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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동
  10. 2008/02/19
    Growing faith with taking the word of God
    목동

종려주일

종려 주일
예수! 우리의 왕이여! (누가 복음 19: 28-44)

본문 분해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28-29 예루살렘 도착
29-34 제자들의 파송, 나귀의 쓰임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35-38 예수님의 행차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9- 바리새인들의 항변
40- 예수님의 답변
41-4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예언

본문 이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메시아로서 자신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두 가지 부분에서 사역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메시아로 드러내시며(19: 28-44), 또 하나는 그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몇 일간을 가르치셨다 19: 45-21:38).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세상에 가져오신 메시아로 알리셨다. 이제까지 주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자신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28-34 예루살렘 입성의 준비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때를 알린다. 그는 여리고로부터 올라오셔서 (18: 35-19:10), 예루살렘에서 짧은 거리인 베밧게과 베다니에 계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신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나귀를 발견하면 이리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스가랴 9:9-10의 메시아가 나귀를 타리라는 예언을 이루셨다 (마태21: 2에서 나귀와 나귀 새끼로 언급하고 있다). 군중들은 상징 뒤에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 나귀 새끼의 주인들은 그 두 제자들에게 그들이 요구 한대로 허락한다. 주님에게 그것이 필요한 대로.

35-40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로 나가시기 위해 감람산의 서쪽으로 나가셨다. 군중들에 의해 그들의 메시아로 높임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앞에 놓인 길 위에 그들의 옷을 펴는 행위는 존경의 표시였다.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들은 그들이 보아왔던 기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이 신자들은 시편 118:26에 인용되어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을 꾸짖을 것을 언급하였다. 즉 그들은 그가 메시아나 왕으로 불리움을 받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돌들이 그를 위해 증거하기 위해 부르짖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모든 역사는 그 메시아가 공식적으로 그 자신을 그 나라에 드러나게 위해 있어왔다.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그 선포가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41-44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정을 보여주셨다. 그는 장차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거부하셨다. 그는 그 도시를 향해 우셨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가 가져오신 평화를 가져오신 그 날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도시가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주후 70년경에 그 일을 이루었다.

28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20마일 가량 동안에 약 4000피트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이것은 9:5에서 시작한 여행의 긴 여정이었음을 알려준다.

29 벳바게와 베다니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에 자주 그곳에 머무셨다. 감람이라 불리는 산/성전에 인접해있는 기드론 계곡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지구의 주요 봉우리이다. 올리브 분지는 그곳을 많은 올리브 나무로 덮고 있는 지역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30 나귀 새끼
다른 복음서에서는 당나귀의 새끼로 알려졌다 (스가랴 9:9). 마태에서는 엄마 당나귀도 같이 오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새끼 나귀는 한번도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였다.
36 그들의 옷을 펴고
누가는 마태와 마가에서 언급한 종려나무 가지를 자르는 내용을 생략하고 있다.
37 제자들의 큰 무리가
이 많은 무리가 진정한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큰 기적을 행하심
요한 12:17,18 그 나사렛 사람 에 대한 뉴스는 그 소문을 듣고 싶어 하는 군중들 사이에 전해졌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큰 기적의 사역을 요한 12:17,18에서 언급하고 있다.
38 그 왕을 축복하신다.
시편118: 26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외친다.
하늘에 평화가
단지 누가만이 이 구절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천사의 메시지인 2: 14의 내용과 비슷하다.

39 제자들을 꾸짖기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런 예배적인 찬양으로 돌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그런 행위들을 멈추기를 원했다.

40 돌들이 즉시 소리지르리라
성경은 자연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자주 언급한다(시편 96:11; 98: 7-9; 114:7; 이사야 55:12. 세례 요한의 언급 마태3: 9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마태27: 51.

41, 42
여기서 누가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를 위해 우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적어도 다른 때에 두 번 정도 예루살렘을 슬퍼하셨다 (13:34, 마태23: 37). 이 탄식하심은 승리의 입성하시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의 진정한 면을 알고 계심을 보여준다. 같은 군중들이 곧 얼마 있지 않아 주님의 죽으심을 향해 슬퍼한다 (누가 23:21).

43 너를 에워싸고 너를 가두리라
21:20, 이것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는 그 도시를 4월 9일에 포위하고, 그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급원을 차단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려는 그 성안의 수만의 사람들을 가두는 함정에 걸리게 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조직적으로 그 성을 포위하는 방둑을 건설하여 그 도시의 주민들을 점차로 굶주리게 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하나씩 하나씩 그 도시의 여러 곳을 패배시겼다. 그리고 9월 초순에 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44 너가 다 평지가 되리라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 로마 군인들은 그 도시의 성전, 거주지들, 사람들을 다 깔아 뭉게 버렸다. 수만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겨우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로마의 경기장의 놀이개로, 혹은 검투사로 사용되었다.

