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고령 미접종자들 “부작용이 더 겁나”…‘설득’ 숙제 받아든 위드 코로나

등록 :2021-10-19 04:59수정 :2021-10-19 07:34

 
 
 
미접종자 500만명: 그들은 왜 백신을 꺼리나 ①
고령층 10명 심층인터뷰…“집 밖 안 나가면 돼”
 
11월 초 시작될 ‘단계적 일상 회복’은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의미한다. 그 불안한 공존을 위해서는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하다. 접종완료자는 감염돼도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관건은 미접종자다. 18일 0시 기준 18살 이상 미접종자는 539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을 접종으로 이끌려면 먼저 접종 거부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한겨레>는 60살 이상 고령층 10명과 청장년층 10명 등 20명의 미접종자를 심층 인터뷰해 접종을 거부한 이유를 첫 회에 게재하고, 2~3회에서는 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짚어봤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미접종자는 모두 가명으로 등장한다.
61살 독신 “외출 안해 백신패스 불이익 없다”


양희철(61)씨는 서울 회현동에 홀로 살고 있는 집을 ‘벙커’라고 불렀다. 외부자가 집에 들어오려면 대문과 부엌문, 방문을 거쳐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사람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여서 인근 복지관에서 아침 도시락을 가져다준다. 점심과 저녁은 사람 없는 새벽 시간을 골라 장을 본 뒤 직접 해 먹는다. 양씨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다. 올해 초 발치를 하면서 마취 주사를 맞았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고, 방송 뉴스 등에서 접종 부작용 사례를 보고 두려움도 생겼다. “정부가 책임진다더니 사고가 나면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더군요. 저는 아플 때 의지할 가족이 없으니 무연고자로 죽으면 인생이 너무 억울하죠. 술과 담배도 안 하고, 친구들도 집에서 만나니까 카페나 식당 갈 일이 없어서 백신 패스로 제한해도 문제없어요. 접종하면 돈을 준다고 해도 목숨하고 직결된 건데 돈으로 해결이 되겠어요?”

양씨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는 이유’는 <한겨레>가 9월30일~10월14일 심층 인터뷰한 60살 이상 고령층 미접종자 10명이 들려준 이야기와 공통분모가 많다. 이들 고령층 미접종자 대부분은 기저질환이 있어 고위험군이면서도, 선뜻 접종에 나설 의사가 없었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백신 부작용에 민감한데다, 부작용 피해자가 되더라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회생활이 활발하지 않은 탓에 ‘셀프 격리’로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정부가 11월 초 시행될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차질 없이 준비하려면 감염 가능성도, 감염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큰 고령층 미접종자들을 더 접종해야 하지만, 이들을 설득하는 일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10명 중 7명 “부작용 땐 경제부담”

정부로부터 코로나19 인식조사를 의뢰받은 한국리서치가 만 18살 이상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말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접종 거부자는 5% 정도다. 60살 이상 고령층 거부자는 전체의 3%였다. 접종 거부자들이 접종을 망설이는 이유(중복 응답)로는 77%가 ‘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백신의 효과를 믿을 수 없어서’(66%), ‘기본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41%)가 뒤를 이었다. 8월 둘째 주와 견주면, ‘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와 ‘백신의 효과를 믿을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10%포인트 안팎 늘었는데, 이는 접종을 망설이던 이들이 하나둘씩 접종을 택하게 되면서 남아 있는 백신 불신층 비율이 더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겨레>가 인터뷰한 10명 가운데 8명도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접종 거부의 이유로 꼽았다. 이들은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인데 ‘부작용이 생기면 정부의 도움을 못 받으니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작용 생겨도 치료비 오롯이 개인 몫”

충남 당진에 사는 강미숙(67)씨는 최근 백신을 맞지 않기로 마음을 굳히고 매주 나가던 성당도 발길을 끊었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세살 어린 여동생이 접종 열흘 뒤부터 다리를 절뚝거리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처음에는 어깨가 찢어질 듯 아프더니 통증이 허리를 거쳐 다리로 내려왔다. 뇌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를 찍었더니 뇌혈관이 부풀어 있었다. 결국 지난달 뇌혈관 수술을 했지만, 다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의사는 원인을 모른다고 했고, 정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집이랑 밭만 왔다 갔다 하면 되고, 깡촌이라 외부에서 오는 사람도 없어요. 멀쩡하게 일 잘하다가 그렇게 된 거니 백신 말고는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검사비 300만원이랑 수술비 1500만원이 오롯이 동생 몫이 됐어요. 백신 맞고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지, 장애라도 생겨서 자식들 고생시키면 안 되잖아요.”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시민들이 이상반응을 확인하고 예방접종증명서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시민들이 이상반응을 확인하고 예방접종증명서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68살 전직 교수 “후유증 생기면, 자식에 폐”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다 정년퇴임한 이강원(68)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2005년 폐렴 진단을 받은 뒤 건강 염려증이 생겼다. 접종을 위해 의사 설문조사 결과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접종을 권하지 않는 의사가 30%나 됐다. 전문가들도 그러는데 과연 백신이 안전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백신이라고 해도 균이 폐에 들어오면 약한 폐가 더 악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집에 머물면서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하고, 연구를 위한 회의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으니 외부와의 접촉도 최소화할 수 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장으로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정부가 백신과 부작용의 인과관계를 소극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접종으로 중환자가 되면 온 집안에 부담을 주게 될 텐데 그럴 수는 없지요.”

“기저질환 있는데…의사마다 접종하라, 말라”

인터뷰이 중 3명은 의료진에게 직접 ‘접종받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경기 김포에 사는 박찬희(78)씨는 심부정맥혈전증, 직장암, 전립선암 등으로 세차례 수술을 했다. 녹내장과 고지혈증, 이석증으로 매일 아침 먹는 알약만 18개다. 일과 대부분이 순환기내과와 정형외과, 소화기과, 비뇨기과, 흉부외과 등 ‘병원 투어’일 정도다. 자신을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철저히 꽂아놓는 애국자라고 강조한 박씨는 “정부 방침에 따르고 싶지만, 흉부외과에선 맞지 말라고 하고, 순환기내과는 맞으라, 소화기내과와 정형외과에선 ‘왜 나한테 묻냐’고 해요. 그런데 저를 수술해서 가장 몸을 잘 아는 흉부외과 의사가 맞지 말라고 하니 맞을 수가 없지요.”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지선(65)씨는 6년 전 정형외과에서 퇴행성 관절염 주사를 맞고 쇼크가 온 적이 있다. 심장이 빨리 뛰면서 호흡이 어려워졌다. 그 뒤로는 진통제만 먹어도 어지럼증이 생겨 아플 때는 한의원에 가서 뜸을 뜬다. “혹시 또 쇼크가 올까 싶어서 내과에 물어보니 안 맞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언론·서양의학 불신도

정부와 언론 및 의학에 대한 불신, 여기서 비롯된 신념에 따라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수 성향 광화문 집회에 자주 나가는 고수경(67)씨는 주로 유튜브에서 백신 정보를 얻는다. 그는 “태극기 집회를 못 하게 하려면 확진자가 많아야 하니까 코로나19 검사를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튜브를 보면 학생 30명이 백신을 맞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영상이 있어요. 방송 뉴스에는 나오지 않죠. 미국에서 어떤 여성이 백신을 맞았는데 거기 빛을 비추니 칩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게 악마의 표지인데, 접종받으면 천국에 못 가게 되는 거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라고 밝힌 박우태(65)씨는 정부 방역지침은 신뢰하지만 서양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맹신이 탐탁지 않다고 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충남 홍성으로 귀농한 박씨는 약에 의존하면 내성이 생겨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결국 번잡한 생활을 하지 말라는 거거든요. 우리 기업은 사람을 쉬지 못하게 만드니까 약을 먹거나 백신이라도 맞고 일을 해야겠지만, 저는 사람은 안 만나면 되고 아프면 쉬면 되니까요. 백신 패스로 어떤 불이익을 줘도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권지담 김지훈 이재호 기자 gonji@hani.co.kr

 

[화보]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015678.html?_fr=mt1#csidxe0782414cf24c04b713678d23dd4d7f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재명 출석 대장동 국감 공방, 반복의 반복이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10/19 09:26
  • 수정일
    2021/10/19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김예리 기자
  •  입력 2021.10.19 07:53
  •  댓글 0
    
 
SNS 기사보내기
[아침신문 솎아보기] 1면 올라온 ‘대장동 국감’과 ‘탄소중립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가 18일 끝났다. 예상대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공방이 이어졌으나 이미 언론에 보도된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다. 신문들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뒷받침할 새로운 사실도, 답변으로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낼 질문도 없었다고 평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목표가 국제사회(IPCC)가 제시해온 ‘최소 50% 이상 감축’에 미달한 가운데 일부 신문이 이를 지적하면서 현 시나리오에 따르면 실현 가능성도 낮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보수신문들은 산업계 우려를 이유로 최종안을 비판하고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19일 아침신문 1면
▲19일 아침신문 1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국민의힘이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에선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두고 충돌했다. 이 후보는 이날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대장동 의혹의 본질이 국민의힘과 토건세력이 얽힌 비리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비리 연루 혐의에 대해 유일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이날 국감에서 배임 및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수사 중인 유 전 기획본부장 에 대해 “인사를 잘못한 것이다. 지휘하고 있는 직원이 오염돼서 부패에 관여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야당의 의혹 제기에는 강하게 응수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화려한 전적이 있어도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 엄청난 ‘뉴노멀’”이라 하자 이 후보는 “제가 만약 진짜 화천대유의 주인이고 돈을 갖고 있다면 길가는 강아지에게 (돈을) 던져줄지라도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아들 같은 분에게 한 푼도 줄 수 없다”도 받아쳤다.

▲19일 경향신문 3면
▲19일 경향신문 3면

또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이 후보의 측근인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 대장동 사업 등에 연루 정황이 나오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할 것이냐’고 묻자 “(고발사주 의혹 관련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측근이 100% 확실한 그분이 문제 되면 국민의힘은 사퇴시킬 것인지”라고 물었다.

다수 신문은 새로운 내용 없이 기존 비판 지점을 되풀이한 공세로 이 후보의 답변도 되풀이됐다는 평을 내놨다. 서울신문은 “국민의힘은 대장동 의혹은 물론 변호사비 대납, 조직폭력배 연루설, 여배우 스캔들, 형수 욕설 등 전방위 공격을 쏟아냈지만 ‘결정적 한 방’은 나오지 않았다. 이 후보도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의혹 규명보다는 양당의 공방만 이어졌다”고 했다.

▲19일 서울신문 1면
▲19일 서울신문 1면

한겨레는 “국감이라는 제도의 형식적·시간적 제약은 준비가 덜 된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한층 무디게 만들었다”며 특혜 의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의가 반복됐지만, ‘애초 없었던 조항을 새로 넣자는 실무선의 건의를 계약 파기 위험이 있어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란 이 지사의 답변에 막혀 진실 확인은커녕 구체적인 추가 질의로도 이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李 ‘초과 이익 민간업자가 갖는 것’, 본인이 ‘환수 장치’ 뺀 사람인가”와 “대통령 후보에 ‘조폭 연루설’ 이라니, 李 지사 “소송”만 말고 설명을”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의 추가 이익을 환수하는 조항이 누구의 지시로 빠졌느냐는 것이다. 이 지사는 이날 ‘(내가) 추가 이익 환수 조항을 왜 안 넣었냐’라며 ‘성남시가 (개발이익 중) 고정액을 받고 나머지 수익은 민간이 가지도록 공모가 된 만큼 추가 환수 장치를 두는 건 계약 위반으로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추가 이익 환수 조항을 뺀 사람이 바로 이 지사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인가”라고 했다.

▲19일 조선일보 사설
▲19일 조선일보 사설

탄소중립위원회 감축안에 ‘국제사회 비춰 소극’ 비판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국내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시나리오 2개안을 심의해 의결했다. ‘탈석탄’을 최종 확정하고, 원전 비율은 그간 논의돼온 발전의 6~7%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탄소중립은 대기 중 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넷제로(net-zero)를 번역한 말이다.

시나리오안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는 안과 나아가 가스발전(LNG)를 포함한 화력발전 자체를 중단하는 안으로 나뉜다. 한국은 두 안을 바탕으로 구체적 이행 로드맵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018년 대비 탄소 40% 감축’ 목표를 다음달 국제사회에 제출한다.

당초 탄중위가 공개한 시나리오 초안은 3개 중 1개만 탄소중립을 목표로 했는데,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탄중위는 2개 안으로 축소하면서 시나리오를 다시 짰다.

▲19일 한겨레 6면
▲19일 한겨레 6면

아침신문들은 이 소식을 주요 지면에 올렸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가 1면에 다뤘다.

여러 신문이 최종안을 두고 국제사회 기준에 비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향후 8년 동안 석탄 부문 배출량 21.8%, 가스 19.5%가 유지된다. 때문에 실제 ‘탈석탄’은 2030년 이후가 되며, 현재로서 도달 시점을 가늠하긴 어렵다”고 했다. 현재 석탄은 전체 탄소배출량의 30%를 차지하고, LNG를 포함한 화력발전 비중은 39%를 넘는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여전히 국제적인 요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기준에 맞추려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50.4%를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19일 한국일보 8면
▲19일 한국일보 8면

당장의 감축 과제를 미래로 넘기는 안이라는 비판도 전했다. 한겨레는 “최종안 역시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 기술인 포집저장기술 등을 활용해 상쇄해야할 탄소 배출량만 8400만톤~1억1730만톤에 이른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초안에서 국내 책임을 해외로 미뤄 비판 받고 없앴던 ‘국외 감축분’이 2030년 시나리오에서 늘었다고 했다. “2030 NDC(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2018년 대비 26.3%일 때는 전체 감축량의 8%만 국외 감축분으로 설정했지만, NDC 목표가 40%로 상향되면서 국외 감축 비중이 약 12%로 덩달아 높아졌다”며 “앞으로 논란거리가 될 수 있고 국외 감축분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될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탄중위 전체회의가 열린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시위를 벌이고 “탄중위는 기우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란 본령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도 “상용화 시점이 불분명한 기술과 국제인정 기준이 불확실하다는 점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수 신문이 이들 비판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정의로운전환연구단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실시한 시민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시민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고 인식(90.4%)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일자리 상실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정책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는 답변은 60%”였다고 했다.

