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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과연계채권,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진정한 대안인가? (Economic View)

 

http://economicview.net/12047/
사회성과연계채권,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진정한 대안인가? (Economic View, 10/18/2012 by sticky)
복지를 위한 재원조달은 다시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여 복지를 확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중략] 공공복지 논쟁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방안으로서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미국과 영국 정부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열린 정부”(Open Government) 구상이다.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s : SIB)은 열린 정부의 기본 철학을 자본시장을 통해 구현하는 방안이다. [중략] 사회성과연계채권이란 사업성과 목표달성을 조건으로 하는 정부의 지급보증 약정을 바탕으로 사회사업 주체가 원리금의 상환이 사회성과와 연계된 채권을 민간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내용의 투자계약을 의미한다. 사회성과연계채권 투자구조에 있어, 정부는 사회성과연계채권 발행기구인 SIBIO(Social Impact Bond-Issuring Organization)와 사회적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SIBIO는 민간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하여 해당 사회사업의 운영자금을 조달하며, 정부는 약정된 사회적 성과가 달성된 경우 예산절감 효과를 고려하여 SIBIO에게 성과보상을 지급하고, SIBIO는 성과보상을 다시 채권자에게 상환하는 내용의 계약관계를 가지게 된다.[사회성과연계채권(SIB)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원리, 자본시장 Weekly 2012-40호, 연구위원 김갑래]
사회성과연계채권은 보아 자본주의가 처한 두 가지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첫째, 재정투입 없는 공공서비스 제공이다. 정부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적기의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이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그리고 실제로는 민간투자사업 등을 포함한 민영화를 통해 이런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신자유주의 반대론자 등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익을 우선해야 할 공공서비스가 이윤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공익과 이윤을 매치시키는 것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대안이다.
즉, 인용문에서 보듯이 사회성과연계채권은 “약정된 사회적 성과가 달성된 경우 예산절감 효과를 고려하여 성과보상을 지급”하기에 공공서비스가 애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용이하다는 뜻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예전에 썼던 글 “민영화, 두 가지 접근법”에 보면 기존의 민영화와 사회성과연계채권이 가지는 차이를 알 수 있다.
민간의 자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되는 교도소는 통상 민간 사업자에게 침대 개수마다 일정금액을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나 민영화 반대론자 등 비판자들은 이들 민간 기업들이 정부에 로비를 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민간 사업자는 정부가 교도소의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많은 교도소를 민간에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법로비 등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판결과 수감, 불필요한 수감기간 연장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중략] 이들은 소위 “사회영향채권(social-impact bonds)”을 발행하여 모인 자금으로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교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을 투자자들과 나눈다는 계획이다. [중략] 즉 앞서의 미국 민간 기업들이 더 많은 수감자들로부터 이윤을 창출하였다면 사회영향채권의 투자자들과 사업시행자들은 수감자들이 출소한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재범률이 낮아질 경우에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수익률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게 된다. 확실히 이윤동기가 이전 교도소와 달리 제공하는 서비스의 본래 목적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면이 있다.[민영화, 두 가지 접근법]
인용문에서 보듯이 감옥이라는 공공서비스를 똑같이 민간의 손에 맡기는 방식이지만, 전자가 오히려 재소자의 양산(?)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는 반면, 후자는 범죄율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크다 할 수 있다. 후자의 방식은 예를 들면 투자자의 수익률을 재범률과 반비례하여 보장하는 방식으로 시행할 수 있다.
