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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217115734
테크노마트 진동 원인! '자유시장' 위기와 일치한다? (프레시안,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2-17 오후 5:53:58)
[프레시안 books]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이경남 옮김, 우석훈 해제, 민음사 펴냄)
자유시장의 실패는 자유시장 '경제학'의 실패

2008년에 발생한 미국 발 금융 위기에 대해서 시중에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들은 아마도 2008년을 전후한 미국 금융가의 모습을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인물과 사건 위주로 서술하는 책들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책들이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경제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마치 소설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심각한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대로 이론을 가지고 체계적인 설명을 해주는 책들이 있다. 로버트 쉴러의 <버블 경제학>(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은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누리엘 루비니의 <위기 경제학>(허익준 옮김, 청림출판 펴냄)은 케인스와 슘페터의 관점에서, 그리고 라구람 라잔의 <폴트 라인>(김민주·송희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과 케네스 로고프의 <이번엔 다르다>(최재형·박영란 옮김, 다른세상 펴냄) 그리고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위선주 옮김, 컬처앤스토리 펴냄)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2008년 위기를 설명하며 동시에 위기 극복을 위한 나름대로의 처방과 함께 예상되는 사태 전개를 묘사한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은 그 저자들 자신만의 독특한 경제학의 관점에서 최근의 경제 위기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경제학 및 경제사상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2008년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런 책을 없을까? 여기 소개하는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이경남 옮김, 민음사 펴냄)이 그런 책이다.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의 원제목은 '시장은 어떻게 실패하는가?경제적 참화의 논리(How Markets Fail ? The Logic of Economic Calamities)'이다. 이 책의 목적은 경제학과 경제사상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관해 이해해왔고 또한 이해하는데 실패했는지, 그리하여 경제사상이 어떻게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자유 시장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흥망을 추적할 것이다. 그린스펀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의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정교하고 총체적인 방식이다. 나는 사상사와 금융 위기의 설화와 해결책을 하나로 묶어 보려 했다. 최근의 사태는 그것이 전개된 지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11쪽)
딱딱한 경제 이론과 생동하는 저널리즘의 결합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와 2부에서 경제학과 경제사상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짚어준다. 그런데 수십, 수백 년 전에 죽은 경제학자들의 케케묵은 이론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경제학설사 책들과는 달리, 캐서디의 서술 방식은 결코 따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은 18, 19세기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삶과 사고방식을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21세기 초반의 엘렌 그린스펀과 로렌스 서머스(오바마 정부 최고 경제 자문) 등의 그것과 빗대면서 생생한 오늘날의 인물인 양 묘사하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경제이론에 대한 딱딱해지기 쉬운 설명이 생동감 넘치는 저널리즘적 묘사와 잘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인 존 캐서디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뉴스쿨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선데이 타임스>와 <뉴욕 포스트> 등에서 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현재 <뉴요커> 경제 담당 기자이며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린스펀과 서머스의 사고방식과 발언에 대해 저자가 신문 기자로서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있는 생생한 일화들을 경제학 및 경제사상의 맥락 속에서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동시에 그러한 경제 이론적 맥락이 어떻게 2000년대 초중반에 발생한 부동산 버블, 2008년의 버블 붕괴라는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 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저자는 경제학의 사상과 이론이 어떻게 역사적 자본주의의 실천 속에서 구현되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왜 실패했는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경제학의 역사는 두 부류 경제사상의 대결
이 책은 애덤 스미스 이래 지금까지의 경제학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믿는 '유토피아 경제학'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시장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데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 기반 경제학이다.
전자에 속하는 개념 원리는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과 '파레토 효율'(빌프레도 파레토), '일반균형 모델과 애로-드브뤼 정리'(레옹 발라 등), '텔레커뮤니케이션'(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통화주의와 선택의 자유'(밀턴 프리드먼) 등이다. '효율적 시장'(유진 파머)과 '초합리적 인간-컴퓨터의 합리적 기대와 정부 개입 무용성'(로버트 루커스와 로버트 배로)의 원리 등 역시 이러한 전통 속에 있다. 이 책의 1부는 이러한 유토피아 경제학의 원리와 개념을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그에 반해 자유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의 영역을 지적하는 개념 원리로 저자가 소개하는 것은 '공공재의 경제학'(아서 피구와 프랜시스 베이토), '죄수의 딜레마와 게임이론'(존 내쉬와 폰 노이만), '숨겨진 정보와 레몬 시장'(조지 애컬로프), '미인대회와 비합리적 군중'(케인스와 로버트 쉴러, 안드레이 슐레이퍼), '금융 시장의 본원적 불안정성'(하이먼 민스키) 등이다. 이 책의 제2부는 이런 개념과 원리야말로 '현실에 기반을 둔 경제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경제학의 역사를 다루므로 결코 술술 읽히는 만만한 책은 아니다. 특히 경제학에 대한 기본 교양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1부와 2부는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역으로, 대학에서 원론 수준의 경제학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수학 방정식들의 고리타분함과 비현실적인 시장균형 타령에 답답함과 따분함을 느꼈던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확 뚫리는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예컨대 '파레토 효율'과 '에로-드브뤼 정리' 등의 개념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경제학적 논쟁의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 경제에 적용될 때 어떠한 한계에 직면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시원스럽게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위기의 자유시장 경제, 위기의 자유시장 경제학
이 책의 백미는 역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3부이다. 3부에서 저자는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그 정책가들이 경제의 현실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2000년대 초중반의 부동산 버블을 잉태하고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는지, 그리하여 2008년의 금융 위기를 왜 예측하지도 못했고 위기 발발 이후에도 허둥대며 속수무책으로 대응했는지를 '시장 실패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묘사한다.
