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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그 후

  엘리베이터 제조사로부터 근골격계 상담 열 건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정을 잡았는데 가 보니 그 두 배의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관리자에게 나한테 기대하는 게 무엇인가 물어보니 씩 웃기만 한다. 사실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산안위원회에 자기같은 말단사원은 끼워주지도 않는다, 상층에서 해라 하고 떨어진 명령을 수행하는 것 뿐이란다. 그래서 노조 산안부장을 불러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물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결과 이후 유증상자의 변화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원진노동환경연구소에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산재신청 들어갈 사람들은 들어갔고 이 날 나에게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은 증상은 있으나 산재를 들어갈 정도는 아닌 경우였다.  산재환자의 요양도 성사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그냥 일년동안 방치되어 온 것이다.

 

 열 아홉명을 상담하려면 두 시간으로는 택도 없다. 그래서 그 중에서도 증상이 가벼운 사람들을 모아 간호사가 일반적인 자가 치료원칙을 설명하고 체조를 교육하도록 하고, 그중에서 의사면담을 원하는 사람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나는 비교적 증상이 심한 사람 면담을 했다.

 

  대전에서 왔다는 4명을 먼저 만났는데 그 중 두 명은 고개를 젖히고 수리하는 작업을 십년이상 했고 목과 어깨의 통증과 손 저림이 심했다. 3년이상 된 증상으로 일주일에 두세번씩 물리치료를 해도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검사를 해보니 손쪽으로 전이통이 있는 목과 어깨의 근막통 증후군의 전형적인 소견이다.  물리치료보다는 근육주사가 효과적인 질병이라고 적고 근무중 치료가 필요하다고 썼다. 작업관리의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하고 효과적인 방안에 대해서 토론해보았으나 작업자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정말 개선이 불가능한 것일까, 오래된 통증이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일까? 알 길이 없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직접 현장에 가본 게 아니니.  

 

   산안부장이 안전관리자가 파스도 제대로 안 준다고 하길래 점심시간에 같이 밥먹으면서 안전관리자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사실 파스값이 일년에 이삼백 만원 나오는데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아니, 안 아픈데 파스 붙이는 사람 보았냐, 그리고 그 파스 가져다가 집에 가서 가족들 주는 사람이 있겠냐 하는 말이 나왔다. 본의아니게 그에게 면박을 준 셈이라 미안.... 나오면서 사과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8월까진 아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조조정중이고 8월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 하니 누가 아프다고 하겠는가. 절대 아프다고 사측에 보고하지 말라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겠는가, 다행히 일거리가 줄어 통증이 덜 하다 하니 그럼 가을에 보자 하고 헤어지는 수 밖에.

 

 간호사가 교육을 마치고 와서 비특이적인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이를 데리고 왔다. 들어보니 이 사람은 다른 이들과 달리 무거운 장비를 하도 많이 들어서 아픈 것이라 한다. 이미 간호사가 잘 교육하여 바퀴달린 가방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단다. 그동안 운동을 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들은 적은 없었다, 우리 말고 다른 작업자들도 같이 할 수 있게 다시 시간을 잡아서 가르쳐 달라 했다고 한다.

 

음.... 바로 이거야. 모범사례는 전파되어야지. 우리 과 간호사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참으로 무거워서 밀고 다니는 가방으로 바꾼지 이년이 되어 간다. 작업장의 개선은 또 다른 개선을 낳는다. 내가 일일히 말 안 해도 알아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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