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목동

29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7
    인생의 입과 신의 이름
    목동
  2. 2006/11/27
    인생은 신과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이다
    목동
  3. 2006/11/26
    감정치료에 대해(1)
    목동
  4. 2006/11/26
    영성발달의 심리학(1)
    목동
  5. 2006/11/24
    개인적 감사
    목동
  6. 2006/11/24
    신의 마음
    목동
  7. 2006/11/22
    시인의 마음과 신의 자비
    목동
  8. 2006/11/21
    사람(자신)을 치유하려면
    목동
  9. 2006/11/20
    신이 찾고있는 심령들
    목동
  10. 2006/11/19
    "실업"이라는 단어를 나의 인생사전에서 없애려면
    목동

인생의 입과 신의 이름

시편113:1-2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말은 인생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와야 할 말이다. 
인생은 언어사용의 존재이다.  무슨 말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
그사람의 인생과 삶을 이야기할수 있다. 

인간이 신을 말하며, 그분을 찬양하며,
그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하는 것은
신이 인간을 언어적 존재로 세우시고,
그 언어를 통해 인간과 대화하기를 원하셨다. 

 

원래 인간의 언어적 구조인 구음이 하나였다. 
바벨탑까지 쌓아 놓은 인간의 교만과 자위권남용으로 인하여,
신은 인간의 언어를 헤쳐놓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는 하나로 통하며,
다양한 인종의 언어라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공통의 구조적인 언어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간의 언어적 시스템이
신과의 대화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어질수 있다.

 

신은 인생을 지으시고 기뻐하셨다. 
그는 인생들이 신을 향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용하였으나,
원래 신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알려진 신은
그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성품이나 본질을 계시한다. 

신의 가장 신다운 이름은 스스로 있는자,즉 자존자이다. 
신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 
누구의 필요나, 동기가 아니라, 신자신이 스스로 존재하신다. 
모든 만물의 존재나 모든 인간존재의 원인은 바로 신에게 있다.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 신에게서 오므로,
신의 이름은 인간의 존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신의 이름이 그의 성품과 본질을 보여주므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살펴볼수 있다. 
신의 이름이 다양함은 인간의 현실과 경험세계에 대해,
어느 상황이나, 형편에라도 인간을 대면할수 있으며,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로 신이 존재할수 있다는 말이다. 

 

신의 이름은 기묘자라, 그가 행하시는 일은 인간이 다 이해할수 없고,
다만,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나,
신의 역사는 확실한 현실이며, 신의 오묘한 세계이다. 
인간이 풀수 없는 수수께끼나, 해결할수 없는 문제는 신의 손안에서 해결된다. 

 

신의 이름은 모사라,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발휘하고,
재간을 부리고, 전략을 세울지라도,
신의 지혜나 전략에는 미치지 못하며,
진정 지혜를 구하고, 모략을 구하며, 지략을 구하려면,
신의 지혜의 세계을 이해해야하며,
신의 지혜의 힘을 빌어야 할 것이다.

 

신의 이름은 상담가이다. 
그는 영원한 카운셀러이다. 
그가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풀어주는 선생이며,
난제를 극복할 조언을 줄수 있는 조언자이다.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나, 자신에 대한 깊은 무의식의 세계나,
무궁무진한 두뇌의 세계안에도,
신의 손길이 미쳐있고,
인간이 개발하지 못한 곳에 신의 지혜가 널려있다. 
이지혜 또한 그를 상담가로 모신 인생이 발견할 것이다.

 

신의 이름은 전능자라,
그는 천지를 만들고, 온 만물을 유지하며,
관리하는 전능한 능력과 권세를 갖고 있다. 
모든 힘이나, 권세는 그에게서 나온다. 
그가 할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간을 일하게 하시며,
인간에게 모든 힘을 공급한다. 
호흡하는 자마다 그신의 호흡케 하는 힘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신의 기운이 임하여, 인생이 호흡하며, 힘을 얻고 삶을 살아간다. 
그 신이 존재하기에
인생은 존재하고 활동한다.  그리고 그 분을 찬양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생은 신과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이다

 

신을 두려워 하며,그분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는 자에게는 인생의 복이 있다.
복의 근본은 만물을 있게 한 신에게 있으며,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이시다.
그는 신을 모시고 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신의 자신에게 내려준 분복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신이 명한 바를 크게 기뻐하며,
그신의 명령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렇듯이 그 의인은 신을 두려워 하며,
신이 정한 인생의 이치를 무시하지 않고, 하늘을 거역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의인의 삶을 통해 그자손들에게도 복이 된다.
좋은 부모가 좋은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들, 정신적인것, 물질적인 것, 생활적인 것 등을 자녀들이 받는다.
그 자녀들은 부모들이 쌓아놓은 귀한 것들을 더 발전시켜,
세상에 더 강한자, 혹은 영향을 주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악인의 자손들보다 의인의 자손들이 더 잘되어 가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혹은 개인의 족보사를 통해, 알수 있다
(미국의 두가문의 이야기: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의 자손들중 많은 학자, 정치가, 문벌이 좋은 자손들이 나왔으나, 당시에 도둑질을 하던 자의 자손의 가문에는 강도, 살인, 도둑, 사회적인 부랑아등이 여러세대를 두고 나왔다)

환영받는가운데, 온가족이 기다리는 축복속에 태어난 아이는 행복할 것이다.
좋은 환경가운데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에게 복이다.
부모들이 좋은 교육을 해주고, 자기가 발전할 수 있는 여건속에서 살게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자신을 잘돌보지 않고, 게으르다든지,
마음을 못되게 먹고 살게되면,
자신의 인생이 악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며,
결국에는 망신당하는인생으로 바꾸어 질수 있다.

