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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서평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921153616
월급날 통장 잔고=마이너스! 당신도 당했다! (프레시안,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 2012-09-21 오후 6:43:04)
[프레시안 books] 제윤경·이헌욱의 <약탈적 금융 사회>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60퍼센트를 초과하는 가구가 빚을 안고 살아간다. 이들 가운데 74퍼센트는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며, 은행에서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어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빚으로 빚을 막으며 버티는 상황이다. 미봉책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가구들이 늘면서 금융권 연체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19쪽)
"저자들은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그 배후로 지목한다. 외환 위기 직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하에서 약탈적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금융권이 어떤 식으로 이득을 취하면서 소비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는지, 그 결과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이 금융의 노예가 되었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리고 '빚의 노예'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암울한 현실을 이겨 낼 '희망'도 제시한다. 화차 보다 더 무섭다! '약탈적 금융'에 사로잡힌 현실." (출판사의 책 소개 중)
어쩌다가 대한민국은 저축 공화국(1998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23.2퍼센트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에서 60퍼센트가 넘는 가계가 빚이 있는 '빚쟁이 공화국'으로 전락했을까요? 이 책 <약탈적 금융 사회>(제윤경·이헌욱 지음, 부키 펴냄)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저축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던 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 됐습니다. 정당한 복지나 민생 대책은 외면하고 늘 빚을 더 내라는 식의 정부의 각종 대책(복지 지원 대신 서민 대출, 전월세 상한제 대신 전세 자금 대출, 반값 등록금 대신 학자금 대출, 집값 인하 대신 주택 담보 대출 유혹 등)과, 매일처럼 빚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금융 전문가, 언론 기사, 각종 광고의 홍수 덕에 우리 국민들은 빚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은 '금융 기관'이라고 불리면서 공공 기관의 대우와 존경은 받으면서도 실제로는 사채업자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금융 자본의 실체를 생생히 드러냄과 동시에 금융 자본에 기생하는 언론들의 추악한 실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빚에도 좋은 빚이 있다'고 부추기는 것이죠(126쪽의 <조선일보> 기사!). 몇 개 더 살펴보면, "지혜로운 빚테크"(<동아일보>), "똑똑한 빚테크 노하우"(SBS), "꽉 막힌 은행 대출 빚테크로 뚫는다"(<조선일보>), "부자들은 돈 벌기 위해 빚진다"(<부산일보>) 등 이런 식으로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빚을 권유한 데는 정부, 금융 자본, 언론 누구하나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요. 어느덧 가계 부채 1000조 시대. 하우스 푸어 150만 시대. 이자로만 2011년 기준으로 1년 추산 56조 원쯤을 가계가 부담하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출 급증과 금리 상승으로 올해 가계의 이자 부담액이 56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7일 금융권 및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올해 가계 대출 이자 부담 총액은 56조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국민총소득 1173조 원의 4.8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내수 침체가 우려된다." (<한겨레> 2011년 11월 27일자)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사회 전 계층이 빚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세계 최악의 교육비, 주거비, 통신비 고통과 부담에 비정규직, 저임금 문제 등으로 에듀푸어, 렌트푸어, 워킹푸어까지…자살률은 1위 수준, 출산율은 세계 꼴지 수준이라는 비극적 통계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문제는 바로 대한민국 '사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가 점점 더 위험해주시고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부채는 점점 늘어만 가고 저소득층은 빚으로 빚을 갚는 악성 채무의 늪에 더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빚 때문에 자살하고 삶이 파탄 나는 가계와 개인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이 책 <약탈적 금융 사회>는 그 배경과 과정을 아주 상세히, 친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대한민국 금융 실태 보고서', '약탈적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교과서'라고 규정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도, "1)소득 수준과 상환 능력도 따지지 않고 마구마구 빚을 권한 후에 2) 세계 최고 수준의 고리대(현행 금융 기관의 이자율은 법에 의해 무려 39퍼센트까지 보장받고 있음) 등으로 갖은 폭리를 취하고 3)불법까지 동원해 혹독하게 채권을 추심하면서 국민들을 옥죄고 궁지에 몰아넣고 4)그러고도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며 뻔뻔하게 최대의 이윤만을 추구하고 있는 대한민국 금융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빚꾸러기, 과중채무자로 전락하고, 금융 기관만 알부자가 되는 사연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약탈적 금융 시스템"이 지배하는 "약탈적 금융 사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약탈적 금융 사회>가 된 것입니다(책 제목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저자들과 친분이 있던 저는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빚쟁이 공화국"이나 "금융의 배신"을 책 제목으로 강력히 추천하였으나 결국 채택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고리대도 서슴지 않는 약탈적 대출로 가계 부채의 급증 원인을 제공한 금융권과 이를 방조한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 서민들과 중산층들의 삶은 가계 부채 해결을 위한 사회적 비용 때문에 파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므로 결국 이제라도 정부나 금융 기관이 대대적인 개혁과 전향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계 부채 문제는 과도한 대출과 신용 공급을 초래한 금융권에게도 큰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행법과 제도, 정책과 인식, 심지어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인 금융권까지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빚쟁이 공화국 문제, 가계 부채 사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임을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채무자의 신용 상태에 따라 신중하게 빌려줘야 할 채권자 윤리와 책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빚을 갚고 싶으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은 부채 상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로 몰아붙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죠. 이 과정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불법 채권 추심이 난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채무자들은 심각한 인권 침해에 노출되게 되어 결국 가정이나 삶이 파괴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영화 <화차>를 보신 분들은 이러한 지적에 크게 공감할 것입니다.
