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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리스크로 떠오른 이준석 대표

  • 기자명 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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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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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윤석열 대통령 향해 절제된 발언으로 혼선 멈추라는 요구 모여
미국 연방대법원 임신중지권 뒤집은 판결, 국내 상황에도 관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 의혹을 중심으로 불거진 여권 내홍이 장기화되면서 ‘이준석 리스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간 회동설을 대통령실이 부인하면서 이른바 ‘윤심’도 이 대표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여당 바깥으로는 야당과의 갈등으로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면서 민생 문제가 뒷전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기자들과 간략한 질의응답을 나누는 ‘도어스테핑’을 두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전에 없었던 소통 창구를 확대했다는 데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윤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정부와 엇박자를 보이거나 혼선을 보였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신문은 관련 기사를 통해 대통령이 신중하고 절제된 발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해 온 판례를 폐기해 논란 일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현지시간 24일 대법관 9명 중 5명 다수 의견으로 이 같이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기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연달아 임명한 일이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째 입법공백 상태인 국내에 미칠 영향도 관심이다.

여권 ‘리스크’ 떠오른 이준석 대표, ‘윤심’ 둘러싼 갈등 격화

27일자 주요 종합일간지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친윤계’ 의원들의 비판적 입장이 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의 ‘친윤 “집권 1년차가 중요한데… ‘이준석 리스크’ 국정 발목”’ 기사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는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은 26일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 관련 증거인멸교사’ 사건을 둘러싼 당 윤리위원회 사태가 윤석열정부의 국정 운영에 악재가 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며 “당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사이에서는 ‘이 대표 측이 윤리위의 배후로 엉뚱하게 친윤 세력을 지목하며 당 내홍을 키우고 있다’고 보는 기류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6월27일 주요신문 1면 모음
▲6월27일 주요신문 1면 모음

이 대표와 당내 인사들간 갈등은 여러 갈래로 불거지고 있다. 동아일보(윤리위 앞둔 李 “尹과 소통” 강조…대통령실은 말 아끼며 거리두기)는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추천 관련해 안철수 의원과, 혁신위원회를 두고는 배현진 최고위원과 충돌하는 등 여러 사안에서 갈등의 중심에 있다고 지목된다”며 “친윤 진영 의원들은 27일 장 의원이 주도하는 미래혁신포럼에 모여 ‘반이준석’ 여론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친윤계와 대립 구도가 굳어진 이 대표가 ‘윤심’을 언급했지만, 대통령실이 선을 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최근 언론에 “이분들이 윤 대통령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했는데, 대통령의 당 운영에 대한 생각을 봤을 때 이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조선일보(이준석은 ‘尹心은 내편’이라는데…대통령실은 회동설 부인)는 “대통령실은 이달 중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비공개로 만찬 회동을 했다는 보도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며 “반면 이 대표는 “대통령과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만남이 있었느냐 등의 여부를 당대표 입장에서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통령과의 소통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원 구성조차 이루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겠다고 밝혔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법사위 양보 조건으로 내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참여가 ‘검수완박’에 동의하는 셈이라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6월27일 조선일보 사진 기사
▲6월27일 조선일보 사진 기사

경향신문 사설(민생 외면에 내부 갈등, 원구성 몽니까지 이게 집권여당인가)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편중 인사와 국정 독주로 민심을 잃고 있는데도 여당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 민심을 전하면서 국정을 원활히 이끌어야 할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50%를 넘지 않고, 여당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하면 국정 동력은 금세 소진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 경고했다.

동아일보 사설(野 법사위장 넘기며 조건 제시…與도 案 내놓고 협상하라)은 “민주당이 지난해 7월 합의대로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것은 약속 이행이란 점에선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고 반대급부를 요구하며 ‘27일 시한’ 등을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개특위 구성은 엄밀히 말해 원 구성과 무관한 문제”라면서도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속히 국회를 정상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민주당이 협상안을 내놓은 만큼 수정안이든 뭐든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 카드를 들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중하고 절제된 발언 하라’ 윤 대통령에 모이는 비판

윤 대통령이 출근길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는 약식회견이 윤 대통령식 소통법으로 꼽히고 있다. 27일 일부 신문은 이 자리를 통해 윤 대통령이 해온 발언이 혼선을 불러왔다면서 ‘신중하고 절제된 발언’을 공통적으로 촉구했다.

대표적 혼선 사례로 24일 고용노동부의 주52시간제 개편 추진 발표에 관한 발언이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이 노동부 발표를 두고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정부 발표를 뒤집었다는 논란이 일었고, 대통령실은 “최종안이 아니라서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한 것”이라 해명했다.

▲6월27일 한국일보 기사
▲6월27일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는 관련 기사(아침마다 각본 없는 도어스테핑, 국민 소통·정부 혼선 ‘양날의 검’)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정치적 공방의 빌미가 되기 십상”이라며 “전문가들은 도어스테핑이 파격적 형식 덕분에 새 정부의 상징이 됐지만, 형식 때문에 위험 요소도 많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 특유의 ‘직설 화법’은 대통령의 언어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일각에선 도어스테핑 횟수나 질문 개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며 “윤 대통령 스스로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고민이라고 한다”는 대통령실 내부 의견을 전했다.

일부 신문은 사설에서도 대통령의 ‘화법’을 문제 삼았다. 세계일보 사설(대통령 도어스테핑 혼란, 신중하고 절제된 발언 하길)은 “대통령이 출근길에 현안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며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 정리가 안 된 입장이 여과 없이 표출돼선 곤란하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불필요한 갈등과 혼선 등 야기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대통령은 신중하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사설(‘주52시간’ 혼선 부른 윤 대통령의 화법)은 “벌써 야당과 노동계에선 ‘주 52시간 무력화’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설득해 법 개정까지 가려면 대단히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왜 이런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나”라고 비판한 뒤 “윤 대통령의 주 52시간 발언은 불필요하고, 부정확한 정보가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앞으론 보다 신중하고 정제된 표현을 쓰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겨레 김진우 정치부장은 ‘소통과 독선 사이’ 제목의 칼럼(아침을 열며)에서 “대통령이 자주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것은 긍정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로 그쳐선 안 된다”며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판 여론을 수용하기보다 ‘마이웨이’를 강변하는 것은 ‘반쪽 소통’일 뿐”이라 지적했다. 이어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늘어난 대통령의 말들이 주로 무엇을 보여주는가이다. ‘옛 대통령과 싸우는 새 대통령’이지 싶다”며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의 자기 옹호나 항변을 듣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민심은 어느 순간 대통령이 앞으로 뭘 할 것인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묻게 될 것”이라 밝혔다.

美 임신중지권 무력화 판결, 기본권 뒤집기 신호탄일까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49년 전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었다. 향후 임신중지에 대한 합법 여부는 각 주의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미 일부 주에서는 임신중지권 불법화를 추진하면서 관련 예약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됐다.

▲6월27일 한겨레 기사
▲6월27일 한겨레 기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을 두고 “대법원에 의한 비극적 실수이자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실현”이라 강하게 비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 각국 정상이 이번 판결에 충격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는 1면에 ‘여성의 기본권이 부정당했다’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UN) 등 국제기구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번 판결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결정타로 작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겨레(‘보수의 선봉’ 된 미 대법…동성혼·피임권 다음 타깃 되나)는 “미국 대법원은 전통적으로 5 대 4 구도에서 한쪽이 근소한 우위를 점해왔다”며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 단임 기간에 종신직인 대법관을 3명이나 지명하는 기회를 잡았다. 3명을 모두 보수색이 매우 강한 50대로 앉혀 대법원에서 ‘보수 장기 집권’을 위한 ‘알박기’에 성공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교생 시절 성폭행 시도 논란에도 임명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라 설명했다.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개인 의견에서 1960년대 이래 형성된 피임, 동성 성관계, 동성혼 판례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의 판결에도 우려가 모이고 있따.

이번 판결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3년간 후속 입법이 지지부진한 국내 상황도 다시금 주목된다.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보완입법을 주문했지만 후속 논의는 추진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낙태죄 헌법불합치” 3년…입법은 멈추고, 여당은 ‘거꾸로’)은 “최근 집권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낙태법 개정안 입법 세미나가 잇따라 열리면서 임신중단권에 대한 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며 “보건복지부 등 소관 부처를 중심으로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보건의료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며 정치권도 임신중단권에 대한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나영 셰어 대표)는 당부를 전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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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경악... 이건 특별과외가 필요합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6/27 07:57
  • 수정일
    2022/06/27 07: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반도체의 또 다른 얼굴

22.06.27 05:41최종 업데이트 22.06.27 05:41
안녕하세요. 요즘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라면서 "교육부뿐만 아니고 전 부처가 인재양성을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달라"는 말을 했었죠? 참석한 장관들에게 "각자 더 공부해서 수준을 높여 달라. 과외선생을 붙여서라도 공부를 더 해서 오시라"는 말도 했다 들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반도체 팹에서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웨이퍼 팹 안에 정장에 구두를 신고 들어 가는 건 희귀한 경우입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과외선생이 필요한 건 대통령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도체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만 있었어도 청정도가 최우선인 반도체 웨이퍼 팹에 방진복도 안 입고 들어가는 실수를 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전 부처에 특단의 노력을 지시할 정도로 반도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알아 두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대통령님의 '과외선생'을 자청해서 이 글을 씁니다. 그래도 되겠죠?

'네가 누군데 감히 나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할까 봐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전 1988년, 삼성전자가 4메가 D램을 막 개발했던 그 해에 바로 그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도 국내외 반도체 회사에서 계속 일을 했고, 30년이 더 지난 지금은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유럽 반도체 회사의 싱가포르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경력이면 아주 자격이 없는 건 아닐 겁니다.

 대통령님에게 기본 상식을 알려 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반도체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분류

반도체 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분류는 제품에 따라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로 만드는 것이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제가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만드는 건 비메모리 반도체인데, 요즘은 주로 시스템 반도체라고 부릅니다. 인텔, AMD, 퀄컴, 엔비디아 등이 비메모리 반도체의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한국의 반도체 회사들이 메모리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을 보면 비메모리 시장이 70% 이상으로 더 큽니다. 한국 반도체 회사들의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약 3%정도로 그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 글로벌 시장분석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반도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 3위는 SK 하이닉스입니다. 한국, 반도체 강국 맞습니다. ⓒ 이봉렬

   
반도체 제조 방식에 따른 분류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회사는 어디일까요? 글로벌 시장분석기업 가트너의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021년 매출액 기준으로 1위입니다. SK하이닉스가 3위를 차지해서 한국이 반도체 강국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텔이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로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같은 회사가 따르고 있습니다. 상위 10개 회사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상위 10개 반도체 회사 중에서 실제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는 몇 개나 될까요? 절반인 다섯 개뿐입니다. 퀄컴, 브로드컴, 미디어텍, 엔비디아, AMD는 반도체 생산 시설이 없습니다. 반도체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회사들이 실제로는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이어서 설명하는 반도체 사업 형태에 따른 분류를 알면 이해가 될 겁니다. 

반도체 회사의 일반적인 형태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입니다. 반도체의 개발과 설계를 한 후 웨이퍼 팹(Fab : fabrication facility)이라 부르는 생산시설에서 직접 만들어 유통하는 형태입니다. 삼성반도체와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반도체 회사가 이 같은 형태였으나 기술력과 대규모 자본력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팹리스(Fabless)회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팹리스는 웨이퍼를 생산하는 팹이 없는 회사라는 뜻으로 반도체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고 생산은 나중에 설명할 파운드리 회사에 외주를 맡깁니다. 처음에는 기술력은 있으나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작은 회사들이 팹리스를 했으나, 지금은 AMD나 퀄컴 같이 큰 회사들도 기존의 팹들을 분리하여 팔고 팹리스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팹리스 업체에서 외주를 받아 반도체를 전문 생산하는 회사를 파운드리(Foundry)라 부릅니다. TSMC, 글로벌파운드리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회사이며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가트너의 반도체 업체 순위 조사에서는 파운드리 업체를 제외했지만, 매출액을 보면 파운드리만 하는 TSMC가 전체 반도체 회사 중 3위일 정도로 파운드리 사업의 규모는 거대합니다.

