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1/04/29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4/2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외딴방
  2. 2011/04/2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외딴방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진은 열 일곱이었다. 제가 12월 생이고 그녀가 8월 생이니...2년하고도 4개월...뒤에 태어난 셈이다. 흠...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진은 동생이 학교에서 동급생들에게, 그러나 나이로는 1년 하고도 몇 개월씩 차이나는 여드름 덕지덕지한 뚱보들을 내려다보며 씹듯이 뱉어내던 말을 거울 속의 저를 보면서 하고 있었다.

이수가 키가 훌쩍 커 버린 2학년 이후 사춘기에 내몰린 남자아이들은 패를 짓거나 혹은 은둔하면서 성적 호기심을 다 채우지 못 한 채, 저 보다 더 키가 큰 놈의 나이를 시비삼지 못 했고 못 하면서 코가 큰 놈은 거시기도 크다더라. 하는 말을 떠올리며 밥그릇 수는 적은데 어찌 그게 다 코로 갔나. 하면서 이수의 매부리코를 흘끔거렸다.

오히려 그 이수하고 나란히 서면 동급생처럼 보이는 게 그녀였는데.

진은 두 살 차이가 뭐 대수라고.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하였지만 그녀가 주민등록증 나오지 않았느냐고 지나가듯 물었을 때는 못 들은 척하며  넘겼다. 그녀도 재차 묻거나 하지 않았는데, 아마...제가 일찌기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달랠까봐 두려웠던 듯. 진은 나야말로 두렵다. 없는 걸 보자 하면 어쩔까 싶어서. 2학년 내내 교실에서는 가끔 주민등록증을 보이며 몇 달 언니네 동생이네 하는 동급생들의 수다가 끊일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귀를 파고드는...그 놈의 나이타령. 진은 속으로 곱씹었다. 그럼...내가 니를 언니라 부르리...하는 대사를 혼자 치면서.

언니라 부르며 안을 수는 없지 않은가...아마 그보다, 그녀가 결코 안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보다 동생에게. 한 살 차이로도 억수로 고뇌하는 그녀인데. 그래서 진은 더욱, 실제 나이같은게 무슨 소용이냐. 학령기 이후 교육기간이 얼마인데, 이미 사회화되는 만큼 성장의 속도는 비슷할 것이다...닥쳐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진은 그녀를 껴안았던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두번 째부터는 벌써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흠칫 놀랐었다. 뭐, 나중에는 찬탄해 마지 않았으나. 그녀의 흥분과 강도, 지속성 뭐...재발성? 아니 반복성? 까지 진은 그녀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사실 솔직히 거울 속에서 자신 외에 듣는 이 없으니까 말하는 거지만, 진은 그녀에게서 거의 배우는 수준이었고 간신히 티 안 나게 따라해 보며 느끼는 상태였다. 물론 겪어보니 장난 아니게 좋았지만. 뭐...그렇게 하는 거구나 싶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녀에게 충실하지 않았냐 하면 전혀. 진은 정말 열심히. 하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그녀의 성감대 찾기에, 그리고 발현시켜주는데 온힘과 정성을 바쳤다. 물론...빨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제가 먼저였지만 엄지...하나에 그렇게 허리까지 출렁일 줄은 몰랐다....다음 순간에 그녀가 벌떡 일어나 부딪껴 올 줄도.

