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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14
    <스린> 경계의 안과 밖(7)
    제이리
  2. 2005/10/14
    <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8)
    제이리
  3. 2005/10/14
    중국 숙소 이야기(7)
    제이리

<스린> 경계의 안과 밖

중국에서의 마지막 관광지가 될 스린을 다녀온다. 이곳이 쿤밍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관광지일 텐데 버스로 한두 시간 가량 가면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70원짜리 투어를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말도 안 통하는 웨스턴들 하고 섞여서 가기도 싫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냥 로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동부터미널에서 8시 30분에 떠나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조금 서둘러 유스호스텔을 나선다. 물론 오늘도 일등으로 방을 나서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제법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인데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죄들 투어로 다녀오는 모양이다. 터미널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10분쯤 달리니 석회암 기둥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가짜학생증을 이용하여 학생표를 끊고 입장한다. 뭐 여기도 입장료가 너무 비싼 관계로 (성인80원/학생55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기로 한다. 스린은 석림 뭐 영어로는 스톤 포레스트라는데 석회암의 돌기둥들이 무수히 서 있는 곳이다. 바다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는 한때는 바다였을 거라는데 그 한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고 잘 상상도 안 되지만 그저 물밑에 저런 바위들이 있었겠거니 하면 그도 그럴 듯해 뵌다. 여행 오기 전 주워들은 정보에 따라 관광지로 조성된 곳을 지나 무작정 걷는다. 공원 입구에 그리 많던 관광객들은 하나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혼자다. 그리고 앞뒤로는 무수한 돌기둥들뿐이다.



스린. 무수한 석회석 돌덩어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래도 지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니 가다보면 어디로든 연결이 되겠지 싶어 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석회암 바위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도무지 되돌아 나갈 수도, 더 가기도 부담스러운 지점까지 그저 길은 한길로 이어진다. 조성된 관광지는 한참 벗어난 것 같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걷던 재미는 약간의 불안감으로 변한다. 도대체 되돌아가기 전에는 이 석회석 돌덩어리를 벗어날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돌덩어리 사이로 길을 조성해 놔서 어떤 곳은 빠져 나가기도 힘들만큼 좁거나, 가파른 계단을 사정없이 내려가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렇게 그저 한적하게 혼자 있고 싶다가도 막상 아무도 안보이니 겁이 더럭 난다. 늘 그런 것 같다. 경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막상 벗어났을 때의 두려움은 항상 공존하고 그 때문에 제대로 경계 안에서는 바깥을, 밖에서는 안을 꿈꾸는 것 이 아닐까?

 


 


얘들이 생각보다 붙어있어선지 스린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방향감각이 상실된다. 


결국 그 지역 소수민족이 산다는 마을 언저리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래봤자 입장료 받는 넓은 테두리 안쪽일 텐데 제법 먼데까지 온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리곤 온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길 밖에 없더구만- 조성된 관광지와 그 밖의 경계선 근채의 풀밭에 앉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한참을 쉰다.  적당히 가깝고 적당한 먼 자리.. 그쯤이 가장 편안한 지점이 된다. 뭐 경계가 안 보일 때 까지 멀리 나가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뭐 그게 나라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게 나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닫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곤 스린을 빠져 나온다.


 


이 돌들 사이에서도 벼며 옥수수가 자란다. 멀리 민가도 보이고..


내일이면 베트남으로 간다. 원래 일정이 불분명했던 중국이었지만 이럭저럭 계획대로 끝낸 셈이 된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나라였다. 문제는 한달이 넘어가면서부터 뭘 봐도 그러려니 싶다는 건데 이 병은 나라를 바꾸면 치유가 되는 건지 점점 심해지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심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괴롭히는 나라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헉 이건 아니다. 뭐 어차피 갈 길 이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심정으로 간다. 바가지 까짓 꺼 너무 심하지 않은 선에선 써 준다, 거짓말 뻔히 보이는 농담 정도로 받아 준다, 뭐 이런 맘이긴 하지만 내가 베트남을 떠날 무렵에 생각보다 좋은 나라였다고 아니 그리 나쁘지 않은 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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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

 

누군가가 잠든 나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6시 20분, 열차는 벌써 쿤밍역에 들어서고 있다. 긴장이 풀리기는 했나 보다. 아무리 쿤밍역이 종점이라지만 승무원이 -아니 여긴 복무원이다^^- 깨울 때까지 자다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내린다. 이제 새벽 공기가 제법 차다. 택시를 타고 차화빈관으로 간다. 기차에서 내내 차화빈관으로 갈까, 험프로 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택시기사가 험프의 위치를 알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일곱 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해준다. 자기도 뭣해서 그냥 샤워나 하고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먼저 하기로 한다.