반도체 미세공정 경쟁 혹은 나노미터 경쟁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을 겁니다. 여기서 나노미터란 반도체 칩 속 전기 회로의 선폭을 말합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같은 크기의 칩에 더 많은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습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 1 정도됩니다. 3나노미터 공정이라고 하면 3억분의 1미터 정도 되는 전선을 반도체 칩에 새겨 넣는다는 말인데 이렇게 가는 전선을 이용하면 칩의 크기는 작아지고, 처리속도는 빨라지고, 전력소모와 발열은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이런 공정미세화 경쟁에서 가장 앞서는 회사가 TSMC, 삼성전자, 인텔입니다.

이런 미세공정을 적용해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 내부는 그야말로 먼지 하나 없는 청정구역입니다. 먼지 하나가 선폭의 몇 배에서 몇 백배까지 더 크기 때문에 먼지가 회로 위에 떨어지면 바로 불량이 발생합니다. '클래스 1' 수준의 청정도를 유지하는 삼성전자의 최신 팹에는 가로와 세로, 높이가 각 1피트(ft)인 정육면체 공간 안에 0.5마이크로미터 보다 큰 먼지가 하나 정도 있는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얼굴에 묻어 있는 화장품 가루가 떨어져서 불량을 만들까 봐 팹에서 일하는 여사원들 화장도 못하게 하는 정도로 관리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곳을 대통령님이 방진복도 안 입고 구두 신고 들어 갔으니 반도체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 반도체 웨이퍼 팹 안에서 방진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웨이퍼 품질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내부 조명도 노란색을 씁니다. 먼지, 기압, 습도, 조명까지 모두 일정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 웨이퍼 팹입니다. ⓒ 이봉렬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선두이니 앞으로 이 두 회사에 인력도 많이 공급하고 여러가지 편의도 봐 주고 규제도 풀어주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반도체 생태계에는 설계부터 웨이퍼 생산까지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합니다. 노광기를 만드는 ASML 같은 경우에는 장비 한 대당 가격이 수 천억원이 넘는데도 공정미세화를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반도체 회사들이 그 장비를 사려고 늘 줄을 서 있습니다. AMAT나 LAM 같은 장비 회사 역시 특정 공정에서 독점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장비 회사의 발전 속도에 따라 반도체 기술 전체의 수준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반도체 장비에 쓰이는 각종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로봇, 모터, 베어링, 전자기판, 센서…, 수많은 부품이 모여 장비를 구성하고 장비를 운영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많을수록 반도체 장비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웨이퍼 팹에 사람과 장비만 있다고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스, 케미컬, 금속류 등 생산에 필요한 수많은 원재료들이 필요합니다. 2019년 7월 일본이 주요전략수출품목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겠다며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을 규제 품목으로 정했는데 이 둘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꼭 필요한 케미컬류입니다.

이 사건 이후 반도체에서 소재 산업의 중요성에 모두가 눈을 뜨게 됐습니다. 가스, 케미컬 같은 소재, 반도체 장비의 부품, 그리고 반도체 생산 장비의 앞 글자를 따서 '소부장' 산업이라고 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면 좋겠네요.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이 있는 곳에 소부장 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반도체 설계와 관련된 특허만을 담당하는 기업(IP 기업), 팹리스 기업이 설계한 제품을 파운드리 생산공정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하우스, 팹에서 생산된 웨이퍼를 개별 제품으로 만드는 후공정 기업, 제조 공정에 사용된 부품을 세정 혹은 재생하여 다시 공급하는 기업, 중고 반도체 장비를 거래하는 기업, 팹을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기업… 등 수많은 형태의 기업들이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고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반도체 강국들이 반도체 생산을 직접하지 않는 이유1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한국이나 대만, 중국처럼 공격적으로 웨이퍼 팹을 짓는 대신 팹리스에 더 집중하는 것인지', '왜 파운드리 하는 회사들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 팹을 주로 짓는지' 같은 거 말입니다.

짐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입니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이 얼마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 TSMC 공장의 25년 제조 경험에 따르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비용이 대만보다 50%가량 많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 팹을 지으면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는 겁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 글로벌파운드리도 대부분의 팹이 아시아에 있습니다. 팹리스 업체들도 같은 이유로 자사 팹은 포기하고 아시아의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맡깁니다. 아시아국가에서 제조 비용이 낮은 이유는 인건비가 싸고, 안전이나 환경 보호에 들여야 할 비용을 상대적으로 적게 쓰기 때문인데 이건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두번째는 반도체 팹에서 일할 노동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계속해서 팹을 가동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은 교대근무를 하게 됩니다. 청정도 유지를 위해 기압을 높여 놓은 팹 안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뒤덮는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에 보안경까지 쓴 채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노동환경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팹 안에서 일하는 오퍼레이터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 새벽 3시에 회의를 소집해서 커피를 함께 마시는 걸 자랑스레 광고하는 삼성전자."휴먼테크의 목표는 인간행복"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 1991년 6월 3일 조선일보 1면 광고

 
1991년 삼성은 "새벽 3시의 커피타임 이야기"라는 광고를 신문과 잡지에 싣습니다. 16메가 디램 개발을 위해 연구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밤새 일한 걸 자랑한 건데, 이런 일이 처벌대상이 아닌 자랑거리가 되는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30년 전 이야기를 너무 우려먹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1984년도부터는 1년에 150명 정도 병역 특례를 줬는데) "얘들이 그야말로 군대에서 하듯이 밤새 일했다. 맨날, 월화수목금금금, 매일같이 십 년 정도 하니까 도가 트인 거다."


당시 그 회사에 다니던 저 역시 그 "얘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의 동기들은 대부분 병역특례를 받은 후 실제로 그렇게 일했고, 전 병역특례를 받는 대신 회사를 그만 두고 군대에 갔습니다. 사실 이건 노동착취와 다를 게 없는 일인데 임 전 사장은 2022년에도 자랑삼아 말하고 있습니다. 삼성 경영자들의 마인드가 지난 30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줍니다. 오퍼레이터든 엔지니어든 연구원이든 이렇게 "군대에서 하듯이 밤새 일"하는 노동자들을 미국이나 유럽의 팹에서 구하기는 힘들 겁니다.
 

▲ TSMC의 연봉이 다른 IT 대기업에 비해 낮아서 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 내용. TSMC 아래에 삼성전자가 보입니다. ⓒ FT 보도화면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스>는 "TSMC가 미국 인력확보 전쟁에서 힘든 상황에 부딪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미국내 TSMC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연봉도 적으며, 회사에 충성을 요구하는 기업문화도 미국과 맞지 않아 구직자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기사에는 TSMC의 연봉이 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미국 IT 대기업의 연봉을 도표로 만들어 넣었는데 비교 대상 중 TSMC보다 연봉이 낮은 회사는 삼성이 유일했습니다.

반도체 강국들이 반도체 생산을 직접하지 않는 이유2 

세번째 이유는 노동자의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공장 안에 가 봐서 알겠지만 반도체는 먼지 하나 없는 넓은 공간에 최첨단 장비를 갖춘 미래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반도체 팹은 전형적인 3D 현장입니다.

반도체 장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하지만 공정이 이뤄지는 곳(챔버라고 부릅니다)은 온갖 가스가 반응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상당히 지저분합니다. 식각 장비 혹은 CVD장비의 챔버를 열어 보면 화학 반응에 플라즈마 반응까지 이뤄진 공정부산물들을 볼 수 있는데 그걸 제거하는 엔지니어들은 반드시 방독면을 씁니다. 호흡기로 들어가거나 피부에 닿게 되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나마 장비는 깨끗한 편입니다. 장비와 연결된 펌프나 스크러버 같은 경우는 오래 사용 후 내부를 열어 보면 유해물질로 가득합니다.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러운 건 눈에 보이는데 위험한 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백가지가 넘는 유해가스와 케미컬을 사용하지만 각각의 물질들이 어디에 사용되고 또 얼마나 위험한지는 기업비밀이라며 잘 공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연구논문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2011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에 실린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공정 및 잠재적 유해인자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는 웨이퍼 팹의 환경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정에서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줄 수 있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물리적 유해인자를 유발하는 장치를 사용한다. 특히 웨이퍼 가공 공정별로 화학물질 교체, 장비 기계 교환 및 정비를 담당하는 정비 작업자의 유해인자 노출은 위험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 특성상 웨이퍼 가공은 수많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하므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가능성은 일반적이다. 또한 일부 공정에서는 자외선(포토), 라디오파(플라스마 식각, 금속증착 등), 엑스레이(이온주입) 등의 물리적 유해인자도 발생되므로 이에 대한 노출위험도 존재한다."

 

▲ 반도체 팹에서 일하던 황유미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그동안 숨겨지고 몰랐던 수많은 사망 사건들이 드러났습니다. ⓒ 박정훈

 
이러한 위험성은 보고서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 이야기는 들어 봤을 겁니다. 고인이 일했던 곳이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 3라인이었고, 저 역시 그 라인에서 3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황유미씨는 죽었고 전 운이 좋아 아직 살아서 이런 글도 씁니다. 황유미씨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나왔고, 이후 반도체 관련 직업병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2018년에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삼성전자가 공식사과까지 했습니다. 

하나 더 보죠.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10년간의 역학조사 이후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백혈병에 걸릴 위험성은 1.55배 높았고, 이 중 웨이퍼 팹 안에서 반도체 칩을 직접 다루는 20~24살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2.74배로 더 높았습니다. 백혈병 뿐만 아니라 위암이나 유방암 그리고 신장암 그리고 일부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를 자처하는 '반올림'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모를 겁니다.

마지막으로 환경문제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합니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 한군데서만 방류하는 물의 양이 하루 평균 6만톤에 이릅니다. 이는 인구 18만 명이 거주하는 경기 안성시의 하루 생활폐수와 맞먹습니다. 이 6만톤은 평택호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물은 주변 도시의 농업용수로도 쓰입니다. 
 

▲ 삼성전자는 반도체 팹에서 방류한 하천에 수달이 찾아 왔다면서 친환경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홈페이지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한 뒤 하천으로 배출하는 물 상태는 어떨까요? 농업용수로 쓰기에 안전할까요? 삼성전자는 자사의 반도체 공장에서 방류한 물이 흘러가는 오산천에 수달이 나타났다며 친환경적이라고 홍보를 합니다.과연 그럴까요?

지난 1월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106일간 최대 76만 3000 갤런(약 288만 8000리터)의 산성 폐수가 유출돼 인근 지류에서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환경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산업폐수 내에는 황산염과 과산화수소가 섞여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폐수에 수달이 찾아온다는데 미국에서는 왜 물고기가 폐사하는 걸까요? 수달은 삼성의 홍보 수단에 불과하지만 폐사한 물고기는 반도체 공장에서 방류하는 물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 미국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팹에서 산성 폐수가 유출돼 인근 지류에서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환경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Bloomberg 보도 화면

 
수질오염만 문제가 아닙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스들은 사용후 대기 중으로 배출이 됩니다. 물론 장비와 바로 연결해서 가스를 정화하는 1차 스크러버, 그렇게 걸러진 가스를 모아서 다시 정화하는 2차 스크러버를 거쳐 기준치 이하의 가스만 배출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스 정화시설이 충분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2006년, 부천의 한 웨이퍼 팹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의 유리가 부식이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두 대가 아니라 주차장에 있던 거의 모든 자동차에서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그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채 배출되던 가스들이 비를 만나 액화가 되었고,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케미컬이 떨어진 겁니다. 그 산성비를 맞은 차들은 모두 부식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대신 유리와 차체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습니다. 당시 그 회사에서 일했던 저 역시 차 유리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회사 주변 주택가의 차들도 유리가 부식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회사가 그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직원이 아닌 차주들은 피해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동차 유리를 부식시키는 산성비를 사람이 우산 없이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논밭의 식물 위에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날은 비가 와서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던 가스가 땅으로 떨어졌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자동차 유리가 부식되지 않았다면 정화되지 않은 가스가 한동안 계속 배출되었을 겁니다. 환경 문제에 훨씬 더 까다로운 규제가 있는 선진국에서 반도체 팹을 쉽게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온갖 가스와 케미컬이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반도체 팹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들여야 할 비용과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에 대한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와 위험성까지 설명했는데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간단한 퀴즈 하나 풀면서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보기 가운데 반도체 산업 관련해서 어떤 정책을 펴는 게 반도체 강국 한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올바른 선택일까요?

