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10/04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04
    <싱핑> 드디어(?) 사기당하다.(12)
    제이리
  2. 2005/10/04
    <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6)
    제이리
  3. 2005/10/04
    <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4)
    제이리
  4. 2005/10/04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7)
    제이리

<싱핑> 드디어(?) 사기당하다.

아침에 서둘러 싱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잠시 요우타오(중국식 꽈배기, 아침대용으로 종종 먹는데 맛있다^^) 사러 나간 사이에 본 놀랍도록 많아진 중국관광객 숫자에 드디어 국경절이 시작되었구나 피부로 느낀 탓에 대략 체크 아웃 시간을 맞추는 게 방 잡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버스는 약 삼십분 가량을 달려 싱핑에 도착한다. 사실 싱핑에서의 또 다른 기대는 싱핑에 인터넷이 되는 숙소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부터인데 생긴 것이데 방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삼일도 안나가고 혼자 놀 수 있겠다, 사람들이란 하루종일 메신져나 해야지, 하면서 잔뜩 부풀어 있었던 것이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숙소 이름만 가지고도 쉽게 찾아진다. 일본인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그 숙소는 외관이 번듯하진 않았지만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좀 비싸더라도 저기서 묵는거야 하고 들어서는데 웬걸 방이 없단다. 그래서 내일은요? 했더니 심드렁하게 여긴 방이 하루에 200원이니 저기 싼 데 가서 알아보란다.


분명 내가 본 여행기에는 둘이서 60원에 그것도 한달 정도 전에 묵었다고 되어있는데 이게 국경절 특수란 말인가 슬슬 걱정이 된다. 나가서 삐기 아줌마에게 못이기는 척 방값을 물어보는데 가격을 말해주지도 않고 대뜸 전화다. 좀 있으니 웬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다. 방이 얼마냐니까 80원이란다. 저거 잘못타고 갔다가 방 맘에 안들면 다시 데려다 줄 턱도 없고 배낭 메고 돌아올 일이 꿈만 같다. 노우를 외치는데 어라 잡지도 않는다. 삐기 아줌마 얼마를 원하냐길래 50원이라고 어리버리 대답하니 이번엔 따라 오라며 앞서 걷는다. 그러더니 다리건너 들판지나 웬 농가주택에 데려다 주신다. 여기 낮에는 전원주택이라 치고 밤엔 어쩌란 말이냐.. 안 그래도 안 잘 판인데 집주인 60원 아니면 안된다길래 얼씨구하며 돌아 나온다. 정말 이러다 다시 양수오에 가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도 나고 괜시리 우울해진다.


배낭메고 다녀 본 주변 방들 가격도 만만치 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운 삐끼 아줌마가 등장하시어 또 다른 아줌마에게 넘겨주신다. 강을 등 뒤로 하고 버스 내렸던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니 뭐 그저그런 숙소가 등장한다. 방이 의외로 넓고 환해서 40원에 이틀이요.. 했더니 안된단다. 40원에 잘 거면.. 하더니 1층 구석의 창고 같은 방에다 시트를 새로 깔고 부산을 떤다. 그냥 50원에 묵기로 하고 방에 들어오니 맘이 편해진다, 20일 만에 혼자 써 보는 방이다. 동네도 조용하고 정말 뒹굴뒹굴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게다가 인터넷은 시간당 2원이라는 감동적인 가격이다. 대체적으로 대도시에선 10원, 소도시에선 5원, 상해에서는 무려 20원이나 했었는데 이건 거의 횡재 수준이다.