문제는 베트남 대사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인데.. 론리에는 쿤밍에는 아예 베트남 영사관이 없다고 나와 있는바 위치가 있을 리 만무하고 베트남이 대략 15일 무비자이다 보니 인터넷에도 대사관 위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전 하우아시아가 쓴 글에서 베트남 비자를 쿤밍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정보만 믿고 그냥 베트남 대사관을 찾기로 한 것이다.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용감해지는 것 같긴 하다. 일단 도미토리 데스크에 묻는다. 근데 문제는 이 양반들 도무지 베트남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다. 내가 아무렴 베트남 그랬겠는가^^ 나름 굴려서 비엣남 엠바시 어쩌구 해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비자 어쩌구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있다는 거다. 그리 가깝다니.. 역시 위치가 좋은 곳이라더니..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하며 쎄쎄하고 돌아서는 데 뭐 베리 굿이라나 나이스 플레이스라나 하는 말이 뒤통수를 친다. 대사관이 아무리 친절해도 그렇지 뭐 베리 굿에다 나이스 플레이스씩이나.. 이상하다 하고 가보니 거기는 피.자.집.이었던 것이었다. 비자랑 피자랑 헷갈렸던 모양이다^^


여튼 대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비자를 신청한다. 생각보다 나오는 건 빠른데-2박 3일만에 나온다- 가격은 400원으로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15일 만에 베트남을 주파하기는 힘들고 베트남에서 연장 신청하는 건 130달러라니 이 방법 밖에 없긴 하다. 베트남이란 곳이 좀 껄끄럽기도 하고, 남아 있는 중국 비자 일정이 아깝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막상 비자를 신청하고 나니 이제 결정이 됐다 싶어 한편으로 편안해진다.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가게 될 사파와 박하가 각각 토요 시장과 일요 시장이 유명하다니 금요일 밤차로 국경도시 하커우로 가서 토요일 아침에 국경을 넘어 사파로 들어가기로 한다.


베트남 비자 Valid from 15/10/2005 until 15/11/2005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안 선명한 건 사진을 잘못 찍은 탓이래두--:;


그러면 쿤밍에 있게 되는 날은 사오일쯤 되는 셈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으레 그렇듯이 뚜벅이 투어로 하루가 간다. 뚜벅이 투어란 대략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와 그 지도 안에서 이동 가능하다고 보여 지는 관광지들 사이를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내 지리를 익히는 건데 종일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뭐 쿤밍이라고 예외겠는가.. 거리 노점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와 좌판들에 넋을 놓고 다니다가 결국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마냥 걷는다. 이제 탑들도, 절들도, 호수도 시들해져 여기가 가이드북에 나온 거긴가벼.. 하면서 눈도장만 찍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발길에 채인다던 한국인 여행자 본지는 어언 삼주 가까이 되고, 매일 과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행복했다가 심심했다가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런지.. 대체 왜 다녀야 하는 건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내 북쪽에 추이후 공원 이렇게 않아서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팀이 꽤 여럿 있다.


 그러다 신나면 춤도 추고


 이 동네 아이들 안 같게 때깔이 심하게 고운 아이들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원동력이란 게 시간이란 놈이라더니 담날 늘어지게 자고 났더니 약간 낙관적으로 변한다. 계림까지는 도미토리 인간들의 바지런함에 치를 떨었는데 이곳 쿤밍에 오니 게으름뱅이들이 많다. 일단 배낭이 커지고 -이건 장기여행자들이 많다는 것 일테고- 얘들이 전반적으로 지저분해 뵈더니 이 인간들 아침에 아무도 안 일어난다. 어찌나 맘이 편안해지는지.. 결국 9시 가까이 되서야 내가 일등으로 일어난다^^ 그래도 또 습관적으로 갈 곳을 만들어 나선다. 이번엔 쿤밍에서 약간 떨어진 서산이란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이제 로컬버스 타는 데는 거의 선수가 된 것 같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5번 버스 타고 가다가 6번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데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으니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서산은 쿤밍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덴이라는 호수를 끼고 있는 산인데 이 산 중턱쯤에 있는 석굴인 룽먼 즉 용문에서 바라보는 덴호수의 경치가 때.때.로.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서산에서 룽먼석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네얼묘가 있다. 론리에 의하면 네얼은 뛰어난 작곡가로써 현 중국의 국가를 작곡하였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일본에서 러시아로 가던 중 익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단다. 그의 묘에는 인민음악가 네얼묘라고 되어있고 묘를 둘러싼 담벽엔 인민들의 투쟁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요절한 천재음악가와 혁명 그리고 이제 관광지가 된 그의 묘지 사이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후에는 물론 룽먼 석굴도 갔으며, 거기서 덴호수도 바라보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덴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을 찾아내려고 30분간 노력하다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덴호수를 넘어 운남에 산다는 26개 소수 민족을 박제해 놓은 민족원이라는 데도 가고 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네얼묘. 동상 뒤로 그의 묘가 있고 그 뒤로 부조된 벽면이 둘러쳐져 있다.