바다밑 흙속에 묻혀있는 조개속에 진주같이
힘들고 어려운 생활현실에서 굴하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아, 자수성가하거나,
오히려 인생반전의 산 증거로 어려운 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활짝 펼친 사람들의 삶들도 있으며,
그들 가운데에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의연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은 인생의 동료로서 그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말처럼,
선거때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투표를 할 후보들을 생각한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나온다. 그것처럼
인심도 천심이다. 사람이 옳게 마음먹고 살면 옳은 일이 생기고,
악한 마음을 먹고 살면 악하고, 안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인생들 자신이 마음을 먹은대로 자신들의 생각이나 비전을 가꾸고 일구어 갈 것이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만들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 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주인에게 보상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운명의 행운이 인간의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기대하며, 토정비결을 보며, 그날의 운수를 쳐다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향하여, 잘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인간의 삶은 신과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이 인생들에게 일정한 분복을 주면,
그것은 마치 재능이나 재물을 맡는 자처럼 자기관리를 잘하여,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그것을 통해 더 많이 남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까지 도움을 주며,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복이며, 자신의 행복이다.

인생은 울면서 왔다가 생활하면서,
울게 되는 현실에, 찌들려 지내다, 한번 얼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인생을 활짝 펴보지 못하며 지내다,
생활의 제한이나, 염려에 울다가 지쳐,
한없는 인생의 한을 남기고, 애처로운 가족들의 통곡속에서 생을 마감하다면,
참으로 슬픈인생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절호의 기회로 알고,
신의 명하는 바를 이루며,
어두움가운데에서 빛이 비쳐지는 역경속에서
오히려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들의 삶은 자신에게 축복이 되며,
자손에게 유익이 되며,
또한 그사람들의 삶은 명예로와 질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감정치료에 대해(1)

단기적이며 역동적 정신치료요법는 감정의 두려움을 다루는 데 촛점이 있다.
짧은 시간안에 감정치료에 촛점을 맞추어,
효과적으로 통합된 방법으로 환자를 다루며,
환자의 지속된 감정문제의 성격과 중요한 증상을 다루는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치료는
장기치료를 행하는 일반적인 정신분석치료를 의미하지 않고,
환자의 정서갈등이나 변화기피를 하는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변화와 행동변화 촛점을 목표로 하는
자발적이며, 협력적인 치료방법이다.

병적인 감정의 요법은 역동적 정신치료적 갈등의 개념으로부터
증상을 이해하는 언어이론과 행동주의 치료로
환자들의 병적인 감정과 증상들을 재해석을 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병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슬픔이나, 분노, 폐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억압된 감정들을 통해 노출된다.
그리고 이 병적인 감정들을 다루는 것이 감정요법의 주된 과제이다.

병적인 감정과 염려조절의 요법은 환자들에게
너무 자주 직면하는 병적인 감정을 치료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 있다.
병적인 감정의 치료적인 암시는
병적인 두려움을 다루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조직적인 감정조절로 치료하는 것이다.

정서를 경험하게 하는 목적의 치료는
환자의 신경증적인 현상을 나타나는 갈등된 감정을 노출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감정표현요법은 적응적인 표현으로
환자가 대인 관계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원함이나, 필요성에
잘 적응시키는 치료적인 훈련이다.

이 감정치료법안에 있는 재구성요법에는
자기방어기제에 대한 재구성요법과 정서의 재구성요법,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적인 자아재구성요법으로 나눈다.

재구성요법은 환자의 관점, 경험,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하는 방법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자기방어를 유동적이게 하고,
억압된 정서를 자유하게 하며,
지나친 염려를 가진 환자자신이 적응할수 있는 레벨로 감소시키며,
그래서 자기자신에 대한 이메지나 타인과의 접촉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정신치료의 전반적인 목표는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병적인 감정들을 감정둔화의 방법으로
정신적인 갈등등을 해소하며,
환자의 지나친 자기방어를 포기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갈등있는 감정을
자신들의 적응적인 정서로 바꾸어 주는데 있다.

건강한 인간관계접촉은 자율성과 상호독립성을 가진 인간관계를 의미하며,
건강한 상호의존성을 용인하는 상호 친밀함과 참된 인간관 계를 추구한다.

자신과 건강한 접촉을 갖고 있는 사람은 타인과의 접촉도 원만하게 할수 있다.
그 감정치료의 과정안에서 환자가 겪었던 자신이나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얻은 변이된 일그러진 현상들이
치료사와 환자자신의 건강한 접촉관계를 통해 치유되어 가기를 꾀한다.

-Treating Affect Phobia 라는 책에서-

일반일들도 자신의 왜곡된 감정문제나, 주변사람들의 정서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원함으로 글을 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성발달의 심리학(1)

영성개발의 심리에 대한 책으로,
영성과 심리학을 접목하여,
영적구도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인성개발의 지침으로
영적원리에 대한 심리적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영성생활이란 하나님의 내면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이나,
자기개발의 추구이다. 사람은 신비한 경험으로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유한한 인생이 무한하신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한 교류에 의해 영적생활을 인도 받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영적생활에는 하나님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삶을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성육화된 말씀을 통한 깨달음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인간의 영성개발은 인간발달에 있어,
영적인 가치들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즉 되어가는 존재에 대한 자기발달이해인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롭게 된 자신이 과거의 잘못으로 벗어나며,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영적인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다.

