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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대통령은 처음이어서”라는 윤 대통령, 그런 핑계가 통하는 자리인가?

  •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 발행 2022-06-20 07:12:01
  •  
  • 내가 살다 살다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은 처음 해보는 거여서”라는 핑계를 듣는 날이 올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이도 없어지고, 어처구니도 없어지고, 집 창고에 잘 보관해두었던 맷돌 손잡이도 없어지고, 하여간 없어지는 게 한 묶음이더라.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때 비선 논란이 일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관해 해명하면서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 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될지”라고 답했다는 게 핑계의 요지였다. 그런데 단임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두 번 하는 사람도 있냐? 도대체 뭔 소리냐?

    나는 설마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단임제 국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무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 말은 “정치 초보여서” 정도로 해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후하게 해석을 해줘도 저 말은 대통령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왕초보 운전에 아이도 타고 있어요” 같은 스티커 한 장 유리창에 붙인다고 봐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윤석열 후보 시절부터 이 칼럼을 통해 숱하게 지적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떠나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만 살아온 초보 정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험과 뇌의 발달

    뇌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던 UC버클리 대학교 매리언 다이아몬드(Marian Diamond, 1926~2017) 교수의 살아생전 연구를 한 가지 살펴보자. 이 연구는 다양한 경험이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규명한 명연구로 꼽힌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쥐를 A와 B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각각 다른 환경을 제공했다. A집단 쥐들은 동료와 함께 생활했으며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제공받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반면 B집단 쥐들은 혼자 생활했으며 이런 다양한 경험 소재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두 집단 쥐의 뇌를 연구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다양한 경험을 한 쥐들의 뇌 피질이 그렇지 못한 쥐의 그것에 비해 훨씬 발달한 것이다. 피질이 발달할수록 뇌는 학습이나 기억, 감각 등을 더 잘 동원해 보다 고차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 경험을 많이 한 A집단 쥐의 RNA 대 DNA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뇌세포가 훨씬 더 잘 성장한다.

    이뿐이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A집단 쥐의 시냅스는 경험이 부족한 B집단 쥐에 비해 50%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냅스는 뇌 신경세포들의 소통창구 같은 것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뇌의 소통이 훨씬 활발하게 이뤄져 더 다양한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험이 뇌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유아기나 아동기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일생동안 호기심을 유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우리는 늙어서도 뇌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다.

    ‘평생 검사’로 산 뇌의 위험성

    내가 후보시절부터 윤석열의 위험성을 누차 강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시 9수에 평생 검사로 산 사람의 뇌는 그야말로 경험이 협소하기 짝이 없다. 만나는 사람도 동료 검사 아니면 피의자다. 여기에 검사의 권력까지 주어지면 뇌는 절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6.17. ⓒ뉴시스

    “검사 출신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검사가 바로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그 과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뇌는 그 어떤 사람의 뇌보다 창의적이어야 하고,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능력은 다양한 경험을 통한 뇌의 자극으로 발달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 단계가 생략돼 있다.

    생각해보라. 영부인의 비선 논란이 일었는데 대통령이 “우리는 처음이어서 잘 몰라요”라고 답을 한다. 이게 지금 대통령이 할 말인가? 이야기를 적시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적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은 최소한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하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결정적으로 이게 안 된다.

    단지 그가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이 무식한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뇌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 경직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나라가 좌우되는데, 누가 적어준 연설문이 아니면 금세 말에 펑크가 난다.

    “초보면 초보답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좀 닥치고 있어라”라고 말하고 싶은데, 상대가 일 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이라 그러라고도 못 하겠다. 앞으로 5년 동안 정치적 경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지도자의 경색된 뇌가 이 나라를 이끌 것이다. 나라가 얼마나 삐걱댈지 안 봐도 비디오인데, 이게 내 나라여서 걱정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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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수난과 구도의 삶을 기억하며

[김지하를 추도하며] 4

염무웅 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2022.06.20. 07:45:00
 

돌이켜보면 1960년대 중엽 김지하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며 궐기한 학생운동 속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근무가 끝나면 복학한 친구들을 만나러 동숭동의 농성현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그때 김지하의 쉰 듯한 목소리가 뿜어내는 뜨거움을 나는 화상(火傷)의 위험처럼 느끼며 외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가정교사로 숙식을 해결하며 주로 서구문학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지내온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외친 민족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청맹과니였던 거지요.

다른 하나는 시인이자 미학이론가로서의 김지하였습니다. 1964년 5월쯤이던가, 을지로 5가 뒷골목의 어느 술집에서 시화전이 열렸고, 거기서 나는 아마 처음으로 金之夏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그의 시를 보았습니다.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 시화전에 나온 시들 대부분은 그동안 내가 읽어오던 우리나라의 시적 관습에서 벗어난 낯설고 실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후일 김지하 본인은 당시 자기가 슈르(초현실주의)풍의 모더니즘 계열 시를 썼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나에게는 친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나는 그의 논문 발표를 듣게 됐습니다. 박종홍 교수가 늘 철학개론을 강의하던 문리대 대형강의실에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규 강의가 끝난 뒤의 어둑한 분위기가 지금도 아련히 떠오릅니다. 제목은 <추(醜)의 미학>. 칸트와 헤겔로 대표되는 전통미학 바깥을 더듬는 내용이었는데, 미학 이론에 입문조차 못한 나에게는 그의 대담한 이론 탐색이 낯설뿐더러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지하 자신도 후에 고백한 바 있지만, 사실 그 발표는 헤겔의 제자인 19세기 독일 철학자 칼 로젠크란츠(Johann Karl Friedrich Rosenkranz, 1805~79)의 저서 <추의 미학>(Ästhetik des Häßlichen, 1853)에 근거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로젠크란츠라는 서구학자의 이론을 수용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지하는 로젠크란츠의 미학을 발판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이론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추의 미학’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로젠크란츠와 김지하는 사뭇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지하는 1960년대 중엽부터 서구 모더니즘에 여전히 한발 담그고 있으면서도 조동일 학형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탈춤이나 풍물 또는 민요나 판소리 같은 우리의 전통예술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이용희(李用熙, 1917~1997) 교수의 회화사 연구에 자극받아 조선 후기의 풍속화와 실경산수(實景山水)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요약하면 김지하의 ‘추의 미학’은 초현실주의 같은 모더니즘 서구예술로부터 우리 자신의 민족·민중미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론적 초석을 놓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하와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역촌동 병원에도 몇 번 갔었지요. 수색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포수마을(지금의 서부병원 근처)에서 내려 논밭을 지나 산길을 오르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가 퇴원한 뒤에는 소설가 오영수 선생 댁을 여러 번 동행했습니다. 갓 결혼한 나의 셋방이 오선생 댁에서 아주 가까운 쌍문동 우이천변이었던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선생의 장남인 미대 후배 오윤의 남다른 미술적 재능에 지하가 흠뻑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무렵 그는 미학과 선배인 김윤수 선생의 이론적 지도와 오윤 등의 실천적 뒷받침을 조직하여 과감하게 리얼리즘 미술운동에 시동을 걸었고, 알다시피 그것은 지난 반세기 사이 한국미술의 새 역사를 쓰는 데까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1970년은 김지하 개인에게나 한국시의 역사에서나 특별한 해였습니다. 5월에는 담시 <오적>이 폭탄처럼 문단과 정치-사회를 강타했고 연말에는 시집 <황토>가 출간되어 시단을 흔들었지요. 그 어간에는 선배시인 김수영의 모더니즘에 기대어 자신의 시학(詩學)을 천명한 논문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했습니다. <농무>의 시인 신경림이 문단에 복귀한 것도 그해 가을이었고요. 눈을 돌리면 열악한 노동현실에 항의하여 젊은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1960년대 말 김수영, 신동엽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데 이은 김지하의 눈부신 등장과 신경림·이성부·조태일 등의 새로운 활약은 우리 사회와 문학 내부에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 전환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의식하고 가장 치열한 언어로 표현한 것은 김지하 자신이었을 겁니다. 시집 <황토>의 후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작은 반도는 원귀(怨鬼)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있다. 외침, 전쟁, 폭정, 반란, 악질(惡疾)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숱한 인간들의 곡성(哭聲)으로 가득차 있다. 그 소리의 매체, 그 한(恨)의 전달자, 그 역사적 비극의 예리한 의식. 나는 나의 시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왔다. 강신(降神)의 시로." 

여기 표명된 시인으로서의 강렬한 사명감이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형식을 빌어 표현된 작품이 담시 <오적>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정치적 파장과 사회적 폭발력 때문에 미학적 성취나 시사적(詩史的) 의의가 충실하게 검토되지 못했습니다. 지하 자신도 그 점을 아쉬워하곤 했지요. 당시 동아일보에 시 월평을 쓰던 나도 다음과 같은 소략한 언급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을 단순한 현실풍자로만 보아넘기는 것은 피상적 판단에 그치기 쉽다. 도리어 그러한 생생한 풍자를 유기적으로 자기 내부에 용해시킨 시형식적 달성이야말로 한국시의 앞날을 밝게 한다."(동아일보 1970.5.30.)

그야말로 단순한 암시에 불과한 촌평입니다. 여기서 내가 말한 ‘시형식적 달성’이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품 상태의 판소리 형식을 현실비판의 살아 있는 무기로 힘차게 살려낸 업적을 가리킵니다. 후일 김지하 자신도 <담시 전집>(솔 1993)을 간행하면서 "판소리의 현대화와 동학혁명 서사시는 내 꿈"이라고 언명한 바 있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판소리의 현대화는 김지하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여러 고뇌 어린 예술적·이념적 및 실천적 탐색의 일부, 즉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김윤수·오윤 등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현실주의 미술운동이 오늘날 한국 미술의 주류의 위치에 올라섰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국문학자 조동일의 이론적 지도와 창작자 김지하의 실천적 노력이 결합된 결과로 구체적 생기를 얻은 마당극, 마당굿, 탈춤, 풍물, 민요 등의 광범한 민중·민족연행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운동권 자체의 활동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 문화도 달라지지만, 1970년대 이후 30년 동안 한국에서는 거꾸로 대학문화가 사회의 변화를 선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지하가 불붙인 새로운 문화운동이 퍼져나가는 동안 그 자신은 불행히도 1970년대의 많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독방은 유례없이 혹독한 감시 속에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후일 그는 고백했지요. "어느 날 대낮에 갑자기 네 벽이 좁혀들어오고 천장이 자꾸 내려오며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서 꽥 소리 지르고 싶은 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몸부림, 몸부림을 치고 싶은 것이었다." 

1980년 12월 마침내 그는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집 앞의 감시는 계속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번뇌가 그 무렵에 나를 사로잡고 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래 지하는 술을 좋아했어요. 그나마도 왕소금에 깡소주를 마시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애주가는 아니었어요. 출옥 후에는 더 심하게 술에 의존하게 된 듯합니다. 1980년대에는 내가 사는 대구에도 내려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그러다가 어느 때엔 우리 집에서 잔 적도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를 상대하기 버거웠어요. 나는 잠을 자러 들어가야 되는데, 그는 소줏잔을 들고 장광설을 그치지 않았으니까요. 새벽에 깨 보면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당시에 나는 충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회고록에 보면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의한 정신황폐증'이라? 내 병의 최초의 근원은 유년기의 사랑 결핍과 욕구 불만이었고, 최근의 원인은 과도한 알코올 중독인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오늘 나는 40년 가까운 지난날을 돌아보며 한없이 아픈 마음으로 시집 <화개(花開)>((2002)에 실린 그의 시 <횔덜린>을 읽습니다.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 

내리는 비를 타고 

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어둠을 어둠에 맡기고 

두 손을 놓고 거꾸로 오르며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그리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횔덜린(Friedrich Holderlin, 1770~1843)이 누구인가. '신이 사라지고 자연과의 조화가 무너진 자기 시대'를 탄식하며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고귀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소임'이라 보았던 시인, 그러나 바로 그 너무도 순결했던 소임 때문에 도리어 생애의 후반 37년을 정신착란자로 살아야 했던 시인 아닌가. 그 횔덜린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또 다른 시인을 우리는 이제야 봅니다. 

물론 지하는 1980년 석방 이후 30여 년 동안 괴로움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횔덜린처럼 정신착란의 감옥에 유폐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지독한 고통 자체가 동력이 되어 김지하 특유의 사상적 모색이 더욱 심오한 깊이를 얻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남긴 책들을 읽어보면 그는 젊은 날부터의 수많은 지적·현실적 자극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종합하고 극복하여 어떤 사상적 화엄의 통일체, 그 자신의 용어로 '움직이는 무(無)'의 상태에 이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짓밟히고 학대받은 땅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노래했던 첫시집 <황토>부터, 원주중학 동창(윤노빈)과 함께 읽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대학의 미학과에서 습득한 다채로운 서구의 예술이론들, 박정희 정권과의 목숨을 건 투쟁, 수운과 해월의 동학사상, 장일순 선생•지학순 주교와 함께했던 '원주 캠프'의 뜨거운 경험들, 정지용부터 이용악을 거쳐 김수영까지의 수많은 선배 시인들... 이 모든 자양분을 빨아들여 그는 '김지하'가 되었습니다. 

물론 생애의 마지막 10여 년에 보인 그의 정치적 행보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그 비난•비판의 일정한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병고에 시달리다 노년에 들어선 김지하는 지난날처럼 그 비난과 비판 안에 들어 있는 합리적 핵심을 붙잡아 자신의 인간적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삼을 힘을 이미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김지하를 사랑했던 동료와 후배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생각건대 김지하는 아직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의 80년 생애와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들은 제대로 검토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선 필요한 것은 그의 삶과 죽음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하 시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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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경고 "쉽게 된 윤 대통령, 사정 정국 갔다가 YS 전철 밟을 수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6/20 09:25
  • 수정일
    2022/06/20 09: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①] "전방위 수사 바람직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미중 갈등으로 세계경제 무너져"

22.06.20 05:56l최종 업데이트 22.06.20 08:19l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상 초유로 쉽게 대통령이 됐습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쉽게"라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재차 묻자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된 분이 어디 있나"라고 답하며 "쉽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승승장구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은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 전 원장은 "(국정원장을 맡는 동안) 정치를 떠나 2년 정도 바라보니 (세상이) 보이더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만 80세의 그는 2년 전 총선 낙선 직후를 거론하자 "왜 남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냐"며 너털웃음을 지었고, 인터뷰 중간중간 "내가 괜히 정치 9단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라며 넉살을 피우기도 했다.
 
