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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며

남북물류포럼 칼럼

2015. 07. 23
조회수 17 추천수 0
 

 전현준박사.jpg

 7월 들어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탈북했다는 내용을 전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이들 보도들이 사실인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북한의 핵심비밀이 밝혀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 고위 탈북자들이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비밀을 어느 정도 제공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동당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 출신 고위인사가 맞다면 상당한 정도의 기밀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39호실이나 제2경제위원회는 북한체제의 핵심기구들이다. 그만큼 속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비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북한 군사비가 어느 정도이고 핵무기 개발비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 등은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은 일반 탈북자들은 알 수 없는 부문이다. 따라서 금번 고위급 탈북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비밀들이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언론보도로 본다면 탈북자의 계급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탈북자는 약 27,000명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 신분이 노동자․농민이었다. 인민군 계급도 거의 인민군 상좌(중령급) 미만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반 탈북자와는 달리 우리의 차관급들이다. 북한의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김정은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 부서의 주요 인물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북한 핵심계층에도 ‘잠재적’ 저항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앞으로 ‘제2의 황장엽’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셋째, 북한 체제 변화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유의미한 일이 발생한 점이다. 그 이유는 북한 체제 유지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통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관료 및 주민들에 대한 사상적, 육체적, 물질적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공포에 의한 지배’ 정책인 것이다. 김정은이 등장 이후 리영호․장성택․현영철․마원춘 등 최측근을 숙청한 것으로 밝혀지거나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철저히 김일성․김정일 노선을 따르는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cy)’ 통제방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Machiavellis)t’인 것같다. 마키아벨리는(Machiavelli)는 “군주는 존경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부터 유지된다”라고 강조했고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작금의 고위급 탈북 사건들이 확인된다면 그러한 김정은의 공포를 통한 지배 정책을 무색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유념해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북한의 통제장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국가안전보위부는 그 어느 독재국가들의 통제기구보다 막강하다는 데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보위부에 조차 맹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의한 지배는 피지배자들이 이를 충실히 따랐을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이에 저항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오히려 지배자가 역공을 당하게 된다.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이 공포스런 지배에도 불구하고 민중혁명이나 군부 쿠데타에 의해 타도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통제기구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김정은도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 체제의 변화 문제와 관련해 어떤 판단도 성급하게 내려서는 않된다. 그 이유는 최근의 탈북자들을 보더라도 자유주의 혁명 사상에 무장되어 있는 것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탈북한 이유가 이들이 자유주의 혁명 사상을 공부하여 “군주도 과오를 범하면 타도될 수 있다”라는 사상 때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김정은의 통치행태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아니면 일정한 과오가 있는데 김정일 시대같으면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정은이 조그만 과오도 숙청하는 것을 목도한 후 겁이 나서 탈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조차도 그들의 탈북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고위급 탈북 사건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단발적이고 비조직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부서가 서로 다르고 시기나 장소도 다르다. 이들이 사전 모의에 의해 탈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촘촘한 상호감시망을 가지고 있다. 북한 국내나 해외나 일정한 지위 이상은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거의 모두 도청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통제가 느슨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고 전반적인 통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사전 모의나 상호 통화가 이루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북․중 국경을 통한 대량탈북은 아니다. 대량탈북이었다면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후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게 된 배경이 동독 주민들의 인접국인 헝가리로의 대량 탈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북한 고위급 인사 탈북은 개별적이며 극히 일부다.

   따라서 북한내에 대안 사상과 대안 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사건들을 김정은 정권 붕괴나 북한 체제 변화와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이를 무리하게 연계하면 잘못된 대북 정책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김정민, 고영환 등 중간급 인사 탈북, 1997년 당 서열 21위였던 황장엽 비서 망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1471&cur_page=1&sP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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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국정원, 임씨 가족에까지 조사 범위 확대”

“큰딸·부인에 임씨 근황 물어”…네티즌 “특검만이 답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죽음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숨진 직원 임모씨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고된다.

23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국정원이 사망 수일 전부터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 임씨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을 진행했으며, 이런 중에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임씨의 큰 딸에게도 국정원 감찰 담당자의 연락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임씨가 국정원 내 감찰반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국정원에서 큰 딸에게도 아버지의 최근 상황을 묻는 등 연락을 취하고 임씨의 부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조사하면서 더 큰 심적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사망 전 임씨는 해킹 프로그램 논란에 따른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자책감, 이에 따른 조직의 감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면서, 감찰 과정에서 가족들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가장으로서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머니투데이>는 육사 생도로서 향후 공직에 복무하게 될 큰 딸이 해킹 프로그램 논란과 관련해 임씨의 ‘실수’로 혹시 모를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구성원들의 ‘조직 반감’이 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평소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적지 않은 신뢰를 받아왔고, 유서를 통해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조직을 보호하는 사명감을 내비쳤는데 ‘가족까지 불안하게 만든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머니투데이>는 전했다.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 또는 자해 사건들은 주로 특유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에는 강도 높은 감찰을 통해 사실상 ‘조직이 직원을 사지로 내몬 것’”이라며 “수년간 국정원의 잇단 ‘실책’과 더불어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라고 신문에 밝혔다.

임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그의 가족에게까지 조사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책임질 사람은 위에 버젓이 있는데 실무자만 압박하여 죽음으로 몰았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이 밖에도 “본질을 흐려서 시간끌며 진 빼겠다 그거지”(개들*****), “이 정권의 주특기인가? 조작, 모사, 위조”(최**), “국정원 하는 짓이 조폭의 내부 조직원 단속하는 짓과 다를 게 없다”(dan****), “언제나 독재시대에는 많은 애통한 죽음들이 있었고 남겨진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다”(cat*****), “특검밖에 없다”(범**), “양심선언이 필요합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정상적일 때 하는 말이지 나라 말아먹는 범죄행위까지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du**) 등의 반응들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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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7/23 10:08
  • 수정일
    2015/07/23 10: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광복 80주년 민족공동행사로 개최되나
 
남북 민간단체, 오늘 개성서 논의...정부 접촉 승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3 [08: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8.15 민족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사전 접촉이 오늘 개성에서이루어져 민족공동행사가 순조롭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 외신들은 정부가 지난 22일 광복 70주년 8·15 남북공동행사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민간단체의 사전접촉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남북민족공동행사가 성사되면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이후 10년 만에 8·15 공동행사가 개최되게 된다

 

남측의 '광복 70돌, 6·15 공동선언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남측 준비위)는
지난 6일 북측의 '6·15 공동선언 15돌·조국해방 70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북측 준비위)에 8·15 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제안했고, 지난 20일 북측이 이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북측은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다음달 13∼15일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남측의 각계각층에 문이 활짝 열려있다며 초청의사를 보였다.

 

민족통일대회는 백두산 자주통일 대행진 출정식과 평양과 판문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모임, 자주통일결의대회 등의 행사로 구성된다.

 

남.북측 준비위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함께 문화행사와 학술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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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된 변호사, 그는 죄가 없다

[주장] '경찰폭행' 혐의 민변 변호사, 24일 1심 재판부 무죄 판결 내리길

15.07.22 21:23l최종 업데이트 15.07.22 21:59l

 

 

지난 7월 6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피고석에 낯익은 이들이 대거 서 있었다. 이들의 직업은 모두 변호사. 평소 같으면 당연히 법정 우측 변호인석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 자리가 아니었다. 피고인석에 나란히 선 이들 중 유난히 흰 머리가 눈에 들어오는 변호사가 있었다. 바로 이덕우 변호사였다.

이덕우 변호사.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994년 12월 24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당시 나는 재야단체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부장이었고 그는 인권 위원이었다. 그렇게 처음 그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지난 21년간의 인연은 참으로 깊고 진했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이덕우 변호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권 변호사 중 한 명'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1987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시국사건에 늘 '이덕우' 석자를 올렸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시국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중 나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1998년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었다.

집요한 사람, '인권 변호사' 이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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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년간 '인권 변호사'로 일해온 이덕우. 그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주요 시국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일이 없다. 특히 용산참사는 그에게 잊지 못한 아픔이었다. 참사 5주기를 맞아 추모위원에 참여해 달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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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어느 날,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서울 명동의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바로 그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로 언급되는 '판문점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이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만 17년째, 이덕우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한 번도 손을 떼지 않았다. 그 세월동안 이 변호사는 아들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김훈 중위 아버지의 전쟁'에 든든한 전우였다.

이덕우 변호사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2002년 12월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제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다가 업무가 종료된 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덕우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뜬금없이 "요즘 뭐하냐"고 묻더니 "나하고 같이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세상 없이 바쁜 분이 난데없는 여행을 제안하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보니 역시나였다. 2002년 12월 그해, 경남 창원의 한진중공업에서 배달호 노동자가 사측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고자 분신 자결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변호사는 나에게 그 사건 진상 조사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함께한 진상 조사단 방문 길에서 나는 이덕우 변호사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늘 합리적이고 상냥한 성품, 누구에게 모진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그러다 술 한잔 마시면 늘 허허실실 웃는 착한 사람. 그런 이미지의 이덕우 변호사가 한진중공업의 관리자 건물 앞에서 보인 분노는 나에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배달호 노동자가 분신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사측의 입장도 듣고자 했다. 이에 사전에 면담 요청을 마친 후 약속한 시각에 한진중공업 관리자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측 관리자가 아니라 굳게 닫힌 철문이었다. 그들은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황량한 벌판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여러차례 문을 두드리며 면담 요청을 거듭했다. 하지만 닫은 철문은 끝내 침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덕우 변호사의 눈물 섞인 괴성이 내 귀에 들려왔다. 굳게 닫힌 그 철문을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하며 분신한 배달호 대신 외치는 눈물이었다.

