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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소수의견>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207311647351&pt=nv
[북리뷰]사유하지 않는 사회의 ‘다른 생각’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2012 08/07ㅣ주간경향 987호)
<소수의견> 박권일 지음·자음과모음·1만3500원
세대론이라는 새로운 논의의 영역을 펼쳐 보였던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이 <소수의견>이라는 책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쓴 시사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쟁점에 대한 실시간 개입과 연재라는 형식이 가져온 글쓰기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박권일의 책도 이런 사실을 가감 없이 증명해준다. 지은이는 원래 ‘명명의 달인’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는데, 정작 자신의 책에 붙인 표제는 다소 싱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면, 왜 이런 부제를 붙였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에세이스트들은 자기가 숭앙하는 모델을 두게 마련인데, 박권일의 모델은 루쉰인 모양이다. “잡감”이라는 표제는 루쉰이 쓴 에세이에서 따온 말이라고 밝혀놓았는데,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루쉰의 “잡감”에서 그가 크게 치고 있는 특징이 “상대의 폐부를 곧장 찔러 들어가는 맛”이기 때문이다. 루쉰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박권일의 글이 독자에게 호응을 얻어내는 장점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의 글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소재를 붙들고 요리하는 기술이 남다르다는 찬사는 잠시 접어두자. ‘명명의 달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는 복잡하고 ‘잡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잡아서 곧장 치고 들어간다.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동물은 속물의 미래다’도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곧잘 내뱉었던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이 사실 속물적인 내용을 감추고 있으며, 이런 속물성이 동물의 뻔뻔함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를 불러왔다는 지적은 통렬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소비를 둘러싸고 벌어진 현상을 ‘진풍경’이라고 정의하면서, “사건은 사유되기는커녕 소비될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일갈하는 모습이나, 겉으로 평등을 요구하면서 정작 평등의 내용에 대해 외면하는 한국형 평등주의를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수탈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부자에게는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는” 사고방식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자세는 그의 글이 아니라면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박권일은 일상에서 간과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어떤 맹점들을 찾아내서 독자에게 들이민다. ‘소셜 맥거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권일은 “국익이나 공익을 빙자해” 출현하는 소셜 맥거핀이 “숭고한 내적 동기”를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해 “진심이 만들어낸 가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심정 윤리’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박권일이 냉혹하게 지적하는 이런 문제들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어떤 합의점을 형성한다.
박권일은 이와 같은 합의점들을 깨트리고자 글을 쓰는 것 같다. 알고도 침묵하거나 아니면 몰라서 넘어갔던 문제들을 다시 호명함으로써 박권일은 사유하지 않는 사회를 질타한다. 물론 이런 질타는 일방적이라기보다 일정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담긴 삶’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그의 ‘잡감’이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자라난 것인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자기소개서라는 글쓰기 형식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상품화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자기소개서는 읽기에 민망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상대방의 시선에 맞춘 자기 자신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에 담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품화에 대해 회의하는 주체일 것이다. ‘상품이 아닌 서사’를 작성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정치적 기획일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주장에 깔려 있다. <소수의견> 자체가 이렇게 ‘다른 생각’을 권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서 사유를 길어올릴 수 있는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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