▲19일 경향신문 8면
▲19일 경향신문 8면

이 가운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산업계 비명”을 키워드로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원전 불가피론’을 폈다. 1면 머리기사엔 탈탄소 목표가 아닌 원전을 제목에 올리고 “IEA ‘원전 늘려라’…한국은 2050년 6%까지 줄이기로”라고 했다. 8면에는 “세계는 원전 키우는데 우리는 ‘탈원전 탄소중립’ 못박아”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IEA(국제에너지기구)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각국에 신재생과 함께 원전을 적극 확대하라고 주문한 가운데, 원전 강국 한국은 유독 실패한 독일의 탈원전 모델을 좇고 있다”고 했다.

▲19일 조선일보 8면
▲19일 조선일보 8면

중앙일보는 “전문가는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해 ‘가장 세고 빠른’ 길을 택했다며, 에너지와 산업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탄소중립이 아무리 ‘가야만 할 길’이라 해도 현실을 도외시한 목표를 억지로 추진하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원전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이정익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를 인용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뒤따르는 전력비용 상승, 물가상승, 산업체 경쟁력 저하, 국민 고통 분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언적 시나리오”라고 비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린파인 레이더 해운대 장산 배치 중단하라!”

시민 안전은 뒷전, 중국 겨냥한 미일 MD 전진기지 우려

  • 기자명 부산=박석분 통신원 
  •  
  •  입력 2021.10.18 18:47
  •  
  •  수정 2021.10.18 18:49
  •  
  •  댓글 0
 

박석분 통신원 / 부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

 

공군이 부산 해운대구와 함께 개최하려고 했던 그린파인 레이더 장산 배치에 대한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공군이 부산 해운대구와 함께 개최하려고 했던 그린파인 레이더 장산 배치에 대한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10월 6일 공군이 부산 해운대구와 함께 개최하려고 했던 그린파인(수퍼 그린파인 블록C) 레이더 장산 배치에 대한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주민들은 9월 28일 진행한 충북 진천 그린파인 레이더의 전자파 측정 결과도 수용하지 않았다.

사실 진천 그린파인 레이더는 부산에 배치되는 레이더보다 성능이 낮은(블록B) 데다가 전자파 측정 결과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진천 행보가 장산 배치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되지 않게 만든 주민들의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연내에 해운대 장산에 설치한다는 그린파인 레이더는 한 기에 1,700억 원에 달하는데, 두 기가 도입되어 다른 한 기는 전라도 지역에 배치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 레이더가 한반도 전역에 대한 북한 미사일을 탐지, 추적, 조기경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탐지 능력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에 도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으며 타당하지 않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그린파인 레이더(블록B)는 이미 2012년에 충청 지역 두 곳에 배치, 운영되고 있다. 탐지거리가 500~900km인 이 그린파인 레이더는 북한 발사 미사일을 거의 대부분 탐지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또 다시 한반도 전역에 대한 북한 미사일에 대한 탐지, 추적을 내세워 추가 도입을 강행한 것이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탐지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린파인 레이더를 추가 도입한다는 주장도 억지다. 국방부는 북한의 SLBM이 남해, 즉 태평양 쪽으로 진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한국 MD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SLBM 탐지를 위해 그린파인 레이더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북한이 남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건 지상 단거리 탄도미사일(KN-02, 스커드B/C 등)들이다. 이게 600여 기나 된다. 굳이 한반도 남쪽 태평양까지 와서 SLBM으로 공격할 필요가 없다.

사거리 1200km인 KN-11(북극성1), 사거리 1900km인 KN-26(북극성3) 등 북한의 SLBM은 태평양 미군과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이 주된 임무다. 즉, 남한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함부로 북한에 대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잠수함들은 “바다의 경운기”로 불릴 만큼 소음이 매우 크고 잠수 깊이가 낮아서 쉽게 발각된다. 가까운 북한의 동해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굳이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남해나 태평양까지 진출해서 남한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그렇다면 과잉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파인 레이더를 추가 도입, 배치하려는 군의 의도는 무엇일까?

수퍼 그린파인 블록C 레이더가 1천 km 이상 탐지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답이 보인다. 중국을 겨냥한 장거리 조기경보레이더를 배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산과 전라도 지역에 추가 배치되는 그린파인 레이더는 사드처럼 일본, 태평양 지역 미군과 미 본토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과 중국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여 미, 일에 제공해 주는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MD 작전에 그린파인 레이더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미 한국 MD는 사실상 정보와 요역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MD에 편입되어 있다. 이에 대해 정경두 전 국방장관은 2020년 6월, “한미 미사일방어체계 통합 연동훈련 등은 정상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합참도 “한미 군 당국이 북한 미사일 발사 상황을 가정해 미사일 탐지 정보를 교환하고 탐지 및 요격수단을 통합해 대응하는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연합뉴스, 2020. 6. 10).

이 훈련에서 한국군과 주한미군 및 미군이 각각 보유한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요격수단을 통합해 발사하는 방식을 점검했다는(세계일보, 2020. 6. 10) 보도는 한국 MD가 미국 MD의 하부체계로 깊숙이 편입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나아가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사드는 패트리엇 미사일방어체계 레이더와 한국의 그린파인 레이더 등 다른 미사일방어 시스템과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신아일보, 2020. 11. 3)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아 미국 MD 작전에 한국군 그린파인 레이더를 동원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북·중을 겨냥한 미국의 MD 작전에 그린파인 레이더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부산 배치 그린파인 레이더는 소성리 사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대결에 나서게 될 수 있고, 부산이 미일 MD 작전의 전진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산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요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간 대결을 고착시키며 한반도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물론이고 부산시민의 안전을 직접 책임지는 부산시, 해운대구의 대응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미온적이며 안이하다. 해운대구청은 국방부로부터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면서 내년 초 장산 정상 개방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부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에 두고 각기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사진 제공 - 통일뉴스 박석분 통신원]

주한미군 생화학실험실이 있고 미군의 양륙항으로 기능하는 8부두. 55보급창과 핵 전함이 드나드는 백운포 주한미해군사령부의 존재만으로도 부산 시민들의 안전은 항상 위협받는다. 지난 해 해운대 미군 폭죽 난동 사건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린파인 레이더 추가 배치로 부산 시민들의 안전이 더 위협받는 상황을 허용할 수 없다.

정부는 대북, 대중 군사적 대결을 멈추고 부산시민을 볼모삼게 될 그린파인 레이더 배치를 중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으로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이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부산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추진되는 과잉 전력 배치를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가 중앙 정부의 전횡에 당당히 맞서 그린파인 레이더 장산 배치를 중단시키고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다하기를 촉구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랏말싸미] '여태껏'과 '여지껏'

 미디어팀/ 이현정기자 승인 2021.10.18 07:00 댓글 0

 

여태껏 본 것중에 최고다
여지껏 본 것중에 최고다

여태껏 뭐하고 있었니
여지껏 뭐하고 있었니

'지금까지'와 같은 의미로 '여태'를 강조한 의미이기 때문에 '여태껏'이 맞는 표현이다.

'여태껏'은 부사 '여태'와 접사 '-껏'의 합성어로 '입때껏'으로 대체돼 사용할 수 있다.

다음은 사전적 의미다.

●여태
▶부사
 : 지금까지. 또는 아직까지. 어떤 행동이나 일이 이미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불만스럽게 여기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나 일이 현재까지 계속되어 옴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입때.
 · 그는 여태 무얼 하고 안 오는 것일까?
 · 여태 그것밖에 못 했니?
 · 해가 중천에 떴는데 여태까지 자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여태-껏
▶부사
 : '여태'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입때껏.
 · 그는 여태껏 그 일을 모르는 척했다.
 · 여태껏 뭐 하다 이 밤중에 숙제를 하는 거냐?
 · 없는 땅, 처자식 먹여 살리는 데 턱없이 부족한 땅 때문에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 왔던가.≪윤흥길, 완장≫
 · 「비슷한말」 이제껏, 지금껏(只今껏)

●-껏
▶접사
 ① ((몇몇 명사 뒤에 붙어)) ‘그것이 닿는 데까지’의 뜻을 더하고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 마음껏.
 · 정성껏.
 · 힘껏.

 ② ((때를 나타내는 몇몇 부사 뒤에 붙어)) ‘그때까지 내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지금껏.
 · 아직껏.
 · 여태껏.

●입때
▶부사
 : 지금까지. 또는 아직까지. 어떤 행동이나 일이 이미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불만스럽게 여기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나 일이 현재까지 계속되어 옴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여태.
 · 입때 안 왔어.
 · “어디! 어제 동경 떠났는데요. 입때 모르셨어요?” 이탁이는 깜짝 놀랐다.≪염상섭, 무화과≫
 · 참으로 나의 처는 훌륭한 여자이었었네. 그런데 벌써 한 달은 되네. 자기 본가로 간다고 가더니 입때 아주 소식이 없네그려.≪송영, 석공 조합 대표≫      [자료참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전국매일신문] 미디어팀/ 이현정기자
hj_lee@jeonmae.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석탄이 쇠퇴한다고 덩달아 소외된 석탄공사 하청 노동자들

[검은 노동, 검은 눈물③] “똑같은 생산라인인데 왜 하청이죠?”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민중의소리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가량을 달리면 동해에 닿기 전 조그마한 마을에 도달한다. 기술 발전의 산물인 KTX는 지나가지 않는다. 이곳은 석탄의 생산지, 탄광이 자리 잡고 있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다. 마을이 저탄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로 인해 새카맣다며 ‘까막동네’라고도 불린다.

너도나도 ‘탈석탄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탄광은 지금도 활화산처럼 검은 먼지를 밤낮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검은 먼지 속에서 정규직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매일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검은 먼지 속에서 건강검진마저 차별받는 설움에 북받쳐있었다.

직영 정규직보다 하청 비정규직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막장에서 이어지는 똑같은 생산라인이잖아요. 저희는 직접 생산과 연결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대한석탄공사가 이 일을 하청에 주느냐는 말이에요.”

지난달 27일 도계광업소의 한 하청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황계인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 영보기업분회 사무국장이 성토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쉴 틈 없었던 일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황 사무국장은 갱 안에서 채굴부 노동자들이 캐낸 원탄(석탄)에서 불순물을 골라내는 작업을 선탄부 노동자다.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비교적 잘 알려진 채굴은 석탄공사 직영 노동자들이 하지만, ‘가려진 노동’인 선탄은 하청 노동자들이 도맡아 한다.

그의 말처럼, 석탄이 에너지원으로 팔리기 전까지 생산 과정을 보면, 끊임없이 하나로 쭉 이어진다. 석탄은 탄맥을 찾아 나서는 ‘굴진’ 작업→가장 위험한 공정인 ‘발파’ 작업→석탄을 직접 캐는 ‘채탄’ 작업→석탄의 공급 과정인 ‘운반’ 작업→이물질을 제거하는 ‘선탄’ 작업의 과정을 거쳐 저탄장(탄을 저장하는 곳)으로 옮겨진다. 선탄은 석탄의 품질을 결정하는 생산 과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일은 애초 석탄공사 직영 노동자들이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석탄공사는 1991년부터 광업소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관리직과 갱내에서 채탄과 굴진 등의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직접부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이 하청으로 하나둘씩 넘어갔다. 광차를 수리하는 노동자, 탄을 운반하는 노동자, 탄에서 불순물을 골라내는 노동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에는 석탄공사 직영 정규직보다 하청 비정규직의 수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 직영 정규직은 최근 5년간 1,388명에서 848명으로, 하청 비정규직은 1,114명에서 868명으로 각각 줄어들었다. 석탄 생산량을 줄이면서 그에 맞춰 감원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도 계속되는 석탄 생산은 하청 비정규직에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청 비정규직의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석탄공사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5년에는 직영 정규직 436명, 하청 비정규직은 794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규직이 나간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의 갱구ⓒ민중의소리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하청 노동자들

그렇다고 하청 노동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력 충원도 되지 않고 시설 개선도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하청 노동자들은 늘 고강도 노동과 위험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갱내 막장에서 직영 노동자들이 채굴해온 석탄을 받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A 하청업체 노동자 박모(63)씨는 민간광업소에서 30년 넘게 일했던 민간광업소와 현재 석탄공사를 비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탄 작업은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2인 1조로 일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선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최근 2년간 혼자 일했어요. 예를 들어 운전자가 있으면 조수가 있어야 하는데 조수가 없어요.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대체인원도 조별로 최소 한 명씩은 있어야 해요. 그러면 누군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결근하더라도 대체인원이 투입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어서 업무가 가중돼요.”

석탄공사 B 하청업체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 안전계원 장모(51)씨는 현장 관리자임에도 직접 실무에 뛰어드는 게 다반사다. “일손이 부족해 현장 관리자도 현장에 투입해 일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현장 관리가 될 수가 없죠.” 그래서인지 현장에선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 9월에는 하청 노동자가 직영 노동자를 돕다가 광차에 깔려 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중상을 입은 사고도 발생했다.

장 씨는 “밖에서 석탄공사에 오면 ‘30년 전이랑 똑같네’라고 한다. 시설투자가 하나도 없다. 개선할 의지도 없다. 레일을 하도 오래 써서 두꺼웠던 게 종잇장처럼 된다. 이리 두꺼운 게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놔둔다”며 “그러다 보니 계속 사고가 반복된다. 혼자 일하다가 (차가) 탈선하면 복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119’ 구급차를 불러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 사이에선 ‘산재로 처리되면 입찰에서 감점을 받아 떨어진다’는 말이 나돈다. 실제로 하청 노동자들이 쉬는 대기실 벽에는 ‘129’라고 불리는 사설구급차의 번호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119’라는 숫자 3개만 누르면 쉬울 것을, ‘010’으로 시작되는 11개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게 한 셈이다. 일자리를 잃을까 겁이 나는 노동자들은 ‘119’를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석탄공사는 도급 계약을 할 때 보통 9개월 단위로 한다. 이는 곧 하청 노동자들의 계약 기간을 의미한다. 석탄공사 하청업체에서 광차 수리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청에선 1년 계약직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근무 이력을 다 보는데 회사명이 매년 바뀌는 셈이다. 일을 하는 건 매년 똑같은데 ‘윗머리’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며 “시대가 어렵다 보니 이거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진보당 대선후보인 김재연 상임대표가 최근 직접 찾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광업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진보당

선탄 노동자의 경우 하청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는 평을 받는다.

선탄부의 경우 3교대도, 2교대도 아니다. 한 개의 조만 남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밤사이 밀려 있는 일을 몰아서 해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하청업체의 운탄 노동자도 선탄 노동자를 두고 “생산량이 줄어서 (인력을 줄여도) 문제가 없다는데 그렇지 않다. 기계는 계속 돌아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한 명만 빠져도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현재 도계광업소에서 선탄은 한 협력업체 소속 11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 최근 김모(50대)씨가 ‘병가’를 내면서 ‘구멍’이 발생했다. 8년 차 선탄원인 그는 2년 전 갑자기 각혈 증상을 보이다가 최근 병원에서 ‘폐종괴’ 등의 진단을 받고 이달 수술을 앞두고 있다. 미세한 탄가루가 폐에 쌓여서 기능을 못 하는 직업병인 ‘진폐증’은 아니지만, 주변에선 석탄가루가 분명 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하고 있다.