50원짜리 숙소 동방 빈관, TV도 나온다. 중국어로 더빙된 대장금도 봤다^^^^


담날은 미뤄뒀던 배를 타기로 한다. 계림에서 양수오까지 오는 배가 외국인에게는 대략 450원 정도를 받는다는데 그 구간 중 가장 절경이라는 양디-싱핑 구간만 배를 타기로 맘을 먹는다. 숙소를 나서니 이번에는 어린 여자애가 배타라고 잡는다. 그래, 어차피 매표소도 안보이더만 가격이나 알아보자 싶다. 싱핑에서 양디가는 구간을 물어보니 거기까지는 안가고 중간쯤까지 가는데 200원이란다. 어차피 깍일 가격이라 막 부른다 이거지.. 그래 니맘대로 불러라 나야 안 타면 그만이지 하고 여유를 부리는데 자꾸 얼마면 가겠냐고 묻는다. 이게 거의 중국인들의 공통적인 흥정 방법인데 먼저 되도 안하는 금액을 부른 뒤 난색을 표하면 얼마면 사겠냐고 되묻는 식이다. 그래 얼마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양디까지 왕복을 원한다고 했더니 이번엔 300원이란다. 헉 꼬마가 간도 크지.. 양수오에서 숙소가 20원이었대니.. 참나.. 그냥 노땡큐 했더니 200원, 150원까지 내려간다. 100원에 양디까지 가자고 했더니 다시 처음에 말했던 그 중간 지점을 들먹인다. 됐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지 하고 있는데 이 꼬마 근 한시간을 내 옆을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삐끼 세상에도 의리는 있어 다른 삐기가 붙어 있으면 일단 접근을 안하는 것 같은 것이 어제만 해도 그 많던 삐끼님들이 얼씬도 안해주신다.


어영부영 얘를 어떻게 떼내나 하고 있는데 이 꼬마 드디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100원에 양디까지 가겠다는데 분위기 아무래도 찜찜하다. 양디까지 왕복이 맞느냐고 재차 확인해도 그렇다는데 도리가 있나.. 돈은 갔다 와서 주겠다고 할까 싶었는데 보아하니 배주인에게 팔아넘겨지는 분위기니 것도 쉽지 않고 설마 흥정이 어렵지.. 내용을 속이겠냐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린앤데 싶기도 해 찜찜한 채로 100원을 주고 그냥 배를 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배 한시간쯤 가더니 처음 꼬마가 말한 지점에서 정확히 회선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즉 원래 약속한 지점의 반정도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배였던 것이다. 헉 이렇게도 속는구나 싶은 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니가 생각하는 딱 100원어치만 태워준거로군 싶다. 그래도 두시간은 배를 탔고 한 삼사십원쯤 바가지를 쓰긴 했지만 굳이 한시간쯤 더 가고 싶은 마음도 그리 크지 않아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뭐 나도 중국정부를 상대로 입장료 100원이나 사기치지 않았냐 말이다.^^ 배에서 내려 살짝 흘겨줄려고 했더니 요 좁은 동네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꼬마는 통 뵈질 않는다. 오늘 일당은 다 채운 것일까? 14살에 이름이 제니-웬 제니?-라는 영어도 곧잘 하던 그 꼬마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뭐 험한 세상 최소한 나보다는 잘살지 싶다.



배에서 본 풍경. 날이 잔뜩 흐리더니 내릴 무렵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를 타고 나도 시간이 한참 남는다. 시간당 2원짜리 인터넷은 노트북 연결이 안된다. 안되는 실력에 IP랑 DNS값까지 넣어봐도 그저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오고 일하는 애한테 물어봐도 지는 아무것두 몰라유 하는 표정이다. 컴퓨터에다 한글을 깔아볼까 하다가 에라 내 한계를 넘어서는 짓은 하지 말자 싶어 그냥 웹서핑이나 하다 나온다. 뒹굴뒹굴은 머릿속에선 황홀한데 현실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무지 심심하다. 내일은 또 뭘 하지? 마침 장날이라니 장이나 구경하고 다시 양수오로 나가야 하나..  국경절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좀이 쑤신다. 기차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겠다.


싱핑의 3일장. 야채도 팔고


국수도 팔고


고기도 판다.