여기서 저자는 앞의 1, 2부에서 묘사한 '정보의 비대칭성'과 '죄수의 딜레마', '비합리적 군중심리'와 '금융 시장의 본원적 불안정성' 등의 개념과 원리를 통해 2000년대 초중반에 미국에서 전개된 부동산 신용 버블의 창출과정을 묘사한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점은 2008년의 금융 위기는 결코 특정 인물들의 도덕적 해이 또는 탐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특히 금융 시장과 같이 정보 비대칭성 및 인센티브 구조가 중요한 시장 영역에서 '자유시장' 논리가 지배할 경우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규모의 '시스템적' 실패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적 실패'의 배경에는 정보 비대칭성 하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적 군중심리와 죄수의 딜레마, 본원적 불안정성 등 금융 시장 '시스템의 본원적 특징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자유시장 경제사상의 실패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태보에 뒤흔들린 테크노마트
이 책에는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쓴 어려운 학술 논문의 내용들이 많이 소개되고 인용된다. 그런데 그 어려운 논문들을 얼마나 읽기 쉽게 소개하는지. 그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해 7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위치한 테크노마트 빌딩이 갑자기 아래위로 크게 흔들려, 건물이 곧 붕괴되는 줄 알고 모든 사람이 대피하는 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건물이 서 있는 지반에 문제가 있다는 둥 90년대에 무너진 삼풍 백화점처럼 중간 층의 기둥을 없애 버려서 그렇다는 둥, 뭔가 건물 자체의 구조적 결함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진짜 원인은 어이없게도 그 건물 12층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십 명이 동시에 하고 있던 '태보(Tae-Bo)' 운동이었다. 태권도의 발동작과 권투의 손동작, 에어로빅의 스텝이 흥겨운 댄스 음악과 어우러지는 운동 말이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겨우 수십 명의 동작 때문에 수십 층 건물 전체가 흔들린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지만 건축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태보 운동이 일으킨 진동의 주파수가 테크노마트 건물의 고유한 진동 주파수와 공명한 결과 공진동 현상이 발생했고 그 공진동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에서 나온 공진동 개념을 가지고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붕괴를 설명한 것이 바로 한국인 학자인 신현송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다. 그는 2009년부터 2년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한국 정부의 글로벌 금융 위기 대책을 이끌기도 했었다.
이 책의 3부에는 우리나라의 테크노마트와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런던 템스 강의 한 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완공된 '런던 밀레니엄 다리'는 신축 이후 크게 다리가 흔들려서 곧 폐쇄됐다. 전문가들이 마침내 밝혀낸 근본 원인은 바로 공진동 현상. 불과 수백 명의 행인이 그 다리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진동이 발생했고 그 진동이 사람들을 하나의 획일적인 대응 몸동작으로 유도하면서 다시 새로이 같은 방향의 큰 진동을 발생시켰다.
그 결과 다리가 붕괴할 정도의 위력이 만들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160명 미만이 다리 위에 있을 때는 어떤 위험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수치(역치)를 넘어서면 우려할 만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제어공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양의 피드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0년 당시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금융 시장의 취약성을 연구하던 신현송 교수는 금융 시장 역시 밀레니엄 다리처럼 붕괴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다리 위의 보행자는 (금융자산) 운용을 조정하는 은행이고, 다리의 흔들림은 가격 변동이다. 사람들은 다양성을 원하지만 시장 가격은 피뢰침처럼 획일성을 강요한다. 이런 유형의 유동성 실패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 유동성이 일정 역치 이하로 떨어지면 (기존에는) 안정성을 추진하는 선순환을 이루던 모든 요소가 (이제부터는) 힘을 합쳐 안정성을 훼손시킨다. (…)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역치가 어디인가이다." (383쪽)
금융 취약성의 원인을 밝힌 신현송 교수의 논문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나 같이 경제학을 좀 아는 사람도 구하기 힘든 신현송 같은 전문적 경제학자의 어려운 학술 논문들을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게다가 저널리즘적인 에피소드까지 잘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현실 기반 경제학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의 1, 2부는 주로 경제학 및 경제사상을 분석하면서 그러한 분석의 맥락 속에서 2008년의 금융 위기를 부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에 반해 3부는 역으로 2008년의 금융 위기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러한 역사 현실적 맥락 속에서 경제학 및 경제사상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1부와 2부를 읽는데 힘겨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3부부터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앞부분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내가 지금까지 읽은 경제학설사 책 중 가장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뛰어난 이야기 실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고국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 런던에 정착한 하이에크가 1930년대 중반에 케인스와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그 짧은 에피소드를 읽는 것만으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경제학적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파레토와 애로, 드브뢰 등의 삶과 사고방식에 관한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일반균형이론과 그 수학방정식 모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더군다나 비판적 논평도 더불어서) 저널리즘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선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저자는 뉴욕의 뉴스쿨에 재학하면서 진보적인 비판이론과 그것을 만든 학자들에 대해서도 박학하다. 예컨대 저자는 1980년대 한국의 진보 학계와 '386(486) 세대'에게도 많이 알려진 폴 스위지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의 저자)와 해리 매그도프 (<제국주의의 시대>의 저자) 등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나타난 금융 주도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비판적으로 묘사했는지에 관해 여러 에피소드들까지 곁들이며 재미있고 적절하게 소개한다.
2008년 시작된 이래 지금 이 순간에도 대 불황(Great Regression)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작년 가을에 시작된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에서 보이듯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 자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학과 경제사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맨큐의 경제학 교과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강의를, 그 대학 학생들이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새로운 대안적인 경제사상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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