성장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정화되어짐과, 조명되어짐과,
그리고 일치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매일의 자기성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라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성개발은 인간 발달의 단계에서
생겨나는 중요한 사건이나, 경향들을 통해, 형성되어진다.
어린시절에는 신뢰하는 것을 배우고, 자율성과 주도적인 능력을 개발하는 특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게 될때에,
다음단계에 가서, 감정적인 불안정이나, 혹은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 다음단계에는 독립적인 인격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이 단계에서 실패하면, 대인관계에서 부끄러움을 자주 느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쉽게 의심이 생긴다.
그래서 나중에 무가치한 것들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자주 느낀다.
영성개발에도, 이런 경향들에 영향을 받아,
영적인 성장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신적인 자기 파괴적인 인격소질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어린시절에 건강한 어린아이로 자라난 경우는
창의성이나, 개인의 인격성이 발달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다음세대에 대한 책임의식과 관용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영적인 성장도 성숙한 인격형성과 함께 지속적인 건강한 자기발달을 가져온다.

아이들이 경쟁하는 상태에 빠지거나,
자신의 소질이나, 필요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상태에
(자신의 개성에 대한 확신감을 갖게하지 못하는 경우) 놓여지며,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나친 스포츠나 아카데믹한 성취에 자기가 내몰리게 될때에 치우친 자기발달에 빠지게 된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나중에 그들의 영적인 추구의 생활에도, 조화롭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영성의 특성을 갖기 쉽다 (이성의 역활이 약화된 신비주의중심, 희생과복종등 의지적이지 않은 기복주의중심, 전혀 의지와 감성에 영향을 주지못하는 이성중심적인 신앙관등이다.
반면에 건전한 영성은 지,정,의지적인 조화를 가진 성서적인 신앙관)

복잡한 문화와 사회구조적인 시스템에서,
청소년들은 전반적으로 건강한 영적인 발달을 이루는 것은
어린 시절에서 성년으로 자라는 과정에 중요하다.
청소년시기에 도달해야 하는 인간의 특질은 사회안에서
자신의 독립심이나, 자기를 스스로 돕는 능력이나,
자기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제대로 인격이 발달되지 않으면,
그들은 방향감각상실, 오락에 빠지는 자기태만,
삶의 권태나, 자기증오나 죄책감, 그리고 자기파기적인 경향에 빠지기 쉽다.
에릭슨은 청소년의 중대한 갈등은 자기정체성과 자기역활혼돈이라고 한다.

이 청소년시기에 처음과 끝이 모두 영동적인 영적이고
종교적인 발달을 이룰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 시기는 종교적인 전환이나, 거듭남이나, 자기변화를 통해 개종을 이루기 쉽다. 앞으로의 장년의 영성의 기반을 이루는 기간이다.

반면에, 이시기는 종교적으로 건전하게 발달하지 않으면
(이것은 어느 특정한 종교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종교성으로서의 일반적인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임) ,
영적인 무관심에 빠지기도 하며, 비도덕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더나아가 비양심적인 악한 행위에 빠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그런 경우에 종교적인 무관심이나, 반 종교적인 사상에 심취하기도 한다.

청소년시기에, 처음부터 천천히 진행되어가면서 도달하는 마지막단계까지 발전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친밀함이다.
이것은 앞으로 성년인생의 안정된 서로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로 발전하여,
그 친밀함을 통해 보다 강화된 사회성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친밀함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소외적인 성품이 되어,
모든 인간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이성을 사귀는것이나, 결혼하는 연령도 늦어지게 된다.

성적인 친밀감은 모든 장년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으로 영향을 미친다.
낭만적인 사랑에 치나친 추구는 자칫, 성적인 사랑의 만족을 구하는 경향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럴때에는 정신적인 사랑을 구하며,
성적인 것만 추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성간에 서로 정서에 호소하는 친밀함을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서적인 성적인 추구에 빠져,
비정상적인 성적관계(난잡한 성행위, 동성애, 음란적인 성적인 추구나 방종)를 추구하게 된다.

친밀함은 젊은 성년들에게 중요한 품성이며, 관심의 대상이다.
이 친밀함은 영적인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과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은 독자적인 개성있는 인격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보다 깊고, 넓은 인간관계를 가질수 있는데,
이것이, 영적인 세계에서 신을 진지하게 추구하며,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밀도있게 성장하며,
폭넓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게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영성개발의 영적인 깊은 단계에 까지 이르게 한다.

Groeschel, Bebedict J. "Spiritual Passages: the Psychology of Spiritual Development" 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인적 감사

해마다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때마다,
경험하는 것은 마땅히 갈때도 없지만,하루를 그냥 집에서 지내기가 일수 였다.
그렇지만, 추수감사절의 명절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기억난다.

처음 미국에 온 해에는 당시 이웃에있는한인교회의 어느 집사집에 초청을 받아,
처음 감사절 가족식탁에 초청을받아,
함께 칠면조고기와 호박파이등을 먹으며, 감사절을 경험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어느 미국인교회에서 유학생들을 초청한자리에 가서
함께 예배를드리며, 저녁을 함께 하며,
서로 나라마다 자기들의 장기나 특성들을 소개하며, 감사절을 보냈다.

감사절의 추억은 나에게 먼 이국생활에 따뜻함과 배려의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유학생활에 활력을 주거나,
사람들사이에 나누는 정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조상들도 추석이나,설날등 명절에 함께 친척이나,
이웃들과 정겨운 정을 나누듯
이곳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그런 인간의 정을 나눈다.