1.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수도권공장총량제, 주 52시간 근무제,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규제를 풀고,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재 혜택도 주고, 대학마다 반도체 학과를 만들어 인력 공급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

2.  종합반도체 산업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의 다양화를 위해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을 늘이고, 반도체 팹의 노동 조건을 지속적으로 조사해서 더 이상 반도체 노동자들이 암으로 죽는 일을 막고, 환경영향평가를 보다 철저하게 해서 한강이나 평택호로 흘러 가는 폐수는 안전한지, 반도체 건물 옥상 배기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가스가 인체에 영향이 없는지 확인한다.


반도체 기업과 기업의 광고에 목을 매는 언론들은 반도체에 대한 지원만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책 결정자라면 안전과 환경을 걱정하는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반도체에 대해 기본적이고 상식선에서의 정보를 이야기했을 뿐이니 다른 전문가의 의견도 많이 듣고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도 들어서 올바른 선택을 하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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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명목세율 비교 팩트체크가 불성실한 보도인 이유

  • 기자명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입력 2022.06.25 13:53
  •  
  •  댓글 1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새 정부의 첫 번째 경제 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핵심은 감세다. 법인세·재산세·종부세를 감세한다고 한다. 또한 주식 양도차익 과세 요건도 현행 10억원 주식 보유자에서 100억원으로 크게 상향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인세 감세다. 세수 감소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정책이 발표되니 언론에선 팩트체크를 한다. 가장 간단한 팩트체크는 한국 법인세율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이다. 문제는 팩트체크 내용이 사실상 틀린 것이다. 많은 언론에서 국회예산정책처를 인용해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인데 OECD 평균 21.5%에 비해 높다고 했다. 미국(21%)이나 일본(23.2%)는 물론이고 독일(15.8%)보다 높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는 부자감세가 아니라고 한다.

▲ 법인세 최고세율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법인세까지 고려해야 한다. 아시아경제 6월17일자 기사
▲ 법인세 최고세율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법인세까지 고려해야 한다. 아시아경제 6월17일자 기사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팩트체크는 틀렸다. 팩트체크를 팩트체크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부담정도를 비교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부에 내는 법인세율만 비교하면 안 된다. 한국은 중앙정부에 25% 내고 지방정부에 2.5%를 납부하니 총 27.5%다. 반면 독일은 중앙정부에 15.8% 내고 지방정부에 14.1%를 납부하니 총 29.9%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지방정부에 내는 법인세까지 포함해야 한다. 

[관련기사 : 한국은 진짜 미국보다 세율이 높을까]

그런데 진짜 문제는 법인세 명목세율 비교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명목세율은 법형식적으로 규정된 세율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 내는 세금은 명목세율이 아니다. 각종 공제, 비과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공제를 제외하고 기업이 실제로 내는 세금인 실효세율을 비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효세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일관된 기준은 없다. 연구에 따라서 한국 실효세율은 높게도 또는 낮게도 나온다. 다만 OECD 실효세율 자료를 인용하면 한국의 실효세율 25.9%는 일본, 독일, 프랑스보다는 낮지만 미국, 영국, 이탈리아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특히 기업의 실제 부담 정도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법인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각종 사회보험 부담을 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법인세 재원으로 사회보험 정책을 펼치나 기업이 직접 사회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의 경제적 실질은 비슷하다. 그래서 월드뱅크 자료를 통해 기업의 법인세와 부담금을 합친 기업의 총부담 비율을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즉미국의 법인세 부담은 한국보다 적지만,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 지출이 많아 기업의 총부담 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높은 36.6%다. 한국은 각종 부담금에 대한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법인세를 많이 걷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기업의 법인세 세율, 특히 명목세율, 그것도 중앙정부에 부담하는 법인세 명목세율만 국제 비교를 하고 팩트체크라고 하는 것은 불성실하다. 특히 많은 언론이 인용한 국회 예산정책처 중앙정부 법인세 명목세율 비교표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지방정부까지 포함된 명목세율 비교표가 나온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인용된 지방정부까지 포함된 표를 인용하지 않은 것도 성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보다 법인세율이 높은 것과 부자감세가 아니라는 것에는 논리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 법인세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총부담금 비교. 자료=이상민
▲ 법인세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총부담금 비교. 자료=이상민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법인세율 보도의 핵심은 국제 비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정책이 다 그렇지만 법인세를 감세하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발생한다. 장점은 기업의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세수가 준다는 것이다. 이 장점과 단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법인세 보도의 핵심이어야 한다. 

일단 정부는 세수 감소라는 단점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법인세율이 낮아지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해 법인세수가 오히려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모든 정책 도입 시에는 실증분석이 필요하다. ‘뇌피셜’만으로 부족하다는 얘기다. 법인세율을 낮췄을 때, 경제 활성화를 통해 세수가 증가한다는 실증연구는 사실상 없다. 

둘째로 기업의 이익이 증가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면 투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인세율 인하와 투자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실증연구는 무수히 많다. 다만 결론은 다르다. 투자증대 효과가 없다는 연구도 있지만, 투자증대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어느 하나의 연구를 인용하는 것보다 이런 연구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메타분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팩트체크를 팩트체크 해야 하는 것처럼, 연구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럴 때 언론은 어느 한두 연구만 취사선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연구들을 메타분석한 이준구 교수에 따르면 법인세 인하가 투자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다는 결론이 압도적으로 많고, 조세가 투자행위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 별로 크지 않다는 이론적 측면에서 평가는 거의 컨센서스에 가깝다. 시카고대학의 굴즈비(A. Goolsbee) 교수를 인용해 법인세 인하 효과를 정리하면 투자 촉진 효과는 적지만 (세수 감소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 정책이다. 

결국 법인세 인하를 다루고자 한다면 법인세 인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상정하고 그 장점(기업 이익의 증가)의 의미와 단점(세수감소)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법인세 부담 국제 비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국제 비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인세와 각종 부담금을 총체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부분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실효세율 비교 자료며, 이보다 제한적인 것은 명목세율 비교다. 특히 중앙정부만의 명목세율 비교는 오히려 기업의 법인세 부담의 진실을 가릴 수 있는 나쁜 정보다. 좀 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기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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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의한 전쟁을 반대한다

김용환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6/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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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환 통신원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은 25일 오후 3시 용산 미군기지 1번 게이트에서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미국 규탄 대학생 문화제를 개최했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발언과 노래 공연, 상징의식으로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윤석열 선제타격, 원점 타격 망언을 규탄했다.

 

▲ 노래동아리 `그노래'의 노래 공연.  © 김용환 통신원

 

▲ 대진연 노래단 "빛나는 청춘"의 노래 공연.  © 김용환 통신원

 

김나인 대진연 회원은 “매년 한미연합훈련이 우리나라 땅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 얘기하면서 거의 1년 내내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평화를 위한 약속을 먼저 어겨놓고는 뻔뻔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한미연합훈련은 8월에 또 진행될 것”이라며 미국의 한미연합훈련을 성토했다. 

 

김주현 대진연 회원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를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충북 영동군에 있는 노근리 마을에서 쌍굴다리를 지나는 민간인들을 처참하게 학살했다. 이후 미국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라면서 “사람을 죽여놓고 유감이라고 말하며 미안하단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동맹 국가인가. 이런 과거의 아픔을 안고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않은 채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안산하 대진연 회원은 “한미일 삼각동맹은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 따른다는 것이 문제다. 삼각동맹 시도를 분쇄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진연 회원들은 녹사평역을 거쳐 전쟁기념관 앞까지 행진하고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 행진을 하는 대학생들.  © 김용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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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도 없이... 윤석열정부 노동정책 끼워넣기는 국민 '기망'

[주장]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안, 과로 유발하고 공짜노동 증가시킬 우려 있어

22.06.25 19:51l최종 업데이트 22.06.25 19:51l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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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을 발표하였고, 주요 언론이 이를 다루면서 근로시간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주목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하는 방안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근로시간 52시간 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 ▲연장근로를 한 후 이를 수당으로 받지 않고 저축계좌에 넣었다가 미래에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저축방안 등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때부터 언급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이전까지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새롭게 추가된 것인데 바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에서 한 달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일주일에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를 한 달로 정산하게 되면 12시간×4주, 즉 48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연장근로로 쓸 수 있게 된다. 적어도 한 주에 88시간을 몰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일터와 노동자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기에 주요 언론들은 고용노동부 발표 이후 앞 다퉈 그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논의 없는 정책 끼워넣기 발표는 '기망' 이번 고용노동부의 공식 발표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형적인 정책 끼워 넣기이다.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가 모두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시차출근제처럼 노동자의 일-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또한 정부 말대로 다양한 근로시간제도가 있으므로 필요하면 노사합의를 거쳐 추진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다.


이번 발표에 포함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에서 한 달로 확대하는 안은 가벼운 정책이 아님에도 그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불쑥 다른 것들과 함께 끼워 넣어 발표한 것은 국민을 기망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 모두 토론이 필요하지만 주 최대 88시간 또는 주 92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는 특히 많은 검토가 필요한데,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은 채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은근슬쩍 정책 끼워넣기는 오랜 만에 목격한 것인데, 실은 보수정권 때마다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 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불과 5년 전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타협 합의결과를 일부분만 왜곡, 해석하여 저성과자 퇴출과 공공기관 성과급제를 도입하려고 했다가 큰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또 하나,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노사합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발표는 역시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발상이다. 노사합의를 하려면 노동조합 가입 대상의 과반수이상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거나 근로자 대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4.5%에 불과하고 근로자대표제도는 아예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는 노사합의를 통해 스스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85.5%의 기업들은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애꿎은 노동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자대표 제도부터 입법화하고 차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

과로 유발과 노동권 침해 문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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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단위에서 월단위로 확대하는 것을 포함하여 발표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쟁점을 살펴보면, 첫째 '과로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근로시간저축계좌 활용,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스타트업 연장근로시간 상한 폐지 등 이 모든 제도의 공통점은 짧은 기간에 몰아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근로시간을 주 단위로 정해 놓은 것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특정한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유럽 국가들은 주 단위 근로시간 이외에 1일 동안 일할 수 있는 최대 근로시간도 정해 놓고 있으며 일과 일 사이에 11시간 휴식시간을 준수하도록 설계해 놓았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노동자의 몸은 특정 주에 과도하게 일을 하게 되면 손상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목숨까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과로에 대한 방지 없이 근로시간만 유연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설계대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가 도입되면 실소득이 줄어들고 '공짜 노동'이 늘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체계는 크게 기본급과 복리후생성 수당 그리고 연장근로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부터 기본급을 늘리기보다 연장근로수당을 통해 더 많이 일하면 임금 총액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설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의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일할 경우 그때마다 발생하게 되는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들게 된다. 더구나 근로시간저축계좌에 넣어두는 휴가마저 제 때 쓰지 못한다면 일은 일대로 몰아서 하고, 실소득은 줄어들며 휴가는 제대로 쓰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우리나라 노동자의 40%가량은 연차휴가를 필요한 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스타트업 등 IT업계 노동자의 경우 근로시간 상한 제도를 폐지하고,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아예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노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 등 스타트업의 현실을 고려하여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는 있으나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부가 근로시간 상한 예외를 적용시키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사용자의 입장만 대변하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당사자 간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고소득 전문직의 연장근무수당 폐지도 누가 얼마나 벌어야 전문직 고소득자인지가 모호하여 결국 현장의 갈등만 불러올 것이다.

기업 편의가 아니라 노동자 위한 정책 만들어야

그렇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하고 과로와 실소득의 감소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는 기업의 편의를 과도하게 배려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결과로 보인다.