 그러다 어제 그 꼬마 여자애를 만난다. 살짝 흘겨줬더니 천연덕스럽게 웃기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

급기야 콧물에 재채기까지 전형적인 감기 증세가 옴 몸을 휘감는다. 그래 양수오에 가면 싱글룸을 잡아서 한 며칠 뒹굴거려야겠다며 마침 국경절이니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 할 거 차라리 잘 된 거라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양수오로 떠난다. 내가 기대한 양수오는 조금 번잡하기는 해도 제법 시골티가 나는 한적한 곳 일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한 순간 나의 그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이건 거리만 똑 따놓고 보면 카오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가장 안 중국적인 여행자 거리였던 것이다. 물론 배경은 확실히 중국 산수화인데 말이다. 사실 내가 여행자 거리를 싫어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아직은 적당히 복잡한 여행자 거리가 맘이 더 편한 것도 사실인데 그냥 뒹굴거리기엔 생각보다 번다해 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조금은 익숙한 거리의 느낌 때문일까, 마음은 편안해진다. 몇군데 숙소에 들어가 싱글룸을 알아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너무 어둡거나 너무 좁거나 맘에 드는 게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다시 나를 타이른다. 여긴 쉴만한 곳이 아니니 싱핑에 가서 그때 쉬자고.. 그때까지 아픈 거 잠시만 보류하자고.. 그리곤 익숙하게 다시 유스호스텔로 간다. 가격이 정말 착해진다, 하루에 20원. 한사나흘 머무르려던 계획을 바꿔 이틀만 있기로 한다. 리셉션에선 10월 1일에는 방이 연장이 안되니 반드시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둔다. 양수오에서 30km 쯤 떨어진 싱핑이란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 막상 방이 없으면 어쩌나 싶다가도 설마 나 하나 잘 데 없겠어 하며 걱정을 접는다.


시제(西街)


시제의 카페 , 카오산 저리 가라다.


주변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도저히 몸상태가 영 엉망이라 그냥 숙소에 들어온다. 씻고 안마나 받은 뒤 약 먹고 일찍 자기로 한다. 일단 나가서 두 시간짜리 발과 바디 마시지를 받는다. 아 정말 좋다. 이렇게 하고도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된다. 딴 건 몰라도 마사지 받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운데 자꾸 이래도 되나 맘이 불편해진다. 여행에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행을 잘하고 있나 하는 강박도 참 버리기 힘든 병이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사온 감기약을 먹는다. 우리나라 감기약이야 또 수면제가 다량 함유되어 있지 않은가? 양수오에 와서 초저녁부터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도미토리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담날 일어나니 온 몸이 개운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현실은 바램과 달리 그냥 견딜만한 정도였다. 양수오에 도착하면서 만난 수십명의 삐끼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자전거나 타기로 한다. 동굴 투어는 사진 보니 중간 중간 기어가기도 하고 머드천 같은데서 진흙 범벅이 되기도 하던데 그거 라오스에서 다해본데다 혼자 얼마나 뻘쭘할 것이냐.. 누구 머드 묻힐 사람도 없고.. 그래서 포기. 배는 싱핑에서 탈 거니까 두 번 탈 필요는 없지.. 또 포기. 그래서 자전거만 타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법 큰 자전거다. 발이 간신히 닿는다. 양수오에서 한 시간쯤 걸린다는 월양산을 목적지로 잡고 왕복 두 시간, 산에 올라가는데 한 시간, 그럼 오후에는 뭐하지 하면서 페달을 밟는다. 


