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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야 잘 살까?

  사장과 그 부인과 친구, 이렇게 셋이서 지하 공장벽에 페인트 칠해가면서 시작해서 이제는 50인 규모로 키운 전자제품 부품제조회사. 제품의 특성상 1-6월은 일이 많고 여름은 비수기이다. 요즘엔 일이 없어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단다. 전에는 어깨, 손목 아프다는 게 주된 호소였는데 한 달정도 쉬니 별로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검진시작.



  꽤 심한 만성 통증이 여전한 사람이 세 네명 있더라. 하루 네시간밖에 일 안하면 좀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하여 이상해서 물어보니 남은 네 시간을 열심히 바닥청소 등을 한단다. 작업이 없어서 울상짓는 것은 사업주 생각이고 노동자들에게는 10시간 일하던게 8시간으로 줄었다는 정도의 차이이다. 성수기에는 아파서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니 비수기라도 좀 쉬어야 낫는다고 하니 모두들 참을만 하다고 한다. 일급제라 아프다고 무급으로 쉬면서 돈을 덜 가져가는 것도 무섭지만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분위기에서 아프다고 나서서 찍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특이한 증상호소로 아주 오래된 항문주위 가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장내시경 검사도 해보고 요충 때문인가 하여 구충제도 먹어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해결되는가 물었다. 그러더니 스스로 답을 알려주었다. 증상에 대한 장황한 설명 끝에 이 증상은 무슨 청결제사용후 발생했는데 자신은 그 청결제를 안 쓰면 개운하지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흠..... 무슨 성분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럼 그걸 안 쓰고 증상을 관찰해야지, 특효약 찾아서 병원다니는 게 도움이 안될 것 같다 하자 생각해보겠단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니 궁금하다. 제품이름을 물어볼 껄 그랬다. 여자 수검자가 많은 곳에선 내가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한 질문이 종종 나온다. 학생 때나 수련받을 때나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런 질문들......그래서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임상 교과서들을 주욱 훑어보니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몇 권 있어서 주문했다. 공부 좀 해야겠다. 


 납땜 작업자중 특검대상에서 누락된  혈중 납 누락되었더라. 제품불량시 수리하는 작업자들은 흔히 누락된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만 유해작업에 종사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도 하고 특수검진 비용부담 때문에 우선순위가 떨어져 일부러 누락시키기도 한다.

 

작년에 혈중 납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총각이 있었다. 재검사해서도 마찬가지. 이럴 땐 먼저 환기상태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본인한테 방진마스크 쓰냐고 물어보니 안 쓴다고 한다. 환기시설 점검해보고 작업방법 확인해보고 노출감소를 위한 교육을 하도록 담당 간호사에게 당부했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하는 말이, “겨울에 난방도 안 하고 여름에 냉방도 안 하는데 환기시설을 가동시키겠어요? 작업자들한테 물어보면 안 튼대요”

 

 사장부인이며 안전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총무한테 이상하게도 작업환경측정결과와 혈중 납 농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고 환기가 잘 안되는 곳이 있나 점검해보자 하니 환기시설을 잘 가동하고 있다며 펄쩍 뛴다. 그건 그렇고 혈중 납 농도가 높은 작업자들한테 방진마스크 지급및 착용 교육도 좀 하자고 하니 그건 해보자 한다.


 한편 중소기업에선 화학물질에 관한 특검시 건강진단 시기에 따라 검사결과들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작업량이 적으니 화학물질 사용도 적다. 이런 곳은 작업량 많을 때 생물학적 모니터링을 좀 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비싼 검사라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돈들여 하기는 어렵다.


 아 그렇지. 잊었던 일들이 기억이 난다. 이 회사 노동자들은 겨울에 내복을 두 개씩 입고 다니고 솜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고 했고,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땡 종소리 나자마자 경쟁적으로 밥먹으러 줄 서느라 손을 안씻고 밥을 먹는다고 했다. 언젠가는 30분 시간을 주며 세상의 모든 직업병에 관한 예방교육을 해달라고 해서 참 난감했더랬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하고 가장 호소력 있는 슬라이드만 고르고 또 골라서 가지고 갔었지.


 지난 몇 년간 작업장 체조, 보건교육과 같은 돈 안 드는 선에서 하는 부분은 변화가 있었고, 주로  관리직의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질환에 대한 치료율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성과가 있었다. 35명 검진하고 다음 검진 작업장으로 이동하면서 담당 간호사한테 물어보았다.  “왜 법적인 의무도 없는데(법은 50인 이상에 보건관리자 선임의무를 두고 있음) 보건관리대행을 우리한테 계속 하는 거지?”


 간호사 왈, 사장이 한 달에 한 번 관리직들 모아서 근처 병원에 간단다. 우리 병원에서 검진한 뒤에 고혈압이 발견된 이후 건강상담하고 투약을 시작했고 주로 친인척인 관리자들이 하나같이 질병 유소견자이기에 만성질환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 일인당 10년씩 수명을 늘려주었다고 가정하면 이 회사에서 한 백년은 늘렸구나, 그게 다 버섯아줌마랑 당신 덕분이야, 수고했어, 그런데 그게 행복의 연장인지 고통의 연장인지......하여간 그렇게 한 푼이라도 지출하는 거 바들바들 떠는 곳에서 일부 직원의 복지라도 신경쓴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다녀보시오. 그러다보면 작업장 유해인자 문제도 조금은 해결되겠지. 최소한 혈중 납이 너무 높아지지 않는지 감시하는 기능은 할 수 있잖아” 

 

 내가 이 회사에서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진짜 사장도 가난한 건지 이렇게 아껴서 사장은 잘 사는 건지 그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청업체 납품단가만 혹독하게 후려치는 대기업들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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