선탄원 김모씨의 병원 진단서ⓒ민중의소리

산재 처리를 요구하기 위해 회사 사무실에 들른 김 씨는 “손가락 관절, 어깨, 팔, 다리, 허리, 지금 다 아프다”고 토로하며 선탄 일을 마치고 모인 동료들의 모습에 미안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탄 노동자 중 가장 경력이 긴 양금옥 영보기업분회 분회장은 “아픈 사람이 빠지면 우리는 그 사람 몫까지 다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사무국장은 “지금 직영에선 두 조로 나눠서 교대 근무를 하는데 저희는 하나로 조를 줄였다. 우리 선탄도 막장의 (채굴처럼) 똑같은 생산라인인데 거긴 두 조로 나뉘어 있고 우리는 오전에 모든 걸 해치워야 한다”며 “이렇게 바뀐 지 2년 정도 됐다. 그동안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선탄은 여성들만 하고 있는 일이다. 과거 채굴과 같은 고강도 일을 남성이 하는 대신, 비교적 강도가 낮은 선탄은 여성들이 도맡게 되면서 지금까지 전통처럼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중년의 여성이 하기에는 벅차 보이는 고강도 노동이다. 커다란 망치를 두 팔로 들은 뒤 내리치며 돌을 깨기도 하고,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돌덩어리를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야 한다.

황 사무국장은 “한 시간 일하고 10분 쉬기를 반복한다. 벨트가 계속 쉬지 않고 돌아가니까”라고 말했다. 심지어 점심시간을 쪼개 ‘청소’도 해야 한다. 이것 역시 말만 청소지, 낡은 벨트에서 떨어지는 석탄을 삽으로 퍼서 다시 올리는 고된 일이다. “일보다 청소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양 분회장은 “가면 갈수록 시설이 좋아져서 일도 쉬워져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십수 년 전보다 더 힘들어진 거 같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쓴다. “비누질을 세네 번씩 한다. 계속 탄이 나오니까 계속 닦아줘야 한다”고 황 사무국장은 말했다. 그를 비롯해 선탄 노동자들의 얼굴은 얼마나 많이 문질렀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닦아도 석탄가루는 고된 노동을 보여주듯 선탄 노동자들의 손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선탄원들의 손. 여러번 씻어내도 여전히 검은 가루가 손에 남아있다.ⓒ민중의소리

이와중에 건강검진마저 차별 대우

이 와중에 하청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들에 비해 ‘못한 대우’를 받는 차별을 겪고 있다. “입사할 때 산재병원에서 가서 건강검진을 한 뒤 결과를 제출했는데 그땐 폐가 깨끗했다”는 김 씨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에서 직영 정규직과 차별을 받은 것이 아픈 그에게 더 서럽게 다가온다.

“병원에서 (광업소로) 차량이 와요. 우리는 그 차량에서 엑스레이(X-ray)를 찍고 피검사와 청력검사 등을 해요. 올해도 검사했는데 그때도 이상 소견이 나오더라고요. 광산에서 일하시니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건강검진 때 CT와 같은 특수촬영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보다 연배 높은 동료들도 입사한 이래 특수촬영이란 건 한 번도 안 받아봤다고 했어요. 그런데 직영 사람한테는 석탄공사가 30만원의 지원금을 주고 지정병원에 가서 CT도 찍게 하고 다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차별을 할까요.”

실제 양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석탄공사는 직영 노동자들에게 30만원씩 지원하며 종합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반면 도계광업소 내 11개 하청업체는 단 한 곳도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보니 하청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들과 달리 흉부CT와 같은 특별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건강을 두고도 차별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공기업’인 석탄공사였던 셈이다.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에 따르면 석탄공사 정규직은 건강검진 지원금뿐만 아니라 기본급 3%의 위험수당, 그리고 휴가수당, 특수직무수당, 연료보조비, 중식보조비, 생산성향상독려비, 성과급, 문화여가비, 경조비 및 유족위로금, 상여금, 교통비 등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송주화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 지회장은 “성과급이 정규직에게만 있다”며 “석탄 생산 과정에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인원이 더 많은데 성과급은 정규직이 다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원청이 해결해야”...정작 석탄공사 사장은 한 달 넘게 ‘공석’

이런 노동자들의 울분에 하청업체는 이렇다 할 도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석탄공사가 돈을 충분히 주지 않아 우리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인력 투입을 요구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토로하던 노동자들에게 C 하청업체 사장은 “그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본청(석탄공사)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방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최저단가 입찰이 문제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는 “요새 들어 입찰 경쟁이 더 심해졌다. 6~7개씩 들어오다 보니까 단가를 낮추게 된다”며 “우리도 지원해주고 싶지만, 인원에 딱 맞춰서 인건비가 책정돼 있어서 사람을 더 채용하지도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그는 “매년 감산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인력 감축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또 그렇게 되지 않겠나”라며 정책 탓을 했다.

실제로 석탄공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광업소는 도계광업소와 강원도 태백시의 장성광업소, 전라남도 화순군의 화순광업소 등 3개뿐인데, 이마저도 규모를 점차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1989년 경제성이 낮은 탄광을 정리하고 경제성이 높은 탄광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시작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이제는 ‘탈석탄’ 정책으로 이어지면서다.

양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실적’을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1,008→908→650→540→475톤으로 절반이 줄었다. 석탄공사는 향후 5년간 생산량을 이보다 절반(402→340→293→249→213톤)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송 지회장은 도계광업소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저곳이 저탄장이다.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광업소에서 퇴직자가 나온 자리에 신규 채용을 아예 하지 않다 보니 노동자들은 고령화되고 있었다. 석탄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석탄공사 직영의 경우 59세,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52세였다.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 중 직영 정년(60세) 초과 인력이 488명에 달하며, 그중 70세 이상은 39명이었다. 노동강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그런데 석탄공사의 계획을 보면 최소한 향후 5년간은 석탄 생산을 계속하게 된다. 노동자들 입장에선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이틀 버틸 일이 아닌 것이다. 차별 해소 등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송 지회장은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하는데 결국 원청의 의지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예산을 받아야 할 수 있다”며 석탄공사의 역할을 촉구했다.

현재 석탄공사 사장은 한 달 넘게 공석이다. 지난달 2일 퇴임한 유정배 전 석탄공사 사장은 내년도 지방선거 춘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산적한 문제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고 계속 공석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공석인 석탄공사 사장을 대리해 김인수 관리본부장이 지난 1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양 의원은 “석탄 산업이 전환기를 거치는 어려움을 알지만 노동이 소외되고 차별받아선 안된다”고 지적했고, 김 본부장은 “협력업체와 적극적으로 대화해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후단협의 교훈'과 '진심의 시간'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어떻게 가져온 정권인데 야당에게 다시 내줄 수 있는가" "지금의 민주당 후보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 "국민경선이 사실은 사기극이었다."

 

말의 시점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다.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사람들이 주장한 '후보 교체론' 어록들이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민주당에서 또다시 비슷한 모습이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새천년민주당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노무현 후보를 이재명 후보로 치환한 '후단협 시즌 2'가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경선 직후 제기된 '무효표 논란'은 이낙연 전 대표가 승복 의사를 밝힘으로써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후보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앞길을 숙고하는 쪽에 아직은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사필귀정" "정의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는 등의 말도 이 전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나온다. 후보 교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 분란은 2002년 후단협 사태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대선 후보의 본선 경쟁력 의구심, 정권 재창출 위기론 등 당시 후단협 사람들이 제기한 주장은 지금 이 전 대표 쪽 사람들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비주류 출신의 대선 후보에 대한 당내 주류의 마뜩잖은 시선도 똑같이 감지된다. 이낙연 후보 쪽 캠프는 이른바 '친문 주류' 인사들이 많았던 반면 이재명 후보 캠프에 참여한 의원들은 당내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민주당 주류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2002년에는 비주류였다. 이제는 뒤바뀐 위치에서 비주류 대선 후보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현재와 2002년 후단협 사태 때와는 다른 점도 많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차이는 '대타 후보'의 성격이다. 2002년 당시 후단협 사람들은 대타를 민주당 바깥(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에서 찾았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 쪽이 희망하는 대타 후보는 이 전 대표 자신이다. 이것은 매우 결정적 차이점이다.


 

이낙연 전 대표의 '꿈'이 현실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수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결정적 범죄 연루 혐의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 지사의 지지율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당내에서 자연스럽게 후보 교체론이 들끓어 이 전 대표가 후보직을 승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재명 지사 지지표까지 흡수해야 한다. 이것이 아마 이 전 대표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희망적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치는 생물이고, 이번 대선은 워낙 돌출변수가 많으니 일단 예측은 유보하자. 다만 이 전 대표가 그런 '야망'을 품고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현명한 정치적 행보를 해야 하는데 실제 모습은 정반대다.

 

우선 이 전 대표는 경선 이후 '큰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무효표 처리 논란'을 제기한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경선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럴수록 기꺼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우리 유권자의 정서상 패자의 깨끗한 승복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승부 결과에 꼬리표를 다는 행위는 잘 용납하지 않는다. 이 전 대표는 '그릇이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당 전체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이 전 대표의 '작은 정치'는 무효표 논란에 대한 민주당 당무위 결정을 수용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훌훌 털고 일어나 당을 위해 헌신하기 보다는 자기의 정치적 앞날을 계속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은 검찰 수사 결과 경천동지할 내용이 나오지 않는 한 결국 여야 간에 치열한 정치적 공방으로만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낙연 전 대표가 선택할지도 모를 가장 나쁜 길은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면서 은근히 야당의 공세에 가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여당 후보를 최종적으로 다시 결정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이 전 대표가 대선까지 진출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상황까지 치닫게 되면 여당 내부의 상처는 치유불능 상태가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여당 지지층이 총결집해도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은 '모두의 패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영화 <역린>에서 '중용 23장'을 쉽게 풀어서 만든 인상 깊은 대사인데, 정치인들이 한 번쯤 새겨볼 내용일 듯 싶다. 이 전 대표가 정말 세상을 변하게 하고 싶다면 지금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해답은 자명하다. 성심(誠心)을 다해 정치의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이 다시 기회를 줄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성심'은 이재명 지사도 명심해야 할 단어다. 2002년 대선에서 결국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은 정몽준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보인 승부사 기질이 바탕이 됐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제스처나 일시적 미봉책으로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정성을 다해야 남을 감동시키고, 자신도 변하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 필요하면 난국을 돌파할 승부수를 던지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란 그것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그 의미를 허용해주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후단협의 역사가 주는 의미와 교훈은 무엇인지 민주당 사람들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야 할 시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대산빌딩에서 열린 이낙연 필연캠프 해단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180814153915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부터 마지막 거리두기…사적모임 수도권 8명·비수도권 10명

접종자 중심 수칙 완화…3단계 카페·식당-4단계 독서실·영화관 등 밤 12시까지

결혼식 최대 250명, 스포츠 직관도 가능…11월 1일부터 방역체계 전환할 듯

  •  

18일부터 2주간 수도권에서는 낮과 밤 구분 없이 최대 8명, 비수도권에서는 최대 10명까지 모일 수 있다.

 

비수도권 식당·카페는 밤 12시까지 영업할 수 있고, 수도권 스포츠 경기에는 '백신 패스'가 적용돼 접종완료자에 한해 현장 관람이 가능해진다.

 

결혼식 참석 인원은 전국적으로 최대 250명까지 늘어난다.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부터 31일까지 2주간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4단계·비수도권 3단계)가 연장된다.

 

다만, 이번 거리두기는 내달부터 시행될 '단계적 일상회복', 이른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는 징검다리 기간이어서 일부 방역 조치는 완화됐다.

 

사적모임 인원은 늘어난다. 4단계 지역에서는 오후 6시 전후 구분 없이 모든 다중이용시설에서 최대 8명까지 모일 수 있다. 미접종자끼리는 4명까지, 접종완료자가 합류하는 경우에는 최대 8명이 만날 수 있다.

 

전날까지는 오후 6시를 기준으로 낮에는 4명까지, 저녁에는 2명만 모일 수 있었고, 식당·카페·가정에서는 접종완료자 포함 최대 6명까지 허용됐다.

 

또 18일부터 3단계 지역에서는 시설·시간에 상관없이 미접종자끼리면 4명까지, 접종 완료자를 포함하면 10명까지 허용된다. 기존에는 8명까지였다.

 

생업시설 영업 제한도 일부 완화됐다. 밤 10시에 문을 닫아야 했던 3단계 지역 식당·카페와 4단계 지역 독서실·스터디카페·공연장·영화관은 밤 12시까지 영업할 수 있다.

 

결혼식 참석 인원은 음식 제공 여부와 관계없이 최대 250명으로 늘어난다.

 

기본 허용인원 49명에 접종완료자 201명을 더 초대할 수 있다.

 

만약 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미접종자 하객이 49명을 넘는다면, 기존의 수칙을 적용해 미접종자만으로 99명을 채우고 접종완료자 100명을 더해 총 199명까지 참석하는 결혼식도 가능하다.

 

무관중으로 진행되던 4단계 지역 스포츠 경기는 유관중으로 전환된다. 다만 접종 완료자로만 관람객을 구성해야 하며, 실내경기는 수용인원의 20%까지, 실외는 30%까지 허용된다. 접종 완료자만 프로야구·배구·농구·축구 등을 '직관'하게 한다는 점에서 '백신 패스'의 첫 적용으로 볼 수 있다.

 

4단계 지역 종교시설에서는 '99명 상한' 기준이 없어진다. 미접종자를 포함해 전체 수용인원의 10%가 예배 등에 참석할 수 있고, 접종 완료자들로만 구성하면 20%까지 모일 수 있다.

 

정부는 이르면 내달 1일부터 중환자 관리에 집중하면서 일상생활을 단계적으로 회복하는 위드 코로나 정책을 가동할 계획이다.

 

순조로운 시행을 위해서는 인구 대비 접종완료율이 70%로 올라가고, 확진자 감소세가 유지돼야 한다.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벽예감 465] 불길은 다시 타오른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10/18 [08:00]
  •  
  •  
  •  
  • <a id="kakao-link-btn"></a>
  •  
  •  
  •  
  •  
  •  
 

<차례>

1.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 

2. 고강도 착취가 자유화되었다

3.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총파업투쟁

4.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

5.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

 

 

1.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1986년 4월 어느 날 서른 한 살의 청년이 격정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그가 읽던 신문지 위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1986년 3월 25일 서울노동운동연합이 발행한 <노동자신문>이었다. 신문이라기보다는 유인물처럼 보이는 신문에는 이런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 

 

신흥정밀 박영진 동지, 임금인상투쟁 중 분신항거!

