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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논의 관련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816142357
노동자의 경영 참여,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프레시안,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2012-08-16 오후 3:31:09)
[김윤태 칼럼]<2>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부각했다. 지난 7월 22일 참여연대와 우리리서치가 조사한 '경제민주화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0.1%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현재 경제민주화의 쟁점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서두른 대기업 위주 정책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촉발했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단가를 후려치고, 슈퍼마켓과 빵가게로 동네 상권까지 위협하자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 이제 모든 경제문제의 근원이 재벌의 탐욕 때문인 것처럼 공격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한국 재벌의 탐욕은 가공할 수준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부유층은 특권적 신분이 되었고, 소수의 특권층이 대물림을 하고 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벌 2세, 3세가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기업을 물려받고 있다. 미국의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을 망치게 된다"고 말했지만, 한국에서 재벌의 세습은 우수한 유전자를 세습하는 것처럼 당연한 논리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선출되지 않은 재벌의 힘은 국가 정책을 좌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20세기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국가
지금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쟁에는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18세기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사유재산과 경영자의 권력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19세기 유럽의 노동조합운동의 경제 민주화 요구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국유화를 지지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페이비언협회를 주도한 시드니 웨브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결과는 정치조직뿐 아니라 부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 통제"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 반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다른 사회민주주의라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대신 철도, 전력, 통신 등 주요 산업만 국가소유 또는 공공소유로 바꾸었다. 사적소유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혼합경제(영국), 사회적 시장경제(독일), 기업자주관리(유고슬라비아), 임노동자 기금(스웨덴) 등 다양한 논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국가'가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독점자본의 사적 소유가 가장 집중되었지만, 가장 평등주의적 복지국가를 유지했다.
어떻게 경제자유화가 경제민주화로 변신했는가?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재벌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부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정부는 단계적인 경제 자유화 정책과 함께 재벌 그룹의 가족 지배와 경제 집중을 제한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이 때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도입한 경제 자유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재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그 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도 집권 초기마다 재벌들의 기업 확대와 족벌 경영을 약화시키기 위해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기업 공개 등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치적 수사와 달리 재벌의 경제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그러자 1990년대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등장하면서 재벌 개혁은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제기한 경제민주화 요구 역시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민단체가 재벌 개혁의 모델로 참고한 것은 1930년대 미국의 독점규제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김재익의 경제자유화 이데올로기는 시민운동에 의해 경제민주화로 둔갑했다. 188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지배했던 대규모 기업합동집단(트러스트)은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연방정부의 조세개혁을 통해 해체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부를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산업구조조정을 비롯한 뉴딜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러스트가 해체되면서 주식시장을 통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대규모 은행과 투자은행, 사모펀드가 사실상 대기업을 통제하면서 미국은 주주 권리, 이윤 중시 경영을 강조하는 주주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이러한 경제모델은 정부와 거대 은행이 함께 대기업을 통제하고 노동조합, 소비자,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유럽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매우 달랐다.
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논리가 재벌개혁을 주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재벌개혁을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는 상당수 시중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고 대우, 삼미, 해태 등 다수의 재벌그룹을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이 당시 많은 시민단체는 재벌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주요 재벌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나타나 '총수 경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소수의 주식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챙기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재벌 총수의 기업 지배를 개혁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주 가치를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은 미국 월가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여 재벌 대기업을 공격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당시 재벌의 불법 상속과 세습을 비판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순수한 동기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선한 도덕적 의지와 달리 구조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외국자본은 더 많은 주주 배당을 요구했다. 주주 가치를 실현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당연한 노력일 것이다. 이에 따라 재벌 대기업은 새로운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의 노력은 줄이는 대신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재벌개혁론은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이 되었다.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이론은 한국에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부 시민단체의 노력을 통해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경제민주화는 지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경제 민주화 논쟁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1960년대 이후 서구와 북미의 경제에서 경제 민주화의 쟁점은 작업장 민주화, 산업 민주주의의 확대, 노동자의 경영 참가 등이다. 노동자 기업, 협동조합, 종업원 주식소유 제도(ESOP) 등 다양한 노동자 소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시에 이윤 배분제와 같은 소득 배분 참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위한 공동결정제도, 노동자의 기업 이사회 참여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실현되었다. 이렇듯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다양한 정책 대안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매우 제한적이다.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금산 분리 등 주요 정책과 제도 개혁의 방향은 주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어떻게 한국의 대기업이 장기적 성장동력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지, 어떻게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고 우수한 인적자본을 강화할지,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지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재벌 총수 일가가 물러나고, 경쟁을 강화하고, 투명성이 커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민은행처럼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고, 현대모비스처럼 비정규직 채용만 늘리고, 쌍용자동차처럼 해외자본이 떠나버려도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한했다. 재벌 대기업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새로운 참여적 발전모델은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조직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대기업도 노동조합, 소비자, 시민사회조직과 갈등적 관계가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서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을 추진하는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종업원지주제, 노동조합의 이사 선임,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통한 산업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복지국가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요구하라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불법 상속 엄벌과 같은 개별 제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유형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이다. 현재의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를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로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라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민생과 연결된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상공인과 서민이 공감하는 불공정 하도급,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사회보험 확대 등이 부각되어야 한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의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이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식 경제체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작동하는 경쟁, 효율성, 투명성의 원리가 곧 바로 사회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지지한다고 해서 사회통합의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 대신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를 주목해야 한다. 정부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사협력 체제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필수 요소이다.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해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생산성과 평등주의적 복지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복지국가를 통해 효과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실행하고,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사회적 타협을 추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노사간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기업의 주주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김윤태의 '한국의 재벌과 발전국가: 고도성장, 독재, 지배계급의 형성'(한울출판사, 2012년 출간예정)에서 인용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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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2335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는 없다 (월간 사회운동 2012년 7-8월호 | 통권 107호, 박상은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그를 둘러싼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 대한 비평
이제 와서 서평을 쓰기에는 상당히 늦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대담을 담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선택』)가 지난 3월에 출간된 이후,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서평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이를 계기로 경제학자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프레시안》에서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이라는 이름으로 장하준 그룹과 이를 비판하는 이병천, 정태인 등의 논쟁을 연재하고 있다. 《프레시안》뿐만 아니라 《레디앙》, 《한겨레21》에서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논쟁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 『선택』과 이를 비판하는 재벌개혁론의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이들의 글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재벌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주장의 폭은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양상이다.
대결의 두 축은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이다. 한쪽은 ‘재벌 가문과 우리 사회가 타협해 경영권을 보장하는 법적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주되, 노동이나 복지, 세제 등에서 재벌의 양보를 얻어내자’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재벌 개혁의 부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경제 기본질서의 파괴’가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삼성 동물원 상황을 극복하는 재벌개혁’을 무엇보다 먼저 수행해야 할 과제로 본다.
재벌의 착취와 수탈에 시달리는 당사자이자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대체 이 두 축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둘 중 그 어느 것도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재벌의 착취와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한다. 이 글은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재벌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를 제안하기 위해 『선택』과 그를 둘러싼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 대해 논평한다.
『선택』: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
『선택』은 시종일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 온 재벌 개혁은 민주화 운동의 외양을 띠고 있었지만 노동자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재벌개혁론자들이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를 ‘경제민주화’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진보진영이 은행을 재벌에 파는 것은 반대했지만, 해외매각은 그냥 두고 보거나 오히려 환영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이명박과 김대중-노무현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마치 김대중-노무현으로의 회귀가 한국사회의 대단한 진보인양 호도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선택』은 경제민주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가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위기와 국민들을 수탈하는 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꼽는다.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의 착취도, 비정규직 문제도, 고용없는 성장도,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것도 모두 주주자본주의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주주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거의 비슷한 용어로 사용된다. 이들의 용어법에서, 금융자본주의는 금융이 실물보다 우위에 선 자본주의를 가리키고, 주주자본주의는 이러한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주식 투자자들의 이익 극대화를 기업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조류를 가리킨다. 또한 이들은 김대중-노무현과 이명박 정부의 차이를 좌파 신자유주의와 우파 신자유주의로 나누어 설명한다. 좌파 신자유주의는 노무현·클린턴·블레어의 신자유주의로, ‘공정한 시장질서’를 강조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시장 독점을 경계하고 기업집단에 적대적이며 금융시장 자유화를 강조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대목에서는 멈칫거린다. 우파 신자유주의라 부를만한 경향은 이명박·레이건·대처의 신자유주의로, 노동시장의 완전한 유연화를 주장하고, 독점 대기업도 용인한다.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주주자본주의는 IMF를 통해 도입되었는데, 재벌 가문은 자신들의 경영권 수성을 위해 주식 펀드들과 일종의 타협을 했다. 그러나 『선택』은 재벌이 국가의 기간산업을 책임지고 있고, 신사업 투자도 재벌밖에 할 수 없으므로, 국민경제에 유효한 측면이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을 키워낸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에서 본받을 점이 있다고 본다. 이들이 볼 때,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재벌 해체는 답이 아니다. 대신 이들은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함으로써 재벌 가문에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는 대가로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에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재벌과 주식 펀드들과의 타협을 재벌과 국민과의 타협으로 돌리자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건설될 복지국가는 단지 분배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 대안을 의미한다. 복지국가는 단지 최빈곤층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가 재교육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 고도화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은 연대임금을 통해 한계 기업들을 정리하면서 국가 전체의 산업고도화를 이루어 낸 스웨덴을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또한 이들은 복지국가 운동 자체가 재벌 대기업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에, 복지국가 운동과 경제 민주화 운동이 따로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노동자운동의 역할도 강조한다. ‘노동 있는 복지’가 가능하려면 강력한 산별노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산별노조는 노동자운동에만 맡겨둔다고 건설되지 않고 국가가 나서야만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에 안주하며 말로만 산별노조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면 정말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까? 재벌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민들의 여론에 쉽게 압박받을까? 퇴출된 노동자를 재교육시켜 새로운 산업에 투입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바람직한가? ‘이해당사자’의 한 축으로서 산별노조를 정립하는 것이 민주노조가 지향해야 할 방향인가?
이병천, 정태인: 재벌개혁은 복지국가로 가는데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
이러한 『선택』의 주장에 대해 이병천과 정태인은 ‘재벌옹호론’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선택』은 재벌이 마치 주주들에게 억압당하는 것처럼 말한다. 가령 “주식 투자자들이 ‘왜 지난해보다 이윤이 줄었냐’ ‘왜 배당을 덜 하냐’ ‘회사 주가가 어쩌다가 내려갔냐’고 떠드는데, 대기업들이 하청 기업이라고 봐 줄 수 있겠냐”라거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국제 금융 자본이 만들어 놓은 주주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적대적 M&A 위기를 피하려고 미리미리 알아서 챙기는 거다”라는 식이다. 또 『선택』은 외국자본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국내자본은 여론이나 정치권이 압박하여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본다. 이런 대목에서는 저자들이 이윤 최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자본의 기본적인 성격이라는 사실을 과연 인식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 점에서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태인의 지적은 타당하다.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해법의 기본은 재벌과의 ‘빅딜’이 아니라 재벌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병천으로서는 『선택』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 장하준 등이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주자본주의’라는 규정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한다. 1997년 이후 한국기업이 주주가치 추구 경영으로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경제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같이 금융분야에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고 월가와 같은 금융권력도 없다. 오히려 제조업의 위상이 강화되었으며, 높은 사내유보율과 지분법 이익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재벌체제의 특성이 존속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냉전 반공주의 개발독재체제의 역사적 유산 위에 올라타면서 생긴, ‘잡종형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병천은 『선택』이 박정희의 발전국가론을 옹호하는 것에 대해서 특히 심혈을 기울여 비판한다. 그는 이들이 냉전 반공의 정치·경제 체제로서 한국의 개발독재가 얼마나 억압적인 노동규율에 입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박정희 체제에는 국가의 재벌 지원에 따른 성과규율과 함께 노동규율도 작용했다. 억압적 노동규율이 재벌주도 고투자를 가능케 한 계급적 조건이었는데도, 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병천은 복지국가 발전체제로 가는 경로에서 대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한 스웨덴보다 중소기업 천국인 덴마크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의 재벌이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 인식 속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재벌과의 타협 상대가 되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어려워지고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태인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한국에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기도 하거니와,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 기업의 수탈에 있어서 국내외 주주 집단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과 금융화
그러나 『선택』의 저자들이나 그 비판자들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오류가 있다. 통상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 민영화 등으로 이해된다. 『선택』도 이와 유사하게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사실 신보수주의의 표어다. 레이건·대처가 대표하는 신보수주의는 ‘정책의 무력성’을 강조하지만, 클린턴·블레어가 대표하는 신자유주의는 ‘정책개혁’을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동반하는 근로연계 복지, 완만한 인플레와 유연한 화폐정책, IMF 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경제개입 옹호 등을 특징으로 한다. 『선택』이 노무현(클린턴·블레어)과 이명박(레이건·대처)을 좌-우파 신자유주의로 구분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하에서 거시경제적 관리라는 국가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선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 국가주의적 정책을 제시한다.