해를 거듭할수록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추수감사절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속에 뿌리내린 전통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와서 자주 들은 말은 서로가 감사한다.고맙다 하는 말들을 자주 인사를 주고받는다.
관공서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마켙에 물건을사도,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 받는다.

나도 잘 안되는 영어하기에서 그래도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고맙다라는 말이었다.
나도 이곳에 여러해 지내다보니 감사하는 습성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사람이살면서,자신의 환경이나, 여러가지 인생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혜택을 받은 경우등을 경험한다.
미국생활에서 잊지 못하는 감사할 일이 생각나,몇자 적어본다.
한번은 갑자기 병원신세를 졌는데,
거기에 있는 전달훈집사라는 한인 의사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진통이 너무 심해 참을수 없어, 밤에 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그 의사집에 전화를 하여,
그 집에 밤늦게 찾아가, 그의 진단과 진료를 받았다.
너무나 고마운 한인이었다.
그후에도 그는 나의 병원생활을 수시로 체크해주며, 돌보아주었고,
당시나는 학생 보험을가지고 있었는데,
보험회사와 그의사의 도움으로 한푼도 내지 않고,
일주일간 병원생활과 수술비가 3만불 이상이나왔지만,
치료를 잘받았다. 고마운 동포의사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켄터키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는
대륙횡단하는 자동차여행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중고자동차를 두대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밴이고, 하나는 소나타 중고차였다.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는 지역에는 고갯길이 많이 있었다.
힘없는 중고차 밴이 뒤에 짐을(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척이
김치랑,반찬이랑 마련해주어 그것을 뒷차에
잔뜩실어 뒷차를 견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실려 있었다) 실은 소나타차를 끌고
높은언덕길을올라가는데, 트랜스미션오일이 분출하여,
차가 잘움직이지 못하여,겨우 이웃 마을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갔는데,
그날은 토요일오후라,정비소가 반난절만 일하여,월요일까지기다려야 만한다고 한다.
또한 차의 수리비가 트랜스미션을 갈아야 하는데, 1,500달러(1,500만원)가 든다고 한다.
갈길은 아직 멀기만 하고(여행거리 1,300마일; 약1,600 킬로미터의 1/5정도 온지점에서
차가 문제가 발생),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막막했다.

마침, 우리가 두차를 연결하려면 유월이라는 이사전문업체에서
뒷자동차를 앞바퀴만 올려,견인하는 차를 빌려서,
그 지역에 있는 지점을 찾아가 그문제를 문의했는데,
거기에 있던 마음씨가 착한 종업원이 우리차를 살피더니,
이것은 트랜스미션오일만(15달러어치) 채우면,
차가 목적지가 갈수 있다고 한다.
그때,그종업원이 말대로 차는 무사히 올수 있었다.
지금생각해도 그에게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모든 감사할 일이 배후에는
신의 기이한도움의 손길과 신의 응답의 역사가 있었다.

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는 한번은 한국에서 동료들과 함께 바닷가 해변에,
하루 여름 수련을 가서 수영을 하다가,
해변의 바다의 소용돌이가 이는 지역에 빠져,
아무리 수영을 하여,빠져 나오려고 했지만,나올수 없었다.
내 힘이나 실력으로는 그곳을 빠져 나올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물에 빠져 죽는구나,생각이 들면서,
내가 믿는 신에게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발 살려 달라고 짧은순간에 긴급한기도를 드렸는데,
그때 갑자기 큰 파도가 내 등뒤에 부딪히면서,
그 부딛치는 힘에 의해, 그 소용돌이를 빠져나올수 있었다.
그 일로 신이 과연 살아계시는 구나,
그리고 신은 반드시 신의 자녀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의 마음

세상을 창조한 신은 홀로 천지를 만들고, 주재하지만,
그는 한 공동체로 신의 본성이나, 신의 역활을 감당하고 있다.
창조주 신은 그안에서 서로 관계(독특한 관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를 성립하고 있는 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섭리를 통해,
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함께 신의 역활을 감당한다.
이점을 인간이 이해할수 없지만, 신의 관계는 마치 인간의 가족관계처럼,
그안에서 서로 역활을 분담하며(아버지는 세상을 있게 하였고, 세상을 돌보는 역활을,
아들은 세상에 있는 인생들을 아버지와 연결하는 중보하는 역활을,
영은 아들에게로 나오는 인생들을 인도하는 역활을),
세상에 있는 인생들을 신 자신과의 관계나 교제안에 들어오는 길을 제시하였다.

신은 세상을 향한 그의 통치와 돌봄을 그의 아들과 그 영을 통해, 함께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임하여서,
몸소 인간의 삶을 체험하였다.
그신은 인간이 되어, 인간이 겪는 모든 삶의 고난과 고초를 겪으며,
가장 처절한 고통의 인간체험을 통해,
그는 인간의 죄를 감당하며, 십자가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신의 인간에 대한 신의 형벌과 고통을 다 담당하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신에게로 다가올수 있는 용서와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여,
인간세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죄, 절망, 두려움, 상처, 질고, 죽음등)를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아들인 신은 그의 근본이 신이지만,
그는 신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인생들을 위해,
그는 자신의 영광된 자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들이 겪는 모든 인생의 삶의 과정들을 경험하므로,
그는 그 인생들에게 신의 뜻을 보여주어,
인생들로 하여금 신을 알게 하여, 그들을 신에게로 인도한다.
아들은 인간에게 신의 본성과 모습을 알려 주었으며,
신의 마음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었다.

