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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검진하면서 살짝 흥분하다.

  지지난주와 지난주에 빡빡한 일정으로 검진했더니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 주는 출장 이틀, 원내검진 하루라서 좀 쉴 수 있어 좋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일반검진을 하러 병원으로 검진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건강에 신경을 좀 쓰는 사람들이다. 오늘 아침에는 작년 검진에서 비만판정을 받고 체중을 5Kg이나 줄였다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으니. 그러니 듣고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 물론 노인들이 많이 오면 좀 길어진다. 



1. 축협에서 돈세는 작업을 주로 하는 30대 남자는 목에 항상 이물감이 있고 부은 느낌이 드는데 요즘 악화되었다고 걱정을 한다. 돈을 세는 기계 옆에 있으면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급하게 쏠리면서 순간적으로 종이먼지를 맡게 된다고 한다.  목구멍을 들여다보니 좀 충혈되었다.  먼지 노출을 좀 줄이고 성대를 필요한 만큼만 쓰시라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 먼지노출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작은 환풍기가 있다고 하여 환풍기를 마주보고 서서 일하거나 뒤에 선풍기같은 것을 약하게 틀어놓고 일하거나, 면마스크나 종이마스크를 쓰거나. 첫번째 수검자는 흔히 이야기가 길어진다. 일등으로 진찰실에 들어오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의사 입장에서도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이다.

 

2. 심장병이 의심되어 여러 번 검사를 했는데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고혈압을 진단받은지 꽤 되는 60대 여자 환자는 심장이 걱정이다. 신경쓰는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시집 안 간 딸때문에 속상하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면 심장병이랑 비슷한 증상 있을 수 있으니 즐겁게 사시라하고 스트레스 관리 보건교육 자료를 건네주니 고맙다고 하고 나간다. 사람들은 뭘 주면 좋아한다. ㅋㅋ.  하긴 내가 좀 친절하긴 하지. 일반검진하면서 수검자가 고맙다고 음료수 사다줄 정도니까. 칭찬에 약하고 약간 중독 성향을 보이는 뻐꾸기, 칭찬받고 싶어서 더 오버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오버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해도 되는 거 아냐?

 

3. 폐결핵 진단받고 두달전부터 투약중인 20대 여자가 사측이 실시하는 채용검진을 받으러 왔다. 법적인 의무로 실시되던 채용검진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폐지되었으나 사측이 실시하는 것을 딱히 막을 방법은 없다. 우리 과는 대규모로 몇 배수로 사람을 뽑아놓고 검진결과를 선발에 활용하는 채용검진은 하지 않고 있다.  

 

  업무와 관계없는 건강상태를 문제삼고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부분 총무과직원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고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 해결되더라.   그런데 이 환자는 아직 근로계약서도 안 썼다고 한다. 3개월 수습기간이라 하니 곤란해질 수 있겠다. 폐결핵은 투약 2주후 부터 전염성이 소실되니 업무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4. 당진에서 온 31년생 할아버지, 일반검진용지만 들고 오셨다. 뭐 걱정되는 증상이 있냐 물었더니 한 이십일 식욕이 없고 어디 아픈데 없이 몸이 무겁고 그러더니 일주일전부터 속이 쓰리고 아프다고 호소하신다. 일검용지 앞에 암검진 대상이라는 표지가 부착되어 있는데 사전 예약을 안 하셔서 오늘 검사 못 하신단다. 휴~. 담당 간호사한테 전화로 혹시 오늘 위암검사 취소건이나 여유는 없는지 물어보았다. 한참 뒤적이더니 취소 한 건이 있다고 한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며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운이 좋으신 것 뿐인데.

 

5. 검진 중간에 물 마시려고 원내검진 검사실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 업무계획짜면서 원내 검진 인력이 모자른다고 아우성을 치길래 인력충원을 알아보았는데 잘 안되어 그럼 수검인원을 오전 50인으로 제한하기로 했었다. 원내에 2명만 있어도 검진이 돌아간다는 병원도 있는데 5명이나 있는데도 부족하다는 게 사실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워낙 검진의 질 향상 목청껏 이야기했기에 그렇게 결정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모두들 자기 자리에 앉아서 꼼짝도 안 한다. 다른 사람이 바쁘면 좀 도와주면서 할 법도 하건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바쁜 사람은 쳐다도 안 보더라. 좀 도와주라고 했더니 반응들이 시큰둥하다. '저 그거 할 줄 모르는데요".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

 

 사실 우리 과에 여러가지 직종이 있다보니 직종간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직종에 따라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장비들이 자동화되면서 직종에 따른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검진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자기 일만 해서는 안된다. 흥분하기 싫지만 이런 꼴은 두고 못 본다.

 

  오늘 오전 검진 끝나고 집합하라고 했다. 병원에서 집합이란 문제가 생기면 전체 모아놓고 야단치는 것이다. 그런거 까지 내가 해야 해야 하는 게 좀 짜증이 나긴 하지만, 어쩌랴,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오전 중 한 오십명 보는 원내검진은 그리 부담되는 일은 아니라 느긋한 마음으로 왔는데 이게 뭐야. 그렇다고 흥분하는 너도 웃겨, 뻐꾸기. 흥분을 가라앉히고 웃으면서 좋게 말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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