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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9
2.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기른 자식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신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구나.”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부패하고 악한 백성이여! 너희가 여호와를 저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신하였다.
5. 너희가 벌을 더 받고 싶은가? 어째서 계속 거역하느냐? 너희 머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약해졌으며
6. 밑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하나도 성한 곳이 없이 온통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뿐인데도
너희는 짜내고 약을 바르며 붕대를 감는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7. 너희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 성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외국 사람들이 너희가 지켜보는 데서
너희 토지를 빼앗아 황무지로 만들었고
8. 겨우 예루살렘만 남아 포위를 당한 채 포도원이나 오이밭의 원두막처럼 되었다.
9. 만일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일부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구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
왜 예언자는 하늘도 듣고 땅도 들으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세운 나라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어리석게 그의 지시와 인도를 무시하여,
배반하는 일을 하고 있어,
하나님의 탄식하는 소리가 온 우주에 충만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인간사에 있어서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말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은혜를 베풀고 선행을 했던이웃이 오히려 선에 대한 보답은 커녕,
원수로 대하는 경우일 것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해야 좋은 인간관계로 유지할수 있다.
배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덕중에 사람들의 본성이 타락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속성이다.
거역하는 것은 거부하고 역행하는 일을 일삼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은 인생이 당하는 가장 힘든 상태에 처해지는 것일 것이다.
동물도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는 데
만물의 영장이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있게 한
창조주를 모르고 지내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참 인간다운 것은 자신의 위치를 잘알고
자신의 처신하는 일에 지혜를 갖는 일일 것이다.
범죄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악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다.
부패와 악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악이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악이 아니고, 선하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인간의 악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죄를 짓는 일이다.
의(옳음)에 대한 배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은 자신을 잃는 일이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은 죄를 짓는 악인들이 더욱 완악해져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으로 달음질하게 된다.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일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죄에 물든 몸이 죄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머리에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을 행하기를 꾀하고,
그 도모가 범죄를 생각하게하는 것은
그마음에 품은 것이 늘 어둠에 속하여 자신의 판단을 가눌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정신이 병들고, 생각이 어두워져서 허망한 것을 좇아가고,
쓸모없는 일에 내버려두시는 유기의 상태에서
인간은 더 악을 일삼는 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마음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강해진다.
마음이 왜곡되면, 그 마음의 상태도 건강치 못하다.
마음이 약해져서 옳은 일에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을 다스리지를 못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의 상태를 올바르게 볼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서 증상이 시작이 되어있으면,
이미 병에 깊이 빠져 있게 된다.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에 멍들고, 자신의 몸이 성한 곳이 없어져 있다.
그런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이 지금 암 말기증상에 있는데도 만일 치료는 커녕,
진단도 정확히 모른다면, 그 상태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육체적인 불감증이나 도덕적인 불감증도 인간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영적인 불감증은 더욱 인간의 처지를 절망적인 상태로 빠뜨린다.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질병에 노출되어있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몸을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인생도 병들고,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에게 나가야 한다.
그분과 대면하여야 살길이 열린다.
사람들이 악하면, 그 사람들이 사는 자연도 영향을 받아,
하늘의 벌을 받아, 땅도 농사를 지어도 열매를 맺지를 못하고,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오만한 거나 완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햇빛을 받고
이땅에 살수 있는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가당치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비를 내리시고, 일정기간동안을 혜택을 주신다.
사람들이 사는 땅이 몹쓸게 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악하고,
그리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 그 땅이 그들과 함께 버림을 받았다.
땅을 고치려면, 그곳에 사는 인생들의 마음을 고쳐야 할 것이다.
악인이 아무리 재물을 쌓으려고 애를 써도 그것을 허물어 뜨리는 이가 있으니
하늘에 계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은 재물들을 부지런히 모으지만,
그 재물을 쓰는 이들은 주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의인의 복은 의로우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유다나라는 전국토가 남의 나라에 침략을 받아,
유린당하고,이제는 예루살렘만 남아,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밖에 없는 상황이란 참담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 않는가?
침략을 받아 멸망해가는 유다나라의 현실은
하나님앞에 범죄한 나라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징벌을 받는다.
의는 나라를 영광되게 하지만,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
오이밭의 원두막같이 덩그러니 남은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속에 있다.
인생의 삶에서 위기의식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경우는 자신의 생명이 경각간에 달린 상태로,
헤어날수 없는 자신의 몸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하여 진퇴양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빚의 독촉을 받아,
가히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있는 경제적인 손실이 막강할 때일 것이다.
왜 자신의 인생이 유린당하고 억울한 일을 만날까?
알수 없는 문제투성이가 발생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인간속에 겪는 수많은 재앙적인 요소들은
모두가 인간의 죄로 기인된 것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런 문제에서 헤어나올 길은 구원자를 찾아,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유다나라도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살길이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의 때까지 늘 일시적이며, 제한적이다.
그것은 그의 심판가운데에, 자비의 손길이 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그대로 실행한다면
아마 누구도 그의 심판앞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오고오는 세대에 심판의 경종을 알려준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죄를 짓는 일을 밥먹듯하며,
늘 생각하는 것이 죄악을 범하는 일에 빠르게 진행되어버린다면,
거기에 대한 댓가는 심판을 자초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유여는 그의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다리는 그의 손길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배려이다.
십자가의 심판의 죽음이 있기전에 자신에게는
십자가에서 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성자 예수의 수치스러운 죽음의 십자가를 바라볼때마다,
심판의 혹독함과 수치스러움을 보며,
자신속에 있는 죄악을 뉘우치고
자신속에 있는 영적인 질병과 도덕적인 타락을 회개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자신의 그릇된 길에서 돌이킬 것을 명하신다.
인생들이 자신들의 길에서는 의를 발견할수 없으며,
의의 하나님에게 나아올때만이 의를 발견하고 그의 의안에서 평안을 얻는다.
인생의 변화는 대체로 두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그 변화는 인생의 나가는 향방(그 방향성으로 인하여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결과를 초래함)을 생각해본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과 안좋은 방향으로 트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이정표의 역활을 한다.
회개는 현상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이며, 인간성의 개조의 주된 도구이다.
회개는 자기혁신이며, 인생변화의 분명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성의 변화를 통해 개선되어진다.
인간이 사는 방법에 따라 사회의 상태가 결정이 된다.
유대사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들이 점차 사라지고,
종교를 방편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자신이 멸망에 처한 사회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사회변화는 인간변화에 의해 주도되어진다.
나라와 국가의 좋은 발전도 국민들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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