다만 인터뷰 주제가 '검찰'로 넘어가자 사뭇 표정이 달라졌다. 박 전 원장은 인터뷰 내내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권 초반 정치보복 논란이 벌어지는 것에 "지긋지긋"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고개를 내저었고, 심지어 김영삼 정부의 IMF 사태를 거론하며 "그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박 전 원장은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저축은행 사건'을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떠올리며 "검찰이 이런 식으로 가면 절대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건 정치보복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내용을 두고도 "죄가 있으면 수사해야 하지만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여러 곳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는 매일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중략)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무얼 부르짖고 있습니까. 적폐청산? 처벌?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만델라가 왜 존경받습니까. 용서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박 전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윤석열 비교적 쉽게 대통령 당선... 문재인 정부 반성 필요"
 
▲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사무실 벽면에는 사진액자가 진열되어 있다. 국정원장 임명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 함께한 사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재임 시절,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 모습 등 이다. ⓒ 이희훈

- <오마이뉴스>와의 마지막 인터뷰가 2020년 총선 낙선 직후였습니다.
 
"왜 남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요(웃음)."
 
- 국정원장으로 지명되기 직전 당시 인터뷰에서 '시든 꽃도 봄이 오면 다시 피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는데 그 동안 봄이 왔나요.
 
"국정원장을 맡은 2년은 제게 참으로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저를 임명해주신 문재인 전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문 전 대통령은 저를 임명하면서 '서훈 전 국정원장이 3년 간 국내정보 수집·분석 부서를 해편하고 정치개입을 하지 않았으니 이걸 법과 제도로 완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받들어 국정원을 완전히 개혁했습니다. 과거 국정원장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지만 이젠 제가 걸어간다 해도 새가 안 날아갑니다.  
 
지난 5년 간 어떤 정당이, 어떤 언론이, 어떤 시민단체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지적했습니까? (정치개입을) 안했기 때문에 (지적이) 없는 겁니다. 이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2년 간 보람 있게 일했습니다. 저는 국정원을 존경합니다. 특히 애국심과 헌신을 기조로 일하는 국정원 직원들을 사랑합니다. 단, 2년 간 선글라스는 한 번도 못 쓰고 마스크만 쓰고 있었습니다(웃음). 마스크 때문에 말을 못해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지만 잘 해냈습니다. 이제 마스크도 벗고 말하고 사니까 지금은 지금대로 또 행복합니다."
 
- '검사 윤석열'이 퇴임 후 1년 여 만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입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성은 필요합니다. 어찌됐든 국민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사이익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로 최단기간에, 어떤 의미에선 비교적 쉽게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 '쉽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된 분이 어디 있습니까. 혁명하지 않고 그렇게 갑자기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쉬우면 안 되더군요. 쉽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승승장구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윤 대통령은) 정말 잘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합니다."
 
- 과거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실세에게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는데, 그 사이 많은 부침이 있었고 결국 윤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문 전 대통령과 (2014년) 당대표 경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습니까. 또한 제가 민주당을 떠나 안철수 신당(국민의당)에서 (2017년) 대선 때 '문모닝'으로 얼마나 (문재인 후보를) 많이 비난했습니까. 하지만 대선 후에는 '선거 땐 치열하게 싸워도 당선되면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는 철학을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게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IMF 아닙니까. 대통령이 성공하면 나라가 삽니다. 그게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IMF 극복 아닙니까.
 
문 전 대통령 당선 후 두 번 청와대에서 뵈었습니다. 저에게 '방송을 다 보고 있다. 내가 못 보면 보고를 받는다. 잘 도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과거 문모닝 한 것을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라고 하니, 문 전 대통령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지적해주면 잘 참고하겠습니다'라고 그러셨습니다. 한참 후 문 전 대통령이 저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니까 청와대 기자실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났고 일부 언론에선 '문 전 대통령의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측근이나 검사만 (주요 자리에) 임명하지 말고, 인사의 폭을 더 넓혀야 합니다."
 
- 안철수, 김한길, 박주선 등 함께 국민의당을 만들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윤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습니다. DJ의 비서실장으로서 그들의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김 전 대통령의 혼이 박혀 있는 민주당을 탈당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고 국민들께 사과드립니다. 제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일입니다. 정치인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질문한 분들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성공하도록 잘 돕길 바랄 뿐이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 6.25, 4.19, 5.18, 6.10 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의 시기를 거쳤는데 이들과 저는 정체성이 확실히 다릅니다. 저는 정체성에서 일탈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 대북송금 특검, 저축은행 사건 등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경험했고 '한명숙 사건'에 대해서도 '조작수사'란 표현까지 써가며 검찰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최근 검찰의 움직임과 정치보복이란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축은행 사건은 가장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지시해 '박지원이 검찰 수사를 무마해준다는 조건으로 망한 저축은행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고 기소해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법조계, 특히 검찰 출신 인사들이 '이건 무죕니다. 걱정하지 마십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2013년) 1심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당시 권력 실세가 역할을 해 항소심에서 유죄가 나왔습니다.

이후 그 실세는 대법원 관계자를 만나 '2심을 유지해 달라'고 했지만 결국 전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것은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 나와 있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검찰이 권력과 결탁해 나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4선 중 3선, 12년 동안 법제사법위원을 한 사람으로 검찰의 이런 행위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왔습니다. 검찰이 이런 식으로 가면 절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 정치보복 수사라는 지적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중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걸 정치보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최근 야당을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보고 '아, 윤석열 정부도 결국 사정으로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장관의 말씀이 맞습니다. 죄가 있으면 수사 받아야죠. 그러나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30년 간 우리는 많은 적폐수사, 과거사진상규명 등 여러 개혁을 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는 매일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니 윤석열 정부가 가장 잘 하는 것이 그것(수사)이겠죠. 그러나 지금 국민은 개혁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가 사정 정국으로 갔다간 김영삼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임기 초반 사정 정국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다가 결국 경제가 망해 IMF를 불러왔잖습니까. 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과거보다 미래로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검찰의 전 정권 수사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검찰은 과거에 삽니다. 과거에 잘못한 사람을 수사해 처벌을 요구하는 조직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간 과거에 집착해 살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죄가 있으면 수사해야 하지만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여러 곳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만큼은 대탕평을 부르짖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면 국민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이거(사정 정국) 이제 지긋지긋해요. 그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국민 대다수의 의견입니다."
 
-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의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까.
 
"저는 제일 먼저 박근혜·이명박·이재용 이런 분들을 상징적으로 빨리 사면하자고 주장했었습니다. 국정원장에 재임하면서도 과거 국내파트 사건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다시 기회를 줬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선 '원장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국정원에 함몰됐냐'고 항의했지만 저는 진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상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무얼 부르짖고 있습니까. 적폐청산? 처벌?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만델라가 왜 존경받습니까. 용서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참석, 아쉬워... 국익 우선한 인도 보라"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된 시기에 국정원장으로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가 친북·친중정권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한미일 정보동맹을 통해 협력과 공조의 시대를 위해 노력했고 중국 외교 관계자들과 경제협력, 대북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이 이상을 이야기하면 국정원법에 걸립니다."
 
- 시진핑과 트럼프의 연이은 등장으로 미중 데탕트의가 사실상 깨진 이후 한국에서도 부쩍 반중정서가 강화된 모습입니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중국이 중화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을 진정한 협력 국가로 인정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BTS 공연을 불허하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경제보복도 보세요. 얼마나 가혹하게 해버립니까. 그러니 존경받을 수 없죠. 저는 중국이 넓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반중정서가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때그때 마다 다릅니다. 과거 반미정서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불식됐잖습니까. 중국도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이슈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수세적,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공세적입니다.
 
"외교를 잘해야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중된 외교보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줄타기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결국 국익이 우선 아닙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젠가 끝납니다. 그러면 우린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재개해야 하죠. 러시아에 진출한 조선3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SK 등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오일, 곡물,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에 50%를 수출하는 해바라기씨유 때문에 치킨과 화장품 가격까지 올라가지 않습니까.
 
국익과 경제를 위한 외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아쉽습니다. 인도 보세요. 자주적으로 하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보잖아요. 우리가 인도처럼 하긴 어렵겠지만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윤석열 정부 초기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맨 먼저 윤석열 정부의 두 곳에서 큰 실수가 나올 거라고 했죠. 하나는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입니다. 신선하고 보기 좋지만 대통령의 언어는 참모의 검토를 거쳐 정제돼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늘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겁니다. 지금까진 다행히 외교와 관련된 실수는 없었지만 (도어스테핑에서) 여러 실언이 나왔잖아요. (윤 대통령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했는데) 그럼 대통령을 한 번 하지, 두 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도 매일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자간담회로 소통하는 걸 검토해 볼만 합니다.
 
그 다음이 김건희 여사입니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외교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제1외교를 대통령이 한다면 제2외교는 영부인이 합니다. 영부인 외부 활동을 하지 않던 사회주의 국가도 달라졌습니다. 시진핑도 펑리위안과, 김정은도 이설주와 밖으로 다닙니다. 그런데 영부인이 집에서 내조만 한다? 이건 아니죠. 대통령과 영부인은 사생활이 없어요. 그 자체가 상징이고 그 자체가 국격입니다. 그래서 제2부속실을 다시 만들어 공적 관리를 해야 합니다. 계속 (김 여사가) 사고를 치잖아요. 저는 이러한 조언으로 윤 대통령을 돕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잖아요. 괜히 정치 9단 소리 듣는 것 아닙니다(웃음)."

*<인터뷰 ② - "이준석·박지현 80점... 박지원의 쓰임새는 정권교체 초석" >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나도 조작수사 경험... 한명숙 사건, 검찰이 그림 그린 것" http://omn.kr/1nr3r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해야... 시대요구가 그렇다" http://omn.kr/1nr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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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자주·평화·통일 세상 이룩하자"

 

서울광장서 3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개최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입력 2022.06.19 22:38
  •  수정 2022.06.19 2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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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이룩하자!'

6월 19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올해로 31회를 맞이하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범국민추모제)에 모신 646위의 영정과 함께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자주평화통일 세상'에 대한 열사들의 염원이 나부꼈다.

범국민추모제를 주최한 3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 명예 추모위원장(김중배, 박중기, 신학철, 이규재, 이선종, 이창복, 이해동, 최병모, 청화, 함세웅)을 대표하여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열사, 희생자들의 뜻을 기리는 것은 오늘날 민중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세력들에 맞서 싸우고,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길에 있음을 안다"며 "모두 함께 적폐의 굴레를 박차고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가자"고 추도사를 했다. 

왼쪽부터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결의문을 통해 '반노동, 반농민, 반민중,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 정부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자'고 다짐했다.

또 "이땅의 분단과 전쟁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패권 이익을 실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강대국들의 부당한 패권정책, 이를 추종하며 주권을 포기하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반드시 저지해 나가자"고 동참을 호소했다.

특별히 누구도 더 이상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도록 강력한 법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 시작으로 '민주유공자법'의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국민추모제를 주관한 전국민중행동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는 △노동(노동해방 세상 쟁취/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반노동정책 폐기) △농민(개방농정철폐 식량주권 실현/ CPTPP 가입저지/ 농민기본법 쟁취) △빈민(노점상 생계보호특별법 제정/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 △여성(성평등 세상, 성평등 민주주의 완수/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장애(장이인권리보장법,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 △사회(민중총궐기로 불평등 타파/ 차별금지법 제정) △통일(주한미군 몰아내고 조국통일 완수) △과거청산(과거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역사정의 실현/ 민주유공자법 제정) 등의 요구와 결의를 제시했다.

왼쪽부터 강선순(권희정 열사 모친), 조인식(박종만 열사 부인), 정정원(김윤기 열사 모친), △강종학(강상철 열사 부친), 김석진(김학수 열사 부친), 박종부(박종철 열사 형). 앞줄 장남수(장현구 열사 부친) 유가협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인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장은 지난 10일 6월항쟁 기념식장인 성공회성당에서 삭발식을 단행한 장남수 회장을 비롯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민주유공자들이 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정치권이 나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987년 학생운동 전력자들에 대한 녹화 선도공작으로 인해 희생당한 최우혁 열사의 큰형인 최종순씨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서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강제수사가 가능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겠다며 25년만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왼쪽부터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장(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 최우역 열사 큰형 최종순씨, 박세희 전국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박재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윤헌주 민주노련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재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과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윤헌주 민주노련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은 민족민주열사들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전체 민중을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세희 전국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대표는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염원하며 살아가셨던 열사들이 남긴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나중에 열사들 앞에 섰을 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삶을 살도록 계속해서 움직이며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범국민추모제는 지난해 10월 7일부터 시작한 국회앞 천막농성장에서 출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자전거 국민 대행진'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으로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원불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종교인들이 주재한 종교의식이 사전행사로 진행됐다.

이현주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범국민추모제는 추모영상과 프로젝트팀 '잇다'의 추모공연에 이어 참가자들의 헌화로 마무리되었다. 

김윤기 열사 어머니인 정정원 여사가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한열 열사의 영정에 헌화하고 어루만지며 애통해 하는 유가족.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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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프로젝트팀 '잇다'의 추모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회앞 천막농성장에서 출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자전거 국민 대행진'이 범국민추모제 사전행사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올해 범국민추모제에는 1969년~1990년, 1990년~1999년, 1999년~2009년, 2009년~2021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총 646위의 영정이 모셔졌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지난 1990년 6월 10일 성균관대학교에서 국민연합 주최로 '민중민주열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 및 6월항쟁계승 국민결의대회'를 개최하면서 처음 시작되어 올해까지 31년을 이어왔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추모제를 개최하지 못했고 2020년 29회 추모제는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온라인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다.