"이 놈들아. 사람이 죽었다. 너희를 위해 일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말이라도 좀 해달라는데 이것조차 못하겠다는 것이 사람이냐.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문을..."

그날, 이덕우 변호사의 외침은 그 넓디넓은 100만평 한진중공업 벌판 위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덕우 변호사의 진심을 봤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나에게 이덕우 변호사는 그런 사람으로 남았다. 

고시 공부중 갑자기 돗자리 챙기며 나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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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이덕우 변호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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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 77학번 출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법조인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잘 나가는 금융 투자회사에 취직하여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가 1984년. 그러나 그러한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1985년, 이덕우는 아내와 아버지에게 "회사를 그만 두고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판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진 3년간의 고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1차 시험 합격후 2차 시험을 연거푸 낙방. 결국 처음부터 다시 1차 시험을 봐야 했는데 다행히 1987년 실시된 1차와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2차 시험을 두 번이나 실패한 후 다시 처음부터 도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느낀 좌절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고시 준비 때도 이덕우 변호사의 일상은 남달랐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이 어느 땐가 나에게 들려준 그때의 특별한 일화가 있다. 고시 준비를 할 당시 이덕우 변호사가 살던 곳은 서울 돈암동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3년이나 고시에 매달리는 남편을 내조하며 기약없는 내일을 애타하던 그때, 갑자기 공부하던 남편이 법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내에게 "돗자리를 챙겨 따라오라"며 앞장서더라는 것. 매일 법전만 파고 있으니 자기도 답답해서 어디 물 좋은 곳에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고 내심 부인은 반가웠다고 한다. 

그래서 앞장 서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쫓아가니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사는 옆 동네 철거촌. 1987년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이 확장되던 그때, 서울 돈암동에서는 철거민들의 싸움이 치열했다. 당시 고시생이었던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웃었다. 고시 공부하다가 뜬금없이 찾아간 곳이 전혀 상관없는 남의 동네 철거민 농성장이라니. 

그 후 고시생 이덕우는 공부를 하다가 자주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찾아 갔다고 한다. 그리고 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부부가 앉아 철거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불렀다고 한다. 이덕우 변호사의 부인은 "덕분에 그곳에서 민중가요를 배웠다"며 웃었다. 그런 사람이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연수원에 들어간 때는 1987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가는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인권 변호사로서 들어선 첫 계기는 그곳 연수원에서 '인권학회'라는 서클을 만들면서였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연수생들과 함께 인권 운동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그는 인권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훗날 '인권운동 사랑방'을 만든 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에게 받은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큰 획을 긋는 인권변호사로 일해 왔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연대를 하면서 늘 수임료를 받지 못해  '돈 못 버는' 변호사로 유명하다. 돈 많은 사람이 소위 변호사를 '산다고' 하는데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은 변호사 한 명 만나는 것이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덕우 변호사는 인권단체를 통해 함께해왔다.

그런 이덕우 변호사가 지금, 변호사 자격을 박탈 당할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 계기가 된 사건 역시 이덕우 변호사가 해오던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연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그 사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서울 대한문에서 집회를 할 때 일어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불법 행위에 이 변호사가 항의하던 중 발생한 일을 검찰이 문제 삼고 나서면서였다.

이덕우 최후진술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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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우 변호사는 진보정당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진보신당, 그리고 지금의 노동당까지. 보편적 복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중인 모습이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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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과 8월.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 집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이 과정에서 절망에 빠진 해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해고자의 복직을 촉구하고자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불청객이 있었다. 경찰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날에도 경찰은 신고된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합법 집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경찰의 집회 방해 행위를 놓고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이 경찰의 팔을 잡아 끄는 등의 행위를 했다며 형사 기소했다.

그리고 이어 검찰 측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자신들이 기소한 변호사들을 징계해 달라고 청구한다. 이번 기회에 각종 공안사건에서 눈엣가시처럼 활동해온 인권 변호사들을 억압하겠다는 과도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검찰로부터 이들 변호사들의 징계 청구를 받은 대한변호사협회는 징계 결정을 형사재판 결과 후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지난 7월 6일.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0월 불구속 기소된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명에 대해 검찰이 1심 구형을 내렸다. 이 날 검찰은 이덕우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을, 김유정(35), 송영섭(43) 변호사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1년 6월을, 그리고 김태욱(39) 변호사에 대해서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들 변호사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민변 측은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헌법상 기본권과 법치주의 수호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면서 "검찰이 이들 변호사들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집회 장소의 1/3을 차지하면서 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기소해야 마땅하다"며 강력 비판했다.

그리고 이날, 1987년 사법고시 합격 후 지금까지 누군가의 억울함을 변호하고자 25년간 섰던 변호인석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이덕우는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최후 진술을 남겼다. 

"변호사 등록 취소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되자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 그리고 일부라도 보았던 여러 사람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정성이 모자라지 않았는지 성찰하였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났던 이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 사건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저는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이날 이덕우 변호사의 최후 진술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검찰이 처음 자신을 형사 기소한 날, 이덕우 변호사의 첫 마디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그의 말.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해고, 광우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그리고 이라크 파병 등을 반대하고자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시민들이 기소되고 처벌 받았다"며 "그러한 수많은 촛불 중 하나로 우리 변호사도 인정해 줬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이덕우, 그는 무죄다

이덕우 변호사의 말에서 나는 잊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정희 유신 독재하에서 조작한 '민청학련' 구속자 김병곤씨의 최후 진술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병곤씨는 이철, 유인태, 황인성 등 같은 구속자들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유신 독재하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는데 누구들 두렵지 않을까.

그때 민청학련 구속자 중 가장 어린 사람이 서울대 상대 출신의 71학번 김병곤씨였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 진술을 위해 피고인석에서 일어선 김병곤씨의 첫마디는 눈물속에 공판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김병곤의 첫마디, "영광입니다"였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사형이라는 영광스런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김병곤씨가 사형을 구형받은 유신독재시대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흘렀지만 민주주의 현실은 또 다시 역류하고 있다. 그 엄혹했다던 유신 독재하에서도 다행히 김병곤은 사형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검찰은 '변호사 신분에 있어서는' 사형과 다르지 않은 징역 2년을 이덕우 변호사에게 구형했다. 만약 이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다면 우리는 '인권 변호사' 이덕우를 잃게 될 것이다. 변호사가 금고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이덕우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오는 24일 오후 1시 50분. 이날 서울 중앙지방법원 합의 28부 재판부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나는 주장한다. 

이덕우 무죄! 김유정, 송영섭, 김태욱 각 무죄!

이덕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4인의 무죄를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해달라. 우리의 염원과 기도가 이 나라, 메말라 버린 민주주의의 땅에 단비로 내릴 때까지 함께해 달라. 나는 정의와 진실이 바로 잡히는 그날까지 '인권을 위해 끝까지 싸운'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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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길 키리바시, "마지막 한 조각 땅 살리겠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7/22 11:14
  • 수정일
    2015/07/22 11: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수 2015. 07. 22
조회수 14 추천수 0
 

인터뷰/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
불안한 기후난민 전락 원치 않아, 교육 통해 ‘존엄한 이주’ 준비 중
주권국가 포기 못해, 미래 식량확보 위해 피지에 24㎢ 땅 구입도

 

IMG_4365.JPG»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타라와섬 바이리키 지역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선학평화상위원회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인구 10만5000여명의 키리바시는 국토 대부분이 평균 해발고도 2m의 작은 산호섬들로 이뤄져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특히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2003년부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아노테 통(63)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제사회에 2050년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우리라 전망되는 자국의 실상을 알리며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어내려고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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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011__Photo-_Erin_Magee_-_DFAT.jpg» 키리바시 군도를 2011년 비행기에서 본 모습. 사진=Erin Magee/DFAT

 

이런 공로 등으로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 인도의 생물학자인 모다두구 굽타 박사와 함께 선학평화상위원회가 주는 제1회 선학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학평화상위원회 주선으로 키리바시 현지에서 아노테 통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15일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의 대통령 집무실과 집무실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사저에서 이뤄졌다.

 

IMG_7918.JPG» 아노테 통 대통령이 15일 집무실에서 동쪽으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사저 앞 바닷가에서 손녀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키리바시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어떤 상황인가요?

 

해안 침식 때문에 마을들이 사라지고, 밀려드는 바닷물로 담수 지역이 오염되고, 농작물 생산에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는 적도 주변에 위치해 허리케인 피해가 없었던 곳인데, 올해 3월 바누아투를 강타한 사이클론 팸으로 키리바시의 몇몇 섬에서도 많은 집들이 바다로 쓸려나가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이런 현상들은 키리바시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키리바시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해수면이 상승하더라도 계속 우리 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모든 섬들을 다 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지원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섬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국민들 일부가 이주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에는 재원이 없어 기후변화 대응의 많은 부분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달려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 인구가 이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Luigi Guarino.jpg» 키리바시 해안가 모습. 사진=Luigi Guarino,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래서 ‘존엄한 이주’라는 정책을 추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존엄한 이주’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시지요.

 

나는 우리 국민이 ‘기후 난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격이 내려가는 것이고, 존엄성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더라도 존엄성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 들어가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 그 사회에 부담을 주고 특별한 배려를 구하는 2등 시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존엄한 이주’는 우리 국민이 교육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시민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 피지에 약 24㎢의 땅도 구입하셨지요?

 

그 땅을 산 것은 미래의 식량 확보를 위한 투자입니다. 종종 ‘그 피지 땅에 국민들을 이주시킬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미래에 누군가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요. 피지 정부는 필요한 경우 우리 국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국제사회에 요구해온 인류애입니다.”