원래 근로시간 유연화는 주4일제와 같은 총근로시간의 감소와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근로시간 총량을 줄이는 대신 그 안에서 활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노사의 양보를 전제로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의 논의 방향은 기업의 오랜 숙원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양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어려 차례 했고, '120시간 노동'도 같은 배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번 근로시간 유연화 계획은 대통령의 이러한 철학을 너무 살뜰하게 챙긴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발표 이후 정작 대통령은 정부의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아마도 발표 이후 성난 민심을 살핀 행동일 것이다. 부디 대통령께서는 본인 말대로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니 과거를 되풀이 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정책을 챙기는 관료들도 대통령만 쳐다보지 말고, 한 푼 두 푼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정도(正道)의 행정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흥준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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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여인 이정순, 31년만에 해방되다"

평화의 사도 이정순 카타리나 추모비 제막식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2.06.26 03:24
  •  
  •  수정 2022.06.26 10:01
  •  
  •  댓글 0
 
25일 오후 연세대 앞 철길 아래에서 31년전 1991년 5월 18일 분신, 투신으로 민주화와 통일의 역사를 한걸음 앞으로 밀고 간 이정순 열사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5일 오후 연세대 앞 철길 아래에서 31년전 1991년 5월 18일 분신, 투신으로 민주화와 통일의 역사를 한걸음 앞으로 밀고 간 이정순 열사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31년 전 이름없는 한 여인이 불꽃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이땅 민주화와 통일의 역사를 한걸음 앞으로 밀고갔다.

당시 39살의 그녀는 1991년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경 강경대 학생의 노제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학교 앞 철길에서 분신과 투신으로 부정한 독재권력의 퇴진과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백골단'으로 불리던 사복경찰에 의해 명지대생 강경대가 폭행, 사망당한 1991년 4월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투쟁이 이어지던 때였다.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 백골단 해체'를 외친 그녀의 항거에 대해 언론은 '4남매의 자녀를 둔 30대 여인의 죽음'으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고,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혼과 정신병력 운운하며 의로운 주검에 난도질을 가했다.

31여년이 지난 2022년 6월 25일 오후 연세대 앞 철길(정문을 마주보고 오른쪽 인도 방향) 아래에 그녀의 이름을 '평화의 사도 이정순 카타리나 열사'라고 새겨넣은 190cm 높이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추모비에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여순항쟁 피해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1952년) 독실한 가톨릭 신앙생활과 독학, 틈틈히 시와 글로 한반도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염원했던 고인의 삶이 적혀있다.

이정순 열사. [사진제공-유가족]
이정순 열사. [사진제공-유가족]

추모비의 다른 한 면에는 고인이 남긴 유작시 중 한편을 골라 새겼다.

"듣는 이 없어 몇자 적어본다
꼭 꼭 닫아버린 문
어이해 열릴거나
답답한 캄캄 속
어느 때나 비출거나
별도 빛이련만
달도 빛이련만
해도 빛이련만
등불도 빛이련만
내 빛은 어느 빛이련가
나즈막한 소리는
어디서 어느곳에서
바람결에 들리듯
이렇듯 알리듯 스며
젖어들고
안타까운 가슴은
눈망울에 구슬이 맺히도록
서려오고
일으키는 빛은 어느 곳에서
비추나
빛은 알지 못함이어리"
(유고시집 '내 빛은 어느 빛이련가' 중에서)

이정순 열사 동생 이옥자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똑똑한 언니를 독립군으로 키웠다고 기억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정순 열사 동생 이옥자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똑똑한 언니를 독립군으로 키웠다고 기억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모비를 제작한 오종선 조각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모비를 제작한 오종선 조각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모비를 제작한 오종선 조각가는 "바람불어도 다시는 꺼지지 않을 불꽃을 형상한 빨간 무늬를 넣었다. 지나가는 연세대생들이 이정순 열사를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열사의 동생 이옥자씨는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언니에게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내 몸을 초개와 같이 던져야 한다', '나라가 없으면 가족도 없다', '미국과 일본은 한편이다. 믿어선 안된다', '양식이 없어도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며, 독립군으로 키웠다"고 추억했다.

어려서부터 예쁘고 야물고 똑똑하고 무술도 잘했던 언니는 죽음을 건 투쟁을 결행하기 전 명지대생 강경대와 전남대생 박승희의 죽음을 접하고는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한 듯 "수많은 열사들은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니 자살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는 기억도 떠올렸다.

또 미리 죽음을 각오한 듯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했다며, 수많은 언론이 이정순 열사의 죽음 이후 '이혼녀', '정신병자'라며 모욕한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지난 9일 이화여대 앞 대현문화공원에 김종태 열사 42주기를 맞아 '오월걸상' 제막을 도운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6월 말까지 임기가 끝나기 전 이정순 열사 추모비 건립까지 마무리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열사들의 죽음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한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강경대 열사의 부친 강민조씨는 "경대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던 그날 철길 위에서 불이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름도 모르는 30대 주부가 자식들을 놔두고 갔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경대의 추모제때마다 이정순 열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우 신부와 함세웅 신부가 집전한 가톨릭 추모비사에서 교인들은 "이정순 카타리나 열사는 '통일할 나라 대한민국, 축복의 나라 통일의 나라 대한민국'을 꿈꾸며 기도했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며 그 꿈을 온 몸으로 우리에게 전했다. 사실 그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했지만 열사로 인해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 꿈이 되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열사의 장녀 공문정씨(왼쪽)와 윤순녀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열사의 장녀 공문정씨(왼쪽)와 윤순녀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91년 5월 18일 당시 강경대 열사 노제에 참석했던 연세대앞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부름을 받아 이정순 열사의 빈소를 지키며 장례 일정을 함께 한 윤순녀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회장은 이날 추모비 제막식에 대해 "이름없는 여인 이정순 카타리나가 오늘 해방되는 날이다"라고 감회를 밝혔다.

이날 이정순 열사 추모비 제막식은 강경대열사추모사업회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91년열사투쟁30주년기념사업회 등이 나서 준비했다.

가수 이광석씨가 이정순 열사의 시에 곡을 붙인 추모곡 '내 한 몸 바쳐지리라'를 헌정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이광석씨가 이정순 열사의 시에 곡을 붙인 추모곡 '내 한 몸 바쳐지리라'를 헌정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편, 이정순 열사는 1952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와 여순사건 피해자인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순천에서 버스안내양과 가발공장, 1970년 상경후 한독실업 노동자로 생활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다 1973년 결혼해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1989년 합의 이혼 후 서울에서 포장마차, 식당일을 하다 1991년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 강경대 열사의 노제가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던 중 연세대 정문 앞 철교위에서 분신후 투신했다.

1991년 5월 21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되었다가 2014년 4월 26일 이천 민주화기념공원 민주묘역으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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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를 추도하며]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김지하를 추도하며] 9

 

 

 

"하느님!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시편 130,4)

우리는 오늘 이곳 천도교당에서 김지하 시인을 기리며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저는 1970년 6월 로마 유학시절, 노동신문에 실린 '오적'을 읽었습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고발한 판소리 가락의 이 담시는 힘 있고 흥이 넘친 그러나 무섭고 날카로운 예언자적 고발 문학이기도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는 조국과 하나된 마음으로 이 담시를 판소리 음률에 맞추어 크게 읊으며 기도 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우리 사제들의 귀에 익은 김지하 시인, 1975년 2월 15일 구속 집행정지로 석방된 그는 응암동 성당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첫인사는 "아니, 신부님, 이렇게 작으신 분이셨어요? 신문 사진을 통해서는 굉장히 키 큰 분 인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그해 3월 13일에 '고행 1974'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4월 어느 날 윤형중 신부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한 출소자가 갖고 온 김지하 시인의 편지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의 양심선언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형에 처하려는 박정희정권의 음모를 감지한 문인들과 우리 사제단은 힘을 모아 "김지하 문학의 밤"을 개최하면서 그의 석방을 염원했습니다. 그 후 김 시인의 어머니는 자주 성당을 찾아오셔서 함께 기도하고 어느 날에는 저의 어머니와 함께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김 시인 어머니의 유머 감각과 순발력에서 저는 그의 천재성이 모친으로부터 연유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저도 서대문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밤 김 시인이 제게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신부님, 반갑습니다. 기도하시면서 운동도 많이 하세요. 앉아만 계시면 치질 걸릴 위험이 있으니 꼭 담요로 방석을 만들어 앉고, 방에서도 매일 적어도 500번 이상 제자리에서 뛰십시오.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두어 달 뒤에 우리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변호사들의 접견이 이루어지면서 주고받은 소식은 박정희 정권이 사제들을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겁니다. 이때 김시인은 제게 두 번째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들을 분리해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데 절대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이곳이 바로 지금 사제들이 계셔야 할 곳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마태오 5:40-42) 

저는 눈감고 기도했습니다. 본능적으로는 나가고 싶은데 그가 제시한 성경 말씀은 바로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와 감옥에서 나눈 신앙과 우정 그리고 고난의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991년 5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라는 그의 거친 왜침은 민주시민과의 결별 선언이었습니다. 이에 김형수 시인은 "젊은 벗이 김지하에게 답한다!"는 글로 그를 엄혹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두 분의 글은 각 대학마다 대자보로 게시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뒤 1993년 9월에 그는 장위동 성당으로 저를 찾아와 자신의 심적 고통과 고민을 털어 놓았고, 우리는 증산교 등 새로운 종교와 생명사상 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말했습니다. 그 날 저는 그에게 종교 다원주의 등 당대 새로운 신학 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제가 지니고 있던 여러 권의 책도 건네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너무 다른 길로 멀리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저는 헤겔의 정반합 원리를 기초로 김지하의 삶을 다음과 같이 종합합니다. 

명제 : 우리는 30대 청년 시인 김지하를 마음에 품고 예찬하며 기립니다. 

반명제 : 후반기의 김지하, 그 일탈과 변절을 단호하게 꾸짖고 도려냅니다. 

종합 : 죽음을 통해 이제 그가 신의 반열에 들었으니, 청년 김지하의 삶과 정신을 추출해 그의 부활을 꿈꾸며 민족공동체의 일치와 희망을 확인합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 진 것은 다시 이루어 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코헬렛 1:9-10)

하느님, 저희는 모두 죄인입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김지하의 모든 허물과 잘못도 용서해주소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제 그는 죽음을 통해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사오니, 사랑하는 모친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민족공동체 모두를 위한 천상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22.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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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미국이 분유 대란을 겪는 진짜 이유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6/25 11:20
  • 수정일
    2022/06/25 11:2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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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 인디애나주 카멜의 한 식료품점 선반에 아기 분유가 듬성듬성 진열돼 있다. 글로벌 공급난과 분유 업체 애버트의 리콜 사태로 빚어진 분유 대란에 미국 전역의 부모들은 분유 구매에 애를 먹고 있다. 2022.05.11.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미국이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분유 대란으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밝혔듯 앞으로 몇 달은 더 지나야 이번 사태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5월부터 외국에서 분유를 들여오는 데 군 수송기가 동원되기도 하고 다급한 부모들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까지 가서 분유를 사오고 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대부분의 부모들, 특히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부모들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됐는지 살펴보는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ow Corporate Food Monopolies Caused the Baby Formula Scandal

미국에서 신생아를 키우기 어려운 시기이다. 포기해야 할 정도로 어린이집이 비싸고 예방접종을 받기에 너무 어린 아기들은 여전히 코로나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분유가 부족했다.

팬데믹으로 공급망이 흔들리고 운송이 지연되면서 분유 대란이 시작됐다. 그러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애보트연구소에서 생산한 여러 주요 브랜드의 분유에서 위험한 박테리아를 검출되는 등 충격적인 위생상태가 적발됐다.  애보트연구소의 주요 생산시설인 미시간 공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이후 미시간 공장 생산이 재개됐으나 폭우로 다시 가동을 멈췄다.

부모에게 자녀를 부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자녀가 가장 취약한 단계인 신생아일 때는 더욱 그렇다.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어 아이들이 신생아였을 때 분유에 의존했다. 한번은 동네 가게에 내가 신뢰하고 아이가 익숙해진 브랜드가 떨어져 멀리 차를 몰고가 분유를 구해온 기억이 난다. 이것은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준 경험이었다. 지금 수백만 부모들이 마트의 텅 빈 분유 선반을 볼 때 느낄 스트레스보다 훨씬 가벼웠겠지만 말이다.

분유 대란은 가격 인상을 가져왔고(자본주의 만세!) 경제적, 지리적, 의료적인 요인으로 인해 분유 의존율이 높은 흑인과 히스패닉 부모들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온라인 구매가 가능한 비싼 분유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동네에 다양한 분유가 없으며, 분유를 찾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없는 저소득 유색인종 부모의 타격도 상대적으로 크다.

