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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상반기 검진 마지막날

  쉽지 않았던 상반기였다. 

새해를 맞이하여 마음과 몸을 단련코자 정토회 수련원에 다녀온 뒤에 이제는 좀 겁먹지 않고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듯하여, 여러가지 일들을 벌였다.  그 때 생각으로는 병원의 일상적인 업무를 열심히 하고, 연구프로젝트는 연구책임자로 하는 것 하나,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는 것 하나. 그리고 직업성 암 관련한 활동,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중간에 여러가지가 꼬여서 결국 매일매일 허덕거리면서 지냈다.

 

  힘들었던 기간을 마무리하면서, 술도 한 잔 걸쳤고 해서, 몇가지 기억나는 일들을 써 본다. 

 

#1. 검진

 

  2006년에 검진을 담당하면서 직업병 유소견자 판정을 좀 냈는데, 나중에 몬트리올에 연수가서 들어보니, 판정을 낸 사람은 나인데 비닐우산이 뒤집어 썼다고 한다.  돌아와서 검진을 일년 해보니, 느낀 점이 많다. 직업병 유소건자 판정이 많이 난 사업장은 작업장 개선을 좀 했다.  작업장 개선이 없었어도 폐기능 검사결과가 나빴던 사람들중에 담배 끊고 방진마스크 착용 열심히 하고, 그리고 폐기능 검사결과가 좋아진 사람들도 있더라.  기쁘지 아니 할 수 없도다.

 

  옛날에 안전매트가 없으면 제품 박스라고 깔고 일하라고, 손목이 아프면 아대라도 주라고 했던 그 선생님 맞냐 하고 물어온 중년 여성 노동자가 말하기를, 그 덕분에 일하기가 좀 낫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달라져서 못 알아보겠다.... 하더라.  그날 나는 계속해서 새벽에 나가야 하는 출장검진을 하느라 많이 지쳐있었고, 입을 열기도 싫었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으니까 힘이 났다.  그 덕분에 용기를 내서 보건관리대행 보고서에 썼다. 이제는 의자를 지급할 때라고.

 

  가는 곳마다 구조조정이다. 어떤 곳은 매출은 좋은데, 외국의 투기자본이 들어와서 돈을 다 빼돌린 결과, 500여명 중 50여명을 짜르고, 짤린 사람들은 농성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하고, 나한테는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회사에는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그런 일이 많았다. 

 

 #2. 연구

 

  연수가서 했던 연구는 직장-가정 갈등의 건강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도 논문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배운 것이 많다. 특히 퀘벡에서 했던 연구는 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약 2000여명의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자료를 분석했는데, 직장-가정 갈등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책임과 가정샣활의 행복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돌아와서 너무 하고 싶은 연구가 있어 제안서를 썼고 2: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이 되었다. 서서 일하는 작업에 대한 관리기준을 만드는 정책연구이다.  복잡한 여러가지 상황이 있지만, 이 연구를 하게 되어 기뻤고, 이 연구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고, 많이 배웠다.  오늘 이 연구를 도와준 어떤 노동조합에 주기로 했던 보고서를 마무리 지어 마음이 매우 편안하다.  조사협조를 의뢰할 때 원한다면 회사별 보고서를 주겠노라 했더니, 웬걸, 대부분의 회사가 그걸 원했다. 조사연구를 할 때 나의 원칙은 해당 작업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에,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연구하는 것의 따따블.

 

  그래도 내가 어떤 보고서를 쓰면, 이것을 받아서 무엇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힘이 난다.   흠흠....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으니, 이대로 가면 되겠다.

 

건강증진 형평성 연구관련 성수동에서 하는 검진사업에 대해서는 회의도 좀 들지만, 일단 그냥 가 보려고 한다.  몸은 힘들지만, 만나서 즐겁고 배우는 것도 많으니

 

#3. 교육

 

  학생, 전공의, 직원..... 내가 아는 것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많다.  상반기에는 우리 과 과목은 하나 있었는데, 예년과 별 차이 없이, 그냥 갔다.  다른 과 과목에 찬조출연 하는 것도 그냥 그대로. 

  지도학생 면담을 집단적으로 두어번 했는데, 얘네들이 별로 행복해보이진 않더라. 한 녀석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나와 걱정이고, 또 한 녀석은 뭔가 내면에 소용돌이 치는 방황이 있고, 어떤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고민도 없고 취미생활도 잘 해 나가는데 감정이 좀 가라앉아 있다.   성적이 안 나오는 애는 따로 밥먹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학교다닐때 성적이 좋지 않아 뭐라 할 말을 없었지만, 본인이 비관하지 않으니 그래, 함께 지켜보자 했다. 방황하는 녀석한테는 등산화를 사주었고, 열심히 놀아보라 했다.

  전공의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논문을 쓰고 있다. 이뻐 죽겠다. 전공의와 논문을 쓰면서 토론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다. 홍실이랑 논문을 쓰면서 즐거웠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직원들을 위해서 비수기를 활용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그것이 끝나고  1/3이 퇴사했다.  그들은 비정규직.  내 딴에는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기서 많이 배웠고, 그것을 잊지 않기를 바래서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좀 허무하기는 하다.

  노동자에 대한 교육 활동은 좀 적었다. 하지만 검진과정에서 예년 보다 풍부한 설명과 상담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 먹고 사는일 관련

 

  재계약 심사는 8월이고, 승진 심사는 내년 2월이다. 오늘 통화를 해보니, 재계약에 필요한 연구업적의 3배정도 달성했고, 승진심사요건은 다 채웠다.  흠흠...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발령받고 첫 심사때는 어리버리 해서 유급을 했었다.  어쨌거나 먹고 사는 일에 당분간 지장이 없다하니, 마음이 편하다.

 

 3년정도 해보고, 직장을 옮겨볼까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  그리고 기타.

 

  친한 후배랑 제주도 올레 여행도 했고, 정말 몇년만에 마음에 늘 있었던 동기, 후배들도 만나서 좋았다. 살사를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았던 것도 좋았다.  상반기에 유일하게 새로 연습한 곡은 파헬벨의 캐논인데 아직 다 파악을 못했다.  노래배운다고 등록했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 포기했고,헬스도 등록했었는데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었고, 영어회화 강습은 예기치 않은 여러 상황으로 표류중이다. 

 

# 그래도.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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