월양산 가는길


월양산 가는길2

 

월양산에는 아직도 칼을 든 강도가 출몰하니 절대 일행과 떨어지지 말라는 경고가 론리에 나와 있다. 헉 그냥 강도도 아니고 칼을 든 강도라니 좀 아니 많이 무섭다. 그래도 그렇지 입장료도 받는 곳에서 것도 대낮에 강도가 출몰한다는데 대체 공안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 가이드북 쓸 당시에 그런 일이 한 건쯤 있었겠지 하면서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참 혼자 가지는 못하고 같이 올라갈 만한 사람을 기다려본다. 이 사람 많은 중국에서, 게다가 이 유명한 관광지인 양수오에서, 심지어는 내일부터 지들의 2대 명절인 국경절인데, 어찌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가. 십 여분을 기다리다가 그냥 혼자서 올라간다. 어째 내려오는 사람도 없는지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흠칫 놀란다. 결국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 혼자 정상까지 간다. 근데 무서우니까 힘을 확실히 덜 드는 것 같다. 숨차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상이다. 근데 이건 또 뭔 조화속인지 밑에서 그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정상에 있으니 속속 들이닥친다.


월양산. 달모양의 구명이 있어 월양산라고 불린단다.


 

월양산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론리에서 하루쯤 일정을 잡고 떠나라고 했던 위룽허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나 갈까.. 잠시 망설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 한 100m 쯤 비포장도로를 가니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이쯤에서 자전거를 돌려 나가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다리는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무슨 춤추는 분홍신을 신은 여자애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뭐 다행히 해가 질 무렵 쯤 되면 멈추기는 한다^^한구비를 돌아 달리면 달릴수록 그림 같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돌아 나갈 수도 없을 만큼 들어왔는데 바람 한점 그늘 하나가 없다. 그저 땡볕에 비포장도로를 묵묵히 달리는 수 밖에.. 가끔 내려 담배 한대피면서 어디를 둘러봐도 달력그림 같은 마을에서 그냥 한참씩 쉬었다 간다. 오후 내내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더니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달력6월

 


달력7월


달력8월


그러다 마을을 만난다.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며 지나는 집들 언저리로 보이는 남루한 살림살이들도 정겹다. 그러나 마을엔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개도 산다. 송아지만한 개들이 그냥 돌아다닌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대개는 못 본 척 지나치면 되는데 어느 마을에선가 집안에서 맹렬히 짖으며 뛰어나오는 개 두 마리와 부딪힌다. 엄마, 아부지, 하느님, 부처님 순식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도 대문 앞에 멈춰 서서 더는 나오지는 않는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담부턴 마을만 나오면 긴장이 된다. 차라리 그냥 논길을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해진다.


결국 어스름이 되서야 양수오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멍이 아니라 화상이다. 화이트닝은 커녕 피부가 화끈거려 이삼일 지나면 벗겨질 판이다. 어쩌자고 그 땡볕을 대책도 없이 달렸단 말인가? 오이라도 하나 사서 붙여볼까 하다가 도미토리 꼴불견 10위안에 들어갈까봐 참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고 가이드북에서 봐둔 피쥬위라는 요리를 먹기로 한다. 양수오에 있는 리강이라는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에다 맥주를 먹였다나 아님 맥주에 담궜다나 하는 요린데 반을 남기더라도 이건 먹어야지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선다. 론리의 영향은 대단해서 메뉴보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맨 앞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거주세요 밥이랑 맥주랑.. 좀 기다리니 요리가 쟁반에 나온다. 이걸 다 먹으라고? 물론 다 먹었다^^


 피쥬위.. 맛있겠지?


너무 심하게 달린 탓이지 감기도 다 나은 듯싶다. 이리되면 싱핑에서 쉴 핑계가 하나 사라지는 셈인데.. 하면서도 살짝 앓고 지나가 준 감기가 고맙다. 낼은 싱핑으로 간다. 정말 뒹굴뒹굴의 세월이 올지 그 뒹굴뒹굴을 내가 견딜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조용한 곳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

 계림북역에 내려 계림역까지 택시를 탄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는데다 배낭까지 메고 헤맬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택시는 시내 중심가를 가로질러 가고 주변으로 동글동글한 카르스트 지형-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특유의 산봉우리들이 자못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도 항주처럼 시내는 제법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저기 맥도날드며 KFC 간판들이 시내를 점령하고 있다. 역에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허접한 입구에 비해 실내가 깨끗하다. 가격도 상해서부터 도시마다 5원 단위로 싸지고 있다. 앗싸!