그런데 분유 대란이 발생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와 그것이 낳은 식량 및 식료품 독점 때문이다. 재고가 가득차면 매장 선반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수많은 유아용 분유 제품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애보트와 미드 존슨이라는 단 2개의 회사가 몇 안 되는 공장에서 분유제품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세 번째 회사인 네슬레는 약 12%를 생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보트의 미시간 공장 하나가 문을 닫으면 미국 전체의 분유 수급에 굉장한 차질이 빚어진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데에는 미국 정부의 몫도 크다. 미국 정부는 여성, 유아 및 아동 프로그램(WIC)에 필요한 분유의 전량을 애보트에서만 구매한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게 바로 이런 거다. 그 바구니 하나가 깨지면 계란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아기 분유만 이런 게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 단 3개의 회사가 모든 유아식 제품의 81.7%를 생산한다. 4개의 회사가 참치 통조림의 85.4%, 3개의 회사가 초콜릿의 80.3%, 3개의 회사가 파스타 제품의 78.5%를 생산한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이 식료품 공급업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올해 식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급등했다. 이에 대응해 제조업체는 절도라고 할 수밖에 없는 ‘감량 인플레이션’을 감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속이기 위해 같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제품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생산 비용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대형 식품업체들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식품정책 분석가들이 독점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 왔다.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2000)의 저자 반다나 시바와 ‘식량전쟁: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2007)의 저자 라지 파텔은 세계적인 대형 식품회사의 수익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농부들의 곤경과 연결시켰고, 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끊임없는 기업의 노력으로 식품 공급망이 점점 통합되면서 작은 차질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취약한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두 저자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글로벌 운송시스템에 의존하는 세계 식품 공급망이 어리석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애보트의 미시간 공장을 재개 2주 만에 다시 문을 닫게 만든 대홍수도 우리가 지구 대기로 내뿜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발생했다.

‘팜액션’이나 ‘푸드 앤드 워터 워치’와 같은 단체들도 수년 간 식료품 독점에 대해 경고해 왔다. 팜액션은 2020년 말 보고서 ‘식품 시스템: 집중과 그 영향’에서 점점 커지는 식료품 회사들의 독점력에 주목하며 몇몇 회사가 식품 생산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면서 이뤄지는 소유와 자산 및 권력의 집중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푸드 앤드 워터 워치도 일 년 전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으로 가는 로드맵’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에 식량 위기가 곧 닥칠 수 있다면서 독점을 무너뜨려야 역설했다. 푸드 앤드 워터 워치는 미국 연방 정부가 기업형 농장의 확장을 금지하고 식품 기업의 합병을 일시 중단시키며 지속가능한 소규모의 유기농 농업 시스템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먹이사실의 한쪽 끝에는 굶주리는 농부들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아기를 포함해 굶주리는 가족들이 있다. 그 중심에는 계속 살찌는 애보트나 카길과 같은 거대 기업 몇몇이 있다. 기업의 탐욕으로 인한 대부분의 경제 문제들이 그렇듯 해결책은 찾기도, 실행하기도 쉽다. 그렇게 하겠다는 정치적인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바이든 정권은 문제와 해결책 모두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미국 정부는 정육업계에 대한 2022년 1월 팩트시트에서 ‘더 공정하고 경쟁력 있으며, 안정적인 육뮤 및 가금류 공급망’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4개 대형 육류가공회사가 소고기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다는 등의 문제를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합병 방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경쟁법 위반 가능성에 대한 우려 사항’ 등을 올릴 수 있는 포털만 발표했다.

미국 정부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2022년 식품 및 농업 관련 기업 합병 모라토리엄 및 독점 금지 검토법’을 발의한 하원의원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법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통과된다 하더라도 문제다. 그동안 아기들에게 분유를 먹이는 부모들은 어찌 해야 하는가? 분유를 집에서 만들 수도 없고, 더 오래 쓰기 위해 분유를 희석할 수도 없다.

10개월 된 딸을 둔 로라 스튜어트는 AP통신에 구할 수 있는 브랜드의 분유를 아기에게 먹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얘기했다. “우리 딸은 원래 불만없이 순한 아기였는데 요즘 더 많이 토하고 짜증이 크게 늘었다. 예전의 분유를 먹을 때에는 멀쩡했던 아기였다.”

식품 독점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아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정부는 그들을 와해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를 과연 취할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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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마저 끊고 입적한 스님의 삶

등록 :2022-06-24 21:37수정 :2022-06-24 23:14

 
경남 양산 통도사 다비장에서 다비를 끝내고 나온 연관 스님 법구.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경남 양산 통도사 다비장에서 다비를 끝내고 나온 연관 스님 법구.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입적한 연관스님이 생전 지리산살리기에 나선 모습. 사진 &lt;한겨레&gt; 자료
입적한 연관스님이 생전 지리산살리기에 나선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몇달 사이 알고 지내던 칠십대 중반의 스님 세 분이 세상의 인연을 접었다. 세간에서는 죽음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입적(入寂)이라고 한다.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와 한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먼저 종광 스님이 세연을 접었다. 종광 스님은 내가 실상사 화엄학림 시절, 내게 화엄경을 강의해주신 스님이다. 다음은 수원 용화사 성주 스님. 학인 시절 내게 학비를 후원하며 애지중지 정을 듬뿍 주었던 스님이다. 입적하기 전, 병문안을 했는데, 그때도 책을 사보라고 돈을 주려 했다. 극구 사양하고 약간의 병원비를 드렸다. 허허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6월15일에는 연관 스님이 적멸에 들었다. 몇달 사이 절친하던 세 분 스님을 보내드리고 난 지금, 제행무상과 생자필멸을 말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이 애틋하고 시리다.

 

이제 연관 스님 얘기를 시작한다. 스님은 세수 74년, 법납(출가수행 햇수) 53년을 이 사바세계에 머무셨다. 스님은 김천 직지사로 출가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스님은 출가 이후 경학 연찬에 전념했다. 많은 학인들 중에서 연관 스님은 유독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성실한 학승이었다고 한다. 다른 일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한문경전을 보는 일에 늘 재미를 누렸다. 불교계에서는 대강백으로 이름난 직자사 관응 스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같이 수학하던 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관응 큰스님이 제자 연관 스님을 짝사랑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연관 스님의 경전을 보는 안목을 높이 샀던 것이다. 경학 연찬 이후 스님은 으레 스님들이 그러하듯 선원에서 참선 정진했다. 이른바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조계종 가풍에 충실했다.

 

연관 스님이 마지막을 보낸 부산 관음사를 나서고 있는 법구.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연관 스님이 마지막을 보낸 부산 관음사를 나서고 있는 법구.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부산 관음사에서 봉행된 연관 스님 영결식.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부산 관음사에서 봉행된 연관 스님 영결식.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나와 연관 스님의 인연은 1995년에 처음 시작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지리산 실상사에서다. 1994년 조계종 개혁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실상사 회주로 있는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얼마 전 입적한 종광 스님 등이 승가교육의 혁신과 심화를 위해 실상사에 학교를 만들었다. 실상사 화엄학림이다. 화엄학림은 승가대학을 졸업한 학인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는 전문교육기관이다. 그때 강사가 연관 스님과 종광 스님이다. 수경 스님이 물심양면으로 학인들을 후원했고 도법 스님은 우리와 함께 꼬박 강의장에 들어와 청강하며 토론에 불을 붙였다. 처음 공부한 과목은 화엄학 개론서인 중국의 청량징관이 저술한 <화엄현담>이었다. 6개월 동안 연관 스님은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학인들에게 한문 원전으로 강의했다. 어찌나 꼼꼼하게 해독하는지 몹시도 괴로운 날이었다. 광대한 화엄의 세계도 벅찼지만 정밀하게 해독해야 하는 고역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정확한 해독 덕분에 조금이나마 경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런 씨앗으로 나는 대학원에서 화엄사상을 주제로 논문을 완성했다. 스님을 보내고 난 지금, 오랫동안 스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음을 알았다. 스님은 실상사에서 7년 정도 강의했다. 연관 스님은 실상사 화엄학림 강의 이후, 봉암사를 중심 도량으로 20여년 넘게 참선정진에 몰두했다.

 

물로 흙으로 공으로 돌아가는 연관 스님의 유해. 사진 이원규 시인 제공
물로 흙으로 공으로 돌아가는 연관 스님의 유해. 사진 이원규 시인 제공

나는 지금 매우 담담하게 이 글을 서술하고 있다. 그건 연관 스님의 생애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경전을 탐구하고, 화두를 들고, 선정에 들고, 경전을 번역하는 일. 이 세 가지 일에 성실한 삶이었다. 고요하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삶을 걸으신 스님이다. 그리고 산에 오르기를 몹시도 좋아했던 연관 스님.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호연한 기쁨을 누리셨다. 같이 산에 오르면서, “법인 스님,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 물으시며, 온갖 나무와 꽃 이름을 줄줄이 설명하던 천진한 모습이 떠오른다.

 

스님은 생애 20년을 봉암사에 머물며 참선과 경전 번역을 겸행했다. 그러다가 올해 갑자기 병을 얻었다. 진단을 해보니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경 스님과 도법 스님이 봉암사로 병문안을 다녀왔다. 그러고 얼마 지난 이후, 도법 스님이 부산 관음사로 스님을 보러 가자고 해서 동행했다. 부산 관음사는 요양 시설을 잘 갖춘 절이다. 스님은 당신이 머물던 봉암사가 지금 하안거 정진 중이니, 참선하는 선승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관음사로 몸을 옮기고 싶다고 했다. 평소 깔끔한 성정을 여실하게 보여준 스님의 처신이다. 관음사에서 스님을 뵈었다. 기력이 쇄진하여 말을 거의 못하셨다. 눈으로 담담하게 우리 일행을 맞는다. 오랜 도반인 도법 스님이 말없이 연관 스님의 손을 잡았다. 그 고요하고 먹먹함이라니! 도법 스님이 말한다. “법인 스님도 왔어.” 스님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알지.” 담담하다. 자리를 뜨기 전에 도법 스님이 “그래, 잠 좀 자고 쉬어”, 그렇게 말하고 수경 스님과 함께 돌아섰다. 마지막 만남일 거라는 시린 심정으로 등을 돌리고 나서는데 스님의 한마디가 들린다. “잘 가시오.” 순간 우리들의 가슴이 울린다. 우리가 들은 스님의 마지막 말이다. “잘 가시오.” 우리가 또한 스님에게 침묵으로 건네는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스님도 잘 가시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연관 스님 법구를 태우고 있는 다비장.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연관 스님 법구를 태우고 있는 다비장.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부산 양산 통도사 다비장에서 연관 스님의 다비를 지켜보는 도반 스님들.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부산 양산 통도사 다비장에서 연관 스님의 다비를 지켜보는 도반 스님들.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이미 관음사에서 15일 동안 연관 스님의 마무리는 알려졌다.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입적 며칠 전에 음식을 넣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 사흘 후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물을 끊은 후 사나흘 만에 입적했다. 그렇게 간명하게, 담담하게, 고요한 세계로 들어갔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스님은 수중에 남은 약간의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하라는 뜻을 남겼다. 남은 도반들은 스님의 가풍에 맞게 간략하게 영결식을 봉행하고 통도사에 다비(화장)를 했다. 위패도 소박했다. ‘비구 연관’. 내가 ‘조계종 역경종장 연관 스님’이라고 위패에 적자고 했는데, 수경 스님이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연관이 가풍에 맞지 않아.” 스님의 마지막을 하루도 쉬지 않고 수경 스님이 지켰다. 두 분 사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다. 수경 스님은 통도사에도 간곡하게 부탁했다. 결제 안거 중이니 선원과 통도사 대중에게는 알리지 말고 다비장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담백한 연관 스님의 뜻을 존중한 부탁이었다. 다비를 마치고 실상사로 돌아왔다.

 

다비 이후 여러 지인들이 말을 전했다. 연관 스님의 법구가 화구에 들어갈 때, 수경 스님이 관을 두번 탁탁 치고 짤막하게 작별을 고했다. “잘가~.” 나무 아미타불! 이미 잘간 연관 스님에게 또 ‘잘가’라니. 연관 스님은 이미 고요한데, 그래도 서운하여 애틋함을 전송한 수경 스님의 마음인가?