이병천은 ‘주주가치 추구와 재벌 체제의 공생’을 이야기하면서 한국경제가 금융화했다는 진단을 유보한다. 그러나 한국의 GDP대비 주식시가총액은 1987년 40%대에서 2005년에는 80%를 넘어섰고, 주식시장의 활동성은 미국 다음으로 높다. 또한 제조업의 금융적 투자자산 대비 유형자산의 비율도 외환위기 전 20% 미만에서 외환위기 이후 37%이상으로 높아졌다. 기업의 영업이익 중 배당금으로 지불한 크기 역시 점점 증가 중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식시장을 통해 외국인이 재벌을 지배하는 것이다. 도합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경우 외국인이 각각 40-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선택』이 쌍용자동차에 대해 ‘무더기 정리해고는 재벌이 저지른 게 아니라 재벌 해체로 인해 불거진 비극적 사태’라고 진단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완전히 잘못 파악한 것이긴 하지만, 기업이 국외로 매각되면 ‘먹튀’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국부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병천은 금융의 자유화와 세계화를 통해 노동자들이 애써 생산한 잉여가치나 국부가 유출되는 메커니즘을 강조하지 않는다.
『선택』의 주저자인 장하준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로 인식한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구조적인 위기이다.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여 금융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출현했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대해 반작용한 결과다.
한국역시 이윤율이 1979-1980년과 1997년 외환위기 시기 급락하였는데, 이는 세계 구조적 위기 정세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우선 1979-1980년 불황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거시적 안정화, 미시적 구조조정’을 기조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출현한다. 사실 재벌의 대마불사라는 말은 이 시기에 생겨났는데, 당시 재벌의 저항으로 이러한 정책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재벌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거나 3저 호황으로 인해 그 필요성이 사라지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자본은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여 고정자본 증대를 통해 이윤량을 증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과잉중복투자를 야기하여 1997년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외환위기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1997년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과도기에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하는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각종 금융 자유화 조치에 동반해서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재벌개혁을 진행했다. 이른바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하려는 목적이었다. 재벌개혁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증가와 같은 노동신축화로 나타났다.
위기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선택』은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실물경제 부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이전의 여러 제도를 해체한 것은 맞지만, 그 중 일부를 부활시킨다고 해서 현재의 경제위기가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케인즈주의적 금융억압은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처럼 금융을 억압하면 실물경제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는 가정은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간과한다. 『선택』의 주저자인 장하준은 자본주의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비교하여 더 나은 자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유형을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조정된 시장경제’로 구분하면서 금융자본주의로 귀결된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옹호한다. 조정된 시장경제에서는 국가가 케인즈주의적 정책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장을 조정하기 때문에 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하준이 특히 박정희의 발전국가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과거의 발전국가 모델을 재현하여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발전국가나 북유럽의 복지국가가 미국 헤게모니의 확립과 위기 속에서 형성, 변화한 역사적 맥락을 간과한다. 1970년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발전주의는 냉전 체제 하 미국의 역개방정책에 의존해서 성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냉전 체제의 이완과 미국의 경상적자 누적으로 역개방정책이 철회된 이후, 한국은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했다. 동시에 복지국가도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됐다. 따라서 지금 발전국가로의 복귀를 통해 스웨덴 모델로 진보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 스웨덴 모델이 형성된 배경에는, 스웨덴이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제휴라는 조건 외에도 1-2차 세계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이후 강력한 수출지향 공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천은 『선택』과 달리 박정희의 발전국가를 비판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덴마크 모델이 한국적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에서 성장기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유럽의 코포러티즘은 장기 불황과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되었다. 김대중-노무현의 코포러티즘은 실상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강제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재벌의 성장과 착취의 심화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고 상품 실현 경로가 불확실해지면서 재벌은 생산을 통한 가치창출로 수익을 획득하던 기존의 방식을 변화하여 가치이전, 즉 다른 곳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신의 몫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보다 강조하게 되었다. 잉여가치의 이전전략에는 부등가교환 강화와 금융수익 추구가 있는데, 한국의 재벌은 특히 부등가교환 강화, 즉 종속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기존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단가인하 등의 통제를 강화한다.
재벌은 『선택』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주주자본주의와 사이좋게 잘 지내려다 보니 비정규직 늘리고, 하청 단가 낮추고, 노동자와 중소기업들 희생시키는”것은 아니다. 재벌의 하청계열화는 비단 주주의 이해에 부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적 평가절하’에 치중하는 한국 특유의 착취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선택』은 “한국 경제가 IMF를 빨리 수습한 건 1998년부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수출이 크게 신장되면서 외환 보유고가 늘었기 때문”이며, 규모의 경제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구조조정 및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성장전략이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한다.
경제위기 상황으로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이어지던 2009년 현대차는 창사 이래 가장 큰 수익을 올렸다. 2009년 매출은 전년에 비해 1% 가량 감소했지만,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 인하와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의 해고를 통한 과감한 비용 절감으로 영업이익을 19%나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차와 같은 재벌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한 걸음 더 발전했다.
한국의 재벌 체제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계열화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주주들의 영향을 줄이고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재벌이 중소기업을 생각하고 비정규직을 고려하여 위계화된 하청계열화 구조를 개선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재벌은 2007-20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소부품업체와의 부등가교환을 통한 가치이전 전략이 자신들의 배를 불릴 핵심적인 경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재벌은 이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주장대로 재벌 체제를 유지하면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벌체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으로 맞서야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면 재벌이 사회적 타협에 나설 것처럼, 그리고 정부는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편에 설 것처럼 생각하는 『선택』의 저자들은 노동자들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의 객체로 인식한다. 게다가 산별노조를 국가가 나서서 강화하라고 하는 주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과 투쟁으로 자본과 국가와의 세력관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민주노총을 대기업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 치부하고 시민사회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병천과 정태인도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노동자가 사회적 타협의 한 주체로 등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선택』은 노동자들에게 사회적으로 합의를 하라, 그렇게 하면 복지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지금보다도 훨씬 안정된 삶을 제공해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모범사례로 삼는 스웨덴의 강력한 노동조합-사민당 제휴는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제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는 계급타협을 추구했다. 더욱이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세계 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여타의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으며 변질되고 있다. 계급타협은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지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제 대기업과 타협해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 ‘계급’은 노동자들의 일부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시작된 지점이 다를 뿐, 스웨덴과 한국은 계급내부의 분할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한국 노동자운동의 목표일 수 있는가?
『선택』의 저자들이나 그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재벌과의 타협이나 재벌의 개혁을 통해 복지국가가 실현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재벌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기반으로 한 한국경제 성장전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때, 재벌체제에 대한 도전은 격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선언을 되새기며 재벌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자. 그 시작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차이를 넘은 원하청 공동투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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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독이 되는 재벌개혁론 (매노,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2.07.11)
올해 대선 쟁점 중 하나는 재벌개혁에 관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순환출자규제·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 소수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총수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도급 관련 제도를 개정하고, 불공정거래에 관한 고발권을 확대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것이다. 각론에 따라 여러 방안들이 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총수의 경영권에 관한 문제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에 관한 문제 두 가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의 재벌개혁 방안으로 과연 노동자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먼저 재벌총수의 경영권 문제. 재벌총수가 지분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주주들이 지분만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드러난 미국 두 자동차 기업의 엇갈린 운명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지분에 따른 경영권이 가장 잘 구현된 기업으로 평가받는 지엠(GM)은 파산에 이어 정부 구제 금융을 받았다. 반면에 한국재벌과 비슷하게 소수지분으로 오너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포드는 정부 구제금융 없이 경제위기를 견뎌냈다. 두 기업이 세계경제위기에 다른 길을 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영방식이었다. 지엠의 경영진은 90년대부터 주주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자동차생산과 개발보다 단기적 수익이 많이 나는 금융투기에 열중했다. 주주들이 선임한 전문 경영인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년 고용은 줄였고, 배당은 늘렸다. 포드 역시 미국 경제 전반의 금융화 속에 금융투기를 늘렸다. 그래도 지엠보다는 주주들의 단기적 요구에 좀 더 거리를 뒀다. 주주들의 조급한 이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오너 경영체제가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일부에서 마치 재벌총수 경영체제를 주주들이 임명한 전문경영 체제로 바꾸면 경제적민주화가 이뤄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오히려 퇴보에 가까웠다.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과 기업파산이라는 재앙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개선 방안. 이 역시 얼핏 타당해 보인다. 실제 많은 중소기업들이 매년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1차 부품사들이 좀 더 원청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고 해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조건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하청거래의 가장 진일보한 입장이라는 이윤공유제를 보자. 이윤공유제를 실시하고 있는 브라질 헤센데 지역의 폭스바겐 부품사 사례를 보면, 부품사들은 공유할 이윤을 크게 늘리기 위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했다. 정규직 고용을 부품사들이 오히려 상호규제하기까지 했다. 한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해 노동비용을 높이면, 모든 기업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예는 많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현대차 1차 부품사 430개 사의 상황을 보자. 이들의 지난해 평균매출액은 경제위기 전인 2007년에 비해 47%, 영업이익은 63%가 늘어났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 역시 3%에서 3.4%로 상승했다. 현대차 성장에 따라 매출액이 크게 늘었고, 현대차의 거래조건이 예전에 비해 약간 좋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 비해 1차 부품사 생산직 전체 노동자 임금총액은 단지 20%만 늘었다. 생산 증가에 비해 임금증가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생산 증가의 상당수를 외주화,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임금총액 증가가 12%에 불과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총액으로 보면 무노조 기업의 생산직 임금총액은 2007년보다도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1차 부품사들에 대해 아예 노골적으로 노동 배제적 이윤 공유를 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은 삼성전자로부터 자본 투자도 받고, 해외진출 시 부지와 공장 건설에 관한 협조도 받는다. 납품가 역시 신제품 출시 때마다 곧잘 올려받고 있다. 원·하청 상생의 모범이라 할 만한데, 이 기업의 노동자들은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당연히 노조는 꿈도 못 꾼다.
한국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방안은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현재 많은 재벌개혁론은 겉만 진보일 뿐 속은 오히려 자본 편향적인 것들이 많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진보정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예로 보면 원·하청 거래 개선으로 자본이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이득이 노동자에게까지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원·하청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과 1차 부품사의 노동 배제적 이윤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처해 있는 현실에 입각해 재벌의 사회적 통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이야기되는 이러저런 재벌 개혁론에 뒤꽁무니를 좇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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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 (프레시안, 성현석 기획취재팀장, 2012-06-25 오전 10:54:45)
[데스크 칼럼] '한국경제 성격 논쟁', 아쉬운 대목들
세계관, 가치관은 현실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게 옳다. 물론, 이 과정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소신의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자세다. 글머리에서 예로 든 이들이 볼썽사나운 이유는 자신들의 극단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가 워낙 옹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변절, 성찰이 있는 변절은 깊은 감동을 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프레시안>에선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기획이 진행 중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등의 주장이 한축이다. 또 이들이 비판대상으로 삼는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축이다. 재벌개혁,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 산업정책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상당한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한국 경제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점을 높이 사는 독자들이 많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해당 지면을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의 문제제기는 크게 새롭지 않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지적했듯, 이들의 문제의식은 2001년 발족한 대안연대회의 활동 속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이들의 비판 대상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를 중심으로 소액주주운동을 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과거 대안연대회의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과 상당부분 겹친다. 물론, 새롭지 않다는 게 꼭 비난받을 점은 아니다. 과거의 논쟁을 현실 속에서 다시 조명하는 게 필요한 때도 많다. 어차피 역사란 중요한 쟁점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논쟁이 태동한 2000년대 초와 지금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 위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외국에선 숱한 사회과학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예컨대 클링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미국 민주당의 이데올로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2008년 이후 확실히 좌회전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출간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전작인 <슈퍼자본주의>, <부유한 노예> 등과 확연히 다르다. 어찌 보면 '작은 변절'인데, 이런 변절자가 미국, 유럽 등에선 제법 흔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선 이런 변절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아탑 안에만 머물렀던 학자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들은 어차피 현실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현실에 깊이 개입했던 학자들이 현실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도 아무런 생각 변화가 없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현실은 바뀌는데 생각은 그대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그렇게 망했고, 1980~90년대 운동권이 그렇게 망해가고 있다.