 

Erin Magee_DFAT.jpg» 티리바시에서 가장 높은 타라와의 해발고도가 3m임을 표시하고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이 섬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표지판. 사진=Erin Magee/ DFAT,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수면이 상승해도 키리바시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해결책, 예를 들면 섬을 높이는 것 같은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입니다. 한국 정부에도 기술진을 파견해서 검토한 뒤 해결책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데 문제는 비용입니다. 우리는 동원할 재원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와야 합니다. 키리바시의 문제는 매우 긴급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이주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권국가로서 키리바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어떤 형태나 크기로든 국가로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의 땅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국민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이주한 사람들이 ‘저기가 우리나라다’라며 가리킬 수 있는 땅은 남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바다에 막대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지구의 파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문제는 가장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기꺼이 자신들의 복지와 사치를 희생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Angela K. Kepler_Vostok_Island_AKK.jpg» 키리바시의 33개 섬 가운데 하나인 보스토크섬. 산호초로 형성된 낮은 고도의 전형적 모습이다. 사진=Angela K. Kepl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엔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현재까지의 협상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국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단 하나의 집을 가진 지구 시민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어떻게 될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영향을 줄까’ 이런 것들이 불행하게도 많은 토론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실 올해 말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합의되든 그것은 우리의 운명에는 아무 차이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두 배인 국가입니다. 한국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우리와 같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에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수익과 손실을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점은 이해합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겨울을 나느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을 너무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라와(키리바시)/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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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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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에 나서는 여승무원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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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 3월의 새벽이면 아직 어두웠을 시각. 그녀의 절망만큼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방에는 세 살짜리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는 그녀들은 억이 막힌 채 꺽꺽 소리를 내며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설움이 북받쳐 가슴이 막히는데 야단맞을까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슬픔도 체한다. 눈물에도 때가 있다.

울 땐 울어야 보내지고, 슬퍼할 땐 슬퍼해야 덜어진다. 누구보다 슬프고, 놀랐고, 같은 피해자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이 위로받아야 할 그녀들은 죄책감의 사슬에 발목이 패이도록 묶여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조여드는 수갑처럼 울면 울수록 심장을 파고드는 사슬. 내겐 금식씨의 죽음이 그렇다. 하필 일본에 있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추모제 한 번을 못 지내고 장례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죽음.

길에서 금식씨랑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따라가기도 하고, 상규형이 입원했을 때 금식씨한테도 알려야 하는데 생각하다 흠칫하고, 전체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요새 왜 금식씨가 안 보이지 무심코 생각하다 또 가슴이 선뜻해진다. 미처 이별도 못했는데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파기환송'에 내내 울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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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안고 다시 거리로 나온 KTX 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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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선고가 있던 날. 멀리 충청도에서 그녀가 왔더란다. '파기환송' 선고에 내내 울다가 눈물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아이 때문에 서둘러 다시 먼 길을 떠났다 했다. 그 모습이 그녀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따뜻한 인사라도 건넸다면, 모래알 같은 밥이라도 한 그릇 나눠먹고 헤어졌더라면 덜 아팠을까. 그랬다면 덜 미안했을까. 재판에 지면 물어내야 한다는 8640만원. 그 후 그녀들의 통화의 주제는 가압류니, 명의이전이니, 이혼이니 이런 사나운 단어들이 생경스럽게 오갔다.

불안하지만 간신히 지탱되던 일상이 발밑에서 다시 흔들리는 예감. 일상을 빼앗겨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지. 신들의 나라에서 지축이 흔들려 수천 명이 거대한 무덤에 묻힌 건 천재지변이었지만, 수백 명의 희망과 간절한 소망과 십년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건 인재였다. 약자의 마지막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법이라는 인재.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에서 상식과 정의를 외면한 참사.

2심에서 이기던 날. 그녀들은 말했다. 

"그동안 우릴 비난했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우린 시험쳐서 정규직이 됐는데 니들은 떼를 써서 정규직이 되려하냐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2년만 있으면 정규직 해준다고 약속해놓고 그 약속을 어긴 철도청은 마치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이었던 게 밝혀졌잖아요. 우리가 옳았다는 게 증명된 거잖아요."

그 기쁜 말조차 그녀들은 펑펑 울면서 했다. 그게 다시 뒤집힌 거다. 십년의 눈물이 외침이 절규가 외면당한 처절한 절망. 이제 어느 거리에 서서 어떤 말로 다시 외쳐야 하나. 얼마나 더 울어야 하나.

무죄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재판받으러 간 자리에서 법정구속이 선고되고 그 자리에서 철컥철컥 수갑이 채워지고 오랏줄에 묶이면 그럴까. 그 경우엔 그래도 형기라도 있다. 얼마를 살면 풀려난다는 기약이라도 있다. 기약없는 절망만큼 무릎이 꺾이는 일이 또 있을까. 저들은 그녀들이 각자 물어내야 하는 돈이 8640만 원이라고 살뜰히 계산했지만  25층에서 몸을 던진 그녀의 절망은 얼마치였을까. 십년세월을 잃고 세 살짜리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늦겨울 새벽의 25층 난간에 섰던 그녀의 슬픔은 얼마짜리였을까.

2년을 다니고 4년을 싸웠다. 그리고 4년을 기다렸다. 우리의 요구는 2년후에는 정규직을 시켜주겠노라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니 길어봐야 한 달을 넘지 않으리라 믿었던 싸움이었다. 경찰들에게 사지를 들려 끌려가기도 하고,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기도 했다.

건국 이래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의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가 사장으로 있던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참한 일들이 눈앞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졌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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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안부 묻는 KTX승무원 대법원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전 KTX 승무원에 대해 1·2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3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 조합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부당판결을 규탄하며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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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울었던 싸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던 싸움. 집회, 단식, 삭발, 천막농성, 점거농성, 고공농성. 안 해 본 게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졌고 1심에서도 이겼고, 2심에서도 이겼다. 같은 대법관(고영한 주심)에 의해서 파기환송당한 쌍차해고자가 그랬다. 차라리 쭉 지는 게 나을 뻔 했어요.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니까 정말 힘드네요.

이미 4개월이 지나 있었다. 뒤늦게 찾은 공원묘지. 그날은 공교롭게 내가 해고된 지 딱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생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차안에서, 기력이 딸리면 끊어졌다 한웅큼의 기력이 채워지면 다시 이어지곤 하던 큰언니의 울음소리처럼 비가 내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듯하게 늘어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묘지석들. 저 중에서 서른다섯살의 새파란 무덤을 찾아야 한다. 처음엔 꽃이 놓이고 화분이 놓인 '예쁜' 무덤들을 찾느라 무덤들 사이를 두 바퀴를 돌았다.

왜 그랬을까. 왜 무덤마저 예쁠 거라 생각했을까. 노숙농성의 와중에서도 늘 단정하고 모자 하나도 반듯하게 각 맞춰 쓰고 단체티를 입고도 저마다 반짝거리던 모습이 남아서였을까. 가장 쓸쓸하고 텅 빈 묘지. 거기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결혼식 때 찍은 걸로 보이는 손톱만한 사진. 분명 웃고 있는 사진이련만 빗물이 번져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2015년 3월 16일 졸. 대법판결 18일 후였다.

이름과 생몰 일시 외에는 텅 비어있던 묘지석. 10년을 외쳤으나 끝내 외면한 세상에 남긴 기나긴 침묵. 엄마를 기다리다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쓰러져 잠든 어린아이 같은 하얀 국화꽃이 그 쓸쓸한 묘비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존재를 부정당하고 영혼이 으깨지는 듯 했던 2월 26일의 대법판결은 잊은 채 훨훨 하늘로 갔을까. 피를 토하듯 울었던 그 무수한 눈물들은 다 마른 채 갔을까.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던 그 숱한 순간들은 다 내려놓고 갔을까. 죽어서라도 정규직이 됐을까. 생애 가장 벅찬 순간이었고, 온가족의 자랑이었던 승무원으로 죽어서라도 복직을 했을까.

올해 만 30년을 해고자로 사는 난 더 나이가 들어 혹여 치매가 오더라도 다른 기억은  다 잊어도 한진으로 가는 길은 안 잊을 거 같다. 30년 다니고 정년퇴직한 아저씬 치매에 걸리면 고향을 찾아갈테지만 5년 일하고 30년을 해고자로 산 나는 한진중공업을 근방을 뱅뱅 맴돌 거 같다. 우리조합원들마저 날 잊고 노동조합도 날 잊는다 해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살아있는 

단 하나의 세포. 그게 해고자다. 해고자는 그렇게 산다. 늘 미완인 삶.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삶. 편하고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삶. 어느 집 파스타가 맛있고, 어느 브랜드의 구두가 잘빠졌더라는 친구들의 수다에 문득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드는 삶.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먼 바다 홀로 동동 떠있는 섬이 되는 삶.

서른 넷에서 하나가 줄었으니 서른 셋. 그마저도 결혼으로, 육아로 형편과 마음이 여의치 않아 열댓명이 다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얼마나 서글프고 얼마나 신산스러웠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다시 서는 그녀들이 고맙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대로 일요일 오후 부산역엘 나가 볼 생각이다. 걸리적거리는 거 외엔 딱히 다른 용도가 없더라도 그냥 곁에 서 있기라도 할 생각이다. 멀리 충청도로 이사가 살면서 세 살짜리 아이가 딸린 그녀가 "낼 모레 부산역 일인시위에 갈께요"라고 마지막 카톡을 남겼다는 그 자리.

3년 전 가봤던 베트남 구찌터널을 그녀들과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작은 땅굴. 그러나 땅속은 개미굴보다 복잡하고 치밀했다. 몸뚱아리가 가장 작은 부피로 접힌 채 한참을 들어가 숨이 막힐 때 쯤 넓은 공간들이 나왔다.