여느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취한 그의 마음은 깊은 겸손한 태도와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고저 하는 열정의 마음이었다.
신의 아들은 인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 마음은 신을 이해하는 마음이며,
신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며,
인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모든 인간의 문제의 근본적인 상태는
바로 인간의 그 타락하고 교만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권한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마음이 신과 동등해지고저 하는 불순한 마음의 동기로 발전되어,
신 앞에 교만한 의도로 인하여,
인간속에 있는 신의 통치와 관할하에 있는 자신의 겸손한 상태를 벗어나,
그 인간들은 신과의 관계의 단절과 그로 인한 신과의 교제의 영광의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이 신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하여, 인간이 신의 법을 어기고,
그 베푸신 혜택을 배반하여, 인간속에 죄가 들어오게 되어,
그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인간 자신속에 있는 소우주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르고저 하려고 할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신과의 관계안에서 누리는 그 영광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만물의 그 어떤 것보다 그 상태가 부패해있고, 어두워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심히 자신의 마음이, 거짓과 허무에 노출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신에 대한 그릇된 이해나,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릇된 의식은 모든 일에 있어, 신의 뜻을 저버리고 살게 되었다.

그런 인간의 마음은 마치 아직 개간되지 않은채,
온갖잡초와 엉겅퀴가 나있는 황무지와 버린 땅과 같이 되어 있다.
그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고 새롭게 하는 길은 오직 신의 마음을 통해,
신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제안에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사랑과 용서를 알려주는 신의 마음이 필요하다.
신의 마음을 통해, 인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안에 새로운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그리고 그 자아상은 잃어버린 신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신의 성품를 가지게 한다.

다시말하면, 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인간의 자기이해는 자기모순이나, 자기혼돈이아니라,
자신안에 조화된 성품과 자기개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을 갖게한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마음을 통해, 신을 이해하게 되고, 신과 일치하는 마음이 되어,
신과의 관계회복과 교제의 지속적인 실행을 통해,
인간자신안에 잃어버린 신의 형상이 이루어 진다.

그 신의 마음은 인간의 내면에,
신과 단절되어 떨어져 나가버린 고아와 같은 버림받고 절망된 자신의 상태와
그 상태로 인한 자신의 상처들을 치유하며,
더 나아가 자신이 신의 소생이라는 것과 신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신으로부터 인류의 조상들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인간안에 있는 신의 영광에 참여할수 있는 혜택을 받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인의 마음과 신의 자비

 

시편 109편 1-4

오 하나님, 내 마음을 정하였나이다. 나의 영광과 함께 당신을 기뻐하며, 노래하기로,

여기 시편의 시인은 자신이 고백하는
신에 대한 믿음과 그분을 높이고저하는 일편담심의 마음이 표현되어지고 있다.
이렇듯이 신앞에서 인간이 소중한 것은
그가 바로 인간이 신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신에 대한 변함이 없는 생각과 마음을 갖는 것이다.

신은 변함이 없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지며,
그가 생각하신 바는 실현되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며, 태도이다.
때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가지 관점을 갖지 않고,
너무 자주 인간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도, 변화무쌍한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 시인은 그는 변치 않는 마음으로
신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다해 그분을 섬기고, 찬양하는 태도로 일관하리라,
자신의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영화스러움이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신을 향한 정성과 열정을 쏟아,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성호를 높이리라고
신에 대해 자신의 감사의 고백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어떠한 경우에서든 변치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한가지 관점,
즉 신에 대한 자신의 변치않는 충정과 열정의 생각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마음 먹은 것이 너무 자주 바뀌어 지는 경험을 한다.
좋은 의도로 뜻을 세우고, 그것을 평생실천의 동기부여로 세우고 나갈때에,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뜻에 대해,
딴지를 걸면, 쉽게 그것을 포기하기 쉬어진다.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이 자신의 옳은 뜻을 관철하지 못하게 할때에,
쉽게 좌절에 빠지거나,
복잡한 생각에 의해 혼란된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중에 신을 모시고 섬기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으나,
그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의 믿음이나, 생활태도를 점검할수 있게 된다.
내가 믿고 추진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다림의 태도가 필요할때에, 자신에게 다짐할 필요가 있다.
신을 믿고 따르다 실망할때에 좌절하지 말고,
그분을 계속따르는 것은 그가 신실한 분이며,
그의 자비는 하늘보다 높기에, 그분의 생각을 측량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은 때로는 신을 섬기는 사람자신의 믿음과 태도를 테스트를 하기를 원하기도 하고,
어느 상황에서도 신자신에 대한 변치않는 일관된 태도의 사람의 마음을 기뻐한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신을 따라감은 그의 자비로움이
사람의 생각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무한한 요소가 있어,
그의 무한한 자비는 인간을 인도하기에 충만한 그의 마음을 담고있다.

신의자비는 하늘들보다 드높다.
신의 자비는 온우주에 편만하며, 충만함이 넘침을 보여주고 있다.
신의 자비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두루 비쳐주며,
온우주에 모든 곳에 미치고 있으며,
그의 사랑의 손길은 우주의 조화와 질서가운데에, 뼏쳐있다.
그가 그의 손길로 우주를 붙들고 있으므로,
우주는 안전하게 항해하며, 우주안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삶을 살수 있다.
신의 자비가 한순간이라도 미치지 않는다면,
이세계는 순식간에 혼돈과 무질서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신의 자비가 멈추는 때가 있음을 신의 말씀이 계시하고 있다.
그때에는 인간세계에 대한 신의 심판이 행해지는 때이다.
그때는 천체도, 온 세계도, 혼란속에 머물것이다.
신의 자비는 잠시 우주에서 심판으로 대처될 것이다.
그것은 잠깐이지만,그분의 자비는 영원하다.

