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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인터뷰 [경향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022140345&code=210100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장하준 교수 (경향, 김지환 기자, 2013-01-02 21:40:34)
ㆍ“복지 없인 성장 없다는 사회적 합의 틀 2년 내 안 다지면 20년 까먹어”
ㆍ“사회환원 차원서 재벌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노동문제 해결 나서야”

재벌은 역사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국민들이 다 안다. 총수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대강 알고 있지 않나. 이들이 압박을 받는 것은 한국에 뿌리가 있고 과거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넘어가버리면 어디 가서 싸우고 데모하나. 원래 돈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러시아 등의 산 속에 숨어 사는 엄청난 부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도 얼굴 없는 국제 펀드 매니저다. 국민들을 위해 어떤 자본을 상대로 타협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금융자본을 겨냥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예전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복지를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합의가 있으니 복지를 늘릴 때 재벌이 세금을 얼마나 더 낼지, 재벌이 의료 민영화를 어떻게 포기하도록 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정부가 규제할 능력이 없으면 왜 아까운 국민세금으로 (공무원들은) 월급을 받고 있나. 복지를 중심으로 담론 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으니 이걸 지렛대로 해서 새로운 사회구도를 짜야 한다.
무상급식 이후 활발해진 복지국가 논의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진 것도 문제였지만 제일 부족한 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 대한 논의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또 장기적인 먹을거리가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1970~1980년대에 짜여진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첨단산업과 정복하지 못한 기계, 부품소재 분야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기계, 부품소재 분야가 발전한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을 보면 이들 분야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업종이다. ‘중소기업이 불쌍하니까 봐주자’는 차원의 이야기 말고 중소기업을 어떻게 ‘고급 중소기업’으로 키울지, 복지하고 경제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최근의 산업환경에선 교육훈련에 최소 6개월, 길면 2년도 걸린다. 한국은 실업급여가 취약하고 교육훈련 시스템도 잘돼 있지 않아 사람들이 실업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진취적으로 진로를 찾기보다 의사,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만 찾는다.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려면 그 나라의 복지가 취약하면 안되는 시대가 왔다.
박정희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주요 요소다. 하나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강력히 개입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외국자본을 규제해서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먹히는 걸 막는 것이다. 당시 한국이 외국인 투자에 완전히 개방됐다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있겠나. 미국이나 일본의 자회사가 됐거나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빈부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걸 제약하고 부자들이 너무 눈에 띄게 잘사는 걸 막았다. 이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독재정권이라는 논란 등이 있었지만 통치가 유지됐던 측면이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한테 전화해서 ‘조선소 안 지으면 죽인다’고 할 순 없으니 산업정책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더 민주화돼야 한다. 또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식도 분야별 대응보다는 포괄적인 복지국가라는 형태로 접근해야 한다. 또 예전처럼 문을 걸어잠그고 살 순 없으니 개방에 따른 해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당시와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일정 부분 배워야 할 부분은 있다고 본다.
한국이 노동계급은 약하지만 시민사회는 센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을 활용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신산업을 키우려면 복지가 잘 받쳐줘서 여기서 실패하더라도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 성장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담론 지형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장이 안되더라도 복지는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제위기론에 밀릴 수밖에 없다. 프레임을 잘못 잡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복지라는 개념을 온 국민이 다 같이 사회보험에 들어 비용을 낮추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다 개인별로 AIG, 삼성생명 같은 곳에서 민간보험을 들고 있다. 하지만 유럽을 보면 의료가 국유화돼 있어 3000만명분을 구매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협상을 하니 안 깎아줄 수가 있나. 이처럼 비용을 절감해서 빠지는 부분 없이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1~2년 사이에 틀을 다지지 않으면 또 5년이 흐지부지 지나가고 20년을 까먹게 된다. 다 같이 조금씩 양보하며 잘살 수 있는 장기적인 틀을 짜야 한다. 지금처럼 반목하면 결국은 힘 있는 사람들만 챙기고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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