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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긴 한데

  병원에서 나오는 린넨류를 세탁하는 업체가 있는데 60세미만이면 젋은 축에 속할 정도로 연세드신 분들이 많고,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곳이다.  진짜 진짜 빈곤이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아주머니말이 하루 14시간이상 일하면 잔업수당 다 합해서 87만원받는다고 한다.

 

 요즘 몸이 많이 피곤하고 그 작업장에 대해서는 여러번 보았기 때문에 잘 아는 편이라 오늘은 작업장 순회점검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여 점심시간에 혈압이라도 한번 재려고 기다렸던 많은 할머니들이 작업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안 갈 수가 없었다.  



 사실 작업장에서 서서 혈압을 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혈압은 안정상태에서 심장높이에서 팔에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재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장에는 앉을 의자가 없고 작업자들은 작업위치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면 내가 작업자의 팔을 받쳐준다. 오늘도 이 사진 찍고 나서 충실하게 '팔걸이' 역할을 했다^^.  이 분은 혈압약을 드신 지 얼마 안되어 잘 조절되는지 궁금했는데 우리가 늦게 와서 속상했다가 정상 혈압으로 측정되자 기분이 다시 좋아지셨다.

 

  이런 식으로 몇 명의 고혈압환자와 당뇨병 환자를 만나고 나니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회사 담당자는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우리가 매달 주는 보건교육자료를 식당에 게시해달라고 해도 이년째 안 바꾸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절대 보건교육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는데 연세가 드신 작업자들은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거의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우리 간호사가 생각해 낸 것이 식당의 탁자에 자료를 끼워주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바뀐 뒤로는 그나마 협조를 안하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향하는 데 카자흐스탄에서 온 총각이 갑자기 '아줌마'하고 부른다. 손짓발짓으로 하는 말을 종합하건대 목덜미의 백반증에 대해서 치료받던 중 한국에 왔는데 이에 대해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 장갑끼고 세탁하면서 발생한 손의 습진(접촉성 피부염)을 치료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그렇게 이야기 하겠다고 약속을 하니 꾸벅 인사를 하고 뛰어간다.

 

  사무실에 가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마침 이사와 통역이 모두 자리에 있었다. 이 회사는 일본사람 소유이고 이사도 일본에서 파견된 사람이다. 내가 우리팀에 대해서 소개하고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는데 이사는 갑자기 말을 끊고 흥분해서 이야기 했다. 

 

  자기 생각에 이 회사의 가장 심각한 건강문제는 병원에서 나오는 감염성 폐기물이 린넨에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 전염병 등인데 자기네가 아무리 협조를 요청해도 병원들이 아랑곳하지 않는다며 특히 우리 병원을 지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쌍하단다. 국가가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가엾은 한국 노인들이 병원성 폐기물의 위험에 방치되는 것이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것 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병원에서 분류만 잘 되어서 오면 이렇게 길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물량을 속이지 않고 제 값만 주면 임금도 더 올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좋다. 그럼 일단 실태파악을 정확하게 해보자. 우리가 분류작업할 때 와서 보겠다. 문제가 있으면 우리 병원에 건의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 필요하면 서류를 만들어 관계부서에 보고도 하고 병원들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신문에 투고라도 하겠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보자, 그건 그렇고...."

 

  뒤이어 "앉을 자리도 하나 없는 작업장은 너무 한 거 아니냐?  쉬는 시간에라도 편히 쉬게 의자를 달라, 장시간 서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매트를 지급해달라, 또 보건교육자료하나 게시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 여기 이주노동자들중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두 명있는데 이 동네는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안통하니 관리자가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등등......."

 

 안 그래도 휴게실마련은 계획중이라는 말과 큰 돈 안드는 일은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사는 보건교육자료를 이년동안 안 바꾼 사람이 누구냐를 따지더니 담당자를 흘겨보았다. 어쨌든 서로 노력하자고 하고 나오는데 간호사가 '어이구 속 시원하다' 한다. 

 

시원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일을 처리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병원에 돌아오는 길 전화를 받았다.

전화로 그 회사 이사랑 총무과장이랑 한 판 했단다. 그동안 우리 병원이 세탁물 중량을 속였다고 거세게 항의했다는 것. 웃으면서 헤어져놓고 이럴수가......

 

그래, 이 정도 골치아픈 것은 감수해야겠지.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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