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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외딴방
  2. 2011/04/1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1
    외딴방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 스트레스에 치여 지내야 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두번 째 해에.

1학년 때부터 성적을 강조하는 분위기의 교실에서 혼자 딴짓하기만을 계속 하던 그녀는 전혜린을 함께 읽는 짝궁을 만나 한때 행복했노라 하였다. E.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며 소유냐 존재냐 혹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는 짝궁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업시간 중에나 아니나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감상을 짧게 혹은 길게 휘갈겨 쓴 쪽지를 짝궁에게 보내고 또 받으며 사고를 진전시켰으며 점심시간 내내 서로 아무 말 없이도 운동장을 돌며 산책을 계속 하기도 했다. 교환일기,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짝궁이 아니어도, 부드러운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사랑에 대해 쓰고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없이 낭만적인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청회색,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그런 색조로 물들어있었다고 말했다.

- 고등학생이 되면 다를 줄 알았어.

그녀는 열다섯살을 넘긴 중학시절에 사춘기를 졸업했고 인식은 꽃처럼 지평을 넘고자 했다. 사상, 자유, 학문과 사랑,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은 국어선생님과 작문, 세계사, 그리고 지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으나 교과의 내용과 진도, 시험문제 따위를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었다.

- 국어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학교에 있지 않았을 지도.

그녀는 특히, 2학년이 되어 짝궁이 이과를 택해 다른 반이 되자 더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그리 말했다. 선생님을 따라 스카우트활동을 했으나 교실보다 더 밀접하고 가까운 교우관계를 형성해야 할 단실에서 그녀는 더 두드러지게 외돌아졌을 뿐이었다.

- 군중 속에 묻혀있으면 말없이 있어도 티가 안 나는데...

그녀는 동급생들이 떠들어대는 어떤 화제에도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소재에도 그녀는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티비를 보지 않았으므로 연예인의 이름을 몰랐고, 엄마가 사다 준 시장의 옷 외에는 입어본 적이 없으므로 브랜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다못해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상급생 오빠에 대해서도 함께 손 붙잡고 매점을 오가면서 수다하는 친구가 없으니 아는 척할 만한 이름이 없었다.  말참견을 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댓거리를 안 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은 더 말 붙이지 않았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과 나란히 테를 만들고 있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등을 보인 아이들의 테두리 밖에 혼자 앉아 있거나 앉아있다가 창 밖을 보거나 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못내 궁금증을 못 이겨 아까 읽던 책을 다시 펴 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고 아는게 많은, 한마디로 공부 잘 하고 재수없는 여자애였다. 중학시절부터 고교시절에도 내내.

똑똑한 아이. 라는 레테르는 이미 중학시절에 붙여졌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진은 그런 말을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에게서 들었었다. 교무실이나 음악실을 오가면서 선생님들은 아주 유식한 애가 하나 있다고. 수업 중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을 다 알아 먹는 다고. 공부도 잘 하고, 괴테의 소설을 읽고 있던데 아주 문학소녀야. 하면서 문과계열의 선생님들은 수업할 맛이 난다고 하였었다. 덕분에 한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하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파르타요. 아테네요. 하고 대답하는게 유행이었다. 

그녀는 소통이 되는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다면 학교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걸 좋아했다. 알고 아는 것을 넓혀가고 넓은 지식의 세계에서 진리를 깊이있게 탐구하고 싶어했다. 세계, 인식, 영원한 것과 삶의 진리, 세계사의 필연과 결론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란 아마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또 논구하는 곳일 것이다. 그녀는 독일의 짐나지움 혹은 프랑스의 대학과 같은 분위기에서 학문에 몰입하고 싶어했다. 알지 않고서 어른이 되는 것, 사회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겁내 했고 경험하기 전에 먼저 인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녀가 성적을 떨어뜨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어쩌면 그걸 통해 묻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수업을 잘 듣지 않았으나 그건 교과서 몇 페이지의 진도를 나가는 데 40여분의 수업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었고 읽은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범위에 입각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의미하거나 나아가 가식적이고 굴종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성의 없이 시험을 치르거나  답안지를 한 줄로 메꾸었고 한번은 이름만 기재한 빈 답안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담임에게 불려갔고 원하는 내용의 피드백이 아닌 질타와 걱정만 한 아름 듣고 돌아와 이후 선생에 대한 기대를 끊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학교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학교는 어떤 필요가 있는가. 대학을 가기 전에 거쳐가는 기관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건 이미 한국의 모든 학생들과 그 부모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부러 깨닫거나 또 절망하는 것은 오직 그녀에게만 새삼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했고 몹시 우울해했다. 그녀가 마음 둘 곳 없이 방황을 계속 하면서 그렇게 무미건조한 채 조금씩 웃게 된 것은 그저 실소였으나, 그 미소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게는 되었다. 2학년 시절 한 패의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떡복이집이나 나이트를 가게 되는 것. 그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친한 척 했으나 그건 그저 1학년 때의 짝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겐 무엇이 필요했을까.