물론, 생각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이끌었던 김상조 교수의 경우, 최근 출간한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그간 진행한 소액주주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2008년 이후 전개되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과는 별개 차원이다. 그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반성이었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과잉' 못지않게 '구(舊) 자유주의의 결핍'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읽기에 따라서는 후자를 더 심각하게 본다는 느낌도 받는다. 2008년 이전이라면, 이런 입장이 꼭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적어도 2008년 이후라면,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에 더 치중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김 교수가 강조하는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꼭 구자유주의적 개혁과제라고만 볼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장치다. 기득권층의 로비가 법치와 시장 규율을 조롱하는 장면은 충분히 익숙하다. 삼성 등 재벌이 법을 농락하며 군림하는 상황은 이런 현실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입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 앞에선 조금 한가한 감이 있다. 고름이 터져서 응급처치를 요하는 환자 앞에서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를 멀리 하면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창립 당시 "거대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라고 천명했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돼 왔고, 큰 성과를 거뒀다. 거대재벌 삼성의 급소를 콕 짚어내 압박했던 여러 사례는 관성에 젖은 기존 운동권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과였다. 소규모 시민단체가 재벌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벌여 높은 승소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대담론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된 것 아닐까. 적어도 지식시장에선,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철학서적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 장하준 교수의 저술이 잇따라 화제가 된 현상 등이 그 방증이다. 과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책에 열광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는다. 대중이 보기에, 지금의 세계경제는 재테크 서적의 얄팍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이해하고픈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큰 이야기', '역사적 접근' 등을 다룬 책을 찾아 읽는다.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응답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일은 앞으로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의 실패경험"을 경계하는 논리가 지금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거대담론은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공허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거대담론에 기반한 설명이 필요한 사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이후 강력한 긴축정책을 취하는 한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탕감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1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눈길이 가는 사례다. 그런데 긴축에 반대하는 입장, 또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입장 등 기존의 전형적인 분석틀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가 필요하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처방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지금 필요한 거대담론이다.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앞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전망하는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담론을 원하는 대중에게 때 마침 스케일 큰 논리를 제공했던 그룹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진영의 논리에 비해, 이들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상대적으로 덜 쓰인다. 대중적인 반향이 컸던 한 이유일 게다. 그러나 그만큼, 대중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설명을 할 필요가 따른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재벌 총수가 뭐가 아쉬워서 타협 하겠나"라는 것이다. 물론, 이름 모를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낫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재벌과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연결 짓는 건 비약이다. '재벌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타협점을 찾게끔 압박할 수단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개혁연대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있다. 현행 재벌 지배구조가 지닌 법적 맹점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자유주의적인 개혁 과제를 중시하는 이 단체의 입장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내놓은 입장은 '복지국가 진영의 정치세력화 및 집권', '정치 사회적 압력', '노동조합 강화' 등 막연한 수준이다. 재벌의 로비는 강력한데, 그들을 통제할 힘은 극히 미미한 게 현실이라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보다 구체적인 재벌 압박·통제 장치를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빠진다면, 이들의 주장은 지속적인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역시 독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다. 이들 그룹은 여러 차례에 걸쳐 김상조, 유종일 등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을 비판해 왔다. 소유권에 바탕한 자유주의 논리가 연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에 대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비판은 상당히 소모적이다. 이들이 비판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예컨대 장하준, 김상조 사이의 거리가 주주자본주의를 온전히 지지하는 다른 경제학자와 김상조 사이의 거리보다 과연 멀까. 원고 청탁 및 취재차 만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찾아보면, 이들 집단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지적했듯, 양 측은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주장한다. 현행 재벌 지배 구조가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는 다들 공감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교수는 보험 산업이 복지 강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김상조 교수 역시 삼성생명 등 보험 업계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 왔다.
차이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접근은 논점을 선명하게 하는 데는 이롭지만, 양 측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논의를 가로막는 면도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을 살리는데도 해롭다. 이들 그룹의 대표적인 장점은 협소한 주류 경제학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 접근이다. 예컨대 정승일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서 이 문제에 천착했던 경제학자들에게선 나오지 않았던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하청 관행이 많은 경우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박사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이 하청 업체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문제인데,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경우를 줄이도록 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 정 박사는 여기에 복지 차원의 접근도 곁들인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경쟁력 없는 하청업체는 도산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복지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가능한 해법인데,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이런 접근에서 강점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에선 기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소외됐던 노동운동 진영, 복지운동 진영이 설 자리가 생긴다. 민주노총이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논리적 근거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이고, 변호사와 경제학자들만의 운동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 게 과거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였다. 그렇다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생각이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는 게 옳다.
이처럼 포괄적인 접근은, 다른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의 외면을 낳은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꼭 옳은지는 의문이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이며, 1930년대 공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대학 전공은 수학이었고 박사 학위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력을 대학이 아닌 관청에서 쌓았다. 하지만 지금 경제학 역사에서 케인스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정통 경제학 이론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 이론의 권위가 흔들린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앞에서 가장 실용적인 해법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논쟁이다.
현 정부 들어서 '실용'이라는 표현에 조금 부정적인 어감이 깃들게 됐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적어도 정책에 관한 논의에선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라고 한 것 역시 케인스였다. 경제학자가 할 일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라는 것.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자는 식의 주장은 경제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게다. 구체적 현안을 둘러싼 논쟁에선 늘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실용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기존 입장을 뛰어넘는 경우는 다반사로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변절'이지만, 생산적인 변절이다. 향후 전개될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서 생산적인 변절이 종종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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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양보로 복지국가 건설? 심각한 착각! (프레시안, 정재원 서울대 강사, 2012-06-10 오후 3:18:42)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그들의 논쟁이 탁상공론 되지 않으려면
전반적으로 볼 때, 금융세계화 등 외적 요소를 간과해 온 한국의 학문과 운동 진영의 답답한 풍토 속에서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선생님의 주장은 금융세계화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논쟁의 한 당사자인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오랜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사실은 신자유주의나 (금융) 세계화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서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울 정도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간과해왔던 외적인 요인들이 구체적으로 일국 단위에서 파괴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장하준 그룹의 강조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논쟁의 구도와 내용은 8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라고 한다면, 장하준이 당시에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 이번에는 소액주주운동이 마치 국제금융자본들의 앞잡이 역할을 한 것처럼 강조한 것과 같은 몇 가지 주장의 대변화 정도(?)이다. 어찌 되었든, 전반적으로 볼 때, 서로 논점을 모아가며 해결을 모색하기보다는 각자의 지식과 상식에 따라 각자의 주장만을 나열할 뿐이며,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내용이라는 것도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오독과 왜곡이라는 주장과 그것에 대한 논박이 이어지면서 다소 비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논쟁은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재벌 개혁론에 대해 장하준 그룹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데 반해, 장하준 그룹이 지적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반박하는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점에 대해 과거에 깨닫지 못 했던 점을 반성(?)하는 등 장하준 그룹의 지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괴이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장하준 그룹이 경제민주화론자들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는커녕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논쟁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비판과 반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재벌 체제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요 행위자로 거론되고, 경제민주화가 재벌 개혁으로 축소된 채 서로 논박하고 있는 현재의 논쟁은 사회적 경제 혹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생각하며, 노동(정당, 조합)과 시민사회가 복지 국가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그 개념부터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경제민주화가 재벌 체제 개혁으로 축소되었으며, 도대체 언제부터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요 행위자가 되었는가?
어찌 되었든, 논의를 재벌 체제로 국한하더라도 현재 지배블록의 반동에 의해서 엄청나게 후퇴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복원 및 전진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어떤 명칭을 붙이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일정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논의 구도는 양자 모두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동의했고, 재벌체제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있으니 합심해서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방어 장치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재벌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옳지만, 현재까지는 그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 않고 있다. 필자는 전체적으로 몇 가지 부분에서 문제의 본질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과두지배세력: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의 공존, 정치 엘리트와 관료집단의 동맹
오는 12월 선거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간에, 군부 독재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정기적인 선거를 치러 왔고, 실패한 정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는 등 마치 정당 정치가 안정화된 궤도에 접어들어 민주주의가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공고화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여당의 국정 실패에 대한 국민의 높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민당처럼 여당 내 야당과 같은 착시현상을 국민들이 갖게 하는 데 성공한 당내 분파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도 상당하다. 따라서 현재 많은 진보적인 국민들은 이러한 사태가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설사 야당이 이런저런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집권한 것과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차이를 못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과두지배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집권 정당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지배 블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상당수의 비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한층 더 정권 교체를 무색케 하고, 정당 정치를 마비시키는 거대한 과두지배세력들이 국가를 포획,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국민들뿐 아니라,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지한 관념좌파들은 서로 신자유주의자로 뒤집어씌우고, 대안 없는 급진화를 요구한다.
이렇듯, 세계자본주의 체제 비중심부의 과두지배세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이제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유럽과 같은 '진보 대 보수'로 정치 구도가 빠르게 정비될 것으로 착각했다. 자유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의미를 띠고 있는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진보의 의미도 매우 혼란스럽지만,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보수는 제도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서구의 보수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집단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정당 정치가 잘 작동하기만 하면 정책이 잘 작동할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는 재벌, 관료, 언론, 사회 기득권층들,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이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과두지배세력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하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조직되고 성장해 온 한국의 특권 집단들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단순히 지속성을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국가의 통제를 받는 지배 일분파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꾸로 국가를 포위, 자신의 이익 추구의 도구로 삼는 적극적 지배자로 성장했다. 지구상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지배동맹은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이 제도적으로 가해져 온 서구 중심부 국가에서는 노골적인 지배가 크지 않은 반면, 그러한 제약이 미약한 비중심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글로벌 금융자본과 국가 금융엘리트, 대자본, 정치엘리트, 관료, 언론, 전문가 집단 등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이뤄가며 노골적으로 과두지배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국가의 공적 기능은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다양한 특권집단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들은 소위 민주정부로 일컬어지는 정권 교체 메커니즘과는 상관없이 혹은 별도로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공고화해 왔다. 민주화에 이은 세계화라는 이름 하의 개방화 속에서 재벌들은 국가 권력이 권위주의 시대처럼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보호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들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갖추어 나갔다. 국내적으로도 지배 동맹의 범위는 언론과 각종 정치 엘리트, 관료들, 전문가들, 그리고 이들과 여러 인맥으로 얽혀 있는 각종 사회 기득권 집단으로까지 확장되어 국가는 철저하게 이들에 의해 포획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이라는 위력적인 세력의 침투는 재벌들과의 잠시 동안의 긴장 관계 이후 곧바로 공생 관계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자본은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정도로 경쟁하지 않고 언제나 공생의 길을 찾는다. 현재 국내자본 역시 국제금융자본과 동화되거나 공동행보를 하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은 한국 사회 과두지배 동맹의 주축으로 급속히 성장했다는 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 재벌들의 이해관계와 일치되거나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국제금융자본이 침투하게 되면서 한국의 재벌들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 역시 주주가치 경영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주주를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국제금융자본뿐 아니라 재벌들 역시 자신의 기업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지급하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즉 주주자본주의의 수혜자는 해외 자본만이 아닌 것이다. 주요 재벌 대기업들의 주식분배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주가치 경영의 강화로 이익을 본 것은 외국인 투자자만이 아니라 재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재벌 스스로 자본소유자로서 막대한 자본 축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국제금융자본의 유입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둘러싸고 재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얽히면서 유착구조가 형성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재벌 기업의 경영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자본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경영권 교체로 재벌 회사의 안정성이 떨어져 자신들의 이익 창출 구조가 위험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과 같이 강력한 대자본이 정치력까지 장악한 국가들의 경우 총수 일가의 지배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맹 구조 속에서 재벌들은 국제금융자본의 위협을 과장하며 정부에 더 많은 특혜를 요구했고, 정부는 재벌들에게 더 많이 규제를 풀어 주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특권 과두 지배 동맹 체제는 개발독재식 발전주의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독특한 지배 체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하고 논자들은 엉뚱한 대립각만 찾게 되는 것이다.
