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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 오·남용, 사회 건강 해친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4156.html
‘함부로, 귀찮게, 지나치게…’ 경범죄 오·남용, 사회 건강 해친다 (한겨레21 2013.03.25 제953호, 김남일 기자)
[특집1] 구걸도 범칙금 매기는 경범죄 시행령 개정안,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의 추억 겹쳐… 모호한 조항에 집권자 의지에 따른 과도한 적용으로 사회 건강 해쳐온 경범죄, 전면적 재구성 필요해
3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다. 과다 노출이나 구걸 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한편, 술을 마시고 경찰서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구속·체포가 용이한 60만원 이하 벌금 부과 조항 등을 신설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십 년 전부터 있던 내용이거나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확정된 내용이었다지만, 아버지 박정희 시절 미니스커트와 머리 길이까지 처벌하던 ‘유신 경범죄’를 강력하게 환기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정부 구성이 늦어지며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가는데 하필 첫 국무회의에서 시민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규율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구걸 행위 처벌은 노숙인 등 가난한 이들만을 겨냥한 ‘빈곤의 범죄화’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유사한 조항이 미국에서는 이미 위헌 판단을 받은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과다 노출 처벌은 신설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내용이며 미니스커트나 배꼽티는 처벌되지 않는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28개 처벌 항목이 즉결심판 법정에 출석할 필요 없이 금융기관에 범칙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처벌이 종료되는 등 시민들의 편의성이 높아졌다”고 해명했다.
경범죄처벌법은 1954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 뿌리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부과했던 경찰범처벌규칙에 있다. 87개에 달하는 처벌 항목 가운데는 신체 노출, 구걸, 단체 가입 강요 등 현재의 경범죄처벌법 조항과 빼닮은 내용도 많다. 경범죄는 중범죄가 아닌 것들을 말한다. 옆집까지 들리게 떠드는 행위,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슬쩍 버리거나 침을 뱉는 행위, 컴컴한 골목 구석에서 소변을 보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 일반인의 생활과 많이 겹친다. 그러다보니 특정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풍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풍속의 처벌’인 셈이다. 1954년 제정 당시 처벌 항목에는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에 배회하는 자’를 처벌했다. 요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반면 지금은 따로 법률을 두고 엄하게 처벌하는 식품위생 범죄와 밀항까지도 ‘경범죄’로 보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1973년 조항 확대, 2008년 단속 폭주
경범죄처벌법은 1963년 첫 개정이 이뤄진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다. ‘미신요법을 행하여 민심을 현혹한 자’ ‘신체의 전부를 노출시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게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유신시대로 접어든 1973년에는 퇴폐풍조 단속 등을 이유로 기존 47개였던 처벌 항목 수를 54개로 대폭 늘렸다.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생겼다. ‘성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장발을 한 남자’ ‘미풍양속을 해하는 저속한 옷차림’도 처벌 대상이 됐다. 은밀한 장소에서 춤을 가르치는 행위도 제재를 받았다. 담배꽁초·침·술주정·유언비어·암표·새치기 등 자질구레한 단어들이 법조문에 대거 진입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 말에는 사회 정화가 강조되며 무전취식·무임승차·금연구역 흡연 등이 처벌 목록에 추가된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에는 유신 시절에 만들어진 장발이나 저속한 의상 등의 처벌 조항은 삭제된다.
어떤 법의 ‘영’이 서려면 의문의 여지 없이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딱 이만큼까지는 허락되지만, 그 이상 넘어가면 반드시 제재를 받는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사람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의미가 불확실하면 어떤 행동이 처벌받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법 집행자 역시 불명확함을 빌미로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하게 될 여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경범죄처벌법은 도통 그 영이 서지 않는 법 가운데 하나다. 단속에 걸릴 때보다 안 걸리는 때가 많아서, 한 번쯤은 어겨봤을 법한 내용들이라, 제재의 강도가 범칙금 몇만원 정도로 약해서. 그런 이유들도 있지만 집권자 혹은 법 집행자의 의지에 따라 법 적용의 강도와 범위가 크게 좌우되는 탓도 크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단속된 건수는 30만7912건에 달했다. 이듬해인 2009년 단속 건수는 13만7717건으로 뚝 떨어진다. 해마다 줄더니 2012년에는 5만8002건으로 임기 첫해에 견줘 6분의 1로 줄었다. 범칙금 징수액도 2008년 61억9500여만원에서 2012년 11억여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며 ‘법질서 의식’이 확 높아졌을까. 참여정부 때와 비교하면 2008년과 2012년의 단속 건수는 예외적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범칙금과 즉결심판이 부과된 건수는 모두 10만3401건이었다. 30만여 건에 달했던 2008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법질서 확립’을 입에 달고 다녔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법질서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 대통령과 정부 각 부처가 떠받들었던 법질서라는 게 주로 시국치안이나 ‘낮은 수준’의 공중도덕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초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초·교통질서 확립 방안을 마련해 실행하라는 지시를 일선에 내렸다. 이때부터 각 지역 경찰들은 ‘법질서 확립 원년 선포식’ ‘교통질서 확립 선포식’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 등 전시성 행사에 몰두했다.
