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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되었다?

  오전 원내 검진 끝나고 점심 먹고 좀 놀다가 근처 작업장을 방문했다. 3교대 근무라 오후 3시 교대시간에 맞추어서 방문하고 상담하는 곳 인데 여기를 생각하면 뭔가 계속 찝찝한 느낌이 든다. 노련한 안전보건담당자가 우리 활동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방해해서 보건사업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곳인데, 그가 갑작스럽게 퇴사하고 나서 후임자가 너무 힘들어하는 바람에 말 꺼내기도 어려워 현상유지만 해 왔다.



2002년 가을에 이 병원 오자 마자 전공의로부터 마뇨산(톨루엔 대사산물) 초과 2건을 보고받고 놀랐고, 그들은 야간작업후 소변을 제출했으나 다른 교대조는 작업전 소변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놀랐다. 유기화합물을 검출하기 위한 검사는 작업종료후 소변에서 하는 게 원칙인데 다들 귀찮아서 그냥 하는 일이 종종 있고, 그 결과 작업자들은 모두 괜찮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모든 이들에게 작업종료후 소변을 내라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그동안 그렇게 해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 이런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재검사를 강행했는데, 결과는 더 웃기게 나왔다. 아무도 초과하지 않았다. 작업량을 조정하거나 검체 재취 시기를 속였거나.....(우리가 직접 가서 소변을 걷어 온 게 아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최대한 직접 수거하도록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유기화합물 노출은 장난이 아니다. 작업환경측정에서 두 번의 초과를 기록했다. 초과가 나오면 노동부에서 점검 나오니 작업환경이 조금은 개선이 된다. (그게 입소문을 타고 우리 병원이 제대로 측정한다는 말을 듣고 그 옆 사업장에서 측정기관을 우리 병원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업장 청소를 MEK라는 유기화합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름때를 지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해서 금지시켰다. 그리고 나서 노출은 많이 감소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존재인 실험실의 '아가씨' 노동자들(이 회사는 기혼여성은 자동 퇴사!)에 대해서 작업환경측정, 특수검진, 교육과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사내 하청업체를 포함해서 만성질환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게 되었다. 니켈에 의한 알레르기성 피부 질환 환자에 대해서 작업전환을 시켰고, 후임자에 대한 예방교육도 하고...그러면서 이 정도면 할만큼 하는 거다 하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게다. 

 

 그런데 지난 3월 특검을 하면서 한동안 이만하면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지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달았다. 혼합유기화합물이 노출기준의 50%이상을 넘는 공정이 세 군데나 있더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중 세 명은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 3시까지 일하는 날이 주 3일이 넘는다더라. 더 기가 막힌 것은 3시에 끝나서 집에 못 가니까 그냥 휴게실에서 자는데 의자 두 개 붙여놓고 눈을 붙인다는 것이다. 지난 검진때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는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다니 열 받는다.

 

 오늘 가서 같이 가서 네 가지 일을 했다.

 

1. 산업위생사에게 초과공정에 대한 점검과 대책마련을 하도록 하고(이런 건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들 하면 얼마나 좋을까?)

 

2.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이렇게 시키면 과로사(작업관련 뇌심혈관 질환)로 산재 발생 위험이 높으니 개선바란다고 쓰고 원청에서 도의적인 입장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 담당자가 사내 하청 사장한테 전달을 하겠다고 했다.

 

3. 그동안 노련한 담당자의 방해로 못했던 보건교육 일정 잡았다(이런 것도 알아서들 하면 얼마나 좋을까?), 3교대라 3주간 3번 와야 한다. 잡아놓고 또 일 만들었다고 조금 후회.....

 

4. 만성질환 및 직업성 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상담 14건. 우리가 조용하고 쾌적한 회의실 놔 두고 시끄러운 휴게실에서 상담을 하는 건 접근성을 높히기 위해서이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회의실은 너무 높은 곳이니. 그런데 가끔식 안하무인으로 상담을 방해하고 상담받는 사람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는데 오늘은 유독 심했다. 아 짜증나.

 

빨리 퇴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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