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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색

 

인간사색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1학년때 들은 교양수업때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읽은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강준만 책을 읽었다. 제목은 <인간사색>. 한때 그의 노무현 변호론때문에 역겨움을 느껴 그가 쓴 모든 글을 무시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라는 부제는 아주 적절하다. 이 책은 한국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관계맺음'에 대한 연구의 총론격인 책이다.

 

사랑, 불륜, 질투, 순결, 키스, 욕망, 열정, 감정, 체질, 싸움, 청춘, 나이, 효도, 호칭, 권위, 진실, 기억, 신념, 의리, 배신. 위의 스무가지 화두가 한국인의 관계맺음 문화를 관통한다. 예컨대, '감정: 한국인은 감정억제를 모른다'는 chapter에서, 한국인은 '우뇌가 발달했다'는 이화여대 교수 최준식의 이론을 빌어, 감각이나 직관을 관장하는 우뇌가 발달한 한국인들은 감정 발산에 예민하고 즉자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며 패배적 사고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감정단어'에서 그 현상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 중 하나로 그는 한국어의 감정단어 430여개 중 72퍼센트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라는것이다. 지배와 저항의 관계 속에서 감정발산은 필연적이다. 감정발산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팽배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감정발산의 역동성을 지배하고 있다. "너 왜 그렇게 감정적이니?" 이 말이 지닌 압도적 권위는 이 말로 비판을 들은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일전에 강준만 교수의 한국사회에 대한 논평, 분석 자료를 모두 모아 철두철미하게 정리해놓는 습관(?)에 대해 들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 그 방대한 성과의 일부분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3분의1은 '인용'이다. 내가 가장 인상적인 chapter는 '감정'과 '체질'이었는데, 그 중 '체질'분석에서 한국인의 '체질'이라는 조건과 '혁명'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분석은 꽤나 재밌었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가 한 말을 빌리자면, "한국에 소양인이 25% 밖에 되지 않아 '체질상으로는' 혁명역량이 크게 부족하지만, 모든 국면이 곪아터지는 예외적인 역사상황에선 가장 수가 많은 태음인 집단의 지원을 받아 변혁운동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체질 결정론은 극히 위험하지만 아예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하기엔 대단히 과학적인 분석인 것 같다. 약간 영향을 끼치겠지.

 

그의 책이 왜 재미있는지 알았다. 일단 인용이 많고, 수다 떨듯 글을 쓰며, (나쁜 뜻이 아니다.) 글을 그냥 개연성있게 잘 쓴다. 논리성이 가끔 떨어지긴 하는데, 그건 그냥 그럭저럭 넘어가주면 된다. 어차피 크게 신뢰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개연성있게 쓰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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