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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비극

 

우리같은 20대의 젊은 사람들이 보수화되고 있다며 한탄하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듣곤 한다.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숨이 가득 베어있다. 그 한숨 소리 가득한 한탄에 100번 공감하나, 그러나 그 한탄이 우리의 전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때면, 또다른 한숨을 쉬게 된다.

 

21세기 남한 땅에 존재하는 20대의 새파란 대학생들이 지닌 생각은 모두 자기 존재를 배반한 허위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그 유명한 '허위의식' 레테르는 일부만 맞고 상당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이 정녕 허위의식이라면 근대적 계몽만으로 모든 운동의 내용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운동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의 의식이 급진화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난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성 주위에 맴돌거나 몇몇 주황빛깔 남한 지식인들이 퍼뜨린 그 레테르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마나 한 말이란 것이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사람들의 의식을 결정짓는 것은 문화, 정치, 경제, 일상생활, 민족주의 등 여러가지들이 복합적으로 뭉쳐져 형성된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닐까. 운동의 목표는 이데올로기를 경외시하며 무시하고 계몽하여 다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대중적인 이데올로기 안에 침투하고 급진화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운동의 대다수의 양태는 거의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답답함과 조급한 계몽주의적 구호만 공허하게 맴돌뿐. (운동권들은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운운하지만 정작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진 않는다. 아니면 버겁거나. 영원히 버겁다면 이 버거움은 영원한 늪으로 우릴 계속 빠뜨리고 말 것이다.)

 

술자리 대화 주제의 75퍼센트가 '돈'인 20대 '서민'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서민이기에 '그 현실적인 이야기'의 내면을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겄다. 즐거운 얘기, 해방의 기운이 넘치는 이야기 말이다. 오늘 사무실 사람들이랑 함께한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돈, 재테크, 로또, 연애(연애를 하면서 무엇을 샀다는 둥.) 등 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20대는 왜 이토록 비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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