너가 너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은 메시아가 그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종려 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은 크리스천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리스도가 승리하심과 그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요한도 계시록에서 마지막 승리의 의미를 부여할 시에 종려를 흔든다고 언급한다(계시록 7:9),

호산나
도와주세요,구원해주세요 의 외침의 표현이다. 그냥 혼자 쓰이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에 붙여 쓰이기도 한다.
구약의 시편에서 할렐 시편에서 쓰이기도 한다(시113-118). 그리고 장막절에 종교 의식적으로 암송되어진다 (시118:25). 그것은 유월절이나 오순절에도 그리고 봉헌시에도 불리어진다. 할렐이나 송축할 때에, 국민적인 축제에 참석한 왕들이나 승리자들에게 인사하는데 불리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시에 예수님은 약속된 그리고 기대한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영광송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이다.

종려나무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아름다운 데이트 종려로 나와있다. 코코넛 종려나무는 중동에서 자라지 않는다. 긴 가느다란 줄기는 높이가 80에서 100피트가 된다. 그 나무는 100년에서 150년을 산다. 굵고 긴 뿌리는 그 나무를 사막에서도 잘자라게 한다. 그 나무는 모든 부분을 유용하게 쓰인다. 종려나무는 구약에서 종교적인 행사에 쓰인다. 장막절에 무화과 잎을 사용한다(레23: 40, 느8:15). 솔로몬 성전(왕상6: 29)이나 에스겔의 승리의 성전(겔 40: 16)에 문이나 벽에 장식으로 무늬로 새겨졌다.

성경 공부안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1. 자신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심을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즉 주님은 나의 주인으로 혹은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시기를 원하신다. 나의 삶의 모든 분야에 그분은 어떤 분으로 계시는가? 손님, 불청객, 주인, 주님, 아니면 방관자로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주님 앞에 쓰임 받은 나귀처럼 순전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데, 자신을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자세는?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 주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에 왕으로 임하신다.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을 높이는 길은?
그를 왕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거부하는 것의 차이는? 기쁨과 고통, 천국과 지옥, 승리와 패배, 용기와 낙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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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질적인 병폐내지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늘 잊어 버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걱정에 휩싸여 사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남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항상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늘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는 습성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거나
어느 부분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때에 일어난다.
차에서 내릴 때에 차열쇠를 두고 내리는 일이나,
아파트집을 나설때에도 문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증상은 자신에 대한 연민적인 상태의 지속이나,
자기만의 세게에 몰입하여 있으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외부의 세계와의 대상화에서 자신의 전체일을 파악하지 않아,
늘 보면 길을 나서거나 일을 준비할때에는 무엇인가 빠진 것들이 있다.
특히 이런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의 사고반경이 부분적일 때에는 빠뜨려 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고로 자기중심의 패턴에서 벗어나는것은 물론 부분적인 것에서
전체를 볼수 있는안목을 키워야 할것이다.

늘 걱정을 안고 사는 경우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거나, 소심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니 쓸데없는 걱정,
부질없는 소일까지 늘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삶자체가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고로 사람이 일상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것이다.

걱정의 생각은 사고하는 인간의 의식을 가두어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늘 걱정의 한 짐을 지고 살아간다.
고로 이런 상태에서 걱정을 벗어나는데 마음의 평안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의 마음이나 삶의 위치가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에,
평안이 생긴다. 신을 믿고 의지하는 유익은 인간의 자기존재에 대한 무지나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신을 통해 사람은 자기의 존재의 위치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불안을 극복하는 신이 주는 평안을 맛볼수 있다.
그 평안함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걱정하는 습성을 해소할 수 있다.

남을 향해 항상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안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오랫동안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싸여서 그렇게
남에게 욕을 해대는 사고패턴에 길들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에게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욕을 하므로
일시적인 마음의 짐을 더는 효과가 있으나,
그것이 늘 상용적으로 나타나면, 자칫 자신의 결점을 평소에 노출하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입에서 뱉어나오는 악한 말들은 마음에서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을 가꾸는 일은 마음에 들어가는 정보를 통해 형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는 가는 자신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늘 마음을 열고 좋은 말이나 선한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 지식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갖게 한다. 그리고 바른 판단을 하게하며,
옳은 일을 하게 하며, 좋은 말을 쏟아낸다.
반면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의 말이나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한다.
마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래동안 묶은 생각들로 고여 있으면,
신선하지 않게되며, 마음의 창은 어두워 지고,
그 어두운 마음안에는 악한 생각이나 쓸모없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차게 되어,
그런 악한 것들을 입으로 쏟아내게 되어, 자신의 입을 더럽힐 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욕을 해대기가 쉬워진다.
그동안 좋았던 인간관계도 쓸데없는 말이나
부정적인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을 통해 악화되기도 한다.
고로 사람은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신선하고
선하고 좋은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필요하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는 습성은
항상 우리의 일이나 약속시간에 대한 준비가 그 시간의 끝에 맞추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시간에 늦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정해진 약속시간을 향해 그 시간에 닿으려는 생각때문에,
그 생각에 의해 진행하는 시간계산이 갑자기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인하여
제대로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되어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내에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시간의 끝에다 맞추다보니, 일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고로 항상 시간을 처음에 맞추어 나가면
시간의 끝에 가서는 제 시간에 약속시간을 맞추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길은 그 시간의 때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다.
시간은 필요에 의해 생겼으며, 유용한 사람은 필요를 따라 시간을 잘 선용할 것이다.
고로 사람은 때에 맞는 필요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 무엇을 할 때인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정복하여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내 영혼의 일에 대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 그런 일을 생각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생각해보면 영혼의 유익을 위해 좋은 일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병폐적인 습관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길들여온 자신의 사고의 패턴에 의해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고칠려고 애를 쓰고 결심하여
그것을 개선하려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고로 이런 패턴을 깨뜨리기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향해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