땅속에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고, 회의실도 있고, 병원도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를 낳는 조산원이 있다는 것. 세상에 전쟁 중에, 그것도 땅굴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니!

놀란 우리에게 안내해주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삶이라고. 삶은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진다고. 전쟁엔 승패가 있지만 삶에는 승패가 없다고.

7월 24일, 그녀들의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그녀가 죽어서라도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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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 65 의무연대 생화학 실험실 존재"?

"용산 미군 65 의무연대 생화학 실험실 존재"?
 
탄저균 국민조사단, "박시장 용산 실험실 의혹 밝혀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7/22 [09:0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탄저균국민조사단이 용산미군 기지내 65연대 생화확 실험실에 대한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탄저균 국민조사단이 서울시가 용산미군기지내 생화학 무기 실험실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원순 시장이 탄저균 실험실 조사에 나서라고 밝혔다.

 

국민조사단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 탄조균국민조사단이 기자회견 뒤 박원순 시장에게 탄저균 실험에 대한 면담 신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서울시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 이정섭 기자


용산구 내에 위치한 미군 부대내에 있는
65의무연대 121 후송병원에서도 주피터 프로그램에 의해 생화학전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피터 프로그램 자료에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가 특정되어 있다면서 .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오산기지의 실험실은 1998년에 건설되었고, 용산과 군산은 정확히 알지 못하며 평택의 실험실은 현재 건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들은 용산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 전문을 게재한다.

 

[기자회견문]

 

박원순 시장은 용산미군기지 탄저균실험실 의혹을 조사하라!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서울시에 위치한 용산미군기지 내에 있는 65의무연대 121 후송병원에도 주한미군의 생화학전 실험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3년 한미 양국은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세계 최초로 국가 간 생물무기 대응 공조체계인 생물무기감시포털(Bio surveillance Portal, BSP) 구축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는 탄저·두창·페스트 등 10여 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감시·탐지·대비·대응하기 위한 한미 공조체계다.

 

2015년 5월 7일, 미국방산협회에서 진행한 <화생 방어능력 증강에 대한 포럼>에서 발표된 
주피터 프로그램 자료에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가 특정되어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오산기지의 실험실은 1998년에 건설되었고, 용산과 군산은 정확히 알지 못하며 평택의 실험실은 현재 건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들은 용산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은 반환 이후 공원이 들어서는 용산미군기지 내부 오염문제에 대한 서울시측의 조사요청이 거부될 경우,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었다"고 미군기지 오염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에 따라 서울시는 한미SOFA 환경분과위원회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기지 내부 조사를 같이 진행해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용산미군기지 탄저균 실험실 의혹에 대해서는 입장이나 자체 조사계획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방부는 2007년 용산미군기지 반환 부지 중 탄저균 실험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65의무연대 121후송병원 1만6245평을 잔류시킬 것을 요청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용산공원추진단 김병수 사업추진부장은 “잔류 미군기지나 미 대사관 부지로 공원이 줄어들지만, 이는 한·미간의 협약에 따른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용산미군기지가 반환되더라도 탄저균 실험실이 계속 잔류하는 끔찍한 상황이 조성된다.

얼마 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란트슈툴시에서는 시장과 시의회에서 탄저균 반입 사건을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에 대한 지자체 수준의 제재도 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러자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서울시도 적극적으로 용산미군기지 탄저균실험실을 조사해야한다.
탄저균 실험실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핵시설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급하게 용산미군기지 탄저균 실험실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착수하여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탄저균 국민조사단은 탄저균 실험실 의혹 조사에 관한 박원순 시장 면담과 공개간담회를 요청하는 바이다.

2015년 7월 21일
탄저균 국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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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밀반입을 막으려면


<칼럼>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유영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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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2  0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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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탄저균 불법 밀반입과 관련하여, 한․미 당국은 지난 7월 11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합동위 산하에 합동실무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한미 생물방어 협력과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5.27) 관련 사실관계 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JWG)’이 그것이다. 살아있는 탄저균 불법 밀반입 사실이 알려진 지 무려 40여일이 지난 뒤다.

탄저균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제1급(Category A)’으로 분류할 만큼 인간에게 가장 유해한 생물작용제(무기)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탄저균은 10kg 만으로도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세균이다. 그런데도 메르스에 대한 전 국민적 공포의 여파로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 문제가 묻혀왔다.

구성된 이 기구는 ‘조사단’이 아니라 ‘실무단’이다. 그 한계가 이름에서부터 뚜렷한 것이다. 활동 범위도 사실상 5월 27일의 밀반입 사건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및 재발방지책은 이달 중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와 이를 바탕으로 한 합동실무단 활동, SOFA 합동위 등을 통해 최종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미측의 자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합동실무단이 활동한다니. 게다가 이 기구에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는 소수이고, 그나마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배제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살아있는 탄저균 배송사건에 대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참으로 오만하고 뻔뻔한 태도다. 이는 주한미군이 두 여중생을 깔아 죽인 궤도차량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릴 때와 똑같은 주장이다. 이런 조건에서 합동실무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미측의 조사결과를 추인해주고 한미당국이 노력했다는 생색을 내는 것 밖에 할 게 없을 것이다.

SOFA 개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SOFA 합동위 공동위원장 간에 서명한 'Agreed Recommendation'(합의 권고문)을 개정할 모양이다. 한국 당국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미 소파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데, 고작 합의 권고문을 개정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미국의 한국 주권 유린과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시가 뚜렷이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탄저균 반입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의 시장과 주 총리가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고 하니 양쪽의 대응이 우리의 경우와 대비된다. 이와 함께 세월호와 메르스 대응에서 보았던 것처럼, 미국 뒤에 숨은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적극적인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미군의 탄저균 밀반입은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을 금지하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양도”를 금지하고 있는 생물무기 금지조약 위반이다. 또한 생물무기(작용제)의 “(개발)․제조․획득․보유․비축․이전․운송을 금지한 화학무기․생물무기 금지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기도 하다. 비록 한미소파 제9조 5항이 미군의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면제하고 있으나 세관 검사의 면제가 곧 미군의 한국으로의 물품 반입이 국내법 위반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근거는 없다.

오히려 한미소파 제7조에 따라 미군이 국내법을 준수하도록 한미소파를 운용해야 한다. 이에 국내법에 위배되는 탄저균과 같은 미군의 물품 반입은 한미소파 개정되기 전이라도 한미소파 제7조의 취지에 따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 등 폐기해야

일각에서는 한․미 소파의 개정이 주한미군 생화학무기 반입의 근본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 당국의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 그에 따른 작전계획과 훈련 등이 중단되지 않으면 한․미 소파의 개정은 생화학무기 반입과 실험을 합법화하고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2011~2012년에 사후대응보다 사전대응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생화학전 교리와 작전계획을 강화했다. 이후 한․미 군당국은 한․미 생물방어훈련 등 생화학전 훈련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주한 미2사단 제1기갑여단을 대신해 9개월간 한국에 순환배치되는 미3군단 예하 1기갑사단 제2기갑여단은 한국에 배치되기 전 미국 종합훈련소에서 집중적인 생화학무기 공격 대처 훈련을 진행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비한 방어무기의 개발과 훈련의 필요성을 들어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는 반인도적이고 불법적인 무기로서, 적국이 생화학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생화학무기로 반격하는 것은 불법적인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생화학무기에 대한 방어무기의 개발은 곧 공격무기 개발이 된다. 생화학무기 개발의 특성상 방어무기 개발은 공격무기의 개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 방어훈련은 그 자체로 공격훈련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등 생화학무기의 한국 반입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 진상조사단 구성, 주한미군 제23 화학부대 등이 훈련을 펼치는 영평 로드리게스 훈련장을 비롯한 생화학무기 실험과 훈련장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모든 지역과 장소에 대한 철저하고 성역없는 조사, 책임자의 처벌과 불평등한 소파 개정, 대북 공세적인 생화학전 교리와 전략의 폐기, 생화학전 관련 작전계획와 훈련의 중단이 필수적이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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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사태’ 안철수 시대 다시 여나?

“국정원 직원일동 성명은 정보기관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
 
임두만 | 2015-07-22 08:39: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 때 ‘안철수 현상’이란 정치쇄신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하지만 그는 정치경력 미흡에 따른 식견 부족과 정치권의 새 인물 견제라는 이중의 덫에 스스로 빠져 2선으로 물러났다.

▲12일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안철수 대선후보가 ‘부산에코델타시티 현안과 친수법폐지안’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성민 

이후 그는 새로 시작한다며 현안을 ‘정치 신인’의 자세로 접근했다. 그러나 한 번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버린 바람은 그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안철수에게 다시 기회로 볼 수 있는 사안이 터졌다.

의사출신, 그도 임상의가 아니라 연구직 의사인 안철수로서 ‘메르스 사태’는 물실호기였다. 하지만 안 의원은 이 ‘메르스 사태’에서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때문에 세간은 그를 ‘초선 안철수’로 보는 눈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정원에서 전 국민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는 의혹을 살만한 ‘해킹 의혹’사태가 터졌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지적했지만 이 사태는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도청사태’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다.