처음 모신 181명의 영령은 31년이 지난 올해 646위로 늘어났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사법 사형자와 옥중희생자, 장기수 등 116분의 명단은 따로 자료집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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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기자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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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개벽예감 496]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6/20 [08:00]
 
 
 
<차례>
1. 다급한 심정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
2.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
3.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
4. 미국의 핵정책은 어떻게 변천되었나?
5.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1. 다급한 심정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


2022년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박진 외교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방문기간에 그는 토니 블링컨(Antony J. Blinken) 국무장관을 만나 회담을 진행하고,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기자회견 발언내용 중에서 중요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블링컨 - “우리는 조선의 7차 핵시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우리는 비상사태에 대비하면서, 장단기적 군사태세를 적절히 조절할 준비를 갖추었다. 조선이 방향을 전환할 때까지 압박을 유지하고 증대시킬 것이다.”


박진 - “조선은 핵시험준비를 완료했고,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다. 핵시험을 포함한 조선의 도발은 단합되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다. 조선의 도발은 더 많은 억제와 제재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하기로 했다. 필요한 경우, 이 협의체에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블링컨 - “몇 주 안에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가동될 것이다. 미국은 (조선에 대한) 확장억제에 힘쓰고 있으므로,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아주 이른 시일 안에 작동하게 될 것이다.”


위에 인용한 박진-블링컨 공동기자회견 발언기록을 읽어보면,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다급한 지경에 처했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그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잔뜩 다급해진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대책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하는 것이다. 2022년 5월 21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한미정상공동성명에는 “가장 이른 시일 안에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문장이 들어있는데, 위의 인용문에서 블링컨 국무장관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앞으로 몇 주 안에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위에 인용한 박진-블링컨 공동기자회견 발언기록에서 나타난 것처럼,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조선이 7차 핵시험 준비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번에 처음으로 핵시험을 실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시험 이후 2017년 9월 3일 열핵탄두기폭시험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실시했다. 그래서 이제는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조선의 핵시험에 어지간히 적응되었을 만한데,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이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까닭은, 조선이 준비한 7차 핵시험이 이전의 다른 핵시험들과 달리, 전술핵무기에 장착되는 전술핵탄을 기폭시키는 핵시험으로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은 전술핵무기를 무려 10종이나 보유했다. 모두 최첨단 전술핵무기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엄청나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 4관 탑재형 장거리순항미사일 
- 4관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2관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2발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원뿔첨두형 극초음속미사일 
- 2발 탑재형 철도기동미사일 
- 이중궁형 변곡비행미사일 
- 5관 탑재형 610mm 조종방사포 
- 4관 탑재형 지능핵로켓탄 


위에 열거한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는 적의 미사일방공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고,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적의 미사일방공망을 무력화시키고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은 전술핵무기를 10종이나 보유한 것이다. 머지않아 조선이 실시할 7차 핵시험은 위에 열거한 10종의 전술핵무기에 장착될 극소형 전술핵탄을 기폭하는 핵시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소형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무려 10종이나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비교하면, 조선은 미국, 로씨야, 중국을 제치고 급기야 최정상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조선, 미국, 로씨야, 중국이 각각 보유한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비교해보면, 조선의 초정밀 전술핵무기가 질량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초정밀 전술핵무기는 전시용이 아니라 실전용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한미련합군은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 속에 빠져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유난히 우왕좌왕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2.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


한미련합군이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미국의 확장억제전략(Extended Deterrence Strategy)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은 미국식 이핵응핵(以核應核)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핵은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기의 확장억제전략을 한반도 상황에 적용할 실행방도를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구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xtended Deterrence Strategy and Consultation Group, EDSCG)다. 이 협의체는 한반도 상황에 적용할 확장억제전략의 실행방도를 논의한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1차 회의는 2016년 12월 20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되었다. 


2016년 12월 20일 1차 회의를 마친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조선의 핵위협 및 미사일위협에 대응하여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자산(strategic assets)을 정기적으로(regularly) 배치하고, 억제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 또는 추가적 조치를 확인했고, 그런 조치를 향상시키기로 한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이 인용문에 들어있는, 미국이 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한다는 문구는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한다는 뜻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핵전략자산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상시적으로 배치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오바마 정부는 그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미국은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6개월에 한 번 배치하는지 아니면 1년에 한 번 배치하는지 구체적인 약속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의 꿍꿍이속은 핵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출동시켜 잠깐 보여주기만 하고 곧바로 복귀시키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16년에 핵전략자산인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를 다섯 차례나 한반도에 출동시켰지만, 그 전략폭격기들은 한반도 중부 상공을 한 바퀴 도는 순회비행만 하더니 부리나케 돌아가 버렸다.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았으면, 전략폭격기들이 언제 왔다가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허겁지겁 지나가곤 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해서 한반도 중부 상공을 한 바퀴 도는 순회비행을 하고 돌아가면 많은 출동경비를 지출해야 한다. 많은 출동경비를 지출하는 판에 이왕이면 오산미공군기지에 1~2개월 동안 내려앉았다가 앤더슨공군기지로 돌아가면 억제효과도 대폭 증대될 것이고, 출동경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은 순회비행만 살짝 하고 황급히 돌아가는 행동을 반복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박근혜 정부는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순회비행을 반복한 까닭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가 사실은 핵전략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를 핵전략자산으로 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탑재하지 않은 전략폭격기는 확장억제전략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오바마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 약속한 확장억제공약은 속이 텅 비어있는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미국이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전략폭격기에 탑재하지 않은 까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 미국에 한 발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2020년까지 전량 폐기했고, 지금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게 될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개발하는 중이다. 미국이 신형 전술핵탄두와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각각 개발하고, 그것을 실전배치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이 요구되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 국방부는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실전배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조선은 전략폭격기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미국이 알맹이 없는 깡통 같은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켜 순회비행이나 하고 황급히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현해도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군사행동으로 대응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미국의 전략폭격기 출동을 날강도 같은 핵위협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아메리카핵제국의 침략야망을 지적, 폭로하지만, 그것은 반미선전이다. 조선인민군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이 알맹이 없는 깡통 같은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진짜 목적은 조선을 핵위협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핵공포증에 걸린 종미우익정권을 그런 행동으로 안심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확장억제전략을 운운하면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동시킨 것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종미우익정권을 위한 위안공연이었다.  
    


3.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


2022년 3월 28일 미국 연방의회는 두 종의 국가기밀문서를 접수했다. 그것은 미국 국방부가 제출한 ‘2022년 핵태세검토(2022 Nuclear Posture Review)’와 ‘미사일방어검토(Missile Defense Review)’였다. 미국 국방부가 2022년 1월 중에 연방의회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2022년 핵태세검토’를 3월 말에 가서야 뒤늦게 제출한 것을 보면,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관들이 최근 복잡하게 변화되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처할 핵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참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2022년 핵태세검토’와 ‘미사일방어검토’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두 문서에 관한 언론설명회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고작 ‘사실통보문(Fact Sheet)' 한 장만 달랑 내놓았다. 바이든 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관행과 달리 핵정책을 철저히 비밀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비밀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바이든 정부는 왜 새로운 핵정책을 비밀로 감추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는 몇 글자 되지 않는 짤막한 사실통보문에 들어있다. 사실통보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서 미국 또는 동맹국과 우호국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의 사용을 고려(consider)할 것”이라는 문장이다. 바이든 정부가 수립했다는 새로운 핵정책의 핵심내용은 바로 이 문장 속에 살짝 비껴있다. 그 문장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동맹국과 우호국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20년 4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핵억제: 미국의 국가방위를 위한 기초와 보강(Nuclear Deterrence: America's Foundation and Backstop for National Defense)’이라는 제목의 기밀문서에도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the most extreme circumstances)에서 우리의 사활적 이익과 우리 동맹국 및 우호국들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는 문장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내용이 2020년 4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의 기밀문서에도 들어갔고, 2022년 3월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에도 들어갔다. 이런 흥미로운 정황은,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미국 군부가 이미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해놓았고, 바이든 정부가 그것을 인수하여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한 것처럼 발표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언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 군부가 새로운 핵정책에서 말한 ‘극단적인 상황’은 전시상황이 아니라,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된 준전시상황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은 그들이 준전시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라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동맹국들과 우호국들이 적국의 핵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공격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의 핵공격위험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은 2020년에 이르러 자기의 핵정책기조를 보복핵타격(retaliatory nuclear strike)에서 선제핵타격(preemptive nuclear strike)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4. 미국의 핵정책은 어떻게 변천되었나?


2020년에 미국의 핵정책기조가 바뀐 배경이 무엇인지 알려면, 미국의 핵정책이 지난 70년 동안 어떻게 변천되어왔는지 훑어볼 필요가 있다. 1953년 10월 30일 아이젠하워 정부는 ‘새로운 용모(New Look)'라는 이름의 핵정책을 채택했다. 이 핵정책의 기조는 다량보복(massive retaliation)이다. 그들이 말한 다량보복은 적국이 재래식 무기로 친미동맹국을 공격하는 경우 미국은 핵공격으로 적국을 초토화한다는 뜻이다. 아이젠하워 정부가 다량보복 핵정책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이 크고 무거운 핵탄을 소형-경량화하는 핵무기제조기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새로 개발한 전술핵탄을 퍼부어 적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광기를 드러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 정부의 다량보복 핵정책에 따르면, 미국의 주적인 소련과의 전쟁은 유럽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각종 전술핵탄을 개발하여 유럽의 친미동맹국들에 집중적으로 배치했고, 한국과 일본에도 배치했다. 이런 상황은 1950년대 후반기에 미국이 압도적인 핵무력으로 비핵국가들인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 그리고 중국과 조선을 위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일 미국의 적국이 재래식 무기로 친미동맹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각각 배치해둔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소련과 그 동맹국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핵무력을 보유하게 되자, 국제정세가 급변했다. 미국은 ‘새로운 용모’라는 이름의 다량보복 핵정책을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전술핵탄으로 소련을 공격하는 경우, 소련도 전략핵탄으로 보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소련의 사회주의핵무력이 미국의 제국주의핵위협을 억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련의 핵무력 보유로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기존 핵정책인 ‘새로운 용모’를 폐기하고, 새로운 핵정책을 채택하였는데 그것이 '유연대응(Flexible Response)'이라는 이름의 핵정책이다. 1961년 3월 케네디 정부가 이 새로운 핵정책을 채택했다. ‘유연대응’은 다량보복이 아니라 단계적 대응에 기초한 핵정책이었는데, 대응단계는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정해졌다.


1단계는 적국이 친미동맹국을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는 경우, 미국도 그에 대응하여 재래식 무기로 적국을 공격하는 단계다. 2단계는 적국의 재래식 공격을 받은 친미동맹국들이 패전상황에 몰리는 경우, 미국이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적국의 군사전략거점을 파괴하는 단계다. 미국은 이것을 제한적 핵공격이라고 했다. 3단계는 소련이 보복핵공격을 하는 경우, 미국은 소련의 산업시설 50%와 인구 20%를 핵공격으로 제거하는 이른바 ‘확증파괴(Assured Destruction)’를 감행하는 단계다. 미국은 이것을 전면적 핵공격이라고 했다.   


위에 서술한 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2단계에 해당하는 제한적 핵공격이다. 미국은 자기의 제한적 핵공격으로 적국의 군사거점들을 모조리 파괴할 수 있을 것처럼 핵공갈을 늘어놓으면서 국제정세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떠들어댄 제한적 핵공격은 공허한 핵공갈이었고, 실제로는 제한적 핵공격을 감행할 능력이 없었다. 미국의 핵공갈은 제국주의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인 허장성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었지만,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케네디 정부 집권기에 미국 국방부 산하에는 자기의 핵무력을 평가하는 실제판정위원회(Net Assessment Committee)가 있었는데, 그 위원회 위원장인 미국 공군 중장 토머스 힉키(Thomas J. Hickey)가 1961년 12월 당시 국방장관 로벗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에게 ‘미국 전략체계의 요구에 관한 연구: 최종 보고(A Study of Requirements for US Strategic Systems: Final Report)'라는 제목의 비밀문서를 제출했다. 비밀문서에는 미국이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일러도 1960년대 말까지 제한적 핵공격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적시되었다. 실제로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는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를 넘지 못해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을 완성하지 못했고, 기존 핵정책에 약간의 변동사항만 첨가했을 뿐이다.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가 제한적 핵공격능력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발목은 잡은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1960년대 당시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하지 못하는 기술공학적 한계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하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1974년 1월 닉슨 정부의 국방장관 제임스 슐레진저(James R. Schlesinger)가 ‘슐레진저 교리(Schlesinger Doctrine)’를 발표했다. 이것은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핵정책을 확정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슐레진저 교리에 따르면, 미국은 전술핵탄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과 전술핵탄으로 파괴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술핵공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군사지역에 대한 피해도 감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슐레진저 교리에 따라 확정된 새로운 핵정책은 1976년에 실시된, ‘단일통합작전계획(Single Integrated Operation Plan)-5’라는 명칭의 핵전쟁연습에 처음 적용되었다. 한미련합군이 ‘팀스피릿(Team Spirit)’이라는 북침전쟁연습을 1976년에 시작한 것은,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으로 조선을 공격하려는 제한적 핵전쟁을 바로 그 해부터 연습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 미국은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지속적으로 개량하여, 사거리가 더 길어지고, 정밀타격도가 더 향상된 신형 전술핵탄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다. 5킬로톤급 전술핵탄두가 장착된 이 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2,400km에 이르렀다. 1982년 미국 공군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에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각각 탑재했다. 


