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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적합성 평가

  사람을 일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산업의학의 사명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을 일에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업장에서 업무적합성평가를 의뢰해 올 때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40대 연마작업자가 만성 피로와 숨이 찬 증상을 이유로 잔업을 거부하자 관리자가 우리에게 업무적합성 평가를 의뢰했다. 전화로 상황을 접수한 간호사가 나에게 물어보길래 일단 현재 증상에 대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상담을 하자고 대답했는데, 사업장에 가보니 상황이 심각하다. 



  그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관리자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일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밀검사를 예약을 해 놓고도 기분이 나빠서 안 갔다는 것이다. 그는 관리자가 자신을 콕 찍어서 내보내려고 안달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래서 괴롭힘을 당해 나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고용에 위협을 느끼자 바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작년에 60세 정년을 55세로 낮추려고 하여 노동조합이 생겼다. 싸움끝에 57세 정년및 조기 퇴직자에 대한 약간의 위로금을 따냈고 현재는  100명중 16명이 지역노조원이다. 그에게 일단 현재 몸상태가 안 좋으니 진료를 받아라, 일의 조정에 대해서는 그 결과를 가지고 삼자가 모인 곳에서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의 목표는 그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설득했다.  

 

  관리자는 잔업을 거부하여 난처한 것을 사실이나 요즘 기술자가 딸려서 그를 해고할 이유는 전혀 없고, 아파서 잔업을 못하겠다고 하니 한두달이라도 치료를 받고 복귀하는 게 어떻겠냐 하는 생각에서 본인을 위해서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회사측에는 그가 정확한 진단을 받는데는 최소한 두 달은 걸리니 그 때까지 잔업을 시키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두 달후에 상상할 수 있는 결과는 이렇다.

  * 그에게 치료해야 할 질병이 있는 경우  - 작업자가 원하는 대로 치료가 될 때까지 잔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쓸 것이다.

  * 그에게 아무런 질병이 없는 경우  - 잔업거부는 그의 몫이 될 것이다.

 

  이 사례의 교훈 - 업무적합성 평가와 같은 중요한 문제는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듣지 않은 상태에선 어떤 의견도 내지 말 것. 정확한 진료가 필요한 경우 그에 대하여 역시 양측에 같은 내용으로 통보할 것.

 

 사족 - 처음에 그가 잔업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상상못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대세인 이 지역사회에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저녁시간에 슈퍼마켓을 한단다. 일상적인 잔업없이 굴러가지 않는 회사측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이겠지만, 그에게 잔업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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