실상사가 만든 ‘21세기 약사경’에서 우리는 이렇게 발원하고 있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 혐오하는 미혹 문명 내려놓고/ 죽음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불교의 생사관은 죽음에 대한 견해가 분명하다. 죽음은 두렵고, 무섭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건 육신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만든 ‘생각’이라고. 그런 ‘관념’이 곧 죽음의 정체가 아니라고. 그건 생과 사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생에 대한 집착과 편견이 만든 망상이라고. 그럴 것이다. 살아있을 때 진실하고 집착 없으면 죽음에 이르러 훌훌 사바의 옷을 기꺼이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나름 갖고 있지만 죽음에 직면할 때 담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그래서 평소 이에 대해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은 단단하게 다질 필요는 있다.

 

다비장으로 들어가는 연관스님의 관.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다비장으로 들어가는 연관스님의 관.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다비장에 들어가는 연관 스님의 관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는 수경 스님.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다비장에 들어가는 연관 스님의 관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는 수경 스님. 사진 맑은소리 맑은나라 김윤희 제공

다시 연관 스님을 그려본다. 그리고 생의 마무리를 그려본다. 하루하루의 삶에 정직하게 직면해야 함을 다짐한다. 연관 스님의 도반들은 그 흔한 출가수행자의 유골을 안치하는 부도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연관 스님의 삶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다만 3쪽만 남기고 번역을 마친 스님의 번역서인 영명연수 선사의 <심부>(心賦)는 후학들이 마무리하기로 했다. 스님은 <죽창수필>, <금강경 간정기>, <왕생집> 등 20여권의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건 연관 스님의 문자사리(文子舍利)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옛 선사의 시를 빌려 연관 스님을 추모한다.

 

대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물을 뚫어도 물결 하나 일지 않네0

 

글 법인 스님/실상사 한자·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겸 이사장·조계종 전 교육부장·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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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주문... "바보같은 짓" 그만 두라

[분석] 안전보다 핵발전이 먼저라니...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 고통·후쿠시마 사고 안 보이나

22.06.24 19:00l최종 업데이트 22.06.24 19:00l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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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창원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원전 업계의 현재를 '전시상태'로 표현하며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믿을 수 없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안전은 제쳐두고 '원전 세일즈'를 위해서는 백방으로 뛰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정말 기이하다. (관련기사 : 윤 대통령 "지난 5년간 바보짓 안했더라면... 탈원전 폐기한다" http://omn.kr/1zhld)

지금도 국내 핵발전소에서는 20년 넘게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몸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암에 걸린 채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이 존재한다. 대통령이 핵발전 공장 시설과 현실성이 모호한 수출 시장을 찬양하기 전에, 핵발전소가 들어선 이후로 주민들이 떠나며 침체되어 가는 지역을 둘러보고, 방사선 피폭, 사고 위험과 생태계 파괴로 고통받는 지역주민들과 만나봤다면, 또 지금도 수습되지 못한 후쿠시마 핵사고 현장에 방문해봤다면 과연 그런 발언을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아니, 후쿠시마 핵사고를 두고도 폭발과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고 말하는 대통령이었으니 또 다른 망언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정운영의 총책임자로서 그 어떤 것보다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3년간 1조 원 이상 일감 추가 공급한다고? 윤 대통령의 창원 방문 직후, 정부는 국민의 미래와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핵발전 진흥만을 위한 계획을 공개했다. 정부가 공개한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 계획'의 첫 번째는 울진의 신한울 3, 4호기 핵발전소(아래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설계 등에 925억 원 규모의 일감을 발주하는 것이다. 3년간 1조 원 이상의 일감을 추가 공급하겠다고도 한다. 아울러 SMR 연구개발, 핵발전 중소기업 지원, 원전 수출 등의 계획이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는 과연 가능할까? 탈원전을 선언만 하고 추진한 바 없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연 원전 수출을 추진하지 않아서 원전 세일즈가 성공하지 않은 것일까?


탈원전을 폐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제대로 시행하지도, 법안을 만들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만 하고 탈원전을 시행하지 않았듯, 그리고 원전 수출에 매진했으나 실패했듯, 윤석열 정부도 원전 최강국을 선언하기만 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까지 더해져 신규핵발전소 건설과 수명연장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계획인 신한울 3, 4호기는 아직 부지선정만 되었다. 환경영향평가, 10차 전력수급계획 등 절차가 남아 올해 내 착공이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는 원전 생태계 복원을 이유로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일감을 올해 중 긴급 공급한단다. 건설 허가도 전에 어떤 근거로 먼저 일감을 준다는 걸까? 이는 향후 매몰 비용을 핑계로 제대로 된 절차와 상관없이 건설을 밀어붙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전)두산중공업이 신한울 3, 4호기에 필요한 주기기(원자로 및 터빈 설비)를 사전 제작하다가 사업이 백지화되자 중단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허가도 전에 관례로 해오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행정절차를 어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현실성 없는 '원전 세일즈'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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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출도 현실성이 낮다. 산업부는 '원전산업 경쟁력 TF'를 운영하며 수출방식을 다각화하겠다고, 국정과제에서는 핵발전소 10기를 수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전 세계는 핵발전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흐름에 있으며, 2009년 UAE에 핵발전소를 수출한 이후 지금껏 역대 정부에서 원전 수출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지만 단 한 기의 핵발전소도 수출한 적 없다.

수출국으로 체코, 폴란드 등을 노린다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규 건설이 몇 기 없는 상태이다. 세계적인 핵발전소 수출국인 미국,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러시아와 중국 역시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를 표적화할 때 원전 수출에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원천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특허를 가진 미국이 로열티를 챙길 가능성이 높다. 2009년 UAE 원전 수주 당시에도 핵발전소 원천기술 소유국인 미국이 더 많은 이익을 얻어갔다. 게다가 UAE 원전 수주를 위해 우리나라가 수십억 달러의 금융을 장기 지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기존 핵발전소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SMR(소형 모듈 원자로)은 어떨까? SMR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에 불과할뿐더러 크기만 작아진 핵발전소이기에 안전성과 경제성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계획상 제시된 SMR 예산은 문재인 정부의 예비타당성 신청 때보다 삭감돼 핵산업계에서도 불만이 나온다고 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따르면 기존 상용 대형 핵발전소보다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 폐기물을 최소 2배에서 최대 30배 더 많이 생성하고, 독성 역시 최소 50% 더 높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핵폐기물 문제를 제외하고 만약 SMR을 상용화하더라도 이미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가 높은 한국에서 어디에,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의문스럽다.

고준위방폐물 융합대학원을 신설한다는 방향은 더 우려된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리방안'을 연구한다는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핵폐기물을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기술로 해결 가능하다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관련기사: RE100이 뭐죠? 보다 더 무서운 발언, "파이로프로세싱 통해서") 이론상 폐기물 부피와 독성을 줄일 수 있다지만, 실제 그러한 주장은 희망일 뿐이며, 미국 국립아카데미,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초우라늄 원소를 제거해서 방사성 위험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현재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는 고준위핵폐기물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고, 연구 정도만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핵폐기물 재처리는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하지 않고, 미국이 재처리를 허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다.

안전보다 이윤? 기가막힌 역행
 
녹색연합이 원전 대신 안전, 탈핵을 요구하는 모습.
▲  녹색연합이 원전 대신 안전, 탈핵을 요구하는 모습.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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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을 외쳐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보다 이윤', '안전보다 원전'을 이행하는 듯하다. 지난 22일 <한겨레>에 실린 석광훈 박사(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글에 따르면 핵 강국이라는 프랑스도 내부 핵시설의 부식과 균열을 발견한 뒤, 정밀검사를 위해 무려 12기의 핵발전소를 올해 연말까지 가동 중단시켰다고 한다. 프랑스 검찰은 프랑스 전력 공사를 원전 안전 문서위조와 보고 의무 위반, 상해 혐의로 수사까지 이어간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핵발전으로 인한 위험과 사건사고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대통령은 핵산업계의 책임자가 되어 무책임하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쉽게 저버리는 발언을 한다. 안전이 관료적 사고로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핵발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 영역에서 안전을 경시하고 벌어진 수많은 참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핵산업계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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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틈타 폐업 통보… ‘700일 투쟁’ 한국산연 노동자들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2.06.23 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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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켄전기는 교섭에 응하라”… 단식투쟁 돌입

마산수출자유지역 내 설립된 외국인투자기업 한국산연에서 LED 조명을 생산했던 노동자들.

수차례 한국공장 철수와 구조조정을 강행해 온 모회사 일본 산켄전기를 상대로 일본 원정투쟁까지 벌이며 2017년 승리를 맛봤다.

그러나 2020년 여름, 산켄전기의 일방적인 위장폐업에 맞서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싸움은 700일이 넘었고 지난 22일부터는 끝내 단식투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 서울 마곡동 APTC 사무실 점거농성 중인 한국산연 노동자들. [사진 : 한국산연지회]
▲ 서울 마곡동 APTC 사무실 점거농성 중인 한국산연 노동자들. [사진 : 한국산연지회]

교섭 다음 날 ‘폐업’ 통보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20일 산켄전기의 국내 합작법인인 APTC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APTC는 산켄전기와 LG전자가 합작해 만든 기술연구개발 업체다.

산켄전기는 지난 2020년 7월 누적적자로 인한 경영위기를 이유로 한국산연 폐업을 결정하고 2021년 1월20일자로 폐업했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일본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폐업 소식을 알게 됐다.

2019년 연말 산켄전기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며 일부 사업을 폐쇄하고, 일부 지역을 철수하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산연 사장으로부터 ‘한국산연을 폐쇄한다는 말은 없다’고 들었지만, 물량 문제로 여러 번의 휴업까지 감수해야 했고, 고용안정 문제에 관한 교섭도 이어졌다.

2000년 7월 7일 고용안정 교섭을 하고, 8일엔 임단협 교섭도 했다. 그러나 하루 만인 9일, 산켄전기는 이사회를 열어 한국산연 폐업, 청산 결정을 내렸다.

그때부터 한국산연 사장은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고 일관했다. 경영상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게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 정산자료를 요구해도 무성의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위로금 교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두 차례 일방적으로 위로금을 제시하는 문자를 보내온 사장을 향해 “위로금이 아니라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폐업 6개월 이전에 이를 조합에 통보해야 하며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조합과 합의 후 결정해야 한다”는 단체협약을 위반했고, 2017년 투쟁 승리 후 복직합의서에 적힌 “앞으로 심각한 고용문제가 발생할 경우 노동조합과 사전에 합의하기로 한다”는 조항도 위반했다.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는 산켄전기의 한국산연 폐업을 ‘위장폐업’으로 규정하고 다시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23일) 711일이 됐다.

▲ 사진 : 한국산연지회
▲ 사진 : 한국산연지회

LG를 상대로 싸우는 이유

그들이 산켄전기와 LG전자의 합작법인인 APTC에서 농성하는 이유가 있다.

APTC는 2018년 3월 LG가 49%, 산켄이 51% 투자해 만든 기술연구개발 업체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990년부터 한국산연에서 일했다. 그는 “LG가 위장폐업의 동조자”라고 확신있게 말했다.

서울 마곡동 한 빌딩의 4층에 산켄전기 한국영업소가 있고, 5층엔 APTC가 있다. 건물 4층의 대표와 5층의 대표가 동일 인물(이명준)이다. 그는 일본 산켄 본사의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LG와 산켄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이명준 대표는 2000년부터 한국산연 사장으로 LG출신을 데리고 왔다.”

2021년 1월 한국산연을 폐업하고 공장문을 닫은 산켄이 LG와 힘을 합쳐 국내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위장폐업의 근거로 된다.

“산켄은 한국에서 생산이나 판매, 연구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LG와 손을 잡고 더욱더 사업을 확대하고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툭하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겠다고 했던 산켄은 2018년, LG의 전류센서 생산업체인 ‘이케이(옛 지흥)’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2017년 복직합의서에 서명한 ‘한국산연 공장 생산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춘다’는 합의는 지키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국노동자이기 때문에, 민주노총 조합원이기 때문에”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을 했다는 것에 납득할 수 없는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산켄의 위장폐업에 대해 “노동조합을 혐오하고, 한국노동자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일으킨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산켄전기는 1996년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1997년 일본 주주총회에서 한국생산거점 철수와 인도네시아 이전을 결정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에 소속된 한국산연 노동자와는 같이 일할 수 없다며 정리해고를 단행해 왔다”고 했다.

