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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불만…이택광 외 지음

 

[책과 삶]‘반 MB’라는 이유로 우파로 여겨지지않는 ‘새로운 우파’의 해부 (경향, 김종목 기자, 2012-08-03 20:33:14)
우파의 불만…이택광 외 지음 | 글항아리 | 240쪽 | 1만2000원
책을 기획한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말처럼 비록 보수주의를 표방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일지언정 “실제로 좌파보다 더 많은 변화와 혁신을 도모”했다. 새로운 우파의 등장으로 좌·우파 개념을 정리하고 분류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자본이자 이윤 추구라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정체성과 본질은 희석된 채 “변화와 혁신을 위해 헌신하는 스티브 잡스 같은 CEO의 모습은 자기계발의 모범이 되었”다.
한국의 좌·우파나 진보·보수의 구분은 서구보다 더 힘들다. 중간계급은 보수화하고, 노동·진보운동은 퇴조한 상황이다. ‘MB 대 반MB’ 같은 정치 구도는 좌·우파와 진보·보수의 경계를 더 모호하게 만든다.
6명의 지은이들은 좌·우파가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새로운 우파의 출현’에 주목한다. 전통적인 수구 또는 보수 이외의 ‘다른’ 우파다. 지은이들은 지금 한국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반MB’라는 이유로 우파로 여겨지지 않는 ‘다른 우파’를 불러내 우파로 부르는 ‘정명(正名)’을 시도한다. ‘다른 우파’는 수구·보수라 부르는 우파나 현 체제에 불만을 쏟아낸다. 스스로 ‘진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들이 보기에 ‘다른 우파’의 불만과 이데올로기는 우파의 보수주의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택광은 그 불만을 이렇게 설명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우파의 도덕이다. 이런 도덕적 가치가 흔들린다고 판단할 때, 우파는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파의 불만이 좌파들의 성찰 지점이다. 이택광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라고 받아들인 이념 상당 부분이, ‘소비할 능력’과 민주주의를 뒤섞은 ‘소비자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소비자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가치를 정점으로 하는 중간계급의 진보주의를 “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으로 읽는다면, 이들의 입장이 보수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확장을 위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중간계급이 지지하는 사상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은 아무리 급진적으로 보더라도 진보적 자유주의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을 연민하면서도 그 처지를 혐오”한다. 이택광은 영화 <도가니>의 대중 반응에서 “권력 남용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라기보다, 변태적 범죄의 제거라는 치안사회에 대한 요청처럼” 보이는 현실을 분석한다. 영화가 발 딛고 서 있는 토양은 결국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신보수주의라는 말이다.
정치비평가 김민하는 “우리의 인식을 규정하는 정치적 관점의 틀이 우파와 좌파의 대립이 아니라 우파와 반(反)우파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MB 대 반MB’ ‘독재 대 반독재’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 같은 대립구도 속의 반우파는 우파가 아닌 것인가. 김민하는 민주당이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인 ‘메가뱅크’ 육성 구상이나 독소조항을 문제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기원이 참여정부라는 점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 “우파 대 반우파의 대결이라는 것은, 선과 악이라는 신화적 대결이라기보다 동일한 이념 위에서 국가 정책의 완급에 대한 의견이 다를 뿐인 어떤 분파들의 불화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문화비평가 최태섭은 이른바 사회지도층과 부자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귀족적 열망으로 분석한다. “탁월함과 비범함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색채를 띠더라도 상관없다. “부자들의 지위에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최고조에 이른 대중의 인문학 열풍에서 “공정사회, 정의, 공감, 소통과 같은 주제가 지시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확립”이라고 말한다.
인문학 열풍이나 멘토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와 떼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문화활동가 박연은 멘토 현상 속에서 세련되고 친근한 모습으로 잠복한 우파 논리를 끄집어낸다. “멘토는 자본주의의 ‘자’자도 꺼내지 않고서 최첨단 자본주의에 걸맞은 능동적인 자기계발의 주체들을 길러낼 수 있다.”
제3시대그리스도 연구실장 김진호는 ‘기독교 우파와 신귀족주의’란 글에서 소망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중산층적 웰빙 취향과 보보스적 삶의 패턴을 분석한다.
박권일은 반이주 담론에서 냉전적 사고방식에서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에는 매우 민감한 기층우파를 분석했다. 기층우파에서 서유럽 극우와 닮은 네오라이트 출현 가능성도 짚고 있다.
‘새로운 우파’에 대한 지은이들의 성찰과 문제의식은 좌·우파를 가르는 기준이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입장과 태도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우파는 부드럽고 세련되며 때로는 자본주의와 기존 질서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지만, 전복과 체제 전환을 도모하지 않는다. 계급과 노동, 생태 문제에 대해서도 물러나 있다.
‘새로운 우파의 출현’에서 좌파들은 자유롭지 않다. 좌파들은 앞서 계급과 노동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은이들은 “오늘날 중간계급의 욕망에 끌려다니”고, “좌파가 내세워왔던 변화와 저항의 흐름이 중간계급의 교양으로만 소비”되는 좌파의 현실을 비판하고, 대화의 열정을 촉구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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