부채는 실제로 채무자만의 책임으로 발생하지 않았고(특히 과도한 이자를 생각해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과도한 채무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개개인의 노력과 함께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그러나 금융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빌려줄 때 당장의 이자 수입을 벌기 위해 무분별한 신용 공급을 해놓고도, 회수할 때는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채무자를 괴롭힙니다. 그렇게 금융 기관의 책임과 금융의 공공성은 온데 간 데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 책 <약탈적 금융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관적 사회 디자이너'인 두 저자는 책의 말미에, 빚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복지 및 민생 대책의 시행, 이자 폭리 근절, 채무자들도 살 수 있는 채무 조정 시스템 도입, '빚을갚고싶은사람들'(빚갚사) 활동과 같은 채무자 운동 등 여러 가지 법, 제도, 정책, 운동적 대안을 역시 친절하게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빚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이자 부담을 느끼는 모든 분들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빚이 없어도 나라 전체가 온통 '돈 빌려주겠다고 난리'인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면 이 책을 보면 '아하' 하고 깨달음의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신용카드-월급날의 보람을 빼앗다"(151쪽)처럼 문단의 제목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참 많을 것입니다.
저자만 보고도 책을 사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윤경(사회적기업 에듀머니의 대표로 서민 가계 주치의 등 다양한 서민 경제 지킴이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헌욱(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으로 서민들의 교육비, 주거비, 통신비, 가계 부채와 이자 폭리 문제에 대해 끈질긴 투쟁을 해왔습니다) 두 사람만 보고 책을 사는 것도 권해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가 아는 한 서민들의 민생 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실제로 서민들의 가계에서의 고통과 부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면면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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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51775.html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권하는 사회 (한겨레, 장동석 출판평론가, 2012.09.14 20:19)
약탈적 금융 사회-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부키·1만3800원

아침나절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반가운 소식이라도 왔을까 싶어 내심 기대하지만 “1000만원 대출이 승인되었습니다”라는 해괴한 문자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고 1000만원을 빌려준다니 오히려 반가운 문자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아침을 여는 문자들은 대개 빚 권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어디 휴대폰 문자뿐인가. 곳곳에서 빚을 권한다. 심지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고작 ‘대출 받아 아파트 사라’는 것이었다. 말이 대출이지, 결국 빚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가계부채 1000조원, 하우스푸어 150만명 시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밑바닥 현실을 조명한다. 빚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개인 정보를 장악했고, 시간과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선택권을 가져가 버렸다. “친절하다 못해 귀찮을 정도로 빚으로 둘러싸인 삶을 예찬하던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돈을 회수하겠노라 얼굴빛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이를 일러 “빚의 교묘한 독재”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채무 노예 사회”다. 한때는 자유인이었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빚을 끌어안게 되었고, 이내 노예로 전락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겨우 회생한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살려준 국민을 대놓고 협박한다.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오늘날 빚 권하는 사회의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먼저 벗어버려야 한다. 또한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금융기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과 공조자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테크 열풍을 일으키며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채무 인생의 대물림을 만든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약탈적 대출로 서민들의 집을 빼앗았고, ‘언론’은 빚도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며 머니 게임을 부추겼다. ‘신용카드사’는 월급날의 보람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서 거푸 헛발질을 하며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한편 서민들의 신용회복을 돕겠다며 야심차게 시작된 ‘파산·회생·워크아웃’ 제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제도적 허점으로 서민들의 삶을 더 옥죌 뿐이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99%의 채무 해방을 위해” 나아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가혹한 채권 회수보다 인간적인 채무 조정 등 채무 조정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기에 “99%를 위한 채무자 연대”와 같은 사회운동도 필요하다. 지은이들은 “전문가의 도움과 다른 채무자와의 연대, 이것이 당장 빚에 짓눌려 겪는 고통을 해결할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융 복지 안전망, 곧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일이다. 2012년 대한민국 서민들의 희망은 “인간적인 금융”, 곧 힘겹게 노동해서 번 돈을 약탈해 가는 금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금융 시스템”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과 직면하게 한다. 이런 아픈 현실과 직면하여, 이제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알려준다.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는 구호와 실천은 단지 약탈적 금융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실체를 향해 던져야 할 말이다.