‘임금인상하라’ 처절한 외침과 함께 온몸에 불붙이다

3월 18일 새벽 3시 동료들의 오열 속에 끝내 숨지다 

 

35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청년운동단체 사무실에서 <노동자신문>에 실린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소식을 읽으며 격정의 눈물을 흘리던 서른 한 살의 청년이 바로 나였다.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는 나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1986년 3월 17일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성명을 낭독하고 투쟁구호를 외쳤다. 식당으로 쳐들어온 경찰이 그들을 덮쳤다. 경찰의 폭행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은 옥상으로 밀려갔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박영진 열사가 자기 온몸에 석유를 쏟아 부었다. 불이 붙은 성명서를 손에 움켜쥔 그가 울부짖었다. 

 

경찰은 물러나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그의 울부짖음은 노동자들의 아우성 속에 파묻혔고, 곧바로 그의 온몸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얼마 후 전신화상을 입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기 된 박영진 열사가 병상에 말없이 누워있었다. 그의 삶을 26년 동안 지켜주던 생명지표가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각일각 다가서고 있었다. 화염 속에서 일그러진 그의 입술이 가늘게 움직이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 1986년 3월 17일 서울 구로공단 신흥정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투쟁을 벌이던중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진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했다. 그는 3월18일 새벽 3시 전신화상으로 숨을 거두었다. 위의 사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신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박영진 열사 곁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그의 임종을 지켜주는 장면이다. 35년 전, 박영진 열사는 분신항거로 노동계급이 당하는혹심한 착취를 세상에 폭로하는 투쟁의 길에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수많은 노동열사들의 불타는 투쟁정신은 기나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 행복해요. 나는 잠시 다니러 가는 겁니다. 

물 좀 줘요. 마시지 않을 테니까. 입술에 묻히게만 해줘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그의 곁에 있었다. 차마 유언으로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난 동일제강에서 해고되었고, 중학교 3년 중퇴하고 가난하게 살았어요. 신흥정밀은 하루 9시간씩 기본으로 일하고 3,280원을 줬어요. 너무도 살기 힘들어 임금인상하려고 했는데... 지금 빨리 가고 싶어요. 가면 쉬겠죠. 우리 부모님은 우성아파트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어요. 어머님이 이 일을 천만 노동자에게 꼭 전해주시길...”

 

박영진 열사의 숨소리가 끊어졌다. 통곡소리가 작은 병실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어언 35년 세월이 흘렀다. 박영진 열사의 26년 생애보다 더 긴 35년 세월 속에서 차츰 희미해져가던 기억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되살아났다. 

 

 

2. 고강도 착취가 자유화되었다

 

박영진 열사가 분신항거로 희생된 이후 35년이 지난 오늘 그 무슨 ‘민주화’가 실현되었다고 하는데도,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30,0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는데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여전히 실업과 빈궁,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참담한 현실 속으로 떠민 근본요인은 착취와 복종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착취는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 발생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뜻한다. 

 

생산은 노동계급의 생산로동에 의해 사회적으로 진행되지만,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가치는 자본가계급이 반사회적으로 점유한다. 이것이 착취의 실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생산의 주체인 노동계급이 생산로동으로 창조한 가치의 전부를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반사회적 행위가 바로 착취인 것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은 자기들이 배타적으로 점유한 가치 중에서 일부를 떼어내 자기들이 고용한 노동계급에게 임금(wage)이라는 명목으로 분배함으로써 착취의 지속성을 유지한다. 

 

착취계급이 모든 사회적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점유한 자본주의사회체제는 인간을 고용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인격적인 상품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을 짓밟는다. 극소수 착취계급은 절대다수 노동계급을 노동상품으로 구매하고, 그들에게 착취제도에 복종하라고 강제한다. 착취제도에 복종하지 않는 노동자는 ‘갑질’을 당하거나, 차별을 받거나, 정리해고를 당한다.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절대다수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그들을 착취제도에 복종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를 합법화해준 것이 자본주의사회체제다. 자본가계급은 인류역사에 마지막으로 출현한 착취계급이다. 

 

사회적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점유한 자본가계급과 사회적 생산로동을 담당한 노동계급은 필연적으로 대립하게 되며, 그런 계급적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발생한다.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주기적으로 심화되면서 파산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착취계급은 파산위기에서 발생한 모든 고통과 불행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전부 떠넘긴다. 그렇게 되면, 생존위기로 내몰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에 나서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착취계급은 자기들의 착취를 합법화해준 정권과 결탁하여 착취강도를 약간 낮춰주는 시늉을 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회유하고, 생존권쟁취투쟁이 격화, 폭발되지 않도록 방지한다. 1996년 5월에 설립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그런 회유정책의 추진자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노사정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나 1997년 12월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파산위기가 닥쳐왔을 때,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합법화해주었고, 수많은 노동자를 실업과 빈궁으로 내몰았으며, 착취계급은 착취강도를 이전보다 더욱 높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장장 24년 동안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고강도 착취는 완화되기는커녕 점차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요즈음 서울에서 평양랭면 평균가격이 11,000원인데,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이 정해놓은 최저임금은 시간당 8,590원이다. 그나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혹심한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는 319만명에 이르렀다. 

 

착취강도가 높아질수록 부익부 빈익빈 추세에 따라 사회적 빈부격차는 극대화되었고, 공룡처럼 비대해진 투기자본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장악했고, 불로소득과 불법금융거래와 부정부패가 만연되었다. 부동산개발에 광분하는 자본가들이 천문학적인 개발리익을 정치인들, 관료들과 나눠먹은 대장동 사태가 그런 범죄사례이다. 

 

▲ 위의 사진은 2018년 12월 1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2018년 12월 11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아무도 없는 야간에 홀로 근무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희생된 현장에는 컵라면 3개, 과자 1봉지,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 1개가 유품으로 남아있었다. 악랄한 착취제도에 복종을 강요당하며고통과 불행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계급의 41.6%를 차지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력사발전의 주체로 일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산격차는 그만두고 소득격차만 봐도, 한국 사회에서 최상위 자본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39배 더 많은 소득을 거머쥐고,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74배나 더 많은 소득을 거머쥔다. 856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간 평균임금은 약 2,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데, 소득분포에서 상위 0.1%에 해당하는 최상위 자본가 24,149명의 연간 평균소득은 약 15억1,700만원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전년에 비해 2.2% 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전년에 비해 1% 줄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감소한 것은 2004년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 관한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악랄한 착취제도에 복종을 강요당하며 고통과 불행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계급의 41.6%를 차지한다.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심화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류행 사태까지 겹치는 바람에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파산위기에 빠졌다. 파산위기가 몰려오자 다급해진 자본가계급은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전보다 더 많이 고용함으로써 착취강도를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2020년 10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133,000명이 증가했고, 주당 36시간만 일하는 시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97,000명이 증가했고, 파견-용역-특수형태 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28,000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광란적인 고강도 착취를 법적으로 통제(control)하기는커녕 되레 자유화(liberalize)해준 것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다.  

 

 

3.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총파업투쟁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항거로 희생된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제도에 맞서싸우기 위해 분신항거의 길을 택했다. 노동자의 분신항거는 노동계급이 자기의 집단력량을 아직 조직화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별로 분산되어 투쟁하는 시기에 벌어지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의 초기 형태다. 노동계급이 아닌 농민과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한 근로대중은 생존권쟁취투쟁에 나서지만, 노동계급은 계급투쟁에 나선다. 여러 형태의 계급투쟁 가운데서 가장 위력적인 계급투쟁이 전국적 범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총파업이다. 총파업은 노조로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계급투쟁이다. 

 

그런데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과 언론은 계급투쟁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피어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갖지 못하도록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19세기 중엽 유럽의 공산주의운동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공산주의운동을 이끌던 칼 맑스(Karl H. Marx, 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1848년 영국 런던에서 공산당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을 출판했는데, 공산당선언 제1장은 다음과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The history of all hitherto existing society is the history of class struggle.)" 

 

흔히 계급사관이라고 부르는 사회역사리론이 정립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73년 전이다. 1811년 평안도에서 홍경래(1780~1812)가 농민전쟁을 일으킨 때로부터 37년 뒤, 유럽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모든 사회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한 계급사관의 명제를 정립했던 것이다. 홍경래는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지만, 맑스와 엥겔스는 홍경래의 농민전쟁을 계급투쟁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맑스주의 계급사관에 따르면, 홍경래의 농민전쟁은 당시 피착취계급이었던 농민들이 봉건착취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궐기한 격렬한 계급투쟁이었다. 

 

조선봉건왕조의 착취세력은 홍경래의 농민전쟁에 참가한 농민들 가운데서 2,000여 명을 살해하여 농민전쟁을 압살했고, 유럽의 착취세력은 체포, 투옥, 해외추방 같은 폭력조치를 동원하여 맑스와 엥겔스가 이끄는 공산주의운동을 짓밟았다. 그런 무자비한 탄압이 100년 이상 지속되는 동안,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기피어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착취세력이 금압한다고 해서 계급투쟁이라는 언어가 노동계급의 정신세계에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절대다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사회체제에서는 계급적 적대관계(class antagonism)가 필연적으로 형성되고, 계급적 적대관계는 불가피하게 물리적 충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총파업은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물리적 충돌인 것이다. 

 

▲ 위의 사진은 1945년 8.15 해방 직후 미군정 점령기에 38도선 이남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했던 조선로동조합전국평회의(전평) 본부청사를 찍은 것이다. 붉은 오각별 안에 톱니바퀴를 새겨넣은 전평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당시 전평은 세계로련에 가입되어 있었고, 전평 대표를 세계로련대회에 파견했다. 전평은 1946년 9월 15만명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이 총파업투쟁은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첫 번째 총파업이었다. 미군정 점령 하에서 모진 탄압을 뚫고 계급투쟁을 전개하던 전평은 이승만 우익독재정권이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그 정권의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첫 번째 총파업은 1946년 9월 조선로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벌인 총파업이다. 전평 산하 철도노조 40,000명 노동자가 시작한 파업투쟁은 38도선 이남 전역에서 15만명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1946년 당시 전평에 소속된 노동자는 57만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15만명이 총파업에 참가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전평이 9월 총파업에서 제시한 투쟁목표다. 9월 총파업의 투쟁목표는 전평 산하 남조선총파업투쟁위원회가 1946년 9월 26일에 발표한 총파업 선언서에 명시되었다. 9월 총파업의 투쟁목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쌀을 달라. 노동자와 사무원, 모든 시민에게 3홉 이상 배급하라.

 

2) 물가등귀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라.

 

3) 전재민과 실업자에게 일과 집과 쌀을 줄 것. 

 

4) 공장폐쇄와 해고를 절대 반대한다.

 

5) 노동운동의 절대 자유를 보장하라.

 

6) 일체의 반동적 테러를 배격할 것.

 

7) 민주주의적 노동법령을 즉시 실시하라.

 

8) 민주주의운동 지도자에 대한 지명수배와 체포령을 즉시 철회하라.

 

9) 검거, 투옥 중인 민주주의운동가를 즉시 석방하라.

 

10)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 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11) 학원의 자유를 무시하는 국립대학교안을 즉시 철회하라.

 

12) 해방일보, 인민보, 현대일보 기타 정간된 신문을 즉시 복간시키고 그 사원을 석방하라. 

 

미군정 점령 하에서 모진 탄압을 뚫고 계급투쟁을 전개하던 전평은 이승만 우익독재정권이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그 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두 번째로 벌어진 대규모 총파업은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1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전개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총파업이다. 당시 민주노총이 총파업에서 제기한 투쟁목표는 노동악법을 전면 무효화하고, 즉각 재개정하라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권 시기의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 야음을 틈타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가더니, 6분 만에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폭거를 자행했다. 그들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 개정안에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대체근로제 등이 들어갔는데, 이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계급적 착취를 합법화하여 착취강도를 이전보다 더 끌어올린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이에 격분한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총파업투쟁에 궐기했다. 자료에 따르면,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 1일 평균 163개 노조와 18만4,500명 노동자들이 참가했으며, 3차에 걸친 총파업투쟁에 참가한 연인원은 총 39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총파업투쟁에 놀란 김영삼 정권은 폭력경찰을 동원하여 최루탄을 난사하고, 백골단을 앞세워 야만적인 폭행을 가하면서 민주노총 총파업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오늘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세 번째로 기록될 총파업이 눈앞에 다가왔다. 2021년 8월 23일 민주노총은 화상회의방식으로 진행된 제73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소속 110만 명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결의하는 단독안건을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총파업 투쟁목표를 채택했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2021년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민주노총이 10.20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제시한 15개조 투쟁목표는 다음과 같다.

 

1) 고용위기에 빠진 기간산업(자동차, 조선, 항공, 에너지)을 국유화할 것.

 

2) 전체 주택의 50%를 국유화하여 주택문제를 해결할 것.

 

3)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입시제도 및 대학서열을 폐지하여 학벌사회를 타파할 것.

 

4)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할 것.

 

5) 100만명 노동자가 일하는 돌봄서비스부문을 국가가 직접 운영할 것.

 

6) 재난시기(코로나위기, 기후위기, 인구감소위기 등)에 해고를 금지하고, 산업재편시(4차 산업혁명)에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노동자와 고용자가 공동으로 결정하게 할 것.

 

7)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비정규직법을 폐지할 것.

 

8) 부동산투기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대할 것.

 

9) 재벌개혁(범죄수익 국고환수)과 부자증세를 시행할 것.

 

10) 사회임금을 확대하여 상병수당, 국민연금 소득대체 50%,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실시할 것.   

 

11)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재난생계소득을 지급할 것.

 

12)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기업차별법을 적용할 것.

 

13) 노동자-고용자성 확장 등 세계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따라 노동법을 전면 개정할 것.

 

14)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안전한 일터와 일자리를 확대할 것.

 

15)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및 정치활동권을 보장할 것.

 

 

4.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

 

민주노총이 결의한 10.20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는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이루어내려는 것이다. 2021년 9월 30일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서울을 비롯한 29개 지역에서 총파업결의대회를 동시다발로 진행하면서 “총파업으로 불평등체제 타파하고 사회의 대전환을 실현하자”고 외쳤다.  