그의 진리는 하늘 구름에 닿는다.
이것은 신에 대한 진실의 말씀이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신에게 도달케하는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는 변할수 있음을 그분의 말씀(성경)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온 우주가 변하는 순간에도,
그분의 하신 말씀은 변함이 없이 그분의 계획과 생각을 이룰것이며,
그분의 뜻이 결국 영원히 세워 질 것이다.
그분의 말씀이 하늘 구름에 닿음은
그분의 뜻이 그분의 말씀안에서 다 이루어짐을 암시하고 있다.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인간이 사는 이세상안에도 결국 온전히 이루어 질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신의 말씀을 의존하는 근거인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람(자신)을 치유하려면

사람이병들었을때에, 병의 원인을 알고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이 어디가 아픈지,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 필요하다.
친척중의 한 아이가 중병에 걸렸을때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데, 한달이상 걸린다.
사실, 의학의 가장중요한 단계는
그 병이 정확히 무슨병인지를 알아내는 진단하는 과정이다.
예방도 필요하고 치료도 필요하지만,
병의 징후가 있을때가 정확히 병을 알아맞추는 의사가 실력있는 의사이며,
그 의사를 신뢰할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도 오진으로 인한것이 거의 대부분이다라고 할수 있다.
정확히 보지 못한 병에 대해 다른 병에 대한 처방으로 고치려고 하지만,
병명을 잘못알고 있으면,
그 병을 정확히 고칠수 없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며,
자신의 문제의 해결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문제진단이나, 해결은
인간을 만든 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생이 처음부터 이세상에 살때부터
인간사회가 그인간의 문제로 인하여,
문제가 일어나고, 갈등과 싸움의 연속적인 역사를 겪어왔으며,
아직도 사실 인간자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 문제를 안고 세상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에게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때에,
그 문제를 정확히 보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며,
해결책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더우기 자신에게서 그문제의 출발이 있고, 원인이 있다면,
자신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하겠다.
그래서, 인간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 자신을 고치는 데 중요한 단계이며,
과정이다.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대개 자기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몇가지있는데,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가지고 있는 자기 편견이 있고,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교육의 결과로 인한 자기아집이 있으며,
잘못된 조언이나, 지도를 통해 갖고 있는 그릇된 자기이해가 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 얼굴에 점심때 먹은 밥풀이 묻어있다고 가정했을때에,
남들은 밥풀이 묻은 자신의 얼굴을 언제든 잘 볼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나자신은 거울을 가지고 가서,
그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아야
자신의 얼굴에 묻은 밥풀을 보고, 그것을 떼어낼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때에나,
어느 문제든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달라질수 있는데,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는
문제를 판단하는 자신이 문제에 휩쌓여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보지 못하므로 객관적인 판단을 따르게 된다.
우리가 어느 문제가 있을때에,
남의 조언을 듣는다든지,
그리고 전문인으로부터 상담을 받으므로 훨씬 자신의 문제를 빨리 해결할수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병들었을때에,
병의 원인을 잘 알게되는 것을 통해,
그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수 있겠다.
마음의 병이 먼저인지, 아니면 육체의 병으로 인하여 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악해지거나,
상처가 있어서 그것이 몸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는지,
혹은 자신이 받은 영적인 혼란속에 있어서,
자신의 몸이 병들어 있거나,
삶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는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병적인 원인을 분변하고 판단하기위해서
사람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몸은 유기적인 존재이다.
이말은 모든 인간의 몸은 몸안에 있는 각지체나,
장기의 각기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 생명체안에 있는 유기적인 조직안에 있는 본성이나, 지체나,
혹은 기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은 영혼과 마음과 몸의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다.
몸의 상태가 마음에 영향을 주는데,
몸이 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면
마음도 약해지기 쉬워, 무슨일에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대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 몸의 이치라고 할수 있겠다.
그렇지만, 반면에, 몸이 약하고 지체가 부자유해도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도 있다.
(예를들어 강영우박사같은 경우일것이다.
시력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한국인으로 가장 높은 직급의 미국의 공무원이 되었다)

마음의 상태가 몸의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를 하는 선수가,
기술적으로는 잘 준비를 하였는데,
시합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지 못해 경기를 질수도 있으며,
실력이 모자라도 시합때에 정신적인 무장으로 실력이상 발휘하므로 시합에 이기기도 한다.
또한 이런 경우도 어느 나이든 여자분이 있는데, 이분을 늘 신경통으로 고생을 한다.
아무리 약을 써도 신경통이 낫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정신적인 상담인으로부터 상담을 받다가,
과거에 자신과 원수관계를 맺었던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 증오하고, 용서치 않는 마음의 상태가
그 여인에게 그렇게 몸에 질병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생각의 집이다.
자신안에 품은 생각에 의해 마음이 영향을 받고,
그 마음이 몸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더나아가, 사람의 몸이 무엇에 영향을 받으면
사람의 깊은 영혼까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들면, 마약을 복용하는 경우는
사람의 정신세계뿐 아니라 영적인세계에 까지 영향을 주어,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져,
악한 영적인 존재의 영향에 의해 쉽게 자신를 파괴하는 쪽으로 몰고간다.

더 깊은 단계에서의 사람의유기적인 관계안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영혼의 그릇들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영혼이 담는 대로 만들어진 그릇에 불과하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듯이
인간의 영혼속에 무엇을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그의 몸이나, 생각의 집인 마음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사람의 인생자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나, 도덕률의 가르침은
사람의 영혼에 담아지는 영적인 말이며,
마음에 영향을 주는 생각이며,
인생을 만들어내는 이념이다.
사람의 영혼이 무슨 가르침을 받든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나 사람이 인생의 삶을 살아 나가는 방향에 영향을 준다.