그런 추세에 따라, 1983년에 미국 육군은 퍼싱(Pershing)-2 미사일을 실전배치했고, 미국 해군도 같은 해에 토마호크순항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이 두 종의 미사일도 사거리가 길고, 타격정밀도가 높으며, 저위력 전술핵탄두를 장착했다. 이렇게 되어 미국은 적국의 군사전략거점을 전술핵공격으로 정밀타격할 수 있는 고도의 작전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압도적인 핵무력을 틀어쥐게 된 미국의 제국주의핵광기는 그때부터 극에 달했고, 인류는 미국의 핵위협 앞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한때 압도적인 핵무력을 틀어쥐고 핵광기를 부리던 미국은 자기의 전술핵탄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줄줄이 폐기해야 했다. 이를테면, 미국 육군이 실전배치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퍼싱-2 중거리탄도미사일은 1987년 12월 8일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미사일감축협정’에 따라 폐기되기 시작하여 1991년 5월까지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 해군이 실전배치한 여러 종의 토마호크지상공격미사일들 가운데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토마호크지상공격미사일(TLAM-N)은 201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 공군이 실전배치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은 2020년에 작전수명이 끝나면서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이 2020년에 자기의 핵정책기조를 보복핵타격에서 선제핵타격으로 변경시킨 배경에는 바로 그 해에 전술핵탄을 전량 폐기한 무력감에서 벗어나보려는 체면치레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5.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2018년 10월 2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미국이 1987년 소련과 체결했던 중거리핵미사일감축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트럼프는 로씨야가 그 협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탈퇴한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미국이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전술핵무기인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 2020년에 작전수명이 끝나면서 전량 폐기되어 미국은 신형 전술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트럼프 정부는 중거리핵미사일감축협정을 서둘러 파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2월 2일에 발표한 ‘2018년 핵태세검토(NPR)’에서 미국 해군이 사용할, 전술핵탄을 장착한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지난 시기 미국 해군이 실전배치했던 W-80 전술핵탄을 장착한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은 작전수명이 끝나는 바람에 2013년에 폐기되었는데, 트럼프 정부는 신형 전술핵탄을 장착한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앞으로 약 10년 동안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2월 22일 미국 온라인 군사매체 <디펜스 뉴스(Defense News)>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조선, 중국, 로씨야를 공격할 수 있는, 신형 전술핵탄을 장착한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앞으로 7~10년 안에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이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실전배치될 것으로 예고한 것이다.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게 될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아직 개발하는 중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전술핵무기가 없는 미국이 그 무슨 확장억제전략을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핵공갈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5월 21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한미정상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핵, 재래식 및 미사일방어능력을 포함하여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력량을 사용하여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공약을 확인하였다”고 적시되었지만,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전술핵무기를 갖지 못한 미국이 내뱉은 공허한 핵공갈에 불과하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핵공포증에 걸린 윤석열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공허한 핵공갈이라도 줄창 늘어놓아야 할 만큼 한반도 군사상황이 한미련합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이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최근 <자주시보>에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조선인민군이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쉬쉬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은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10종이나 보유했는데, 그에 맞선 한미련합군은 최첨단 전술핵무기는 고사하고 구식 전술핵무기마저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니 양측의 무력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다종다양한 전술핵무기를 가진 조선인민군은 한미련합군을 압도한다. 조선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들인 화성포-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대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쐐기첨두형 극초음속미사일을 개발한 데 이어, 한미련합군과 서태평양작전지대에 있는 미일동맹군을 초토화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10종을 개발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열병식 연설에서 “우리의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보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 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명하였다. 2022년 4월 4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에서 “(조선인민군이 핵전투무력을 동원하는) 상황에까지 간다면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술핵무기를 개발 중인 미국은 확장억제전략을 가지고 공허한 핵공갈을 늘어놓고 있지만,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한 조선은 새로운 핵정책을 가지고 엄포를 놓는 게 아니다. 예상컨대, 전시상황이 오면, 조선인민군은 10종의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일제히 발사할 것이다. 달빛도 없는 깊은 밤에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더도 말고 딱 1시간 동안만 다종배합련사방식으로 집중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한미련합군은 그런 절묘한 전술핵공격을 예상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에 조선인민군이 결행할 절묘한 전술핵공격은 비군사지역에 피해를 주지 않고, 미국이 증원부대를 편성하기도 전에 그들이 말하는 ‘남조선해방작전’을 번개처럼 끝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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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신냉전’의 3가지 특징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승인 2022.06.17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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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30년 전 끝난 ‘냉전’과 구분하기 위해 ‘신냉전’이라 부른다.

과거 냉전이 6.25전쟁을 거치며 세계질서로 구축된 것처럼 신냉전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체제화되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열전과 다른 의미의 전쟁인 냉전이 모두 열전 과정에 구축된 것은 결코 역사의 우연은 아니다.

과거 냉전이 미-소 단일 전선이었던 반면 신냉전은 러-미‧중-미‧북-미로 이어진 3중 전선이라는 점도 신냉전 정세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과거 냉전의 지정학 그 한복판에서 한반도는 분단과 대결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대야 했다. 그런데 북‧중‧러를 상대로 미국이 펼치는 신냉전의 태풍 속으로 우리는 또 빨려들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가 신냉전의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열전을 동반한 냉전

냉전의 가장 큰 특징은 ‘핵보유국 간의 전쟁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세계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열전을 벌인다. 물론 나토(NATO) 미군이 아직은 국경선에서 전쟁 물자만 지원하지만, 우크라이나사태는 미국이 벌이는 러시아와의 열전으로 봐야 한다.

또한, 대만과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 두 핵보유국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하고 있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온다’고 미중 간의 잦은 충돌이 대만전쟁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사실 냉전 시절엔 볼 수 없던 장면들이다.

냉전 시기는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는 속에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침탈과 지배를 소련은 묵인했다.

핵무력과 달러를 앞세운 미국의 막강한 패권에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미국은 이들 핵보유국과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핵무기 보유국끼리의 상호전쟁억제)’을 유지하며 냉전 체제를 관리했다.

냉전과 달리 신냉전이 열전을 동반한다는 사실은 북한(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했음에도 “전쟁 그 자체가 주적”이라며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북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하면서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듬해 신년사에서 ‘핵 버튼’까지 언급하며 한반도에 전쟁이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신냉전이 핵보유국과의 열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북은 대미 핵선제타격이 가능한 수준으로 군사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신냉전의 전장이 지금은 우크라이나지만 언제든 대만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어쩌면 한반도가 열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과거 냉전과 다른 신냉전의 첫 번째 특징이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냉전

과거 냉전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발생한 이념 갈등의 산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의 유일 패권을 인정했고, 6.25전쟁에서 미국과 맞섰던 중국도 핵보유국이 되면서 미국과 수교했다. 쌍방 간에 체제 대결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중국과 소련이 서로를 ‘교조주의’, ‘수정주의’라 비난하며 이념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양국 모두 미국의 패권에 맞서 사회주의를 고수할 의지는 없었다.

1990년 들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맥없이 무너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냉전은 다르다.

러시아는 지금 모스크바에 미국 미사일이 날아올 각오를 하고 결사전을 벌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흔들림 없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국과의 반도체 및 공급망 전쟁에서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으며,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그 어떤 군사 위협에도 일국양제(중국과 대만이 제도는 다르지만 하나의 국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열린 미·중 국방장관회의에서 중국은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不惜一戰)는 말까지 써가며 설전을 벌였다.

이처럼 과거 냉전과 달리 신냉전은 미국의 유일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조선)과 반제동맹을 결성해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양상을 띤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미국의 쇠퇴기에 시작된 냉전

과거 냉전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브레턴우즈 협약을 통해 달러제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핵폭탄까지 실전에 투하하는 등 군사제국의 위용을 떨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신냉전 구축을 시도하는 오늘날 미국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은 누적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실업과 물가인상 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또한, 최근 국가 간 과학기술력의 편차가 줄어 세계무역의 중심지가 원재료 보유국으로 옮겨가면서, G2(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과 공급망 경쟁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글로벌 공급망과 에너지(천연가스, 원유, 신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관계 강화를 합의하고, 여기에 13억 인구의 인도까지 호응하면서 ‘오일달러’로 유지되던 달러 기축통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 1980년 세계 1위 교역 상대국이 모두 미국이었던 데서, 2018년 기준 세계 190개국 중 128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군사 패권도 위기를 맞은 것은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는 최강 무력을 자랑하던 미국의 쇠퇴를 그대로 보여준다. 1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지만, 미군은 탈레반 무장대에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솔레이마니 이란군 사령관을 암살한 미국에 이란이 보복 공격을 가했을 때, 응징하겠다는 말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최근 미국의 신냉전에 맞선 북의 핵무력 고도화에도 유엔을 통한 추가 제재를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결국 반대 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했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가입을 종용하기 위해 소집한 아세안 1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절반 이상의 국가가 동참을 거부했다.

이처럼 신흥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에 자발적으로 편을 들던 과거 냉전과 달리 쇠락기에 접어든 미국이 줄세우기를 강요한다는 점이 신냉전의 세 번째 특징이다.

신냉전, 미국의 승산?

과거 냉전은 소련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이번 신냉전의 승부는 북‧중‧러 포위를 위한 미국의 동맹국 줄세우기 여부에 달렸다.

과거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이번 신냉전에도 승산이 있을까?

미국이 핵보유국에 대한 전쟁도발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문제이니 논외로 한다.

신냉전의 승부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위에서 밝힌 3가지 특징으로 볼 때 미국엔 승산이 없다.

특히 과거 냉전은 세계 경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었기 때문에 배제와 포위가 자유로웠던 반면,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영향으로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와, 러시아는 유럽 대부분 국가와 긴밀한 경제 교류를 맺고 있다.

독일을 필두로 유럽이 당장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이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러시아에서 독일 해안에 이르는 장장 1,230㎞의 파이프라인(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공사를 완공한 시점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이 가스관 개통을 불허해 버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당장 독일이 이탈 조짐을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독일로 들여올 천연가스로 올겨울을 날 채비를 하던 유럽으로선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에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그 동맹은 국익과 직결되었다. 그러나 제 살길도 바쁜 지금의 미국은 동맹국에 혜택은커녕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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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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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산재' 속헹 추모제, '사장님'들은 편법을 찾았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가 지난달 산재 승인을 받은 가운데, 그의 첫 추모제가 18일 열렸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무서워하지 마시고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사장님이 못된 짓을 하거나 월급을 잘 주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도와줄 겁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중략)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만날 수 없으니 영상을 보냅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들... 제단 위 영정 옆 노트북 화면 속 네 사람.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고 누온 속헹씨 가족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헹씨는 2020년 12월 한파,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 비닐하우스 안 조립식 패널로 지은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산재 노동자다.

지난 5월, 죽음 약 500일 만에야 간신히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18일 추모제를 위해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보내온 영상 속 속헹씨 어머니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불법 숙소 근절' 지침 무색...  편법 허가 받은 사장님들 
 
 
▲  고 누온 속헹씨의 가족들이 속헹씨의 죽음 진상 규명과 산재 승인을 위해 노력해 온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권리 찾기를 주저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지구인의정류장 유튜브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산재 승인 이후 처음 열린 속헹씨의 추모제는 당시 그와 동료들이 일하고 거주했던 경기도 포천시 비닐하우스 앞에서 진행됐다. 길 건너 생필품 매장에서 할인 세일을 알리는 고성이 이따금 들려왔다.
 
포천 이동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그가 사망한 곳은 외진 곳이 아니었다. 31년을 살다 간 그의 마지막 거주지 불법 기숙사는 죽음 이후 농장주가 철거해 지금은 사라졌다. 농장 바로 뒤로는 건축을 마친 빌라 단지에 '분양' 현수막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화장실 옆, 세탁기 옆에서 잤어요. 이렇게는 못 자겠다고 했는데, 그럼 주방에 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그 사장님, 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일한 만큼만,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고 싶습니다.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성추행도 당했습니다. 아플 땐 병원 가고 싶습니다. 월급 못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한국은 법 제대로 하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는) 돈만 생각했습니다."

속헹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 짠나씨는 캄보디아어로 당시의 울분을 토했다. 그의 말을 전한 통역 활동가도 함께 울었다. 한국 생활 8년 차인 짠나씨는 속헹의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요구를 했다.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자지 않게 해주고, 좁은 방에 여러 명이 살지 않게 해달라"는 기본권에 대한 요청이다. 

방글라데시 국적의 노동자 바부씨는 지난해 컨테이너로 지은 가건물에서 자다 죽을 뻔한 경험을 전했다. 그는 "밤 10시까지 일하다가 잤는데 개 짖는 소리가 나서 밤 12시에 나가보니 (숙소 바로 옆) 공장이 불에 타고 있었다"면서 "컨테이너에 불이 옮겨붙어 죽기 직전에 간신히 나왔다"고 말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의 동료 짠나씨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불법 가건물 기숙사 하지 말랬더니... "24평 집에 8명 욱여넣고 숙박업"

실제로 속헹씨가 사망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및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방침을 마련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실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 목소리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가 지난 5월 방문한 경기도 포천 소재의 한 채소농장의 가건물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네팔 여성 노동자는 지난 3월 한국에 취업비자를 받고 일을 시작했으나, 고용노동부의 지침과 무관하게 열악한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4평짜리 아파트에 외국인 노동자 8명을 몰아넣고 집단 합숙시키는 사업주가 있다는 이야기도 접수했습니다. 그 아파트의 월세는 60만 원인데, 8명의 노동자에게 매달 받는 기숙사비는 (각각) 25만 원이랍니다. 이제 숙박업까지 하는 셈이죠."

경기 포천 지역의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실태를 고발해오고 있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최근까지도 정부의 지침을 꼼수로 변칙하고 있는 사업장을 발견했다.

"오늘날 이주노동자들 보면 1970년대 전태일이 보였다"

그는 "지난 3월 경기도 파주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에서 잠자던 인도 노동자도 자정 넘어 화재가 나 목숨을 잃었다"면서 "(지침 이후)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새 방침을 어기고 편법과 불법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허가를 받는 사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1980년대부터 노동 선교를 해 온 김 목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오늘날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1970년대 전태일이 보였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구조적 억압은 더 심화됐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후퇴 등 윤석열 정부 들어서 반노동적인 모습이 나오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했다. 
 