세계체제 속의 신자유주의의 다양성
바로 이러한 착각과 무지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와 관련된 국가와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재현되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별해서 가치를 별도로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관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현재의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돌리다 보면, 그 어느 누구도 즉각적인 시장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자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늘 상대를 신자유주의자로 몰아 버리는 아무런 의미 없는 논쟁으로 결말이 나고 만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마치 시장근본주의이며, 국가(개입)에 대해서 적대적인 이념으로 착각하는 분위기는 하루라도 빨리 타파되어야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이 자국의 은행을 국유화한 조치를 들어 '국가가 개입했다'며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한 황당한 논자들이 기억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도 아니며,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국가가 특정 과두 지배 세력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매우 정치적인 기획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유주의는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지역과 국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당연히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라고 보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 자체는 사전적 의미에서 올바르다. 그러나 본질이 그러하다고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든 지역과 국가, 영역 등에서 똑같은 질의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즉 소위 '신자유주의의 다양성'이란 단순 나열적, 병렬적인 다양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신자유주의 체제란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세계자본주의체제 내 지역과 국가에 따른 다양성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든지 발전주의 국가와 결합할 수도 있으며, 토건 개발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는 얼마든지 재벌과 같은 독점 대자본 체제와도 결합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하고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이면서도 얼마든지 서로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재벌인 것처럼 보이는 삼성이나 LG 등은 실제로 여타 반주변부나 주변부 국가에서는 초국적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초국적 엘리트들이 지역 엘리트들과 늘 경쟁관계에 있으며, 전자가 언제나 후자에 우위에 서 있다는 착각은 많은 이들의 논지 전개를 방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히려 외적 요소들에 대한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들이 국내적 맥락과 닿는 지점에 대해 무지한 것은 의외이다. 가령, 장하준 그룹은 한국의 점령하라(Occupy) 운동이 국제금융집단으로 향하지 않고 재벌에게로 향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운동 진영이 국제 금융집단들의 폐해를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재벌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위 '장하준 그룹'의 주장에 대한 비판
장하준 그룹이 제기한 문제들 중에서 본격적인 코멘트를 하기 전에 꼭 짚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즉 장하준 그룹은 상대를 아예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무례는 기본이고,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들, 의도하지도 않은 주장들을 끄집어내고 확대 해석하면서 지엽적인 논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그들이 한꺼번에 묶어 버린 소위 경제민주화 진영은 단일하게 주장을 하는 집단도 아닐 뿐 아니라,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그 내부에서 비판도 많고,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는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예로 들어 그것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시도 때도 없이 이들을 통째로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먼저, 필자가 보기에 장하준 그룹이 경제민주화론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상당 부분은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령,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개혁만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장하준 그룹이 평면적으로 나열한 부분, 즉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노동자공동경영제와 같은 산업민주주의를 이루는 것, 협동조합 경제를 지원하여 국가와 시장이 아닌 사회적 경제를 확장시키는 것,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 등등, 그 모든 단위 속에서 민중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경제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가?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국제금융자본보다는 그 국제금융자본을 포함한 그 국가의 과두지배세력 중 주요 동맹 세력인 대자본이 그러한 세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를 무시하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거의 동의어로 쓸 정도로 재벌 해체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나아가는 데에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재벌 개혁이기 때문에 재벌 해체를 우선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따라서 재벌 개혁들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다른 정책들은 실현 불가능은 아닐지라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경제민주화를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러한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장하준 그룹의 주장처럼 재벌 개혁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은 병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정반대로 복지 국가는 재벌의 양보가 아니라, 재벌 체제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재벌 체제 개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언제부터 재벌이 복지 국가로 가는 길에 있어서 주요 행위자가 되었고, 재벌의 양보가 주요 과제가 되었는지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좌파 정당과 노조가 있어야 자본과의 협상이 가능하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식의 고전적인 어구들만 끄집어 내 나열만 하며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현재, 최소한 복지 국가로 나아가려면 자본과의 타협과 고소득층의 양보는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일반화하는 것만큼 우둔한 짓도 없다. 특히 한국에서 재벌의 양보로 복지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착각은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모른 채 소액주주운동을 추진한 일부 경제민주화 세력의 착각만큼 심각한 것이다.
국가에 대한 부분도 오류가 엿보인다. 장하준 그룹의 주장과 달리, 경제민주화론자들이 '국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국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시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국가의 시장 개입을 거부한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즉, 관치 금융이나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것을 두고 엉뚱하게도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비판하는 것으로 왜곡하거나, 더 나아가 국가를 축소하고 시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주장에 불과하다. 나치와 군사독재 국가의 시장 개입의 룰과 내용, 서구 복지 국가의 시장 개입의 룰과 내용을 국가 개입이라는 같은 틀 속에 놓고 비판할 수 있는가? 따라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박정희식 국가 개입과 자본 통제(그리고 재벌 체제 형성)를 '비시장적' 자본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전히 모종의 비시장적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을 꿨던 시대였다면 모를까, 자본주의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이 부재한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이 '자유주의적 경제 민주화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위에서 본격적인 복지 국가가 된다'는 것이라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리고 장하준 그룹이 주주자본주의의 위협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당혹스럽다. 한국에서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친노동, 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 정책 발전이 그 어떤 국가보다 훼방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 이러한 현상은 대기업집단을 약화 혹은 해체시켰기 때문에, 국제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폭된 결과인가? 당연히 최소한 현재까지는 '아니올시다'이다.
정반대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인건비와 하청단가의 삭감, 청장년층 실업과 빈곤층의 만연'과 같은 현상은 재벌 체제 하에서 양산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재벌은 주주자본주의의 희생물이 아니라, 그 주주자본주의의 한 축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전적으로 주주자본주의 이전 식의 재벌 체제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회경제적 현상들은 재벌 체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하여 이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위기는 국제금융자본과 재벌 양자가 모두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적 자본은 일국 내 타협 기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의 예처럼, 고용과 복지를 내팽개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대자본의 양보와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장하준 그룹의 주장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현재,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한국의 재벌을 개인과 제도로 쉽게 구별 지을 수 있을 만큼 그들이 스스로 구별을 자처할지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다.
또한 복지 국가와 관련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하준 그룹이 주장하는 복지 국가의 강화 자체가 재벌 개혁이기도 하다는 점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언명이다. 누진 소득세 강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고소득 계층이겠지만, 그리고 조금은 재벌에게도 타격이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재벌 체제가 이끌어 온 전체적인 과두지배세력의 지배 구조에는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 의료 복지나 노인 복지가 재벌계 보험 회사들이 주도하는 보험업계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재벌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장하준 그룹이 주장하는 '복지 국가 수준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강력한 누진 소득세' 제도가 쉽게 도입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면 그 저항의 주도 세력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재벌을 필두로 한 과두지배세력일 것이다.
따라서 누진 소득세 등의 도입을 위한 싸움과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특정 형태의 재벌 개혁은 당연히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 개혁과 다른 경제민주화 과제들이 같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본인들은 보편적 복지 국가를 향한 운동(?)을 먼저 한 후에 재벌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정부와 대기업 집단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 긴요하며, 그래야만 참된 경제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은 비중심부 국가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며,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과 국민의 성숙도로 볼 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경제 발전 수준과 국민의 성숙도로 볼 때 곧바로 스웨덴식 복지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 자체도 황당하지만, 그 '민주성'에 대한 치밀한 문제의식 없이 국가와 대기업 집단의 존재가 복지 국가의 토대라고 주장하는 정승일 등의 주장은 (재벌 문제에서) 개인과 제도를 구별하자는 주장만큼이나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대안으로 제시된 부분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령, 주주자본주의의 규제 대안으로 제시된 창업자나 경영자들에게 1주 10표를 주자는 주장이나 황금주 제도의 도입 등은 일국 내에서 부분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어도 결단코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한 국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으며,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 조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정태인 원장의 주장의 이면에는 동시적인 국제적 규제가 없다면 건전한 투자자까지 포함한 그 거대한 자금이 특정 국가로부터 물밀듯이 빠져나가 국민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러한 규제가 없는 국가로 몰려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토빈세를 한국만 도입할 경우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장하준 그룹의 이러한 일부 대안과 같은 규제는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과 그 이후를 전혀 바라보지 못 하는 매우 허술한 주장이다.
양 진영이 단점 보완해 공동의 대비책 마련했으면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의도했든 아니든 장하준 그룹은 사실상 재벌 체제의 온존을 강변하고 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한국 재벌 체제 유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그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으로 논지를 확장시키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시 경제적 지표상으로는 10위권에 육박하고 있고, 국제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어 이미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 국가군에 진입해 있나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정치, 경제적 발전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그 핵심에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과두지배세력의 지배가 있으며, 그러한 지배세력들 중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은 대립하여 공멸하는 길보다는 동맹관계를 맺으며 공생하고 있다. 제도로서 재벌 역시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는 특히 더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주요 행위자이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속 국제금융자본의 위기 탈출 전략의 변화와 대선으로 인한 과두지배세력의 재편과 지배 양식의 변화가 예상되는 현재, 장하준 그룹이 강조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주주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원이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의 공격을 방어해 줄 구원자로 이미 국제금융자본과 동맹하고 주주자본주의의 일원이 된 재벌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복지 국가 건설의 주역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급진적이기만 한 관념론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주장은 '진보의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금융/재벌 자본의 지배 동맹을 깰 수 있는 이론과 정책들을 합심하여 창출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소중한 주장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필자의 바람은 양 진영이 대립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잘 살려 서로 단점을 보완하고 공동의 대비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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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다" (프레시안,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2-04-17 오전 10:38:21)
[시민정치시평] 금융민주화의 최대의 적은 거대 금융권력
금융민주화는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금융민주화 논의는 경제민주화에 한참 뒤쳐져 있다. 재벌개혁이 핵심인 경제민주화 논의의 연장선에서 재벌소유 비은행 금융계열사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금융산업의 중심축인 은행산업에 대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재확인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경제적 권력의 집중과 권력관계의 비대칭에 대한 경제민주화의 문제제기를 금융영역으로 확장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개혁 이후 국내 은행산업은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금융민주화를 거론하려면 우선 금융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시장권력으로 등장한 은행산업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없다. 소수의 대형은행이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지주회사의 지붕 아래에서 대마불사의 안전판에 기대어 "땅 짚고 헤어치기"가 가능한 과점시장이 국내 은행산업의 현주소이다. 최고의 이익집단으로 꼽히는 금융감독당국이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이익공동체를 이루어 금융권의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은행지주회사의 특권적 과점권력을 키워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부끄러운 낙인을 떨쳐내지 못했다. 가장 가깝게는 10조원을 훌쩍 넘긴 은행권의 순익에도 불구하고 2008년 말 제2의 외환위기 공포를 불러온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 또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부동산시장 몰락과 가계부채 시한폭탄 공포의 한복판에 은행이 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에 은행산업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사전소유규제 덕분에 재벌의 손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유일한 산업부문인데다가 관치로 맺어진 재벌과 은행의 유착관계는 끊어진지 오래된 탓에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또 정치권의 민생 챙기기 말잔치에서도 국내 대형시중은행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형시중은행은 금융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서민층과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출은 재산, 소득, 직업에 따라 결정되는 신용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 여신시장은 대출자의 신용등급에 따라 서열화된 3단계 위계질서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영업 전략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소수의 대형시중은행이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전략은 고신용등급의 VIP, VVIP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신용에서 신용등급 상위 1-3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6월 말 현재 71.3%이며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5.2%에 불과하다. 즉 이미 주택을 소유한 고소득계층은 손쉽게 은행 빚을 얻어 제2, 제3의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다른 재테크 기회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저금리와 수수료 면제 등 온갖 혜택이 제공된다.
반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시중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기이한 이름의 온갖 재테크용 파생상품과 변액연금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상품 판매는 대출 중심의 전통적 은행업의 대안으로 시중은행이 사활을 걸고 있는 수익창출 전략이다. 시중은행은 타 금융권보다 훨씬 우월한 지점망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각종 투자상품의 위탁판매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전국을 휩쓸었던 펀드 광풍에서 이미 입증되었듯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투자상품의 대중화에 은행창구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투자상품의 손실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로 금리위험을 모두 대출자에게 떠넘겼듯이 투자상품 위탁판매는 시중은행에게 파는 만큼 수수료 수익을 보장하는 무위험의 돈벌이다. 오늘의 은행은 과거의 은행이 아니다.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형태로 존재하는 시중은행은 자산이 많거나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사람들, 신용위험이 낮은 기업들을 위한 종합금융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했다.
