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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05
    주님의 통치하심이 의미하는 것
    목동
  2. 1999/11/30
    유익한 사람과 쓸모없는 물건
    목동
  3. 1999/11/30
    영적성장에 대한 도전
    목동

주님의 통치하심이 의미하는 것

시편97

주님이 통치하시니 땅이 즐거워 합니다. 

온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섬들이 주님을 기뻐합니다. 

주님이 계시니, 세계가 든든하게 서있습니다. 

내일에 세상에 종말이 와도,주님이 계시니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지구가 뒤틀리고 천체가 흔들려도 우리는 요동치 않습니다. 

온우주를 창조하신 이가 계시니 혼이 빠질일이 생겨나도

나가 떨어져 자빠지지 않습니다. 

 

땅에 어두움이가득하고, 악이 횡횡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져 얼굴들고 살수없을정도가되더라도,

세상은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계신주변은 마치 흑암에 둘러 쌓인 것처럼,

흔적도 없이 펑뚤린 하늘처럼 아무도 없는 적막한 하늘의 창공에서도,

주님이 보이지 않으신 것같으나, 거기에 주님의 보좌가 놓여 있으니,

그가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그의 보좌 앞에 불이 나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듯이

주님의 불꽃들이 적들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발하는 빛은 전광석화와 같이 땅에 비치며,  빛에 환히드러나고,

그의 앞에서, 두려워 떠닙니다. 

옛적에 예수님 믿는 예수장이들을 잡으러 가는 길거리에서 살기등등한

바울에게 비쳐진 빛처럼, 주님의 빛은 인간의 어두움을 속속 들이 비쳐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휘황찬 빛앞에 벌거숭이가 되어 드러납니다.

 

높은 산들이 자신들의 높음을 자랑하고, 온갖 것들로 장식하며, 방어하며,

자신을 치장을 하여도, 산들을 지으신의 눈아래에서,

자신들의 높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그것은 다음과 같은 현상입니다. 

세계의 높은 산들처럼, 온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도, 세력인들도, 권력인들도,

유력인들도 주님앞에 나약한 존재로 드러나며,

그의 심판하시는 역사앞에 촛밀 녹듯이 그들의 간장이 녹아내리듯

그들의 마음이 떨립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임재하심은 그들의 마음을 녹입니다. 

다만 육신의눈만을 가진 인간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주님의 존재는

온만물가운데에 충만히 계십니다. 

미물도,미생물도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고 흠숭합니다. 

 

하늘은 주님의 (옮고 바름) 선포합니다.

우리가 푸르고 맑은 하늘을 쳐다볼때에 우리는 당신의 마음을 보는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하늘의 푸른 창공처럼 투명하며,

밝음이 드러나듯이 옮음으로 가득차 계십니다. 

모든 인생들이 가운데에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의가 그분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분의 의앞에 인간의 불합리도, 억울함도, 강압적임도, 인간적인 모순도

봄눈 녹듯 녹아집니다.

 

이런 놀라운 주님을 어리석은 인생들은 한갖 깍아만듯 나무토막이나,

석돌같은 존재로 만들어 그것들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자랑하는 인간의 무지가 모든 신들을 섬기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는 섬기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들위에 가장 으뜸이신 주님은 우상섬김들을 통해

인간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을 창조하신 신앞에 갔을때에 그들은 놀라운 어리석음에

자신들을 가눌길 없을 것입니다. 

정작 자신들을 있게 하신 창조주를 몰라보고,

평생을 어리석게 억울하게 자신의 인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조주를 찾아, 발견하고, 만나서, 그를 알아보았던 사람들은 즐거워 합니다. 

주님이 계신 땅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을 통해 자신이 건짐받은 인생들은 기뻐좋아합니다. 

인생들이 겪어가는 무지, 가난, 곤란, 미망, 허망, 억울함, 황당한 고통, 몸서리치는 고통,절망, 패배,좌절, 죽음을 통해 건짐받은 인생들이 주님을 향해,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땅의 보호받아야 인생들이 사람들의 딸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나약한자라고 여기고

주님의 보호와 보장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다행한 일이 었는지를 주님이 온세상을 심판하는 그날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을

바라보고 기뻐 좋아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높은 곳보다 높이 계신 분입니다. 