요컨대 여태의 민영화와는 다른 채권이라 할 수도 있다. 물론 문제도 있다. 그 채권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시 누군가와 농담으로 출소자가 범죄를 저질러도 걸리지만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투자자가 회유할 수도 있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또 다시 꼼수가 등장할 수도 있는 기술적 어려움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기술적 어려움은 정밀한 설계나 시행착오 등을 통해 조절 가능할 것이고, 또 하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기존의 공공서비스 민영화가 정부재정의 부외금융(off-balance)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성과연계채권 역시 일종의 복지의 증권화 및 유동화를 통한 부외금융에 불과한 미봉책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채권은 “고쳐 쓰는 자본주의”의 최신 버전인데, 고쳐 쓸 때는 고쳐 쓰더라도 과연 계속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재범률이 낮아지면 장기적으로 감옥의 수요가 적어지니 장기적으로 재정이 건전해지겠지만, 단기적으로 이들 나라가 처한 구조적인 재정적자를 메워줄 수는 없다.
기업들은 점점 더 초국적화되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일국의 조세체제를 “합법적으로” 회피하고 있고, 소득세 역시 획기적인 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포퓰리적적인 세금감면, 양극화로 인한 세금면제 계층의 확대 등은 재정적자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요소다. 사회성과연계채권은 그 깊은 상처를 감싸기에는 너무 작은 반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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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두 가지 접근법 (Economic View, 06/13/2010 by sticky)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공기업은 본래 그 체제가 내포하고 있는 자유기업 정신과 맞지 않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좌익정당이 집권했던 유럽 등지에서는, 공기업을 전면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취하지 않고서도 체제 안에서 점진적인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가는데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한 듯하다. 예를 들어 전후 영국의 국유화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친 허버트 모리슨(Herbert Morrison)은 “공기업의 이사와 직원들은 자신들을 공적 이익의 보호자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다.
공기업이라도 이윤창출 없이는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소득계층에 따른 가격차등화랄지 공익적 사업의 시행을 통해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얻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이나 연금과 같은 몇몇 필수 공공서비스는 – 아직까지도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 대부분의 나라에서 당연히 국가가 제공하여야 하는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전통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많은 서비스들이 민영화되고 있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민영화 프로그램이 보편화된 결과다.
대처주의자들 – 예를 들면 키스 조셉과 같은 열렬한 자유주의자 – 눈으로 민영화의 정당성을 바라보자면, 민영화는 무엇보다 보통사람에게로의 소유권 확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유 재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성적으로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노동귀족 등 보수적인 수혜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관료적인” 공기업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많은 민영화 프로그램은 지금처럼 소수의 자본가들이 아닌 국민주 매각, 또는 임대인들에게로의 직접매각 형식으로 민영화되었다.
이후 통신사, 에너지기업, 교통시설, 환경시설 등 많은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었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공익성, 효율성, 창의성, 국가재정 등을 잣대로 하여 수많은 논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접한 재밌는 주장으로는 민영화한 NHS 의 병원이 그렇지 않은 병원보다 더 깨끗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다양한 갑론을박의 한 단면을 잘라 민영화 논쟁 또는 시도의 현재 상황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하자. 여러 아이템 중에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성행하고 있는 교도소 민영화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교도소의 민영화는 다른 민간투자사업과 유사한, 수요증가(?)와 정부의 자금부족, 운영효율 등을 이유로 도입되었다. 최초사례는 1984년 미국이민국이 <미국 교정회사, 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 : CCA>라는 민간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여 민간 교도소를 설립한 프로젝트라 한다. 오늘날 미국의 교도소 시장(?)은 이 <미국 교정회사>와 <웨클허트 교정회사, Wackenhut Corrections Corporation>가 거의 양분하고 있고, 미국 전체 수감자의 10% 이상이 이들 민간이 운영하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의 자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되는 교도소는 통상 민간 사업자에게 침대 개수마다 일정금액을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나 민영화 반대론자 등 비판자들은 이들 민간 기업들이 정부에 로비를 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민간 사업자는 정부가 교도소의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많은 교도소를 민간에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법로비 등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판결과 수감, 불필요한 수감기간 연장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신작 <Capitalism : A Love Story>에 보면 이 민간 교도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감독이 찾아간 곳은 펜실베이니아 주의 윌크스배러라는 도시였다. 이 도시의 소년원 <PA차일드케어>가 바로 민간 교도소다. 무어는 파티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소녀, 저녁식사 자리에서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고기를 집어던진 소년, 마이스페이스에서 교감을 놀린 소녀 등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각각의 죄목(?)으로 교도소 사장(!)의 친구인 판사에 의해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심지어 부당하게 형기가 연장되기도 했다고 한다.