시중은행의 뒤를 이어 위계질서의 중간단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소위 서민금융기관과 제2금융권의 여신전문업체이다. 그 명칭에 걸맞게 서민층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 대가로 신용등급에 따라 10-40%의 고금리를 요구한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으나 주로 신용등급 4-6등급의 중위계층이 주요이용자층이다.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캐피탈사와 신용협동기구가 각각 26.2%와 26.4%로 비슷한 수준이며 저축은행이 58%로 제도권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여신시장 위계질서의 가장 밑바닥에는 악명 높은 대부업체가 포진해있다. 신용불량자를 포함해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최저층에게 묻지마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 살인적인 금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대부업체 이용자와 대출금 규모가 말해주듯이 대부업체는 국내 여신시장을 떠받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중은행이 고소득자와 고신용등급자를 위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면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는 서민층의 생계자금 조달과 한계채무자들의 빚 돌려막기 수요를 전담하며 한편에서는 상부상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대부업체의 자금조달에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이다. 시중은행의 대출에서 다중채무 비중은 33.3%로 타 업권과의 연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중산층의 신용카드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와는 달리 제2금융권 대출금액의 70%이상이 타 업권과 중복되고 있고, 대부업체의 경우 그 비중이 82%에 이르고 있다. 빚이 더 큰 빚을 부르는 서민층의 빚 돌려막기가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동시에 살찌우고 동반부실 위험도 같이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중심으로 금융권에 빚을 지고 있는 개인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총 1700만 명의 개인채무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13만 명이 '신용 주의' 혹은 '신용 위험' 상태에 처해 있고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공식통계에서만 250만 명에 달한다. 이명박정부의 서민금융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빚 돌려막기를 권장하며 서민층을 더 깊은 부채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서민가계부채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채무조정, 개인회생, 개인파산제도를 과감히 개혁해 부채의 늪에서 서민층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치권은 시장소득의 양극화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대신 부동산이나 주식 등 금융시장의 재테크를 통해 자산소득을 불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왔다. 비록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전략,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명박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은 모두 정부가 앞장서서 불로소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자산증식정책을 부족한 임금소득을 보완하고 불안한 노후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한 것이다. 불로소득 권장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보험상품과 펀드상품, 최근에는 각종 파생상품까지 이르기까지 온갖 재테크 상품을 팔아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시중은행권에 발을 들이기 어려운 저소득계층이나 영세상공인은 금융소외 계층으로 전락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를 감당하며 빚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소득과 직업에 따른 "신분사회"적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는 국내 여신시장이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깊은 골은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피해자보상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한판승부를 벌였던 금융감독당국이 여론을 의식한 선거철 군기잡기에 나섰다. 은행이용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내고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상승의 "합리성"을 점검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금리정책을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그로 인한 관치논란의 후폭풍을 어떻게 피해 가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권의 신경전에서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까? 올해부터 내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46%의 거치기간이 끝나고 만기가 돌아온다. 시중은행이 만기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정부소유 은행의 팔을 뒤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마음에 드는 금리와 대출정책을 민간소유 은행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한다고 은행이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자본확충과 배당자제 요구도 아랑곳하지 않는 국내 은행지주회사는 이제 정부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력한 관치기관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도, 법도, 고객도 가벼이 여기는 철저한 이익추구집단이 되었다.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의 압승에 고무되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KB지주의 연내 합병설이 나돌며 금융권이 술렁인다. 금융감독당국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공룡급 은행의 꿈을 이명박정부 임기 내에 이루겠다고 한다. 이미 현재의 규모로도 대마불사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자산 1위와 4위의 은행지주회사를 통째로 인수 합병시켜 국내총생산의 50%가 넘는 자산규모를 갖는 초대형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은행지주회사의 초라한 규모 때문에 2008년 말 또다시 외환위기의 철퇴를 맞은 것도 아니고 초대형 금융지주회사의 등장이 서민층이 겪고 있는 금융소외의 차별과 고통을 해결해 줄 리도 만무하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된 개념정의는 없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경제적 권력의 불평등한 배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경제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고통 자체보다는 그것의 뿌리인 경제적 권력관계의 불평등을 겨냥하고 있다. 그 핵심은 자본주의적 기업형태가 체현하고 있는 자본권력에 대한 통제이고, 사회전체의 이익과 자본권력의 사적 이익 사이에 균형을 세우는 문제이다. 재벌의 경쟁력이 한국경제의 경쟁력이라는 등식이 경제민주화 요구를 짓밟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면, 금융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금융산업 후진성 탈피라는 명분이었다. 금융후진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버금가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금융발전을 동일시하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재벌기업 못지않은 막강한 시장권력을 행사하는 은행지주회사 4대 천황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시작해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15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왔던 금융정책의 산물이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내 금융민주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가 키워놓은 대마불사 은행지주회사이다. 정부도, 금융감독당국도 통제하기 어려운 그 존재 자체가 사회전체 이익과 대립한다. 2002년 이후 부동산담보대출과 가계신용의 급팽창은 대형 시중은행에게 조 단위의 순익을 가져다 준 일등공신이었다. 은행의 수익률 고공행진 속에 재앙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것이다.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정책 이후 은행권의 수익전략은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와 예대마진 올리기로 방향이 바뀌었다. 힘없는 소비자를 이용해 과점이윤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금융민주화는 사회전체를 볼모로 잡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거대 금융권력에 대한 통제에서 출발해 사회전체 이익에 복무하는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금융정책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금융양극화를 심화하는 더 이상의 권력집중을 막아야 하고 기존 과점권력의 확장도 억제해야 한다. 당장의 수익에 목을 매는 금융재벌은 금융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도 다양성의 보전이 생명이다. 금융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위해 현존하는 민간소유 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 이외에 이윤추구가 일차적 목적이 아닌 비영리적 성격의 사회적 소유 은행이 자라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소유의 거대 금융재벌에게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소유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예금자의 저축이 있어야 은행의 돈벌이가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주주 이익이 예금자 이익보다 늘 우선된다.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관치금융기관이 국민을 위한 금융회사가 될 수도 없다. 사회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금융회사는 수익의 원천인 예금자와 대출자를 위한 소유지배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대 금융권력을 제대로 통제해 준다면 시민의 힘으로 만든 시민을 위한 금융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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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01224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 (프레시안, 이병천 강원대 교수, 2012-02-28 오후 2:28:20)
[시민정치시평]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99% 연대의 길로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그리하여 그 핵심 관문으로 재벌 개혁이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중심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가히 '재벌 동물원', 또는 '삼성공화국이' 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벌의 탐욕과 탐식, 독점과 독식이 도를 한참 넘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경제민주화 나아가 '제 2민주화'를 이루는 일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오늘과 같은 재벌독식 정글 자본주의를 초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까지 당명을 바꾸는 등 법석을 떨고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걸 보면, '두 국민'으로 갈라진 채 다수 대중이 삶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도 남는다. 집권 여당까지, 진지한 반성은 모르쇠로 버티고,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 시대정신에 편승하려고 변신하고 있는 걸 보면, 작년부터 유력 보수 언론이 주도했던 바, 복지국가 길과 재벌개혁은 회피하며 재벌의 자선에 호소했던 한국판 "자본주의 4.0" 기획도 허사가 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정치란 이쪽과 저쪽, 또는 아방타방(我方他方)을 나누며 '우리'를 저변 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의제의 경우, '부자 증세'처럼 아방타방을 나누는 지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말은 그 지점을 잘 포착한 정말 멋있는 슬로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슬로건을 높이 쳐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고 국민전반의 증세부담을 요청하기 때문에 대척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가, 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것에 비해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제는 대척점이 훨씬 명확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를 넓게 99%의 '경제민주화 동맹'으로 확대하고 저쪽을 한줌의 1%로 몰 수 있는 최상의 의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99% 연대로 1% 재벌을 개혁하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견해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돈되는 건 다 먹어치우는 재벌의 탐욕을 규탄하며 개혁 대안을 찾는 토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런 토론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 지난 시기 '삼성공화국' 국면이래 주장해온 '제 2라운드 개혁'론을 피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청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다.
주발제자인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07년 선거가 '성장과 경제자유화'라는 보수적 프레임으로 짜여졌던 반면에, 2012년 선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주도의 프레임이 짜여졌고 여기에 보수가 끌려 들어와 따라잡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덜 부각되어 있는 '노동 민주화' 의제를 강조하고, 재벌개혁 운동이 민생연대 나아가 '99%의 연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발제자와 유사하게 노동자 경영참가에 기반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에 방점을 찍으면서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들을 풀어 놓았다. 곽정수 한겨레 기자는 한참동안 민주통합당 내부 '재벌개혁의 X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듣고 웃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제법 떠들썩한 외양과는 다른 실상을 'X맨'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주 잘 짚은 셈이다. 'X맨'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홍종학 교수가 또 지루한 토론회에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재벌은 킹콩같은 존재로, 이 킹콩이 선거 기간에는 잠을 잔다면서 이 때가 개혁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제재, 효과적인 규율수단 그리고 빠른 속도라고 하면서 계열사간 배당이나 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 토론회를 포함하여 여러 논의들에서 좋은 정책수단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책 수단을 잘 몰라서 재벌개혁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을까?
우선 지난날 재벌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실패했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두말할 필요없이 재벌 권력의 힘이 너무 강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의 개발 독재는 강력한 정치적 독재임과 동시에, 대재벌을 키우고 이와 공고히 동맹한 반면 노동을 배제적으로 동원한 아주 당파적인 계급 권력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산업화가 고도의 권력전략인 동시에 계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그리하여 국가 권력과 재벌 권력이 결탁한 과두제(寡頭制)적 지배와 고도집중 체제를 물려 준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5공 신군부독재도 그러하다. 독재정권이 재벌에 퍼주기를 하면서 일정하게 규율을 부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 억압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이후 오히려 자기 발로 서게 된 공룡 재벌의 고삐를 잡고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어렵게 된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둘째, 개발독재 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민주화 시기의 실정(失政)문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시기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와 중첩되었으며 역대 정부는 경제적 자유화=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방의 물결에 휩쓸렸다. 민주화와 자유화와 같이 진행됐다. 그로 인해 재벌의 힘과 정부의 실정이 합작한 끝에 97년 '외환위기'가 도래했다. 이어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는 한편 외압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 그 칼을 빌려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단절과 연속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불법적 경영권 세습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재벌의 전근대적 구태는 여전하다. 그러나 재벌 개혁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지고 쪼개졌으며, 살아남은 재벌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슈퍼 재벌'로의 초집중과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역대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학점은, 전두환 정부 A, 노태우 정부 C, 김영삼 정부 D, 김대중 정부 D, 노무현 정부 C 로 평가되었다. 논란이 많겠지만, 충격적인 평가다. 이 평가의 타당성 문제는 제쳐 두고,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한 것은 소수 재벌이고,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역설이 재벌개혁의 부진뿐만 아니라 97년이래의 재벌개혁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이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나아가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범민주 진보' 진영 내부의 개혁 담론도 재벌 개혁이 실패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 우열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노력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편 사람도 있다. 또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틀안에 가두면서 경제민주화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재벌 개혁의 목적은 단지 공정 경쟁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공정한 협력은 배제해 버린다. 어떤 논자는 지난 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즈음하여 사측의 해외공장 이전과 주식배당에 대해서는 은근히 두둔한 반면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법을 제시한 적도 있다(김기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창비주간비평>, 2011/8/4). 그리고 IMF 이후 세계화가 반(反)노동적임과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가졌고 그래서 재벌과 노동 모두 거기에 반대했다고, 문제의 한쪽 면만 보는 견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재벌과 세계화간의 불협화음만 볼 뿐, 양자의 교묘한 만남과 화해가 초래하는 반(反)민주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바, 재벌체제의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분단된 이중화 양식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내부자의 중핵은 재벌체제의 재생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상위 계층들이다. 외부자는 비정규직, 취약한 정규직, 실업자, 자영업과 중소상인, 취약한 중간층, 중소기업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야 할 것은 소액주주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존재이다. 이들은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횡포는 소액주주권을 침해한다. 그렇지만 재벌의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추구는 소액주주에게 이익도 가져다 준다. 소액주주중에는 소시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과 국내 대금융자산가들도 대체로 소액주주며 이들이 소액주주의 '큰 손'으로 재벌체제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그 약체 부분은 기업주가 휘두르는 부당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큰 부분은 기업별 노조에 갇힌 채 - 이는 신정완이 '박정희체제의 사후의 복수'라 부른 것이다- 비정규직과 연대는 외면하고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대안은 복지 의제처럼 스웨덴 모델을 준거로 삼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독특한 내부자-외부자의 이중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재벌개혁론은 다수 대중의 민생경제를 중심에 놓는 개혁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외치는 개혁론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등의 이익을 담아내는 보편적 ,포괄적 이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제 2라운드의 개혁은 지난 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적 개혁은 재벌개혁의 기본적 구성부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는 다수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과는 충돌하는 지점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개혁은 중도반절로 끝난 질서 자유주의적 개혁의 적극적 부분을 이어받되, 그 중심방향은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을 재창조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 부문이 이중화 구조를 넘어 노동 연대를 향해 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중심적 문제는 1997-8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채 습격당한 정글자본주의 속에서, 재벌의 전방위적인 탐식과 약탈적 축적,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와 분배, 야만적인 노동 배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이 중심적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이 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지배동맹에 의한 독점 독식과 이중화 축적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약탈당하고 있는 광범한 국민 대중의 삶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민생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서두에서 정치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다투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생 협력하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벌살리기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재벌이 민주공화국을 길들이는 비정상상태로부터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시민기업으로 재탄생한 재벌과 민생, 나라경제가 선순환하는 민주적 참여의 시장경제, 고진로(High Road)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다. 그리하여 저변이 넓고 튼튼한 민생경제, 피라미드형의 강소(强小)하고 중견(中堅)한 살림의 경제, 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경제시민'으로서 노동하고 기업(企業)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지분(stakes)을 쥐어주면서 공정하게 협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언제나 패자부활이 가능한 한국형 시민경제의 새판을 짜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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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389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재벌규제법 만들자” (매노, 조현미 기자, 2012.02.16)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 열려…"재벌개혁동맹 세력화 필요"
“지난해 보편복지 의제를 시작으로 지금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축으로 의제의 쟁점이 형성돼 있다. 2012년 3대 의제는 복지·경제·노동을 3대 꼭짓점으로 형성될 것이다.”