그리고 그의 소속당인 새정치연합에는 IT와 관련, 그만한 인물은 없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는 거의 당연하게 안 의원을 ‘진상조사위원장’에 임명했다. 새정치연합은 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로 명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안 의원이 받은 직책의 풀네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안 위원장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에서 전문가의 자질을 유감없이 내 보였다. 그는 이 기자회견에서 “국가정보원이 구매·운용한 해킹프로그램인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의 모든 로그파일을 포함한 7개 분야 30개 자료를 국정원 및 SK텔레콤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본 컴퓨터가 타깃 단말기를 어떻게 해킹했는지, 무엇을 해킹했는지 모든 정보가 로그파일 형태로 남는다”고 해설하면서 ‘로그파일’을 핵심 자료로 지목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국정원과 SK텔레콤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로그파일을 분석하면 타깃 단말기의 모델명, IP주소, 통신사, 접속일시를 알 수 있고 이 정보를 통신사에 문의하면 타깃 단말기의 소유자를 알 수 있다”며 “결국 로그파일을 분석하면 (해킹 대상이) 국내 민간인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국정원이 “내국인은 해킹하지 않았으며 사찰하지 않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직원 임모씨의 유서를 바탕으로 매우 공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데 대한 반격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모든 공작은 플랜A의 실패에 대비해 플랜B, C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기본”이라며 RCS 외에 핀피셔, 페가서스, TNI, RAVS 등 유사 해킹프로그램 구매 및 운영에 대한 자료 제출도 요구했다. 또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훼손한 디스크 원본, 복구한 파일, 해당 직원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서와 감사 조사서도 제출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안 위원장은 “국정원이 악성 프로그램을 심은 국내 IP 주소 휴대전화 3대 관련 자료를 SK텔레콤에 요청한다”면서 "응하지 않는다면 검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해킹팀과 국정원이 주고받은 이메일 일체, 국정원 예산 품의서, 새누리당에만 보고하는 국정원 정보원 및 보고내용 일체까지 필요하다”며 “RCS 운용 관련 자료인 감청 단말기수 및 인원, 감청 내역 및 조치사항, 유사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개발 내역, 국정원 조사현장에서의 감청 시연, 운용 실무자 면담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안 위원장은 대통령 또는 법원의 감청 영장 개수 및 내역, 도감청 관련 내부 매뉴얼을, 해킹팀과 국정원을 중개한 '나나테크'와 이태리 회사의 접촉 경위, RCS 구입 경위, 납품내역 등을 요구하면서 “이들 자료는 구체적으로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국정원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SK텔레콤에 각각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안보상 필요하다면 정보위를 통해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구체적인 자료 요구 및 압박은 그가 안랩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바이러스를 잡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 위원장은 국정원 현장조사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대동하지 않고 국정원 현장에서 서너시간만 주고 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증거 은폐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료 제출과 청문회가 선행돼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이어서 자료 분석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해킹팀 유출자료 400기가바이트(GB) 분량에 새로운 사실이 없는지 파악 중”이라며 “이번 주 내로 진행상황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 누구나 의혹을 가질 만한 합리적 의심에 대해 국정원은 근거없는 의혹으로 매도하고 자해행위로 규정했다”고 질타했다. 그리고는 “국정원은 진실규명 노력을 정치공세로 몰아세우는 공작을 멈추고 자료제출 요청에 성실히 임해달라”고 촉구했다.

따라서 이번 국정원 해킹사태를 통해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값이 다시 높아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시작은 매우 당차고 확실하게 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이 사태를 대하는 ‘정치인’적 자세도 칭찬할 만하다.

그가 회견에서 “국정원과 여당은 정쟁을 중단해”라”고 말한 것은 여당이 정쟁으로 진상조사를 방해하려는 작태를 견제한 발언이다. 또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인데도 매우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그 사례로 “정보기관으로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인 ‘국정원 직원 일동’ 성명 발표”를 들었는데 이는 국정원이 정보기관이 아니라 권력기관임을 지적한 것으로서 “국정원은 요구한 자료에 대해 성실히 임해달라”고 하는 등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또 자신은 “제대로 일하는 국정원 만들기 위해 위원장을 맡았다”며 정쟁할 뜻이 없음도 언급했다. 즉 철저히 전문가적 입장에서 국민을 위해 조사에 임할 것이란 행보로 볼 때 안 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국민적 각광을 받을 것인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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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당신을 찾는 방법…처음엔 코 다음엔 눈

 
조홍섭 2015. 07. 20
조회수 2257 추천수 0
 

50m 밖서 후각으로 이산화탄소 감지, 시각으로 목표 찾아

1m 안쪽선 체온과 체취로 표적 결정…눈에 띄는 옷 피해야

 

Aedes_aegypti_biting_human.jpg» 모기는 먹이를 찾아 무작정 날아다니지 않는다. 주도면밀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전략을 채용하기 때문에 모기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모기행동을 실험적으로 연구한 결론이다. 사진=실험에 쓴 것과 같은 종의 이집트숲모기, 사진=미국 농우부

   
모기는 포유동물이 호흡할 때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피를 빨 목표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람에 쉽사리 흩어지는 이산화탄소를 멀리서 감지해 그 원천에 접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수수께끼를 정교한 실험장치로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플로리스 반 브뤼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모기가 후각, 시각, 열 감각 등을 목표물과의 거리에 따라 별도로 동원해 숙주를 찾아낸다고 밝혔다. 
 
풍동에서 배고픈 암모기를 2만 번 이상 날리면서 3차원 위치추적 장치를 가동해 진행한 실험에서 드러난 모기의 행동은 이렇다.

 

fig.jpg» (a) 모기가 바람을 거슬러 날며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는다. (b) 바람에 흩날려 냄새를 놓친다. (c) 지그재그로 비행하며 냄새를 찾는다. (d) 눈에 띄는 물체에 접근해 본다. (e)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눈에 띄는 물체에서 체취를 맡는다. (f) 체온을 감지한다. 열, 습기, 냄새를 추적한다. (g) 충분한 단서가 확보되면 기회를 노려 목표에 내려앉아 흡혈한다. 그림=반 브뤼겔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먼저, 모기가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으면 위로 솟아오른 뒤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냄새를 지그재그로 비행하면서 추적한다. 모기는 50m 밖에서도 이산화탄소를 감지한다.

 

이산화탄소를 찾아내 여기에 자극받은 모기는 이번엔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물체를 탐색한다. 모기는 5~15m 떨어진 곳에서 시각을 이용해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처음부터 시각을 동원하지 않는 까닭은 엉뚱한 물체를 표적으로 삼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때 주변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물체가 포착되면 이에 접근한다. 1m 안쪽으로 접근한 모기는 체취나 체온, 습기로 최종적인 공격 대상을 정한 뒤 기회를 노려 내려앉아 피를 빤다.

 

Vlieg _Muggensilhouet_2.jpg» 유리창에 앉아 쉬고 있는 모기. 모기를 피하려면 눈에 띄는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사진=Vlieg,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후각, 시각, 열 감각을 독립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감지해 반응하는 모기의 숙주 탐색 전략은 “약오를 정도로 강력하다.”라고 밝혔다. 모기를 피하기 위해 숨을 완전히 참을 수도 없지만, 설사 체온을 낮추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더라도 옆 사람의 호흡이나 시각적 단서마저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문은 “모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위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책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밝은 셔츠처럼 눈에 잘 띄는 옷을 입지 않거나 그런 사람 옆에 있는 것도 방법이다.
 
연구자들은 단속적인 냄새 단서에 이어 안정적인 시각 단서로 먹이를 찾는 행동이 모기뿐 아니라 초파리, 박각시나방 등에서도 나타나, 이것이 곤충 일반의 오랜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최고 위험 동물' 모기, 왜 내 피만 좋아할까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an Breugel et al., Mosquitoes Use Vision to Associate Odor Plumes with Thermal Targets, Current Biology (2015),
 http://dx.doi.org/10.1016/j.cub.2015.06.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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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당국 대화제의 거부, 8.15대회 일방 결정

8.15행사, 서울·평양 교차방문 ‘쉽지 않을 듯’<초점> 北, 당국 대화제의 거부, 8.15대회 일방 결정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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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9: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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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 모습. 남북해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마지막 8.15민족공동행사가 되고 말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근 남측 당국의 연이은 회담 제의를 ‘추악한 정치적 농락물’이라며 거부한 북측이 20일 ‘조국해방 70돌 기념 민족통일대회’ 방침을 밝혀 그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올해 6.15 민족공동행사를 함께 추진했던 남측 민간 ‘광복70돌, 6.15공동선언발표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광복70돌 공동준비위원회)’가 올해 8.15민족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되 남쪽 행사에 북측 인사들을 초청한다는 방침 아래 북측 준비위원회와 실무접촉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발표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측은 이날 <노동신문>을 통해 올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조국해방 70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진행되며, 대회는 백두산에서 ‘자주통일대행진’출정식을 시작으로 평양과 판문점에서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환모임, 자주통일결의대회’ 등 행사가 펼쳐진다고 밝혔다.

대회에는 해내외 각 계층 대표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지지하는 세계 인사들이 참가하며, 참가를 희망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민족통일대회는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전체 조선민족의 드높은 기상과 의지를 힘 있게 과시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김정은 원수님의 영도 따라 뜻 깊은 올해에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와 신심에 넘쳐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9일 발표한 서기국 보도를 통해 국방부가 초청한 제4차 서울안보대화(SDD)와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남북 국회의장회담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조평통은 “북남대화가 열리고 북남관계가 진전되자면 무엇보다 마주앉을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한다”며, “이제라도 대결정책을 버리고 이미 북과 남이 합의한 북남공동선언들을 인정하고 이행하겠다는 입장부터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이날 <통일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 오늘 북측 기류로 볼 때 조만간 남측 민간과 8.15행사에 대한 접촉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계획을 확정한 북측이 일방적으로 통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8.15 계기에 남북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금의 상황전개가 20년 전인 1995년 북측 주도로 판문점에서 진행된 '8.15대축전'과 '8.15대민족회의' 개최 당시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광복50주년 행사는 남북 당국간 협의가 깨지면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범민족대회, 범청학련 1차회의, 통일음악회 등이 ‘분단50년을 통일의 원년으로!’라는 구호아래 진행됐다.

