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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의자가 있는 공장이야기

우리팀이랑 뭔가 궁합이 안 맞는 H사.

노련한 보건관리 담당자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에 빠질 때가 많다. 작업자의 반이상이 이주노동자인 오십명 규모의 제조업체의 뻔한 열악함에 업무회의를 근무시간에 하는 것 조차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장의 존재를 더하면 그 무거움이 충분하다.



   첫 상담자는 남자, 50세, 혈압이 200/120 mmHg인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안 먹는다고 한다. 모친이 중풍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 고혈압치료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고, 금연 13년째로 다른 생활습관개선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럴까? 

그는 주말부부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어 저녁이면 낙이 없어 매일 소주 1병-1병반을 마신다. 집에 가는 주말에는 절대 안 마시는 것으로 보아 자취생활의 외로움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2년전부터 부인을 대신 보내 처방전을 받아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타다 먹었으나 혈압조절이 잘 되지 않자 포기한 상태.  고혈압의 치료에 대한 그의 오해를 몇가지 풀어주자 치료할 수 있는 것임을 알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이제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동안의 경과를 적은 편지(진료의뢰서)를 써서 손에 쥐어주고, 간호사를 통해 우리 병원 순환기 내과에 빠른 예약을 잡아주고, 당장 가지고 있던 혈압약을 먹도록 하고 나니 30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분은 관리직이라 이정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때도 많은데 대부분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그런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집단보건교육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를 쓴다.

 

두번째 상담자는 생산과장. 복부비만과 경계성 고혈압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다가 그를 꼬신다. '보건교육을 하려고 했더니 아침 7시에 오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어렵고 교육효과도 낮다. 근무중에 시간을 빼주어야 한다. 작업자들이 소음, 절삭유, 반복작업 같은 문제들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하니 사장님이 그런걸 너무 싫어해서 문제라고 하면서도 시간을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한다.

 

  작업장 순회점검 시작.

앗 검사작업자의 의자가 바뀌었다. 등받이가 생긴 것이다. 작업자들에게 물어보니 차량용 받침을 구해서 쇠로 만든 의자에 용접하여 붙였다고 하는데 이게 생긴 뒤로 허리도 안 아프고 좋다고 하는 표정이 밝다. 좋은 의자를 사주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작업자들에게 신경을 썼고 효과가 있으니 기분이 좋다.

 

  서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나무로 만든 발판과 다리를 교대로 올려놓을 수 있는 발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비싼 안전매트가 아니라 유감이지만 작업자들은 맨 바닥보다 훨씬 낫다고 좋아한다.  이것도 아직은 모든 작업자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다. 지난 번 방문때 만났던 하지정맥류를 수술했던 아저씨의 공정은 아직도 맨바닥이다. 차차 확대해나간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2003년 7월1일자로 바뀐 산안법에 의해 사업주가 작업관련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할 의무가 신설되면서 가능한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주도하여 산업의학 및 인간공학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조사를 하고 시설개선을 하지만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에서는 사업주들에게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처음 우리가 법개정내용을 설명하고 다닐 때 회사측의 반응은 이루말할 수 없이 적대적이었는데 일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 어디나 조금씩은 개선을 해 나가고 있다. 최소한 억지로라도 흉내라도 내려고 한다. 이 법은 아직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뿌듯하다.   

 

 하지만 절삭유(금속가공유) 관리는 아직도 멀었다. 생산과장말로는 내년에 국소배기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계획수립단계에서 우리 산업위생사를 꼭 참여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소기업에서 큰 마음먹고 많은 돈을 들여 개선을 했는데 제대로 된 환기시설이 아닌 경우를 꽤 보아왔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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