마음을 나누며 동문수학할 벗이 필요했다. 혹은 연인이 필요했을 지도.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그때 열 아홉살의 물 오른 처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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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1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를 칼처럼 목에 걸고 듣느니 네가 몇 점이냐, 보느니 재가 몇 등인가 하는 폴 인 스트레스의 상황이었으나 욕구를 유예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춘향이가 몇 이었고 길동이는 몇 이었으며 또 죽음을 결심한 쥴리엣은 몇 이었나. 고등학교를 이리 규방처럼 옥죄이고 머리로만 공부하라 할 양이었으면 여자들은 좀더 일찌기 취학하여야 했을 것이다. 대학이 길이 아닌 빈궁의 여식들은 상고를 다니며 화장하는 법조차 배운다 하고 음악시간엔 음악을, 미술시간엔 미술을, 그리고 무용을 안 해도 체육복을 터질 듯이 입고 햇살 아래 허벅지를 드러내며 신체활동을 즐긴다는데. 여대생이 되어보지 못 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후일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애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가슴 저변에 깔고 살다가 방통대를 기웃거리는 2프로 부족한 현모양처가 될 지 언정, 지금 그네들의 청춘은 자유롭다.

자유를 갈구하는 맘이 그녀를 밤에 나가게 한다.

경제력이 없고 용돈을 받아 늘 주머니가 풍족한 부잣집 딸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밤에 갈 데가 없다. 낮에도 교실에만 있었고. 집에 와서는 제 자그마한 방에 처박히고 싶으나 깔끔하니 치운 책상 위, 빨간 라디오 하나 구석에 놓고 93.1 메가헤르쯔의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고 싶으나 지 선상의 아리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고함소리에 떠밀려 집을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는 매사에 성난 고함소리와 욕지기로 제 속의 화를 쏟아내었으나 그걸 쓰레기처럼 뒤집어쓰는 엄마는 속으로 골병이 들고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오늘의 스트레스 지수는 보통에서 약간 상위이긴 하나 폭력이 난무하는 고수위는 아닌 듯 하니, 그녀는 엄마가 매 맞지는 않으리. 허나 저리 정신적 고통과 괴롭힘 당하는 것에서 구해 나올 수 없고 그렇다고 함께 당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하며 도망치듯 나온 것이다.

- 내가 무어라 했는가. 진즉부터 저런 남편을 버리고 이혼해서 살아도 굶어죽지는 않을테니. 함께 나가자. 하지 않았던가.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엄마이니, 저리 당하고 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허나, 나는 필히 나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말을 열 서넛 먹은 나이부터 엄마에게 해왔었다. 진지하게, 사정하며, 나중엔 비아냥거리며. 아빠의 손찌검을 피해 올라가 숨은 옥상에서. 쫓아오는 그림자를 피해 타넘은 남의 집 지붕 위에서. 깨어진 유리창 조각들 너머 움추렸던 어느 구석지에서.

울고 울면서 그녀의 눈물은 샘의 바닥을 끌어올리듯 항상 차 넘쳤고 조그마한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에도 예민하게 연동했으며 그럴 수록 소리 없이 감정을 퇴적시켰다.

 

- 저 애가 낮에도 혼자 산책을 일삼더니.

진은 제과점 안에서 거스름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 창을 곁눈으로 보면서 행인들은 진열대의 케잌을 보기도 하고 유리에 비치는 제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바쁘게 홱 지나고는 했다. 하기야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가니, 귀가길이 아니어도 얼른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 쉬고 싶어할 만한 때가 아닌가. 집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집이란 그런 곳이니.

쉬고. 쉬면서 먹고. 먹을꺼리를 내 입에 넣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걸 보는 것이 더 기꺼운.

- 저 애가 이 밤에 집에 안 있고 뭘 하러?

진열장 안의 케잌을 눈여겨 보는 듯 하나 먹고 싶어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금방 고개를 돌리고 휘익 지나가는 그 애의 발걸음은 그러나 별로 빠르지 않았다. 진은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손을 찌르고 다른 한 손에는 식빵 봉지를 들고 제과점 문을 밀고 나와 섰다. 폭좁은 인도를 따라 죽 늘어진 가게들의 조명발에 늦은 밤거리는 어느 때든 상관없이 밝기만 하였다.  길 아래쪽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애가 보였다. 방금 지나온 제과점 위쪽의 횡단보도가 더 가까웠을 텐데. 진은 그 쪽으로 건너 저의 동네로 돌아갈 것이었으나 동시에 신호를 받는 짧은 두 개의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람들은 곧잘 사선으로 건너기도 하였기에 잠시 그냥 서 있었다.