 
▲  고 누온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경우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지침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위 사진은 포천이주노동자 센터가 최근 방문한 포천시 소재 채소 농장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주 하고 있는 가건물 기숙사.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관련사진보기
 
"이주노동자 돌연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속헹씨의 산재 승인을 위한 법률 지원을 이어온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날 현장에서 고용 허가 주체인 우리 정부의 책임을 언급했다. 속헹씨의 경우 의료진들의 부검, 5인 이상 사업장이라는 조건 통과 등 산재 승인을 위한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공론화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해, 사망 사건의 산재 승인은 정부의 관심 없인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최 변호사는 "보통 이주노동자들은 갑자기 사망할 경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가 돌연사했을 경우 중대재해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속헹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산재 신청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유족들에게 산재 신청을 알리고 그 신청서를 직접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가 지난달 산재 승인을 받은 가운데, 그의 첫 추모제가 열린 날 이주노동자의 사망 추모 때마다 추도 염불을 진행하는 캄보디아 국적의 린사로 스님이 속헹씨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한편, 속헹씨의 이날 추모제는 캄보디아 국적의 린사로 스님이 그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함께 명복을 비는 순서로 시작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사망 진상 규명과 산재 승인을 도운 '지구인의 정류장' 등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사건 대책위원회 소속 시민단체를 비롯해, 그의 동료와 이주노동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국회의원 중에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대표 발의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참여했다.
 
 
▲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의 동료 짠나씨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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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일선 경찰관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의미

“경찰 정치적 중립 훼손하는 행안부 경찰국 설치안 철회하라”

17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전남경찰직장협의회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2.06.17.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려 하자,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광주·전남 일선 경찰관들은 이례적으로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광주경찰·전남경찰 직장협의회는 17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안부 소속 경찰국 설치안을 철회하라”라고 촉구했다.

일선 경찰관들이 직접 기자회견까지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광주 5.18민주광장에서의 광주·전남 일선 경찰관들 목소리는 ‘민주경찰’의 상징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광주·전남 경찰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오랜 세월 탄압과 불명예·치욕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던 故 안병하 전남도경국장과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등은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못하고 숨졌다. 또 수많은 광주·전남 경찰이 강제퇴직과 부당한 징계·계고·전환배치를 받았다. 이들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진상이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
 

광주전남경찰직장협의회 서강오 위원장이 17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22.06.17. ⓒ뉴시스


기자회견에서, 광주·전남 경찰 직장협의회 회장단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은 권력에 대한 경찰의 종속으로 귀결될 여지가 크며 과거 독재 시대의 유물로서 폐지된 치안본부로의 회귀이자 반민주주의로의 역행”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이 아닌) 국가 권력에 충성하라는 것”이라며 “경찰에게 이런 충성 맹세를 통한 인사발령이 이뤄진다면 향후 경찰 수사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반대하는 움직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경남경찰 직장협의회가 지난 14일 반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충북경찰청 직장협의회와 대한민국재향경우회도 17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충북경찰청 직협은 “행안부 경찰국 신설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라며 “행안부가 치안정책관실을 경찰국으로 격상해 경찰을 통제하려는 것은 명백히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경찰의 근간을 뒤흔들며, 13만 경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충북경찰청 직장협의회가 17일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사진은 충북경찰 직장협의회에서 내건 반대 입장 현수막. 2022.06.17. ⓒ뉴시스
대한민국재향경우회는 “경찰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과 ‘국민에 의한 견제와 통제’를 관치행정으로 변환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와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경찰청 독립 이후 운영해 온 ‘국가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찾고, 경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개선책을 찾는 것”이라며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는 ‘국민의 경찰’로서 법질서를 지켜나가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경찰의 민주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켜주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한편, 행안부는 이상민 장관 취임 후 곧바로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경찰 통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 한 달간 4차례 회의를 통해 행안부 산하 비직제 기구였던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권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1991년 폐지됐던 경찰국을 부활시켜 경찰 통제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경찰이 행안부 전신인 내무부 산하에 있으면서 정치권력에 종속되고 경찰권이 남용됐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경찰청을 독립된 외청으로 둔 것인데, 행안부가 경찰국을 통해 직접 통제하게 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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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민주당에 남겨준 ‘씨앗’…기득권 깨는 개혁 멈추지 않겠다”

등록 :2022-06-18 09:00수정 :2022-06-18 09:59

신승근 기자 사진
[한겨레S] 커버스토리 :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 인터뷰

민주당 패배 “내로남불, 당 정신 잊은 탓”…윤 정부엔 “신자유주의 회귀”
“대연정·경기북도 설치 추진, 논공행상은 안해”…대권? “주제넘은 이야기”
“서민·약자 위해 지속가능 성장하는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게 진짜 진보”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16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당선자는 이곳에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를 꾸렸다. 수원/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6·1 지방선거에서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를 꺾고 승리한 것은 민주당엔 한 줄기 서광 같은 일이다. ‘새벽 뒤집기’를 통해 0.15%포인트, 8193표 차 ‘깻잎 승부’에서 승리는 지난해 재보선, 3·9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까지 3연패한 민주당엔 의미가 남다르다. 국민이 민주당에 준엄한 경고와 함께 희망의 씨앗을 줬다는 진단 속에 김동연 당선자를 이른바 ‘이재명의 한계’를 넘어설 민주당의 대안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인재개발원에 꾸린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서 16일 김동연 당선자를 만났다. 그는 민주당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채 편가르기와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고, 당 강령에 명시된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지향 가치를 망각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질타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선방론에 대해선 “민주당이 폭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그는 이제 민주당에 몸을 실었지만 ‘새로운물결’ 당 대표로 지난 대선에 나섰던 때부터 주장한 정당과 의회의 기득권 내려놓기, 승자독식 구조를 깨기 위한 정치개혁을 계속 요구하고 관철할 것이라며 민주당도 자발적으로 그 대열에 동참해야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어 선제적 대책을 내놓을 것을, 정치권에는 여야정 경제위기 대응협의체를 만들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몸’이 됐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기를 제안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지난해 12월 당시 ‘새로운물결’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은 경기지사 왜 남겨줬을까

―경기지사 선거에 승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죠.”

 

―피 말리는 접전이었는데, 유권자의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경기도민의 열망인 상생과 발전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한 것 같아요. 대선 이후 구도와 바람의 영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일에 가장 적당한 또는 믿을 수 있는 이로 저를 택한 것이죠. 나름대로 제가 살아온 삶, 정직하고 청렴한 삶에 대해 평가한 것입니다. 둘째, 민주당에 굉장히 강력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광역단체장) 다섯 군데 빼놓고 전멸한 것, 광주광역시에서 투표율이 37.7%에 머문 것, 정말 혹독한 경고예요. 그런데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변화의 씨앗은 남겨두셨다고. 그게 이번 경기지사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에선 나름 선방했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경기지사를 건졌으니 그나마 선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민주당은 폭망하는 거예요. 경고를 새겨듣고 정신 차려야 해요. 제가 유세 때도 ‘석과불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농민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겨울에 종자(씨)는 안 먹는 법이거든요. 국민이 그 종자를 남겨주셨으면 이 씨앗을 잘 심고 가꿔서 제대로 꽃피게 하는 노력을 해야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아주, 훨씬 더 힘든 길로 가야 될 겁니다.”

 

―당 정치교체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게 뭔가요?

 

“기득권을 스스로 깨는 것입니다. ‘졌잘싸’라든지, 네 탓 내 탓 공방을 하며 서로 총질한다든지, 그런 싸움과 당 안에서의 정쟁 때문에 국민들이 민주당을 외면하는 것이거든요. 지난 대선과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을 가져야 해요. 적어도 우리가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았고, 그건 기득권을 스스로 깨지 못해 언제부턴가 기득권화됐고, 편가르기,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 탓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서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 방향은 첫째, 정치교체를 슬로건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민주당부터 기득권 내려놓겠다고 솔선해야 합니다. 둘째, 민주당이 갖고 있는 본래의 가치에 충실해야 됩니다. 저는 그 가치를 민주당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민주당 본연의 가치가 뭔가요?

 

“한마디로 혁신적 포용국가라고 표현합니다. 민주당 강령에도 있어요. 서민과 중산층, 사회적으로 힘든 분들의 눈높이에서 민생을 챙기고, 살 만한 세상 만드는 본연의 가치에 충실해야 했어요. 그런데 민주당이 어떤 때는 민생도 제쳐놓고 있어요.”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왼쪽)가 6·1 지방선거에서 극적으로 당선된 뒤, 배우자 정우영씨와 기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선 후보만 책임? 그 후보 누가 뽑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율 40%를 유지했는데 민주당이 대선에 패하면서, ‘이재명 책임론’을 얘기합니다.

 

“반성은 모든 부분에서 같이 해야 됩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이룬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 정서에서 볼 때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솔직히 많습니다. 공과 과를 분명하게 해야지, 일방적으로 잘했다고 하는 건 안 됩니다. 후보요? 후보의 자질, 후보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 후보를 누가 뽑았나요? 그 후보는 민주당에서 뽑은 거 아닌가요?”

 

―그래도 후보 책임이 큰 것 아닌가요?

 

“제가 선거판에 있어 보니까 선거 결과의 99% 책임은 후보에게 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후보가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말을 조심해야 될 것 같은데, 자칫 어디 한쪽 편드는 것 같아서…. 지금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남 탓하는 것은 국민들의 경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제가 ‘정치 초짜’입니다만, 우리 정치에서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것 같아요.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망각하고, 내 세력이나 내가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얻거나 하는 것이 절대적인 목적이 됐어요. 그건 선거를 이기는 전략에 있어서도 하책입니다. 수단과 목표가 도치돼 얼핏 어떤 선거에서 이기면 다 될 것처럼 말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애초 추구하는 목표에 충실한 것, 저는 그게 상책이라고 생각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졌지만 이기는 선거가 있고,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지는 선거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쟁취하는 거라고 말해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당의 목적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거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전형적인 게 정권을 얻는 것이죠. 그런데 정권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고 다른 것은 다 뭐라고 할까요, 죽어버린 가치가 되니까, 저는 (민주당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을 해요.”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두고 논란이 분분했어요. ‘토사구팽’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박 전 위원장이 내세웠던 방향과 취지, 제가 얘기했던 것하고도 맥락이 다르지 않아요. 민주당의 개혁과 변화를 주장했고, 그 방향에 대해서 저는 크게 응원합니다. 하지만 일에는 일머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선거 직전 특정 세력(586)의 용퇴라든지 이런 얘기를 했잖아요. 그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가 끝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당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모든 어젠다들을 다 끄집어내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여 당의 입장을 정했어야지, 선거 직전에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적전 분열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앞으로도 박지현은 박지현이죠. 박 전 위원장의 역할은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하는 당 개혁에 있어서도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 “거대 양당 구조를 깨지 않으면 정치적 미래가 없다”고 말했는데 결국 거대 양당 구조에 들어왔습니다. 김동연의 정치가 기성정치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요?

 

“저는 정치권 기득권 깨기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겁니다.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도 기득권화돼 있습니다. 그 기득권에 양당 구조도 있고요. 5년 단임제로는 승자 독식 구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된다는 정치판을 깨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권력구조 개편, 정치 개혁,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얘기했습니다. 왜 의원들은 면책특권 뒤에 숨어야 되고, 내가 뽑아놓고 ‘아니올시다’ 하는 의원을 국민이 소환하지 못합니까. 선거법 자체가 단순 다수 선거제인데, 한 표라도 이기면 승자가 다 독식합니다. 이 구도를 깨지 않고는 우리 사회 갈등 구조도 정치적 양극화도 깰 수가 없고, 결국 경제적 양극화도 못 깹니다. 그런 걸 제가 ‘새로운물결’에서 주장했고, 민주당에서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민주당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 개혁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그게 민주당이 사는 길이고,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는 길입니다. 민주당에 들어왔지만 저는 같은 주장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가운데)와 김성원 국민의힘 경기도당위원장이 7일 국민의힘 쪽의 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참여를 합의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북도 설치’ 있고, ‘선거 논공행상’ 없다

―경기도의회가 여야 동수입니다.

 

“도민들께서 (의회를) 동수로 만들어준 의미를 저는 무겁게, 또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도민들을 위하는 데 여야, 진영과 이념이 어디 있겠어요. 제가 말한 정치 교체, 양당 구조를 깨는 것도 결국은 협치이고, 필요하면 그 이상을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연정을 주장하셨는데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인 경기에서 한번 해볼 기반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기도와 도민을 위한 진정성과 정책으로 풀겠다고 약속합니다.”

 

―7월1일 취임하면 인사가 제일 중요할 텐데요.

 

“인사가 초미의 관심인데, 선거 때 저하고 같이 뛰었다고 기용하는 인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캠프나 인수위 때 참여했던 분이라고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게 원칙입니다. 도 공무원의 실력과 헌신을 신뢰하고 있어요. 바깥에서 오는 사람들은 전문성과 공익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가진 분들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인사하겠습니다.”

 

―경기북도 추진 공약에 눈길이 갑니다. 왜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나요?

 

“저는 ‘분도’(도를 나눈다)라는 말을 안 씁니다. 경기북도 특별자치도 설치입니다. 많은 분들은 북부 지방의 특수성, 군사보호구역 또는 상수원이나 환경 보존이라는 중첩된 규제로 피해를 많이 본 지역이니까 보상을 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남·북도로 분도하자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각도가 다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북부의 성장 잠재력입니다. 경기 북부 인구가 350만명이 넘습니다. 북부에 특별자치도가 설치되면 대한민국 광역도 중에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가 됩니다. 역설적으로 중복 규제를 받다 보니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있어요. 제가 전임 지사의 정책을 계승하되 김동연의 색깔을 입히겠다는 대표적인 게 경기북도 설치예요. 전임 지사들이 다 소극적이었거든요. 선거전략으로 던진 게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의 신자유주의 회귀 우려

―윤석열 정부 한 달, 어떻게 보세요?