호시탐탐 정리해고만 노리다가 코로나가 터졌고 산켄은 다시 폐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산연 사장이 말하기를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노동자들이 최소 2~3년 일본으로 투쟁하러 오지 못한다, 이 기회에 공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공장이 정리됐다.

산켄전기 사장은 “5년 전(2017년) 한국노동자들이 원정투쟁을 마치고 원직복직한 것에 대해서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말까지 했다. “한국노동자들이 일본까지 와서 원정투쟁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산연 공장은 지금 해산되거나 청산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일본 내 산켄전기 자회사 두 곳이 정리될 때엔, 길게는 1년 전 통보를 하고 계열사 배치전환을 협의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한국산연은 폐업 통보조차도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외투기업 규제법만 있었어도… “교섭 나올 때까지 싸울 것”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 산켄전기는 47년간 한국 땅에서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동종업계 세계매출 8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산켄전기주식회사는 1973년 마산수출자유지역에 100% 자본을 투자해 자회사인 ‘한국산연’을 설립했다. 47년간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등의 조세를 감면받았다. 공장 임대료로 ㎡당 약 900원 대의 저렴한 임대료로 생산활동을 해왔다.

“산켄전기 성장엔 한국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한국산연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명확히 위장폐업이고 불법폐업이다. 공장을 재가동해 12명밖에 남지 않은 노동자들을 충분히 채용할 수 있다. 산켄이 답변을 들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

노조는 산켄전기 측에 한국산연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생산공장 정상화, 복직 등 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24일 일본에서 산켄전기 주주총회가 열린다. 노조는 최고 결정기구인 주주총회에서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8개월간의 일본 원정투쟁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일본 시민들은 산켄전기 본사 앞 선전전 등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4일 주주총회장을 찾아 항의 투쟁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한국산연 문제 해결을 위해 소액 주식을 모았고 1명의 대표가 주주총회에도 참석한다. 한국산연 사태에 대한 주주들의 답을 요구할 예정이다.

경남 마산 공장 앞 농성장에서, 서울 여의도 LG타워 앞에서, 마곡동 점거농성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12명의 한국산연 노동자들 중엔 길게는 1990년부터 한국산연에서 일한 노동자도 있고, 결혼식을 앞둔 노동자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산켄이 교섭에 나올 때까지 투쟁의지를 꺾지 않을 각오다.

“단식하다가 실려 나가거나 경찰에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산연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외투자본 규제법 마련을 위한 대국회 사업과 대정부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외투자본 규제 법하나만 제대로 만들어져 있어도 교섭 자체가 막히진 않았다. 우리 노동자들을 교섭 상대로 보고 교섭이 제대로 이뤄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오해진 지회장)”, “단식은 처음이라 무섭기도 하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잘 버틸 수 있다(백은주 교육선전국장).”

이들에게 24일 주주총회 투쟁이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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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돗자리’ 펼치면 기후위기 이슈가 쫙!

  • 기자명 정민경 기자 
  •  
  •  입력 2022.06.23 17:38
  •  
  •  수정 2022.06.23 18:03
  •  
  •  댓글 5
 
 

한겨레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 1년 캠페인 ‘신문돗자리’
기후위기, 탄소배출 등 기사 담은 돗자리로 환경이슈 부각
페트병으로 제작한 친환경 상품…“참여동기 만드는 게 목적”

한겨레신문과 똑 닮은 ‘돗자리’가 제작됐다. 이 신문 돗자리는 한겨레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 출범 1주년 캠페인 일환으로, 후원회원제 알림과 동시에 환경 이슈를 환기하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한겨레는 지난 9일부터 내달 15일까지 신규 가입한 정기 후원 회원에게 신문 돗자리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기후 위기, 탄소 배출, 플라스틱 등 환경 이슈를 이야기할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신문 돗자리에 담았다.

이 신문 돗자리를 펼치면 “바다 밑으로 사라지는 도시들, 서울도 해마다 0.66cm씩 가라앉는다”, “지구 ‘1.5도 상승’ 지키려면 2030년 탄소배출 43% 감축해야”, “‘생분해’들어갔다고 모두 친환경 플라스틱 아니다”라는 세가지 기사를 읽을 수 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십자말풀이도 인쇄돼 있다.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신문 돗자리는 국내 500ml 페트병 40개로 제작된 폐플라스틱 원단 ‘플라텍스’로 만들었다. 폐플라스틱을 100% 재활용한 원단이며 폐플라스틱을 작은 조각으로 분쇄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한겨레 측은 신문 돗자리를 통해 환경 기사를 자연스럽게 읽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프로모션 기간 동안 정기 후원 회원으로 가입하면 자동으로 응모되며 신문 돗자리가 배송된다.(링크)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이정윤 한겨레 후원미디어전략부 후원팀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겨레 후원회원제인 ‘서포터즈 벗’이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출범 당시 자체 채널을 통해 다양하게 홍보했지만 아직도 덜 알려졌다고 판단했다”며 “어떻게 서포터즈 벗을 알려서 긍정적 피드백을 끌어내고 후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광고 에이전시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언론사 후원 회원제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에게 단순히 서포터즈 벗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 함께할 동기를 만드는 것이 이번 캠페인 목적”이라며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해 한겨레가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한겨레 가치를 직접 읽고 쓸 수 있는 돗자리를 기획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한강 공원 등에서 캠페인을 진행해 영상으로 담아 광고를 제작했다”며 “한겨레는 국내 언론사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신설해 관련 기사를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한겨레의 '신문돗자리'. 사진출처=한겨레 홈페이지. 

이 팀장은 신문 돗자리 기획에 대해 “매우 큰 폭은 아니지만 이전과 비교해 후원으로의 전환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며 “캠페인 영상을 보고 긍정적 피드백을 보내주시고, 신문 돗자리 굿즈의 별도 구매 및 대여 문의가 계속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한강공원을 자주 찾는 젊은 세대들이 주로 방문하는 커뮤니티와 SNS에서 신문 돗자리 캠페인 사진과 내용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며 “현재 한겨레21을 판매하고 있는 네이버스토어에서 ‘한겨레 서포터즈 벗’ 굿즈들을 구매할 수 있게 한겨레 브랜드 스토어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신문 돗자리 기획은 한겨레 후원회원제를 알리는 두 번째 기획이다. 앞서 한겨레 후원미디어전략팀은 첫 번째 기획으로 지난달 중순부터 6월 초 영상과 신문 광고를 진행했다. 한겨레 신문 1면에 ‘진실은 구겨질 수 없습니다’라는 광고를 낸 것과 ‘우리가 알아야 할 세상의 이면’이라는 영상을 제작한 것이 첫 번째 기획이었다.

▲한겨레 5월17일 1면.
▲한겨레 5월17일 1면.

지난달 17일 한겨레 1면 광고에는 “한겨레, 사절합니다. 누군가의 입김 앞에 침묵하는 뉴스. 광고의 유혹에 무릎꿇는 뉴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담지 못하는 뉴스. 한겨레는 그런 신문 사절합니다. 한겨레가 꿋꿋하게 신뢰 언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서포터즈 벗으로 함께 동행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 외 영상 광고 ‘우리가 알아야 할 세상의 이면’(링크)도 기획했다. 이정윤 팀장은 해당 영상에 대해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뉴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이면의 목소리에 집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면지 도장을 활용했다”며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이면지 활용 도장에 한겨레가 말하고픈 ‘세상의 이면’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으로 이면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겨레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했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영상은 6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겨레 후원회원제를 알리는 3차 기획으로는 오는 9월경 짧은 영상과 함께 옥외 광고가 예정돼 있으며 현재는 기획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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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주 52시간제 무력화·연공제 해체' 선언

이정식 "韓 노동시간 OECD 최장" 인정하면서도 "연장 근로 요청 와"

 
 

 

 

정부가 주 52시간제 무력화와 연공제 해체를 위한 노동 체계 개편에 나설 것임을 사실상 선언했다. 노동계는 이에 맞서 총궐기 투쟁을 예고했다.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작 개혁 추진방향'을 대국민 브리핑하며 노동 체계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노동부의 '우선 추진과제'로 선언했다.

주 120시간 '부릴' 자유 마련하겠다?

이 장관은 우선 주 52시간제를 두고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여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편 필요성을 시사했다. 

해당 사례로 이 장관은 "정보통신(IT)‧소프트웨어(SW) 분야 등 새로운 산업이 발달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업별‧업종별 경영여건이 복잡‧다양해지는 만큼,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영계)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그 대안으로 작년 4월 유연근로제가 보완됐으나 "활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현장에서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는 특별 연장 근로를 불가피하게 요청하는 실정"이라며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실상 경영계가 일방적으로 요구한 노동 시간 연장 필요성을 노동부 장관이 시사했다. 아울러 주 120시간 '부릴' 자유를 주장한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관을 반영한 언사로 해석된다. 

특히 이 장관은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928시간으로 1500시간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 근로시간 단축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노동시간을 더 줄여야 하는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 노동관에 맞춰 사실상 노동시간 연장 필요성이 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편 셈이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이 장관은 "주 최대 52시간제의 기본 틀 속에서 운영방법과 이행수단을 현실에 맞게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이 장관은 △'주 단위' 초과근로 관리방식을 노사 합의에 따라 변경 가능하도록 개정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며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적정 정산기간 확대 등을 추진하며 △스타트업과 전문직의 경우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연공제 폐지에 나서겠다고도 선언했다. 

이 장관은 "작년 기준 우리나라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급 운영 비중이 55.5%이고 1000인 이상인 경우 70.3%"라며 "연공성이 매우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제도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우리나라의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와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 차이는 2.87배로 연공성이 높다는 일본(2.27배)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성과와 연계되지 않는 보상시스템은 '공정성'을 둘러싼 기업 구성원 간 갈등과 기업의 생산성 저하, 개인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노동자 역시 "'평생직장' 개념이 약해지면서 현재 일한 만큼의 보상을 현시점에서 정당하게 받기를 원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이 장관은 초고령사회로 한국이 진입함에 따라 연공제를 폐지해야 "장년 근로자가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며 연공제 폐지가 불가피하다고도 강조했다. 

이에 이 장관은 "청년과 여성, 고령자 등 모든 국민이 상생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과 확산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미국 오넷(O*net)과 같이 풍부한 임금정보를 제공하는 '한국형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넷은 미국의 800여 개 직업의 임금 정보와 수행하는 직무, 그 자리에 필요로 하는 능력 등을 제공하는 노동 관련 포털이다.

이 장관은 아울러 △개별 기업에 대한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을 확대하고 △우리나라 임금제도 실태 분석을 하는 한편 △해외 임금체계 개편 흐름을 토대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확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제를 선정해 나가겠다고도 밝혔다. 

또 임금피크제와 고령 노동자 계속 고용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발굴에도 나설 것이라고 이 장관은 덧붙였다.

노동자 출신 장관 "노조 '불법행위' 엄정 대응" 

이 장관은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은 법‧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행의 개선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며 "신뢰의 토대인 공정한 룰이 원칙있게 지켜질 수 있도록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사 불문 엄정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이번 정부 개편안에 대한 노동계 반발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이번 정부 발표를 두고 노동계는 강력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달 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관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예정됐다. 

다만 해당 집회는 경찰이 이미 불허한 상태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조치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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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에 분노한 그들이 한동훈 딸엔 조용한 이유는..."

