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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차로 한시간 반 거리의 시골에 실만드는 공장이 있다.
첫 방문 건강상담에서 거들먹거리며 거칠게 말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노조위원장이었다. 몇년간 사업장 보건관리를 하면서 노동조합측에서 사업주측 의사인 나에게 드러내놓고 못 믿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데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지만 유난히 기분상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백명 남짓한 조그만 공장에서 보기 드물게 몇 달간 파업을 했었으나 결국 1/3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사장은 수틀리면 공장 문닫으면 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등 노조가 많이 몰리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즈음에 노조는 근골격계투쟁을 준비했다. 인원이 줄어든 만큼 강화된 노동강도로 근골격계 질환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고, 수세에 몰린 노조로서는 회사와 한 판 붙어서 승산이 있을 만한 사안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노조위원장이 근골투쟁을 하긴 해야겠는데 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30분정도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노사와 우리팀이 함께 의논하자고 하자 독자적인 조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러 사업장에서 노조의 단독조사 자체가 효과적인 투쟁방법이었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일 수 밖에 없어서 민주노동당 도 지부 산안국장을 연결해주었다. 결국 민주노동당 도지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인 조합원 30여명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유해요인과 증상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우리가 그동안 수차례 유해요인조사를 권고했지만 노사갈등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다며 미루고 있었는데, 노조가 설문지를 돌린 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력을 받은 것이다. 신설된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보건규칙 위반은 산업안전보건법 사상 최고의 벌금 5천만원에 해당한다. 회사가 뭔가 움직여 보려고 한다는 말을 간호사로부터 전해 듣고(나는 일년에 두 번 방문하지만 우리 간호사는 매달 방문함) 내심 흐뭇했다. 그런데 이어서 그 와중에 총무과장이 결국 못 견디고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건강을 위해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인수인계를 마치고 자살했다. 죽기전에 사장앞으로 대립과 갈등을 멈추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많이 괴로왔다. 내가 그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의 자살 충동을 파악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내가 자책만하고 있는 사이에 노동조합은 유가족을 만나 산재보상신청을 권했다고 한다.
그 뒤로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오늘은 그 회사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회사측, 노조측, 우리 팀이 함께 작업장 순회점검을 했다. 이제 웬만한 전문가 뺨치게 유해요인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된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회사는 꿈쩍도 안 해요. 이야기 좀 확실하게 해주세요"
함께 작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에 대해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옥신각신하기도 했지만
몇가지 중요한 작업장 개선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었다.
새 총무과장은 당장 할 수 있는 일 몇가지를 약속했다. 허리부담을 줄이기 위해 6단대차의 밑에 2단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고정적으로 서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안전매트와 정맥류예방 고탄력 스타킹을 지급하고, 손목부담작업자에게 손목부목을 제공하는 것.
수개월내로 35Kg이상 중량물 취급작업에 대해 드는 힘을 줄여주는 장비를 도입할 것이고,
허리를 숙임 방지를 위한 작업대 개선과 대차 자체의 개선, 손목부담작업의 개선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그의 죽음없이 가능한 변화였을까?
며칠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산재처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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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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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심히 안스럽네요...물론, 상황은 틀리지만,,,저도 양평에 있을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도 했던 분이 퇴행성 관절염과 다발성 일과성 뇌졸중으로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다는 것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날 밤 그 환자는 고층 아파트에서 자살을 한 적이 있었죠..
땡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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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움과 치매 애기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으로 저 자신도 며칠을 잠 못 이루고...지금도 그분이 고맙다고 선물했던 양주한병,,,진열장에 있는 그 시바스 리갈을 보면서...아직도 전 많이 괴롭답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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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야만 작은변화라도 가능한 세상...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있어야만 할까요...언젠가 우리도 그러한 희생을 감내해야 할 때가 오겠지요..kuf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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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정선생? 고생많았어요. 그 애정어린 관심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중의 하나였죠. 더 오래 사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 죽지 말고 싸워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