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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웃음이 작업장에 가득하길

<그녀, '맑은 웃음'의 편지>

 

밤근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편이 있는 문경에 다녀왔습니다.

논문 쓴다고 4개월 남짓 돌아보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생각보다 깔끔한 마루와 거실에 놀랐지만 적적함을 달래기위한 사투인 듯...

책만 여기저기 늘어져 있어 마음이 아팠답니다.

 

따뜻한 사랑방에 누워 방문을 열어제치니

고요한 달빛 아래 향긋한 냄새를 토해내며

화사하게 찔레꽃이 어우러지고 이름모를 새소리와 풀벌레소리가 방안가득 울려오더군요.

정말 오랫만에 맛보는 삶의 여유였던것 같아요.

 

지난 28일 종심을 통과하였습니다.....(증략) 건강한 생각과 자세로 산업보건인으로서

열심히 일할께요.  논문이 나오면 천안에 내려갈께요. 행복하세요~^^



나는 전공의 3년차때까지는 역학과 임상수련을 받았고

둘째 아이 낳고 한달 뒤에 출근해서 산업보건실무를 처음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렇게 세상물정을 몰랐는지

얼굴이 화끈해지는 일들도 많았지만 그녀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책에서 읽은 지식과 무모한 열정뿐이었지만

그녀로부터 인간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오랜 실무경험으로 부터 익힌 지혜를 배웠다.

좌충우돌하던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뭘 모르는 초보인턴들이 실수하면

경험많은 간호사들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 흔한 병원에서 그녀는 달랐다.

언젠가 어떤 인턴이 심전도를 제대로 못 찍었을 때

그녀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선생님, 많이 피곤하시죠? 제가 좀 찍어드릴께요. 좀 쉬세요"

하면서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고  고마왔다는 말을 했었다. 

그녀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함께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면

그녀가 수당도 안 나오는 초과근무를 무릅쓰고 잘 정리한 상담기록지를 보면서

건강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배웠다.  

 

그녀는 자신이 몇년동안 꾸준히 만났던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혈압관리실태에 대해서 석사논문을 썼다.

그 시절은 직무스트레스와 심혈관질환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유행하기 전이었는데

그녀는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으로 부터 그 중요성을 알았다.

 

세월이 흘러 병원의 인사정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산업의학과를 떠나

응급실로 순환배치되어 3교대근무라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고생하면서 쓴 박사논문이 통과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정말 기뻤다.  

 

중간에 연락이 없어서 좀 걱정했는데

오늘 아침에 결국 종심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가 보내준 장사익의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몇 자 적어본다.

 

산업의학과를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건강한 생각과 자세로 산업보건인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앞에서  

앞으로 맑은 웃음이 작업장에 가득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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