신을 믿는 저자로서는 그런 고질적인 패턴을 깨는 방법으로는
그런 병폐적인 패턴을 깨는 기도를 드리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이런 패턴을 깨는 기도는 내면의 치유에 필요한 내적인 치유기도의 한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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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

야고보서 5:13-18

본문 분해
* 기도해야 할 이유
1. 고난을 당할 때에(주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할 시에)
2.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 찬양을 하는 이유
1.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함
2.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요한15: 11)
* 치유를 위한 기도
1.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
2.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시오(중보 기도의 힘)
* 기도의 사람: 엘리야
1. 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1. 자연을 지배: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비가 오기를 기도함
2. 응답의 역사: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

본문 이해
야고보의 서신의 클라이맥스는 기도의 강조에 있다.
신자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것 중에 신실한 기도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기도는 돌봄의 분명한 증거이다.
기도는 사람들의 일중에 복잡하거나 불가능한 것에 대해 도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직통하는 것이다. 기도 안에서 나누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누군가의 필요에 민감함을 나타내며,
필요한 사람들을 부지런히 간구하며 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13/ 오늘날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약한 면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면이라 하겠다.
이런 것에 약한 것은 영적인 둔감함으로 인하여 일 것이다.
기도와 찬양에는 둘이 다 그것을 하는 이유기 있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그 고난을 통해 거기에 맞는 기도가 나오고,
만족이 있을 때에는 거기에 맞는 기쁜 찬양이 나온다.

13/고난/ 핍박에 의해 혹은 악의 영향으로 고난을 당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안을 구한다.
기쁜 마음의 자연스런 반응은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는 것이다.

아픈 자가 있는가?
야고보는 단순히 병든 이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고난 중에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 그들을 돕게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겁있는 자들을 용기를 북돋우며, 약한 자들을 돕는다(살전 5:14).

14-15/ 아픈자즉 고통에 의해 약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지도자(장로)들은 힘을 북돋우며,
지원하며 기도로 돕는 것이다. 약한 자들을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새롭게 하며, 격려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기름 부음을 통해 앙양하는 것이다.

14/ 기름을 붓고 기름으로 문지르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마 의식적인 기름 부음을 의미할 것이다.
야고보는 핍박에 의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을 위해 의학적으로 다루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기름 부음은 은유적으로 신자들에게 장로들의 격려, 위로
그리고 힘을 강화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타락한 자, 낙심한 자, 낙담한 자들을 위해 지도자들에 의해 그들에게 회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강건하며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받아도 육체적으로 아픈 자들은
여전히 아플 수 있기에, 그래서 여기서 신자들에게 생각케 하는 바는
영적인 회복보다는 육체적인 회복에 대해 오해를 주기도 한다.

15/ 믿음의 기도는 장로들이 드리는 기도로, 병든 자를 구원(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느 경우는 그들의 공중 고백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
육체적인 고통으로 얻은 병을 고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장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 진다(이사야 43’;25, 단 9:9, 막 2:7).
당시에는 죄를 지은 이들이 장로들이 참여하는 중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경우이다.

16/ 서로의 허물을 고백하며/ 상호간에 정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신자들이 서로를 대할 때에,
영적인 싸움에서도 신자들이 서로의 필요를 나눌 수 있다.
경건자들의 강하고 열정적 기도는 아주 효과적이다 (민수기 11:2).

신앙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은 좌절과 낙심을 이기는 길이다.
치유는 개인적인 고백과 기도의 관심에 의해 이루어 진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단순히 육체의 치유뿐 아니라, 영혼의 치유를 의미한다
(마태 13:15, 히 12:13, 벧전2:24). 의인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가져온다.

17-18/
엘리야는 구약에서 가장 강한 기도의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기도에 의해 우상 숭배자들의 갈멜산의 영적인 대결에서 승리하여 850인의 바알,
아세라 우상 숭배자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는 3년 반 동안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기도를 드렸다.
가뭄과 단비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엘리야는 신앙인으로 같은 고난을 받았던 사람이며,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자연 세계를 지배하였다.

열심 있고 끈질긴 기도는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나,
두 마음을 품은 기도는 자기 패배로 자기를 속이는 것으로 응답을 가져오지 않는다(약1: 6-8).

신학적 가르침
고난에 대해/ 신앙인으로 겪는 고난은 신앙으로 인한 수고이며,
영적인 이유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의 우리네 신앙인들은 외부적인 고난보다는
내면적이고, 영적인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
영적인 갈등은 외부적인 요인(사람이나, 환경등)도 있지만,
자기 내면의 정리되지 않은 영적인 일관성을 잃은 데서 오는 혹은
유혹이나 잘못된 가르침이나 안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갈등을 겪는다.
내면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와 마음의 자세와 사고하는 태도를 통해 나타난다.
그 세가지 면에 대해 과거의 사건이나 상처들을 통해 오며,
현재의 정상적이지 못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기도 한다.