‘단속 점수’ 사라지자 ‘단속 건수’ 줄어
실적 채우기에 만만한 분야들이 있다. 대합실 등 금연장소에서의 흡연 단속 건수는 2007년 2만2564건에서 2008년 10만6348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담배꽁초·껌·휴지 등을 버리다가 걸린 건수도 2007년 1만4818건에서 1년 사이에 6만389건으로 확 뛰었다. 침을 뱉었다가 단속당한 건수도 1002건에서 6425건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범칙금 딱지를 떼거나 즉결심판에 넘겨진 건수 역시 2만1660건에서 4만6960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아무 곳에서나 담배 피우고 침 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을 리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첫해에 법질서를 워낙 강조하지 않았나. 단속 실적으로 평가받는 성과주의를 요구받다보니 경범죄처벌법 위반 건수가 확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권력자의 의지가 경찰을 통해 단속 건수로 실현된 것이다. 그러다 2011년 말 경찰에게 주어지던 ‘단속 점수’가 없어졌다. 2012년 단속 건수는 5만8002건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친다.
사소하게 보이는 행위까지 박박 긁어 처벌하는 경범죄 단속 강화는 사회 전체의 ‘군기’를 바짝 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범죄심리학 이론 가운데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사소하게 보고 방치하면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한 사람들이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려버린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이 나온 1982년 미국은 보수 공화당 집권기였다. 이론을 만든 제임스 윌슨은 우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다소 무질서한’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경찰력의 과도한 개입을 깨진 유리창 이론이 정당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0년대 미국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뉴욕의 범죄 예방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이는 뉴욕시의 ‘무관용 경찰 활동’으로 이어졌다.
법질서 확립에 대한 신념은 박근혜 대통령도 뒤지지 않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법질서·사회안전 분과를 따로 설치하기도 했다. 역시나 어떤 법질서냐가 문제다. 박 대통령은 3월14일 경찰대 졸업 및 임용식에 참석했다. 그는 축사에서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반드시 근절시키겠다는 굳은 각오로 국민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탈법과 무질서, 구조적인 부조리와 반칙을 엄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경찰청은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는 오물 투기, 광고물 무단 부착, 현수막 등 ‘시각적 위반 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인의 기호·선호까지 처벌하나”
현행 경범죄처벌법에는 ‘억지로, 재주 등을 부리고, 떠들썩하게, 못된 장난, 싫다고 하는데도, 함부로, 귀찮게, 신기하고 용한, 지나치게, 마음을 홀리게’ 등 추상적이고 애매한 용어가 많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경범죄처벌법의 ‘해체 후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에 대한 규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다만 이런 것들까지 경찰 활동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경찰 업무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규제로도 충분한 내용이 있다. 반면 행정 규제가 아닌 형벌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단순 질서 위반은 범칙금이 아닌 과태료로 돌려야 한다. 지금 경범죄처벌법은 경찰에게 시민들의 일상을 규율하는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이를 정리하자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정부나 권력자가 사회 통제 등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경범죄처벌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키울 수 있다. 법의 영역이 아닌 부분, 개인의 기호나 선호에 관한 부분까지 국가가 처벌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사권이 간절한 경찰도 자질구레한 것까지 신경 쓰기보다는 수사 업무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경찰은 선도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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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없는 국가의 짓 (한겨레21 2013.03.25 제953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특집1] 공중도덕에서 벗어났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도 ‘범죄’로 다스리면 국가가 우스워져… ‘경범죄 개정안’에 줄줄이 찬성한 야당 의원들, 시행령 나오자 문제 삼는 야권도 자가당착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되자 비난이 쏟아졌다. ‘부끄러운 느낌’ ‘불쾌함’ 등 주관적 감정이 기준이라 뭐가 과다 노출이냐, 왜 국가가 옷차림까지 간섭하냐, 게다가 옷차림이 형사처벌 대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버지 박 대통령 시대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는 시민들도 있었다.