진은 그런데, 대체 뭐가 부족했던가. 하는 고민에 잠을 못 이뤘다. 그녀는 왜 싸돌아다니나. 왜 고민이 많나. 왜 좋을 때 그냥 푹 빠지지 못 하고 늘 반쯤 정신이 딴데 가 있나...왜 조금만 내버려두면 좌절모드가 되어 뭔가를 결정짓지 못 해 고심에 찬 사람처럼. 마치 햄릿이라도 된 듯 번뇌하다가 황당한 결정을 내리는가...진은 그녀가 또래보다...는 아니라도 여느 예비 고 3처럼 입시에 몰두하지 못 하는 것도, 대학을 가벼이 여기면서 또 사회인이 되는 것에 대해선 말할 수 없이 무겁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국어선생으로부터 빌려보는 여타의 사회과학 서적들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그녀가 끼고 있던 책들, 작은 거인인가 8억인의 나라인가 그런 것들이 엄마의 책장에도 꽂혀있었다. 순...운동권 책들이었다. 알고보니. 그녀가 학교의 민주화 뭔가 하는데에 섞여들었으면 아예 입시를 칠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운동할라구 대학을 갔을 지도. 아니면 아예 공장으로 직행했을려나. 나중에 보니 고등학생 운동권이라는 것도 있었더라니...

진은 요컨대 제가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면서 어쩔 수 없이 화가 나고 대책이 안 섰다. 그리고 천추의 한이다 싶은 것이. 그녀가 고백을 하던 그 겨울에 바로 대답을 했으면. 그랬으면 우린 즐겁게 고교시절을 시작했을 것이고, 그녀는 그 소위 철학적인 짝궁이나 보나마나 운동권이 틀림없는 노처녀 국어선생이나 뭐 기타등등에 별로...휩쓸리지 않았을까? ... 대학을 들어가고 그녀가 데모를 하러 가던 길에 마주쳤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동창생이 말하길, 넌 운동할 것 같았어. 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그 동창생이 중학시절의 아는 얼굴인지 고교시절인지, 솔직히 그녀는 너무 희미해서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지만 진은 그 동창생의 이름을 듣자 바로 기억이 났다. 그녀와 2학년 때 한 반이었던, 그리고 진과는 3학년 때 한 반이었던 그 동창생은 중학시절, 운동장을 돌면서 체력장 연습을  하다가 문득 저쪽 모둠을 바라보면서, 저 애, 너 좋아하나 봐. 작년에 맨날 창에 붙어서 너네반 체육하는 거 보고있더니, 지금도 네 쪽만 쳐다보쟎아. 하였었다. 그때 진이 뭐라 했던가. 씨익 웃으며 내가 워낙 한 인기 하쟎아. 했었다. 왜 기억이 생생할까. 얘들 속에서 그저 한 인기 하는 거에 맞춰 나이스하게 살았지만, 사실 뒤통수에 꽂히는 그녀의 시선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애가 나를 틈만 나면 쳐다보네. 하면서 휙 고개 돌리면 어느 틈에 딴데 쳐다보고 있는...여시같은 기집애. 하면서. 그러면서 내가 너무 이쁜가. 했었던가...진은 츱. 하고 거울 속의 자신을 한심하고 딱하다는 듯 흘겨봤다.

" 이 애를 어떻게 꼬시지..."