재벌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재벌규제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이 이슈화되면서 각 정당들이 재벌개혁을 총선 공약으로 경쟁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쟁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15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재벌규제법 제정으로 규제 패키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부원장은 “재벌규제법은 상법에서 파생되는 법의 범주에서 공정거래법에 포함된 기업집단에 관한 정의, 지주회사 등에 관한 규정 등을 흡수할 수 있다”며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 사이의 관계 규정과 지분 소유 관계와 통제 관계 등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벌규제법이 재벌을 부인하는 반재벌법은 아니다”며 “원칙적으로는 법규정에 맞게 기업집단의 소유관계를 재조정한다는 전제 아래 무차별하게 국민경제를 독식하려는 재벌 체제에 대한 일정한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것이 초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10년 동안 5대 재벌집단(삼성·현대차·SK·LG·롯데)의 자산규모는 230조원에서 620조원으로 팽창했다. 삼성과 현대차의 자산규모는 3배 이상 늘었다. 김 부원장은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200조원이 늘었다”며 “가장 속도가 빨랐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매출규모도 평균 2배, 순이익은 4배 정도 증가했다. 자산 총액 5조 이상 대기업 집단 전체를 봤을 때 2007년 946개에서 지난해 1천629개로 급증했다. 김 부원장은 “대기업 집단 중심의 인수합병·지분취득·신규회사 설립이 얼마나 집중돼 왔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으로의 경제집중력은 강화되고 있지만 반대로 고용기여도는 줄어들고 있다. 공기업을 포함해 300인 이상 기업의 종사자수는 전 산업기준 12%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93년만 해도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22.6%였다. 일본이나 대만의 대기업 고용비중이 22~24%정도인 것과 비교해도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총선이 있는 4월부터 대선 직전인 12월까지가 재벌개혁을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밝혔다. 따라서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계열사간 거래에 대해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제안했다. 그는 “규제 강화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며 “반면 재벌세는 도입 즉시 재벌에 대해 비용을 부과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 동안의 재벌개혁을 제1라운드, 현재를 재벌개혁 제2라운드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이 자유주의적 재벌 개혁의 책무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끝났다”며 “제2라운드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는 제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재 재벌체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거의 없다”며 “소액주주·노동자는 물론 소비자와 중소상인·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 등을 포괄할 수 있는 국민적 수준의 재벌개혁동맹을 통한 사회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대기업과 재벌의 이해관계자이면서 내부감시자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와 노조의 역할과 기능이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행 노사협의회 수준을 넘어 기업단위 최고의사결정사항에 대한 민주적 지배구조의 구축과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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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02
재벌개혁은 있는데 왜 은행개혁은 없는가? (미디어스, 김병권 / 새사연 부원장, 2012.02.09  10:35:15)
경제가 나빠지면서 서민들이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을 늘리고 카드론 사용빈도가 높아지자 최근 신용카드 대란과 서민가계 파산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상당히 많은 언론매체에서 문제를 삼았던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지난해 은행들의 세전수익이 19조원이었다. 2010년 대비 무려 46%나 상승한 규모다. 세금 내고 대손준비금을 적립하고도 12조원이었다.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이 나도록 비교를 해 보자. 우선 우리경제의 2010년 성장률은 6.2%인데 지난해에는 3.6%였다.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은행은 거꾸로 이익 신장률이 50% 가깝게 뛰어올랐다. 기업에서 이익 신장률이 이 정도면 문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신장률뿐 아니라 이익규모 자체도 놀랍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6조2천억원이었다. 삼성전자조차 지난해 실적은 2010년에 비해 줄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제조업 삼성전자의 실적은 한국의 은행들 전체 이익보다 적다. 이미 우리나라 각 은행들이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2000년 이후 일상적인 모습이기는 하다. 괜히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책 금융연구원에서 주목을 끌 만한 짤막한 글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은행의 상업성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5쪽짜리 논단이다. 논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얼마 전 언론매체에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2011년에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일제히 실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랭했다. … 반면에 지난 1월6일 삼성전자가 작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올렸다는 실적을 발표하자 언론과 여론의 태도는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경제가 어려운데 은행이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정반대로 그러한 상황에서 수출 대기업이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었다.”
똑같이 높은 이익을 냈는데 금융업인 은행은 비난하고 제조업인 삼성전자는 칭찬하는 상반된 태도에 대해 논단은 우선 그럴 만한 이유와 근거를 찾는다. 예를 들어 은행은 정부가 허락을 해서 특별히 자신들만 영업을 할 수 있는 규제산업이고 또 부실에 빠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려주는 특별한 혜택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맞다. 그런 점이 분명이 있다.
또한 논단은 은행이 낮은 금리의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대출해서 이익을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로 큰 돈을 벌고 있고, 그것도 해외시장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심각한 국내시장에서 벌어들였다는 데에 여론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역시 맞는 얘기다.
하지만 논단은 은행들이 나름대로 신용평가를 해서 대출을 잘 선별해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고 결코 거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변명이 크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금융연구원의 짧은 논단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이런 빈약한 설득력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논지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은행이 삼성전자와 같은 사기업과는 다르게 공기업에 준하는 수준의 ‘공공성’이 있다고 국민이 생각하고 있고 논단의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 논지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은행도 ‘사적인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지 공익만을 위해 노력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을 한편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논단 저자의 적극적인 항변 부분이다. 종합하면 은행이 공공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공공성만 강조하지 말고 상업성과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사적 기업이라고 해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것은 지금 세계경제위기를 몰고 온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기업 경영관점일 뿐 원래 기업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은행을 사적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은행의 성격과 본성이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굳이 사적 기업형태로 만들어 공공성과 상업성의 갈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공기업으로 만들면 그런 고민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민영화가 얼마 전까지 대세였다면 이제는 공기업화를 생각해 보자.
덧붙일 것이 있다. 삼성전자는 칭찬을 받고 은행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지금 재벌은 개혁대상으로 지목돼 다양한 규제와 과세 논쟁이 정치권에서 치열하다. 그런데 은행도 수익규모로 말하자면 재벌그룹 10위권 반열에 들어와 있고, 모두가 지주회사 체계로 돼 있어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지주회사는 예외로 해서 감시·감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은행이 사적기업과 다르게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도 지금 재벌개혁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제안한다. 은행그룹 개혁도 재벌개혁 범위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노동이 빠진 재벌개혁론 (매노,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2.02.10)
야당 진영에서 재벌개혁에 관한 정책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내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예전보다 강화된 출자총액제, 순환출자 금지제도, 중소기업 보호방안 등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은 10대 재벌의 해체를 핵심 기조로 내걸고, 10대 재벌에 대한 맞춤형 해체전략을 제시했다. 약간의 각론과 강조점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두 정당이 밝힌 재벌개혁 정책의 핵심은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이다.
재벌 오너들이 소량의 지분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기업의 부와 더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를 망친 극단적 예는 98년 외환위기다. 외환위기 핵심 원인이었던 민간 부채의 대부분은 대우그룹·현대그룹·삼성그룹 오너가 해외차입을 통해 독선적으로 진행한 중복투자와 문어발식 사업확장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재벌들의 이러한 경영방식은 2006년 정몽구 회장, 2008년 이건희 회장이 회삿돈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 최근 최태원 SK회장과 그 동생이 2천억원 넘는 회삿돈을 자신들의 선물투자 손실분을 메우는 데 사용한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됐다. 재벌 오너들의 작태는 기업의 경영부실은 물론 한국경제에서 이들 기업들이 차지하는 절대적 지위로 인해 경제 전체에도 큰 악영향을 가져왔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마치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이 무언가 큰 진보를 가져온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는 19세기 말 미국판 재벌해체법이라 할 만한 반독점법을 만든 이후 20세기 초까지 수백 개 대기업들이 해체됐다. 그리고 기존 소유주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이 주주자본주의는 70년대까지 정부의 강한 금융규제와 실물경제의 고성장 속에서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80년대 시장 탈규제 정책과 실물경제 저성장이 시작되며 근본적인 문제점을 만들어 냈다. 주주들의 이해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이 아니라 단기적 이해에 집중됐고, 주주들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진은 주식시장에서의 주가 부양과 투자 재원조차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고배당에 집중했다. 제조업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켰고, 단기적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융사업을 확장시켰다. 주주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GM과 GE는 2000년대에 금융수익이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생산시설은 절반 이상이 해외로 이전돼 있었다. 록펠러와 같은 재벌 오너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꿰찬 것은 구조조정과 배당 전문가들이었다.
사실 20세기 초 반독점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노동운동이었다. 미국자동차노조(UAW)는 기업의 경제적 독점력 강화가 노동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지엠·포드·크라이슬러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부품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들을 빠른 속도로 인수합병하는 동시에 비용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부분은 노조가 없는 계열사로 아웃소싱했다. 완성차 기업의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 상태에 있던 합병된 기업의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 압박 요인이 되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 동시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아웃소싱으로 인해 불안에 내몰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미국자동차노조는 반독점법을 통해 자본의 이러한 행태를 규제하기를 원했고, 결과적으로 주주자본주의로 이행하는 파트너로 역할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노동자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미국식 재벌해체 뒤 거대기업의 소유주가 휘둘렀던 노동탄압은 주체만 달리해 더욱 강화된 형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주주들로부터 비용절감을 통한 순익 증가를 요구받은 전문경영인은 마치 자신의 존재이유가 오직 구조조정에 있는 것처럼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비수익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노동자들은 주식시장에서 주식거래 수치를 통해서만 모습을 나타내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주주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노동의 권리를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할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키지 못한 미국 노동자들의 반독점 운동(우리식으로 하자면 재벌개혁운동)은 결국 자본 간의 소유·경영 관계만 변화시켰을 뿐이다. 노동이 없는 반독점운동은 결국 경제체제의 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에 불리했다.