도착한 날 비가 내리더니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 아플 때도 됐다 싶은데 그래도 양수오나 가서 아프자고 나를 추스른다. 담날 그냥 몸이 안 좋은대로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글동글한 봉우리마다 계단을 만들고 담장을 쳐 입장료를 받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봉우리는 대략 5개.. 그 중에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독수봉과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복파산을 제치고 <산정상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장관이다>라는 데차이샨 우리말로는 첩채산을 오른다. 황산을 오르고 나니 이까짓 산쯤이야 그저 언덕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다시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실연 말고도 면역이 안 되는 것이 사실 여럿 있다^^


첩채산에서 바라본 계림 시내, 숨차게 올라간 보람을 느낀다.


<지구 한가운데로의 여행 세트>처럼 보인다는 루디옌 우리말로 노적암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번에는 칠성공원으로 간다. 동굴 하나를 과감히 포기하고 왔더니 이건 또 무슨 유혹이라는 말이더냐.. 공원 입장료는 35원인데 공원안의 동굴을 가려면 30원을 더 내야 한단다. 그래, 그래도 동굴하나는 봐야지 하며 또 65원짜리 표를 끊는다.


공원입구의 벤치에는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름(?)에 전념하고 계신다.

 


낙타봉. 워쩌 낙타같은겨?


공원 안에 폭포도 있고


나는 비만 호랑이^^ 저거 올라타고 사진 찍는 데 10원이다. 근데 좁은데 가둬놓고 얼마나 먹여놨는지 차마 눈뜨고는 보기 힘든 지경이다. 에구 호랑이 팔자도 원..


칠성암.. 죄다 조명발이다.


오후 네시 무렵에 시내 중심에 있는 호수에 도착한다. 요술왕자의 부인인 고구마가 얼마 전 중국에 왔다가 쓴 글에 의하면 자기는 계림에서 호수가 특히 호수의 야경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쓴 글을 보고 야경을 꼭 보리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야경을 보려면 아직 세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니 그냥 호수나 한 바퀴 돌아보자고 걷는다. 근데 이게 뭐 서호도 아니고 쉬엄쉬엄 걸어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야경을 보겠다는 욕심에 쉬었다 또 쉬었다 하면서 세시간을 보낸다. 마침 MP3나 듣자 하고 틀어보니 받아 논 노래라는 게 연가라는 이름의 CD다. 다들 알지? 이미연의 연가라고.. 모르나.. 그냥 삼사년전 유행하던 사랑 노래 묶음라고 보면 되는데 세시간 내내 줄창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아냐는 둥 내가 널 잊어주길 바라냐는 둥 이게 그때의 댓가인가 보다는 둥 둥둥둥을 듣고 있으니 괜시리 옛날 남자들도 떠오르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내가 계림 호수에 있는지 일산 호수에 있는지도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호수 위의 이란성 쌍둥이탑

여기 중국맞다니까요^^

 

