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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부스

<폰 부스>(Phone booth, 2002)

 

2003년 여름인가? 신촌 어느 극장에서 봤었고, 작년에 또 한번 봤고, 지난주에 tv에서 세번째 본 영화. 그러나, 2003년엔 그냥 스릴넘치고 재밌다고 생각했고, 작년엔 좀 꺼림찍하다고 생각했고, 얼마전엔 경악했다.

콜린 파렐과 포레스트 휘테커가 나온다.

 

분명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영화가 아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있다. 콜린 파렐의 연기는 볼만하지만, 그를 폰부스 안에 가두어놓고 얼굴 한번 보이지 않고 오직, '전화통화'만으로 콜린 파렐을 협박하는 숨은 조종자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착하게, 도덕적으로, 거짓말하지말고!" 살라며 관객을 우롱하고 협박하듯 끝난다. 기분 드러웠다. 마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자신만의 도덕률을 세계 민중에게 강요하는 미국과 같다고 할까?

 

결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 영화인지, 아니면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경찰'을 자처하는 영화인지 잘 보여준다.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살인자는 죽지 않으며, 히스패닉계 이민자로 보이는 무고한 피자배달부와 클럽 문지기만이 잔인하게 살해되었을 뿐이다. 물론 주인공인 콜린 파렐은 죽지 않았지만, 그는 흐릿해져가는 뿌연 시선 속에 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는 착하게 살라"는 살인자의 실루엣을 본다. 공포 영화가 아닌데도 너무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 살떨리는 공포...

 

영화는 '도덕'하나로 전화통화 저격수의 모든 살인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결말을 만든다. 9.11테러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다가 개봉한 영화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무섭게 '영화로' 관찰자이자 조종자의 말을 듣지 않는 우리들에게 협박할줄이야... 아무리 콜린 파렐이 허세많고 거짓말 잘하는 양아치일 망정! 영화는 잡히지 않은 저격수에게 이 세상 누구든 '심판하고 총살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될때, 저 우주 어딘가에 있는 인공위성에서 출발한 '그'의 시선, 그리고 마지막도 그곳으로 끝난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영화는 지금 이 시간을 파시즘과 감시의 시대로 표현한다.

 

거짓말하지마.

허세부리지마.

외도하지마.

도덕을 지켜.

그렇지 않으면 죽어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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