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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순회점검

   두부랑 유부를 만드는 공장에 갔었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 반복작업, 중량물 취급을 특징으로 하는 식품제조업체인데다가 회사 보건관리 담당자가 일년이면 세네번씩 바뀌는 곳이기 때문에 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한 곳이다.

  오늘은 모처럼 우리 팀이 한 세트를 갖추어 방문했다. 의사, 산업위생사(작업환경관리담당), 간호사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작업장을 돌아보았다. 나는 우리 산업위생사 선생님과 함께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는 일이 즐겁다. 경험많고 실력있고 원칙대로 일하고 인정까지 많은 분으로 배울 점이 많고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포장작업은 기계가 너무 낮게 설치되어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일해야 하고, 기계에서 나오는 제품을 모아서 박스에 넣을 때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손을 멀리 뻗게 되어 요통과 어깨 통증의 위험이 높다. 제품을 박스에 넣는 작업자는 웃으면서 자기가 개발한 도구를 보여주었다. 사진속의 여자가 들고 있는 긴 막대기. 이걸 쓴 뒤로 좀 덜 피곤하다고 한다. (모델- 우리 팀원들)

 산업위생사 선생님은 이 작업은 기계와 작업대의 높이를 높히고 지나치게 넓은 작업대에 홈을 파서 작업자의 어깨 동선을 줄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모든 작업을 직접 해보거나 몸으로 파악하는 습관이 있다.

 

 역시 포장작업으로 이 기계에서 나오는 제품을 받는 작업대가 너무 낮아서 불필요하게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일하게 된다.  제품을 받는 작업대를 높혀주기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서서 유부를 받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바닥에 제품박스를 깔고 일하신다.

안전매트가 필요하지만 이거라도 하면 허리아픈 거나 다린 아픈 게 좀 덜하니 안 하는 것 보다 낫다. 식품제조업에서는 안전매트지급을 위생상의 문제로 꺼린다. 세균이 번식하지 않고 어느정도 탄력성이 있는 재질이어야 하는데 우리 팀도 적합한 제품을 찾지 못했다. 산업위생사 선생님한테 좀 알아보고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건 사업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신다.  선생님은 사업장에서 할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편인데 나는 이 사업장은 그런 걸 알아볼만한 수준이 안되니 알아보아 달라고 우겼다.   

 

 두부 제조기계를 청소하는 모습, 발받침이 불안정하고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는 상태가 부담이 되는 자세이다. 바닥도 미끄러운데 사고날 수가 있으니 일단 발판을 안정적이고 넓은 것으로 교체해야 겠다.

 

  박스를 파레트에 쌓고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포장하는 아주머니.  물어보니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의사는 디스크 초기라고 했고, 작업자는 저번 공장에서 오래 서있는 게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작업을 한 지는 몇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작업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파레트를 사용하는 것이 좋지만 이 회사에서 그걸 사기에는 부담이 좀 될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아주머니는 증상이 심하니까 다른 작업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안 그래도 건의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위의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한 이주노동자가 가까이 와서 떠듬떠듬 말한다. '이십...... 이십오 킬로'  박스가 너무 무겁고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려는 거다. 오늘 오전중에만 56박스를 날랐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산업위생사 선생님은 박스를 직접 들고 쌓아보았다. 그는 작업장에서 중량물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작업자에게 질문하기 전에 직접 들어서 나른다. 박스 하나라도 들어주고 나서 물어보는 것이다.  함께 일하면서 그 따뜻한 마음을 배웠다.

  이 작업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제안할 수 있지만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차에 제품을 4단으로 쌓지말고 3단만 쌓는 것이다. 사실 난 이 총각의 작업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  이 사람은 우리가 처음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는 기계에 포장지를 투입하는 손목부담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산업위생사선생님이 다가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작업방법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했었다. 내가 좀 관찰력이 부족한 편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여자들이 일하는 거만 잘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 

 

참, 모범적인 사례도 있었는데, 작년에 새로 바뀐 담당자가 꽤 의욕적인 사람일 때 설치한 발판이 그것이다. 키가 작은 작업자가 유부를 기계에 투입하기 위해서 팔을 높히 들어야 해서 어깨에 부담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뭐 하나가 바뀌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  아주머니가 발판덕분에 어깨는 덜 아프다고 하길래 사진 한 장 찍자고 양해를 구했더니 기왕이면  예쁘게 앞모습을 찍어달라고 하시며 포즈를 취하신다. 사진을 인쇄해서 다음 달에 보내주기로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업무보고서를 쓴다.

워낙 악필이기도 하지만 쓴다고 바뀔까하는 비관적인 마음이 글씨를 더 날아가게 한다.

 

산업위생사 선생님은 작업장에서 직독식 장비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를 적었고 (최고, 700ppm/노출기준 1000ppm), 기름이 타면서 발생하는 연기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환기를 위해 시설을 보강해달라고 썼다. 나는 거기에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biofuel이 연관성이 있다고 추가 의견을 적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다음주에 있을 건강검진 준비에 대해서 자세히 적었다. 작년에 이 사업장 검진이 저조해서 검진팀에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는 걸 사정해서 부탁한 지라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사업장이 워낙 협조가 안되니 별 걸로 다 속을 썩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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