 

위에 인용한 민주노총의 10월 20일 총파업 투쟁목표 중에서 주요산업 국유화, 전체 주택 50% 국유화, 무상교육제 실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공동기업운영제 실시, 비정규직 폐지, 노동자해고금지, 재벌개혁과 부자증세, 전국민고용보험제 등은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정치강령들이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불평등한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절대다수 노동계급에 대한 극소수 자본가계급의 억압과 착취와 차별을 합법화, 자유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체제이므로, 민주노총이 타파하려는 불평등한 체제는 곧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해석되는 것이다.  

 

민주노총 강령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한다”고 명시되었다. 민주노총이 건설하려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참된 민주주의가 구현된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참된 민주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훼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정치리념이다. 

 

▲ 위의 사진은 2021년 9월 30일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29개 지역에서 총파업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결의대회에서 그들은 "총파업으로 불평등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실현하자"고 외쳤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2021년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민주노총은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불러일으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총파업투쟁을 결의했다. 착취계급과 결탁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고, 총파업 집회를 불허한다는 탄압경고를 냈지만, 계급투쟁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대안개념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헐벗 크롤리(Herbert D. Croly, 1869~1930)다. 그는 1915년 미국 뉴욕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리념을 세계정치무대에 제기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속히 추진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억압, 착취, 차별이 극심했던 20세기 초 미국에서 크롤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크롤리가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정치리념은 세계 각국으로 파급되었다. 크롤리가 미국식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했다면, 항일투사 조소앙(1887~1958)은 우리식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그가 반일항쟁기에 정립한 우리식 진보적 민주주의가 바로 삼균주의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발표한 건국강령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었다. 건국강령에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8대 강령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었다.

 

1) 주요산업 국유화 -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은 중소기업은 사영으로 한다.

 

2) 일제와 친일부역자의 재산몰수 및 국유화 - 일제가 점유한 모든 사유자본과 친일부역자가 소유한 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 

 

3) 몰수재산의 사회적 환원 - 몰수한 재산은 빈공, 빈농 및 일체 무산자의 이익을 위하여 국영 혹은 공영의 집단생산기관에 충당함을 원칙으로 한다.

 

4) 토지의 국유화 - 토지의 상속, 매매, 저압, 전양, 유증, 전조차를 금지한다. 

 

5) 국제무역 및 사회간접자본의 국유화 - 국제무역, 전기, 수도, 대규모 인쇄소, 출판, 영화극장 등을 국유, 국영으로 한다.

 

6) 노동조건 개선 - 노동, 유공, 여인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연령, 지대, 시산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한다.

 

7) 무상의료제 실시 - 농공인의 면비의료를 보급, 실시하여 질병소멸과 건강을 보장한다.

 

8) 토지개혁 실시 - 토지는 자력자경인에게 나누어줌을 원칙으로 하되, 원래의 고용농, 자작농, 소지주농, 중지주농 등 농인지위를 보아 저급으로부터 우선권을 준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상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실현하는 정치리념은 진보적 민주주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지난날 상해 임시정부는 오늘 민주노총이 제시한 총파업 투쟁목표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간 진보적인 건국강령을 제시했다.  

 

현행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었으므로, 한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건국강령으로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계승해야 마땅한데, 진보적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미국에서 이식된 자유민주주의를 절대화하는 오류에 빠져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건국리념으로 정립되었다. 1945년 10월 3일 김일성 주석은 평양로농정치학교 학생들 앞에서 진행한 강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이 길 만이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주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 줄 수 있으며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여 줄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라고 언명하였다.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포럼 월례강연에서 “내실이 있는 민주주의는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입니다”라고 언명한 바 있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진보적 민주주의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크롤리가 말한 진보적 민주주의, 상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 명시된 진보적 민주주의, 김일성 주석이 건국리념으로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일맥상통하는 정치리념이다.

 

 

5.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제시했고, 1945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국리념으로 제시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제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건국문제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940년대에 일제의 식민통치체제를 타파하고 건설하려 했던 자주독립국가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나라였던 것이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임무와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임무가 서로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오늘 분단시대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임무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임무도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구호에 나온 것처럼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실현하는 것, 다시 말해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실현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10.20 총파업의 투쟁목표로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의 강령에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민주노총이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전일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대전환에서 선후차를 따져보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다음에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통일국가가 건설된 다음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정부가 자주통일국가의 남측 지역에 수립되어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0일 총파업의 날이 밝으면, 진보적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투쟁의 깃발을 들고 광장과 거리로 나설 것이다. 이번에 민주노총이 준비한 총파업은 1946년 9월 총파업, 1996년 12월~1997년 1월 총파업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전개되는 총파업이다. 이에 놀란 문재인 정부는 ‘불법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했고, 총파업 집회를 불허한다는 탄압경고를 냈지만, 계급투쟁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벽예감 465] 불길은 다시 타오른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10/18 [08:00]
  •  
  •  
  • <a id="kakao-link-btn"></a>
  •  
  •  
  •  
  •  
 

<차례>

1.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 

2. 고강도 착취가 자유화되었다

3.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총파업투쟁

4.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

5.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

 

 

1.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1986년 4월 어느 날 서른 한 살의 청년이 격정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그가 읽던 신문지 위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1986년 3월 25일 서울노동운동연합이 발행한 <노동자신문>이었다. 신문이라기보다는 유인물처럼 보이는 신문에는 이런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 

 

신흥정밀 박영진 동지, 임금인상투쟁 중 분신항거!

‘임금인상하라’ 처절한 외침과 함께 온몸에 불붙이다

3월 18일 새벽 3시 동료들의 오열 속에 끝내 숨지다 

 

35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청년운동단체 사무실에서 <노동자신문>에 실린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소식을 읽으며 격정의 눈물을 흘리던 서른 한 살의 청년이 바로 나였다. 박영진 열사의 분신항거는 나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1986년 3월 17일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성명을 낭독하고 투쟁구호를 외쳤다. 식당으로 쳐들어온 경찰이 그들을 덮쳤다. 경찰의 폭행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은 옥상으로 밀려갔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박영진 열사가 자기 온몸에 석유를 쏟아 부었다. 불이 붙은 성명서를 손에 움켜쥔 그가 울부짖었다. 

 

경찰은 물러나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그의 울부짖음은 노동자들의 아우성 속에 파묻혔고, 곧바로 그의 온몸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얼마 후 전신화상을 입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기 된 박영진 열사가 병상에 말없이 누워있었다. 그의 삶을 26년 동안 지켜주던 생명지표가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각일각 다가서고 있었다. 화염 속에서 일그러진 그의 입술이 가늘게 움직이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 1986년 3월 17일 서울 구로공단 신흥정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투쟁을 벌이던중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진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했다. 그는 3월18일 새벽 3시 전신화상으로 숨을 거두었다. 위의 사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신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박영진 열사 곁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그의 임종을 지켜주는 장면이다. 35년 전, 박영진 열사는 분신항거로 노동계급이 당하는혹심한 착취를 세상에 폭로하는 투쟁의 길에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수많은 노동열사들의 불타는 투쟁정신은 기나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 행복해요. 나는 잠시 다니러 가는 겁니다. 

물 좀 줘요. 마시지 않을 테니까. 입술에 묻히게만 해줘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그의 곁에 있었다. 차마 유언으로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난 동일제강에서 해고되었고, 중학교 3년 중퇴하고 가난하게 살았어요. 신흥정밀은 하루 9시간씩 기본으로 일하고 3,280원을 줬어요. 너무도 살기 힘들어 임금인상하려고 했는데... 지금 빨리 가고 싶어요. 가면 쉬겠죠. 우리 부모님은 우성아파트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어요. 어머님이 이 일을 천만 노동자에게 꼭 전해주시길...”

 

박영진 열사의 숨소리가 끊어졌다. 통곡소리가 작은 병실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어언 35년 세월이 흘렀다. 박영진 열사의 26년 생애보다 더 긴 35년 세월 속에서 차츰 희미해져가던 기억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되살아났다. 

 

 

2. 고강도 착취가 자유화되었다

 

박영진 열사가 분신항거로 희생된 이후 35년이 지난 오늘 그 무슨 ‘민주화’가 실현되었다고 하는데도,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30,0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는데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여전히 실업과 빈궁,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참담한 현실 속으로 떠민 근본요인은 착취와 복종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착취는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 발생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뜻한다. 

 

생산은 노동계급의 생산로동에 의해 사회적으로 진행되지만,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가치는 자본가계급이 반사회적으로 점유한다. 이것이 착취의 실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생산의 주체인 노동계급이 생산로동으로 창조한 가치의 전부를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반사회적 행위가 바로 착취인 것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은 자기들이 배타적으로 점유한 가치 중에서 일부를 떼어내 자기들이 고용한 노동계급에게 임금(wage)이라는 명목으로 분배함으로써 착취의 지속성을 유지한다. 

 

착취계급이 모든 사회적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점유한 자본주의사회체제는 인간을 고용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인격적인 상품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을 짓밟는다. 극소수 착취계급은 절대다수 노동계급을 노동상품으로 구매하고, 그들에게 착취제도에 복종하라고 강제한다. 착취제도에 복종하지 않는 노동자는 ‘갑질’을 당하거나, 차별을 받거나, 정리해고를 당한다.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절대다수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그들을 착취제도에 복종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를 합법화해준 것이 자본주의사회체제다. 자본가계급은 인류역사에 마지막으로 출현한 착취계급이다. 

 

사회적 생산수단을 배타적으로 점유한 자본가계급과 사회적 생산로동을 담당한 노동계급은 필연적으로 대립하게 되며, 그런 계급적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발생한다.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주기적으로 심화되면서 파산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착취계급은 파산위기에서 발생한 모든 고통과 불행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전부 떠넘긴다. 그렇게 되면, 생존위기로 내몰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에 나서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착취계급은 자기들의 착취를 합법화해준 정권과 결탁하여 착취강도를 약간 낮춰주는 시늉을 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회유하고, 생존권쟁취투쟁이 격화, 폭발되지 않도록 방지한다. 1996년 5월에 설립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그런 회유정책의 추진자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노사정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나 1997년 12월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파산위기가 닥쳐왔을 때,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합법화해주었고, 수많은 노동자를 실업과 빈궁으로 내몰았으며, 착취계급은 착취강도를 이전보다 더욱 높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장장 24년 동안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고강도 착취는 완화되기는커녕 점차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요즈음 서울에서 평양랭면 평균가격이 11,000원인데,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이 정해놓은 최저임금은 시간당 8,590원이다. 그나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혹심한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는 319만명에 이르렀다. 

 

착취강도가 높아질수록 부익부 빈익빈 추세에 따라 사회적 빈부격차는 극대화되었고, 공룡처럼 비대해진 투기자본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장악했고, 불로소득과 불법금융거래와 부정부패가 만연되었다. 부동산개발에 광분하는 자본가들이 천문학적인 개발리익을 정치인들, 관료들과 나눠먹은 대장동 사태가 그런 범죄사례이다. 

 

▲ 위의 사진은 2018년 12월 1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2018년 12월 11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아무도 없는 야간에 홀로 근무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희생된 현장에는 컵라면 3개, 과자 1봉지,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 1개가 유품으로 남아있었다. 악랄한 착취제도에 복종을 강요당하며고통과 불행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계급의 41.6%를 차지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력사발전의 주체로 일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산격차는 그만두고 소득격차만 봐도, 한국 사회에서 최상위 자본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39배 더 많은 소득을 거머쥐고,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74배나 더 많은 소득을 거머쥔다. 856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간 평균임금은 약 2,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데, 소득분포에서 상위 0.1%에 해당하는 최상위 자본가 24,149명의 연간 평균소득은 약 15억1,700만원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전년에 비해 2.2% 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전년에 비해 1% 줄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감소한 것은 2004년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 관한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악랄한 착취제도에 복종을 강요당하며 고통과 불행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계급의 41.6%를 차지한다.

 

자본주의사회체제의 내부모순이 심화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류행 사태까지 겹치는 바람에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파산위기에 빠졌다. 파산위기가 몰려오자 다급해진 자본가계급은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전보다 더 많이 고용함으로써 착취강도를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2020년 10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133,000명이 증가했고, 주당 36시간만 일하는 시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97,000명이 증가했고, 파견-용역-특수형태 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28,000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광란적인 고강도 착취를 법적으로 통제(control)하기는커녕 되레 자유화(liberalize)해준 것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다.  

 

 

3.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총파업투쟁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항거로 희생된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제도에 맞서싸우기 위해 분신항거의 길을 택했다. 노동자의 분신항거는 노동계급이 자기의 집단력량을 아직 조직화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별로 분산되어 투쟁하는 시기에 벌어지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의 초기 형태다. 노동계급이 아닌 농민과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한 근로대중은 생존권쟁취투쟁에 나서지만, 노동계급은 계급투쟁에 나선다. 여러 형태의 계급투쟁 가운데서 가장 위력적인 계급투쟁이 전국적 범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총파업이다. 총파업은 노조로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계급투쟁이다. 

 

그런데 착취계급과 결탁한 정권과 언론은 계급투쟁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피어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갖지 못하도록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19세기 중엽 유럽의 공산주의운동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공산주의운동을 이끌던 칼 맑스(Karl H. Marx, 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1848년 영국 런던에서 공산당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을 출판했는데, 공산당선언 제1장은 다음과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The history of all hitherto existing society is the history of class struggle.)" 

 

흔히 계급사관이라고 부르는 사회역사리론이 정립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73년 전이다. 1811년 평안도에서 홍경래(1780~1812)가 농민전쟁을 일으킨 때로부터 37년 뒤, 유럽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모든 사회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한 계급사관의 명제를 정립했던 것이다. 홍경래는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지만, 맑스와 엥겔스는 홍경래의 농민전쟁을 계급투쟁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맑스주의 계급사관에 따르면, 홍경래의 농민전쟁은 당시 피착취계급이었던 농민들이 봉건착취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궐기한 격렬한 계급투쟁이었다. 

 

조선봉건왕조의 착취세력은 홍경래의 농민전쟁에 참가한 농민들 가운데서 2,000여 명을 살해하여 농민전쟁을 압살했고, 유럽의 착취세력은 체포, 투옥, 해외추방 같은 폭력조치를 동원하여 맑스와 엥겔스가 이끄는 공산주의운동을 짓밟았다. 그런 무자비한 탄압이 100년 이상 지속되는 동안,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기피어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착취세력이 금압한다고 해서 계급투쟁이라는 언어가 노동계급의 정신세계에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극소수 자본가계급이 절대다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사회체제에서는 계급적 적대관계(class antagonism)가 필연적으로 형성되고, 계급적 적대관계는 불가피하게 물리적 충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총파업은 계급적 적대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물리적 충돌인 것이다. 

