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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품에 안긴 FTA 관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62108055&code=990000
[경향시평]재벌 품에 안긴 FTA 관료 (경향,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2012-03-26 21:08:05)
2012년 3월15일 마침내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벌기업들은 환영하고 농축산으로 먹고사는 이들은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얼마 전 개운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미 FTA협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통상관료들이 줄줄이 공직을 버리고 곧바로 삼성행을 택했다는 소식이다. 그 중 한 명은 한·미 FTA를 추진한 장본인으로 유엔대사를 거쳐 2009년 3월 삼성전자 해외법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그는 지난해 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 명은 한·미 FTA 협상 당시 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았으며 2009년부터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통상현안을 담당했던 김원경 전 경제참사관이다. 그는 올 2월 사직하고 3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런 행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매우 따갑다. 물론 삼성은 ‘세계 통상중심 국가’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의 원대한 포부(?)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통상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며 한·미 FTA 실무자들을 잇달아 기용한 구실을 애써 둘러대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행보가 그저 볼썽사나울 뿐이다. 한·미 FTA의 필요성을 애써 강조하며 이를 성사시킨 핵심관료들이 과업을 달성하자마자 재벌기업으로 직행한다면 그들이 내세웠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미 FTA는 체결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행보를 보고 그들의 한·미 FTA 체결을 위한 협상행위가 결국 재벌기업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들이 믿기 힘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미 FTA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을 그 누구도 아닌 정부가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정부(주무 핵심관료)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을 국민들로 하여금 곧이곧대로 믿게 하고 싶었다면 의심받을 짓은 아예 하지 말았어야 한다. 자고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고, 오이밭에서는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 했다. 의심받을 짓은 애초부터 하지도 말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만일 이런 가르침에 삼성과 해당 관료들이 귀를 조금이라도 기울였다면 해당 관료들의 삼성 영입은 자제했어야 옳다. 아무리 끌어오고, 또 가고 싶었어도 말이다.
하기는 상대를 봐가며 바랄 것을 바라야 하는 법. 국가의 법도 하찮게 여기며 그 법 위에 군림하는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이는 삼성이 그깟 국민들의 시선쯤이야 신경 쓸 리 있겠는가? 그것을 바라는 국민이 바보다. 또한 명석한 두뇌로 개인의 영달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게다.
하지만 고시에 붙어 국민의 혈세로 미국 연수를 가서 공부해 변호사 자격증까지 땄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국가에 값을 치러 보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자신이 후안무치가 되어 이를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법률을 만들어 강제해야 함이 마땅하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백주 대낮에 국가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관료가 공직을 떠나 하루아침에 관련 사기업으로 직행하는 일들이 벌어진단 말인가?
사기업체 임원이 정부의 고위관료로 가고 다시 사기업체 임원으로 돌고 도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은, 이제는 쇠락에 접어든 미국에서나 벌어지는 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의 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들이 결정되었다는 게 참으로 서글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서글픈 것은 한·미 FTA 문제가 이제 야권의 총선 10대 정책에서도 슬그머니 빠진 한물간 사안으로 잊혀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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