[인터뷰] <시험능력주의> 저자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22.06.23 20:02l최종 업데이트 22.06.23 20:02l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에서 김동춘만큼 다방면에 걸쳐 이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비판하고, 활동한 학자가 있었을까? 역사, 노동 경제, 이념 등에 두루 걸쳐있는 김동춘의 레이더는 광범위하고, 깊은 병증을 찾는 그의 그물은 늘 촘촘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시험능력주의>를 통해 이 사회의 교육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물론 그간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동춘은 이번 책을 통해 한국형 능력주의가 교육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구조적으로 해부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교육의 문제를 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학을 넘나들며 빈틈없이 논증을 전개하는 김동춘의 칼날은 여전히 벼리다. 관련하여 지난 16일 <시험능력주의>(창작과비평사)의 저자 김동춘 교수를 만났다. 우리는 이 학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험능력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
 

김동춘 교수 프로필 사진
▲  김동춘 교수 프로필 사진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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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과거사, 이념 갈등, 노동과 계급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병폐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셨다. 다만 이번 저작인 <시험능력주의>는 그간 천착했던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느낌인데? "처음엔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한국의 노동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육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과 교육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언젠가 제대로 다뤄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관련해서 글도 많이 썼었고. 게다가 교사와 교수를 거치면서 학생들을 계속 만나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 문제를 지켜보고, 절실히 공감하기도 했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나 현대사 쪽으로 연구하면서 계속 미뤄졌는데,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이제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동과 교육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예를 든다면?

"2016년에 구의역 김군 참사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학벌이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있고, 이 현실로 인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한국은 아주 특별한 시험사회, 사람을 평가할 때 시험성적 이력을 거의 절대시하는 시험만능주의 사회'라고 하셨는데,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시험만큼 어떤 사람의 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게 아닐까?

"한국의 시험은 이른바 '집필 고사'고, 사람을 점수화, 수치화해서 등급과 랭킹을 매기기 위한 시험이고, 다수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학교 내신, 수능시험이 그렇듯이 4지선다, 5지선다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화된 기준을 제시해야만 승복한다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한 번에, 한 칸에 당락을 좌우하고, 그것이 일생의 운명을 좌우한다. 물론 시험은 어느 나라에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만 다수의 경쟁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이런 시험은 전형적으로 일본, 중국, 한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국가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 시민사회에서의 자체 평가의 능력이 약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것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폐가 있다."

- '시험능력주의의 앞면을 지배체제라 보면, 뒷면은 노동(배제)체제이며, 그 결과는 부정적인 사회병리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사회병리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신다면?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명문대, 좋은 학과가 1차, 고시 합격 같은 것을 2차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시험능력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평생토록 지배한다. 문제는 이 시험이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남긴다는 점이다. 패배자는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승리자는 부당한 지배체제를 갖는다. 사회적인 부정이나 불법이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하면서 부당한 권력과 불법을 계속 유지하는 식이다.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청소년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일탈, 좌절감, 정신적 상처, 자살, 부모들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스트레스, 부모들이 겪는 상처 등등이 우리 국민이 겪는 시험주의 체제의 병리라고 본다.

한편으로 승리자들도 상처가 있다. 더 위에 있는 승리자들에 대한 콤플렉스다. 또 하나는 사람이란 무릇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야 하는데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혹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야말로 온 사회의 병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이런 시험능력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기보다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에 더 분노하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조국 사태 때 그랬고. 같은 맥락으로 보면 한동훈의 딸에게는 또 별다른 분노가 없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보는지?

"우선 조국의 딸에게 분노했던 것은 소위 SKY대학의 학생들이지 지방대 학생들이 아니다. 대학 서열 하위권 대학 학생들은 분노할 힘도 없다. 이게 따지고 보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제로 선언 때(문재인 정부 시절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60개 협력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정규직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한 일-기자 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기득권자들의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다. 공정하지 않은 방법이나, 혹은 시험 보지 않은 아이들과 나눠 먹기 싫다는 의미다. 이런 분노는 모든 청년이 가지는 게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잘나가는, 잘나갈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에게서 나타난다.

한동훈 딸에게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들과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게 상위 1~2%와 0.1%의 차이인 셈이다. 한동훈의 딸은 (아직) 대학을 안 간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기들 세계 밖에 있고, 조국의 딸은 자기들 세계 안에 있다. 이런 문제들도 올라가면 결국 큰 뿌리는 시험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시험능력주의 승리자들이 누리는 특권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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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능력주의> 표지 이미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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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능력주의>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앞면과 뒷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앞면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지점은 "사회적 폐쇄, 지위 폐쇄를 통한 지위 세습"에 관해서였다. 관련해서 좀 설명해 주신다면?

"지위 폐쇄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 학력이나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발로 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들만 특권을 누리려고 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의대 증설 방침이 거론되자 의사협회에서는 "의사 수가 늘어나면 능력없는 의사가 양산될 것"이라고 하고, 판사들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수가 464건에 달할 만큼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판검사 수 확대에 극렬히 반대한다. 이런 방식으로 가면 지배체제는 자꾸만 더 공고해지고 사회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코로나 사태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 공공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한 와중에도 의대생들이 나서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반대하는 촌극이 발생하지 않았나."

- 이번엔 뒷면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전국의 일터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는 노동인권 침해, 중대 재해, 노동 차별,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찍기, 학교에서의 노동 무시 교육이 시험능력주의의 산물"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한국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노동자 권리, 여성의 권리가 낮고, 노동조합의 조직률도 12%로 OECD 국가 중 최하다. 그러면서 중대 재해율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게 과거에는 노동 탄압에 기인한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지금은 왜 그럴까? 이유는 명백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단결과 조직화를 포기하는 측면 때문이다. 학교에서 노동은 피해야 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공부 못하면 노동자 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런 교육을 통해 아이들도 은연중에 받아들인다. 그런 청년들이 노동자가 되면 자기 기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 권리의식도 낮고, 권리의식이 낮으니 노동에 대한 차별이 지속된다.

시험능력주의는 노동 차별을 정당화하고, 좀 거칠게 말하자면 신노예를 양산한다. 시험능력주의에 패배했으니, 공부를 못했으니 라는 이유로 이 모든 위험과 불합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 그렇다면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교육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선 시험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줄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 시험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계층들, 이를테면 변호사나 법관, 의사, 약사, 교수들의 자격 독점을 완화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법원 판사를 반드시 고시 합격자로 제한해야 하나?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오히려 학문적으로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지위의 개방을 통해 좋은 자리에 대한 특권을 완화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우를 높여야 한다. 예컨대 배관공이나 청소노동자 같은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보수를 높이는 방식인데, 이건 또 재벌 체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처럼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로는 절대 바뀔 수 없다.

다른 맥락으로 수직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완화해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 지방 대학에 대한 공공투자 확충 등을 통해 대학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평준화하고, 입학이 아니라 졸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간략하게 말해도 이 정도이니까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다. 절대 하루아침에 안 된다. 지금부터 사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지점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한 세대는 걸릴 거라고 본다."

- 그렇다면 이 사회가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은 있을까?

"어려운데... 우선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의 반수 이상 그렇겠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거의 전부는 아예 이런 주장 자체를 부정한다. 시험 외에 인재 선발의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더 서열화해야 더 우수한 인재들이 나온다고 주장하니까 그 사람들과는 교육개혁이나 사회개혁의 방안에 대해 대화가 어렵다. 특히 50대 이상 한국인들에게 경쟁적 시험은 거의 자연법칙처럼 간주된다. 다른 방법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객관식 시험 외의 온갖 선발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민주당 지지자의 반 정도는 된다고 보시나?

"내가 너무 높게 잡았나?(웃음) 뭐 그래도 1/3은 된다고 본다. 어쨌든 그렇게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정치 세력이 1/3이라도 있다면 관련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권에만 기대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시민사회에서 움직임이 나와야 한다.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학벌 타파 운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SKY대학 학생들은 블라인드 채용도 반대하는 실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지금 이런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가 100중에 5 정도인데 20 정도만 되어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고, 독일이나 유럽 국가들을 봐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이 책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 꼭 시험능력주의가 아니라도 그간 다양한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이야기해왔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상위 1%가 너무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하위 80%가 우리나라에 대해 애착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위 1% 혹은 10% 정도만 어느정도 해피하고, 나머지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다. 10년 넘게 저출산과 자살이 압도적인 세계 1위라는 것만 봐도 이 사회가 얼마나 팍팍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교육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형평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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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유엔사,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다”

20여 단체들, ‘유엔사 해체 대국민토론회’ 개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2.06.24 02:28
  •  
  •  수정 2022.06.24 02:33
  •  
  •  댓글 0
 
23일 오후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유엔사 해체를 위한 대국민토론회‘가 열렸다. 유엔사령부를 반국가단체로 공론화 한 첫 자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23일 오후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유엔사 해체를 위한 대국민토론회‘가 열렸다. 유엔사령부를 반국가단체로 공론화 한 첫 자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가보안법의 조항만을 보게 되면 북한만이 아니라... 반국가단체 구성을 충분히 충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유엔사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다.”

20여 국내 민간단체들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유엔사령부(UNC, 이하 유엔사) 문제를 천착해온 이시우 사진가는 유엔사의 불법성에 의한 ‘부존재’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유엔사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혀 주목된다.

국가보안법 제2조(정의) ①항은 “이 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1/2022 미국 전쟁‧반인륜 범죄 국제민간법정 조직위원회]와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이 2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개최한 ’유엔사 해체를 위한 대국민토론회‘에서 이시우 사진가는 ’유엔사령부의 성격과 지위 -유엔군사령부는 반국가단체이다‘ 제목으로 발표에 나섰다.

이 토론회는 서울진보연대, 서울대학교민주동문회, Action One Korea 한국,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20여 단체가 공동 주최했고, 통일뉴스 주권방송, 민플러스, 자주시보 등이 후원했다. 

유엔사령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춰온 이시우 사진가는 이번 토론회에서 반국가단체 성격에 주목을 돌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유엔사령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춰온 이시우 사진가는 이번 토론회에서 반국가단체 성격에 주목을 돌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시우 사진가는 먼저, 유엔사가 ‘정부 참칭’을 했는지에 대해 “유엔사는 대성동에 대해 미국정부의 행정을 수립하는 군사실행기구”라며 “한국영토 일부에 미국정부의 행정을 수립했다고 명시한 것은 정부참칭에 해당된다”고 규정하고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

‘유엔사규정 525-2’(2019.4.1)에는 ‘민사행정’을 “아군 지역에서 현지 정부와의 합의 하에 현지정부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특정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외국 정부가 수립하는 행정”으로 규정하고 있고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대성동에 대한 점령권과 행정권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

둘째로, ‘국가 변란’에 대해 “국가를 변란한 자가 아니고 변란할 목적만 가져도 처벌되게 돼 있다”고 해설하고, 실제 사례로 한국전쟁 당시 평양시와 함흥시에서 군정을 실시한 경험과, 이승만 정부 전복을 시도한 ‘플랜 에버레디’ 등을 예시했다.

“대법원 판례에서 경험칙상, 사리상 반드시 국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참칭할 수밖에 없는 이런 단체에 해당한다”라는 판단이다.

셋째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유엔사는 “군사력을 동원해서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휘 통솔 체계를 갖고 있는 그런 단체”라는 것.

이시우 사진가는 발표문에서 “한국 정부와의 조약없이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행정을 수립하고 있다면 이는 정부를 참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대성동 주민에 대한 납세와 국방의 의무이행을 배척하고 한국합참의 비무장지대 교전수칙을 배제하고, 비군사적 목적의 비무장지대 출입과 군사분계선 통과를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변란을 상설적으로 실행하고 있다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시우 사진가는 “반국가단체인가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듬고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마로니에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토론회는 마로니에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오혁 국제캠페인 사무국장은 발제에서 “유엔사 위험성의 첫 번째는 우리 법 밖에 있다는 것”이라며 ‘초월적 존재’ 행세를 꼬집었다. 특히 “주한미군사령부가 발간한 ‘주한미군 2019 전략 다이제스트’ 제목의 공식 발간물에는 유엔사가 유사시 일본과 전력 자원 협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경계심을 표했다.

이어 △대통령 방북길도 승인받아야 한다. △철도도로 연결사업 차단 △공동경비구역 자유왕래 사업 정지 △공동경비국역 자유왕래 사업 정지 △고성GP 방문 불허 등을 예시하며 ‘무소불위’ 유엔사를 비판했다.

정연진 AOK 한국 상임대표는 ‘유엔사 해체 운동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서 “소수 전문가들만이 아닌 전 국민적인 이슈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미국문제에 대한 범시민사회단체의 대동 결합 단결과 선제적 자세”를 주문하기도 했다. 특히 이슈를 따라가지 말자며 ‘선제적’ 자세를 강조했다.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했고, 이해영 한신대 교수와 이재희 진보당 파주시당위원장이 토론에 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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