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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노동자협동조합 ‘프로모플라스티크’ 성공스토리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78068.html
21년전, 젊은 노동자들 꿈에 10만달러 빌려준 이들이 있었다 (한겨레,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 2013.03.14 19:30)
[99%의 경제] 캐나다 노동자협동조합 ‘프로모플라스티크’ 성공스토리
노동자협동조합은 산업혁명 시기 열악한 처지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반작용으로 생겨났다.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을 위한 기업을 세워 운영하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가 지난달 캐나다 퀘벡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자협동조합을 찾아 ‘성공 스토리’를 취재했다. 퀘벡은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2년 봄
열쇠고리 등에 인쇄 작업, 일하던 공장이 매물로 나와
무담보로 10만달러 대출, 10명이 3천달러씩 출자
2013년
캐나다 전역·미국에 판매망, 연평균 순수익 40만달러
호황기엔 연매출 2백만달러, 직원들은 매년 5주씩 휴가
숨은 주역
첫대출 받도록 주선해주고 협동조합 문외한들 4개월 교육
“지역 활동가들 없었으면 오늘의 성공도 없었다

1992년 봄, 캐나다의 젊은 노동자 세르주 키루아크는 동료 2명과 공장 근처의 ‘연대경제금고’(신용협동조합의 일종)를 찾아갔다.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이 매물로 나와 있던 터라, 직접 인수해 경영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세 젊은이는 ‘노동자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하겠다는 진지한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앞서 방문한 몇 군데 은행에서는 여지없이 퇴짜를 맞았다.
“당신들이 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연대경제금고의 대출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무보증·무담보로 10만달러를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신감을 얻은 10명의 창립조합원은 각자 3000달러씩 모두 3만달러를 출자했다. ‘노동자협동조합 프로모플라스티크(PromoPlastik)’의 성공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2월 말, 캐나다 퀘벡시 동쪽으로 자동차를 두 시간 달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 생장포르졸리에 도착했다. 이곳에 자리잡은 프로모플라스티크의 주고객은 공공기관이나 일반 회사, 그리고 관광객을 겨냥한 각종 축제조직위원회들. 직원들은 고객이 요구하는 디자인을 행사 마스코트나 열쇠고리, 카드 홀더 등에 인쇄하는 작업을 한다. 거래업체는 900여곳에 이른다.
흔히 노동자협동조합은 협동조합 중에서도 가장 성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금조달이나 경영능력, 시장환경 등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회사의 대표를 맡은 세르주 키루아크씨의 목소리는 자부심이 넘쳤다.
“지금 20명의 직원이 일합니다. 사무실에 5명 공장에 15명 있는데, 그중 18명이 조합원이죠. 페스티벌이 열리는 여름이나 겨울 직전이 성수기예요. 그때는 시간제로 7명을 추가 고용합니다. 호황을 누렸던 2008~2010년에는 연매출이 200만달러나 됐습니다. 연평균 40만달러의 순수익을 올려요.”
프로모플라스티크는 세계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20개 남짓 아이템을 생산한다. 틈새시장을 확실하게 공략해 매일 30~40건의 주문을 받는 국제적인 강소기업이다. 퀘벡주를 넘어 캐나다 전역과 미국에도 판매망을 갖고 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지만, 대다수 직원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유이다. “피피피아이(PPPI)라는 국제 프로모션상품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품질상을 2008년, 2010년, 2011년 세차례나 받았어요. 그때마다 정말 뿌듯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에만 2000개가 넘는 경쟁 홍보물업체가 있거든요.”.
노동자협동조합 프로모플라스티크는 이제 생장포르졸리에서 좋은 직장으로 이름이 나 있다. 오전에 직원채용 공고를 내면 당장 오후부터 지원자들이 몰려든다. 그동안 은행 빚도 다 갚았다. 해마다 이익금 중 3만달러를 내부 적립한다. 나머지는 조합원들의 몫(1인당 배당금 1만2000~1만5000달러)으로 돌아간다. 복지 혜택도 쏠쏠하다.
“우리 직원들은 연 5주의 휴가를 즐깁니다. 생일에도 휴가를 받습니다. 1년 육아휴직을 하고 1년 더 연장한 직원도 있어요. 그렇게 2년을 떠나 있어도 복직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처음 채용한 직원은 장애인이었습니다. 키가 작아 받침대를 놓고 작업을 해요. 그분이 지금 68살인데, 퇴직할 생각이 전혀 없답니다. 허허~.”
여유자금을 탄탄하게 쌓아놓은 프로모플라스티크는 사업확장을 위해 몰딩(주형) 공장을 인수할 계획이다. “매물만 나오면 곧바로 달려가 현금으로 공장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몰딩공장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팔렸어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지요.”
노동자협동조합 프로모플라스티크는 민주적으로 회사운영을 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공장에서 4명, 사무실에서 1명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경영 대표인 키루아크는 이사회에 참여하지만 의결권이 없다.
퀘벡에서 사업을 벌이는 노동자협동조합은 300여개에 이른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퀘벡 노동자협동조합 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인 이자벨 포베르는 프로모플라스티크를 퀘벡 노동자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추천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 간 협동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프로모플라스티크가 큰 성공을 이뤘지만, 진정한 협동조합의 동반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로모플라스티크도 없었을 겁니다. 생장포르졸리에서 일하는 지역개발협동조합(CDR)의 활동가들이 빼놓을 수 없는 숨은 주역이지요. 노동자협동조합의 문외한인 프로모플라스티크 노동자들을 4개월 동안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교육시켰습니다. 연대경제금고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 것도 그들이었어요. 연대경제금고의 과감한 대출 결정은 결정적인 힘이 됐습니다. 젊은 노동자들이 꿈을 이루도록 가장 절박한 순간에 손을 내밀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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