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누가 조언 좀 해 줬으면. 연애초보자들은 다 어디가서 상담을 하나. 상담을 하면 반드시 사실대로 밝히고 도움을 구해야지. 실은 제가...두 살 연상의 여자를 사귀는 데요. 그 여자가 방년 열 아홉이라, 은근짜루다 아주 색기도 장난 아닌데다...뭔 고민은 또 그리 많은지...제가 아직 갓 열일곱이라 뭘 좀 모르거든요. 세상도 모르고 남의 사정 헤아릴 줄도 모르고 사실 알아도 미성년자니 돈도 못 버니깐 도와줄 수도 없지만, 그래서 울 엄마도 지금 직장 다니느라 고생이지만, 아 뭐 부모님이나 가정문제 고민하는 건 아니고...까놓고 말하면 일단 잠자리 문제가 젤루 큽니다. 나한테 푹 빠지면 그녀가 딴 생각 안 하구 의지해 줄 것 같은데. 나이 많아 봤자, 어차피 고등학교 졸업하는 건 똑같아요. 혹시 재수 없어 재수라도 재수좋게 하게 되면, 금상첨화인데...예측컨대 대학생 되는 것도 같은 시기에 될 꺼구요. 보시다시피 전 남자도 아니니까 군대가서  뭐 사회진출이 더 늦어진다거나 하는 핸디캡도 없어여...그러니깐, 그녀를 먹여살리는데도 별 하자 없고....근데 그녀가 문제죠. 까탈스러워서는 경제적이던 뭐든 의존하는 거 댑따 싫어해요. 여성성이라는 게 싫대나 뭐래나...제 2의 성이라는 어느 프랑스 아줌마의 책이 끼친 영향이 대단한 거 같애요. 거기다 마가렛 미드인가 하는 여자가 뭔 원숭이 연구하면서 인류의 결혼제도가 고정불변한 게 아니라는 둥. 저는 손톱 길이보다 더 두꺼운 책은 잘 못 읽어서, 뭐 발췌 읽기 하듯...도 아니고 딱 한 장 밖에 안 봤지만 대충 떠들어본 다른 장 들의 내용은 필시 그녀에게 매우 독립적이거나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종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휴...물론 제가 그녀를 남성적 입장에서 소유하고 싶다는 건 아니구요...하지만 그녀가 저렇게 고민하면서, 부모님과의 불화를 기성세대 전체와의 대적으로 몰고 가면서 현실을 부정, 거부하는 것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변강쇠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그녀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코드에 맞춘다고 맞췄지만 늘 한 발 앞서나가는 그녀 덕분에 진은 인식하기 이전에 행동을 해야했다. 입맞추려나 하면 빨아야 하고, 이제 감도 올라갔다 싶으면 허리 운동하느라 세빠질 지경이니...무아지경으로 헛손질하고 있는  자기 앞에서 그녀가...푸욱 적셔오는데 원...진은 자신이 오르가즘이 늦은게 문제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2년의 성숙도가 이렇게 차이 나나 하고 의구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열 아홉살이었던 해의 겨울.

그녀는 어지간히도 힘들었던가.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을 자주 바꿨다.

" 아빠가 대학을 가지 않으려거든 취직을 하라고. 아님 시집을 가던가. "

그녀는 음울하게 말했다. 그간 듣기로 그녀의 아버지는 말을 가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깊이 생각하고 하는 것도. 하지만 그녀는 말 실수 속에 무의식적인 소망이 담긴다고 주장하는 정신분석학자처럼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생각한 듯, 고졸의 자격으로 취업을 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나, 저의 친구 중엔 상고를 다니는 이가 있으니.

" 사회에 나가는 게 무서워. 나는 아무것도 정립하지 못 했는데. "

물론 시집을 간다는 건 더 황당하다. 참...

진은 말을 잊은 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 저건...

그녀가 자신의 주변,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같은 걸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인식하지 못 하는 것은 그 국어선생님의 탓이다. 하는 생각을 진은 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소 관념적이고 철학적이긴 했으나, 보다 더 문학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물론 진이 그녀를 먼 눈으로 보고 있었던 중학시절에는 더우기나. 3년 내내 저만을 바라보면서 말 한 마디 못 붙이다 겨우 쵸컬릿 상자 하나를 건네기 위해 겨울 밤거리를 건너오던 그녀가 아니던가. 감성에 젖어 짝궁과 숱한 편지를 쓰며 밤을 지새다가 그 짝궁이 이과를 선택하자 저도 그래야 하나 하고 오래 고민하던 그녀였다. 저에게서 화이트데이의 꽃다발을 받고 당황하며 얼굴 붉히던,  미소 한 번 손길 한 번에 표정 바꾸며 그러면서도 마음 안 열고 오래 애먹이며 새초름하던 그녀였는데. 진은 한숨이 나왔다.

처음 안아보았던 여름 이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는데, 손을 꼽을 만하다. 물론 그 적은 회수의 넓은 간격 만큼이나 안을 때마다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며...아니 생각지 못했던 부면에서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그녀를 안다보니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츱...진은 성질이 날 것 같았다. 그 국어 선생 때문이다.