주님은 모든 신들가운데 높임을 받으십니다.  인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주님은 가장 높임을 받습니다.

인간이 다하는 온갖 정성과 찬양이 담긴 곳에서 주님은 높임을 받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흠송안에서

주님은 높임을 받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인생들을 주님은 보존하십니다. 

그는 주님을사랑하는 무리들의 영혼들을 영원까지 보존하시며,

그들을 괴롭히는 온갖 적들로 부터 보호하시며,

마지막에 죽음과 지옥의 저주에서 까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빛은 의의 빛이라, 빛을 받는 이마다, 마음이 의로 가득차게 됩니다. 

주님을 기뻐합니다. 의로운 인생들은 주님의 구별되고 거룩한 이름을 두고 감사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을 의미합니다. 

그는 인생들을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함께 하시는 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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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사람과 쓸모없는 물건


예레미야13:1-9
1.여호와께서 나에게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두르고
그것이 물에 닿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2. 그래서 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베띠를 사서 허리에 둘렸다.
3.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4. “너는 그 베띠를 가지고 유프라테스 강가로 가서 그것을 그 곳 바위 틈에 숨겨 두어라.”
5. 그래서 나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프라테스 강가에 감추어 두었다.
6.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너는 유프라테스 강가로 가서
그 베띠를 끄집어내 보아라”하고 말씀하셨다.
7. 그래서 내가 유프라테스 강가로 가서 그것을 감추어 둔 곳을 파고 띠를 꺼내 보니
썩어서 못쓰게 되어 있었다.
8. 그 때 여호와께서 나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9. 이와같이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쓸모없는 것이 되게 하겠다.

사람이 쓰는 물건에는 어디나 쓸모있는 것이 있고 쓸모없는 것이 있다.
물건을 샀을때에는 유용하다 싶어 샀는데,
사서 놓고 보니 쓸모없게 된 경험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물건은 비싼 것이나 싼 것이등,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명품은 대부분 유행을 통해 혹은 인간의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이용이 된다.
명품보다는 그래도 물건이 소비자에게 가치있는 제품은
쓸만하고 소비자가 쓰기에 흡족하면
그 물건이 명품다운 제품이 된다.
아무리 유행이나 사람들의 평가로 유명한 제품이라도
자기가 쓰기에 불편하면 그것은 명품이 아니다.

쓸만한 물건을 가게에서나 쇼핑센타에서 보았을때에,
그것이 아무리 비싸도 사고 싶은 것은
그 물건이 유용하다고 생각이 들어 그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새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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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에 대한 도전

베드로후서 1:3-8

3.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과 선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분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4. 이것으로 그리스도는 아주 소중하고 중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이 약속을 통해 여러분이 세상의 파괴적인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선을, 선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7.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은 넉넉히 갖춘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욱 풍부해 질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 못보는 소경이며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도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에게는 하나의 주어진 사명이 있다.
그것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주님앞에 설때까지
자신이 영적성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살아있는 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계속하여 자라고 성장한다.
어른은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할수 있으나,
육체적인 성장은 멈추었어도,
정신적인 성장이나 영적인 성장은 계속적으로 자라가야 한다.

성장은 인간생활의 자연적인 활동이다.
성장발육이 되지 않는 것은 성장저해 증후군에 빠지며 성장하지 않고 나이만 먹어간다.
아이어른은 성장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이는 어른인데 자라지를 않아 아이의 상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성장저해증후군은 비단 육체의 일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현상에도 같은 현상들이 일어난다.
영적인 성장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영적저능아의 증후군에 시달린다.
영적인 아이의 상태에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늘 기대어 살아가는 영적인 지체아들이 있다.
특히,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는 신앙생활에는
영적인 지체아의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I.Q, E.Q, S.Q. 등 인간의 자체능력의 기능의 지수들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비로소 어른으로서 성숙한 사회적인 존재로 생활 할수 있다.
아이큐는 지능적인 활동으로 이성적인 기능이 자라게 된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고능력이나, 문제해결의 능력을 개발한다.