정범구 의원 단 한 명만 기권
민주통합당도 신속하게 대변인 논평을 냈다. 현안이 쌓여 있는데,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나 처리하냐며 비난했다. “범칙행위 자체를 늘려놓아 국가의 통제를 일상화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적절한 지적이지만 이 논평을 보며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해 2월25일 경범죄처벌법 전부 개정안 처리에 따른 부수 절차일 뿐이다. “국가의 통제를 일상화”한다고 비난한 민주당 의원들은 개정안 처리 당시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정범구 의원 한 명만 기권했고 모두 찬성이었다. 여야, 진보, 보수가 따로 없었다. 재석 의원 167명에 찬성 166명이었다. 법률을 바꿀 땐 몰랐는데 시행령을 바꿀 땐 갑자기 문제점을 알았다는 건가. 예전엔 멍청했지만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 갑자기 똑똑해졌다는 건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가볍다고는 하나, ‘경범죄’도 범죄다. 따라서 경범죄처벌법이 열거하는 행위들은 모두 범죄행위다. 형사처벌이 따르는 것도 물론이다. 범죄행위란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 곧 특별히 해로운 행위들이다. 특별히 해로워도 법률에 따로 정해두지 않으면 범죄가 안 된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다. 범죄가 되려면 내용과 형식의 요구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경범죄처벌법은 범죄의 형식 요건을 완벽히 충족하지만 내용과 실질은 영 형편없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일지는 몰라도 공동체와 사회에 특별히 해로운 행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형법에 ‘주거침입죄’가 있는데도 ‘빈집 침입죄’를 따로 정해두고 있다. 살지 않고 누군가 관리하지도 않는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면 처벌하는 거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집이나 건물이 실제로 있는지 의문이지만, 있다 쳐도 그런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는 게 누구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버려진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는 게 심각한 재산상의 손해를 발생시키는 특별히 해로운 행위라면 형법의 ‘주거침입죄’에 합해버리면 된다. 고작 10만원 이하의 벌과금으로 처벌할 문제는 아니다.
물품강매·호객행위도 범죄행위다. 물품을 사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상인이 ‘억지로’ 팔겠다고 청하면 처벌한다. 뭐가 억지인지는 경찰관이 판단한다. 떠들썩하게 손님을 불러도 범죄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소리치거나 신장개업 등 판촉행사를 하는 건 죄다 범죄행위다. 광고물 부착·배포도 범죄다. 아르바이트로 광고물 배포를 하려면 일당보다 훨씬 많은 범칙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담배꽁초, 껌, 휴지, 쓰레기, 더러운 물건, 못쓰게 된 물건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린 사람도 처벌된다. 침을 뱉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담배꽁초 무단 투기, 길거리에 침 뱉기는 점잖지 못한 행동이 분명하다. 공중도덕에서 벗어난 교양 없는 짓이다. 하지만 범죄일 수는 없다. 범죄는 특별히 해로운 경우에만 국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가 우스꽝스러워진다.
시민 통제할 방법을 찾은 경찰
범죄니까, 범죄를 인지한 경찰은 수사를 해야 한다. 인지범죄를 수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경찰에 바라는 것이 고작해야 광고물 무단 부착이나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업무인지 모르겠다. 그걸 하자고 10만 명이나 되는 인력을 투입하는 건 아니다. 경찰은 진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시시콜콜한 일들이나 쫓아다니라고 경찰을 두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소리가 많은데, 경찰이 이렇게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들만 쫓아다녀서는 안 된다.
못된 장난, 구걸, 미신요법, 과다 노출도 다 범죄다. 일일이 조문을 들여다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표현이 이렇게까지 딱 맞아떨어지는 법률은 없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들이대면 어김없이 범죄행위를 포착할 수 있고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전부 개정안의 핵심은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은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는 조문이다. 다들 10만~20만원 이하의 범칙금을 매기는데 이것만 60만원으로 가장 높다. 벌금 50만원을 넘으면 현행범 체포가 언제든지 가능하다. 폭행도 기물 파괴도 욕설도 하지 않고 그저 시끄럽게만 해도 이제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귀찮은 사람을 내쫓을 좋은 수단을 얻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통치의 대상, 계몽의 대상쯤에 머물러 있다.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자의적 법 적용은 위험하고 해롭다. 경범죄처벌법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조문투성이라,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속 건수를 높일 수 있다. 단속을 해서 즉결심판에 넘기기도 하고, 아예 범칙금조차 매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08년 경범죄처벌법 위반 통고처분 건수는 2007년에 비해 3.7배나 뛰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기초질서 확립’을 강력히 주문한 탓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경찰은 단속 건수를 마치 고무줄처럼 확 늘렸다. 시민의 일상이 대상이고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니, 단속 건수 급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봤자 오물 투기, 음주, 인근 소란, 금연장소 흡연, 노상방뇨가 대부분이다. 오물 투기의 98%는 담배꽁초 투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급증했던 단속 건수는 2009년엔 다시 줄어들었다.
일제의 유산에서도 해방돼야
경범죄처벌법은 전부 폐지해도 된다. 그래도 아무 이상 없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는 단속권도 지방정부에 넘기고,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등 행정벌을 매기면 그만이다. 경범죄처벌법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을 미개한 통치 대상으로 여기고 잡도리하기 위해 만든 경찰범처벌규칙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이런 법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법률로 살아남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방 68년이다. 이제는 일제가 남겨놓은 악법에서도 해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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