그녀가 자주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것은. 제가 전화하고 찾아가고 다음 약속 미리 잡고 하면서도 그 사이로는 연락 한 줄 없이 한 주고 두 주고 그냥 흘려보내며 침잠하던 것은.

생각해 보니 시월에는 아예 한 번도 못 만났다. 진이 혼자 열 받아서 연락 안 했더니, 이게 끝까지 전화 없는 것이...이러다간 그냥 인연 끊길 것 같았다. 그녀가 이렇게 곁을 흘려 보낸 이가 한 둘...이다. 저까지 셋이 될 듯. 정 없어 그렇지는 않은 것이 그녀는 맘에 담았던 친구, 그 소수의 친구를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인데. 진은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만 하는 대상이었던 것을 자각하자 요 몇 개월 얼굴 맞대고 또 몸도 맞대었다 한들, 그녀에게 추억 속의 존재로 전락하기는 정말...몇 날밤을 공들여 써내린 장문의 편지를 보내지도 않고 서랍 속에 묵히는 그녀에게 있어...어느날 쓰레기통으로 내다버리는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하긴...

진은 혼자 침울한 그녀를 앞에 두고 공감을 표한다는 듯, 말없이 혼자 골똘하다가 설핏 웃음을 흘렸다. 아, 상담을 시작하지 못 하고 있는 내담자를 기다리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진은 달을 넘겨 다시 만난 그녀가 먼저 안겨 오고, 그 안겨 오던 밤이 떠오르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미소를 수습하기가 난감하다. 슬쩍 고개를 푹 숙여 같이 심각한 척.

" 아무래도 독서실을 끊어야겠어. "

별로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은 듯, 말 없는 진의 앞에서 그녀는 혼자 생각에 빠지고 있다. 아빠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할텐데. 하는 듯.

기계적으로 그런 추측을 하며, 진은 그러나 국어선생에 대한 증오...까지는 아니라도 미움 내지는 불만과 뒤섞인 상념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그녀의 육감적이었던 모습, 가녀린 허리를 두 손 안에 부여잡자 스스로 팔을 올리며 옷을 벗던, 그러면서 진에게도 옷을 벗으라고 꼬박꼬박 강제하던 그 진지한 표정의 얼굴이 떠올라 불쑥 아랫배가 짜르르 해 온다.  그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던 것이...

" 뭐? 독서실? "

진은 신호가 늦게 가는 기계식 전화를 받았다는 듯, 한참 뜨는 말대답을 하였다. 그럼에도 그녀, 응. 하는데. 그래, 뭐 그녀야 기본 자세가 나는 게으른 나무늘보요 하는 식이니. 허나 진은 말대답 늦게 하면서 그녀가 혼자 마음을 다져먹으며 올 겨울엔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나름 생활계획을 다 세우는 것에 침묵으로 동조한 셈이 되었다.

" 독서실 가면 언제 올라구? "

" 아이...뭐 들었어. 수험공부하는 얘들은 그냥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다 한다니깐. 넌 예능계라 안 가 봤겠지만 독서실 총무가 이불 보관도 해 주고, 소등도 신경 써 주고. "

" ...춥지 않을까. 넌 추위 많이 타쟎아. "

진은 할 말이 없어 생각나는 대로 주워붙였다.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라니...총무가 어쩌고...이 얘가 정말...

" 실내인데, 뭐. 그보다 아빠가...허락해 주실지. "

그녀는 정말로, 자기는 집에서 공부하기 힘들다고 한다. 지금까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야 벼락치기 공부로 때워왔지만 입시를 정말로 통과하여 대학을 가겠다면 이렇게는 안될꺼라구. 쪽팔리게 후기 같은데 갈 수는 없고. 아빠는 재수같은 건 없다고 미리 말하고 있는데. 하면서.

