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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들

아직 2006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작년에 했어야 할 작업장 방문이 8일치가 남은 것을 노선생과 둘이 해결하러 다녔는데 계획대로 진행이 안되어 아직 하루 남았다.  

어제는 정신적 부담이 큰 하루였다.  첫번째 사업장은 1-bromopropane에 대한 특수검진에서 월경량감소와 여성 호르몬 이상으로 직업병 요관찰자판정을 받은 여성노동자들의 사후관리때문에 갔다.  당시 산부인과 내분비 전공교수랑 의논한 끝에 내린 사후관리 조치는 6개월간 기초체온법을 통해서 배란을 확인하고 월경량을 측정하고 1, 6개월째에  여성 호르몬 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월경량을 측정하는 방법은 기간, 하루 사용 패드 수를 세서 할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저울을 주고 무게를 달아달라고 했는데(병원에서 소변량을 잴 때 기저귀를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잰다), 이게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월경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월경혈의 무게를 재라고 하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은 집이 너무 멀어서 가뜩이나 출근하기 힘들고 아침에 바쁜데 기초체온을 잴 시간은 더더욱 없다며 안 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이해가 간다.  무슨 심각한 환자도 아닌데 아침시간에 5분씩 체온을 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다가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아침시간은 그야말로 전쟁같을 테니. 그러나 배란을 확인하고 그 특정기간에 호르몬 검사를 해야만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규칙적인 월경주기라면 추정해서 검사할 수도 있으니 정 어려우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대화하면서 내가 또 깨달은 것은 월경과 같은 사적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하는 점이었다.  우리 쪽에서 좀 더 섬세하게 진행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5명중 2명은 모든 검사를 다 하기로 했고 3명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만 하기로 했다.

 

두번째 사업장은 일반검진 결과 상담을 5건했는데 시간은 2시간쯤 걸렸다. 교대근무를 하는 중국인 노동자가 혈압이 200/100까지 측정되어  사측에서 대책을 물어왔는데 다행이 연변교포가 통역을 해주어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었다.  고혈압의 가족력이 있고 평소 집에서 재면 130/80정도 나오는데 중국 병원에서 재면 140/90 정도 나오던 사람이었는데 이번 검진에서 160/100, 우리가 잰 것이 200/100.  백의고혈압(의료진을 만나면 긴장해서 올라는 혈압)의 가능성이 있으나 12시간 맞교대근무자이므로 빨리 정확한 평가를 하는게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한뒤 업무적합성 평가를 하도록 했다.  문제는 그 검사비. 약 8-9만원 한다는 데 한달에 100만원 좀 넘게 받는 이가 그걸 부담하는 건 참 어려운 일. 일단 사측에서 돈을 내야 한다고 말은 하겠지만 거절하면 내가 별 도리 없으니 본인부담으로라도 평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는? 사측 보건담당자는 그러마했는데 윗선에서 본인부담으로 하라했다고 한다. 열받은 보건담당자, 평소혈압은 120/80인데 나올 때 혈압을 재보니 150/90이다.

 

다른 만성질환자 상담에서 알게된 사실은 이 회사가 2주일 간격으로 12시간 맞교대를 하기 때문에 모두들 너무 피곤하고 질병관리 자체가 어렵다는 것.  교대주기는 2일에 한번 또는 한달에 한 번이 좋다고들 하지만 12시간 맞교대는 사정이 다르다.  다른 회사들처럼 1주일간격 교대가 차라리 낫다, 꼭 검토해달라. 이렇게 말하고 보고서에 썼다.

 

세번째 사업장은 3년전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탄생한뒤 작업조건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곳.  특수검진 결과 설명회를 하는데 총론을 좀 길게 했더니 다들 잔다.  전엔 모두들 열심히 듣고 토론도 활발하게 하고 그랬는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작년까지 근무시간이후에 수당주고 교육을 해서 그러면 피곤해서 교육효과도 없으니 근무시간중에 하자고 해서 어렵게 시간을 바꾼 것인데, 오히려 더 자더라.  물어보니 누군가 아침에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좋지, 그런데 한 술에 어찌 배가 부르겠는가. 

 

내 생각엔 교육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초점을 잘 못 맞춘 게 크다.  단순히 무슨 유해인자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 이런것만 하지 말고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좀 길게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린 것 같다.  그렇다 할 지라도 강사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떠드는 건 좀 문제가 있다.  자는 건 참아도 예의없는 건 참기 어려워 감정조절하느라 힘들었다.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2/5 정도의 노동자들을 보고 참았다.

 

어젠 정말이지 매우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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