인간사회에 보내준 신의 말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으로 사람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의 근본적인 병을 치료한다.
그 병은 인간속에 있는 악의 씨이며,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죄성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인간현실의 병적인 상태이다.
거기에 대해. 신이 인간에게 제시한 말은
사람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주는 처방전이며,
사람의 모든 병을 치료하는 기본적인 약(많은 약의 발명의 배후에는 성경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였다)을 제공하며, 사람의 병적인 상태를 원상회복케 하는 치료제이다.
고로 그것이 사람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며, 회복케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이 찾고있는 심령들

시편 107편8-10

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가 선하시며,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들을 보실때에, 자비와 선하심으로 살피신다.
그리고 엄마가 자녀들을 돌보듯 하는 것 이상으로 인생들을 돌보신다.
인생의 광야길에서 험악한 일을 만나,
어찌할줄 몰라 할때에,
하늘에 계신 그분은 은밀하게 그 인생들을 도우신다.

그분은 선하시고 착하신 분이시다.
뭇 인생들에게 무시당하지만, 그는 끝까지 참으시고,
그 인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 밖을 바라보면,
환하게 비쳐오는 그 따스한 햇빛속에서 신의 선하심과 자비를 맛본다.
모든 만물을 향해 골고루 비쳐주는 햇빛은 누가 만드셨나?
저절로 그해가 생겨서,
이지구를 비추게 하고 있는가?
햇빛의 온기와 그 에너지를 힘입지 않고,
흑암가운데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따스한 봄날의 햇빛은 더욱 인생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있다.

인생들이 그신을 향해 감사할 것은
인생들을 내신이가 그이기에,
그가 계시므로 내가 있게 되었으므로,
그의 존재하심을 감사드린다.
그는 그가 행하신 많은 일들이
우리인생들의 앞서 이루어진 것들을 인하여 감사드린다.
드높은 창공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송이를 바라볼때마다,
창조주의 솜씨를 노래한다.

구름넘어 있는 신비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신의 신비로움과 그의 세계의 오묘함에 놀라,
그분의 영화로움에 덩달아,
우리 인생들도, 그의 영광가운데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영광안에 있는 인생의 광명은
아무리 험한골짝같은 인생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분이 나의 인생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손길을 느끼면,
그 모든 어려움도 감히 감당할수 있음은
그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감사드린다.

그는 지금도 사랑의 눈으로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신을 구하는 심령들을 바라보며 만족해 하신다.
그 많은 인생들 가운데에,
신을 구하는 구도자들의 심령을 바라보는 기쁨은
한 영혼의 신에게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향해,
그의 보좌에 온주변에 있는 천상의 존재들과 함께 즐거워 하신다.

그 가련하고 배고픈 심령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는 그들의 굶주림과 갈급함을
그의 충분한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의 은총으로 채우신다.
그들은 어두움에서 신음하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온 자들로
인생길에서 깊은 좌절과 절망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생의 깊은 절망과 고통의 수렁에서 허덕이며 헤매다가
신을 찾아 그를 만나,
그에게서 그 은혜와 축복의 깊은 맛을 맛본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도리어 그것을 통해 신에게로 다가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도리어 기뻐하고 있는 심령들이다.

배고픈 심령, 인생을 두고 한탄하는 심령을
지금도 신은 부지런히 찾고 계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업"이라는 단어를 나의 인생사전에서 없애려면

우리사회에 실업인구의 증가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되었다.
국민적인 인구의 자산의 비율이 다른 어떤 국가적인 재산보다
높은 비율의 국가들중에 하나인 대한민국에게 있어,
인구의 자산은 유일한 국가적인 자산의 소망이며, 가치이다.

그렇지만 좁은 땅어리에 계속해서 번져가는
인구의 증가는 우리가 사는 좁은 땅어리를 더욱 좁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하는 사회에서
실업인구의 증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반면에 아이러니칼 한 우리가 바라고 싶지않은 현상이 또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의 감퇴로 인하여,
유효 노동력인구의 확보의 문제가 얼마안있으면, 대두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세대의 우리사회는 넘쳐나는 취업휴업의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사회구석구석이 좌절과 한숨의 소리가 베어나온다.
노동력인구의 취업휴업인구의 증가는
국가적인 손실이며, 가정적인 손실이며, 또한 실업하는 자신에게 있어서의 개인적인 손실이다.

넘쳐나는 실업의 증가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전체사회적인 노동력배치를 보면,
한쪽에서 특히 3D 직종에서는 노동력 인구가 없어,
외국인 노동인구의 증가가 되는 반면에,
평범한 한국인의 그들의 원하는 직종에,
노동하는 기회가 경쟁으로 인하여, 적어지고 있다.

실업의 문제가 국가나 정부나 사회단체나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너무 사회가 복잡해졌으며,
특히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어느 국가나 사회에서도,
실업인구와 무숙자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더나아가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나라 일수록 무취업인구가 증가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기본적인 것들을 정부가 제공하다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손에서 놓고 있기에 쉬워지며,
자기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사회에 경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좋은 도전을 주는 자극제가 될수 있다.
그런 상황은 오히려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너무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다보면,
오히려 자신을 도태시키는 역작용의 역활을 하기도 한다.

실업하는 사람에게 있어 정해진 취업이나 직업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신안에 있는 실업이라는 의식이 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업이란 자기가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고 살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는데,
봉급을 받고 안받는 사람이 취업휴업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휴업을 하는 본인자신이 아무 할 일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 더 실업적인 문제라고 할수 있다.