무어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교도소의 이윤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수감자가 많을수록, 그들이 더 오래 교도소에 머물수록 더 많은 이윤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출된 이윤으로 변호사 출신의 교도소 사장은 자가용 비행기와 “Reel Justice”라 이름붙인 요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확실히 모든 민간 교도소가 부패를 이윤창출의 기본 모델로 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감자들의 선도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교도소 본연의 목적이 이윤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똑같이 교도소를 대상으로 민간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면서도 이와는 또 다른 모델을 취하려는 시도가 바다 건너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사회적 투자은행인 <소셜파이낸스, Social Finance>에서 시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이들은 소위 “사회영향채권(social-impact bonds)”을 발행하여 모인 자금으로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교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을 투자자들과 나눈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지난 2007년 당시 고든 브라운 수상이 설치한 한 위원회에서 다듬어져 채택된 것이다.
그런데 얼핏 수익모델이 저 악명 높은 <미국 교정회사>나 <PA차일드케어>의 그것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들이 달성하여야 하는 서비스의 목표다. 즉 앞서의 미국 민간 기업들이 더 많은 수감자들로부터 이윤을 창출하였다면 사회영향채권의 투자자들과 사업시행자들은 수감자들이 출소한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재범률이 낮아질 경우에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수익률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게 된다. 확실히 이윤동기가 이전 교도소와 달리 제공하는 서비스의 본래 목적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면이 있다.
사회영향채권은 전통적인 아웃소싱과 민관합동 프로그램의 두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리스크를 정부에서 민간투자자에게 이전시켰다는 것이다. 만약 원하던 목표가 달성되지 못하면 투자자는 돈의 일부를 날리지만 정부는 비용을 절약한다. 둘째, 목표가 달성되면 당연히 정부와 투자자 모두 이긴 게임이다. 물론 해결하여야 할 과제도 많다. 과연 그것이 다른 시장의 채권을 압도할만한 매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주요한 고민거리다. 성공보수는 사실 채권이라기보다는 주식에 가깝다. 정확한 목표측정 여부도 한 과제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는 여전히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민영화 추진 의혹, 미국의 군대 민영화에 따른 전쟁의 비즈니스화, 영국의 철도민영화에 따른 대형사고 등은 민영화의 어두운 그림자다. 또한 여전히 주요기간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배권 확보는 진보세력의 주요한 요구사항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국가주도의 공공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국의 재정여력은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 열악해져 신규시설이나 기존시설의 운영이 한계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많다.
좌익진영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민영화가 사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사유화(社有化)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는데, 독점자본에 헐값 분양된 몇몇 사례를 보면 타당한 지적이다. 또 한편 그러한 부작용의 반발로 기존의 국영서비스만을 고집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어차피 급진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또 다른 모습 아닌가? 국가가 시도하는 많은 사업들이 공익성을 내세우면서도 소수 위정자들이나 결국은 계급역차별적인 이익을 향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니와, 엄청난 돈만 날린 정부 주도 사업도 꽤 된다.
결국 현 상황에서 고민해야 할 주제는 과연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국가가 제공하여 왔던 공공서비스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공익성(public interest)’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원초적인 질문을 다시 고민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될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를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주체로부터 타당한 가격으로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에 권좌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사회영향채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고든 브라운이 그래도 옳은 소리 한번 했기에 옮겨본다.
“이제 문제의 증상이 아니라 원인의 근본을 다루는데 지불될 돈이다.(money paid out now to deal at root with the causes, not the symptoms of a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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