지은이들의 마지막 말이 내내 뇌리에 남는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그 시간을 되찾아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야만적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야만의 세상을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42038595&code=900308
[책과 삶]내가 빚의 노예가 된 이유… 이젠 ‘내 탓’만 말고 빚을 부추긴 금융권 책임도 함께 묻자 (경향, 백승찬 기자, 2012-09-14 20:38:59)
▲ 약탈적 금융사회…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64쪽 | 1만3800원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면 온갖 욕을 먹게 마련이다. 빌릴 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던 파렴치한은 논외로 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갚아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빌린 돈을 갚고, 그렇게 해서 생긴 2차 빚을 갚기 위해 3차 빚을 지곤 한다. 이렇게 빚이 거듭되면 이자는 불어나고, 결국 그는 헤어날 수 없는 빚의 늪에 빠져버린다. 어느 순간 그의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는 ‘포기’다. 이제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한 죄의식과 삶을 망쳐버렸다는 절망감에 물들어 버린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달리 해보자. 돈을 갚지 못하는 건 오직 돈 빌린 사람의 책임일까. 돈 갚을 능력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돈을 빌려준 이에겐 책임이 없는가. 월급이 100만원인 이에게 200만원을 선뜻 빌려주는 데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는 걸까. 혹시 돈을 빌리기 위해 맡긴 담보를 차지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일종의 ‘약탈’이라 불러도 좋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와 이헌욱 변호사는 “지금의 과도한 빚을 개인의 무책임함으로만 결론지을 수는 없다”며 “이제 ‘약탈자들’에게 책임을 묻자”고 제안한다.
신용카드나 주택담보대출이 흔하지 않고 집값도 안정적이던 시절, 사람들은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맞춰 가계를 꾸리고 미래를 계획했다. 써야할 돈과 남겨둬야할 돈을 구분했고, 그래서 빚을 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다. 저축률도 높았다. 1987년 저축률은 2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에 올라서 2000년까지 부동의 1위였다. 초등학교에서 저축을 권장하는 표어와 포스터 짓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저축을 권하지 않는다. 대신 빚을 지라고 유혹한다. 그 결과 한국의 전체 가구 중 60% 이상이 빚을 안고 살아가고, 이들 중 74%는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낀다. 1998년 한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90조원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율은 55.8%였다. 반면 2011년 가계부채는 1103조원으로 GDP 대비 90%에 달한다. 지금 1000조원대의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상위 계층은 집에 딸린 빚에, 저소득층은 고금리 대출에 허덕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008년 저자에게 한 중년 부부가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 월소득 400여만원인 그들은 풍요롭진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이었다. 그들은 2006년쯤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친척,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선 모두들 집과 돈 이야기만 했다. 저축으로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상식’이 아니라 ‘어리석은 고집’이라고 했다. 전세 살던 이 중년 부부도 세상의 흐름을 타기로 했다. 2억원을 대출해 집을 샀다. 그 뒤로 집값은 1억원 이상 올랐다. 아껴서 저축했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하게 보였다.
그리고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닥쳤다. 집값은 오르지 않았고 거래는 끊겼다. 매월 이자로만 100만원이 빠져나가고, 곧 원금 상환이 닥친다. 지금 40대인 남자는 앞으로 20년간 매월 150만원 이상을 은행에 내야 한다. 그렇게 은행에 내는 이자가 2억원이 넘는다. 빌린 돈의 2배를 갚아야 비로소 내 집이 되는 것이다.
변호사이자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말한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자산 투자로 돈 버는 사람이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일해서 돈 모으는 사람은 바보 취급 받는 세상이다. 결국 ‘나만 가난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은 평범한 중산층까지 온갖 위험한 재테크로 내몰았다. 평생 직장이 사라지고 사회안전망과 복지 제도가 미비한 사회, 재테크는 중산층이 뛰어들 수밖에 없는 도박판이었다.
중년만 빚을 지는 건 아니다. 아기는 200만원짜리 고가 유모차를 탄다. 물론 12개월 할부다. 할부가 결국 ‘빚’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부모가 “돈 없다”고 하면 아이는 “카드 있잖아”라고 답한다. 요즘 아이들은 “버는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만 있으면 소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성장한다.