 

“앞으로 5년,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건지, 국정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전혀 잡히지 않아요.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고, 어떤 정책으로 어떻게 하려는지가 부재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제 정책은 어떤가요?

 

“지금 하는 걸 봐서는 더 심한 신자유주의로 회귀하려는 것 같아요. 걱정이 큽니다.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는 심화된 양극화, 단절된 계층 사다리 이런 걸 봤을 때 포용과 상생, 같이 어우러진 질 높은 성장이 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속가능성은 간과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설픈 보수는 시장 원리를 강조하면서 시장 만능주의로 갑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윤석열 정부는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요. 의사결정에 있어 권위주의적이고, 즉흥성도 심히 걱정됩니다.”

 

―경제가 위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얘기 좀, 꼭 해주세요. 물가는 오르고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있고, 금리는 미국은 자이언트 스텝까지 갔고,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경제가 위기 국면으로 가고 있어요.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선제적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위기를 극복했기에 제안하는 거예요. 정치권도 여야정 경제위기 대응협의체를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고 여야가 따로 없어요. 두 가지를 강력히 제안합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오른쪽 둘째)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2018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선? 주제넘은 얘기 할 때 아냐

―‘이재명 의원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는데요.

 

“첫번째, 지금 경기도정과 도민들 삶 개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부족합니다. 저는 도민들께 빚을 진 채무자예요. 약속한 정책의 빚을 갚기에도 여념이 없어요. 두번째, 씨앗은 땅에 들어가 썩어 없어지는 겁니다. 씨앗이 잘 발아돼 거목이 되기도 하고, 좋은 꽃이 피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대선 도전, 그런 생각 전혀 없고요. 경기도정을 다잡고 도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제 가치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국민이 남겨준 씨앗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모범답안이네요. 그래도 ‘대통령의 꿈’은 있으실 거 아니에요. 지금 답하시기 곤란하겠지만.

 

“아니요, 전혀 안 곤란해요.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건데. 제가 (아주대) 총장 할 때 그랬어요. ‘자기 답을 찾아라. 정답은 없다.’ 모범답안이 아니라, 그게 제 답입니다. 지금 제가 주제넘게 그런 말 할 때가 아닙니다. 경기도 인구가 1400만명, 작은 대한민국입니다. 제 모든 걸 쏟아부어도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을 이룰까 말까 한데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요직을 하셨어요. 대단한 능력인데, 김동연은 무슨 색깔인지 의문을 갖는 이도 있어요.

 

“어떤 언론에서는 제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걸 가지고 가장 민주당 색깔이 덜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저는 거꾸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이번 선거 패배 이유 중 하나가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모르거나, 거기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 저예요.”

 

―자신하는 근거는 뭔가요?

 

“저보고 하도 민주당 디엔에이(DNA)가 없다고 얘기하니까 경선 토론 때 ‘민주당의 가치가 뭡니까, 강령에 뭐라고 써 있나요’라고 물어봤어요. (다른 후보들이) 당황하더라고요, 답도 못하고. 제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비전 2030 보고서’를 썼어요. 이때 주장한 2025년 대한민국 비전이 복지국가였어요. 이걸 달성하기 위한 두 축으로 제도 개혁과 선제적 투자를 얘기했어요. 제도 개혁은 지금 정치·사회·교육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선제적 투자는 정부와 재정 역할을 늘려서, 예상되는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 문제,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거였어요. 그게 17년 전이에요. 제가 그때 동반성장이라는 말도 처음 썼어요. 성장과 분배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고, 어우러져야지 지속가능한 성장이 된다는 게 그 보고서 뼈대입니다. 그 면면이 내려오면서 고쳐지고 만들어진 게 지금 민주당 강령이에요. 경제 부문에서 보수와 진보가 가장 대립되는 게 정부의 역할과 시장입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큰 정부-작은 정부 논란 자체가 의미 없는 세상이 됐어요. 아직도 우리가 그 잣대로 빨간색이야 파란색이야,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이러는 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선거 때 민주당에 제대로 된 진보 가치를 정립하자고 했는데, 그게 뭔가요?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진보,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보수 쪽에는요. 자유와 자유주의도 혼동하는 게 지금의 보수입니다. 진보는 그보다 훨씬 낫지만 지금의 소위 진보라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저분들이 정말 추구하는 가치가 뭐냐, 저는 잘 모르겠어요. 중산층과 서민, 사회 약자들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면서 지속 가능한 질 높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예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걸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표현했고요.”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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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속 꼴찌... 국제 리포트에 담긴 한국 언론 수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06/18 10:50
  • 수정일
    2022/06/18 10: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국 46개국 중 40위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각국 뉴스 신뢰도 조사 결과에 담긴 의미

22.06.17 14:40l최종 업데이트 22.06.17 14:40l

6월 15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각국의 뉴스 신뢰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은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Digital News Report 2022)>를 발간했습니다. 영어로 된 164페이지 보고서인데, 한국 관련 내용은 이 조사에 참여한 최진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같은 날 펴낸 <미디어 이슈>에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이 리포트가 관심을 끄는 것은 매년 세계 각국의 언론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각국의 뉴스 신뢰도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2016년부터 조사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리포트 내용을 한국 언론과 관련된 내용 위주로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1.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
 

 
▲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한국은 30%로 46개국 가운데 40위입니다.1위 핀란드에 비해서는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관련사진보기

 
결론부터 보자면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지난해보다 2%p 낮아진 30%로, 조사대상 46개국 중 40위입니다. 46개국 평균은 42%,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핀란드(69%)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은 1등에 비해서 절반 이하, 평균에 비해서도 12%p나 낮습니다.

그나마 올해 성적은 괜찮은 편입니다. 한국이 조사 대상에 처음 포함된 2016년에는 신뢰도가 22%로 조사대상 26개 국가 중 25위였습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다가 2021년에 46개국 중 38위를 하면서 겨우 꼴찌를 벗어났습니다. 당시 그 사실을 보도한 <미디어 오늘>의 기사 제목이 "한국 뉴스 신뢰도, 드디어 '꼴찌' 벗어났다"입니다.

2. 선택적 뉴스 회피 현상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선택적으로 회피하는 이용자의 비율이 지난 5년간 늘어난 것도 눈여겨 봐야할 현상입니다. 조사대상의 69%가 뉴스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다른 나라들은 뉴스를 회피하는 이유로 "정치/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주제를 너무 많이 다룬다"를 꼽았는데, 한국은 "뉴스가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다"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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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로 "정치/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주제를 너무 많이 다룬다"가 43%로 가장 높았습니다. "뉴스가 내 기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가 두번째, "뉴스를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다"가 세번째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이유가 달랐습니다. "뉴스가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다"가 42%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3. 언론의 정치적·상업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성
 

 
▲  “정치적·상업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에 대한 조사 결과. 둘 항목 모두 평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 언론은 정치에 휘둘리고 돈에 흔들린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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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정치적·상업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뉴스 신뢰도가 가장 높은 핀란드는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50%)과 상업적 독립성(48%) 인식 모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 평균은 두 항목 모두 26%입니다. 한국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은 19%(31위), 상업적 독립성은 18%(36위)로 평균을 밑돌았습니다. 이마저도 5년 전인 2017년에 비해 각각 7%p와 6%p 상승한 것입니다.

4. 한국의 언론 매체별 신뢰도
 

 
▲  한국 매체 중 가장 신뢰를 받는 곳은 YTN, 가장 불신을 받는 곳은 TV조선입니다. 조선일보는 불신을 받는 매체 2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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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각 나라별로 주요매체에 대해 신뢰한다와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받아 순서를 매겼습니다. 가장 많이 신뢰한다는 응답을 받은 매체는 52%의 <와이티엔(YTN)>으로 2년 연속 1위입니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매체 가운데 가장 적은 응답을 받은 매체는 33%의 <조선일보>입니다.

반대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가장 많이 받은 매체로는 41%의 <TV조선>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 2등은 <조선일보>(40%)입니다. <조선일보>계열의 방송매체와 인쇄매체 둘 다 가장 많은 불신을 사고 있는 상황입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매체신뢰도 도표에서 신뢰하지 않는 매체 순위만 따로 떼내어 표를 만들었습니다. TV조선과 조선일보가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 이봉렬 관련사진보기

 
다른 나라의 조사결과를 찾아봐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0%가 넘는 경우는 많지가 않습니다. 우선 한국이 속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 중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세계로 넓혀 보면 영국의 <데일리 메일>이나 <데일리 미러>, 미국의 <폭스뉴스> 같은 매체들이 40%를 넘기긴 하지만 이른바 "정론"을 주장하는 그런 매체는 아닙니다.

5. 2018년 이후 한국 매체 신뢰도 조사 결과

<조선일보> 계열사 두 곳이 가장 불신받는 매체로 나오고, 그 바로 뒤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조사를 한 올해만 특별히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불신받은 매체들은 어디였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2016년과 2017년은 매체별 신뢰도를 보고서에 싣지 않았습니다.)
 

 
▲  2018년과 2019년 2년 동안 JTBC가 가장 많은 신뢰를 받았고, TV조선과 조선일보가 순위 맨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관련사진보기

 
2018년과 2019년 보고서에는 매체별 신뢰도만 실려 있습니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15개 매체 가운데 15위는 <TV조선>, 14위는 <조선일보>입니다. 2019년에는 14개 매체 가운데 14위가 <조선일보>, 13위가 <TV조선>입니다. <조선일보> 계열사끼리 자리만 바뀌었습니다.

2020년부터는 불신하는 매체에 대한 응답도 함께 실렸습니다. 가장 불신하는 매체로는 42%의 <조선일보>, 그 다음 2위는 41%의 <TV조선>입니다. 2021년 역시 40%의 <조선일보>가 1위, <TV조선>이 38%로 2위입니다. 올해는 <TV조선>이 <조선일보>를 제치고 다시 1위를 차지했으니 두 매체가 늘 1위와 2위를 놓고 경쟁한 것입니다. (1위라고 좋아할까 봐 다시 말하자면 이건 불신하는 매체 순위입니다)
 

 
▲  2020년과 2021년에는 불신하는 매체도 함께 조사가 됐는데 조선일보가 1위, TV조선이 2위입니다. 그 뒤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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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TV조선>이 서로 불신하는 매체 1,2위를 다투는 동안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줄곧 3,4위를 놓고 경쟁하는 중입니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묶여 불리는 메이저 종합일간지 세 개의 신뢰도가 이런 지경이니 한국의 뉴스 신뢰도가 세계에서 바닥을 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선택적으로 회피하는 이용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는데, 한국의 독자들은 세계 평균보다 더 높은 69%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주된 이유는 "뉴스가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대상 국가 중 늘 꼴찌 수준인데, 한국의 신뢰할 수 없는 매체로는 <TV조선>과 <조선일보>가 부동의 1,2위이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3,4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한국의 뉴스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불신 정도가 높은 <조선일보>와 그 뒤를 늘 따르는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신뢰도만 높이면 금방 평균 수준까지는 갈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조중동" 모두를 독자들이 외면해서 아무런 영향력 없는 매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조중동" 때문에 매년 이맘때만 되면 다른 언론들까지 싸잡혀 한국의 뉴스신뢰도가 세계 꼴찌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더 없길 기대하는 겁니다.

* 해당 설문조사는 영국 유고브(YouGov)가 2022년 1월 11일부터 2월 21일까지 온라인에서 진행했으며, 총 9만 3432명(한국 2,026명)이 응답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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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선고받은 '제자 성추행' 교수...'서울대 미투'는 계속된다

서울대인 공동행동, '서문과 A 전 교수' 1심 무죄 판결에 반발 대자보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2.06.17. 18:27:39
 

"우리의 공동체에 가해 교수의 자리는 없으며, 우리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 16일, 서울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혐의로 해임된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 교수"의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 대자보가 게시됐다. 성명을 작성한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은 지난 7일과 8일 진행된 A 전교수에 대한 재판 과정을 가리켜 "피해는 분명히 실재하는데, 가해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교수는 지난 7~8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 끝에 8일 성추행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7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부(형사합의29부 재판장 김승정) 또한 '피해자가 자는 사이 정수리를 만진 사실' 등 공소 건에 대해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낀 것은 인정"되지만 "강제추행 죄의 추행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며 배심원 평결을 수용했다. 

공동행동 측은 해당 선고에 대해 △재판부가 불쾌한 신체접촉을 인정하면서도 '성적 불쾌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점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공격적인 검증이 요구된 점 △교수와 학생 간의 '위계'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점 △피해자가 거부 입장을 밝혔던 '국민참여재판'이 끝내 수용된 점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지난 9일엔 피해자 B 씨와 피해자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가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었고, 14일엔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했다.

▲16일 서울대학교 관악사 사거리 앞 게시판에 부착된 공동행동 대자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제공
 

2019년 서울대 '학내 미투' … 2022년 돼서 '국민참여재판'

이번 판결은 2019년 피해자 B 씨의 공론화 및 고소 이후 3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B 씨는 2019년 2월 서울대 캠퍼스 내에 기명 자보를 게시하며 사건을 공론화하고,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A 전 교수를 서울대 인권센터에 신고했다. B 씨와 더불어 17여 명의 증인이 참고인으로 나서 A 당시 교수의 가해행위 및 서어서문학과 전반에 만연한 학내 성희롱, 차별 문화를 고발했다. 

대규모 학내 미투에 대해 인권센터가 내린 처분은 A 당시 교수에 대한 정직 3개월이었다. 학생사회는 곧장 반발했다. 서울대 구성원 2300여 명이 탄원서를 제출했고, 학생 대표자들은 단식 및 동맹 휴업을 진행하며 A 교수 파면을 요구했다. 이어 학생들은 A 교수의 연구실을 학생 자치 공간으로 전환하는 파면 요구 점거농성에 돌입했고, 인권센터의 징계 의결이 지연되는 사이 B 씨는 2019년 6월 A 당시 교수를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결국 최초 신고 이후 6개월이 지난 2019년 8월 A 당시 교수의 해임이 결정됐다. 