시산 룽먼에서 바라본 덴호수. 저 호수 가까이서 봐도 물감 풀어놓은 듯한 초록색이던데.. 멀리서나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좀 섬뜩하다.


 민족원의 어느 소수민족 마을. 원래 민속촌이라는 게 그렇듯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눠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슨 동물원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좀 그렇다. 하지만 뭐 그 마을로 트레킹을 간다고 한들 뭐 다르겠는가. 다 그런거다.


여행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몸과 맘이 널럴해지기 시작한다. 고구마 왈 지나친 술은 간을 딱딱하게 만들고 지나친 경치는 마음과 눈을 딱딱하게 만든다더니 이제 어떤 관광지든 제법 특별하지 않으면 어떤 걸 봐도 그러려니 싶다.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근데 관광지 구경이 아닌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낯선 길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아직 재미있으니 그렇게 다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님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그럴러면 동남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필리핀에 틀어박혀서 영어 공부라도 몇 달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몸 편하고 맘 복잡한 쿤밍에서의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먹는 일을 멈출 순 없다. 윈난 토속 음식 치궈지, 닭에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건데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은 뭐 그럭저럭..


 

 


 이것 역시 윈난 토속음식 궈챠오 미센, 위의 쟤들과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담궈서 먹는 요리이다. 같이 넣는 부재료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국물은 비교적 담백한데 그 정도 국물 온도에 부재료들이 제대로 익었을까 약간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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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숙소 이야기

-글쓰기 전에 koooo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란 걸 갔을 때는 일행이 있었으므로 4인실 혹은 2인실 두개를 썼었고 그 담 두 번인가 혼자 갔을 때는 당연히 싱글룸에 묵었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고 캄보디아나 라오스 모두 에어콘 있는 싱글룸이래야 10불을 넘지 않는 가격이었다. 뭐 라오스의 경우는 느닷없이 일행이 생겨 더블룸에 묵은 경우도 있긴 하다. 그 정도면 가뿐하게 혼자 묵을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장기 여행의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뭐 큰 맘 먹고 싱글룸으로만 다닐테야 한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행 경비 중에 숙박비가 차지하는 퍼센테이지가 만만치 않은 고로 대략 다인실 즉 도미토리라는 곳으로 다니게 되기가 십상인 것이다.


이미 밝힌 대로 중국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도미토리에 묵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도미토리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들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얘들이 남녀 구분은 하나 뭐 그런 거였고 그 다음은 짐들이랑 뭐 이런 건 그냥 놓고 다녀도 되나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뭐 가장 고민이었던 건 사실 그저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할 때 오는 기본적인 불편함들을 참을 수 있을까였지만 그거야 또 안 참으면 어쩌겠는가. 결국 돈과 편안함 둘 다를 추구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여튼 그런 고민들을 안고 도미토리 생활을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싱핑과 룽성처럼 아주 작은 동네가 아니고선 전부 유스호스텔로만 다닌 것 같다. 유스호스텔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시설과 가격 면에서 나은 점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숙소에서 다음 숙소의 정보를 얻는 것도 유스호스텔끼리 가능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유스호스텔증의 본전을 뽑겠다는 의지도 작용했을 테고.. 일년에 회비가 이만 오천원쯤 됐던 것 같은데 대략 하루에 한 오원 정도 할인된다. 고로 아직 본전은 못 뽑았다는^^