기도에 대해/ 의인의 간구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앞에 아브라함처럼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믿음을 소유한 자이다.
기도자는 기도할 믿음이 요구되며,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조지뮬러는 수 만번씩 응답을 받았는데,
그의 응답의 비결은 그는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구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기도의 응답은 끈질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엘리야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번이 아니고 일곱번 엎드려 기도한 그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치유에 대해/ 온전한 치유는 영혼과 육체의 건강에 있다.
전인적인(영, 혼, 육) 웰빙이 기독교의 온전한 치유이다.
온전한 치유는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완전한 샬롬의 축복을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성경 공부안
*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생활에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영적인 표현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필요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늘 아버지께 간구와 호소를 드렸다. 우리에게는 더욱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뢸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1.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맨 처음의 자신의 반응은? 걱정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등

2. 육체의 병이나 영혼의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3.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며,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
(요한15: 11)찬양한다. 자신이 찬양하는 이유와 찬송 생활하는 모습은 어떤지?

* 성도들을 위한 치유를 위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와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는 것(중보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1.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 생각하는가?
2. 자신이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할 문제는?
3. 회개 (고백) 기도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러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후에는 비가 오기를 기도함.
그는 응답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는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으로 이루어냈다.
1. 기도의 사람의 특성은? 2. 그 외 성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기도의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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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pray in faith, you will be answered

(Mark 11:20-26)
*Making fruit is for believers to the important issue.
True believers can make fruit in the presence of God.
Through the happening of the fig tree,
the lesson was that Jesus judges the fruitless one .
His work comes to the proclamation of His words and its following accomplishment.
So, the words of Jesus appear the following miraculous sign by their power.
Before God, how can believers do fruit?
Obedience, devotion, eagerness, faith, trustworthiness, and etc.

*What is it means faith for believers?
Faith has the power to get own desires.
Faith can give believers to get own desires.
The practice of faith can be accomplished by the example of prayer.
The Lord gave the lesson to move unmovable mountain by the power of faith.
The object of own faith is the very important to effectiveness of own faith.
What about own faith?

*What does it mean for believers to pray?
It means to confirm own faith, to produce the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to make do God’s works.
What about own prayer? For what do you pray?
And what about your own prayer life?

*In order to answer your prayer, you have in faith.
Faith can make prayer to respond to God.
The answer of prayer needs to cooperate in the works of faith and forgiveness.
What do I need to get for effective prayer?
Patience, forgiveness, faith, to be fitted to the will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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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마가복음 11:20-24(25-26)

본문 분해
*무화과 나무의 비유/ 열매의 교훈과 심판의 교훈을 준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믿음이란?
1.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진다.
2. 믿음의 실제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
* 믿음과 기도와 용서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본문 이해 (마태 복음 21:20-22)
마가 11:12-13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예수님은 시장하셨다.
길에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며,
열매가 있는가 확인하셨는데, 열매는 없고 입만 무성하였다.
마가는 그것은 무화과가 아직 제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때는 4월 유월절 기간이다.
팔레스틴의 무화과 나무는 3월에서 4월에 잎이 나타나,
먹을 수 있는 싹에서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이 나무에는 그 열매 있는 싹은 없고 푸른 잎만 무성하였다.
이 열매 있는 싹을 주님은 기대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그 싹은 정상적인 열매를 맺는 늦은 5월이나 6월 에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20-21은 12-13절의 내용과 연결되어있다.
다음날은 화요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무화과나무가 하루 사이에 뿌리채 말라 시들어 버린 것을 발견한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생생한 심판의 그림으로 알려진다.

20/ 뿌리째 말랐더라
나무가 위로 뻗어 열매 맺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황폐로 결국 그 나무는 죽었다.
마태 복음은 보다 빡빡한 일정의 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

22/ 하나님 안에 믿음을 가지라
주님의 말씀의 능력 속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믿음 없는 것을 부드럽게 책망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명한 믿음은 하나님의 드러난 계시의 진리, 그의 능력,
그리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요일 5: 14, 마태21: 21).
마태 21: 21에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이 무화과나무에 대한 일뿐 아니라,
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빠지라 하는 일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언급한다.
마가 9:24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의심이 없는 믿음이라고 언급하며,
귀신들린 아이의 아빠가 필요한 믿음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하였다.
하나님안에 믿음을 가지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신실한 선하심에 대해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마가 5:34).
여기에 이산은 감람산을 의미하며 움직일 수 없는 산으로 묘사,
바다는 감람산에서 바라 본 사해바다를 가리킨다.

하나님안에 갖는 믿음은 의심을 떠난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리킨다.
고로 믿음 있는 기도는 인간적으로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가 10: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권면하신다.
믿음은 실질적인 응답이 장래에 있지만 그것을 현재에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전제하신 것은 간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야 함을 말씀하신다 (막 14:36, 마태 6:9-10; 요한 14: 13-14; 15:7; 16:23-24;
요일 5:14-15). 이 가능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적인 신자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신자들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23/ 이 산을 바다에 빠지라
이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위대한 랍비나
영적 리더들의 유대문학에서 당시 사용되었던 산들의 뿌리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유와 연결되어있다. 분명히 예수님은 산들을
뿌리채 뽑는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사실, 그런 불신적인 유대 리더들을 위한 기적들을 거절하셨다 (마태 12:38).
예수님의 초점은 신자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그안에 있는 그런 믿음을 통해 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능력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요한 14:13-14, 마태 21:21).