 

▲ 위의 사진은 1945년 8.15 해방 직후 미군정 점령기에 38도선 이남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했던 조선로동조합전국평회의(전평) 본부청사를 찍은 것이다. 붉은 오각별 안에 톱니바퀴를 새겨넣은 전평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당시 전평은 세계로련에 가입되어 있었고, 전평 대표를 세계로련대회에 파견했다. 전평은 1946년 9월 15만명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이 총파업투쟁은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첫 번째 총파업이었다. 미군정 점령 하에서 모진 탄압을 뚫고 계급투쟁을 전개하던 전평은 이승만 우익독재정권이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그 정권의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첫 번째 총파업은 1946년 9월 조선로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벌인 총파업이다. 전평 산하 철도노조 40,000명 노동자가 시작한 파업투쟁은 38도선 이남 전역에서 15만명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1946년 당시 전평에 소속된 노동자는 57만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15만명이 총파업에 참가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전평이 9월 총파업에서 제시한 투쟁목표다. 9월 총파업의 투쟁목표는 전평 산하 남조선총파업투쟁위원회가 1946년 9월 26일에 발표한 총파업 선언서에 명시되었다. 9월 총파업의 투쟁목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쌀을 달라. 노동자와 사무원, 모든 시민에게 3홉 이상 배급하라.

 

2) 물가등귀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라.

 

3) 전재민과 실업자에게 일과 집과 쌀을 줄 것. 

 

4) 공장폐쇄와 해고를 절대 반대한다.

 

5) 노동운동의 절대 자유를 보장하라.

 

6) 일체의 반동적 테러를 배격할 것.

 

7) 민주주의적 노동법령을 즉시 실시하라.

 

8) 민주주의운동 지도자에 대한 지명수배와 체포령을 즉시 철회하라.

 

9) 검거, 투옥 중인 민주주의운동가를 즉시 석방하라.

 

10)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 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11) 학원의 자유를 무시하는 국립대학교안을 즉시 철회하라.

 

12) 해방일보, 인민보, 현대일보 기타 정간된 신문을 즉시 복간시키고 그 사원을 석방하라. 

 

미군정 점령 하에서 모진 탄압을 뚫고 계급투쟁을 전개하던 전평은 이승만 우익독재정권이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그 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두 번째로 벌어진 대규모 총파업은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1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전개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총파업이다. 당시 민주노총이 총파업에서 제기한 투쟁목표는 노동악법을 전면 무효화하고, 즉각 재개정하라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권 시기의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 야음을 틈타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가더니, 6분 만에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폭거를 자행했다. 그들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 개정안에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대체근로제 등이 들어갔는데, 이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계급적 착취를 합법화하여 착취강도를 이전보다 더 끌어올린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이에 격분한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총파업투쟁에 궐기했다. 자료에 따르면,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 1일 평균 163개 노조와 18만4,500명 노동자들이 참가했으며, 3차에 걸친 총파업투쟁에 참가한 연인원은 총 39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총파업투쟁에 놀란 김영삼 정권은 폭력경찰을 동원하여 최루탄을 난사하고, 백골단을 앞세워 야만적인 폭행을 가하면서 민주노총 총파업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오늘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세 번째로 기록될 총파업이 눈앞에 다가왔다. 2021년 8월 23일 민주노총은 화상회의방식으로 진행된 제73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소속 110만 명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결의하는 단독안건을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총파업 투쟁목표를 채택했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2021년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민주노총이 10.20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제시한 15개조 투쟁목표는 다음과 같다.

 

1) 고용위기에 빠진 기간산업(자동차, 조선, 항공, 에너지)을 국유화할 것.

 

2) 전체 주택의 50%를 국유화하여 주택문제를 해결할 것.

 

3)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입시제도 및 대학서열을 폐지하여 학벌사회를 타파할 것.

 

4)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할 것.

 

5) 100만명 노동자가 일하는 돌봄서비스부문을 국가가 직접 운영할 것.

 

6) 재난시기(코로나위기, 기후위기, 인구감소위기 등)에 해고를 금지하고, 산업재편시(4차 산업혁명)에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노동자와 고용자가 공동으로 결정하게 할 것.

 

7)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비정규직법을 폐지할 것.

 

8) 부동산투기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대할 것.

 

9) 재벌개혁(범죄수익 국고환수)과 부자증세를 시행할 것.

 

10) 사회임금을 확대하여 상병수당, 국민연금 소득대체 50%,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실시할 것.   

 

11)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재난생계소득을 지급할 것.

 

12)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기업차별법을 적용할 것.

 

13) 노동자-고용자성 확장 등 세계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따라 노동법을 전면 개정할 것.

 

14)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안전한 일터와 일자리를 확대할 것.

 

15)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및 정치활동권을 보장할 것.

 

 

4.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

 

민주노총이 결의한 10.20 총파업투쟁의 총적 목표는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이루어내려는 것이다. 2021년 9월 30일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서울을 비롯한 29개 지역에서 총파업결의대회를 동시다발로 진행하면서 “총파업으로 불평등체제 타파하고 사회의 대전환을 실현하자”고 외쳤다.  

 

위에 인용한 민주노총의 10월 20일 총파업 투쟁목표 중에서 주요산업 국유화, 전체 주택 50% 국유화, 무상교육제 실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공동기업운영제 실시, 비정규직 폐지, 노동자해고금지, 재벌개혁과 부자증세, 전국민고용보험제 등은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이루어내기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정치강령들이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불평등한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절대다수 노동계급에 대한 극소수 자본가계급의 억압과 착취와 차별을 합법화, 자유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체제이므로, 민주노총이 타파하려는 불평등한 체제는 곧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해석되는 것이다.  

 

민주노총 강령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한다”고 명시되었다. 민주노총이 건설하려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참된 민주주의가 구현된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참된 민주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훼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정치리념이다. 

 

▲ 위의 사진은 2021년 9월 30일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29개 지역에서 총파업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결의대회에서 그들은 "총파업으로 불평등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실현하자"고 외쳤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2021년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민주노총은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불러일으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총파업투쟁을 결의했다. 착취계급과 결탁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고, 총파업 집회를 불허한다는 탄압경고를 냈지만, 계급투쟁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대안개념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헐벗 크롤리(Herbert D. Croly, 1869~1930)다. 그는 1915년 미국 뉴욕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리념을 세계정치무대에 제기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속히 추진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억압, 착취, 차별이 극심했던 20세기 초 미국에서 크롤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크롤리가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정치리념은 세계 각국으로 파급되었다. 크롤리가 미국식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했다면, 항일투사 조소앙(1887~1958)은 우리식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그가 반일항쟁기에 정립한 우리식 진보적 민주주의가 바로 삼균주의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발표한 건국강령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었다. 건국강령에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8대 강령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었다.

 

1) 주요산업 국유화 -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은 중소기업은 사영으로 한다.

 

2) 일제와 친일부역자의 재산몰수 및 국유화 - 일제가 점유한 모든 사유자본과 친일부역자가 소유한 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 

 

3) 몰수재산의 사회적 환원 - 몰수한 재산은 빈공, 빈농 및 일체 무산자의 이익을 위하여 국영 혹은 공영의 집단생산기관에 충당함을 원칙으로 한다.

 

4) 토지의 국유화 - 토지의 상속, 매매, 저압, 전양, 유증, 전조차를 금지한다. 

 

5) 국제무역 및 사회간접자본의 국유화 - 국제무역, 전기, 수도, 대규모 인쇄소, 출판, 영화극장 등을 국유, 국영으로 한다.

 

6) 노동조건 개선 - 노동, 유공, 여인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연령, 지대, 시산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한다.

 

7) 무상의료제 실시 - 농공인의 면비의료를 보급, 실시하여 질병소멸과 건강을 보장한다.

 

8) 토지개혁 실시 - 토지는 자력자경인에게 나누어줌을 원칙으로 하되, 원래의 고용농, 자작농, 소지주농, 중지주농 등 농인지위를 보아 저급으로부터 우선권을 준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상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실현하는 정치리념은 진보적 민주주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지난날 상해 임시정부는 오늘 민주노총이 제시한 총파업 투쟁목표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간 진보적인 건국강령을 제시했다.  

 

현행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었으므로, 한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건국강령으로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계승해야 마땅한데, 진보적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미국에서 이식된 자유민주주의를 절대화하는 오류에 빠져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건국리념으로 정립되었다. 1945년 10월 3일 김일성 주석은 평양로농정치학교 학생들 앞에서 진행한 강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이 길 만이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주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 줄 수 있으며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여 줄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라고 언명하였다.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포럼 월례강연에서 “내실이 있는 민주주의는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입니다”라고 언명한 바 있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진보적 민주주의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크롤리가 말한 진보적 민주주의, 상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 명시된 진보적 민주주의, 김일성 주석이 건국리념으로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일맥상통하는 정치리념이다.

 

 

5.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1941년 11월 상해 임시정부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제시했고, 1945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국리념으로 제시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제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건국문제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940년대에 일제의 식민통치체제를 타파하고 건설하려 했던 자주독립국가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나라였던 것이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임무와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임무가 서로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오늘 분단시대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임무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임무도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구호에 나온 것처럼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실현하는 것, 다시 말해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실현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10.20 총파업의 투쟁목표로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의 강령에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민주노총이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자주통일국가 건설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전일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대전환에서 선후차를 따져보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다음에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통일국가가 건설된 다음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정부가 자주통일국가의 남측 지역에 수립되어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0일 총파업의 날이 밝으면, 진보적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투쟁의 깃발을 들고 광장과 거리로 나설 것이다. 이번에 민주노총이 준비한 총파업은 1946년 9월 총파업, 1996년 12월~1997년 1월 총파업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전개되는 총파업이다. 이에 놀란 문재인 정부는 ‘불법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했고, 총파업 집회를 불허한다는 탄압경고를 냈지만, 계급투쟁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훈민정음·말모이 원고' 등 서울 10월의 문화재로 선정

기사내용 요약

매월 15일 해당 월과 관련 있는 문화재 카드뉴스로 소개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10월의 서울문화재 선정목록. 2021.10.15 (사진 = 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등록 2021.10.15 06:01:00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서울시는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10월의 서울문화재로 '훈민정음',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말모이 원고'를 선정했다고 15일 밝혔다.

훈민정음은 우리나라 국보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1446년에 반포된 우리글 훈민정음의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에게는 별칭인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해례'는 풀어서 해설하고, 그 예를 들어 설명한다는 뜻으로 '훈민정음'은 우리글 훈민정음을 해설하고 예를 들어 기록한 책이다.

500년 가까이 자취를 감추었던 '훈민정음'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됐다. 그 소문을 들은 고(故) 간송 전형필이 당시 1만원(서울 기와집 10채 가격)을 주고 구입해 세상에 알려졌고,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는 한글이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묘비로, 2007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 비석은 이문건(조선 명종 때의 문신, 1494~1567)이 1536년에 아버지 이윤탁의 묘를 어머니의 묘와 합장하며 세운 묘비다.

비석 왼쪽 면에 "신령한 비다. 쓰러뜨리는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이를 한문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라는 뜻의 경고문이 한글로 적혀있다.

한글이 창제됐지만 묘비에 한글을 적는 일이 매우 드물었던 당시 한글 경고문을 작성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글을 읽고 비와 묘역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라는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한글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다.  

말모이 원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인 ‘말모이’의 출간하기 위해 작성됐다. 2020년에 보물로 지정돼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조선광문회'가 주관하고 한글학자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가 참여해 만든 말모이 원고는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집필됐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되었을 것을 추정되지만 현재는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말모이 원고는 한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로,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에 유일하게 사전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희숙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10월의 서울문화재는 한글날을 기념하여 자랑스러운 우리글인 한글과 관련된 문화재로 선정했다"며 "이번에 선정된 문화재를 통해 한글의 우수함과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2papers@newsis.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기도 국감 앞둔 이재명에 필요한 건 진솔한 해명과 사과

  • 기자명 박서연 기자
  •  입력 2021.10.18 07:42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신문들 “이재명 후보 국감서 진솔한 자세 보여야” 한목소리
동아일보 “남욱, 이재명 재선 바란 이유 등 규명해야”
7년 만에 폭등한 유가에 경향·한겨레 “당국, 대책 수립” 당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과 오는 20일 열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 피감기관장으로 출석한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신분으로 국정감사에 임하는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질의가 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후보 역시 야권의 질문 공세에 떳떳하게 응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후보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내일(18일) 경기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다. 경기도지사로서 마지막 국감에 책임감 있게 임하겠다”면서도 “설령 정치공세가 있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떳떳하게 응할 것”이라고 했다.

▲18일자 한겨레 4면.
▲18일자 한겨레 4면.

 

▲18일자 아침신문들 1면.
▲18일자 아침신문들 1면.

‘이재명 국감’ 야당의 증인·자료 제출 등 거부하는 여당

18일자 아침신문들도 이 후보의 국감 출석 소식을 1면에 다뤘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후보가 당당히 국감을 받겠다고 밝혔음에도 민주당이 야당이 요청한 증인·자료 제출·참고인 채택 등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3면 기사에서 “이 후보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관계, 대장동 사업 인허가 과정의 특혜 여부, 이 후보의 배임 의혹에 대한 사실 규명, 화천대유 실소유주 논란 등이 쟁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부분의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8일자 조선일보 3면.
▲18일자 조선일보 3면.

조선일보는 이어 “국민의힘은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 이성문 전 화천대유 대표, 남욱 변호사,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등 대장동 의혹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인사를 포함해 국토위에서 52명, 행안위와 정무위에서 각각 50명을 국정감사 증인 및 참고인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행안위 국감을 하루 앞둔 17일까지 단 한 명도 채택되지 않았다. 증인·참고인 채택은 상임위 여야 간사 간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데, 여당 측이 동의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문들은 이재명 지사가 이번 국감에서 진솔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국감에서 자신에게 쏠린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여권 내 지지층 이탈이 심화할 수 있다. 반면 야당이 근거 없는 윽박지르기와 고성으로 정치 공세만 하면 이 후보가 반전의 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면서 “일단 비리 연루 여부를 떠나서 이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진솔한 해명과 사과”라고 조언했다.

▲18일자 한국일보 사설.
▲18일자 한국일보 사설.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양측이 전의를 불태우면서 자칫 이번 국감이 ‘네 탓 공방’으로 고성만 오가다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이 지시 스스로가 기대한 대로 이번 국감은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의혹에 대해 소상히 설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역공만 할 게 아니라 진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최대한 성실하게 입장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사설 “남욱, 이재명 재선 바란 이유 등 규명해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들은 그를 귀국하자마자 체포했다. 지난 15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남욱 변호사와 관련된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2014년 4월30일 대장동 도시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정영학 회계사와 주민들을 만났다.