" 아빤, 내가 공부 잘 하고 똑똑한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잘났으니까 말대답도 꼬박꼬박 하면서 바락바락 대든다고. "

그녀는 잠깐 띠웠다가 이어 말했다.

" 후기 같은데 가면 등록금 아깝다고 하실꺼야. "

오빠는 삼수까지 시켰지만...딸자식에게 그렇게 투자할 순 없다고. 시집가면 그만인데, 무얼. 하는 말을 귀에 담고 있는 그녀는 결심이 확고한 듯하다.

" 친구들도 다 끊고 공부만 하려구. 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그녀는 수학 땜에. 하였다. 그렇게 걱정해도 1년 뒤 그녀의 수학점수는 한 자리 수였다. 국영수 비중이 압도적인 학력고사에서 수학점수를 그리 받고 전기 간 애는 그녀 밖에 없을 듯.

그런데, 뭐하러 독서실에 처박혀 겨울 삼동을 다 보내냐구!

한숨을 쉬며 불길해 했던 것처럼 그 겨울, 진은 그녀를 제대로...보긴 했으나 안지는 못 했다. 젠장...

그녀는 불쑥 전화를 해 와서는 집 근처 어디라는 둥, 배고프니까 컵라면 먹자는 둥, 공부하다가 너무 목이 말라서. 하면서 음료수 하나만 사 달라면서 왔다가 사 주면 홀짝 먹고는 발길 돌려 총총히 사라지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밥 한 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독서실 갔다고 그녀의 엄마는 탄식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자정이 되도록 기다려도 그녀에게서 전화했었냐며 전화해 오는 일은 없고.

그래서, 그녀가 독서실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 두 달을 보내면서 공부를 열씸히 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독서실에서도 친구끼리 소근대는 것에 귀를 쫑긋거렸고, 이불 덮어주며 징징거리는 애들의 시선을 느끼며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었으며, 낮이나 밤이나 참고서와 문제집을 들여다보면서 지겨워져도, 허리가 아파도,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말 붙여 함께 할 동무가 없어 외로움만 새겼다. 그래선가 어째선가 밤거리, 반쯤 문닫은 가게 앞이나 골목 어귀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보는 그녀의 얼굴은 새로 표정을 만든 듯 웃는 얼굴임에도 하얗게 떠 보였고, 조금 전까지 울었던 것처럼 어색했으며 고개 돌리며 안녕. 하면서는 이내 침울함이 점령할 듯 짙게 그늘이 드리우곤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땐가는 독서실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차림새로 하염없이 뚝방을 향해 인적없는 차로변, 좁고 길다랗기만 인도를 따라 걷다가 네거리의 신호등을 기다려 건너더니 도로 턴 하여 언덕 위로 이어지는 인도를 걸어올라가기도 하였다. 한 밤에. 그 모습을 간판의 불을 끈 제과점 안에서 이수와 함께 빵을 먹으며 지켜보면서 진은 그제서야 그녀가...저를 만나고 사귄다 생각하고 나아가 연애 중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지난 1년 동안에도 혼자 산책하기를 멈추지 않았음을 알았다. 새삼스럽게, 그녀에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외로워하던 것에서도,슬픔을 내성화하던 것에서도 그녀를 덜어내올 수 없었다는 걸 진은 확인하였다. 옆에서 이수가 혀를 차며.

" 저 누나는 왜 저렇게 청승맞어? 저번에 놀러와서 떠드는 거 보니, 웃으면 귀엽고 이쁜데. "

흘낏 진을 쳐다본다.

" 잘 좀 해 주지? 쫌만 친절해도 디게 좋아하던데, 누나랑 친한 것 같더만 그렇지도 않은 가..."

말 없이 표정 굳어진 채 풀릴 줄 모르고 있는 진의 얼굴을 보면서 이수는 얼버무렸다.

" 아니 그런가...집에 무슨 일이 있나 보지...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