24/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면
믿는 자의 기도에 제한이 없음을 알려주신다 (마태17: 20).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불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가 얼마나 진실해야 하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교훈은 기도가 신실하고 순종적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구속사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들을 통해서 이며,
그의 구원하시는 목적은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약5: 16).

25/ 서서 기도하는
서서 기도하는 것은 전토적인 유대적인 기도의 자세이다
(삼상 1:26, 왕상 8: 14,22; 느헤미야 9:4; 마태 6:5; 눅 18: 11,13),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것이나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극단적인 긴급한 기도의 자세이다 (왕상8: 54, 에스라 9:5 단6:10; 마태26:39; 행전7:60).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죄를 짓는 것이나 단순히 싫어하는 것을 포함하여 신자가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가지게 된다.
그 다른 이는 신자나 불신자나 다 해당이 된다.
용서하라
예수님은 신자가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임을 언급하신다.
성공적인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하듯 남을 용서하는 일도 꼭 해야 할 일이다
(마태 5:22-24; 엡4: 32).

25-26
하나님의 용서와 타인에 대한 신자의 용서는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태 18: 21-35).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것을 기대한다 (엡 4:32).
만일 그가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거부하고 사는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믿음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보는 대로
가능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갖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에는 구원하는 믿음이 있고, 경험적인 믿음이 있고,
행동하는 믿음이 있으며, 관계적인 믿음이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은 죄에서 구원 얻게 하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따르는 믿음이 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행동적인 인격적인 신뢰와 주님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중생하는 재생산하는(영적 출생하는) 믿음이다.
믿음과 기도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영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고, 기도하는 곳에 믿음을 전제하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기도와 용서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타인에 대한 용서와 연결이 되어있다.
용서 없이는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로 용서를 말씀하셨고,
십자가상에서 용서하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기도를 교훈하실 때에 많은 부분에서 용서를 말씀하셨다.
기도는 용서가 관계적인 용어이듯이 관계적인 용어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의 기도 속에 타인과의 용서를 다루며,
그 용서에서 자유 할때에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다가온다.

성경 공부안
* 열매 맺는 일은 신앙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인 주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 신앙인은 좋은 나무처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열매 없음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은 그의 말씀의 선포와 그에 따르는 표적으로 다가 온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일을 하려면? 순종, 헌신, 열심, 믿음, 진실 등등

* 신앙인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신자에게 믿음은 바라는 대로 자기에게 주어지게 한다.
믿음의 실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대로 실행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믿고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교훈하셨다.
자신의 믿음에서 믿음의 대상(주님과 그의 약속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믿음은?

* 신앙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믿음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는 어떤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가?
기도의 제목이나 내용은? 그리고 자신의 기도 생활은?

*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신앙인에게, 믿음과 기도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인내. 용서, 믿음, 주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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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the teachings of Jesus Christ

* Christians make the foundation of life on Jesus Christ.
Their life styles are to follow the wisdom and knowledge of God in Christ.
Jesus Christ is the mystery, and power, wisdom of God.
He has all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In Jesus Christ there is the knowledge getting salvation and the wisdom of life management.
So, they should learn Jesus Christ.

1. Who is the Jesus Christ that I know?

2. How do we learn Christ and His teachings?
Truth encounter through personal relationship, truth encounter through frequent
fellowship, truth encounter through knowledge, truth establishment through discerning
the truth

* Growing faith i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and build up your own pious house
and express own faith in his life.

1. What I am doing for building up my faith?
Assurance of salvation, personal relationship building, sincere confession and
repentance of sins, Increasing numbers of fellowship

2. What areas strengthen my faith?
Study and understand the word of God, be faithful attitude the teachings of Christ,
Effective Godliness training, certain spiritual gifts experiences, Learning and following
God’s guidance and works.

3. What looks like the thanksgiving life style?
God’s grace-centered life, spiritual abundant life, and self-contente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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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안에서 가르침을 받은대로 살라

(골로 새서 2: 1-7)
본문 분해
*신앙적인 삶의 뿌리의 근거이신 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배우라
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
2.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음
*. 어떻게 그리스도를 배울까
1. 마음에 위안을 받아(주님의 진리를 마음에 간직하는 결과로서 평강을 얻게 한다)
2.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한다)
3. 이해의 충만을 따라(점점 주님을 알아가게 한다)
4. 공교한 말의 속임을 극복하고(진리에 굳건히 섬은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게 한다)
*. 믿음을 따라 사는 생활
1. 주님에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일,
2. 가르침을 따라 믿음을 굳게 세우는 일,
3. 감사 중심의 생활: 하나님의 은혜 중심의 삶, 자족의 삶, 영적으로 부요한 삶