남 변호사는 당시 “제가 봤을 때는 이재명 시장이 (재선이) 되면 아주 급속도로 사업 진행 추진은 빨라질 것 같고, 다른 분이 되면 조금의 시간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이어 “이재명 시장이 (재선)되고 유동규 본부장이 사장이 되면...”이라고도 했다.

▲18일자 중앙일보 1면.
▲18일자 중앙일보 1면.
▲18일자 한국일보 1면.
▲18일자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는 1면 기사에서 “유동규씨가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시절에 수시로 ‘공사 사장을 갈아치운다’고 주변에 말하면서 내부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장동 개발사업 원년멤버인 남욱 변호사가 2014년 대장동 원주민들에게 ‘이재명 성남시장이 재선되면 유씨가 공사 사장이 된다’고 언급한 대로 실현된 셈이다. 성남도시 공사 초대 사장인 황무성씨가 임기 3년을 못 채우고 물러난 배경엔 유씨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남 변호사가 발언한 시점은 대장동 개발방식이 확정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남 변호사와 유동규씨는 민관합동개발 방식이 정해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2012년 4월 유씨는 언론에 대장동을 민관합동 방식으로 개발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2013년 대장동 원주민들과의 대화에선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공사가 50% 이상의 지분으로 참여하겠다고 설명해다. 이후 남 변호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에 재선돼야 사업 진행에 유리하다고 주민들을 설득하면서 유씨의 성남도개공 사장 임명설까지 언급한 것”이라고 짚었다.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이어 “실제 대장동 개발사업은 이재명 시장 재선 이후 상당 부분 남 변호사와 유씨가 말한 대로 진행됐다”며 “이들이 구상한 각본대로 민간업자에 특혜를 주게끔 사업이 설계됐고 진행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남 변호사가 이 지사의 성남시장 재선을 바란 이유, 유씨 중용 가능성을 알게 된 경로를 확인해서 의혹을 규명하는 게 검찰의 숙제”라고 조언했다.

7년 만에 폭등한 유가에 경향·한겨레 “당국, 대책 수립” 당부

휘발유가 7년 만에 리터당 1700원을 돌파하자 정부는 3년여 만에 유류세를 내릴지 고민하고 있다. 17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20.25원이다. 서울 지역은 이보다 높은 리터당 1796.45원을 가록했다고 한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700원을 돌파한 건 2014년 말 이후 7년 만이다.

▲18일자 경향신문 2면.
▲18일자 경향신문 2면.
▲18일자 경향신문 사설.
▲18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국내유가가 급등한 것은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오른 탓이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 15일 기준 배럴당 82.99달러였다. 최근 1년간 최저가였던 지난해 11월2일 36.30 달러에 비해 129% 폭등했다. 국제 금융계와 원자재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상승 흐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올겨울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고유가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서민이다. 의식주 관련 제품 중 원유에서 뽑아내지 않는 게 거의 없다. 유가가 오르면 원유를 원료로 한 제품도 가격 상승 압박을 받아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면 서민은 억지로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정부가 유가 급등에 따른 서민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율 인하는 고가 외제차 소유자 등 유류를 쓰는 모든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돼 자칫 부자감세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며 “유류세 환급이나 보조금 지급 등 실질적인 서민 보호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코로나19로 경제 타격을 입은 이들에게는 가격 상승이 큰 부담이 되므로 한시 인하를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쿠팡은 이길 수 없다'는 아들의 죽음..."같은 죽음 반복되면 안 돼요"

[인터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 어머니 박미숙 씨

지난해 10월 12일,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7살 장덕준 씨가 퇴근 뒤 과로사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박미숙 씨는 지난 11일 아들의 묘소 앞에서 추모제를, 12일 국회 앞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치렀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묘소에 가는 것도, 제사를 하는 것도 꺼려하던 박 씨였다. 아들의 1주기를 어떻게 보낼지를 두고 가족 간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그러던 박 씨가 1주기 추모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전국쿠팡물류센터지부와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아래 과로사대책위) 등의 제안 덕분이었다.


 

시린 마음을 안고 국회 앞에 선 박 씨는 기자회견 당일 발언 서두에 아들을 잃은 뒤의 심정을 짧게 말했다. 그리고 "쿠팡에는 아직도 덕준이의 친구들이 있다"며 쿠팡에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야간노동 규제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1년, 포기하지 않고 수도 없이 외쳐온 말이었다.


 

지난 14일, 경북 경산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박 씨를 만나 아들에 대한 기억과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 박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쿠팡에서 일한 뒤 마라톤 선수처럼 말라가던 평범한 20대 청년, 장덕준


 

박 씨에게 덕준 씨는 그 세대가 즐기는 취미를 가진 "평범한 20대 청년"이자 "친구 같기도 하고 스승 같기도 한" 아들이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을 좋아했고 맛있는 음식과 세계맥주도 좋아했다. 어머니와는 산책을 다녔고 아버지와는 술친구로 어울렸다. 사회과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던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뭔가를 배우고 새로 생각하는 일도 많았다.

 

덕준 씨가 대학을 졸업한 해는 코로나가 일어난 2019년이었다.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취업난에 맞닥뜨렸다. 이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하던 덕준 씨였다. 2019년 6월 쿠팡 칠곡물류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이후 덕준 씨의 몸은 변해갔다. 운동을 좋아해 근육이 붙어있었는데 "마라톤 선수처럼" 말라갔다. 하루는 걱정이 된 가족들이 몸무게를 재보자고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75kg이던 몸무게가 60kg이 돼 있었다. 나중에는 무릎이 아파 보호대를 차고 출근했다.


 

덕준 씨가 쿠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날도 많았다. '중간관리자들이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새로 온 사람에게 직무교육을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수월할 텐데 교육이 없다', '일을 잘 하는 형이 있는데 무기계약직 심사에 탈락했다'와 같은 말들이었다. 쿠팡 노동자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쿠팡에서 일하면서 양팔 저울을 비유로 많이 들었어요. 한쪽에 물건을 두면 한쪽은 내려간다. 누군가 즐겁고 행복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면 힘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 아들에게 박 씨가 "바꾸려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 날도 있었다. "한 번 쳐서 안 된다. 계속 쳐야 한다"고도 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왔으니 쿠팡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자신은 밖에 있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덕준 씨는 말을 해도 바뀌는 게 없다며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만 두라'고 해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덕준 씨는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2년을 채우고 무기계약직이 되면 그 때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달 12일 세상을 떠났다.


 

"새벽 6시에 (덕준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욕실에서 샤워를 하거든요. 그런데 욕실이 너무 조용했어요. 피곤하면 욕실에서 자기도 하니까.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문을 두드렸는데도 소리가 안 났어요. 들어가 보니 (가슴에 손을 X자 모양으로 교차하고 상체를 수그리며) 이렇게 있는 거예요. 119를 불렀어요. 의사가 힘들 거라고 말을 하는데도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눈으로 보는데도 다시 일어날 것 같았어요."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미숙 씨의 옆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산재 신청부터 전국 순회 투쟁, 청와대 청원까지...박미숙 씨의 지난 1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도 장례는 시작됐다. 그 때만 해도 산재나 과로사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장례 둘째 날, 새벽 장례식장에 온 진경호 당시 과로사대책위원장을 만나고서야 처음 의구심이 생겼다. 아들이 하던 이야기와 과로사한 택배노동자의 이야기가 너무 비슷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쿠팡 물류센터 동료들도 사망 당일 덕준 씨 몸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덕준이 일하던 7층에서 50~70명 정도가 일한다는데 35명 정도가 장례식장에 왔어요. 조의금을 보낸 친구들은 50명 가까이 됐어요. 온 친구들이 다 너무 심하게 울었어요. '그날 덕준이가 가슴 통증이 있다고 했다', '속이 메슥거린다고 했다'고도 했어요. (사망 당시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던 게 생각나셨겠네요?) 네."

 

박 씨와 남편은 고심 끝에 아들의 시신을 부검하고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과로사대책위와 함께 덕준 씨에게 일어난 일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쿠팡은 자사 홈페이지 뉴스룸에서 '고인이 살인적인 근무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맞받았다.


 

지난 2월 9일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씨의 죽음은 산재라고 인정했다. 공단에 따르면, 야간근무자였던 덕준 씨는 발병 전 1주간 주 평균 62시간 10분, 발병 전 2주에서 12주간 주 평균 58시간 18분 일했다. 하루에 취급한 중량물의 무게는 470kg 이상이었다. 과중한 업무로 과다하게 사용된 근육은 급성으로 파괴됐고 결국 심근경색에 이르렀다.

 

공단의 산재 인정이 나온 날, 쿠팡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유족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족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과로사 방지대책 등과 관련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월 22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산재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에도 쿠팡은 유족에게 연락했다. 청문회가 끝나자 접촉이 끊겼다.

 

이에 박 씨는 지난 5월 13일부터 한 달여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다. 남편과 함께 각지의 쿠팡 물류센터를 찾았다.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다시 한 번 유족과 대책위, 쿠팡간에 과로사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으나 지난 7월 중단됐다. 

 

당시 을지로위는 유족의 야간 연속근로와 연장근로 제한 요구에 쿠팡이 '야간 연속근무 6일, 연장근무 2시간 30분'을 고수한 점이 협상 중단의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까지 허용된다. 고용노동부 과로사 판정 노동시간 기준은 발병 12주 전 주 평균 60시간, 발병 4주 전 주 평균 64시간이다.


 

쿠팡은 유족과의 합의가 불발하는데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대책위가 가로막고 있어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저는 이미 대책위에 합의 권한을 위임했어요. 쿠팡과 서너 번 직접 통화하면서도 그런 뜻을 분명히 밝혔고요. 7월에 협의할 때 합의문까지 만들어졌어요. 저는 성에 안 찼어요. 그런데 대책위가 저를 설득했어요."

 

대화가 중단된 뒤에도 박 씨는 쿠팡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지난 9월에는 쿠팡이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을 내게 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 박미숙 씨가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 액자를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바꾸려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 책임져야죠"


 

지금 박 씨의 가장 큰 바람은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아들과 같은 이유로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야간노동 규제법을 제정하고, 쿠팡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준이가 자기 몸을 던져서 보여줬어요. 야간노동은 위험해요. 지금 야간노동 규제법이 안 갖춰진다면 제2, 제3의 덕준이가 또 나올 거에요. 국회가 제발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을 대변한다는 자신들의 직무를 깊이 생각하고 충실히 하고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쿠팡은 지금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걸맞게 노동자의 안전이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을 자꾸 갈아 넣는 게 아니라 정말 노동자를 존중하고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귀담아 들으면 좋겠어요."


 

긴 싸움이 힘들지는 않을까. 목표가 너무 멀어보이지는 않을까.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해도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지난 1년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라는 아들의 말도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박 씨의 생각은 단호했다.
 

 

"덕준이가 가고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이게(아들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제 일이 됐어요. 제가 한 '바꾸려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 책임져야죠. 나중에 엄마로서 덕준이를 만났을 때 '어머니 왜 그랬어요' 이런 말은 안 들어야죠.


 

'너무 잘 했어요.' 덕준이 말투가 있거든요. 그 말투로 툭 던지는 이 말을 듣고 싶어요. 그게 귓가에 자꾸 맴돌아요. 다른 부모가 똑같은 환경에서 또 자식을 잃는다면, 덕준이가 봤을 때 뭐라고 할까요. 제가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하며) 갈지는 모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오늘 갈 수 있는 만큼은 갈 거예요."


 

얼마 전 박 씨 부부는 쿠팡에서 일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조리원의 남편 최동범 씨와 함께 일생에 한 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를 찾았다. 가족을 잃은 뒤 걷는 일조차 줄어든 탓에 체력이 떨어져 셋 모두 숨을 몰아쉬면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같이 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빌었을 소원은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을까. 덕준 씨의 2주기는 온전한 애도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152128403800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말 쉽고 바르게]⑨ 즐기며 배우는 한글놀이터… 시장골목서 만나는 '소년 세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10/17 09:39
  • 수정일
    2021/10/17 09: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수정 문화팀 팀장입력 : 2021-10-15 00:00

 
창제 원리·변천사 궁금할 땐 용산 '국립 한글박물관'… 다양한 자료·전시물 체험세종대왕 일대기 벽화·동상 앞 인증사진·…'여주한글시장' 영릉과 함께 입소문
여주한글시장에 설치된 소년 세종의 동상 [사진=기수정 기자]

여주한글시장에 설치된 소년 세종의 동상 [사진=기수정 기자]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한글박물관'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한글박물관'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자주·애민·실용'이라는 창제 원리에 기반한 한글은 독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언어로 손꼽힌다.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런 이유에서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은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적으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도 준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좋은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이를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한글을 주제로 한 여행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국내 곳곳에는 한글의 가치를 직접 깨달을 수 있는 여행지가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공간이 '국립 한글박물관'(서울 용산구)과 '여주한글시장'(경기 여주)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지만 한국인보다 외국인과 학부모에게 더 인기가 높은 국립 한글박물관과 한글을 주제로 한 전통시장 여주 한글시장을 둘러보며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아 보고, 한글의 위대함을 가슴속에 품어 보기로 하자. 

◆독창적·과학적 문자 한글, 박물관에서 만나다···국립 한글박물관

세계의 언어학자들로부터 독창적·과학적 문자라는 찬사를 받는 한글. 날마다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편한 언어지만, 과연 한글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이는 얼마나 많을까.

한글 탄생 배경과 변천사, 한글 창제 원리, 한글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 변천사와 그 원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글이 품은 가치는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국립 한글박물관'이 정답이다. 한글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곳에서 알 수 있다. 

지난 2014년 10월 9일 문을 연 국립 한글박물관은 한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나아가 한글과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한 전시 공간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글의 원리를 쉽게 체험할 수 있고, 한글을 익히고 싶은 외국인들은 한글을 배울 수 있다. 한글 문화의 놀이터인 셈이다. 

건물은 모음 글자의 배경이 된 하늘·사람·땅을 형상화했다. 총 3층으로 이뤄진 건물에는 전시실과 한글놀이터, 기념품점, 카페, 도서관이 마련됐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글이 걸어온 길'을 주제로 한글 창제 원리를 알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한글이 국어로 정착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다양한 자료와 전시물을 통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개편 공사로 내년 1월까지 운영을 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1443년부터 우리 말과 글을 빼앗긴 일제강점기까지 차례로 표현한 설치물을 비롯해 정조가 직접 쓴 한글 편지첩, 금속제 한글 활자, 최초의 국어 교과서 등 귀한 자료가 많다. 전시를 관람하고 난 후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이 더욱 자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3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글과 세계 문자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기획해 전시하는 공간이다. 한글의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이곳에는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의 작품까지 총망라돼 있다. 

