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피임

  오늘 아침에 검진하러 간 곳은 램프제조업체로 30-50세 기혼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다. 빈혈은 여자들이 많은 곳에서 흔히 접하는 건강문제이다. 철 결핍성 빈혈인 경우 위궤양이나 치질 등 몸 어디선가 출혈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월경양이 많아서 걸리는 경우도 꽤 있다. 각종 부인과 검사상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 월경양이 많은 경우도 있지만 자궁내장치를 한 이후에 그 양이 많아진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 중 2명은 자궁내장치후  발생한 것이었고, 그 중 한 명은 빈혈치료약인 철분제제를 먹으면  위장증상이 심해져 그냥 지낸다고 했다. "빈혈을 치료하려면 자궁내장치를 빼는 게 좋겠다, 파트너와 상의해서 새로운 피임법을 택해라" 이렇게 말하면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은 좀 쑥스럽다는 표정이고 어떤 이는 간단한 해결방법을 찾았다고 좋아하고 어떤 여성의 얼굴엔 미묘한 표정이 지나간다. 그런 이야기를 꺼낼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쓰여있다. 

 

  피임법에는 왕도가 없다.

 

   난관 또는 정관결찰과 같은 영구피임을 하는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게 편할 수 있다. 난관결찰술은 배에다 구멍을 뚫어서 시술해야 하는데 대학병원급에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로는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 아니면 잘 시행하지 않는다. 정관수술은 산아제한시기에는 거의 무료로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했지만 지금은 보험이 안되어 비싸다고 한다. 어쩄든 피임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원하지 않는 임신"이고, 그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은 없으니 형편이 되면 영구피임을 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자궁내 장치의 일세대는 리피즈 루프라는 것인데 미국에서 임상시험없이 사용되다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이걸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후 자궁내장치는 아시아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과 맞물려 여성들의 동의없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자궁내 장치의 단점은 2-4년 주기로 장치를 넣고 뺄 때 의료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과 월경량 증가, 복통 등의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에 자궁천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쓰여 있어 무시무시한 피임법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과 이야기 해보면 우리나라처럼 숙력된 전문가들이 도처에 있는 상황에서 초음파로 확인하는 경우엔 그런 위험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내 생각에 자궁내장치는 나쁜 명성에 비해서는 꼭 그렇게 나쁜 피임법은 아니다. 이 역시 원치 않는 임신보다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랄필(먹는 피임약)은 호르몬제이다 보니 부작용을 심하게 경험하는 여성들이 많고 사람에 따라서는 어쩌다 한 번 하는 데 그걸 월 25일 내내 먹는 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편하다고 하고 원치않는 임신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상의 여성피임방법이 부작용이 꽤 있다보니 남성들이 하는 콘돔이 이상적인 피임법으로 거론된다. 콘돔은 성전파성 질환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아주 좋지만 칠칠치 못한 남자들이 많은 세상이니 사람을 잘 보고 판단해야 할 일이다. 한편 콘돔도 누구에게나 좋은 건 아니다. 콘돔의 재질인 라텍스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콘돔에 묻어있는 윤활유때문에 불쾌한 느낌이 있어 못 하겠다고 한다. 또 어떤 여자는 그냥 살과 살이 닿는 느낌이 더 좋아서 싫다고도 하더라.  

 

  한달쯤 전, 여성환경연대 주최한 강좌에서 '환경과 여성의 생식건강'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질의응답시간에 수강생들로 부터 콘돔의 윤활유가 건강에 좋으냐 나쁘냐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쎄...... 잘 모르겠다. 혹시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은 천연고무(라텍스)에 올리브유같은 걸 바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매우 진지한 관심을 보여 좀 난처했었다. 탐폰도 유기농 탐폰이 나오는 시대이니 찾아보면 그런게 있지 않을까? 있더라도 상당히 비싸겠지?

 

  한편 페미돔은 국내에서 시판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나나 주변사람이나 써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외 최신 피임법으로 각종 호르몬제를 몸 어딘가에 넣는 것들이 있는데 이건 내가 학교다닐때는 자세히 배운 적이 없어서 잘 모르니 왠지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비싼 것이 흠이다. 한 30만원쯤 한다더라.

 

  한편 돕헤드는 천연 피임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엄밀히 말해서 주기법은 피임법이라고 불리우지 않는다. 월경주기가 아주 아주 정확한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가능하고 그나마 임신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무엇인가 천연소재를 이용해서 여성의 몸에 바르거나 집어넣거나 하는 방법들이 소개되었는데 re도 말했듯 위생적인 면에서 권장할 만한 방법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낙태는 인공이든 천연이든 이상의 거론한 어떤 피임법보다 여성의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자에게건 남자에게건 불편하지 않으면서 안전한 피임법은 없다. 피임의 역사는 여성들의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어떤 조사를 해보니 한 가지 피임법을 평생 쓰는 사람은 별로 없고 여러 피임법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걸 두고 피임의 부작용때문에 이 피임법에서 저 피임법으로 옮겨간다고 해석을 한 사람도 있었으나 데이타 내에서 그걸 입증할 수는 없었다. 그 조사의 잠정적 결론은 조사대상의 반이상이 낙태를 경험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피임형태는 낙태라는 사후피임이고,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부작용을 무릎쓰고라도 열심히 피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임은 두 사람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대체보완의학자인 노스럽은 난관결찰술을 했다고 하고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에 나오는 어떤 여자처럼 파트너가 여럿인 경우는 자신이 영구피임을 하는 게 편할 수 있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만한 피임법은 피하고, 운이 좋아서 라텍스 알레르기도 없고 괜찮은 파트너를 만난다면 성전파질환의 예방효과를 고려해서 콘돔을 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피임실패의 책임을 양성이 공동으로 지도록 하는 법안이라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특히 남성들이 즐거운 성생활의 권리뿐 아니라 의무를 다하도록 하여,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여성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