현재 야당들이 내세우고 있는 재벌 소유구조 개혁도 근본적으로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이행 과정과 다르지 않다.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 이후 기업을 통제할 주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유화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이는 주주일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운동은 재벌개혁에 대해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당장 재벌의 사회화와 같은 급진적 요구를 할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는 재벌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산별교섭 제도화 같은 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재벌기업을 포함한 산별교섭은 노동이 산업적 차원에서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겉만 요란한 재벌개혁론보다는 재벌에게 노동의제를 중심으로 개혁을 요구할 제도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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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잇단 특혜정책으로 계열사 32개 늘어난 재벌도 (경향, 김보미 기자, 2012-02-02 22:02:14)
ㆍ[재벌 개혁]② 경제력 집중
국내 5위 재벌사인 롯데를 대표하는 업종은? 과자·음료 혹은 백화점·마트 같은 유통 또는 호텔…. 이쯤이면 50점쯤 된다. 석유화학도 있다는 것을 알면 60점쯤 될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롯데를 알지 못한다. 롯데는 금융이나 보험은 물론 건설, 영화, 외식, 패션, 전자, 부동산개발 등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46개에서 지난해 말 78개로 늘었다. 증가폭은 10대 그룹(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군 기준) 중 가장 크다. 사업 종류도 31가지나 된다. 2008년보다 8종이 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풀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재벌규제 완화가 잇따른 데 따른 것이다.
롯데의 덩치 키우기는 기존 사업 강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백화점에서 팔 옷을 직접 가져오고, 백화점에 온 손님들이 이용할 식당과 영화관을 만들고, 결제 수단인 카드를 만드는 식이다. 이 때문에 지난 4년간 음식업은 6개, 소매업은 5개, 금융·보험은 7개의 계열사가 늘었다. 계열사 증가분의 절반이 넘는다.
‘재벌 롯데’를 상징하는 대표사례는 지난해 김포공항 인근에 설립한 종합쇼핑몰 ‘롯데몰’(연면적 31만4000㎡·9만5000평)에서 드러난다. 롯데몰을 기획하고 짓고 내용물을 채우고 홍보하고 관리하는 모든 회사가 롯데 계열사로 채워져 있다. 다른 기업의 참여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획은 롯데자산개발. 쇼핑몰·테마파크 등 대규모 개발을 위해 2007년 설립된 회사이다. 시공은 롯데건설, 광고는 대홍기획이 맡았다. 건물 3개동 중 가운데에는 롯데의 핵심인 유통이 있다. 백화점, 마트가 두 축이다. 롯데마트는 자체 운영하는 점포도 따로 냈다. 완구점 ‘토이저러스’와 전자 전문점 ‘디지털파크’다. 쇼핑몰 내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이 있다. 롯데쇼핑이 1994년 인수해 현재 계열사 코리아세븐이 맡고 있다. 코리아세븐은 또 다른 편의점 ‘바이더웨이’도 2010년에 샀다. 나머지 2개동에는 롯데호텔과 롯데시네마가 들어섰다.
롯데의 영화사업은 13년 전 백화점 부대사업 성격의 영화관 사업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투자·배급은 물론 극장 내 매점 운영 계열사까지 있다. 영화 사업이 확대되면서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고 보급하는 기업도 만들었다. 다른 중소기업이 들어갈 틈새는 전혀 없다. 햄버거 가게 ‘롯데리아’, 패밀리레스토랑 ‘T.G.I Friday’, 도넛전문점 ‘크리스피크림도넛’, 커피숍 ‘엔제리너스’, 아이스크림 전문점 ‘나뚜루’ 역시 모두 롯데 브랜드다.
패션 부문에서도 독보적이다. 롯데는 독자 패션브랜드가 많다. 자연스럽게 쇼핑몰 주요 지점에서 영업을 한다. ‘유니클로’는 롯데가 일본 퍼스트리테일사와 만든 계열사 ‘FRL코리아’가 수입, 판매한다. ‘자라(ZARA)’도 스페인 인디텍스사와의 합작법인 ‘자라리테일코리아’의 의류다. 미국 아동복 ‘짐보리’도 롯데백화점이 국내 영업권을 갖고 있다. 생활용품점 ‘무인양품’ 역시 롯데가 2004년 일본 회사와 합작한 곳이다.
결제는 ‘롯데카드’가 맡는다. 롯데는 1995년 롯데캐피탈을 만들면서 금융업에 발을 들여놨다. 2002년 동양카드를 인수했고 2007년 대한화재를 사들여 롯데손해보험을 만들었다. 롯데의 금융·보험 계열사는 10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전국에서 사들인 지역 선불교통카드 업체들이 포함됐다. 롯데는 최근 어느 지역에서나 쓸 수 있는 교통카드까지 내놓았다. 유화의 경우 기존의 호남석유화학에서 현대석유화학(2단지)을 인수한 데 이어 화학사인 ‘케이피케미칼’, 섬유복합재 생산업체 ‘삼박’, 탄소복합재 전문기업 ‘데크항공’ 등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현재는 롯데 전체매출의 20%를 유화가 맡고 있다.
롯데의 최근 관심은 부동산 개발에도 쏠리고 있다. 전국에 ‘롯데몰’을 확대하는가 하면 테마파크를 만들어 이들 계열사를 집결시키기 위함이다. 2008년 1곳에 불과하던 부동산 계열사는 2011년 부여·제주 리조트, 롯데수원역쇼핑타운, 유니버셜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자산관리(주) 등 6개로 늘어났다. 현 상황에서 롯데가 추가로 덩치를 불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법과 제도는 재벌들을 위해 넓게 열려진 상태다. 이는 롯데뿐 아니라 다른 재벌사에도 마찬가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업종을 늘리고 계열사를 확충한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작용은 크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해당 분야 중소기업의 먹을거리를 빼앗으며 우리 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한다. 막강한 자금력과 지원을 등에 업은 대기업 계열사와 경쟁해 살아남을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또 무모한 확장으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모기업이나 다른 계열사들까지 동반부실에 빠질 우려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재벌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되면서 심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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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재벌 자산 5년간 2배 증가… 국내총생산 앞질러 (경향, 김다슬 기자, 2012-02-02 22:02:52)
“몇몇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끌고 가는 건 사실이고, 양극화는 심해지는데 뾰족한 수는 없고….” 최근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가 털어놓은 고민이다. 공룡 이상으로 커진 재벌은 이제 한국 경제 자체가 돼가고 있다. 좀 더 손쉽게 성장 열매를 얻으려던 정부가 친기업, 친재벌 지향성을 꺾지 않으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이 한국은행·통계청 등의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30대 재벌의 국내 경제력 집중 추이’ 자료를 보면,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1079조7656억원보다 26.1% 많다. 이들의 2011년 매출액은 1134조원으로, 2011년 국내총생산의 95.2%에 달했다.
30대 재벌의 경제력은 198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늘었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 자산은 38배, 매출액은 27배쯤 늘었다. 총계열사 수는 417개에서 645개로 1.5배 늘었다. 경제력 집중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가속화했다. 2006~2011년 동안 자산과 매출액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계열사 수는 1019개로 1.6배가 늘어나 지난 26년간의 증가분을 넘어섰다.
10대 그룹으로 좁혀보면, 경제력 집중도는 더욱 뚜렷해진다. 재벌닷컴·통계청 등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산 순위 10대 그룹의 2010년 매출액(은행·보험·증권 제외 539곳)은 756조원으로 전체 제조업체 매출의 41.1%였다. 40%를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국내 전체 제조업체 매출액은 2005년 1196조원에서 2010년 1840조원으로 5년간 53.8% 증가했다. 반면 10대 그룹은 412조원에서 756조원으로 83.5% 급증했다. 삼성그룹이 2005년 109조원에서 2010년 209조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으며, 현대차그룹은 71조원에서 124조원으로 증가, SK그룹도 64조원에서 112조원으로 뛰었다.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이미 전체의 50%를 넘었다. 2일 현재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680조8214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 1244조1633억원의 54.7%에 이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09년 시장구조조사 결과’를 보면 53개 대규모기업집단이 제조업·광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2007년 47.3%, 2008년 49.1%로 상승하다 2009년에는 50.1%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제력 집중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였다. 일감 몰아주기를 편법적 증여수단으로 이용해 지배지주 일가에게 부를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뛰어들며,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소기업의 진출을 막았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통해 이른바 골목상권, 서민업종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이들의 자산이 한 해 국내총생산을 앞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모든 업종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을 가진 재벌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위시해 법적,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까지 가졌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은 “몇 개 기업의 힘이 막강해지면 로비력을 통한 입법 개입을 통해 정치적인 민주주의도 해할 수 있다”며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사건이나, SK 최고경영진 불구속 기소 등을 보면 불법을 저질러도 선처하는 등 사회정의 기초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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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자율 판단에 맡긴 ‘이익공유제’… 실효성에 의문 (경향, 최병태 선임기자, 2012-02-02 21:09:06)
ㆍ명칭도 ‘공유’ 빼고 ‘협력이익배분제’로… 동반성장위 결정
대기업들이 그동안 반대해온 이익공유제 도입에 동참키로 했다. 그러나 도입 여부를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기로 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13차 본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동반위는 지난해 11월 ‘대·중소기업 창조적 동반성장안(이익공유제)’을 마련해 12월 제10차 동반성장위 회의 때부터 안건으로 올렸으나 대기업 위원 9명이 잇따라 전원 불참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 논란이 된 이익공유제 명칭은 협력이익배분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정운찬 동반위원장은 순이익공유제, 목표초과이익공유제, 판매수익공유제 등 ‘이익공유제’란 명칭을 고집해 왔으나 대기업의 반대로 ‘공유’란 단어가 빠진 기형적인 명칭으로 결정됐다.
동반위가 제시한 동반성장 모델은 기본사항과 가점사항으로 구성됐다. 기본사항은 대기업이 협력기업의 애로 해소를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것을 평가한다. 구체적으로는 원자재 가격변동 반영 여부, 불공정한 대금감액 여부, 2~3개 협력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여부 등이 그것이다. 동반위는 이런 사항을 평가해 오는 4월 발표할 동반성장지수 산정 때 반영한다. 동반성장지수 산정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실천협약을 맺은 대기업이다.
가점사항은 협력이익배분제, 성과공유제, 동반성장 투자·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가점사항은 기본사항처럼 필수사항이 아니라 대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동반성장지수는 오는 4월 발표되지만 가점사항 반영은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대기업이 올해 당장 도입하는 데 난색을 표시한 탓이다. 기본사항은 엄격히 말하면 지금도 어느 정도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과공유제를 이미 자율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가점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느냐이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동반성장 실현정도는 사실 가점사항에 대부분 담겨 있다. 대기업이 지금까지 이익배분제에 반대해 왔던 이유도 바로 가점사항에 들어있는 성격의 항목들 때문이다. 이런 항목들이 제대로 집행돼야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동반성장 체감도가 높아질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아 만든 완제품 스마트폰으로 얻은 이익을 협력이익배분제·성과공유제 등에 포함시킬지, 포함시킨다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나눌지가 핵심인 것이다.
동반위는 기본사항, 특히 가점사항 이행을 위한 세부적인 안을 마련하기 위해 따로 논의하지는 않기로 했다. 구체적 이행방안은 대기업,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합의하면 그만이다. 이에 따라 가점사항의 이행 행태는 수백, 수천가지까지 나올 수 있고 대기업 태도 여하에 따라 아예 이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날 동반위 합의사항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합의 자체에 무게를 두고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자율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반성장 같은 국가적 과제를 완전히 아무런 구체적 틀 없이 완전 자율에만 맡긴다는 게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한기 경실련 정책팀장도 “이번 안을 보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다시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대기업이 결단을 내리고,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협력이익배분제: 대기업과 협력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결과물로 나타난 대기업의 이익을 양자간 약정에 따라 공유하는 것.