‘약탈적 금융사회’를 만든 몇 명의 범인들이 있다. 먼저 금융기관.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에서 가계대출로 사업 방향을 수정한 금융기관들은 “맑은 날 우산 빌려주고 비오는 날 거둬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면 돈이 튀어나오는 광고를 내보내고, ‘우량 고객을 위한 특별 대출 상품’을 소개한다면서 저리로 돈을 빌리라고 유혹한다. 고객에게 돈 갚을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돈을 못받아내면 담보로 맡겨둔 자산을 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이러한 ‘약탈적 대출’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지만,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소비자가 파산을 하든 말든,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든 말든, 금융기관은 무책임하다. 유능한 관료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게 맡겨진 서류에 충실히 사인함으로써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안내했는데, 한나 아렌트는 여기서 ‘무사유성’의 무서움을 지적한다. 금융기관의 너그러운 대출은 이러한 무사유성의 한 사례다.
언론은 약탈적 금융 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나팔수 역할을 했다.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빚을 좋지 않게 여겨왔으나, 요즘의 언론은 빚에도 ‘좋은 빚’이 있다면서 대출을 부추겼다. 월급쟁이라도 빚을 내 투자하면 금세 강남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남들 다 빚내서 투자하는데 여기 동참하지 않으면 손해가 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손실 회피 심리’를 자극했다.
정부도 면책되지 않는다. 전세가가 폭등하면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하고, 대학 등록금이 치솟으면 학자금 대출을 확대한다. 실업률이 오르면 햇살론 같은 무담보 대출을 마련하고, 내 집 마련이 어려우면 ‘생애 첫 내 집 마련 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장기적으로 복지 제도를 보완할 생각을 하지는 않고, ‘돈을 빌려 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응한다. “정부가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탐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조차 시장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면서 서민의 살림살이에 빚을 보태고 있다.”
무심코 긁은 신용카드는 어떤가. 외환 위기 이후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발급과 마케팅 기준을 완화했다. 그 결과 1999년부터 3년 만에 경제활동 인구당 카드 수는 2.5배, 사용액은 6배 증가했다. 거리에는 아름다운 여성 도우미들이 좌판을 벌인 채 카드 가입을 권했고, 어디서 돈이 생기는지 모르는 대학생들까지 몇 장의 카드를 돌려막기로 긁어댔다. 어느 택시기사는 4000원의 택시비를 결제하기 위해 9장의 카드를 꺼냈지만 모두 한도가 초과됐다는 메시지를 받은 어느 여성 고객의 사연을 저자에게 전한다. 몇 푼의 포인트 적립과 할인 혜택으로 고객을 유혹하는 카드 회사는 정작 그러한 혜택이 카드 발급 후 1년이면 사라지기 일쑤라는 사실은 좀처럼 알리지 않는다. “속았다”는 걸 안 몇몇 고객이 카드를 해지하려 들면, 그 사이 새로 나온 카드 발급을 권한다.
물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파산, 회생, 워크아웃 등 채무자들의 고통을 경감할 몇 가지 제도를 마련해두었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이용이 까다로운데다가 채무자의 생활 보장·재활보다는 채권자의 채권 회수에 역점을 두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자들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채권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찾아오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망신을 당하게 만드는 채권 회수 시스템은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뿐이다. 미국은 개인 파산과 면책 제도가 발달해 있다. 채무자가 이를 이용하면 채권자는 부채를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채권자는 채무 조정 단계에서 더욱 많은 유연성과 합리성을 발휘한다.
채무자들끼리는 뭉쳐야 한다.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럿은 바꿀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사회적 기업과 시민 단체에서는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빚갚사)이라는 이름의 채무자 단체를 결성했다. 채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면서 새 출발 의지를 다지고, 약탈적 대출의 문제점도 지적한다는 취지의 단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자 스스로 죄의식을 떨쳐버리는 일이다. 대체 누가 나에게 빚을 권했는지, 나 같은 처지에 빠진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이 모든 것에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살펴본다면 쓸데없는 부끄러움 없이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 고대에 노예로 태어난 이는 그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예속돼 있었다. 그러나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스파르타쿠스는 반란을 일으켜 로마의 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빚은 운명도 개인의 잘못만도 아니다. 비합리적인 충동과 욕망에 이끌리는 건 인간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약점이다. 약탈적 금융 기관들이 채무자에게 심어둔 ‘내 탓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저들의 ‘도덕적 해이’도 함께 물어야할 때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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