드디어 해가 지고 그 아름답다는 야경은 언제 보여줄래나 기다리고 있는데 야경은 커녕 산책로에 불도 안 켜진다. 어 뭐 이래.. 좀더 기다리면 보여줄래나 했더니 일곱시에 배처럼 생긴 식당에 불하나 켜지곤 그만이다. 이제 열도 나는 것 같고 배도 고프고 더 이상 호수 구경도 싫고 이 호수가 아닌가벼 하는 맘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곤 못내 아쉬운 맘에 인터넷으로 다시 그 글을 읽는다. 그 호수가 맞다. 글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낮에 본 것들에 죄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이거 국경일에만 켜는 거 아냐?^^ 양수오 갔다가 오는 날 혹시 가능하면 늦은 시간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좀 심하게 엄살을 부렸다 싶긴 하지만 떠나기 전엔 정말 걱정이었다. 좌석 불편한거야 어떻게 견뎌본다 하더라도 도난 사건도 많다지, 담배는 막 피워댄다지, 사람들 심하게 시끄러운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하다지 뭐 안 좋은 풍문들만 머릿 속을 오락가락 하는데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그래도 한 번 타봤다고 그 와중에 슈퍼에 들러 물이랑 빵이랑 과일 등을 사서 바리바리 고장난 아디다스 가방에 짊어지고 대합실에 들어선다. 아니나 다를까 대합실에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 것이며, 사람들이 들고 있는 짐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이러다 배낭을 무릎에 안고 있어야 하는 거나 아닌지 걱정이 밀려온다.


이래저래 사람들을 따라 개찰구를 지나 역구내로 들어선다. 허걱, 이번에는 차량 호수 표시가 없다. 이 역이 시발역이 아니니 잘못하다간 배낭 메고 뛰거나 아님 아무데나 올라타서 좌석 사이를 끝도 없이 걸어야 할 판이다. 표를 꺼내 여기저기 물으니 기다려야 할 곳을 알려준다. 내 아무리 봐도 별 표시가 없더구만, 그 양반들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차에 올라타곤 살짝 놀란다. 생각했던 것 보다 좌석의 상태가 너무 좋은 탓이다. 물론 두줄, 세줄 씩 총 다섯줄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마주보고 가야 한다는 게 살짝 당혹스럽긴 했지만 그 사이엔 작은 탁자까지 있으니 이만하면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딱딱한 의자칸. 짐칸 밑에 걸려있는 수건들을 승무원 아저씨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예쁘게 다시 걸어준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기차표의 이름이 딱딱한 의자 즉 硬座 아니던가 근데 생각만큼 딱딱하지 않더라는 말이다. 물론 등받이는 90도가 확실하더만.. 처음 30분쯤은 좋아 좋아를 연발하면서 그냥 이거 타고 끝까지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한시간쯤 지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앉아서 가는 거야 그렇다 치고 긴긴밤을 어찌 앉아서 세운단 말인가. 게다가 내 자리는 3인 좌석의 중간에다가 기차 진행 방향과는 반대인 거의 최악의 자리인 것이다. 그 중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뭐 복장 색깔이 좀 다르고 모자 쓰고 있는-아저씨에게 자리가 있으면 바꿔달라고 말해본다. 첨부터 적어 보여주는 건데 괜히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는 외쳤나 보다-내 인생에 이런 날 올지 정말 몰랐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 그때부터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발은으로 뭐라뭐라 하는데 정말 후회가 몰려온다. 그제서야 적어놓은 쪽지를 보여준다. 硬座 - 硬臥 이 아자씨 얼굴이 환하게 펴지더니 오케이를 연발한다. 그러고는 알아보고 오겠다는데..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영어로 쓰신다. 하드한 베드는 없어요. 그러나 소프트한 베드는 있어요. ㅋㅋㅋ 됐다 그거 탈거였으면 그전에 표 끊어 탔다.  


