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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

뻐꾸기님의 [절삭유와 알레르기성 비염] 에 관련된 글.

  오늘은 아침에 검진을 하고 점심시간 후에 작업장 순회점검을 했다. 노안부장, 간호사, 나 이렇게 셋이서 현장을 돌았다.  문제가 되는 건 크게 세 가지 물질이었다. 현장에서 141B라고 부르는 세척제에는 TCFE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하고 70N이라고 부르는 절삭유에는 노출기준이 불과 3ppm(이 수치가 작을 수록 유해하다고 보면 된다) 인 에타놀라민이 들어있었는데 이들은 작업환경측정 대상물질이었다. 90PX oil이라 부르는 오일에는 뭐가 들어 있었더라, 까먹었다.



그런데 작업환경측정결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된 화학물질은 검출되지 않고 엉뚱한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담당 산업위생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시약이 없어서 분석할 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허걱, 미치겠다. 우리 분석실에서 못하면 외부에 잘하는 기관에 위탁해서 검사해야지, 그렇다고 있는 것을 없는 것 처럼 보고서를 낸다는 게 말이 되냐.

 

"작업환경측정에 관한 법이 너무 느슨해서 현장의 문제점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하면서 시큰둥 했던 노조 지회장에게, "작업환경측정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기피한다"고 하던 노안부장한테, 진짜 할 말이 없다.

 

병원에 돌아와서 다시 확인하니 시니어 산업위생사가 산안법에 규정은 되어 있지만 국내에서 그 물질을 제대로 분석한 기관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럼 그렇다고 보고서에 쓰던가!

 

금요일에 화학물질의 건강장해 예방교육을 하고 알레르기성 비염과 피부질환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뭐 할 수 없지, 이럴 땐 솔직하게 말하는 게 답이다.

 

작업환경 측정을 제대로 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작업장의 뿌연 기름 먼지, 숨막히는 절삭유 썪는 냄새를 뒤로 하고 화학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고 쓰고 이런 저런 직인을 찍어서 내보내는 건, 이건 아니다.  

 

전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어서  분석실에 샘플을 보낼 때 물질안전보건자료 상의 주 성분을 반드시 표시해서 보내라고 이야기 했건만, 지켜지지 않는다. 이 문제만 그런게 아니라 내가 제기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들 내 앞에서는 "예, 알겠습니다" 한 다음에 하던 대로 한다. 좋은 말로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 해도 그때만 잠깐 고치는 척 할 뿐, 어느새 자기 마음대로 한다. 올해부터 특수검진을 맡으면서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뿌리깊은 문제에 걸려 넘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니 나도 힘들다.

 

화가 난다기 보다 세척제에 맨 손을 담그면서 일하면서 어쩔 수 없다던 작업자들의 손과 가려움을 호소하던 어느 작업자의 벌건 피부가 눈 앞에 어른거리면서 막막한 기분이 든다.

 

병원에 돌아와서 내 안위를 걱정하여 심박변이도를 측정했다. 우리 과에  심박변이도의 각 지수들을 통해 자율신경 기능을 측정하는 연구용 장비가 있거든. 이걸로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인 측정을 하는 거다.  전에 이 검사결과가 아주 나쁘게 나온 지 며칠 뒤에 입원하는 극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다.  오늘은..... 뭐.... 결과가 아주 심각하진 않았다.

 

아, 내일 일은 내일 하고 이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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