정낙근 여의도연구소 정책연구실장도 이날 “북측이 집중하는 10.10. 당창건 70돌까지는 정부 측 회담제의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 대표단이 교차방문하는 것은 파격적이긴 한데 지금 분위기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정 실장은 남북 당국간 대화가 교착을 면치 못하는 현재의 상황은 양측 모두 적극적인 대화 제의를 건의할 수 있는 실무그룹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순수한’ 남북교류와 ‘진정성’있는 북측 태도 등을 유난히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대담한 대화제의가 나오기 어렵고 이를 북측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대담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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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 된다면 새로운 대한민국 열릴 것"

 

[한의대생과 만난 이재명 성남시장①] 공공의료와 청년배당 문제

15.07.20 20:43l최종 업데이트 15.07.20 21:4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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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만났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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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이 가천대학교 한의대 학생들과 만났다. 이번 만남은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차기 정치지도자로 주목받는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성사되었다. 한의대 학생들은 이 시장을 직접 만나 그가 추진하는 정책과 정치 철학, 미래의 꿈 등을 듣고 싶어 했다. 학생들의 바람을 전해들은 이 시장은 일정을 취소하고 시간을 냈다. 

13일 오전, 시장 집무실에서 이 시장은 한의대생과 1시간30여 분 이상 대화를 나눴다. 학생들이 묻고 이 시장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자치단체장을 처음 만나는 한의대 학생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 시장이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간간히 농담을 섞으면서 분위기를 띄웠기 때문이다. 이 시장의 거침없는 입담에 학생들은 종종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만남은 가천한의과대학 학생회, <오마이뉴스>, 문턱없는 한의사회가 함께 마련했으며, 권용민(본과 3년 휴학 중, 전 학생회장), 강세현(본과 2년, 부학생회장), 서남현(본과 2년), 장재훈(본과 2년), 권태우(본과 2년) 학생이 참여했다. 허우영(가천 한의대 졸업, 레지던트 3년차) 한의사가 참관했다.

대화가 끝난 뒤 학생들은 "시장님은 재미있는 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허우영 한의사는 "학생들 질문이 좀 더 공격적이었다면 (대화가) 훨씬 더 역동적이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정부, 무상공공산후조리원 황당한 이유로 반대"

학생들은 이 시장에게 메르스 사태,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무상산후공공조리원에 대한 질문과 함께 논란이 되었던 가수 유승준 입국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학생들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도 물었다. 

또한 학생들은 이 시장이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차기 정치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점에 주목,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 여부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물었다. 이 시장은 학생들의 질문을 피하거나 에두르지 않고 소신 있게 답변했다. 

이 시장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 "국방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 전염병에는 돈을 쓰지 않아 메르스를 막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며 "한 마디로 국가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남시의 메르스 대책에 대해서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성남시가 추진하는 무상공공산후조리원에 대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저출산을 극복하고 서민 경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것인데 정부가 황당한 이유로 반대한다"며 "(정부가) 불합리한 태도를 고수하면 지방정부의 주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법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는 강경한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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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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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의 정치인생 출발점은 성남시립의료원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민운동을 했고, 공공의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2004년 3월에 성남시의회에 상정된 '시립병원설립조례'가 47초 만에 부결되면서 이 시장의 정치 인생이 시작됐다. 이 시장은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수배자가 됐다. 

수배자가 된 이 시장은 피난처에서 시장 출마를 결심한다. 이 시장은 그 날을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였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11월, 성남시장으로서 시립의료원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라서. 2017년에는 성남 시립 공공의료원이 탄생하게 된다."

"공공의료, 국민보다는 의료 기득권자 보호 경향 강해"

이 시장은 이날 우리나라 경제와 공공의료의 문제점 등을 짚고 해결방법까지 제시했다. 또,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이 시장은 "공공의료가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지킨다는 생각보다는 의료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힐난했다.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국가, 특히 보건복지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국민이 관심 없으면, 자기들 편익만 위하게 된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지방정부라도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이 시장은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 기회 등의 불평등·불공정과 이윤의 지나친 쏠림현상으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등을 꼽았다. 이 시장은 "국가가 불평등·불공정, 부의 쏠림 현상을 없애야 이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국가가 힘센 사람 편에 서 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이 시장은 활력을 잃은 경제가 청년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청년 인턴십 확대, 해외 취업 지원 등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을 "언 발에 오줌 누기, 돈만 낭비하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성남시에서 추진 중인 '청년 배당'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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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만났다.
ⓒ 고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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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배당은 말 그대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소득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성남시는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 취업 준비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허비하는 시간, 즉 기회비용을 줄여주는 조치로 청년 배당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시장은 청년 실업을 비롯한 청년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바로 투표다. 정치를 바꿔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청년들은 정치적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착취하기 쉽고 정치적 배려도 안 한다"며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투표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의 가난한 어린 시절도 한의대생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시장은 "무척 가난했다고 알려진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는 장재훈(가천한의대 본과 2년) 학생의 질문에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시원하게 풀어 놓았다. 

이 시장은 이날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대선 후보로 거론될 만큼 인기가 있는 비결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밝혔다. 이 시장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될 가능성은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 비정상, 불공정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면 공정한 질서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기회를 누리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다."

☞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기사 보기

이어지는 기사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가천한의대 학생들이 나온 대화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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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이 유서를 ‘방패’ 삼는 국정원과 여당

‘국민적 의구심’이라는 화살 막아낼 수 있을까?
 
육근성 | 2015-07-20 14:29: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 기밀이어서 확인해 줄 수 없다… 사안마다 이런 식으로 무겁게 함구해오던 국정원. 이번 해킹 의혹이 터지자 달라졌다. 너무 입이 쌀 정도다. 즉각적인 해명. 이뿐만 아니다. 야당에게 어서 와서 현장조사를 하라고 먼저 제안도 한다. 음지의 국정원이 양지로 나온 꼴이다. 여느 평범한 기관이나 기업처럼.


직원 목숨값으로 국면 돌파? 유언장이 방패?

조급해 하고 마구 서두른다. 뭔가 있다는 얘기다. 당당하다면 저럴 리 없다. 그러면서 직원이 남긴 유서 한 장으로 의혹 전부를 덮으려 한다. 직원의 목숨 값과 의혹을 맞바꾸겠다? 참 ‘해괴한 거래’다. 여당은 한 술 더 떠 야당을 ‘살인자’로 규정한다. 야당의 지나친 공세가 그 직원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 지는 게 인간의 정서다. 이 점을 노리는 모양이다. 유서가 공개되자마자 보도가 쏟아졌다. 편향성이 강한 보수방송과 종편은 ‘도배질’로 화답했다. 유서가 보수언론의 카메라에 박히자 반응이 일어났다. 유서가 ‘방패’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방패’, 통할까? 아무튼 유서의 내용은 모순투성이다.

1. “죄송합니다” 무엇이? 왜?

유서는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 그래, 자살이 맞다 치자. 그렇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무언가에 대한 죄송함’때문이어야 한다. 죽을 만큼 죄송한 게 뭘까? 유서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다. 죽음을 택한 이유가 자신의 과오일 경우 유서에서만큼은 참회의 심정을 고백하는 법인데… 뭐지? 그의 유서에는 이런 게 없다. ‘죄송함’이 죽음을 택한 이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2. ‘내 잘못 아니다’라는 항변도…

“큰 논란”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탈리아 ‘해킹팀’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자료 등이 공개되며 불거진 사찰 의혹을 그렇게 불렀다. 솔직한 변명도 등장한다. “업무에 대한 열정…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 열심히 일하며 책무를 다 하다가 불거진 ‘사건’일 뿐이라는 강한 항변이 행간에 또렷이 숨어있다.

3. 잘못한 것 없다, 그래도 죽어야 한다?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 임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죽음을? ‘내국인과 선거 사찰’에 대한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극단의 선택을 했다니…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이런 말이 된다. ‘잘못한 것 없는데 그래도 죽어야 한다.’ 이거 영 앞뒤가 안 맞네! 정말 자살 맞나?

4. 결백 입증할 증거를 제 손으로 인멸?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 그러면서 자료는 삭제. 아무 잘못도 없는데 경찰을 보자마자 줄행랑치는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하다. 잘못한 게 없다면 그 자료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것을 지워버렸다고? 아, 진짜! 말이 되게 얘기하자.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자료를 삭제했다.’ 이러면 말이 된다. 아주 부드럽고 순리적으로.

삭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①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②대테러, 대북공작에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파장’은 뭐고 ‘오해’는 또 뭐지?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이기에, 오해를 일으키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목숨을 던진 걸까? 뭔가 있다는 걸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다. 얼마나 대단한 자료이기에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지우려한 걸까?

5. 자료삭제(증거인멸)이 단순 실수?

자료를 삭제한 행위를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라고 말했다. 한 조직의 중간간부이자 한 분야의 베테랑인 그가 저렇게 말하다니. 그와 그의 팀이 수행한 업무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조직의 자산이다. 왜 ‘회사의 자산’을 훼손해야만 했을까? 자신의 업무를 회사에 비밀로 하기 위해 삭제했다는 얘긴가? 도통 말이 안 된다. 모순투성이다.

6. “우려하실 부분 전혀 없다” 우려의 주체와 대상은?

“이(자료삭제)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참 이상한 말이다. 무엇을 우려하지 말라는 건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아리송하다. 유서 제목이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이니 우려하는 주체는 ‘국정원’이어야 한다. 우려의 여부는 국정원장이 판단할 문제다. 그렇다면 국정원장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한 말인가? ‘나를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 달라’는 대국민 당부의 ‘말씀’으로 들린다.

