산만 빌려주라며. 집에 가야 돼.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 감기 걸린다니까. 빨리 들어와. 집엔 나중에 천천히 가구. 한낮인데 왜 그래. "

말하면서 진은 흘낏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먹장구름이 낮게 내려앉은데다 천둥까지 칠 기세다. 번쩍.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입술을 딱 붙이고 있었으나 순간 부르르 떨리며 이빨까지 부딪히기 시작했다. 물 먹은 테가 잘 안 나는 조끼 안, 하얀 티셔츠가 몸에 딱 달라붙은 채 주르륵 흐르는 물방울을 밑단까지 안 가서도 후루룩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 오한이 나는 듯 했다.

손목을 잡아 끌다시피 하여 집안으로 들어왔다. 젠장...헨젤이 쥐어주는 뼈다귀도 이처럼 가늘지는 않으리, 뼈 모양을 본떠낼 것 같은 그 피부는 어린시절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떼어 손 안에 쥐었던 때처럼 차갑게 미끌거렸다. 마룻바닥에 물 떨어지는 것을 수습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제 방 안으로 넣고 커다란 수건을 가져다 머리에서부터 씌워 주었다. 서랍에서 새로 산 티셔츠와 예전에 입던 반바지를 한참 뒤적거려 찾아내어 침대 위로 던져주고 주전자에 물 끊여 따뜻한 차를 타오겠다. 말하고 방을 나왔다. 그녀에게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을 주기 위해.

" 어디서 만났어? "

이수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물어보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던 이수는 바지 허리춤을 얼른 올리며 인상을 팍 쓴다.

" 노크 ! "

" 알았어. 근데 어디서 만났어? "

" 바로 거기지, 어디야. 횡단 보도 앞에 서 있길래, 우리집 가려나 했더니 우산도 안 받고 완전 생쥐꼴이 되어갖곤 저쪽 네거리로 가지 뭐야. 거긴 뚝방길 밖에 없는데. "

" 그래서? "

" 뭘 그래서. 그럼, 그냥 가라 그러구 냅둬? 뚝방 공사한다고 다 헤쳐놔갖구 비오면 미끄러워서 위험한거 몰라? 안 그래도 산책로 폐쇄된 뒤로 깡패들만 돌아다니는데 거길 왜 가? 이 비를 다 맞으면서. 누나 친구, 좀 이상한 거 아냐? "

 하면서 이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 이 자식이! 말 조심 안 해 . "

하고 말하는 진의 목소리는 바깥쪽을 돌아보면서 잦아들었다.

" 어디 가냐 그래도 말도 없고 보고도 못 본 척 하구 그냥 막 가더라구. 그 꼴을 해 갖군, 내가 아니라도 네거리에 서 있던 경찰이 잡으러 올 태세였다구. "

" 경찰이 왜? "

이수는  한심하다는 듯 누나를 쳐다보았다.

" 신발 짝짝이로 신은 거 못 봤어? 머리는 산발에, 입술은 터져서 피 흘리고.  흙탕물 뒤집어쓴 채 고개 푹 숙이고 뚝방길로 올라가는데, 그게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품이지, 정상이냐구. "

그리고 이수는 이어서 중얼거렸다. 쫄딱 젖어서 젖탱이, 방탱이 흔들고 가는데...

" 야, 임마 ! "

빽 소리치는 진에게 손을 내저으며 알았어, 누가 뭐래? 하고 일찌감치 항복한다.

" 내가 붙잡아 두지 않았으면 어느 깡패같은 놈들이 따라붙었을 지 모른다는 얘기야. 그래도 돼? "

" 아, 그래, 암튼 잘 했다. "

그녀가 방에서 나올까 싶어 얼른 나가려는 진의 뒤에서 한마디 더 해보는 이수.

" 그러면 안 되겠으면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

" 뭐? "

" 애인 구해줬는데, 고맙지 않냐? 아직 따 먹지도 못 했는데... "

" 야 ! "

그예 진은 동생의 멱살을 잡았다.

" 지가 찔리니까, 흥분하고 그래. 아니면 말지, 왜? "

" 너..."

진은 멱살 잡았던 손을 놓고 조용히 말했다.

" 너, 진짜 말 조심해라. 거실엔 아예 나오지도 마. "

" 누나야말로, 조심하라구. 방에만 있지 말구..."

쾅 닫고 나가는 진의 남은 그림자에 대고 마저 말하는 이수.

" 아주...사고 치기 딱 좋은 분위기라구.  그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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