서울대 측의 해임 결정으로 사건의 무대는 수사 및 사법기관으로 넘어갔지만, A 교수 사건은 최초 고소 후 3년이 지난 올해 6월 처음 재판장에 올랐다. 사건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국민참여재판 때문이다.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교수는 2020년 4월 변호인을 통해 "어느 범위까지의 신체접촉이 추행이 되는 것인지 한번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라며 국민참여재판 신청서를 당시 재판부(형사14단독)에 제출했다. 재판부가 해당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재판은 합의부로 이관됐고, 때마침 겹친 코로나 사태로 재판은 22년 6월까지 연기됐다. 

피해자 측과 서울대 측 학생연대는 20년 당시부터 해당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회부에 반대해왔다.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사건에 있어 '무죄를 선고받기 위한 전략'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가 이미 몇 번이나 진술한 피해 사실을 처음 보는 배심원들 앞에서 다시 진술해야 한다는 점이 이유였다. 

실제로 2020년 한해 성범죄 등에 관한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48%에 육박하며 실형률(39.1%)을 훨씬 상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년 '배심원이 성폭력범죄나 재판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참여할 경우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며 '배심원 성인지감수성 교육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에서 진행된 서울대인 공동행동 측 1인 시위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제공

배심원 평결에 '기획미투'설, '피해자다움' 영향 등 문제 남아 

1심 재판이 진행된 지난 8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박도형 전 '서울대 A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공동행동 전신)' 집행위원장은 "(피해자 측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진술을 계속 이야기해야 했고, 피해 상황을 하나하나 재연하기 까지 하면서" 강한 부담에 노출됐으며, 실제적 성폭력의 유무를 가려야 할 재판의 쟁점이 "다른 이야기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형태"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7일 진행된 재판 현장에서 피해자는 사건 당시 입은 것과 같은 옷(원피스)을 입고 '가해자가 허벅지 안 쪽 흉터를 동의 없이 만졌다'는 공소 건 피해 상황을 재연했다. 이에 성명을 낸 공동행동 측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피해 회복이 이뤄져야 할 법정이라는 공간이, 도리어 피해 사실을 낱낱이 상기하고 시험받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긴 것"이라는 지적을 남겼다. 

'사건 전후 피해자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않다'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에 대한 공격'도 재판장에서 유효하게 작용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추행 사건 다음날 피해자가 인스타그램에 바닷가 셀카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시했으며, 재판부 또한 "사건 직후 보낸 메시지 등을 볼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합리적 의심 없이 범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 진술 과정에선 "정열적인 성향의 스페인에선 스킨십이 자유롭다"는 발언이 나오는 등 "(사회적 통념 등으로) 실제 성폭력 행사 여부를 흐리는" 진술이 이어지기도 했다.    

박 전 집행위원장은 "해당 사건은 (교수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에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인데, 전부터 가해자 측은 계속해서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본질을 가리며) 피해자를 흠잡으려 했다. 배후가 있는 '기획미투'설을 제기하기도 했다"며 "사건의 쟁점이 성폭력 자체에 있어야 하는데 자꾸 외부의 이야기들을 끌어들여 피해자를 공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행동 측 또한 이에 대해 "(A 전 교수 측은) 사건 발생 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나 공손한 연락 말투를 근거로 '피해자답지 않다'고 비난하며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으며, 이로 인해 "가해자에게 죄가 없어 주어진 무죄가 아니라, 법정이 피해를 섬세히 포착하여 구제하는데 실패해 주어진 무죄"가 선고됐다고 주장했다. "교수와 학생 간의 위계가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이번 무죄 판결은 "위계의 맥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제기를 결심한 피해자의 결정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판단"이라는 게 공동행동 측 지적이다. 

현재 공동행동 측이 연대·대응하고 있는 서울대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사건은 A 교수 사건 외 "음대 B, C 교수 등 여러 '알파벳 교수' 사건"으로 여러 건이다. 공동행동은 "교수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는 교육‧학문 공동체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A 교수 사건은)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을 뿐이고, 항소가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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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양산 시위 막겠다며 ‘집회의 자유 침해법’ 낸 민주당에 우려 표명

집시법 본질 침해, 모호한 포괄적 표현도 가득...“사회적 소수자 차별 맥락 전혀 고려하지 않아”

  • 김도희 기자 doit@vop.co.kr
  • 발행 2022-06-17 16:28:39
  • 수정 2022-06-17 18: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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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단체발 욕설·고성 시위를 제지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연달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예고한 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7일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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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도로에 보수단체가 진행하는 집회 소음으로 인한 주민 생활 불편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날 논평을 내 “최근 발의된 네 건의 집시법 법률안의 세부적 내용이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있다.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를 광범위하게 위축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민변이 짚은 네 건의 집시법 일부개정안은 각각 민주당 정청래, 한병도, 윤영찬, 박광온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이다.

    정 의원이 제출한 집시법 개정안은 법안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 의원은 집시법 16조 ‘주최자의 준수 사항’에 “비방할 목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 반복된 악의적 표현으로 개인의 인격권을 현저하게 침해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준 이하의 소음이라 하더라도 반복된 악의적 표현으로 청각 등 신체나 정신에 장애를 유발할 정도의 소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추가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한 의원은 개정안에서 준수 사항을 위반할 시 처벌 또한 가능하게 했다.

    윤 의원은 ‘혐오표현’을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인 편견에 기반한 선동적이고 적대적인 표현 행위”로 정의한 집시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윤 의원은 “혐오표현을 통해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도록 하는 조항도 개정안에 담았다.

    박 의원은 집시법 개정안에 집회를 금지해야 하는 경우로 “신고 장소가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의 소음·진동, 타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명시했다.

    또한 박 의원은 집회 주최자의 준수 사항으로 “성별·종교·장애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반복적으로 특정한 대상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조장·유발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선동해 국민의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행위”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민변은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집회를 금지하도록 한 정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에 관해 “절대적 금지장소를 확대하는 법안은 그 목적의 정당성·필요성에 대한 고려 없이 집회 개최의 장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다”며 “집회 및 결사의 자유의 본질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 참여자가 사용해야 할 표현을 제한한 한 의원의 법안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법률안의 문언 자체도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규제 범위가 광범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법률안이 그대로 입법된다면 집회의 내용, 표현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자의적 또는 차별적 규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의원이 규정한 혐오표현의 정의에 대해 민변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권력관계라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 법안이 정의하는 혐오표현은 시민사회가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 혐오표현과 그 개념이 명백히 다르다”며 “권력자 혹은 위정자에 대한 비판까지도 혐오표현으로 보아 금지·처벌할 수 있게 되는데, 심각한 집회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의 제한 및 위축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사생활의 평온을 해칠 우려가 있는’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집회 금지 사유를 규정한 박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은 “경찰 권력의 자의적·차별적 판단으로 표현 내용에 따른 집회 규제가 오·남용될 여지가 다분하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이 적시한 집회 주최자 준수 사항에 대해서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위헌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민변은 “대통령 사저 앞에서의 집회는 다른 집회들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 현행 집시법에 따라 충분히 규제될 수 있다”며 “국회는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위반될 소지가 큰 위 네 건의 법률안을 충분한 검토 없이 입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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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총리 “확진자 7일 격리의무 4주 연장…요양시설 면회 등 완화”

등록 :2022-06-17 09:06수정 :2022-06-17 09:11

이재훈 기자 사진
중대본 회의 발표…향후 4주단위 유행 평가해 판단
한덕수 국무총리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코로나19 감염자의 “7일 격리의무를 4주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17일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지난 5월20일 중대본에서는 4주간의 방역 상황을 평가해 확진자 격리의무를 조정하기로 한 바 있다”며 “전문가들은 ‘격리의무를 완화할 경우 재확산의 시기를 앞당기고 피해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고 상황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어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의 7일 격리의무를 유지하고자 한다”며 “앞으로 4주 단위로 상황을 재평가할 예정이며 그 이전이라도 방역지표가 기준을 충족하면 확진자 격리의무 조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중대본은 요양병원과 시설에서의 일상 회복의 폭은 넓히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예방접종 완료자, 확진 이력자에 한해서 가능하던 대면 면회를 접종 여부와 무관하게 허용하겠다”며 “4차 접종을 완료한 어르신들에 대해서는 금지돼 있는 입소자의 외출과 외박도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면회 전 사전예약과 면회객의 유전자증폭(PCR) 검사 혹은 신속항원검사는 유지하기로 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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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은 ‘엠비(MB)노믹스’”

  • 기자명 노지민 기자 
  •  입력 2022.06.17 07: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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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입장 뒤집은 해경에 의문

윤석열 정부가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으로 대규모 감세를 통한 ‘민간 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세금 부담을 완화해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이끈다는 기조인데, 방향성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엇갈린다. 정책 실행력을 강조하는 신문이 있는 반면, 실패한 ‘낙수효과론’이란 지적도 나온다.

해양경찰청·국방부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실종자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유족이 자료를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경 등이 입장을 번복한 근거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래는 17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성과 못 낸 ‘낙수효과론’ 5년 만에 부활
국민일보: 법인세 25→22%…‘친기업’으로 경제 살린다
동아일보: ‘경제 살얼음판’ 한미 성장률 낮췄다
서울신문: 감세·친기업…민간 주도로 경제 살린다
세계일보: 감세·민간주도 ‘尹노믹스’ 본격 시동
조선일보: 법인세 22%로 인하…종부세는 14억까지 면제
중앙일보: “정부가 기업이다” 이젠 ‘민주성’ 시대
한겨레: 재벌·부자감세…MB때로 회귀한 윤 정부
한국일보: 윤 정부 ‘민간 주도 성장 엔진’ 시동
중앙일보 “민주성” 한겨레 “MB노믹스 판박이”

▲6월17일 주요신문 1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25%로 올렸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다시 낮춘다. 종부세 과세 기준선은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높이고, 생에 최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은 80%, 대출 한도는 6억 원(기존 4억 원)으로 늘린다. 연간 연금저축 세액공제 납입한도를 4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올리는 한편, 주52시간 근로제 유연화 등 노동시장에 대한 변화도 예고했다.

중앙일보는 “정부는 기업이다”라는 16일 윤 대통령 발언을 1면 기사 제목으로 썼다. 윤 대통령이 이날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주재한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한 말이다. 조선일보는 ‘尹·장관·기업인 90분 토론…“경제는 항공모함, 민·관 한몸돼 끌어야”’ 기사에서 전날 윤 대통령과 기업인간 대화를 전했다.

중앙일보 사설(민간 주도 성장은 맞는 방향, 실행력이 관건)을 통해서는 “문재인 정권에서 홀대받던 ‘건전재정’이란 단어를 복권시킨 것도 반갑다”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주요 정책 상당수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법인세 인하 등 지난 정부 정책을 뒤집는 내용이 많아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얼마나 실행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 강조했다.

정부의 감세 정책이 재정 건전성을 강화한다는 기조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일보(투자 확대·일자리 창출 유도 위해 감세…재정건전성은 과제)는 “국세 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향후 세수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 등 재정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자 반발 등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며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 환경이 악화하고 있어 법인세 인하가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부분에도 변수가 많다는 분석”을 전했다.

정부가 내년 3월까지 마련한다는 국민연금 개선안, 올 하반기까지 마련한다는 ‘근로시간 제도 개선안’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경향신문(내년 하반기 국민연금 손질, 주 52시간제 유연화…사회적 합의 진통 클 듯)은 “20년 이상 지난 재정제도는 물론 최근 현장에 뿌리내린 ‘주 52시간’ 같은 제도들도 함께 손보겠다는 것이어서 사업 추진,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재벌·부자감세…MB때로 회귀한 윤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인 ‘와이(Y)노믹스’는 이명박 정부의 ‘엠비(MB)노믹스’ 등 과거 보수 정부의 경제 정책와 판박이”라 규정했다. 사설(‘세금 깎고 규제 풀어 성장’ MB시대 돌아간 경제정책)은 “정부는 ‘양극화 해소의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며 양극화 해소도 정책 목표에서 뺐다”며 “무주택 세대주 월세액 세액 공제율 상향, 퇴직소득세 근속연수공제 확대 등 서민을 위한 감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감세 혜택은 대기업과 자산가에게 집중된다”고 지적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진상규명 어디까지 가능할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갑자기 입장을 바꾼 해양경찰청과 국방부에 대해선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년 전 이들은 이씨가 감청을 통해 북측 발견 당시 월북 의사를 밝혔고, 인터넷 도박 빚을 지고 있었다는 근거 등을 월북 의사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서울신문(“해경, 정권 바뀌니 말 바꿨나”…결과 뒤집고 근거도 제시 못해)은 “해경과 국방부는 월북을 단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날 발표에 따른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씨가 탔던 어업지도선의 참고인 조사 내용과 초동조사 내용은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혀 추후 새로운 정황 증거들이 드러날 여지도 있다”고 했다.

▲6월17일 중앙일보, 경향신문 기사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유족 정보공개 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했지만 공개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노무현 NLL 포기” 공세 연상시키는 서해 공무원 피살)에서 “이씨의 월북 상황을 밝히려면 군의 SI(특별취급첩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관련 자료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간 봉인됐다. 또한 북한과 공동조사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이른바 ‘노무현 NLL 포기’ 공방을 소환했다. 2012년 대선 직전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서 이런 발언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허위사실로 판명난 일이다. 이 신문은 “윤석열 정부의 사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정부가 이씨 피살 경위에 대해 말뒤집기에 나선 것이 찜찜하다”며 “만약 여권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신구 정권 간 갈등을 의도했다면 그 후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조선일보 사설(北에 피살 공무원 ‘월북 증거 없다’, 文 정부 감춘 사실 다 밝혀야)은 문재인 정부가 사건에 대한 진상을 감춘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국민이 살해된 직후 문 전 대통령은 사전 녹화한 유엔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자 민주당은 ‘북한 규탄 결의안’ 대신 ‘종전 선언·관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며 “북이 조난당한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웠다면 반북(反北) 여론이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참극 당한 국민을 월북자로 몰아간 것 아닌가”라고 했다.