저 애에게 아는 척을 하기에는 좀. 시간도 장소도 아닌 것 같았으나 무엇보다 그 표정이 아니었다.

- 대체 저 침울함의 정체는 뭐냐...

진은 고고학자의 수수께끼를 감춘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시선을 떼지 않고 주의를 집중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저 애의 실루엣, 저 표정에서 흐르는 슬픔? 냉소? 허탈감? 산산히 부는 바람 속에서 그냥 스러져 희미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

- 왜 저 애는 항상 혼자 걷고 있는 걸까.

진이 그 애를 눈에 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의 넓은 교정을 가로 돌며 고등학교의 교사까지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키작은 꽃나무들 속으로 몸을 숨길 듯 걸어가는 모습에서부터였을까. 안 보이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무심히 지나쳐 붉은 벽돌담의 여고 쪽으로 걷는 그 애는 저는 그 쪽에 볼일이 있어 간다는 듯 하였으나 짧은 점심시간, 걸음은 빠르지 않았었다. 해가 중천에 있던 어느 이른 하교길에서도 그 애는 홀로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진이 방금 헤어져온 아이들과 수다하던 가수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서 있던 횡단보도를 멀리 두고 차도를 만드느라 쌓아올려진 뚝방길 위쪽으로 발꿈치를 숨기며 멀어지곤 했다. 가방을 멘 어깨가 무겁다는 듯 땅바닥에 붙은 민들레의 그늘 아래로 묻힐 듯 낮고 느리게 사라지는 그애의 혼자 가는 뒷모습이 눈에 남기도 하였다.

사실 남았을 뿐,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어느 구석으로 밀려갔는 지 다시 생각하지도 깊이 숙고하지도 않았었다. 중학교를 미련없이 졸업하고 다가오는 여고생활이 기대 반, 짜증 반으로 귀찮게만 느껴지던 겨울, 2월의 그날에도 쵸컬릿만 빼어 식탁 위에 던져 놓은 채 진은 메모하는 걸 잊은 스냅사진들이 아랫 서랍 어딘가에 있다는 걸 가끔 떠올렸을 뿐, 그애의 혼자 걷던 실루엣도 선물상자 속의 편지도 차가웠던 손가락의 감촉도 하나로 꿰어 인식하지 못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에 뭐가 걸려있는 듯 답답증을 느끼기는 하였는데, 그게 뭔지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으니, 그건 엄마가 혼자 있는 뒷모습을 발견하는게 잦아지면서 자꾸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식사준비에만 소흘해 진 것이 아니라 엄마는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진은 식탁 위에 놓여진 잼이 조금씩 주는 것을 보며 식빵을 사 오겠다고 밤 늦었는데 뭐하러. 하는 엄마의 끊어지는 목소리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길 건너 제과점까지 부러 길게 걸어 나왔다.  행인도 많이 줄어든 골목길을 지나 혼자 걸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열 여섯의 여고 1년생. 진이 가진 레테르였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왜 사람들은 혼자 걸으며 혹은 혼자 오도카니 식탁 앞에 앉아 혼자 만의 생각에 골몰하게 되는 걸까. 진은 저 자신이 그러고 있는 적이 많아지는 걸 미처 인식하지 못 한 채, 엄마를 생각하다가 또 그애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둘러싸이듯 교실에서 거리에서 집에서도 늘 전화를 받으며 친구들 속에 있느라 그 무리들 너머에 또 다른 아이들이 있으나 역시 그네들도 누군가과 함께 웃거나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진은 선생님들이 소녀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 애를 휙 밀어놓았다. 동생도 사춘기고 여고의 동급생들도. 색기를 더해가는 정원도. 사춘기의 소녀들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 근데 저 애는 왜 맨날 혼자 저러구 다니냐구. 세상 고민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 무거운 듯, 엄마의 등 돌린 모습에서 처음엔 화가 나고 속이 상하다가 나중엔 그 어깨가 미동도 없이 결연히 굳어지는 것을 보며 함께 마음이 다져지고 있던 진이었다. 엄마는 이혼을 할 것이고 또 취직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어쪄면 처음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었다. 결혼하고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마흔의 나이에.

그 불혹의 나이에 세상을 처음 맞닥뜨리는 소녀처럼 결의를 다지고 있는 엄마는 안쓰럽기도 하고 또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진은 가족이 있던 없던, 그 가족이 남편이던 자식이던 자신의 생은 결국 혼자 만들어가는 것인가보다. 싶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왜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 하는 걸까. 하고 진은 오래 고뇌하게 되었다.

- 저 애가 저렇게 혼자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진은 그애가 주고 간 선물 상자를 서랍 어디에 두었더라. 하는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선으로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그애가 어둠 속을 가르며 네거리의 어느 쪽인가로 사라지는 것을 먼 눈으로 보고 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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