▲ 성과공유제: 수탁기업이 원가절감 등 수탁·위탁기업 간에 합의한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위탁기업이 지원하고, 그 성과를 수탁·위탁기업이 공유하는 계약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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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소비자 권익 강화시켜 압박해야 효과” (경향, 박재현·이호준 기자, 2011-10-19 21:19:35)
금융권의 ‘탐욕’은 과연 통제될 수 있을까. 금융기관 역시 이윤추구를 위한 기관이니만큼 ‘자제’를 촉구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정부가 지금처럼 마냥 압박하는 것 역시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칫 ‘관치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데다 시장경제원리로 무장한 금융기관과의 싸움에서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금융소비자들이 목소리를 키워 금융기관을 직접 압박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정부의 역할은 수수료 담합과 같은 불공정 감시 기능을 강화해 시장경쟁원리가 더욱 충실하게 작동하도록 돕고, 소비자들이 금융기관과의 협상에서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소비자권익을 강화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 역시 경제적 욕망을 가지고 이윤을 추구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게 자본주의”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욕망을 무작정 자제하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의 불로소득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계급적인 전선을 만들기보다는 시민사회적인 공감대 속에 직접 금융소비자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소비자운동의 역사나 동력이 미약해서 아직까지 금융기관을 압박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금융기관과 소비자 간 협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의무화하는 등 소비자들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집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헌욱 본부장(변호사)는 “소비자들이 불만은 많지만 아직까지 조직화돼있지 못하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준비가 덜 돼 있어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월가 시위처럼 전 세계적으로 금융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시민사회가 모여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을 제재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초과 이윤 문제처럼 탐욕이 결국 가격 설정의 힘 즉, 시장 지배력의 행사에 기인해서 발생했다고 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금융감독 당국이 명확한 잣대도 없이 얼마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근거도 희박한 데다 일시적인 효과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반면 공정위는 수수료율이 책정되는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얼마나 부당한 시장지배력을 행사했는지 들여다보고 책정 과정의 담합 여부 등도 조사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사외이사제도의 정상화 등 감독당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지적도 많았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에 소비자대표도 임명하고, 더 나아가서는 노조대표도 선임해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재벌시스템이 도입된 금융자본이 스스로 이익을 양보할 리 없다”면서 “금융권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감독당국은 오히려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위기를 겪어왔다”면서 “낙하산으로 대변되는 관치금융의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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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621685&sid=E&tid=5
출총제 폐지이후 재벌 경제력집중 심화 (내일, 범현주 기자, 2011-08-29 오후 1:40:45)
실질자산 증가속도 빨라지고 계열사 수도 급증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실질자산 증가속도와 계열사 수 증가속도가 출총제가 폐지되기 전보다 빨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9일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내 재벌그룹 팽창에 관한 분석과 그 대응방안 모색'이라는 경제개혁리포트를 발표했다고 이날 밝혔다.
리포트에 따르면 출총제가 부활해 실질적으로 적용된 2001~2011년 4월까지 공기업집단을 제외한 40대 민간기업 집단의 자산규모 등을 조사한 결과, 연 평균 실질증가율이 12.32%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총제가 시행중이던 2001~2006년 기간 동안 실질자산 연평균 증가율은 4.28%였다. 이후 기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5.62%로 나타나 출총제 폐지 이후 자산증가 속도가 높아졌다.
20대 기업집단으로 분석대상을 한정할 경우 출총제 시행중인 시기에는 연평균 5.46%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가 된 2007년 이후에는 8.67%를 기록했다.
특히 2007년 이후 출총제 적용 대상 집단은 연평균 15.82%의 실질자산 증가율을 보인 반면 출총제 비적용 대상 집단은 7.15%의 증가율을 보였다. 재벌의 계열사 수를 비교하면 40대 민간기업 집단의 평균 계열사 수는 이 기간 동안 연평균 7.4% 증가했다. 출총제 시행기간동안에는 4.3% 증가했으나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에는 10.5% 증가율을 보였다.
출총제 적용 대상 집단이나 비적용 대상 집단 모두 2005년까지는 평균 계열사 수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출총제 적용집단의 평균 계열사 수가 크게 증가했다. 2005년 평균 27.7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가 2011년 평균 54.3개가 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실질자산증가율과 계열사 수에서 확인되었듯이 지난 10년 동안 상위재벌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며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출총제 적용집단을 중심으로 자산과 계열사 수가 급증했다는 것은 출총제가 어느 정도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자 도입된 출총제는 수차례 법령개정으로 지난 2007년 사실상 무력화됐고 2009년 3월 공식 폐지됐다. 출총제는 지난 1986년 도입돼 강화와 폐지 부활 완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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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07
MB 정부를 위한 ‘재벌 사용 설명서’ (시사IN [201호] 2011.07.26  10:18:49 이종태 기자)
전경련과 정치권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권에 맞서 전경련은 ‘시장주의 수호’를 내세운다. 그런데 과연 전경련 회원인 재벌들이 시장 원리에 충실하긴 한 걸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09
재벌 논쟁 맞수에서 복지국가 ‘동지’로 (시사IN [201호] 2011.07.26  10:48:55 이종태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분열되었던 시민사회의 ‘재벌 담론’이 수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재벌개혁론’과 ‘사회-재벌 타협론’으로 대립하던 지식인들이 서로 공감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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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744
한진중공업, 노동자 그리고 사회주의 (레디앙, 2011년 06월 23일 (목) 16:56:50 이호걸 / 독자)
[투고] "누가 기업의 주인인가, 진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한진중공업이 조씨 일가의 것인가, 주주들의 것인가, 노동자들의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리해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여부가 달려 있다. 또한 '이 세상이 만들어져 나갈 방향은 어느 쪽인가'에 대한 문제도 걸려 있다.
이에 대해 가장 쉽게 나옴직한 답변은 돈을 투자한 사람, 즉 주주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주주들이란 사실 매우 무책임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번 돈에 대해서는 절대적 권리를 요구하지만, 잃은 돈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책임만을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하준은 책임지고 경영을 해나가는 오너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오너들이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 존재들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럴 권리를 가질 만큼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기이한 지배구조를 통해 주주들이 투자한 돈을 전용하고 때로는 횡령하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또한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이 실패했을 때 그들은 정확히 보유한 주식량만큼의 책임만을 진다. 그리고 사실은 횡령을 통해 비자금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덜 책임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는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라, 자본의 일부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한 종류일 뿐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권리란 전혀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기업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더구나 기업이 실패했을 때 노동자는 그의 생존의 모든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일터를 잃어버림으로써, 사실상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책임을 진다.
소유란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원래부터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소유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받아 왔다. 이는 기업이 누구의 소유라는 것에 대해 자연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법적으로는 주주의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오너 일가의 소유인 것이 현재의 실정이지만, 노동자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입장과 의지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재벌 지배에 대한 가장 세련되고 정치한 비판이라는 <시사인> 이종태 기자 식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적이라면, 주주의 도덕적 무책임에 대한 대안으로 오너에 대한 존중이라는 태도를 제시한 장하준의 생각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부르주아적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다. 실제적으로 기업을 만들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가 노동자라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해야 한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분명해 알아야 할 것은 앞의 두 입장으로는 기업의 정리해고를 결코 제대로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너나 주주가 기업을 소유한다면, 그가 단지 생산수단으로 구매하고 소모하는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처분을 행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태도만이 해고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한다. 당장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기업을 접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관점은 결코 포기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 입각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주장하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을 가리켜 우리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관점이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하는 것에 대한 당내의 비판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범야권과의 차이 때문에 통합을 거부하는 진보진영의 입장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들이 있기 때문에 한진중공업과의 근본적인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512122457
MB정부 규제 완화, 재벌 토지자산·현금 늘렸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11-05-12 오후 2:15:57)
토지자산 두 배 늘어나는 동안 설비투자 증가는 '찔끔'
이명박 정부 3년간 주요 대기업이 보유한 토지자산 규모가 두배 이상 늘어났으나, 설비투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총액 상위 15대 그룹의 비금융계열사 자산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전방위적인 재벌 규제완화가 진행됐으나, 설비투자보다 사내유보금과 토지자산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상위 15대 그룹의 총자산 합계액은 2007년 592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921조6000억 원으로 55.6% 늘어났다. 자산증가의 주요인은 토지자산과 사내유보금 증가였다. 토지자산은 3년 사이 38조9000억 원에서 83조7000억 원으로 두배 이상(115.1%) 급증했다. 사내유보금도 32조2000억 원에서 56조9000억 원으로 76.4%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설비투자 증가규모는 미미했다. 3년 사이 15대 그룹의 설비투자액은 40조3000억 원에서 55조4000억 원으로 37.5% 늘어나는데 그쳤다. 설비투자는 기업의 향후 생산성과 생산규모 증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고용 증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보다 사내유보금을 더 큰 폭으로 늘렸다는 사실은 투자 대신 유동자산 증가에 관심을 더 기울였음을 뜻한다.
그룹별로 보면, 3년간 총자산 증가율이 가장 컸던 곳은 에스티엑스(STX)그룹이었다. STX그룹의 총자산은 2007년 10조8000억 원에서 지난해 21조8000억 원으로 101.5% 급증했다. 삼성그룹은 총자산이 3년 사이 126조6000억 원에서 205조5000억 원으로 78조9000억 원 늘어나, 15대 그룹 중 가장 큰 폭으로 자산 규모가 커졌다.
보유한 토지자산 증가율이 가장 컸던 그룹은 엘지(LG)그룹이었다. LG그룹의 토지자산은 3년 사이 2조3000억 원에서 8조3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253.8%에 달했다. 토자자산총액이 가장 크게 늘어난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토지자산의 지난해 규모는 2007년 6조5000억 원보다 10조9000억 원 늘어난 17조3000억 원에 달했다.
3년간 사내유보금 증가율이 가장 컸던 곳은 한진그룹으로 나타났다. 한진그룹의 사내유보금은 3년 사이 1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511.9%에 달했다. 사내유보금 증가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7년 8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20조3000억 원으로 11조7000억 원 늘어났다. 반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7년만 해도 1조 원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3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설비투자를 가장 큰 폭으로 늘린 곳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의 설비투자 규모는 2007년 4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9조4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121.0%였다. 삼성그룹의 2007년 설비투자액은 12조9000억 원이었으나 지난해는 19조7000억 원에 달했다. 설비투자 증가규모가 6조8000억 원으로 15대 그룹 중 가장 컸다.
경실련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로 계열사 확장이 쉬워져 토지자산이 (비교적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벌의 설비투자 증가를 유도하겠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재벌규제완화 정책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경실련 자료 인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22137195&code=920100
경실련, 15대 기업 3년 분석…규제완화, 재벌 주머니만 불렸다 (경향, 이호준 기자, 2011-05-12 21:37:19)
ㆍ토지자산 2배·사내유보금 76% 급증… 설비투자는 38% 증가 그쳐
15대 재벌그룹의 토지자산이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고, 같은 기간 사내유보금도 70%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설비투자액은 30%대 증가율을 보이는 데 그쳤다. 경기 회복을 위한 각종 재벌 규제완화 정책의 과실이 고루 퍼지지 않고 재벌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2일 내놓은 ‘15대 재벌(자산총액 기준)의 총자산, 토지자산, 사내유보금, 설비투자액 추이 분석’에 따르면 15대 재벌의 토지자산은 2007년 38조9000억원에서 2010년에는 83조7000억원으로 44조8000억원(115.1%) 급증했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592조5000억원에서 921조6000억원으로 55.6% 증가했다.
그룹별 총자산 대비 토지자산의 증가속도는 KT가 7.5배로 가장 빨랐고, 한진(4.8배), GS(4.3배), LG(4.3배), SK(3.6배) 순이었다. 전국 표준공시지가는 2010년에 2007년 대비 10.49% 오르는 데 그쳤다.
경실련은 재벌들의 토지자산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신규 매입을 포함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로 계열사 확장이 쉽게 이뤄지면서 계열사가 가지고 있던 토지자산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며 “재벌들이 자산을 증가시키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토지자산의 증가에 더욱 치중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15대 재벌의 사내유보금도 2007년 32조2000억원에서 2008년 24조1000억원, 2009년 28조원으로 잠시 감소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56조9000억원으로 3년 만에 24조7000억원(76.4%) 급증했다. 사내유보금이란 투자를 유보하고 내부에 쌓아둔 자금으로 재벌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내에 쌓아두고 설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내유보금은 한진이 3년간 511.9%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이어 현대자동차(299.7%), 삼성(136.4%), 현대중공업(134.3%), GS(78.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2007년 40조3000억원 수준이었던 설비투자액은 2010년 55조4000억원으로 3년간 15조1000억원(37.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사내유보금의 증가속도가 설비투자를 크게 웃돌면서 지난해에는 이들 재벌의 사내유보금액이 설비투자액을 상회하기도 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설비투자 유도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 총자산, 토지자산,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이어져 재벌들의 주머니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출총제를 재도입하고, 재벌들의 무분별한 경제력 집중 규제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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