한국일보 사설(‘월북 단정’ 사과한 군경, 진상 규명 더 남았다)은 “국방부와 해경은 이씨가 월북을 기도했다는 성급한 단정으로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유족이 해경 지휘부 고발, 대통령기록물 공개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한 만큼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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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없는 시멘트는 단 하나? 충격적 자료 공개합니다

[최병성리포트] 주거시설 위협하는 독성 시멘트... 등급제로 국민 건강 지켜야

22.06.17 05:50최종 업데이트 22.06.17 05:53
 

▲ 산봉우리가 사라지고 급경사면에 특이한 문양이 만들어졌다. ⓒ 최병성

 
외계인이 다녀간 것일까? 높은 산봉우리에 독특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시멘트용 석회석을 캐내는 광산이다. 산봉우리가 사라졌다. 급경사면에 돌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들이 오르내리는 길을 낸 덕에 다른 광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 되었다.
  

▲ 산업 폐기물을 실은 차량들이 줄줄이 시멘트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최병성

 
산업쓰레기를 가득 실은 녹색 차량들이 줄지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성신양회'라고 쓰여 있다. 성신양회는 쓰레기 소각장이 아니다. 국내 최대 시멘트공장 중 하나다. 시멘트는 석회석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 시멘트공장 안에 있는 쓰레기 저장 창고다. 쓰레기를 실어 온 대형 트럭들이 쓰레기 하역을 위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 최병성

 
충북 제천에 있는 또 다른 시멘트공장. 공장 안 창고 입구에 쓰레기를 실은 대형트럭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차례대로 창고 안에 쓰레기를 하역하고 나온다.

쓰레기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들어간 창고 안엔 거대한 쓰레기 더미들이 곳곳에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쓰레기로 시멘트가 만들어진다.
 

▲ 대형 창고 안에 온갖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 최병성

 
발암물질 없는 유일한 시멘트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시멘트공장들은 석회석뿐만 아니라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든다. 그 결과 시멘트 안에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다량 함유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발암물질 없고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도 거의 없는 시멘트 제품이 있다. 이 정도 품질이라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시멘트협회 홈페이지 회원사 명단에는 삼표시멘트, 쌍용C&E, 한일시멘트, 한일현대시멘트, 아세아시멘트, 성신양회, 한라시멘트, 한국C&T, 유니온시멘트가 올라 있다.

이중 발암물질이 없는 시멘트를 생산하는 회사가 딱 하나 있는데, 유니온시멘트다. 놀라운 것은 발암물질인 6가크롬만 없는 게 아니라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도 거의 없거나 다른 시멘트회사보다 적다는 점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시멘트를 분석해보았다. 쓰레기 차량이 줄줄이 들어가던 성신양회 시멘트와 유니온시멘트를 국내 최고수준의 공인 분석기관인 세라믹기술원에 의뢰했다.
 

▲ 시멘트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유니온시멘트에는 발암물질이 없었다. ⓒ 최병성

 
분석 결과, 시멘트 안의 발암물질과 중금속 차이가 확실했다. 유니온시멘트는 발암물질인 6가크롬이 '불검출'이었다. '불검출'은 '발암물질이 없다'는 뜻과 같다. 그러나 성신양회 시멘트에서는 6가크롬이 15.3ppm 나왔다.

분석 내용 중 중금속 크롬(Cr)을 비교해보면 발암물질의 차이가 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유니온시멘트 제품 중에 크롬은 5.71ppm에 불과하지만, 성신양회 시멘트 제품은 크롬이 무려 46.5ppm이었다.

시멘트 안에 있는 크롬은 발암물질인 6가크롬으로 전환된다. 일본의 경우 크롬의 6가크롬 전환율이 10~15%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두 배인 20~30%에 이른다. 때문에 크롬이 5.71ppm에 불과한 유니온시멘트에서는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고, 성신양회 시멘트에서는 6가크롬 전환율이 30%가 조금 넘는 15.3ppm이 검출된 것이다.

인체 유해 중금속인 구리(Cu) 역시 유니온시멘트에서는 불검출이다. 그러나 성신양회 시멘트에서는 무려 104ppm이나 검출되었다.

환경부도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매달 국내 모든 시멘트 제품을 분석해서 발표한다. 역시 결과는 동일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등록된 국내 모든 시멘트회사의 시멘트에는 발암물질 6가크롬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서도 유일하게 유니온시멘트만 발암물질 '불검출'이다. 인체유해 중금속 역시 유니온시멘트와 다른 시멘트공장 제품들과 차이가 크다.
 

▲ 국립환경과학원 조사 결과 역시 유니온시멘트에서만 발암물질 6가크롬 불검출이다. ⓒ 국립환경과학원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에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유니온시멘트에서는 발암물질이 언제나 '불검출'인데 반해, 다른 시멘트회사의 제품에서는 매달 발암물질 수치가 다르다. 시멘트에 그날 어떤 쓰레기를 넣었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시멘트 성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 아니라 '쓰레기'의 차이

왜 유니온시멘트에만 발암물질이 없는 것일까? 유니온시멘트가 다른 시멘트공장들 보다 시멘트 생산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다. 시멘트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은 기술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시멘트 제조 시에 넣는 '쓰레기 사용량'의 차이일 뿐이다.

최근 쌍용C&E로 개명한 쌍용양회 공장 정문 앞에 '경축~ 쌍용양회 폐기물 소각 전국 1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쌍용양회의 쓰레기 소각으로 인한 악취와 분진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붙여 놓았던 현수막이다.
  

▲ 시멘트 제조 공장인 쌍용양회의 폐기물 소각을 지적하는 주민들의 플래카드. ⓒ 최병성

 
시멘트공장은 쓰레기 소각이 아니라 시멘트 생산을 위해 지어진 공장이다. 시멘트 소성로의 온도가 높을 뿐 환경오염 저감 시설이 불완전하다. 당연히 시멘트공장 주변 마을은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시멘트엔 발암물질과 중금속 비율이 높아진다.

폐타이어, 폐플라스틱, 폐합성수지, 폐비닐, 폐유 등의 가연성 쓰레기들을 비롯해 석탄재, 하수슬러지, 각종 공장의 오니, 소각재, 분진 등 비가연성 쓰레기까지 시멘트공장에 들어와 시멘트 제조에 사용된다. 이제 국민들은 내가 살아가는 집이 어떤 쓰레기들로 만들어졌는지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시멘트가 정말 쓰레기로 만들어지는지 시멘트공장에 반입되는 쓰레기 목록을 함께 살펴보자. 강원도 영월에 있는 현대한일시멘트공장에 반입되는 쓰레기 전체 목록을 입수했다. 총 173개의 각종 공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이 영월의 시멘트공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시멘트공장의 규모와 생산량에 따라 반입량에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시멘트공장이 동일하다.
  

▲ 1번부터 173번에 이르는 현대한일시멘트 반입 쓰레기 목록. ⓒ 현대한일시멘트

 
환경부에 보고된 유니온시멘트 쓰레기 반입목록도 입수했다. 도자기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도자기 제조용 틀과 정유회사에서 발생한 폐촉매, 타일공장의 오니, 유니온시멘트 공장 자체에서 발생한 폐내화물 정도다. 시멘트에 사용하는 쓰레기 종류도, 사용량도 적다.
  

▲ 유니온시멘트의 쓰레기 사용 목록. 쓰레기 종류도 사용량도 적다. 유니온시멘트에 발암물질이 적은 이유다. ⓒ 환경부

 
32평에 150만원에 불과하다

시멘트에 쓰레기를 넣지 않으면, 발암물질 없는 안전한 시멘트로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건강한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발암물질과 중금속으로 가득한 시멘트로 지은 집에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게 환경부 때문이다.
 

▲ 아파트 전세 19억원, 매매 36억원이다. 이 아파트에 들어간 시멘트 값은 얼마나 될까? ⓒ 최병성

 
32평 아파트에 사용되는 총 시멘트 값은 약 150만 원 정도다. 아파트 값이 5억 원이라 할 경우 시멘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요즘 전국 아파트 분양비는 평당 최소 1천만 원이다. 32평에 들어가는 총 시멘트 값은 1평 분양비도 되지 않는다.

쓰레기를 넣지 않은 깨끗한 시멘트로 아파트를 건설해도 시멘트값은 아파트 값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는 시멘트업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시멘트 값 또 오른다... 레미콘·건설사 반발'이란 지난 2022년 1월 4일자 <매일경제> 기사를 보자. 레미콘업계와 건설사가 시멘트 값을 인상하면 아파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반발하자, 시멘트협회 관계자가 '30평형 아파트 한 채당 들어가는 시멘트 비용이 157만원에 불과하여 시멘트 가격 인상이 아파트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이다.
  

▲ 30평형 아파트에 들어가는 시멘트값이 157만원에 불과하여 시멘트가 아파트 분양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시멘트업계 관계자 스스로 언론에 시인했다. ⓒ 매일경제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깨끗한 시멘트 원해

쓰레기 처리는 대한민국 정부 부처 중 환경부가 담당한다. 환경부는 그동안 시멘트공장에 쓰레기 처리를 떠넘기고 쓰레기를 해결했다고 국민을 기만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을 병들게 하는 환경부의 잘못된 쓰레기 처리 정책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환경재단,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쓰레기시멘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난 1월 17~18일 이틀 동안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를 통해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무선 100% 응답률 4.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

여론조사 결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산업쓰레기가 들어간 시멘트로 지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응답이 75%였다. 산업쓰레기로 만든 시멘트에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다량 포함된 사실에 대해서도 67.2%의 응답자가 몰랐다고 응답했다.
  

▲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쓰레기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국민은 환경부에 쓰레기시멘트를 허락한 적이 한번도 없다. ⓒ 한국사회연론연구소

 
쓰레기시멘트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유해물질 등을 표시하는 시멘트 제품 성분 표시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대부분인 86.7%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산업 쓰레기가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시멘트와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를 구분할 수 있도록 '시멘트 등급제'가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90.5%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등급제가 필요 없다는 응답자는 겨우 4.6%였다. 이는 시멘트 등급제를 통해 국민들이 시멘트를 선택할 권리를 원하고 있음을 말한다.
  

▲ 대다수의 국민들이 시멘트 등급제가 필요하며, 쓰레기시멘트와 쓰레기 넣지 않은 건강한 시멘트의 사용처를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특히 시멘트 등급제를 통해 주거용 건축재에는 깨끗한 시멘트를 사용하고,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는 도로나 항만 건설 등에만 사용하도록 시멘트 등급에 따른 사용처를 지정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해 88.2%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쓰레기 넣지 않은 깨끗한 시멘트를 위해 추가 비용을 부담할 용의가 있는지도 물었다. 응답자의 88%가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산업쓰레기를 넣지 않은 깨끗한 시멘트로 지은 집에 살기 위해 얼마까지 부담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액수도 물어보았다. 100만 원 미만(34.6%), 10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33.7%), 200만 원 이상~500만 원 미만(4.7%)이었다. 그리고 6.2%의 응답자가 지금 32평 아파트 시멘트 비용 150만원의 6.5배가 넘는 1000만 원 이상을 지불하고서라도 쓰레기 넣지 않은 깨끗한 집에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 국민들은 쓰레기를 넣지 않은 건강한 시멘트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시멘트 등급제가 해결책

지난 4월 12일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시멘트등급제 법안을 입법 발의했다. 노웅래 의원은 시멘트 등급제와 사용처 제한을 입법 제안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 노웅래 의원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깨끗한 시멘트와 쓰레기 시멘트를 구분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 노웅래

 

시민들이 생활하는 아파트 및 건물, 빌딩 등은 대부분 발암물질과 중금속 등이 가득한 각종 폐기물을 투입해 생산된 시멘트로 신축되고 있음. 시멘트 생산업체들은 생산과정에서 위해성분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방사능과 발암물질, 각종 중금속은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음.

중금속이 함유된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나 주택 건물에 입주해 몇 년씩 생활하는 경우 아토피성 피부염, 가려움증, 알레르기, 두통, 신경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음. 그러나 국민들은 폐기물 시멘트로 지어진 공간에 살면서도 시멘트에 어떤 폐기물이 포함됐는지, 중금속 성분은 무엇이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모르고 있음.

이에 시멘트 포대에 시멘트 제조 시 사용된 폐기물의 종류와 원산지, 사용량, 함량 성분 등을 표시하도록 해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고, 주택용 시멘트와 산업용 시멘트를 분리 생산, 판매를 위한 규정을 마련하여 국민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려는 것임

 
환경부는 시멘트공장에 쓰레기시멘트를 허가하면서 국민에게 단 한 번도 이해를 구하지 않았다. 지금의 쓰레기시멘트 정책은 쓰레기 치우기에 급급한 환경부의 편의주의와 시멘트공장의 돈벌이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환경부가 쓰레기 처리를 위해 지금처럼 시멘트공장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시멘트 등급제와 사용처를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국민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깨끗한 시멘트로 지은 집에 살기를 원한다. 

[관련기사]
- 폐암 유발 물질이 아파트에... 국민 속인 시멘트업체들 http://omn.kr/1za4o
- 폐암 유발 독성 쓰레기로 아파트 짓는다? 5시간 추격전 http://omn.kr/1rfy1

덧붙이는 글 국민들이 살아가는 집이 온갖 산업쓰레기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안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시멘트공장은 오히려 쓰레기시멘트의 중금속이 어린이 놀이터 모래 보다 낮다, 유럽은 친환경 시멘트라고 한다는 등의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 주거 공간이 안전해질 때까지 쓰레기시멘트를 계속 연재할 예정입니다.
시멘트공장 관계자들이나 시멘트공장에 쓰레기를 반입하는 운전자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제보해주실 곳은 cbs5012@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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