본문 이해
골로새 교회
빌레몬이 있었던 교회이며, 골로새서는 옥중서신(4개의)중 하나로 빌레몬서와 형제 서신이다.
바울이 세우지 않은 교회이나 바울의 동역자가 세운 교회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처럼 애착을 갖고 돌보는 교회였다.
2: 1
바울의 사랑의 수고는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뿐 아니라,
그가 만나지 못한 사람까지를 돌보는 마음이 있다. 어떻게 힘쓰는 가를 보여준다,
큰 수고를 감당하는 바울; 골로새 교우들의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목회자는 어떻게 하든지 성도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라오디게아를 언급한 것은 이단의 영향이 골로새뿐 아니라,
라오디게아에까지 퍼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 도시는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의 버기아의 도시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계시록에서 책망 받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계시록 3: 14).
2: 2
이해의 충분한 확신/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
복음의 충분(충만한 것)를 이해하는 것은 복음을 받은
성도들의 내적인 강화된 내면의 인격과 사랑의 나눔으로 형성된 외적인 성격은
성도들의 성숙을 나타낸다. 그렇게 하여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즐기는 삶을 감당한다 (벧후 1:5-8)
2: 2-3
바울의 골로새를 기록한 의도는 마음으로 격려하며 사랑 안에서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뢰심과 자기 확신의 힘이나 일관적인 일치하는
순종은 진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이르게 한다.
도덕적인 헌신 없이는 참된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
고로 그 온전한 참된 헌신과 순종은 진리를 온전하게 이해하는데 이르게 한다.
이 이해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길들을 이해하는 영감은 믿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충분하게 알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의 진실한 신비로서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이시다.
(1:18, 히브리서 1:2-3). 그분에게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

지식은 진리를 이해하는 인식을 이루는 데 필요하고, 지혜는 진리의 생활에 적용하게 한다.
지식은 신중한 판단을 주고 지혜는 신중한 행동을 이끈다.
지식과 지혜는 둘 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 된다 (롬11: 33, 고전 12:8).
그것들은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일 때가 있다 (고전 1:21-25).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그 지혜와 그 지식은
믿는 사람들에게 의로움, 거룩함과 구원함을 준다 (고전 1:30).
4-5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지혜가 공교한 말로
속이는 그럴듯한 논쟁에 말려들지 않게 한다.
설득력 있는 스피치는 그럴 듯 하지만, 거짓된 논쟁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진리와 설득력은 항상 관련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가르쳐도 진리를 거짓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어떤 때는 거짓 것이 설득력이 있게 전달되고, 진리가 강압적으로 가르쳐 질 수 있다.
즉 이 말은 설득력 있는 전달에 의해 진리가 거짓 것으로 왜곡시키거나,
거짓을 진리로 대체할 수는 없다.

가르침에는 충분한 진리와 온전한 헌신됨이 필요하다.
즉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울 시에는 충분한 진리를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자신을 위임하여 그 진리에 집중하여야 한다.
바울은 비록 골로새 교우들과 비록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골로새 교우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을 하며
견고한 믿음을 세우게 되었는지를, 그는 기뻐한다.
6-7
이 두 구절은 앞서 언급한 바울의 가르침들을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속해있다 (1:15-20).
주님 안에 하나님과 화해가 있고(1:21-23), 그리스도의 신비의 계시가 있다(1:24-27).
신자의 온전함(1:28-29). 신자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지혜(2:1-5).
고로 본 두 구절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진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대로 그분 안에서
크리스천의 생활을 할 것을 명하고 있다.

크리스천의 생활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은 대로
즉 그분을 구세주로 믿은 대로 계속해서 그분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을 명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같은 권면을 하고 있다 (고후 11:4, 갈 1:6).
그들의 믿음이 시작이 사도적인 복음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그 가르침들은 어떤 인간적이 아닌 신적인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 것으로
신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 신적인 가르침은 주님 안에서 뿌리를 두고 있고,
자신들의 믿음을 세우며, 강화하였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거짓된 가르침이나 간교한 인간적인 교훈)
흔들림이 없는 진리의 교리의 근거로 있는 것이다(엡4: 14).
고로 믿는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세워졌고,
보다 은혜 충만하여 감사함이 넘치는 성도가 되어가는 것이다.

신학적인 가르침
그리스도론
골로새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잘 설명해주는 서신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1:15-20, 2:2-10)을 강조한다. 그리고 화해론(1:20-23),
구속론(1:13,14; 2:13,14; 3:9-11), 선택의 교리(3:12), 용서(3: 13),
교회의 속성(1:18,24-25; 2:19; 3:11,15).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것이 거하신다(2:9).
주님을 통해 만물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해 세계가 창조되었다 (골1:!6).
주님은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골 1:17).
그분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처음 존재하시는 분이다(골 1:15).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골 3:4).

지혜로서의 그리스도는 신약의 중요한 개념중에 하나이다.
주님은 공관 복음에서 자신을 신적인 지혜와 연결하여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근본적인 지혜와 동일시한다.