7. 도둑질도 ‘일’… 이런 모순?

 

“저와 같은 일.” 유서에서 주장한 논조로 이 말의 의미를 풀어보자. ‘본연의 업무에 매진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비극’ 쯤이 되겠다. 이런!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죽음을 택해야 한다는 궤변이 생성된다. 혹여 ‘일’과 ‘열심’이라는 단어가 보편적 가치가 아닌 특정 틀에서 비틀려 해석되면서 생긴 모순이 아닐까? 도둑질도 누구에겐 ‘일’일 수 있다. 이 경우 도둑질 많이 하는 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된다.

8. 삭제된 자료 복원 ‘불가능’ 이미 밝혔는데…

“자료를 삭제했다”는 말이 곧 증거인멸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여론이 일자 새누리당이 나섰다. “단순 삭제이니 100% 복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유서는 ‘복원은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은 임씨는 이 분야 전문가다. 그런 그가 삭제를 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고까지 강조했다. 영구 삭제했다는 얘기다. ‘DEL’키만 누르고 “삭제했다”고 말했다면 아마추어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의 유언장. 그래도 여당과 국정원은 이것을 방패 삼아 국면을 돌파하려 한다.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린 방패로 ‘국민적 의구심’이라는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 구멍을 메워주겠다고 나선 보수매체들이 문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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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류에서 한국형 MLRS 등의 유도무기체계와 무인자율화 체계로 확대

 
2015.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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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방산업체들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디펜스 21 플러스의 기획연재는 한국우주항공주식회사(KAI)와 LIG넥스원에 이어 세번째로 한화다. 다른 한국 대기업들과는 달리 화약과 방위산업을 토대로 설립·발전한 한화는 방위산업에 특별한 애정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한국화약이라는 초기의 회사명이 보여주듯이 화약, 포탄등의 탄약류 무기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로켓 추진체, 한국형 MLRS 등의 유도무기체계와 무인자율화체계 등을 개발하면서, 이제 한화는 방위산업 관련품의 생산을 넘어서서  산하에 여러 연구센터를 거느리고 연구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화 본사에 이어 대전에 위치한 종합연구소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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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청계천로의 한화본사 사옥 건물 야경

 

  한국방산역사와 함께한 한화 -도전과 의리

 

  한화는 방위산업만 추진하는 기업이 아닌 종합대기업이다. 그러나 여타 대기업과는 달리  방위산업에 특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화라는 기업이 가진 역사적 배경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1952년, 대한민국에서 방위산업체를 지정하여 국방전략물자를 체계적으로 생산하기 훨씬 이전이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주)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한화 그룹 창업주 김종희 선대 회장은 화약 국산화가 외화절감과 국내 산업 중흥의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가 화약산업에 뛰어들 때 내건 구호가 ‘화약산업을 통한 사업보국(事業報國)’이다. 당시 김 회장은 일제시대 화약공장으로 건립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인천공장 부지를 정부로부터 인수해 정부 지원금 없이 선투자금으로 복구를 진행했다.
  이후 한화는 1956년 1월 최초로 Safety-Mite라는 초안폭약의 생산을 시작으로 1958년 5월 다이너마이트 시험생산에 성공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 생산국가가 됐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이어진 국가의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은 대량의 폭약을 필요로 했고, 다이너마이트를 국산화한 한화에게는 비약의 토대가 됐다.
  이어 여러 가지 화약류 및 화학제품들의 개발과 판매로 성장하던 한화는 1968년 1월 발생한 ‘무장공비침투사건’(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장비의 취약성을 느낀 정부가 수류탄 개발을 의뢰함에 따라 군용화약 개발 연구를 시작해 1969년 5월 독자적으로 수류탄을 생산 및 납품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부터 한국의 화약 메이커로서 그 위치가 공고해진다.
  1971년 11월, 한화는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연구자료를 토대로 방위산업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방위산업 진출 의지를 확고히 하는 한편 인천공장을 증설하고 방위산업개발본부를 본사에 설치했다. 1972년 6월 정부로부터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방위산업용 연구개발을 본격화한다. 그러나 자체 기술로 개발한 무연화약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으며, 1974년 국산화에 성공했던 Ball powder는 생산업체 선정에서 밀려 생산계획이 무산되는 등 한화의 방위산업 사업진행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생산공정 자동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인천공장에서 1987년 자체 기술로 에멀젼(Emulsion) 폭약의 국내 제조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고품질의 폭약류 생산에 들어섰다. 이후 전기뇌관/비전기뇌관 개발, 질산공장 준공, 화약 응용분야 개척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화약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최근 한화는 연구개발 인력을 약 2배가량 확충했는데, 이중 70% 이상이 석박사 인력이며 해외인재 역시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이는 현재 수많은 대기업이 방위산업에서 손을 떼는 추세에 비교해 볼 때 이례적이다. 한화는 이를 ‘신용과 의리’를 내세운 한화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 한화는 고용안정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는 2013년에 진행된 비정규직 2043명에 대한 정규직으로의 일괄전환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현재 한국 방위산업 여건상 한화는 가동률이 상당히 낮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유지 중이다. 이런 경우 핵심기술자 외에는 비정규직 인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화는 정규직원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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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개발한 육군의 최대규모 유도무기체계인 현무의 발사 장면

 

탄(彈)에 담긴 과학과 노력, 그리고 유도무기체계

 

 흔히들 탄을 단순한 무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대 전장에서 사용되는 탄은 원하는 곳까지 탄두를 이동시키는 추진기능, 정해진 지점과 시간에 정확히 폭발하는 신관기능,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가는 유도기능들이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최첨단 기술력의 종합체다. 한화는 40mm 고폭탄부터 230mm 유도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탄을 생산하고 있다. 
  총탄과 수류탄 등의 탄약류는 군인의 손을 떠나지 않는 무기인 만큼, 이러한 무기의 안전성은 대한민국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개발 및 납품 뿐만 아니라 품질관리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한화는 탄약류 품질관리에서는 선별적으로 진행하는 샘플조사를 안전검사 표준으로 채택하지 않고, 모든 생산품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전수검사를 한다.
 담당자는 “단 한 발의 불량품도 인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한화는 안전점검에 있어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본지가 방문한 대전연구소의 경우 넓은 부지에서 각 연구건물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었으며, 각 건물과 도로들이 흙둔덕으로 감싸여 있는 구조였다. 연구소 안내 담당자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한 구조라고 말했다. 건물마다 화약과 폭발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해당 물질들이 소재해 있으니 서로 떨어진 채 건설되었고, 흙둔덕들은 차폭벽 역할을 하며 나무들은 폭발력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탄약류 무기는 무기로서의 성능을 극대화해 강한 화력을 발휘해야만 하지만.  동시에 아군의 손안에서 휴대될 때는 ‘절대적으로 안전’ 해야 한다. 화력과 안전을 동시에 보장해야만 하는, 대단히 복잡하고도 어려운 무기가 바로 탄약류 무기다. 소총탄에서 순항미사일에 이르는 모든 화약 탄약 무기류는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화약무기 시대의 ‘무기체계’란 거칠게 말하면 감시장비 등을 제외한 공격용 장비들, 즉 대포, 전차, 전투기 등은 결국 화약/탄약무기라는 공격의 종말수단을 적에게 투사하기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과거 한화 방산부문의 주력산업이 이러한 재래식 탄약류 무기였다면, 현재 한화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유도무기 분야다. 유도무기는 정밀할수록 무기 내 컴퓨터, 메모리, 센서 등의 관리와 유지가 어렵고 발사 전 점검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정비가 소요되며 이는 비용상승으로 이어진다. 일반 재래탄은 이러한 소요가 없고 취급과 사용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전투기 파일럿은 일반적으로 비행중 중력이 9G 이상 걸리면 1분 이상을 버티기 힘들고, 블랙아웃 현상과 의식 상실 등이 일어나는데 현대전의 유도무기들은 발사 후 발사체에 평균 1만 5천G 정도의 중력이 걸린다. 유도무기의 구성품들 중 특히 전자소자 등은 고충격과 고중력에 견디기 어려우며, 유도무기들의 제한된 크기는 필연적으로 각 필수 구성품들에 대한 소형화 기술을 요구하는데 이는 기술적 난이도를 대폭 상승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한화는 일반적인 탄은 물론, 사거리 연장탄, 유도탄, 스마트 탄 등 현대전의 발전에 맞추어 지속적인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군이 운용하는 완성체 유도무기는 여러 개발사가 최종 납품하고 있지만 이들을 구성하는 추진기관, 탄두, 그리고 신관의 약 85% 이상은 한화가 생산한 구성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축적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화는 탄도탄 요격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의 핵심 요격미사일 중 하나인 L-SAM(장거리 대공 미사일)에 한화가 중심 역할을 맡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한화 대전 종합연구센터의 관계자는 “한화가 현재 L-SAM에 관련된 핵심기술을 확보했으며, 자세제어장치(DACS) 등의 기술분야에서도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협력하여 L-SAM을 개발할 때 한화가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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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국제항공우주 방위산업 전시회에 설치된 한화부스. 다연장로켓 천무와 각종 신형포탄 무선소나 등

 

한국 방위산업의 위기와 기회

 