전시실 맞은편에는 한글놀이터가 있다. 신나게 놀면서 한글을 배우는 공간인 만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한글과 놀이를 결합한 재미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를 배우고 한글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같은 층에 자리한 한글배움터에서는 외국인이나 다문화 주민이 좀 더 쉽고 즐겁게 한글을 배워볼 수 있다.

해설을 들으면 훨씬 더 알차고, 쉽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예방 조치 차원에서 전시 해설이 잠정 중단됐다. 관람 인원도 90명(한글놀이터 33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여주 한글시장은 '한글'을 주제로 한 이색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 한글시장은 '한글'을 주제로 한 이색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글을 주제로 한 전통시장이 있다? 여주 한글시장

골목길이 주는 재미가 있다. 바로 발견의 재미다. 여주 한글시장도 그렇다. 이곳이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우리 고유의 언어 '한글'을 주제로 삼은 덕이다.

1980년대부터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해 '중앙로상점가'로 불리다 지난 2016년 문화 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되면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문화 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은 전통시장과 지역의 문화 관광을 연계하는 내용이다.

여주한글시장은 중앙로 상점가에 한글을 접목해 만들었다. 한글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단순했다.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사적 195호)이 여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주한글시장으로 탈바꿈한 후 이곳 시장은 여주 여행 명소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한글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세종대왕을 소재로 한 벽화가 '한글시장'이라는 특색을 제대로 살렸고, 이곳을 찾는 이가 자연스레 늘었다. 

여주한글시장에 가면 다양한 한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가게 간판도 대부분 한글로 이뤄졌다. 시장 입구 바닥에는 훈민정음이 새겨졌고, 하늘에 알록달록한 한글 작품이 걸렸다. 글자로 사용하던 한글을 미술 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다.

여주한글시장은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여주시청 입구와 제일시장 입구다.

1구역은 여주시청 입구에서 시작하고, 4구역까지 차례로 이어진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골목이 연결되는데, 벽화를 보려면 2구역과 3구역 사이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표현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탄생부터 즉위, 측우기 제작, 훈민정음 창제까지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재미있게 그려냈다. 

벽화를 좀 더 보고 싶다면 4구역 벽화골목으로 가면 된다. 열심히 사군자를 그리는 세종대왕 모습이 퍽 진지하다. 한글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지고, 세종의 모습에 또 한번 빠져든다. 그리고 길지 않은 골목에서 문득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자신도 발견하게 된다. 

생활 문화 전시관 '여주두지'도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두지는 쌀을 보관하는 뒤주를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여주뒤주'일 것이다. 여주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보관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뜻에서 '여주두지'로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는 여주 14개 마을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와 채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여주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와 물건이라 더 정겹다. 

이곳을 둘러본 뒤에는 소년 세종 동상으로 향한다. 소년 세종의 실제 모습도 이처럼 영특했으리라. 인자하면서도 똘똘해 보이는 소년 세종이 책을 들고 서서 웃는 모습을 마주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증사진을 찍어댄다. 아직은 한글이 신기하기만 한 아이도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달라 조른다. 촬영장소 옆에 마련된 의자는 한글의 자음을 표현했다. 
 

여주한글시장 벽화골목에는 그려진 세종대왕의 일대기[사진=기수정 기자]
 

여주한글시장 벽화골목에는 그려진 세종대왕의 일대기[사진=기수정 기자]
 

한글'로 표현된 여주한글시장 조형물 [사진=기수정 기자]

'한글'로 표현된 여주한글시장 조형물 [사진=기수정 기자]

국립 한글박물관 전시실 내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국립 한글박물관 전시실 내부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한글시장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여주한글시장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서 함께 촛불 든 여수 사고 현장실습생 친구들 “잊지 않고 우리가 바꿀게”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16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는 현장실습 중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촛불이 밝혀졌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정운아, 잊지 않을게, 우리가 바꿀게’라는 이름으로 전국 청소년 추모제를 진행했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전남 여수에서 고인과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비롯해 경기, 인천, 충남, 울산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 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생전 친구였던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낭독한 뒤, 요트 업체 대표를 구속 수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 의견에 반대하며, 실습 사업장에 대한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6일 사고가 난 뒤 11일째 여수에서 추모행동을 하고 있는 고인의 절친 A(19) 군은 “정운이는 부모님께 폐 끼치기 싫어서 용돈도 직접 일을 해 부담하던 친구”라며 “요트 사장은 아직 불구속 입건 상태인데, 지난 주말에 사고가 난 배를 끌고 영업을 했다. 아무도 처벌하지 않는 이 사회에 분노한다”라고 말했다.

고인과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여수해양과학고 김준혁(19) 군은 “정운이는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친구”라며 “왜 우리 정운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나, 화가 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친구 이민주(19) 양은 “현장실습제도가 폐지된다면 특성화고의 존재 가치가 없다”라며 현장실습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이 양은 “장례식이 끝나고 슬퍼할 틈도 없이 추모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희 생각과는 조금 다른 기사들을 보며 하루하루 힘들고 지쳤다”라면서도 “저희가 바라는 건 현장실습 폐지가 아닌, 안전한 현장실습장을 만들어 정운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잘못은 몇 곳의 취업처와 관리감독을 제대로 안 한 나라에게 있는데, 그 피해가 꿈을 위해 특성화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라면서 “집회나 시위 등에 우리를 언급하며, 어른들의 요구를 위해 우리를 이용하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이자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은진 양은 “왜 네가 일하다 죽어야 해, 도대체 우리는 왜 살기 위해 들어간 일터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해”라며 “현장실습생으로 이 일을 끝까지 지겨볼 거고, 다시는 너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게”라고 편지를 전했다.

뉴스에서 사고를 접하고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 직접 연락을 취해 추모행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힌 미림여자정보과학고 졸업생 김이한 씨는 후배에 대한 죄책감과 비통함이 담긴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는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늘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여기 나와 있는 정운 군의 친구들을 보니 부끄러워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못 할 것 같다. 이런 억울한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나”라며 울먹였다.

16일 오후 6시 전남 여수의 선착장에서 위험한 잠수 업무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그러면서 “정운 님을 떠나게 만든 업주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현장에 있던 모든 어른을 탓하고 싶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데만 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그들을 비난하는 데에 집중하는 순간 이 사고는 몰상식한 업주의 잘못으로 생긴 불상사 정도로만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 어른 중 한 명이라도 미성년자는 잠수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정운 님의 잠수를 말렸더라면, 현장 실습생이 현장에서 부당한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고 편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더라면 정운 군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정운 님의 사고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점점 고졸 근로자가 줄어가는 이 상황에서 이 사고는 남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 나와 있는 우리는 모두 언제 어디서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약자가 보호 받지 못하는 사회를 그냥 두지 말자. 용서하지 말고 끝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유해 위험 작업 관련 직종 및 산업안전 고위험 직종 현장실습 금지 ▲운영 중인 현장실습 안전 문제 전수조사 ▲요트 사장 구속 및 강력 처벌 대책 마련 ▲현장실습 기업체 대한 관리·감독 대책 마련 ▲현장실습생 안전지킴이 플랫폼 제작 및 운영 ▲현장실습생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법 전면 적용 등의 내용이 담긴 실습생 사망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재차 정부에 촉구했다.

또 교육부 장관과의 양자토론회를 제안하며 “제2의 고 홍정운 님과 같은 죽음이 멈출 때까지 행동할 것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현장실습이 이뤄질 때까지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위 대책안에 대한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오는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전국특성화고등학생 대회를 개최해 안전한 실습 보장을 요구하는 추모행동을 이어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가보안법 폐지 대장정 마무리..“적폐악법 묻을 것”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10/15 [20:00]

  •  
  •  
  • <a id="kakao-link-btn"></a>
  •  
  •  
  •  
  •  
 

▲ 국가보안법 폐지 대행진이 15일 서울 일정으로 마무리됐다. 대행진단은 이날 서울 사당역을 출발해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했다. [사진제공-한성 ‘평화연방시민회의’ 공동상임대표]  

 

▲ [사진제공-국민행동]  

 

▲ 15일 국가보안법 폐지 대행진 마무리 보고대회. [사진제공-국민행동]  

 

▲ [사진제공-국민행동]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대행진)’이 11일간의 일정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마무리 보고대회’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도 진행됐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지난 5일 제주 4.3기념관을 출발해 부산(6일), 경남(7일), 대구·경북(8일), 전남(9일), 광주·전북(10일), 대전·세종·충남(11일), 충북·강원(12일), 인천·성남(13일), 수원(14일)을 거쳐 오늘(15일) 서울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대행진을 마무리했다.

 

국민행동은 15일 “그동안 제주 4.3항쟁, 대구 10월 항쟁, 대전 골령골 학살지, 광주 5.18 민족민주열사묘역, 여순항쟁 학살지 등을 돌아보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절박함을 다시 한 번 뼈에 새겼다”라며 “전국 각지의 시내를 누비며 행진을 하며 더 많은 사람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망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행진이 이어지는 곳마다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에서 함께 걸었다. 마지막 날인 이날 사당역에서 출발한 행진 참가자는 200여 명에 달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이날 행진 중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평안해지고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일 만에 청원 성립 조건인 10만 명을 넘겼으며, 73여 명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참, 민형배·강은미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법사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심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계가 드러난 것 같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다. 반드시 폐지되어야 자신들이 원하는 개혁도 완성될 수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절박한 문제를 소위 여론(등의) 눈치를 보며 정치·공학적으로 미뤄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는데, 개혁의 고삐를 당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1대 후반기(2년) 국회 법사위원장은 국힘당이 맡기로 한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다.

 

앞서 여야는 지난 7월 23일 21대 전반기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11대 7로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후반기도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하기로 했다. 핵심쟁점인 법사위원장 자리는 전반기는 기존대로 여당이 맡고, 후반기는 국힘당이 맡기로 했다.

 

심 변호사는 “국민이 힘을 모아서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할 수 있도록 명령해야 한다”라며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행진 촬영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이날 국회 정문 건너편에서 열린 ‘마무리 보고대회’에서 김경민 YMCA 사무총장은 “임시로 만들어져 금방 사라질 것 같았던 국가보안법이 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자주와 평화, 통일로 가는 그 길목에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반드시 폐지하자”라고 말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다음 주 10월 20일 민주노총 총파업을 준비하느라 오시는 걸음 곳곳에서 크게 도움이 못 되어 죄송스럽다”라며 “73년 버텨온 이 악법은 반드시 우리 노동자들이 앞장서 끊어내 보겠다. 국회가,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노동자와 우리 민중들이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박미자 공동단장은 “11일간 함께 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바로, 지난 73년간 전혀 안녕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이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다”라며 “다시는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도록, 안전하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건설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재하 총괄단장은 “(행진 기간) 만나는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박물관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라며 “이제 국회가 공인하는 일만이 마지막으로 남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자헌 여순항쟁 서울유족회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제주에서 국회까지 걷는 행진단의 모습을 보면서 매일 밤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라며 “하늘에 계신 수많은 애국지사도 함께하며 우리를 지켜주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적 공감을 함께 불러일으킨 대행진단에 감사드리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국회에서 폐지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민행동]  

 

▲ [사진제공-국민행동]  

 

오후 1시에는 국회 본청 앞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강민정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지난 2004년 이후 집권여당 의원으로는 17년 만의 대표 발의다.

 

민형배 의원은 기자회견 발언을 통해 “법안은 아주 간단하다. 딱 열 글자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그러나 아직도 못해왔다. 오늘 대행진단과 국민의 요구에 호응하고자 21명 의원의 동의로 공식 발의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5월 10만 국회동의청원 및 제출을 기억하고 있다. 이 법이 생긴 이래, 최단시간 내 동의하였던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으나 아직 법사위에서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라며 “더 지연시키는 것은 국회 책무에도 맞지 않으며, 촛불혁명 정신을 이어받는 이번 21대 국회는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할 책무가 있다.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적폐악법을 땅속 깊숙이 묻어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도록 하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강민정 의원은 “국가보안법은 인간이 가진 생각을 법과 정치의 감옥에 가둬놓는 법이다. 생각과 양심은 인간 존재 그 자체인데, 이는 곧 인간 존재 자체를 감옥에 가둔다는 것과 같다”라며 “이 악법의 폐지 없이 대한민국은, 진짜 민주주의 국가도, 진짜 선진국도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발의에 그치지 않고 진짜로 없어질 수 있도록 국회에서 열심히 뛰겠다”라고 말했다. 

 

김재하 대행진단 총괄단장은 “10만 국회동의청원 거쳐 오늘 대행진까지 왔다. 이런 국민의 뜻 반영하여 발의한 민형배 의원에게 감사를 전한다”라면서도 “한편으로 민주당에도 당부하고 싶다. 민주당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도 하지 않았나? 시민들과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자”라고 당부했다. 

 

박석운 국민행동 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은 적폐청산 차원에서 촛불정부 등장하자마자 1호로 처리했어야 할 사안”이었다며 “이 땅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민주, 반인권, 반평화통일, 반양심악법인 국가보안법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악법이다. 국민의 시간에 국회의 시간이 덧붙여졌으니 이번에 꼭 폐지하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가보안법 없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전국 곳곳 우리 시민들의 염원과 결심, 각오를 모두 모아 엄중하게 명한다”라며 “촛불항쟁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대개혁의 열망 아래 탄생한 절대다수의석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결심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난 5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출발한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의 공동단장으로는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실천불교승가회 도철 스님, 조계종 사회노동위 지몽 스님, 김영식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 강해윤 원불교 교무, 김경민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조영선 민변 국가보안법폐지 TF단장, 박미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등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를 모두 망라했다.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총괄단장을 맡았다. 

 

대행진을 마무리한 국민행동은 다음 주부터 국회 앞 1인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대행진을 포함한 하반기 집중행동을 위해 ‘소셜펀치’ 형태로 시민들의 모금도 진행 중이다.

 

▲ 5일 제주일정. [사진-국민행동]  

 

▲ 6일 부산일정. [사진-국민행동]  

 

▲ 7일 울산일정. [사진-국민행동]  

 

▲ 7일 경남일정. [사진-국민행동]  

 

▲ 8일 대구경북일정. [사진-국민행동]  

 

▲ 9일 전남일정. [사진-국민행동]  

 

▲ 10일 광주, 전북 일정. [사진-국민행동]  

 

▲ 11일 대전, 세종, 충남일정. [사진-국민행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