골로새서 안에 있는 이단적인 요소들
이성주의: 지성의 이단으로 이성 만능으로 신앙을 판단하고,
이성을 신앙보다 우위에 두는 경향, 이신론에 가까운 신앙관(골 2:8),
의식주의: 종교적인 본능으로 예배나 의식을 중시하는 경향(골 2:16, 20-22),
신비주의: 영적인 각성의 한 분파로 지나친 영적 위주의 신앙관 (골2: 18),
운둔(염세)주의: 도덕 지상주의의 이단으로 지나친 고행이나 수행을 율법시함 (골 2:23)

크리스천의 새 생활
골로새서 에서 말하는 새 생활은 다음과 같이 의미한다.
그 새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제적인 삶을 표현한다.
새 성품은 옛 성품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새 성품은 새 생활의 원리를 실천하는 성품이다.
새 생활의 원리는 마음속에 평안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
은혜로 영감 있는 찬송의 생활, 새로운 행위를 통해
세상에 대해 전도의 열매를 맺어가는 생활을 한다.

성경 공부 교안
* 신앙인들은 신앙적인 삶의 뿌리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할 것이다.
고로 그분을 온전하게 아는 것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확립하며,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기 위해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다.
그분을 아는 지식은 구원과 영생을 얻는 지식이며,
모든 인생의 지혜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2. 어떻게 그리스도를 배울까? 진리이신 주님을 알아가는 길은?
가. 관계로서의 진리 경험(주님의 진리를 마음에 간직하는 결과로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얻게 된다)
나. 교제로서의 진리 경험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한다)
다. 지식으로서의 진리 경험(점점 주님을 알아가게 한다)
라. 분별하는 능력을 통해 진리를 중심한 바른 신앙의 집을 든든히 세운다.
(진리에 굳건히 섬은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게 한다)

* 성장하는 믿음은 기초를 세우는 일과 그 기초 위에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신앙의 집을
세우며, 그 세운 집을 통해, 자신의 신앙적인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믿음을 따라 사는 생활은 이 세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1. 주님에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일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구원의 확신,
관계 정립 내지는 강화, 죄의 고백이나 회개의 경험, 교제의 빈도와 질적인 가치등

2.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을 굳게 세우는 일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은?
말씀에 대한 공부와 이해력, 말씀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의 자세등, 경건의 훈련,
기도를 통한 은사와 은혜 체험,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고 따르는 생활등

3. 감사 중심의 생활: 하나님의 은혜 중심의 삶, 자족의 삶, 영적으로 부요한 삶이다.
자신의 감사 중심의 삶은 어떻습니까? 감사에 대한 신앙적 이해
(하박국이나 바울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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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꿈을 먹고사는 중년

사람은 꿈을 꾸며 꿈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비록 자신의 몸이 활기찬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졌을 지라도
나는 지금 꿈을 꾸며 그 꿈속에서 자신의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련다.

꿈을 가진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으로 인하여 살 맛을 느끼며, 그리고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한다.

꿈의 약속을 이루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며,
꿈을 꾸며, 그 꿈을 먹고 사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며,
꿈의 발자취를 거두며 살아가는 것은 과거를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날에 나의 꿈은 막연했지만 그 꿈은 큰 지평선에 널린 먼 미래를 향한 것이었다.
아직은 꿈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그 꿈이 보여주는 것을 따라 창공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펼치게 하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젊은 날의 꿈은 모든 가능성을 향한 활기찬 생애의 미래를 열어젖히는
삶의 파워를 형성하게 한다. 그 꿈을 자신의 손안에서 이루어 질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꿈의 전사처럼,
그 꿈은 마음 먹은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간다.

젊음의 사랑과 정열이 불타서 그 사랑의 자유와 젊음의 열정을 마무리 하는
그 끝 날에 도달하여,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결혼의 날은
자신의 인생의 전반전에서 이룬 꿈을 일시적이나마 이루는 기쁨을 맛본다.

고로 자신은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결혼을 향해 꿈을 가지고
장차 함께 같은 방향의 인생을 나눌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
연인들을 스쳐 흘러 보내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은 결혼을 통해 완성이 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자신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추억 속에서 지난날에 나를 기쁘게 하고,
나의 입을 크게 벌려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의 흔적에서 큰 기쁨을 맛보았던 날은
장가가는 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제 결혼생활을 통해 청년과 중년의 때를 보내면서 자녀들이
커가는 세월의 열매들을 되새겨 본다.
그 결혼이라는 꿈의 환상이 현실로 다가와 그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는 갈등과 굴곡의 여정에서 반려의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며,
이제는 자녀들의 바라보는 꿈의 약속들을 함께 그들과 기대하며,
자신 앞에 놓여있는 삶의 결산의 때를 향한 발걸음.


다시금 꿈의 시동을 걸어, 남은 인생의 미래를 향해 꿈의 약속들을 세우며,
다시 새로운 도전의 꿈을 꾸며, 그 꿈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그 꿈을 먹으며,
꿈에서 주는 진솔한 삶의 여유들을 나누며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 싶다.
죽는 날까지 꿈을 꾸며 꿈을 먹으며, 꿈을 바라며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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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섭취를 통한 영적성장

베드로 전서 1:22-2:3

어느 의사에 의하면, 암을 일으키는 요소는 유전자, 활성산소, 스트레스 등이라고 합니다.
암세포는 매일 3000-6000이 발생합니다.
다만 우리 몸에서 암세포를 물리치는 면역시스템을 통해 극복합니다.
암을 일으키는 것은 먼저 유전적인 요인은 극복하는 것을 식생활습관이나,
혹은 정기적인 건강체크 등이며, 활성산소를 극복하는 길은 소식이나,
혹은 몸의 산성화를 막는 음식 섭취 등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통해 입니다.
웃으며 밝게 사는 것, 활동적으로 사는 것, 적당한 운동 등입니다.