  올해 초 방위산업 업계 전반에 걸쳐 큰 위기가 있었다. 각종 방산비리 수사 소식과 군의 무기획득 계획 변경등은 한국 방위산업 업계 전체를 움츠리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 방산비리에 따른 거액의 뇌물과 이권 등을 편향되게 보도하는 바람에 마치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나 보잉 등의 소위 ‘잘나가는’ 방위산업체들과 이미지를 겹체 보이게 되어 방위산업이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대 이권사업인양 비치게 만든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이윤은 보장되지만 큰돈은 못 버는 것이 바로 방위산업이다. 법적으로 국가는 방산업체에 9%~16% 내외로 이윤을 줄 것을 명시되어 있는 반면 업체는 모든 원가비용을 정부에 공개해야 한다. 초기 개발비는 대개의 경우 국가에서 기술용역 형식으로 제공해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산을 감안해 업체가 개발비에 있어서는 거의 이윤을 못 남기거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업체들로서는 애로사항이 많다.
  한국 방위산업체들의 애로사항은 사실 2009년 전문화·계열화제가 폐지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문화·계열화제’라는 명칭의 유래이자 법적근거는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제4조의3(전문화 및 계열화)이다. 해당 법률의 제1항에는 “정부는 방위산업을 합리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연구개발하거나 기술도입하여 생산하고자 하는 물자 또는 관련업체를 전문화하거나 계열화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도한 경쟁이나 중복투자 등을 배제하고 각 소요분야에서 적합한 업체를 선정하여 전문적으로 주문생산을 의뢰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국방비 절감을 꾀한다는 명분아래 전문화·계열화제가 폐지되었고, 이후 최저입찰제마저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업체간 경쟁이 심화됐고, 여기에 방산비리 수사가 진행되자 대기업들이 방위산업에서 점점 손을 떼게 되었다.
   2014년 11월 26일, 삼성그룹이 방산 2개사(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를 매각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한화는 이들 기억을 인수하고 연구개발(R&D)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실시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방산업체들은 점점 옥석으로 나뉘어 정리가 되어가는 시점이며 프랑스, 영국, 그리고 일본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알짜 산업들만 남았던 전례가 있다. 한화는 전문화·계열화제 폐지와 타 대기업들의 방산 분야 탈출 등의 위기를 직접 최첨단 유도무기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한국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기획되는 기동장비 개발은 공개가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주변국가와의 관계에 큰 문제를 유발시키지 않지만, ‘탄’은 살상무기라는 이미지를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공개가 어렵다. 이 때문에 한화로부터 수입한 탄의 성능 공개를 꺼리는 국가도 많다. 상술한 구성품 위주 납품과 맞물려 한화는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홍보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탄약/화약류 무기사업은 기업체가 스스로 홍보하기 민감한 사안이 엄존하기 때문에 한화쪽은 여타 제조업과는 달리 국가적인 차원에서 육성하고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조품을 대하듯이 단가 문제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국산화 여건 보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화는 한화대로 ‘전쟁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한국을 지켜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성화봉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된 데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공식 성화봉 공급업체로 지정됐으며,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발사기술을 적용해 서로 다른 세 장소에서 똑같은 모양의 연화(불꽃놀이 폭죽)를 연출하는 기술을 선보여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2000년부터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전액 부담해 개최해 오고 있다.  또한 보훈대상자에 대한 집수리 사업, 전역장병대상 취업 멘토링, 탈북청소년과 자전거 국토 종주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위산업체들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한화는 삼성으로부터 테크윈과 탈레스를 인수해 오히려 새로운 도약으로 가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원 디펜스21+ 기자 bittersweet04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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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왜 나이팅게일을 소환했나?

 
[서리풀 논평] 언제까지 희생과 봉사만 강조할 것인가
시민건강증진연구소2015.07.20 08:04:51
 
 
언제까지 희생과 봉사만 강조할 것인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란은 공포를 불러온 만큼이나 '미담'을 양산했다. 위험 앞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칭찬 받을 만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개인의 이타적인 행동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일선에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 의료인들의 노력이 컸다. 충분한 정보도 없이 경험하지 못한 질병에 대처하는 것이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을까. 직업 윤리만으로는 그 많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료 기관들의 노력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허술한 시스템과 엉터리 대처로 사태를 키운 데도 있으나, 많은 병원과 의원들이 힘을 모았으니 그래도 일이 이만한 정도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이익을 생각했을 그들 병·의원은 대부분 이름도 빛도 없는 익명의 기관들이다.

보건소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애쓴 수많은 공무원들도 있다. 이번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24시간 비상 체제를 유지하고 2교대로 주말도 반납한 채 메르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표현은 어디 한두 군데 보건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시민들이라고 빠질 수 있을까. 방역 당국의 조치와 지침에 한국 사람들만큼 잘 따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병원 쇼핑이다 뭐다 해서 환자들의 자세를 탓하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 침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 상황에서조차 사회와 공익 논리가 압도하지 않는가.

어느 사람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으니, 그만큼 많은 당사자들이 고생하고 헌신했다. 학교, 군대, 야구장이나 시장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이르기까지, 메르스는 온 국민을 동원했고 모든 시민의 자발성을 요구했던 셈이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더 번지지 않는 것은 "국민들의 관심과 관련 당사자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하고 넘기기에는 영 불편하고 찜찜하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익숙하다. 이웃과 공익의 이름으로 협력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것. 그러고 보면, 세월호는 물론이고 태풍이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투석실 근무를 자원한 간호사와 세월호 사건의 민간 잠수사가 무엇이 다를까. 요컨대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개인의 희생과 봉사.

마땅히 좋은 일이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때로 구조와 현실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우선, 공익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라는 것은 흔히 폭력적인 강요다. 나아가 기본적인 권리와 인권을 침해하는 일도 많다. 그 많은 미담으로 묘사된 의료인들의 '헌신'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만 봐도 그렇다.

7월 16일까지 메르스로 확진된 환자 186명 가운데에 병·의원 종사자가 39명으로 전체의 21%에 이른다. (☞관련 기사 : 메르스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사·간호사는 산재 신청을 할까?) 일부 의료 기관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보호 조치가 한 가지 원인이지만, 얽힌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의료진이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못하거나 하루 12시간씩 격리 병동서 장시간 노동을 했다는 것은 그냥 소문이 아니다. (☞관련 기사 : 메르스가 집어삼킨 병원, 그 속에 방치된 노동자들탈진해 쓰러지는 것은 빛나는 직업 정신이 아니라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가혹한 노동 조건이다. 자원 봉사자가 모여 모텔이나 고시원에서 숙박하면서 일을 했다지 않은가. 간호사가 방호복을 입고 7시간씩 투석실에서 '기꺼이' 일한다는 것이 '한국판 나이팅게일'로 상징된다. (☞관련 기사 : 한국판 나이팅게일 23명, 강동경희대병원에 모였다)

노동 강도와 감염의 위험은 어디로 가고, 영웅, 전사, 잔다르크, 사투와 같은 전쟁의 은유가 압도한다. 그리하여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면 생명과 안전이라는 (의료인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감염 의심자를 격리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 강제로 의심자를 격리하는 것은 반드시 인권 문제를 제기한다. 한 마을이 통째로 격리당한 순창군의 한 마을 주민들을 생각해 보라. 논에 물길 트러 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니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은 그냥 인권이란 말로 모자랄 것이다. 장관의 편지나 무료 건강 검진, 또는 성금으로 보상이 될까.

감염병을 막기 위해 의심자를 격리하는 것은 어느 나라 없이 논쟁적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인권이 필시 충돌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치열하고 날카로운 논쟁과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를 두고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이 큰 재앙 앞에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희생이 당연한 사회, 집단의 이익이면 기본권조차 완전히 망각되는 공동체는 메르스만큼이나 재앙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치료받던 에이즈와 결핵 환자들이 갈 곳 없이 강제로 퇴원을 해야 했다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관련 기사 : 메르스에… 병실서 쫓겨나는 결핵·에이즈 환자들)

병·의원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는 것도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어느 병·의원인들 메르스 사태를 가볍게 생각했을까. 현실의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환자와 스스로에 대한 조치를 (적어도 알려진 지침대로는) 다했을 것이 틀림없다.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을 이들이 희생해서 메꾼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스스로를 격리하거나 문을 닫은 의료 기관더러 모든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모든 재정과 경영을 알아서 책임져야 하는 민간 기관이 공익을 위해 나선 적극적 윤리라 봐야 한다. 개인의 직업 윤리와 전문직의 책임을 넘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정의와 사회 윤리의 문제라면, '희생과 봉사' 모델은 또 다른 사태를 맞을 때 재현과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문제도 포함한다. 같은 식으로는 현실과 실무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만약 민간 의료 기관의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음에는 환자를 피하고 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동기, 행동 원리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걸핏하면 동원되는 공무원들의 비정상적 업무도 마찬가지다. 24시간 365일 '비상' 체제는 그 말 자체로 모순이자 현실성 없는 구호일 뿐이다.

정의의 문제든 현실성의 문제든, 유난히 개인의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지체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은 한국은 바로 시장 자본주의의 한복판이자 꼭대기가 아닌가. 그런데도 봉건과 별로 차이도 없는 전근대적 윤리를 금과옥조로 삼는다면 분명 어떤 시차(時差)와 시차(視差, parallax)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비어 있는 곳에서 개인 윤리가 강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덕성과 윤리의 주체로 개인을 강조하고 그 속성으로 헌신과 봉사를 (자발성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 그러한 (후퇴하는)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다. 책임을 노골적으로 시장에 퍼 넘기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가 개인의 희생 위에 쌓아 온 한국 사회의 그 질긴 '애국' 담론까지 보태진다면.

그나마 약간의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이 메르스와 같은 공중보건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인구의 안전은 국가가 직접 그리고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당장은 끈질기게 시스템과 구조적 환경을 문제 삼는 것으로 '개인 윤리화' 경향에 대항해야 한다. 논란이 된 인력 문제만 해도 그렇다. 또다시 의사와 간호사의 헌신과 희생에 그리고 무슨 무슨 학회의 협조에 기댈 일이 아니다. 전문 인력이 확충되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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