이제 적응의 시간이다. 좌측에 아줌마, 우측에 아저씨, 전방 135도 각도에 인물 안 되는 청년, 전방 90도에 매우 시끄러운 또 다른 아저씨 그리고 정면에 앗.. 드뎌 꽃청년 발견이닷!! 꽃이 중국에 와서 고생한다 해도 그리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만하기가 쉽냐 말이다. 게다가 이 청년 과묵하기까지 하다-중국에서 과묵하다는 건 정말 타고 나지 않으면 가지기 힘든 미덕이다^^- 꽃청년을 제외한 매우 수다스러운 3인방이 끊임없이 중국어로 질문을 해대는데 팅부동, 워스 한궈런도 한 두 번이지 대략 난감이다. 영어는 원, 투, 쓰리도 안 통하지, 그나마 사간 여행 중국어 책에는 깍아주세요, 영수증주세요 따위의 말 밖에 없지,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 여행한다, 결혼은 안했다. 북경-상해 거쳐 계림 가는 길이다, 등등의 취조를 당한다. 내 꽃청년의 호기심 어린 눈빛만 아니었어도 일찌감치 자는 척이라도 했으련만 덕분에 도란도란 -사실 매우 시끄러웠지만- 얘기를 나누며 간다. 뭐 대략 대장금 얘기랑 애니콜 즉 삼성과 현대자동차 뭐 그런 얘기였는데 우리가 일본 사람 만나 키무라 다쿠야 좋아요, 소니 알아요 하는 거랑 비슷한 정도의 대화였던 것이다. 


 

좌우의 아주머니와 아저씨. 저 중간이 내 자리였던 것이다. 꽃청년은 사진 찍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 결국 카메라에 담는 것은 실패했다.     


기차타기 전에 샀던 귤을 나눠주니 사람들도 주섬주섬 먹을 걸 나눠준다. 바나나, 해바라기씨, 껌까지 기차에서 주는 거 받아 먹지 말라는 말도 잊고 넙죽넙죽 죄다 받아먹는다. 시간은 흐르고 잘 시간을 다가오는데 어찌 자야하나 그저 버텨보지는 심정으로 앉아 있는데 마주보는 사이에 있는 작은 탁자에 엎드리기도 하고 의자 사이 공간에 발을 쭉 뻗기도 하며 나름대로 잘 준비들을 한다. 꽃청년이 자기 옆자리를 조금 내주며 발을 뻗으라고 권한다. 차마 그럴 수는 없어 한두시간은 버티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다리도 뻗었다가 탁자 위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랬더니 또 불편한대로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러다 어영부영 날이 밝는다. 저녁은 사발면으로 때웠으니 아침은 이사람들 차 마시라고 둔 더운물 받아다가 커피랑 사가지고 탄 빵이나 먹어야겠다 하고 있는데 꽃청년이 국수를 사서 먹으라고 준다. 고맙긴 한데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국수 값을 줄 수도 없고.. 국물까지 확 부어놨는데 무를 수도 없고...  그냥 고맙게 먹기로 하면서도 맘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리 넉넉해 보이는 차림새도 아니었는데.. 어쩌나 하다가 여행중국어책을 뒤져 단어를 조합해 적는다. 쎄쎄 미엔티아오 하오츨(고마워요 국수 맛있어요) 보여주니 씩 웃는다.


계림 전 정거장을 지나자 저마다 다음에 내리라고 일러주느라 다시 차안이 소란스럽다. 어제 영어로 하드한 베드는 없다던 그 아저씨도 담이라고 알려준다. 그래도 이번엔 적지는 않으신다^^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문제의 자크 고장난 아디다스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내리기 전에 함 고쳐보겠다고 주머니칼을 꺼내 설치니 이번에도 꽃청년이 받아서 대신 고쳐준다. 잘생기고 과묵하고 친절한데다 손재주까지.. 마지막까지 감동의 연속이다. 이제 내릴 시간이다. 20시간 22분.. 나도 나름 긴 여행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좌석 중에 내가 가장 빨리 내리는 사람이라니 .. 이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 중국여행기에서 본 글귀.. 가난한 사람들의 인내는 부자들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결국 열차는 계림역에 도착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짐을 들고 내린다.


그새 정이 든 건가.. 내린 뒤 다시 열차를 거슬러 창문 근처로 간다. 내가 어딘지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에서 올라오는 거 같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다 진짜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목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꿀꺽꿀꺽 삼키며 지금은 울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다. 또다시 낯선 도시다. 아직 집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 감정은 또 뭐란 말인가. 그냥 조금 외로운 모양이라고..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