이렇듯이 영적인 생활에도 영적인 건강을 유지해야만 영적인 삶을 잘 살수 있으며,
건강한 영적인 상태가 되면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며, 사람의 영혼을 건강하게 합니다.
영혼을 더럽히는 죄를 해결하며, 영적인 슬럼프를 벗어나게 하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기적인 말씀섭취가 필요합니다.

한국사회는 세상에서 요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지 못하여 비방을 받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의 문제는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입니다.
교회만을 위하는 신앙추구나, 이기적인 행태나,
신앙을 물질적인 추구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 등입니다.

영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고, 사모하고, 그 말씀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양약이 됩니다.
자신의 영혼을 살리며, 건강한 영적 생활을 유지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정결케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며,
인간의 죄악을 치료하는 도구로 쓰여집니다(히브리서 4: 12).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혼에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이 받은 영혼의 유익은 무엇이라 생각됩니까?
여러 가지 유익이 있지만, 먼저 자신이 사랑하는 영혼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고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영향력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부분은?
취미,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사람과의 교제 등 중에 어느 것인가요? 여러 가지 중에 자기에게 해당되는 부분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중생케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자연인은 모태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출생하는 중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인간 세상은 모든 것이 언제 가는 사라질, 썩을 것들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 세상적인 것들을 이생의 자랑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육체의 정욕등 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세상의 영광은 풀의 꽃처럼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영혼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그 말씀은 썩지 않을 씨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영혼에 영원한 것들을 심습니다.

한편 신자의 신앙 생활에는 영적인 굴곡이 있습니다.
영적 일생 중에 어떤 때는 영적인 성장이 있는 좋은 시절이 있는가 하면,
한 없는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영적 암흑의 시기도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신자에게 영향을 주는 발생하는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들이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악한 의지로, 거짓, 가식, 시기, 중상, 비방 등으로
신자들의 생활에 부정적인 영적인 영향력을 줍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됩니까?
이런 것들은 신앙을 방해하지만 반면에 크리스천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자신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삶의 힘, 죄를 없애는 일,
자신의 필요를 채움, 영적 성장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우에는 어느 부분에 도움을 받습니다.

말씀섭취는 성도의 생활에 중요한 영적인 일입니다.
어떻게 말씀을 섭취하나요?

말씀을 열심히 먹으려면, 먼저 그 말씀의 맛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은 시편의 기자처럼
시119: 103 송이 꿀보다 더 달아 내입에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119: 97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사랑하는 지요
그것을 종일 묵상을 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길래 온종일 묵상합니까?
이렇게 다윗은 목동의 시절이나 왕으로 봉직 할 때에도
언제나 그는 말씀을 가까이 하였습니다.

저는 외우는 말씀 중에 이사야 41:10을 좋아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에 있어, 노예선 에서 일을 했던 존 뉴턴 목사님은
젊은 시절에 노예를 다루던 악명이 높았지만,
그 영혼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았을 때에,
그는 자신이 죄인 된 것과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감격하여
찬송가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라는 찬송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가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과 언제가 죽음의 세계를 거쳐,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가는 것과 자신에게 임할 구원의 은혜를 확신하는 것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고서부터 입니다.

북한 유학생 김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 설교 중에, 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병세는 모스크바에 유학을 가서, 한인목사님을 통해 성경을 얻어,
그것을 열심히 읽는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무신론의 교육을 받은 그였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믿음을 통해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얻게 하며,
그 받은 구원을 성장하는 믿음을 통해 자라게 합니다.
그 말씀은 내 영혼을 거듭나게 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며,
나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며, 그리고 나의 영혼을 자라게 합니다.
그 말씀이 주는 유익은 나에게 삶의 힘, 필요의 공급, 하나님의 응답,
문제의 해결 등을 줍니다. 고로 그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그 말씀의 섭취는 영혼의 유익을 주며,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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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faith with taking the word of God

 
      (I Pet. 1:22-2:3)

* To obey the word of God is to give benefit to the
   own soul. 


1. The word of God is making people born again and
   fresh the status of soul like cleansing sins,
   healing the sick, making our soul healthy.  

2. Those who yearn to the word of God shows to
    love the Lord and brothers.

3. The effect force of the word improves to the
    several aspects of our life like thinking,
    speaking, doing something.

 

*  Christians life has spiritual up an d down during
   our lifelong term. 

1. There are blocking components to cause spiritual
   slump like evil thoughts, hypocritical attitude,
   and hating mind, etc

2. Spiritual growth is made by regular taking
   the word of God.

3. The benefits of the growth are strengthening of
   life, eliminating sins, filling the needs of people,
   making spiritual health, taking the promises of
   the blessing of God,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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