이큐는 인간의 감성의 차원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개발하며,
인간과 인간사이에 전자파와 같이 흐르는 감정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그 감성의 영향력을 배워가는 능력이다.
에스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여,
사람들과의 교제나, 사회생활에 적응해가는 능력을 개발한다.

사실 가장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Spirituality Quotient (S.Q.: 영성 지수)이다.
그것은 영적인 기능의 자질로, 영적인 센스나, 영감있는 능력을 개발하며,
영적인 능력도 인간의 영적인 세계의 감지하는 능력이나,
영적인 세계와 교류하며, 현상세계에 영향을 주는
영적인 존재와의 접촉이나 교제하는 능력의 자질을 개발한다.
이 자질은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영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데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세계가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판단의 경지를 넘어가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의 부르심에 의해 택함을 입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그와 함께 신의 능력안에 참여하는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크리스챤들은 그들의 성품이 인간의 성품에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권리를
예수, 신의 아들, 즉 하나님을 통해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인간의
신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부름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살리는
생명을(운명적인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하는 생명을 얻는,
불안의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좌절과 절망의 상태에서 회복시켜주는) 가지고 있다.
그안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발견하고 얻고,
생명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경건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가장 최고의 고상한 성품이다.
경건에의 순례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신의 경지에 나가는 길의 과정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며,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잃었던 인간의 온전한
것들(이상적이고 성장하는 자아에서 오는 믿음, 소망, 사랑등 )을 회복하는
자기 성품 개선내지는 자기 완성 개발의 지속적인 일생의 과정이다.

이렇게 사람이 자신을 개선하고 개발하는 것은
자기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 결국 자신의 자신됨의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인생의 일생의 과정의 결과로,
자기가 가야할 영원한 미래의 상태나 위치를 결졍해준다.
그것은 인간에게 더없는 영광이며,
자신이 도달해가는 미래에 갖추어야 하는 진정한 선한 자신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이세상에 썩어질 육신의 것에서
썩지 아니할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늘의 권한을 허락하시며,
잃어버힌 사람들의 명예와 영광을 회복시키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죄의 후손으로 죄와 죽음의 그늘에서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운명에서 벗어날길이 없다.
아무리 도의 철학이나 지식의 방법으로 혹은 도덕이나 수양의 능력으로
그러한 인간의 굴레(죄와 죽음의 속박)를 벗어나게 할수는 없다.

다만 그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점점 죽이며,
파괴케하는 세상의 영에 의해,
절망스런 상태에서 연명하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인생은 소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자신안에 갇혀
절망과 탄식의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간의 굴레들을 벗을 길을 마련하여 놓으셨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생들의 속박을 풀어내어,
자유롭게 하늘에의 영광에 동참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부여받아,
그안에 있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하늘의 영광에 오르게 된다.

이길은 하나님의 생명을 품고 그것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라고 성장하듯,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생명이 자라간다.
성장의 엔진을 달고, 지속적으로 자기변화와
자기 성장을 그분(예수)의 도달한 상태에 까지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진행한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생명의 날의 풍성을 위해 열심히 주어진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 분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의 목적이 분명하고,
자신이 해야 할일에 대한 자기사명이 투철하여,
그들은 무엇이든지, 그들 자신을 통하여,
자신들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초정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어지는 것을 원한다.

고로 그들 자신이 할일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분명하고,
그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게 된다.
하나님의 길은 차선이 아니라, 항상 최선의 길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것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도 당연히 최선을 향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믿음은 잃어버린 인생의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안에 있는 인생들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고, 그를 따르고 신뢰하게하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살리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과의 연결고리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졌으며,
그분이 약속하신 것들을(인간의 회복과 영광의 자리,
그리고 영생과 축복의 권한등) 바라보며,
그것들을 우리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믿음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든 일들과 경험들을 합력하여,
가장 좋은 상태의 선을 이루어 내는 것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때에,그것을 기대하시며,
각 사람을 인도하신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은
원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으셨을때에 보시기에 좋았던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사람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모습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의 상태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상적인 선을 바라보고,
자기가 하는 일에 아름다운 선을 이루어가려고 한다.
선을 이루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궁구하는 여러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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