항저우 유스호스텔 숙소입구


이 유스호스텔 분위기가 동네마다 좀 다른데 아무래도 작은 도시가 좀더 가족적인 것 같다. 시설은 대부분 깨끗하고 침대는 주로 원목스러운 나무색이다. 이게 국제 유스호스텔의 권장사항인지 여튼 한참 때 우리나라 저학년 어린이방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샤워실이나 화장실 등속은 대동소이하다. 개인 짐들은 대략 사물함이 따로 있어 중요한 것은 거기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참대위에 두고 다닌다. 가장 큰 차이점은 로비일 텐데 이것의 운영 방법에 따라 도미토리 문화가 확 달라지는 것 같다. 즉 로비를 개방하고 탁자 등을 갖추어 두고 DVD등의 시설과 음주 등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면 왁자하니 자유로운 모습들이 연출된다. 이런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곳은 쑤저우와 구이린 정도였던 것 같고, 사람이 많고 일처리가 사무적일수록 이런 곳도 구획을 정해놓고 식사 인구나 음주 인구만 받기도 한다. 물론 가격도 비싸고.. 상하이나 항저우가 그랬던 것 같고..


차화빈관 휴게실, 눈치챘겠지만 글쓰다 찍었다. 노트북 보이나? 

 

여튼 인간들도 가지가지인데 북경에서는 그냥 한국 친구들 끼리 묵어서 별 불편함 없이 생활했었고 상해로 오니 그래도 남녀 구분은 하네.. 동양권이라 그런가 했었다. 그런데 항저우로 오니 이번엔 남녀 구분없이 온통 동양애들만 한 방에 몰아넣는다. 이번엔 색깔 구분이군.. 처음으로 코고는 얘들땜씨 잠 못 이루는 불상사가 생긴다. 뭐 내가 코를 골았는지는 나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대략 아니겠지 한다. 황산까지 오니 남녀불문, 색깔불문 선착순이 된다. 이게 구이린으로 오면 좀더 엽기적이 되는데 비수기다 보니 4인실에 대략 둘이 묵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드문드문 6일 있는 5일 동안 남자랑 둘이 잤다. 그중 마지막 2일은 팬티만 입고 자는 프랑스 아저씨랑 둘이 잤다는 거 아니겠냐.. 차라리 17인실이 낫지 이것도 보통 고문이 아니다.


계림 플라워 유스호스텔 4인실


또 인간들 왜 이리 일찍 일어나서 설치는 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대략 6시도 안된 시간에 나갈 준비들을 하고 있다. 그래도 들어오는 시간들은 늦어 낮에는 거의 혼자 있을 수도 있으나 이도 한 도시에서 오래 있을 경우 가끔 생기는 일이고 그나마 로비 따위가 영 편하지 않을 때 한해 생기는 일일뿐 나도 한 번 나가면 어지간해서는 잘 시간 전엔 잘 들어가지 않게 된다. 왠지 답답한 느낌도 들고 편안하지는 않은 듯 하다. 마지막으로 쌍쌍이 다니는 애들, 어지간하면 더블룸 쓰면 좋으련만 왜 이층침대 점거하고선 하나는 비워두고 좁은데서 둘이 자는 지 원.. 거 혼자 잘래도 이층에서는 떨어질까 불안하더구만.. 쩝


여튼 이곳 차화빈관은 명성대로 친절, 신속, 정확 뭐 깨끗 등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단지 호텔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도미토리는 좀 뒷전인 건데 뭐 그러면 또 어떠랴.. 이곳에는 제법 여행자같은 애들도 보이고 밤낮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또 들어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적당히 가족적이며 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다. 이곳에서 매일 저녁 맥주 한병씩 마시면서 나흘을 묵었다. 쿤밍에서 차화빈관과 더불어 유명하다는 험프로 옮길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는데 배낭 무게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첨에는 그 배낭 맬 때 진짜 뒤에서 잡아당기지마 란 말이 절로 나왔는데 이젠 잘도 메고 돌아다닌다. 얘기가 딴데로 샜다^^


중국은 둘이서 밀월여행 오지 않는 한 유스호스텔로 다니는 게 제일 간편할 것 같다. 위치나 시설, 가격 면에서 최강이다. 한달이상 다닐꺼면 유스호스텔증 하나 만들어 오는 것도 남는 장사일테고.. 그리고 도미토리 친구 사귀기도 좋다는데 것도 뭐 영어 좀 될 때 얘기고 그냥 눈 마주치면 핼로우니 하이 정도에 너 어디서 왔니? 너 어디로 가니?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략 서양애들 나를 중국인으로 보는지 영어로 말 잘 안시키는 고마운 경향이 있다. 아주 편안하다^^ 베트남도 도미토리가 있긴 하다는데 숙소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싱글룸의 유혹이 살짝 느껴진다. 젤 좋은 건 둘이서 더블룸을 쓰는 게 가격대비 최강인데.. 아무래도 그런 기대는 깨끗이 접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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