인생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업하는 그/그녀는 지금 잠시 휴식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시기는 자신을 재창조할수 있는 좋은 기회인것이다.
그 기간이 길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보다나은 자신의 미래의 장기적인 준비로 생각하고,
더 친밀하게 그 휴업의 시간들을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준비하는 것 만큼,
인생의 시간이나 기회는 자신에게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세상은 신이 인간이 살 인간세계와 사회를 모든 만물을 만들때에,
인간의 노동이나 도움의 필요없이
전적인 신의 전능한 손길로 온우주가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 신이 인간에게 에덴의 낙원이라는 세계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만물의 관리자로 살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휴식이나, 안식가운데에 일을 취미정도로 즐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관리인으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월권을하여,
이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벌로,주어진 것이 땀을 흘리며,
땅을 가꾸고, 노동을 해야 먹고 살수 있도록 되어졌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준 그 노동도 축복으로 주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있어 일이란,
자신의 숙명과 같은 자신이 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자기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이 생각하는 취업이라는 것은 평생직업인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인생 취업하는 직업을 놓고 살수는 없다.
만일 인생직업을 놓은 경우는 단지 자신의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때 일것이다.
사람의 몸이 계속해서 변화해가며, 생존하듯,
인간의 삶은 계속적인 일을 통해, 자신이 생존하게 된다.
그러면 인생직업에서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의 명제가 있다.
이것은 신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신성한 자기사명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과 자신의 미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자신을 몰두해야 한다.
이것은 보통생각하는 직업이라는 세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직업인으로서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자신의 일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의 직업적인 일이 그 인생직업의 일들을 도울수 있다.

만일 지금이 자신을 실업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시간이라면,
그기회야말로 인생직업에서해야 할일들을 부지런히 찾아 해야 할 것이다.
보통 평범한 직장을 갖고 자신의 인생직업에 대한 일을 충실히 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일들은 자신이 실업이라고 생각하는 기간이 자신에게 더욱 좋은 기간이되며,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 기간에 자기자신을 열심히 연마하고,
자기 발전이나 성장에 시간을 투자하면,
오히려, 긴인생의 노정에 전체적인 관점을 갖고 볼때에,
그 실업하는 기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며,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있어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느끼고 사는것만큼
정신적으로 고되고, 힘든 일이 없다.
인생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느끼는 감정은 가장 비참한 감정중에하나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란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자라는 것이 그들의 일이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리고 장성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할일을 하여야 할것이다.

실업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라기 보다,
의식적인 문제가 더 문제가 된다고 할수 있겠다.
취업휴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에서 실업이라는 단어를 아예 생각하지 않고
오리려 그 시간에,
자신의 전체인생의 직업에서 해야할일들을 생각하고
그일에 충실하여 가다가보면,
자신에게도 직업취업이라는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따라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살기가 편한다.
아무일도 안하고 지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인생의 경험이다.
그런 경우는 실업이라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의식속에는 실업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기인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 집사람이 말하는 것은 돈문제가 인생의 문제들중에 가장 작은 문제라는 것을 명심하기를…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다라는 말을 항상 명심하기를…).

그러므로 그렇게 아무일도 안하고 산다고 결심을 해도,
인생직업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있어 꼭 해야 할일들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업의 문제중에 하나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은퇴
(조기은퇴라는말은 직장인들을 더 주눅들게 하는 말이지만)를 통해
자신을 실업으로여기는 경우이다.
은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일들을 찾아 새로운 삶의 기회로 생각하고,
전통적인 직업의식에서 떠나,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일들을 찾아,
자신의 삶의 시간들을 투자해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어느 직장에 머물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휴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피곤하고 지쳐도 직장에 다녀야 한다.
그리고 자기 성장이나 발전을 위해 재창조
(레크레이션: 휴식하면서 자기 발전을 위한 자기충전을 위해 창조적인 사역을 하는 것)
할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흔히 두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의 보이는 환경안에서 사는 현실의 세계가 있고,
또하나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가 있다.
환경의 현실세계보다 인터넷의 가상세계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인생의 삶의 기회와 경험들의 폭을 확장해 나가며,
인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공간을 초월하여 가상세계에서 우리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수 있으며,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의 기회들을 얻고 있으며,
그리고 더나아가 직업의 세계를 무한대로 활짝 제공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자신의 아이디나,
혹은 자신의 인터넷활동을 통해
언제든지 자신의 비지니스를 열수가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환경세계의 직업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앞으로 가상세계의 현실이 환경세계의 현실보다,
훨씬 우리의 삶의 부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직업의 보다 넓은 영역으로나 보다 확장된 경험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가정에 머물면서 해야 할일들이 점점 더 많아 질것이다.
몸으로 환경의 현실세게에서 움직이는 활동보다,
인터넷으로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삶의 시간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의 가상세계의 무한대의 직업기회은
모든 자기자신을 실업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존 전통적인 직업관이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취업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인구의 전체인구의 비율로 볼때,
가장 높은 비율의 나라들 중에 하나이다.
이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모두에게 일이라는 기회를 열어준다.

가상세계(인터넷: 사이버의 세계)에 계속해서
수많은 직종의 직업이나 자영업이나,
기회를 좇아 새로운 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전에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인터넷 비지니스의
인노베이션의 서비스를 제공을 하는 것으로 몇사람들이 수만달러의 돈을 번다고 한다.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그들은 가상세계의 직업세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중의 몇사람들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